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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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리나-마 ㅡ 두 가지 의미

 

원문: Buddha Dhamma ㅡ Advanced 섹션의 ‘Vipariṇāma – Two Meanings’ 포스트

 

위빠리나-마 둑카(vipariṇāma dukkha)는 세 가지 유형의 ‘둑카(dukkha)’ 중의 하나입니다. ‘아닛짱 위빠리나-미 안냐타-바-위(aniccaṁ vipariṇāmi aññathābhāvi)’는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의 결실없음을 간결하게 기술하는 구절로, ‘위빠리나-마 둑카’의 더 깊은 의미를 드러냅니다.

 

2024년 3월 5일 작성

 

위빠리나-마 ㅡ 그 의미는 무엇인가?

 

1. 가장 넓은 의미에서, 진화(evolution)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무언가가 점진적으로 발전/개선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생물학, 기술, 아이디어, 문화 등 많은 분야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물론, 잘 알려진 ‘진화 이론’(싱할라어로 පරිනාම වාදය)은 인간이 원숭에서 진화했다는 다윈의 이론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원숭이가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전되어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 ‘이론’은 붓다 담마에 따르면 잘못이지만, 그것은 ‘진화’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 * ‘진화(evolution)’에 대한 빠알리 낱말은 ‘빠리나-마(pariṇāma)’입니다. 따라서, 위빠리나-마(vipariṇāma)(싱할라어로 විපරිනාම)는 그 반대, 즉 무언가가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점진적으로 저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기능, 특성, 또는 구조가 쇠퇴하거나 상실되는 것을 나타냅니다. 

  • * 따라서, 우리 행위가 오랜 기간에 걸쳐 점점 더 나쁜 결과로 이어진다면(즉, 그것이 위빠리나-마 특성을 가진다면), 그 행위를 거슬러 새로운 길을 시작할 때입니다.

 

위빠리나-마의 두 가지 의미

 

2. 첫째로, ‘세상 것이 어떻게 좋은 것에서 나쁜 것으로’ 또는 ‘나쁜 것에서 가장 나쁜 것’으로 가는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과거 행위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 세 가지 유형의 고통에 대한 이전 포스트들에서, 우리는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들러붙음의 결과로서 ‘위빠리나-마 둑카’를 논의했습니다. 우리는 자동차, 주택, 등과 같은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들’을 사기 위해 대단히 노력(깜마/상카-라)합니다. 처음에, 우리는 성취할 때 기쁨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또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그것들이 매력을 잃을 때 더 괴로워합니다.

  • * 붓다께서는 ‘Kāma Sutta (Snp 4.1)’에서, 그것을 “그 즐거움이 사라지면, 화살에 찔린 것처럼 아프다”라고 설명하셨습니다. 

  • * 구 포스트들에서 그 측면을 논의했습니다. 예를 들면, ‘소개-2 ㅡ 괴로움의 세가지 범주’ 포스트의 #7을 참조하세요. 

 

3. 둘째로, 더 깊은 의미가 더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그것은 특정 세트의 행위가 어떻게 나쁜 결과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지를 (지혜로)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특정 행위가 어떻게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지 정확히 알아낼 수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 * 주 개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마음의 [시작] 뿌리/바탕은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았습니다. 붓다께서는 그것을 ‘빠밧사라(pabhassara) 마음’이라고 칭하셨습니다. 여기서, ‘빠바라(pabhasara)(s가 하나고, ‘pa + bhava + sara’,  즉 ‘반복된 태어남’)는 이 세상에 들러붙은 마음을 의미하고, ‘빠밧사라(pabhassara)(s가 둘이고, ‘pa + bhava + assara’,  즉 ‘반복된 태어남의 끝’)는 그 반대, 즉 그 결함을 봄으로써 이 세상에 들러붙음을 포기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괴로움 없는(빠밧사라) 마음을 드러내는 것’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보통 인간은 ‘빠바라(pabhasara) 마음’을 가지는 반면에, 아라한은 ‘빠밧사라(pabhassara) 마음’을 가집니다. ‘빠밧사라(pabhassara) 마음’은 둑카 웨다나(dukkha vedana)의 흔적조차 사라지게 합니다. 빠바라(pabhasara) 마음은 두 가지 유형(둑카/수카 웨다나)을 모두 느끼지만, 장기적으로, 즉 모든 유정체는 사악처(아빠-야-)에서 가혹한 고통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에 제탄생 과정에서 둑카 웨다나가 지배적입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좋은 삶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얼마나 많은 부자와 유명인들이 (특히 젊을 때) 고통에 대해 염려할까요? 그러나 고통은 이 생에서도 늙음에 따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 * 빠밧사라(pabhassara) 마음에 대한 소개는 ‘아닛짜 본질 ㅡ 세간적 즐거움을 쫓는 것은 무의미하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위빠리나-마의 더 깊은 의미

