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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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닛짜 본질 ㅡ 세간적 즐거움을 쫓는 것은 무의미하다

     

    원문: ‘Is There A Self?’ 섹션의 ‘Anicca Nature- Chasing Worldly Pleasures Is Pointless’ 포스트

     

    아닛짜(anicca)는 단순한 무상(impermanence)으로 잘못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닛짜의 주된 의미는 세간적/감각적 즐거움에서 오래 지속되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닙바-나의 소따빤나 단계로 가는 핵심입니다.

     

    2023년 9월 16일 작성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에 보통 인간의 반응

     

    1. 불쾌한(괴로운) 상황/감각 입력을 접할 때, 보통 사람(뿌툿자나)는 (i) 그것을 피하려고 노력하거나, (ii) 유쾌한(즐거운) 감각 입력을 추구함으로써 그것을 보상하려는 두 가지 반응만 알고 있습니다.

     

    • * 그러나, 어떤 감각적 즐거움도 마음을 오랫동안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얼마 후, 가장 호화로운 휴가도 지루해집니다. 마약 중독자는 ‘포화’ 상태가 되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복용량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 * 더욱이, 그런 유쾌한(즐거운) 상황을 추구하는 사람의 노력은 종종 ‘부도덕한 행위’(아꾸살라/빠-빠 깜마)를 수반합니다. 그것은 훨씬 더 많은 괴로움(고통)이 있는 하위 영역(아빠-야-)에 미래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이 잘못된 방식이 산자-나-띠(sañjānāti)입니다. ‘인지 모드 - 산자-나-띠, 위자-나-띠, 빠자-나-띠, 아비자-나-띠’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물론, 때때로 사람들은 또한 자비심에서 도덕적인 행위(꾸살라/뿐냐 깜마)를 하고, 그런 ‘좋은/도덕적인 행위’의 깜마 위빠-까는 인간, 데와, 브라흐마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붓다 담마를 접하지 않더라도) 이 범주의 사람들은 산자-나-띠(sañjānāti)보다 더 나은 이해인 열린 마음(위자-나-띠, vijānāti)으로 사물/상황을 살핍니다.

    • * 그것은 본질적으로 대부분 괴로움으로 가득찬 ‘윤회의 괴로움’, 또는 ‘재탄생 순환’의 기초입니다. 데와(천신)와 브라흐마(범천)의 삶이 대부분 즐거움을 주기는 하지만, 그런 더 나은 재탄생은 드뭅니다. 대부분 인간들은 유쾌한(즐거운) 감각적 즐거움을 구할 때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경향 때문에 아빠-야-(사악처)에 재탄생합니다. ‘Manussacutiniraya Sutta (SN 56.102)’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부처님의 가르침

     

    2. 붓다께서 발견하신 놀라운 진리는 다음과 말할 수 있습니다. (i) ‘괴로움 없는’ 상태(빠밧사라 찟따, pabhassara citta)는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ii) 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기간에 걸쳐 쌓인 오염층으로 덮여 있다. (iii) 그 오염은 제거될 수 있고, 괴로움 없는 순수한 마음은 성스런 길을 따라감으로써 회복될 수 있다. (iv) 세간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우리의 행위는 더 많은 오염을 생성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닙바-나(괴로움 없는 순수한 마음)로부터 더 멀어지게 할 뿐이다.  

     

    • * 그 기본적인 개념을 ‘’ 섹션의   ‘괴로움 없는 순수한 마음을 회복(Recovering the Suffering-Free Pure Mind)’ 서브 섹션에서 논의했습니다.

    • * 즉, 붓다께서 세상에 오셔서 ‘숨겨진 순수한 마음’(빠밧사라 찟따, pabhassara citta)에 대해 가르치실 때까지, 인간은 괴로움/침울함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만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더 많은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더 많은 미래 괴로움을 야기할 뿐입니다.

    • * 따라서, 사람들은 위 사실을 이해하고 ‘감각적 즐거움의 위험함’을 보기 시작할 때까지 대부분 고통으로 가득한 재탄생 과정에 갇혀 있습니다.

