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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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라빠리야-야 숫따 ㅡ 모든 것의 뿌리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Mūlapariyāya Sutta – The Root of All Things’ 포스트

 

물-라빠리야-야 숫따(Mūlapariyāya Sutta (MN 1))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의 뿌리’를 설명합니다. 여기서, 필자는 숫따에 설명된 우리들의 ‘내장된’ 왜곡 인식에 대한 놀라운 진실을 평이한 영어(그러나 필요한 개념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함)로 명확히 하고 가리켜 보이겠습니다. 

 

2023년 12월 5일 작성

 

소개

 

1. ‘물-라빠리야-야 숫따(Mūlapariyāya Sutta (MN 1))’는 부처님의 매우 중요한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가르침’ 중 하나를 담고 있습니다. 

 

  • * 위 링크에서 숫따를 낱말별로 영어로 직역한 것은 선문답, 수수께끼처럼 보이게 합니다. 

  • * 이 포스트에서, 필자는 숫따 삐따까(경장, Sutta Pitaka) 중 맛지마 니까야(Majjjhima Nikāya)의 이 첫번째 숫따에 담겨진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개념’을 설명하겠습니다.

  • * 먼저, 필요한 배경 자료를 참고 자료와 함께 제공하겠습니다. 포스트를 살펴본 후 해당 참고 자료를 읽어 보세요. 그리고, 배경 개념을 파악한 후에 이 포스트를 다시 읽어 보세요.

 

다양한 영역에 태어남을 범주화 ㅡ 가띠

 

2. 이 세상의 31영역 중에 재탄생하는 것은 여러 방식으로 특징지워질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영역에 새로운 재탄생을 얻을 때의 가띠(gati)(대략적으로 도덕적/부도덕적 성향으로 번역됨)입니다.

 

Gati Sutta (AN 9.68)’에 언급된 바와 같이, 다섯가지 주된 가띠 범주가 있는데, 니라요(Nirayo), 띠랏차-나요니(tiracchānayoni), 뻿띠위사요(pettivisayo), 마눗사-(manussā), 데와-(devā)입니다. 

 

  • * 주요한 점은 다섯 가지 가띠 중 세 가지가 아빠-야-(apāyā), 즉 가장 높은 고통이 있는 가장 낮은 네 영역(사악처)에 재탄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부도덕한 가띠(immoral gati)’입니다.

  • * 데와 가띠(Deva gati)는 모든 더 높은 영역(6가지 데와와 20가지 브라흐마 영역)에 재탄생하게 합니다. 이것들은 ‘도덕적 가띠(moral gati)’입니다. 

  • * 인간 영역은 그 중간에 있으며, 마눗사 가띠(manussa gati)는 도덕적 또는 부도덕적 가띠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느 쪽이든 가띠를 육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외부 환경이 엄청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도덕적 또는 부도덕적 가띠를 지닌 가정에 태어난 이들은 해당하는 유형을 개발하기가 쉽습니다. 분명한 예는 마약 사용자/취급자의 가정에 태어난 아이들은 부도덕한 성향을 개발하기가 매우 쉽다는 것입니다.

  • * 그러나, 도덕적 가띠를 지닌 이들과 연관되는 행운의 사람들은 그들의 가띠를 더 좋게 바꿀 수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영역 ㅡ ‘훈련 학교’  

 

3. 다양한 유형의 가띠를 육성하거나 버리는 능력은 사악처와 어떤 브라흐마 영역에서는 불가능합니다.

 

  • * 더욱이, 데와 또는 브라흐마 영역에서, 그 경향(성향)은 대부분 괴로움(고통) 없이 삶을 즐기는 것입니다. ‘도덕적 가띠를 함양’하게 하는 동기(유인)가 없습니다. 인간 중에서도 부유하고 건강한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유하고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이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 * 그것이 인간 영역은 특별하고 독특한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괴로움과 감각적 즐거움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도덕적 가띠를 육성할 필요성을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뇌와 함께 육체가 있으므로 ‘반응 시간’을 늦추어 마음챙김하고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게 합니다.

