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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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모드 ㅡ 산자-나띠, 위자-나-띠, 빠자-나-띠, 아비자-나-띠

 

원문: ‘Is There A Self?’ 섹션의 ‘Cognition Modes – Sañjānāti, Vijānāti, Pajānāti, Abhijānāti’ 포스트

 

인지는 산자-나-띠(sañjānāti), 위자-나-띠(vijānāti), 빠자-나-띠(pajānāti), 및 아비자-나-띠(abhijānāti)라는 네 가지 레벨로 일어납니다.

 

2023년 9월 9일 작성

 

소개

 

1. 다섯 무더기를 감각 입력(아-람마나)을 감각할 때 일어나는 순서로 나열하면, 루빠(rupa),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및 윈냐-나(viññāṇa)입니다.

 

  • * 여기서,  루빠(rupa)는 감지를 돕는 내부 루빠(짝쿠, 소따, 가나, 지와-, 까-야, 마노)와 마음에 일어나는 외부 루빠의 정신적 각인(루빠, 삿다, 간다, 라사, 폿땁바, 담마-)을 모두 포함합니다.

  • * 내부 루빠가 외부 루빠의 정신적 각인과 접촉하면 웨다-나(vedanā)가 일어나는데, 수카, 둑카, 또는 중립(아둑카마수카) 웨다-나로 그 접촉을 감지합니다.

  • * 그 웨다나-에 기반하여(그러나 동시에), 그 대상에 대한 인식/인지가 일어나는데, 그것이 산냐-(saññā)입니다.

  • * 웨다-나와 산냐- 모두에 기반하여(그러나 동시에), 어떤 정신적 요소(쩨따시까)가 마음에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탐욕, 기쁨 등이 일어납니다. 그것들을 모두 합하여 상카-라(saṅkhāra)라고 합니다.  

  • * 그 모든 정신적 인상의 총체가 윈냐-나(viññāṇa)이며, 개략적으로 인식(consciousness)이라고 번역됩니다. 그러나 윈냐-나는 의식(consciousness) 이상이며, 그것은 또한 감각 입력에 대한 이해를 포함합니다. 그 이해가 오로지 산냐-에만 기반한다면 잘못된 것이며, 그것이 산자-나-띠(sañjānāti)입니다. 그것을 더 낫게 이해하려는 시도가 있으면, 더 나은 이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위자-나띠, vijānāti). ‘더 나은 이해’의 첫 레벨은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에서 일어나며, 그것이 빠자-나-띠(pajānāti)입니다. 완전한 이해, 즉 아비자-나띠(abhijānāti)는 아라한 단계에서 일어납니다.

 

산자-나-띠, 위자-나-띠, 빠자-나-띠, 아비자-나-띠

 

2. 아래에서는, 주로 마하-웨달라 숫따(Mahāvedalla Sutta)를 사용하여 그 용어를 논의하겠습니다. 필요에 따라 통찰력을 제공하기 위해 숫따의 여러 곳에서 구절을 인용하겠습니다. 또한, 수많은 찟따가 한 아-람마나에 기반하여 일어나고, 그것들은 몇 초내에 점점 더 오염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생각은 그것을 깨닫기 전에 이미 오염되었습니다.

 

  • * 예를 들어, 우리는 시각 대상을 볼 때, 일어나는 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수십억분의 1초 내에 일어나며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ṇa)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어느 정도로 오염되어 일어납니다. 몇 초내에 그것은 더 오염되어 부도덕한 행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 따라서, 그 짝쿠 윈냐-나는 마음이 대상에 대해 더 나은 개념을 얻음에 따라 이어지는 찟따에서 더 진화하고 그 시각 입력에 어떻게 반응할 지를 결정합니다.

  • * 마음은 그 과정에서 나중에 깜마를 생성하기 시작하지만, ‘나중’은 상대적입니다. 깜마를 행하는 것은 몇 초내에 일어나거나 그 아-람마나(대상)를 처음 접하고 몇 시간 후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초기 감각 접촉, 즉 짝쿠 윈냐-나가 대상을 보고 일어날 때 발생하는 것에서 시작해 보겠습니다. 마하-웨달라 숫따(Mahāvedalla Sutta)에서는 시간 순서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으므로, 필요에 따라 숫따의 임의의 곳에 있는 구절을 참조하겠습니다.

 

첫 번째 단계: 웨다나

 

3. 내부 짝쿠 빠사-다 루빠(짝쿠)와 외부 대상의 정신적 각인(루빠)의 접촉은 웨다나- 쩨따시까(vedanā cetasika)가 일어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 * 그 웨다나-는 수카(부드러운 침대에 누워있을 때와 같은 즐거운 감촉), 둑카(상처와 같은 고통스러움), 또는 아둑카마수카(가벼운 바람을 느끼는 것과 같은 중립)일 수 있습니다. 그 세 가지 유형은 까-야(kāya)와 폿땁바(phottabba)를 수반하는 신체 접촉으로만 일어납니다. 모든 다른 감각 접촉은 초기 접촉시에는 중립 웨다나-를 일으키기만 하는데, 예를 들어, 짝쿠 윈냐-나가 일어날 때입니다.