 

4. 다음 도표는 위빠리나-마, 즉 ‘하향의 길에 있음’의 더 깊은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Nibbāna and the Three Lokās – Basic

 

까-마 로까, 루빠 로까, 및 아루빠 로까

 

5. 붓다께서는 31영역으로 된 이 세상을 3가지 ‘로까-(lokā)’로 나누셨는데, 이것은 3가지 ‘소 세계(minor world)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 * 까-마 로까(kāma loka)는 닙바-나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6가지 모든 감각 기관은 모든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기 위해 있습니다. 그에 맞춰, 모든 10가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가 까-마 로까에서 행해질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몸과 마음을 통해 행해지는 7가지 아꾸살라는 브라흐마들이 육체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아루빠 로까와 루빠 로까에서는 방지됩니다(그것은 그곳에 태어난 이들은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그 아꾸살라 깜마에서 멀어져 있고 자-나-를 육성했기 때문에 빠띳짜 사뭅빠-다와 잘 맞습니다.)

  • * ‘감각적 즐거움의 위험함’을 이해함으로써, 까-마 로까(kāma loka)를 초월하여 ‘루빠 로까(rupa loka)’, 즉 ‘루빠-와짜라 브라흐마 로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 자는 루빠 로까와 연관된 ‘왜곡된 산냐-’를 통해 일어나는 ‘자-나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 * ‘자-나 즐거움의 결실없음’을 이해함으로써, ‘루빠 로까’를 초월하여 ‘아루빠 로까(arupa loka), 즉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 로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 자는 아루빠 로까와 연관된 ‘왜곡된 산냐-’를 통해 일어나는 ‘사마-빳띠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 * 마지막으로, 아루빠 로까에 있는 아리야(성자)는 ‘사마-빳띠 즐거움’에 들러붙는 것을 극복하여 모든 3가지 로까-(lok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가 처음으로 ‘괴로움 없는 빠밧사라(pabhassara) 마음’을 경험하는 때입니다.

  • * 우리는 ‘세 단계 실천’ 섹션의 ‘인식(산냐-) 이해를 통한 소따빤나 단계(Sotapanna Stage via Understanding Perception (Saññā))’ 서브섹션에 있는 많은 포스트에서 ‘왜곡된 산냐-’ 개념을 논의했습니다. 

 

루빠 및 아루빠 로까에 일시적으로 태어남

 

6. 해당하는 형색, 소리 등에 접하는 것을 피하고 호흡과 같은 중립 대상에 집중하여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를 육성함으로써, 까-마 로까(욕계)의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는 것을 일시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런 요기(수행자)들은 루빠-와짜라 브라흐마 영역, 즉 ‘루빠 로까(rupa loka)에 태어날 것입니다.

 

  • * 동일한 식으로, 루빠 로까의 자-나 즐거움을 일시적으로 극복하여 아루빠- 사마-빳띠(arupa samāpatti)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요기들은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 영역, 즉 ‘아루빠 로까(arupa loka)에 태어날 것입니다.