  • * 인간 영역은 다음 태어남을 준비하는 ‘훈련 학교’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도덕적 가띠를 육성하는 사람들은 ‘좋은 영역(선처)’에 재탄생하고 다른 사람들은 나쁜 영역(악처), 즉 아빠-야-(apāyā)에 재탄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 ‘불교와 진화 ㅡ 악간냐 숫따(DN 27)’에 설명된 바와 같이, 아-밧사라 브라흐마(Ābhassara Brahma) 아래의 영역에 있는 모든 유정체는 지구가 재형성된 후에 자동적으로 인간 영역에 다시 태어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자신들이 기른 가띠에 따라 아빠-야-에서 더 높은 영역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러나, 더 높은 영역에서 그 삶이 끝나면, 그들은 인간 영역으로 돌아가고, 그들 중의 극소수만이 다시 더 높은 영역으로 돌아갑니다.  아빠-야-에 있는 그들 대부분은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 지구가 끝나고 새로운 지구가 재형성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다양한 영역에 태어남을 범주화 ㅡ 3가지 유형의 로까

 

5. 또 다른 범주는 감각 기능(기관)의 수에 기반합니다. 그것은 31영역을 까-마 로까(kāma loka), 루빠 로까(rupa loka), 및 아루빠 로까(arupa loka)라는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합니다. 

 

  • * 까-마 로까(kāma loka)에 태어나면, 여섯 가지 감각을 모두 지니고,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감촉하고, 이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으로 세상을 감지할 것입니다. 맛보고, 냄새 맡고, 감촉하는 세 가지 감각 기능은 조밀한 육체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먹고, 냄새 맡고, (성관계를 포함하여) 육체 접촉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한편, 또한 부상과 질병으로 인한 고통에 취약하게 합니다. (하나의 예외는 6가지 데와 영역에 있는 데와들이 부상과 질병을 겪지 않는 덜 조밀한 육체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 * 그러므로, 일부 인간들은 감각적 즐거움에 만족하지 못하고(즉 ‘까-마 라-가’를 잃음),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를 길러 ‘스트레스가 적은 선정의 즐거움’을 즐깁니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먹고, 냄새 맡고, 성관계와 관련된 즐거움을 포기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데와 가띠’ 버전을 육성하여 브라흐마 영역에 다시 태어납니다.

  • * 루빠 로까에 있는 이들은 보고, 듣고, 생각하는 세 가지 감각 기능을 지닌 루빠와짜라 브라흐마들입니다. 그들은 먹고, 냄새 맡고, 감촉할 수 있는 육체를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6가지 데와 영역에 있는 데와들과 같은 더 미세한 육체조차 가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 빠사-다 루빠(짝쿠와 소따)와 생각이 일어나는 하다야 왓투를 가집니다. 그것들은 3개의 숫닷-타까이며, 현대 과학의 원자보다 수십억배 작습니다. 그것은 시각화하기 조차 어렵습니다. 

  • * 그 인간 요기(수행자)들의 일부는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ā)를 넘어서 아루빠 사마-빳띠(arupa samāpatti)를 육성합니다. 그들은 마음(즉, 하다야 왓투)만 있는 아루빠 로까다시 태어납니다. 그들은 생각만 할 수 있고,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마음은 공간(space)이나 윈냐-나(viññāna)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6. 필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까-마 로까(kāma loka)에   태어난 것은 이 존재를 움켜잡았을 때 맛, 냄새, 및 감촉에 대해 매우 가치있게 여기는 감각 경험인 까-마 가띠(kāma gati)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 * 그것들을 경험하기 위해 매우 부도덕한 행위를 할 정도로 까-마 가띠를 귀중하게 여겼던 이들은 지금 아빠-야-에 태어나 있습니다. 그들은 아빠-야-에 재탄생하도록 움켜잡게 하는 아빠-야가-미 가띠(apāyagāmi gati)를 가졌습니다. 

  • * 그다음, 어떤 이들은 밀접한 접촉의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결점(단점)을 보고 아나리야 자-나/사마-빳띠를 육성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브라흐마 로까에 태어나 있습니다. 

  • * 우리 각자는 추적할 수 없는 시작까지  전생에 그 모든 것을 해 왔습니다. 우리 각자는 아나가미(불환자)에게 예약된 곳[정거천]을 제외한 31영역 모든 곳에 태어났던 적이 있습니다.

  • * 우리 모두는 재탄생 과정에 대해 끊어지지 않은 정신적 결박/족쇄, 즉 상요자나(saṁyojana)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열가지 상요자나를 한 번에 하나 이상 끊음으로써 우리는 어떤 영역에 재탄생할 가능성을 영구적으로 제거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영역에 태어남을 범주화 ㅡ 상요자나

 

7. 따라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또다른 도움이 되는 범주는 상요자나(saṁyojana), 즉 재탄생 과정의 결박/족쇄입니다.

 

  • * 뿌툿자나(보통 인간)는 10가지 상요자나를 모두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나가미에게 예약된 그 브라흐마 영역을 제외하고) 모든 영역에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태어남을 움켜잡는 것은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그 때의 가띠에만 달려있습니다.