  • * ‘Mahāvedalla Sutta (MN 43)’는 웨다나-를 “ ‘Vedanā vedanā’ti, āvuso, vuccati. Kittāvatā nu kho, āvuso, vedanāti vuccatī”ti? “‘Vedeti vedetī’ti kho, āvuso, tasmā vedanāti vuccati. Kiñca vedeti? Sukhampi vedeti, dukkhampi vedeti, adukkhamasukhampi vedeti.”로 묘사합니다. 그 의미는 “ 존자님, 왜 느낌이라고 합니까? 존자님, 느끼기 때문에 느낌이라고 합니다. 존자님, 그리고 무엇을 느낍니까? 즐거움, 고통, 및 ‘즐겁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음’을 느낍니다.”입니다. 

  • * 이 숫따는 수카와 둑카 웨다나-가 신체 접촉으로 인해서만 일어난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 경우입니다. (시각 또는 미각과 같은) 다른 모든 감각 접촉은 ‘즐겁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중립 느낌만 일으킵니다.   

 

두 번째 단계: 산냐-와 산자-나-띠

 

4. 거의 동시에, 대상에 대한 인식(시각 대상의 경우에, 예를 들어, 사람을 매력적으로 인식)이 일어납니다.

 

Mahāvedalla Sutta (MN 43)’는 산냐-를 “ ‘Saññā saññā’ti, āvuso, vuccati. Kittāvatā nu kho, āvuso, saññāti vuccatī”ti? “‘Sañjānāti sañjānātī’ti kho, āvuso, tasmā saññāti vuccati.Kiñca sañjānāti? Nīlakampi sañjānāti, pītakampi sañjānāti, lohitakampi sañjānāti, odātampi sañjānāti.‘Sañjānāti sañjānātī’ti kho, āvuso, tasmā saññāti vuccatī”ti.”로 묘사합니다. 그 의미는 “ 존자님, ‘인지/인식’이라고 말합니다. 존자님, 왜 인식이라고 합니까? 존자님, 인식하기 때문에 ‘인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인식합니까? 푸름, 노랑, 빨강, 백색을 인식합니다. 존자님, 인식하고, 인식하기 때문에 ‘인식’이라고 합니다.”입니다.

 

  • * 비록 이 숫따가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지만, 이것은 인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계입니다. 산자-나띠(sañjānāti)는 인식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마음은 (매력, 맛, 즐거운 소리 또는 냄새 등과 같은) 어떤 특질을 생성합니다. 이 자동 반응은 각자의 ‘타고난 바왕가 상태’에 기반하고 그 ‘마음이 생성한 산냐-’, 즉 ‘산냐- 위빨라-사(saññā vipallāsa)’에 들러붙음으로써 현명하지 못한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 들러붙음은 ‘산냐-(saññā)로 이해함(자-나-띠, jānāti)’, 즉, ‘산자-나-띠(sañjānāti)’ (그리고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혜가 없음)에 기반합니다. 그것은 ‘감각 입력에 기반한 인간 마음의 오염’, 및 ‘인간 마음의 오염 ㅡ 상세한 분석’에서 논의했습니다.

 

세 번째 단계: 마음은 산냐- 위빨라-사에 기반하여 외부 루빠의 그 버전을 생성한다

 

5. 찰나의 순간에 ‘들러붙은 마음’은 이 ‘왜곡된 산냐-’, 즉 기대와 함께 일어나는 것에 기반하여 외부 루빠(루빠-야따나, rupāyatana)에 대한 그 자신의 버전을 만들기 시작하고, 따라서 짝쿠 빠사-다(cakkhu pasāda)는 짝쿠 아-야따나(cakkhu āyatana), 즉, 짝카-야따나(cakkhāyatana)가 됩니다. 

 

  • * 그러나, 깜마 축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까-마 구나(kāma guṇa)와 함께 이 ‘마음이 만든 루빠(mind-made rupa)’에 들러붙기 시작한 직후에 일어날 것입니다.