  • * 그 방법들에서는 마음에서 오염원(라-가, 도사, 모하)을 제거하지 않았고 따라서 마음을 이 세상에 묶는 어떤 아누사야(anusaya) 또는 상요자나(saṁyojana)도 제거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항상 까-마 로까(kāma loka)에 태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휴가를 연장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괴로움(고통)은 끝나지 않습니다.

  • * 달리 말하면, 그런 아나리야 요기(anariya yogi)들은 ‘위빠리나-마(vipariṇāma) 길’에 여전히 있을 것입니다. 아루빠 로까에 있어도, 그들은 ‘닙바-나에 가까이’ 있지 않습니다. 까-마 로까(kāma loka)에 있는 소따빤나가 그런 아나리야 요기보다 ‘닙바-나에 더 가까이’ 있습니다.

 

닙바-나를 향해 진전 ㅡ 빠리나-마

 

7. 까-마 로까(욕계)에 있는 소따빤나(수다원/예류자) 또는 사까다가미(사다함/일래자)는 위빠리나-마 경향을 부수었고 닙바-나에 더 가까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소따빤나 팔라를 얻으면, 딧티(diṭṭhi)와 위찌낏짜-(vicikicchā) 아누사야를 부술 것이며, 또한 세 가지 상요자나를 부술 것입니다. ‘4단계의 닙바-나에 대한 조건’을 참조하세요. 따라서, 그들은 여전히 욕계에 있더라도, 사악처(아빠-야-)에 재탄생하는 것에서 벗어났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 가지 상요자나를 제거했으므로) ‘아빠-야가-미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 소따빤나와 사까다가미가 사띠빳타-나를 육성하면 까-마 라-가(및 빠띠가)를 제거하여 까-마 로까(욕계)의 모든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나-가-미(아나함/불환자)는 루빠 로까(색계)에만 태어날 수 있는데, 그들은 해당하는 아누사야/상요자나가 부수어졌기 때문에 까-마 로까에 결코 태어날 수 없습니다.

  • * 그러나 아나-가-미는 루빠 로까(색계)와 연관된 ‘왜곡된 산냐-’에서 일어나는 자-나 즐거움(루빠 라-가)에 여전히 들러붙어 있습니다. 자-나 즐거움의 아닛짜 특성을 숙고함으로써, 그들은 루빠 라-가를 극복하여 아라한 아누가-미(아라한도)로서 아루빠 로까로 진전(빠리나-마)할 수 있습니다.

  • * 마지막 단계는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upāvacara samāpatti)를 위한 아루빠 라-가(arupa rāga)를 극복하고 아라한과(Arahanthood)를 얻는 것입니다. 물론, 아루빠 라-가는 아루빠 로까(무색계)와 연관된 ‘왜곡된 산냐-’로 인해 일어납니다. 

  • * 따라서, 오직 (삼마- 딧티를 가진)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만이  뿌툿자나의 위빠리나-마(vipariṇāma) 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닛사라니야 숫따 ㅡ 세 가지 로까-에서 탈출

 

8. ‘Nissaraṇiya Sutta (Iti 72)’는 아리야의 마음이 어떻게 닙바-나(pabhassara 마음)를 향해 체계적으로 진전(빠리나-마, pariṇāma)하는지를 간결히 말합니다.

 

  • * “벗어나야 할 이 세 가지 로까-(‘따-뚜요’로 언급되며, 까-마 다-뚜, 루빠 다-뚜, 아루빠 다-뚜)가 있다.”

  • *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함으로써 까-마 다-뚜에서 벗어난다. 모든 루빠(대요소로 이루어지는 루빠, 즉 ‘삽빠띠가 루빠’)에 들러붙음을 포기하는 것이 루빠 다-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닙바-나(그침)는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해 일어날 수 있는 (담마-, 즉 ‘압빠띠가 루빠’를 포함하여) 모든 것에서 벗어남이다.”