    • * 사람은 소따빤나 아누가-미가 되고 빠-자-나-띠(pajānāti) 레벨로 이해가 상승할 때 그것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세간적 또는 감각적 즐거움의 ‘아닛짜 본질(anicca nature)’을 이해(즉, ‘지혜로 봄’)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그러나, 아래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소따빤나도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려는 욕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주: 아닛짜(anicca)는 ‘anichcha’로 발음됩니다. ‘Pāli Glossary – (A-K)’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아닛짜 특성’은 이 세상의 31영역의 모든 곳에 적용됩니다. 세간적 즐거움에서 오래 지속되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헛된(무의미한/비생산적인) 것입니다.

     

    ‘숨겨진 순수한 마음’의 비유

     

    3.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좋은 일자리를 얻고, 사업을 하는 등, ‘부를 축적’하기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우리의 모든 노력은 집, 자동차 등과 같은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모으는 것을 통해 행복을 최대화하는데 집중됩니다.

     

    • * 그러나 억만장자가 되고, 하고 싶은 모든 감각적 경험을 접하게 되더라도, 노년이 되면 육체는 쇠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다음, 죽을 때 모든 그 물질적 부를 남겨두고 떠날 것입니다. 더 나쁜 것은 ‘부를 쌓는’ 과정에서 많은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고, 그것은 아빠-야-에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에 감춰진 ‘고통/괴로움’이 있습니다.

    • * 그동안, 괴로움이 없는 순수한 마음은 감춰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마음을 정화하고 그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뿐이었습니다. 

    • * (괴로움이 감춰진) 순간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대신에, 과도한 감각적 즐거움을 피함으로써 괴로움이 없는 영구적 상태를 추구해야 합니다. 

     

    4. 비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작은 구획의 땅만 가진 가난한 농부를 가정해 보세요. 그는 그곳에 채소를 가꾸어 생계를 유지합니다. 그는 모르지만, 그의 땅 아래 수백 피트에는 진귀한 보석이 쌓여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그 땅에서 열심히 일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 * ‘땅 투과 레이더(radar)’나 유사한 장치를 가진 사람이 그 지역의 땅을 조사하고 그 농부의 채소밭 아래에 있는 보석 광산을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 사람은 농부에게 자신이 발견한 것을 이야기 합니다. 이제 농부가 해야할 일은 보석을 찾기 위해 땅을 파는 것입니다. 

    • * 그 앎에도 불구하고, 농부는 때때로 다음과 같이 회의적일 수 있습니다. “광산이 그곳에 없으면 어쩌지? 내가 땅을 파기 시작하면, 밭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고, 파야 하는 땅의 좋은 부분도 [경작에] 사용할 수 없다.”

    • * 부처님 가르침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붓다께서는 괴로움이 없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감춰져 있다고 말씀하십니다(그리고 증거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i) ‘숨겨진 순수한 마음’이라는 개념이 타당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올바른 가르침을 배우고 (ii) 파기 시작하는 것, 즉 ‘숨겨진 보석’에 이르기 위해 성스런 팔정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5. 많은 사람들은 “나는 일 때문에 바쁘다. 은퇴하면 (파는 것은 고사하고) 그것을 조사해보기 시작하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퇴할 때쯤 되면, 그들의 뇌는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또는 그들은 은퇴후 곧 죽습니다.) 이런 상황을 목격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필자의 친구 몇몇은 [법을] 조사하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승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부를 쌓기에 너무 바빴습니다.

     

    • * 위 비유에서 ‘무관심 농부’와 같이,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에 집중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성향에서는, 더 많은 물질적 부를 획득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 *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데 합당한 시간을 투자한다면,  ‘감춰진 순수한 마음’, 즉 ‘빠밧사라 찟따(pabhassara citta)’에 대한 진리(진실)를 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닛짜 ㅡ [세간] 노력의 헛됨을 깨닫는 것

     

    6.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활동은 그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줍니다. 그들은 그런 활동들이 ‘닛짜 본질(nicca nature)’, 즉 결실있다고 믿습니다. 주: 닛짜(nicca)는 ‘nichcha’로 발음됩니다. 