  • * 부처님의 더 넓은 세계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재탄생 과정에 있는 위험함, 즉 세속적 즐거움의 아닛짜 본질을 보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 때가 소따빤나 아누가-미가 되고 10가지 상요자나 중의 세 가지를 마음에서 제거할 때입니다. 그 시점에서, 아빠-야(apāya)에 재탄생하는 것이 영구적으로 그칠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아빠-야에 재탄생을 움켜잡게 하는 ‘아-빠야가-미 가띠(apāyagāmi gati)’, 즉 ‘매우 부도덕한 가띠’를 결코 유지/육성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따라서,  상요자나는 육체적 결박/족쇄가 아니라 마음에 뿌리를 둔 정신적 결박/족쇄입니다. 하나 이상의 상요자나를 끊는 것은 세상의 근본적인 본질에 대한 앎/지혜와 함께 일어납니다. 그것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것의 나쁜 결과를 의심할 여지가 없이 이해한 후에는 알코올을 끊는 것과 다소 비슷합니다. 그러나 일부 알코올 중독자는 ‘뒤로’ 갈 수 있지만, 소따빤나 아누가-미(8가지 유형의 성자 중의 한 유형)는 결코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상요자나를 끊는 과정 ㅡ 닙바나-로 가는 방법

 

8. 알 수 있듯이, 그 열 가지 상요자나를 제거하는 단계별 방법이 있습니다.

 

  • * 처음 세 가지(삭까-야 딧티, 위찌낏차-, 실랍바따 빠라-마-사)는 소따빤나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그것에는 재탄생 과정을 계속하는 것의 결실없음과 위험함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것으로 까-마 로까(kāma loka)의 가장 낮은 영역, 즉 아빠-야-(apāyā)에 미래 태어남이 그칩니다.

  • * 다음 단계는 다음 레벨, 즉 인간 영역과 6가지 데와 영역에 재탄생을 그치는 것입니다. 그것에는 아닛짜 본질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위에서 필자가 전달하려고 한 요점은 다음과 같은데, 우리가 까-마 로까(kāma loka)에서 얻을 수 있는 감각적 즐거움(즉, 까-마 라-가)에 대한 갈망을 지니는 한, 우리는 까-마 로까에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따라서, 소따빤나 조차도 까-마 라-가(kāma rāga)와 빠띠가(patigha)라는 두 가지 상요자나가 마음에서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미래에 인간 영역이나 6가지 데와 영역 중의 한 곳에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빠띠가는 까-마 라-가로 인해 일어납니다. 즉, 그런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는 길을 가지 못할 때, 빠띠가 또는 성냄이 일어납니다.)

  • * 더 높은 다섯 가지 상요자나는 루빠 및 아루빠 로까(20가지 브라흐마 로까)에  묶이게 합니다. 우리가 아래에서 논의하는 것과 동일한 절차가 그 더 높은 상요자나(또는 처음 3가지 상요자나)를 제거하는 데에 적용됩니다.

  • * 물-라빠리야-야 숫따(Mūlapariyāya Sutta)는 우리가 (모든 영역에) 재탄생하는 과정에 갇히게 된, 더 깊고, 더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합니다. 따라서, 그 이름이 물-라빠리야-야(mūlapariyāya, 모든 것의 뿌리)입니다.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부처님의 가르침

 

9. 우리는 그 당시에 그 특정 영역에 매칭되는 상응하는 가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시기에 다양한 영역에 태어났습니다.

 

  • * 우리가 특정 영역에 태어날 때, 그 영역에 매칭되는 가띠와 함께 태어납니다.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우리는 그 특정 가띠를 가졌기 때문에 그 영역에 태어남을 움켜 잡았으므로, 그것은 분명해야 합니다.

  • * 그 탄생 가띠[발현 가띠]는 (또 다른 영역에) 또 다른 존재가 움켜잡힐 때까지 마음 속에 박혀 있습니다. 전문 용어로, 그 ‘탄생 가띠’는 마음의 ‘바왕가 상태(bhavaṅga state)’로 있습니다. 간단히 자동차에 비유하여 ‘바왕가 상태’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 * 기어가 중립 위치에 있는 ‘시동이 걸린 자동차’를 생각해 보세요. 차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시동이 걸린' 것입니다. 자동차가 활동적이 되려면(즉, 주행 중), 바퀴와 맞물리도록 기어를 올려 놓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활동적이지 않을 때(예를 들어, 잠자는 동안), 그들은 ‘활동적인 마음’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중립 상태'가 '바왕가 상태'입니다. 감각 입력이 들어오면, 마음은 그 감각 입력을 조사하는(그리고 적절할 행위를 취할 수도 있는) 활동적 상태로 바뀝니다.