  • * 삽빠띠가(sappaṭigha)와 압빠띠가(appaṭigha) 루빠는 ‘루-빠란 무엇인가? - 담마-도 루-빠다!’ 포스트의 #8, #9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뿌라-나 및 나와 깜마 단계

 

9. 마음은 항상 위에서 논의한 세 가지 로까- 중의 하나에 속합니다. 감각 입력을 받으면, 까-마 로까(kāma loka)에 태어난 모든 이들의 마음은 처음에 까-마 다-뚜(kāma dhātu) 단계가 됩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여러 추가 단계가 더 일어납니다. 

 

(i) 마음은 까-마 로까와 연관된 ‘왜곡된 산냐-’를 갖게 됩니다.

 

(ii) 아나-가-미 단계 아래의 모든 이들의 마음(즉, 까-마 라-가 아누사야/상요자나가 그대로 있다면)은 ‘까-마 상깝빠(kāma saṅkappa)가 자동적으로 생성되고, 마음은 그 감각 입력에 들러붙습니다. 이것이 위 도표에서 가리켜 보인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입니다. 

 

(iii) 이제, 마음은 오염되었고, 감각 입력에 대한 그 자신의 버전을 만듭니다. 이것을 ‘짝쿠 윈네이야- 루빠(cakkhu viññeyyā rupa)’라고 합니다. 

 

 

10. 그 순식간에, 마음은 그 마음이 만든 루빠, 즉 ‘짝쿠 윈네이야- 루빠(cakkhu viññeyyā rupa)’에 확고하게 들러붙을 수 있습니다. 맛 입력의 경우에, 이것은 ‘지와- 윈네이야- 라사-(jivhā viññeyyā rasā)’입니다.

 

  • * 마음이 ‘그 ‘마음이 만든 루빠’에 얼마나 강하게 들러붙는지는 여러 요인에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매우 매력적인 사람 또는 맛있는 음식이 있다면, 들러붙음이 강할 수 있습니다.

  • * 그곳이 바로 마음이 여섯 가지 유형의 ‘까-마 구나(kāma guṇa)’ 중의 하나 이상을 할당하여 ‘감각 입력의 영향’을 평가하는 곳입니다.

  • * 들러붙음이 충분히 강하다면, 마음은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로 들어갑니다. 이것은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입니다.  이곳은 자와나 찟따(javana citta)를 통해 강력한 새로운 깜마가 생성되는 곳입니다.

  • * 이 단계들은 ‘세 단계 실천’ 섹션의 ‘인식(산냐-) 이해를 통한 소따빤나 단계(Sotapanna Stage via Understanding Perception (Saññā))’ 서브섹션에 있는 여러 포스트에서 더 논의되었습니다. 두 개의 핵심 포스트는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와 ‘까-마 구나 - 들러붙음(땅하-)의 기원’ 포스트입니다.

 

‘아닛짱 위빠리나-미 안냐타-바-위’

 

11. 위 논의로부터, 감각 입력에 들러붙은 마음이 위 도표의 왼쪽에 있는 ‘괴로움 없는 빠밧사라(pabhassara mind) 마음’에서 (오른쪽으로) 멀어진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 * 들러붙음은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와 ‘나와 깜마(nava kamma)’라는 두 단계에서 일어난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 * 처음의 들러붙음은 아나-가-미 단계 아래의 모든 이들에게는 자동적입니다. 따라서,  까-마 라-가(kāma rāga)가 그대로 있는 모든 이들은 자동적으로 ‘까-마 바와( kāma bhava)에 들어갑니다’.

  • * 두번째 단계는 상대적으로 더 천천히 일어납니다. 즉, 많은 찟따 위티(citta vithi)가 흐른 후에 ‘나와 깜마 단계’가 확립됩니다. 마음챙김(사띠)을 한다면, ‘나와 깜마 단계’가 확립되는 초기에 멈추는 것이 가능합니다.