  • * 그 단계는 다음 포스트에서 논의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모든 사건은 우리가 아-람마나(ārammaṇa)에 들러붙은 것을 알게 되기 전에 일어난다는 것에 유념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찰나에 일어나는) 그런 자세한 묘사는 부처님의 마음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왜곡된 산냐-’와 함께 산자-나띠의 근본 원인

 

6. (맛지마 니까-야의 첫 숫따인) ‘Mūlapariyāya Sutta (MN 1)’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뿌툿자나(보통 사람)가 가지는 이 왜곡된 산냐, 즉 산냐- 위빨라-나(saññā vipallāsa)의 뿌리를 강조합니다. 위 #4와 거기서 지칭한 두 개의 포스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설탕의 달콤함 또는 사람의 매력은 해당하는 감각 대상(설탕 또는 사람)의 고유한 속성이 아닙니다.  그 대신에,  그것들은 각자가 그것과 함께 태어나는 ‘타고난 바왕가’에 기반하여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마음이 만든(mind-made) 왜곡된 산냐-’입니다. 그 때문에 아라한 성자도 사람을 매력있음/매력없음으로 보거나 음식을 맛있음/맛없음으로 알 것입니다.

 

  • * 그 산냐-와 함께 아-람마나에 들러붙는 상태산자-나-띠(sañjānāti)입니다.

  • * 동일한 산냐-가 아라한에게 일어날 수 있지만, 그것은 산자-나-띠(sañjānāti)로 이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그것은 뿌툿자나(또는 아라한 단계 아래의 모든 이)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 * 물-라빠리야-야 숫따(Mūlapariyāya Sutta)는 그 들러붙음에 대한 근본원인을 설명합니다.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Idha, bhikkhave, assutavā puthujjano ariyānaṁ adassāvī ariyadhammassa akovido ariyadhamme avinīto, sappurisānaṁ adassāvī sappurisadhammassa akovido sappurisadhamme avinīto—pathaviṁ pathavito sañjānāti; pathaviṁ pathavito saññatvā pathaviṁ maññati, pathaviyā maññati, pathavito maññati, pathaviṁ meti maññati, pathavi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 * 번역: “성자들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의 경우, 그들은 (그들이 빠타위 다뚜로 만들어진 고체를 그것들이 보이는 대로 견고한 것으로 인식하는 의미로) 빠타위(pathavi)빠타위(산냐-와 함께) 인식한다. 빠타위를 견고한 것으로 인식하여(산냐뜨와-,  saññatvā), (자신의 육체와 같은) 빠타위로 만들어진 것을 ‘나에게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내 것’으로 여길 것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들은 빠타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이 구절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기본 개념입니다.) 

 

아비자-나-띠 ㅡ 산자-나-띠의 반대

 

7.  ‘Mūlapariyāya Sutta (MN 1)’의 후반부에서 붓다께서는 “Yopi so, bhikkhave, bhikkhu arahaṁ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ṁyojano sammadaññāvimutto, sopi pathaviṁ pathavito abhijānāti; pathaviṁ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ṁ na maññati, pathaviyā na maññati, pathavito na maññati, pathaviṁ meti na maññati, pathavi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라고 말씀하십니다.

 

  • * 번역: “아라한들은 정신적 여정을 완료했고 빠타위의 참된 본질을 아는데, 그들은 (자신의 육체와 같은) 빠타위로 만들어진 것을 ‘나에게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내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들은 빠타위를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아라한들은 빠타위(와 아-뽀, 떼조, 및 와-요)의 참된 본질을 이해했기 때문에 자동적인 인지/인식을 넘어 알 수 있습니다.

 

8. 그런 다음, 붓다께서는 빠따위(pathavi), 아-뽀(āpo), 떼조(tejo), 및 와-요(vāyo)라는 사대요소로 만들어진 세상 것들의 긴 목록(주로 세상의 모든 영역에 있는 유정체)을 살펴 보십니다. 그것들은 마음에 기원을 두고 있기(즉, 자와나 찟따을 통해 생성) 때문에 ‘견고한/영구적 존재’가 아닙니다. 필자는 ‘물질의 기원 ㅡ 숫닷-타까’ 포스트에서 기본을 논의했고 세부 사항은 ‘담마와 과학’ 섹션의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 시리즈에서 논의했습니다. ‘생명의 기원’ 시리즈의 마지막 포스트는 ‘생명의 기원 ㅡ 각자는 자기 자신의 미래 생을 만든다’입니다.

 

  • * 필자는 또 다른 포스트 시리즈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섹션의 최근 시리즈인 ‘괴로움 없는 순수한 마음을 회복, Recovering the Suffering-Free Pure Mind’의 연장선). 이 시리즈에서는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 시리즈에서 논의되지 않은 몇 가지 세부 사항을 다룰 것입니다.

  • * (위에서 논의된) 산자-나-띠(sañjānāti)아비자-나-띠(abhijānāti)와 관련된 다른 두 가지 용어인 위자-나-띠(vijānāti)빠자-나-띠(pajānāti)를 간략하게 논의해 보겠습니다.