 

10. 마음이 ‘바왕가 상태’에서 ‘활동적 상태’로 전환되는 상세하고 정밀한 과정이 있습니다. 비록 세부적인 아비담마 묘사를 배우는 것이 불필요할지라도, 이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 * 다음 그림은 눈이 ‘시각 사건’(rūpa ārammaṇa 또는 rupārammaṇa)을 포착할 때 시작되는 전형(표준)적인 생각 과정(찟따 위-티, citta vīthi)을 보여줍니다.

영문 다운 로드: Purāna and Nava Kamma

 

11. 대괄호 속의 17 항목은 시각 사건의 찟따 위티에 있는 17개의 개별 찟따를 나타냅니다. 이 과정은 순식간에 일어나는데, 부처님만이 그런 빠른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무수한 그런 찟따 위티가 우리 마음을 지나간 후에만 감각 입력을 알게 됩니다. 

 

 

적어도 여러 찟따 위티가 우리 마음을 지나간 후에,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됩니다. 그 후에도, 우리는 옷타빠나(V) 단계 후에 ‘새로운 (나와, nava) 깜마 형성’만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마음챙김(mindful) 한다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마음은 옷타빠나(V) 단계 이전에도 이미 ‘깜마 축적’을 시작했으며, 이것이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입니다. 그러나 강한 와찌(vaci) 또는 까야 상카-라(kaya saṅkhāra)는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와 함께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에서만 생성되기 때문에, 그 업(깜마) 에너지는 낮습니다. 먼저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의 각 항목을 살펴 보겠습니다.

 

  • * 위 #9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마음은 감각 입력 전에는 ‘중립 웁빳띠 바왕가 상태(neutral uppatti bhavaṅga state)’(찟따가 아니고, 위 그림에서 B로 표시)에 있습니다. 감각 입력이 들어오면, 마음은 ‘중립 웁빳띠 바왕가 상태’에서 나와야 하는데, AB, BC, BU라는 3개의 찟따가  필요합니다. 그다음, PD 찟따와 함께, 마음은 감각 입력이 들어오는 특정 감각 문을 찾습니다. 위 예에서, 마음은 그 신호가 눈 문(eye door, 짝쿠 드와라)를 통해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거기 그 신호를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 CV)로 받아들입니다. 

  • * 그 CV 찟따는 ‘오염되지 않은(그러나 여전히 왜곡된 버전인) 외부 루빠’를 가집니다. 그 짝꾸 윈냐-나는 오염되지 않았지만 ‘왜곡된 산냐(distorted saññā)’에  상응하기 때문에 왜곡되었습니다. 왜곡된 산냐-(saññā)와 윈냐-나(viññāna)는 웁빳띠 바왕가(uppatti bhavaṅga)에 따라 일어납니다. 그 때문에 아라한 조차도 보통 사람처럼 ‘매력적인 사람’을 그렇게 볼 것입니다. 입력이 맛(예, 설탕)이라면, 아라한은 달콤함을 맛볼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뚜 단계(dhātu stage)’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우빠야(upaya) 또는 우빠디(upadhi)의 다음 단계는 또한 이 CV 찟따 내에서 뿌툿자나에게만 일어납니다. ( ‘우빠야와 우빠-다-나 ㅡ 들러붙음의 두 단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뿌툿자나의 마음은 자동적으로 그 매력적인 사람이나 설탕의 달콤함에 들러붙을 수 있지만, 아라한의 마음은 어떤 아-람마나(ārammaṇa)에도 들러붙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아라한의 마음은 아래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찟따 위티의 나머지를 거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찟따 위티는 작용하지만, 자와나 찟따는 업적 결과가 없는 끼리야 찟따(kriya citta)로 대체될 것입니다. 이 시점부터, 우리는 뿌툿자나의 마음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한정합니다. 

  • * 다음 찟따(Sam)에서, 마음은 ‘왜곡된 산냐/윈냐-나를 가진 마음에 의해 생성된 루빠’에 들러붙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삼빠띳짜나(sampaṭiccana, ‘san’ + ‘paṭicca’)는 ‘산(san)과 함께 들러붙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찟따(citta)는 상깝빠(sankappa)를 생성하고, 왜곡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염되었습니다. 이 루빠는 ‘왜곡된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와 함께 (마음에) 생성된’을 의미하는 짝쿠위네이야- 루-빠-(cakkhuviññeyyā rūpā)입니다. 아라한의 마음은 이 루빠를 생성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또한 삼팟사(samphassa)’ 단계입니다.  