     

    • * 그러나, 자라면서, 그것들은 세상에 대한 더 넓은 이해가 없는 아이들에게만 맞는 활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활동에 흥미를 잃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이제 공부와 좋은 일자리를 얻는 것에 집중합니다. 모래성을 쌓는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비생산적이고 쓸모없는 활동이라는 것은 성인 누구에게나 명백합니다. 그들이 쌓는 모든 모래성은 씻겨 없어지거나 해변을 걷는 누군가에 의해 부서질 것입니다.

    • * 따라서, 우리가 모래성을 쌓는 것은 ㅡ 항상 즐겁더라도 ㅡ  장기적으로 볼 때 이득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래성은 아닛짜 본질을 지닙니다. 그것들은 좋은 형태로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될 수 없습니다. 

    • * 붓다께서는 ‘Satta Sutta (SN 23.2)’에서 그 비유를 묘사하셨습니다. 그 숫따에서, 붓다께서는 삿따(satta)(지각적 존재)를 세간의 즐거움을 갈망하는 자로 정의하셨는데, 그들은 모래성을 쌓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7. 붓다께서 발견하신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본질’은 붓다 가르침의 독특함의 기반입니다. 고도의 지성을 가진 사람들도 그것을 스스로는 결코 깨닫지 못합니다.

     

    • * 물론, 삶의 스트레스를 덜기 위해서는 좋은 일자리를 얻고 편안하게 살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더 나은 행복은 이 생을 넘어서는 모든 미래 괴로움을 멈추는 것에 의해 얻어질 수 있습니다

    • * 이 세상의 아닛짜 본질과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붓다께서 그것을 발견하실 때까지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8. 따라서, 사람은 자신의 현재 상태에 기반하여 현명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비교적 근심없이, 단순한 삶을 살기 위한 충분한 자원을 가지지 않았다면,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괜찮은 직업을 얻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 * 그러나, 단순한 생활방식을 유지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가지고 있다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순수한 마음(빠밧사라 찟따)을 밝혀내는 대신에 수백만 달러를 벌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명할까요? 

    • * 궁극적 행복을 주는 순수한 마음은 드러나지 않은 채로 거기에 있습니다. 물질적 부를 쌓으려고 노력하는 것에 관련된 모든 활동들은 모래성을 쌓는 것이 아닛짜 본질인 것처럼 아닛짜 본질입니다.  

    • * 그것이 붓다 담마의 기반인데, 자-나의 즐거움을 포함하여 세상 것들 또는 감각적 즐거움의 아닛짜 본질을 깨닫는 그것입니다.

     

    세간적 즐거움의 위험함을 보는 것

     

    9. 많은 사람들은 “내가 다른 이들을 해치지 않는 한,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는 것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라고 말합니다. 위의 논의를 이해한다면 그 물음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 * 물론, “다른 이들을 해치지 않고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는 도덕적 삶을 사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사람은 붓다 담마를 이해하기 위해 도덕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유지하면서 소따빤나 단계를 훨씬 지나 닙바-나의 아나-가-미 단계까지 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 * ‘불자는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성스런 길의 시작은 모든 세상 즐거움의 아닛짜(anicca) 본질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빠자-나-띠 레벨의 이해(즉, 삼마- 딧티, 즉 삭까-야 딧티를 제거하는 것과 같음)입니다. 삼마- 딧티로, 소따빤나는 아빠-야-에 태어나기에 적합한 매우 부도덕한 행위를 범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잘못된 견해(밋차- 딧티)를 제거했습니다. 다음 포스트에서 삭까-야 딧티와의 관계를 논의하겠습니다.

    • * 포럼에서 자유롭게 질문해 주세요. 이 기본 개념들은 붓다 담마의 토대를 형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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