 

위자-나-띠 ㅡ 산자-나-띠와 관련됨

 

9. ‘Mahāvedalla Sutta (MN 43)’로 돌아가면, 그것은 (위 #2의 예에서) 초기 짝쿠 윈냐-나에서 웨다나-와 산냐-가 발행한 후에 일어나는 것을 다룹니다. “Yaṁ hāvuso, vedeti taṁ sañjānāti, yaṁ sañjānāti taṁ vijānāti”, 즉 “느끼는 것(vedeti)을 (산냐-로, 즉, sañjānāti) 인지/인식하고(recognize/perceive), 인지/인식하는(즉, sañjānāti) 것을 (윈냐-나로, 즉  vijānāti) 안다(cognize).”입니다.

 

  • * 즉, (찰나 순간 내의) 시간 순서는 웨데띠(vedeti), 산자-나-띠(sañjānāti), 위자-나-띠(vijānāti)입니다.

  • * 여기서, 위자-나띠(vijānāti)산자-나-띠(sañjānāti)보다 개선된 것일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간략하게 논의해 보겠습니다.

 

10. 대부분의 뿌툿자나-에게는, 위자-나띠(vijānāti)는 본질적으로 산자-나-띠(sañjānāti)와 같습니다. 그러나 붓다 담마를 활발하게 배우는 어떤 자는 사대 요소인 빠따위, 아-뽀, 떼조, 및 와-요로 만들어진 세상의 참된 본질을 생각하는데(즉, 아타-부-따 냐-나를 육성함) 시간을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따와 야타부-따 ㅡ 그것들의 진정한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그들의 정신 상태는 더 나을 수 있고, 그래서, 위자-나띠(vijānāti)산자-나-띠(sañjānāti)보다 개선된 것일 수 있습니다.

 

위자-나-띠에서 빠자-나-띠(지혜로 이해)로 전환

 

11. 어떤 자가 참된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위자-나띠(vijānāti)빠자-나-띠(pajānāti)(paññā와 함께 이해하며, 따라서 ‘pa jānāti’임)로 전환됩니다. 그런데, 산자-나-띠(sañjānāti)는 ‘sañ jānāti’에서 유래하고, 위자-나띠(vijānāti)는 (윈냐-나와 함께 이해하며, 따라서) ‘vi jānāti’에서 유래합니다. 더욱이, (위에서 논의된) 아비자-나-띠(abhijānāti)빠자-나-띠(pajānāti)가 아라한 단계에서 최적화될 때입니다. 이것이 용어를 기억하기 쉬운 방법입니다.

 

Mahāvedalla Sutta (MN 43)’는 빠자-나-띠(pajānāti)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Neyyaṁ panāvuso, dhammaṁ kena pajānātī”ti? “Neyyaṁ kho, āvuso, dhammaṁ paññā cakkhunā pajānātī”ti. 즉, “빠자-나-띠(pajānāti)라는 용어를 어떻게 이해합니까? 그것은 ‘지혜로 봄(paññā cakkhunā)’을 의미합니다.”입니다.

 

그 다음: “Paññā panāvuso, kimatthiyā”ti? “Paññā kho, āvuso, abhiññatthā pariññatthā pahānatthā”ti. 즉, “지혜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지혜의 목적은 (이 세상을 포기함으로써) 재탄생 과정을 끝내는 것으로 이어지는 완전한 이해입니다.”입니다.

 

  • * Sutta Central 사이트의 번역은 낱말별 직역이기 때문에 위 구절에 포함된 올바른 개념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구절들의 번역은 그 개념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좋습니다(다음은 필자가 몇 가지 개선을 한 것입니다. “지혜가 있는 올바른 견해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합니까? 올바른 견해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성자로부터 배우는 것(다른 사람의 말)’과 ‘요니소 마나시까-라(마음의 합리적 적용)’가 그 두 가지입니다.

  • * 알다시피, 그 두 가지 조건은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조건에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소따-빤나 막가/팔라를 얻기 위한 4가지 조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뿌툿자나가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가 될 때, 위자-나띠(vijānāti)빠자-나-띠(pajānāti)로 바뀝니다. 소따빤나 아누가-미가 성스런 길을 따라가서 아라한이 될 때, 빠자-나-띠(pajānāti)아비자-나-띠(abhijānāti)로 바뀝니다.

 

요약

 

12. 보통 사람(뿌툿자나)는 산자-나-띠(sañjānāti) 또는 위자-나띠(vijānāti)에 기반한 결정을 합니다.

 

  • * 모든 아-람마나(ārammaṇa)(또는 일반적으로 세상)의 근본 본질을 이해하면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에 이르면 빠자-나-띠(pajānāti) 레벨로 올라갑니다. 그것은 뿌툿자나가 성자로부터 붓다 담마를 배울 때 일어납니다.

  • * 빠자-나-띠(pajānāti) 레벨의 이해는 막가 팔라(도과)의 더 높은 단계와 함께 자라고 아라한 단계에서 완전하게 됩니다(아비자-나-띠, abhijān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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