  • * 그다음 그 ‘삼팟사(samphassa)’는 다음 찟따(san)에서 ‘삼팟사ㅡ자-ㅡ웨다나-(samphassa-jā-vedanā)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많은 포스트에서 이 두 단계를 논의했습니다. 예를 들어, ‘감각 사건에서 위빠-까 웨-다나-와 삼팟사 자- 웨-다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마음이 만든 웨다나-’에 기반하여, 마음은 다음 옷탑빠나 찟따(V)에서 그 아-람마나(ārammaṇa)에 들러붙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7개의 자와나 찟따-와 함께 강한 깜마 에너지가 생성되는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를 시작합니다. 이것은 또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서 삼팟사ㅡ자-ㅡ웨다나- 빳짜야- 땅하-(samphassa-jā-vedanā paccayā taṇhā) 및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우빠야와 우빠-다-나 ㅡ 들러붙음의 두 단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다음, 이어지는 일곱개의 자와나 찟따(J)에서 마노(mano), 와찌(vaci), 및 까야 상카-라(kaya saṅkhāra)와 함께 강한 ‘새로운 깜마, 즉  나와 깜마(nava kamma)’ 축적이 일어납니다. 이제, 마음은 전통적인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과정에서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와 함께 의식적으로 강한 깜마를 생성하기 시작합니다. ‘담마와 과학’ 섹션의 ‘빠띳짜 사뭅빠-다 ㅡ 비아 또는 무아(Paṭicca Samuppāda – Not ‘Self’ or ‘No-Self’)’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 * 위에서 논의한 것의 이전 버전이 ‘위빠-까 윈냐-나와 관련한 아브야-까따 빠띳짜 사뭅빠-다’ 포스트에 있습니다. 

 

12. #10과 #11의 위 논의에서와 같이 아비담마(Abhidhamma)의 찟따 위티(citta vithi)와 함께 우빠야(upaya)와 우빠-다-나(upādāna) 사이의 차이를 논의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가띠(gati)와 결정적인 관계는 여기서 아주 명백합니다. 강조하면, 타고난 웁빳띠 바왕가(uppatti bhavaṅga)는 아라한을 포함하여 인간으로 태어나는 모든 이들에게 인간 바와의 끝까지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아-람마나(감각 입력)와 함께 일어나는 생각 과정, 즉 찟따 위티(citta vithi)는 그들 모두에게 ‘웁빳띠 바왕가 마음 성향’으로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까-마 로까(kāma loka)’에 내재된 ‘왜곡된 산냐-’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왜곡된 산냐-’만으로 ‘까-마 다-뚜(kāma dhātu)’의 초기 단계에서만 시작됩니다. 맨 처음 CV 찟따 내에서 그것은 뿌툿자나(puthujjana)에게는 ‘오염된 산냐-(따라서, ‘오염된 윈냐-나’)로 바뀌지만, 아라한(또는 마음이 ‘까-마 로까’를 초월한 아나가미)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 * 그것을 말하는 다른 방식은 다음과 같은데, 뿌툿자나(puthujjana)의 마음은 항상 세상을 오염된 산냐-(defiled saññā), 즉 산자나-띠(sañjānāti)와 함께 보고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아라한의 마음은 (사물/사람의 아름다움, 설탕의 달콤함, 썩은 고기의 악취 등의) ‘왜곡된 산냐-(distorted saññā)’는 환상/환영이라고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아라한의 마음은 완전한 지혜와 함께 세상을 봅니다(아비자-나-띠, abhijānāti).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가 되면, 빠자-나-띠(pajānāti)라는 중간 단계를 통해 딧티 위빨라-사(diṭṭhi vipallāsa)를 제거함으로써 ‘아닛짜 본질(anicca nature)’을 보기 시작합니다. ‘인지 모드 ㅡ 산자-나-띠, 위자-나-띠, 빠자-나-띠, 아비자-나-띠’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빠자-나띠(pajānāti)에서 아비자-나-띠(abhijānāti)로 전환은 위에서 논의한 우빠야(upaya) 또는 우빠디(upadhi) 단계에서 일어나는 산냐- 위빨라-사(saññā vipallāsa)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생길 수 없습니다.

  • * 숫따 삐따까(Sutta Piṭaka, 경장)에서는 또한 여러 숫따에서 우빠야(upaya) 단계를 논의하지만, 위 묘사가 가장 분명합니다. 곧 있을 포스트에서 그 숫따들을 논의하겠습니다. 

 

13.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가 되기 위해서 산냐- 위빨라-사(saññā vipallāsa)를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의견으로는, 산냐- 위빨라-사를 이해하면 뿌툿자나가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 쉽고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에 이르는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 * 붓다께서는 ‘Pheṇapiṇḍūpama Sutta (SN 22.95)’에서 이 왜곡된 산냐-(distorted saññā)를 신기루, 즉 환영에 견주어 설명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전 포스트인 ‘소따빤나 단계와 왜곡된/오염된 산냐-’에서 그것을 논의했습니다.