  • * ‘세 단계 실천’ 섹션의 ‘인식(산냐-) 이해를 통한 소따빤나 단계(Sotapanna Stage via Understanding Perception (Saññā))’ 서브섹션에 있는 일부 이전 포스트들에서 논의했지만, 다음 포스트에서 그것을 더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12.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주된 요점은 매번 마음은 (‘뿌라-나 깜마’ 단계만이지만) 감각 입력에 들러붙고, 위 도표의 왼쪽에 있는 ‘괴로움 없는 빠밧사라(pabhassara mind) 마음’에서 [오른쪽으로]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닛짱 위빠리나-미 안냐타-바-위(Aniccaṁ Vipariṇāmi Aññathābhāvi)’ 구절에 내재된 의미입니다.

 

  • *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는 마음챙김을 함으로써 멈춰질 수 있는 반면에, 자동적인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는 까-마 라-가 아누사야/상요자나(kāma rāga anusaya/saṁyojana)를 제거함으로써 만 멈춰질 수 있습니다.

  • * 필자는 이전 포스트인, ‘아닛짱 위빠리나-미 안냐타-바-위 ㅡ 결정적 구절’에서 그 점들을 논의했습니다.

  • * 그러나, 그 포스트를 지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근본적인 것들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필자는 이 결정적인 점들을 계속 반복할 것입니다.

 

‘아닛짜, 둑카, 아낫따’와 관계

 

13. 또한 ‘아닛짱 위빠리나-미 안냐타-바-위(Aniccaṁ Vipariṇāmi Aññathābhāvi)’ 구절은 ‘아닛짜, 둑카, 아낫따(anicca, dukkha, anatta)’와 동일한 의미임을 인식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빠밧사라(pabhassara)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은 위빠리나-미(vipariṇāmi), 또는 둑카(dukkha)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닛짱 위빠리나-미 안냐타-바-위 ㅡ 결정적 구절’ 포스트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안냐타-바-위(aññathābhāvi)는 ‘그 자연적/더좋은 상태에서 멀어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이 일어날 때 난감함, 즉 아낫따(anatta)가 됩니다. 

 

  • * 그 낱말들은 많은 숫따-에서 대신하여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aniccaṁ dukkhaṁ vipariṇāmadhammaṁ’ 구절은 여러 숫따에서 나타납니다.

  • * 그 모든 낱말들은 모든 ‘마음이 만든’ 것들의 아닛짜, 둑카, 및 아낫따 특성을 나타냅니다. 루빠, 짝쿠, 및 짝쿠 윈냐-나는 그 특성들을 가지며, 동일하게 모든 여섯가지 감각 기능, 예를 들어, 담마-, 마노, 및 마노 윈냐-나에 적용됩니다.

  • * 그것들 모두가 까-마, 루빠, 및 아루빠 로까의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음이 마음을 ‘괴로움 없는 빠밧사라(pabhassara) 상태’에 이르지 못하게 막는다고 지적합니다.

  • * 더욱이, 그 모든 즐거움들은 (왜곡된 산냐-로 인해) 마음이 만든 것이고 실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이 ‘이 내장된 왜곡된 산냐-에 속았기’ 때문에 재탄생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습니다! 게다가, 그 ‘왜곡된 산냐-’는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해 일어나기 때문에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마술쇼입니다. ‘왜곡된 산냐-(산자-나-띠)에 속음 ㅡ 들러붙음(땅하-)의 기원’과 ‘루빠와 루빡칸다 ㅡ 외부 물체가 아님’의 #5를 참조하세요.

 

질문/코멘트 스레드(thread)

 

14. ‘붓다 담마ㅡ상급’ 섹션에 있는 모든 포스트에 대해, 다른 섹션에도 열거되어 있더라도, 포럼 스레드 ‘Posts in the ‘Buddha Dhamma – Advanced’ Section’에서 코멘트하거나 질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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