  • * 아라한의 마음은 그 왜곡된 산냐-(distorted saññā)에 속지 않습니다.

  • * (앞에 물 웅덩이가 있다고 생각하여) 신기루를 쫓아가는 목마른 동물과 꼭 같이, 뿌툿자나(puthujjana)는 자신이 아름답고, 맛있는 등으로 인식하는 대상을 쫓아갑니다. 뿟툿자나는 아름다움 또는 맛있음 등이 대상에 내재하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 * (아름다운 사물/사람, 음악, 맛있는 음식, 성관계 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태어날 때 획득된 가띠에 따라 마음이 만든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그것들은 산냐- 위빨라-사로부터 일어나는 ‘삼팟사ㅡ자-ㅡ웨다나-(samphassa-jā-vedanā)’로 이어집니다.

  • * ‘소따빤나 단계와 왜곡된/오염된 산냐-’ 포스트를 다시 읽어 보면, 여러분은 지금 위 논의와 함께 더 나은 개념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필자가 설명한 바와 같이, ‘동물은 인간과 비교했을 때 뚜렷이 다른 산냐를 생성하고 심지어 서로 다른 동물들 사이에서도 뚜렷이 다른 산냐를 생성합니다. 비록 우리가 썩은 고기나 배설물을 보거나 냄새를 맡는 것을 혐오하더라도, 돼지는 같은 것을 보거나 냄새를 맡을 때 매우 다른 산냐를 얻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혐오스러운 생각을 할 것이지만, 돼지는 기뻐하고 그런 것에 끌리게 됩니다.

 

가띠와 태어남 사이의 관계

 

14. 인간과 동물은 동일한 원자와 분자(또는 붓다 담마에 따른 동일한 숫닷-타까)로 만들어집니다. 물질적으로는, 돼지가 썩은 것들을 먹기를 좋아하고, 소가 풀을 좋아하고, 사자가 다른 동물을 죽여 그 고기를 먹는 것을 좋아하는 등의 근본적 이유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존재/태어남의 원인인 특정한 유형의 깜마 에너지에 있습니다

 

  • * 각 동물의 태어남은 이전 인간 삶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무심코 하는 행위’를 일상적으로 행하는 인간은 소로 재탄생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폭력적인 행위를 하는 이들은 사자, 호랑이 등과 같은 사나운 동물로 태어나기가 쉽습니다. 동물에 대한 대부분의 싱할라 낱말들은 그런 내재된 설명을 지닙니다.

  • * 그러므로, 돼지가 썩은 고기/배설물을 좋아하는 (그리고 그것들을 갈망하는 것도) 유일한 이유는 인간으로 있을 때 돼지에 적합한 저열한 가띠를 길렀기 때문입니다. 각  돼지는 (경멸할 만한 행위를 함으로써) 그런 혐오스러운 가띠를 길렀던 인간이었습니다.

  • *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시와 같은 공덕행을 하고 도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인간 영역이나 데와 영역(천상)에 재탄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나 사마-빳띠(samāpatti)를 육성하는 사람들은 브라흐마 영역(범천계)에 재탄생할 것입니다. ‘가띠(가티)에서 바와로 그리고 자띠(자티)로 - 우리가 통제해야 할 것’와 ‘가띠(습관/성격)가 탄생을 결정한다 ㅡ 상삽빠니-야 숫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모든 것들의 뿌리 ㅡ 물-라빠리야-야 숫따

 

15. 물-라빠리야-야 숫따(Mūlapariyāya Sutta)는 세상 것들에 대한 갈망을 생성하는(땅하-) 원인은 이 ‘산냐- 위빨라-사(saññā vipallāsa)’, 즉 ‘왜곡된 산냐-(distorted saññā)’라고 가리켜 보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본질적 아름다움/추함 또는 맛있음/맛없음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 * 그 ‘산냐- 위빨라-사’(또는 산자-나-띠)에 기반하여, 사람들은 이 세상에 대해 다양한 잘못된 견해를 갖게 됩니다. 그것들이 딧티 위빨라-사(diṭṭhi vipallāsa)입니다. 먼저 ‘산냐- 위빨라-사(saññā vipallāsa)’를 제거하지 않고도 딧티 위빨라-사(diṭṭhi vipallāsa)를 마음에서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냐- 위빨라-사(saññā vipallāsa)’를 제거하면 둘 다 제거될 수 있습니다.

  • * 그것은 ‘Mūlapariyāya Sutta (MN 1)’의 시작 부분에서 다음 구절을 통해 분명합니다. “성자로부터 참된 본질에 대해 듣지 못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을 예로 들면, 그들은 빠타위(pathivi)를 견실한 것(예: 다이아몬드와 같은 견실한 물질)으로 인식한다.” 우리는 ‘산냐- 위빨라-사 ㅡ 왜곡된 인식’ 포스트에서 산냐- 위빨라-사의 이 특별한 측면을 논의했습니다. 우리가 ‘견실한 육체’을 지니거나 그 ‘다이어몬드가 극히 조밀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환상입니다. 그것들은 숫닷타-까(suddhāṭṭhaka)로 이루어지고(이것은 차례로, 마음이 만들었음!) 모든 물질은 대부분 비어 있습니다. 더 깊은 분석은 ‘물질의 기원 ㅡ 숫닷-타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 ‘산냐- 위빨라-사(saññā vipallāsa)’는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지는데(표식 3.3), “그들은 땅을 견실한 것으로 인식하고, 빠타위(pathavi)로 만든 것이 자신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것에 즐거워하고 그런 것들을 찬미한다.” (“pathaviṁ pathavito saññatvā pathaviṁ maññati, pathaviyā maññati, pathavito maññati, pathaviṁ meti maññati, pathaviṁ abhinandati.”)입니다. 필자는 나중에 ‘만냐띠(maññati)’를 명확하게 하여 설명하는 포스트를 작성하겠습니다. 

  • * 그다음, 숫따는 다른 세 가지, 즉 아-뽀(āpo), 떼조(tejo), 와-요(vāyo)에 대해 동일하게 말합니다.

 

16. 그다음,  경에서는 31영역 중의 어떤 영역에 있는 유정체도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mauppada)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만든 것’이라고 가리켜 보입니다. 이것은 차례로. ‘산냐- 위빨라-사(saññā vipallāsa)’에 기반하여 작용하는데, 필자가 위에서 가리켜 보였듯이, 위 #10번의 옷타빠나(votthapana)(V) 단계에서 땅하-(taṇhā, 갈애)가 일어나는 주된 이유는 산냐- 위빨라-사입니다. 물론, 이 개념들이 스며들기 위해서는 깊은 숙고(그리고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필자가 계속 반복하여 말하는 바와 같이, 이 개념들을 말로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읽고, 숙고하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 * 표식 7.1에서, 숫따는 “그들(뿌툿자나)은 유정체를 내재적 정체성을 가진 진짜 유정체로 인식한다.”(“Bhūte bhūtato sañjānāti.”)라고 말합니다. 

  • * 붓다께서는 모든 유정체가 특정 기간(즉, 유정체를 일으킨 깜마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만 특정 정체성을 지니므로 ‘부따(bhuta)’, 즉 ‘유령’이라고 칭하셨습니다. 그다음, 그 유정체는 또다른 형태를 취합니다. 예를 들어, 데와(Deva)는 생의 마지막에 인간이나 동물의 형태를 취할 수 있습니다. 영구적으로 살아 있는 데와(천신), 인간, 또는 동물은 없습니다. 유정체는 모두 일시적 존재들을 가집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데와(Deva)들을 어떤 특별한 존재라고 가정하고 그들을 숭배하지만, 데와들도 재탄생 과정(윤회)에서 어찌할 수 없이 무력합니다. 그들도  자신들이 재탄생할 곳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 * 그다음, 숫따는 표식 18.1에서 네와산냐-나-산냐-야따나(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 )라는 가장 높은 브라흐마 영역까지 다양한 영역의 존재들을 언급합니다. 그들은 모두 ‘부-따 존재들’입니다. ‘부-따와 야타부-따 ㅡ 그것들의 진정한 의미’ 포스트에 있는 야타-부-따 냐-나(즉, 세상것들의 참된 본질에 대한 앎)와의 관계를 참조하세요. 또한, 위 #14의 링크를 참조하세요.

 

17. 표식 19.1에서, 숫따는 “그들(뿌툿자나)은 보이는 것을 어떤 실제적인 것으로 인식한다.”(“Diṭṭhaṁ diṭṭhato sañjānāti.”)라고 말합니다.

 

  • * 이것은 우리가 위 #10~#12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입니다. 뿌툿자나는 어떤 사물 또는 사람을 매력적인(또는 보기 흉한) 것으로 ‘잘못 인식’(산자-나-띠, sañjānāti)합니다. 그러나 외부 세계에 있는 형태(루빠)에 내재적 매력 또는 흉함은 없습니다. 그것들은 동일한 빠따위(pathavi), 아-뽀(āpo), 떼조(tejo), 와-요(vāyo)로 만들어집니다.

  • * 그러나, 마음은 ‘왜곡된/오염된 인식, 즉 산자-나-띠’에 기반하여, 그 자체의 ‘짝쿠윈네이야- 루-빠-(cakkhuviññeyyā rūpā)’, 즉 ‘오염된 마음이 생성한, 외부 루빠의 오도 버전’을 만듭니다. 대부분의 숫따에서, ‘루빠(rupa)’는 외부 루빠 대신에 이 ‘마음이 만든 버전’을 지칭합니다. 따라서,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성한 것은 단지 빠따위(pathavi), 아-뽀(āpo), 떼조(tejo), 와-요(vāyo)로 만들어진 육체일 뿐입니다. 동일한 사람을 보는 사자는 그 아름다움이 아니라 먹기에 적합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 중에서도, 동일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의해 아름답거나 그렇게 아름답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 * 그다음, 그 구절은 들리는 것, 냄새 맡는 것, 등에 대해 반복됩니다. 그 모든 것은 산자-나-띠(sañjānāti)에 기반한 ‘마음이 만든 인상’입니다.  

 

18. 숫따의 새로운 섹션은 표식 27.1에서 시작하며, 세카(유학성자, 즉 아라한이 되기 위해 힘쓰는 성자)에 대해 위에서 논의한 구절을 반복하는데, “아라한과에 이르지 못했지만 아라한과에 이르기를 열망하며 살아가는 유학성자인 빅쿠는 빠따위(pathavi)와 그것으로 만들어진 것들의 참된 본질을 안다(아비자-나-띠, abhijānāti).”라고 합니다.

 

  • * 그들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산냐- 위빨라-사(saññā vipallāsa)에 기반하여 마음에서 어떻게 유래하는지를 이해했습니다(아비자-나-띠, abhijānāti).

  • * 그러므로, 표식 27.4에서, “그들은 즐거움을 누리거나 그런 것들을 찬미하는 것 모두를 삼가하려고 노력한다.” (“pathaviṁ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ṁ mā maññi, pathaviyā mā maññi, pathavito mā maññi, pathaviṁ meti mā maññi, pathaviṁ mābhinandi.”)라고 합니다. 여기서, ‘mābhinandi’는 ‘mā abhinandi’, 즉 ‘찬미하는 것을 삼가하려고 힘쓴다.’입니다.

  • * 나머지 구절은 동일한 라인을 따라 진행되는 데, 세카(sekha)는 모든 유정체의 생이 산냐- 위빨라-사에 기반하여 일어난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19. 그 이해가 완전할 때, 표식 75.1에서 시작하여 설명된 바와 같이, 아라한과에 도달합니다. 아라한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산냐- 위빨라-사(saññā vipallāsa)에 기반하여 마음에서 어떻게 유래하는지를 완전히 이해했습니다(아비자-나-띠, abhijānāti).

 

  • * 그러므로, 표식 75.2에서, “그들은 즐거움을 누리거나 그런 것들을 찬미하지 않는다.” (“pathaviṁ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ṁ na maññi, pathaviyā na maññi, pathavito na maññi, pathaviṁ meti na maññi, pathaviṁ bhinandi.”)라고 합니다. 여기서, ‘bhinandi’는 ‘na abhinandi’, 즉 ‘결코 즐거움을 누리거나 그런 것들을 찬미하지 않는다.’입니다.

  • * 그다음, 표식 75.3에서, 그 이유는 아라한은 마음 속에 탐함(탐욕)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Khayā rāgassa, vītarāgattā.”)

  • * 이 순서는 두 번 반복되는데, 아라한은 증오도 없고(표식 99.4) 미혹/모하(moha)도 없다(표식 123.4)고 말합니다.

 

20. 마지막으로, 표식 147.1에서, 위 #19의 순서가 붓다(삼마-삼붓다)에 대해 반복됩니다.

 

요약

 

21. 필자는 물-라빠리야-야 숫따(Mūlapariyāya Sutta)에 심어진 핵심 아이디어/개념을 나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모든 결정적으로 중요한 숫따의 경우, 그 아이디어/개념을 완전히 묘사하려면 책 한 권이 필요할 것입니다.

 

  • * 그러나, 이 서브섹션의 첫 번째 포스트인 ‘소따빤나 단계와 왜곡된/오염된 산냐-’에서 추천한 배경 자료를 시간을 내어 읽고 또한 위에서 추천한 링크도 모두를 읽어 본다면, 핵심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물론, 이 포스트(또는 다른 포스트)는 개선될 수 있습니다. 주저하지 말고 어떤 잘못된 점을 지적하거나 불분명한 것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요청해 주세요.

  • * 이례적으로 긴 포스트이지만, 한 포스트에서 주된 개념의 대부분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는 비판적인 코멘트를 바탕으로 [포스트를] 더 낫게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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