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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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했는지 어떻게 아는가?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How Does One Know whether the Sotāpanna Stage is Reached?’ 포스트

- 2017년 3월 23일 개정; 2019년 8월 12일 개정; 2020년 2월 11일 개정; 2022년 10월 9일 개정; 2023년 5월 16일 개정(#7)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했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악처(아빠-야, apāya)에  태어나기에 적합한 특성(gati, 가띠)을 제거했다는 것이 명백해집니다.

 

소따-빤나는 첫 번째 목표

 

1. 바웃다야-(Bhauddhayā, 불교도)가 구하는 가장 귀중한 것은 닙바-나(Nibbāna)의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입니다. ‘소따-빤나가 그 어떤 왕, 황제, 백만장자보다 더 나은 이유’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궁극적 목표는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입니다. 소따-빤나(Sotāpanna)는 7번의 바와(bhava) 내에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를 얻게 됩니다.

  • * 7번의 바와(bhava)는 7번의 탄생보다 많습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바와(bhava) 내에 많은 탄생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와 및 자띠 - 존재 상태와 거기로 태어남’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래서, 그 단계에 도달했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 자신 외에는, 오직 부처님만이 특정 사람이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를 달성했는지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소따-빤나 단계에 대한 잘못된 통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위의 그 포스트에서 논의했듯이, 심지어 부처님 다음으로 담마를 잘 아셨던 사리뿟따 존자께서도 그것(다른 사람의 도과 달성여부)을 아실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했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그리고 그렇게 하여 돈을 법니다).

 

2. 소따-빤나(Sotāpanna)는 닙바-나(Nibbāna로 가는 길을 보았습니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더 있지만, 멀리서 닙바-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소따-빤나에게는] 닙바-나로 가는 길이 분명해졌습니다.

 

  • * 또 다른 포스트에서 필자는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특정 산을 찾아 그 정상에 도달하고자 하는 여행자가 마침내 멀리서 그 윤곽을 볼 수 있습니다. 여전히 산기슭(산 밑)으로 가서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힘든 일의 대부분은 그 산의 위치를 찾고 그 산에 가까이 가는 것이었습니다. ‘소따-빤나 아누가-미와 소따-빤나’ 포스트와 ‘소-따빤나 단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닙바-나는 재탄생 과정(윤회)의 멈춤

 

3.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 궁극적인 목표는 31영역 이 세상 어떤 곳에도 재탄생하는 것을 멈추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재탄생 과정(윤회)에 머물면, 겪어야 할 고통(괴로움, 시달림)만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사악처(아빠-야, apāya)에 재탄생할 때의 위험을 이해해야 합니다.

 

  • * 이 깨달음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31영역 이 세상의 참된 본질인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무상(impermanence), 고통(suffering), 및 무아(no-self)가 아닙니다. ‘아닛짜, 둑카, 아낫따 – 잘못된 해석’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 대신에, 31영역 이 세상에서 행복의 신기루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결실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 재탄생 순환(윤회)에서는 정말로 어쩔 수 없고 무력하게 된다는 것을 자신에게 확신시키는 것입니다.

  • * 그러므로, ‘이 세상 것들에 대한 갈망을 포기함’으로써 미래의 고통(괴로움, 시달림)을 멈추기 위해 부지런히 일해야(수행해야) 하며, 이 재탄생 순환(윤회)의 사막에서 유일한 오아시스인 닙바-나(Nibbāna)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물질 세계의 짐에서 마음을 해방하는 것입니다.

 

띨락카나를 이해하면 삶의 관점이 바뀜 

 

4. 일단 그 생각이 자리잡으면, 자신의 태도, 행위, 및 삶에 대한 관점이 영원히 바뀝니다.

 

  • *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이가 두 개의 숫자를 더하는 방법을 일단 배우게 되면, 그것을 잊을 리가 없습니다. 두 번 다시 의심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어른이, 심지어 선생님이 ‘2 더하기 3은 6이다’라고 말하더라도, 그 아이는 그것에 동의할 리가 없습니다.

  • * 소따-빤나 단계를 달성하는 것은 그와 같습니다. 깊이 보면, 재탄생 과정의 위험함을 알 수 있습니다. 건강, 부 또는 명성으로 인한 행복이든 그 어떤 것이든 장기적으로 볼 때 가치가 없습니다. 소따-빤나는 붓다 담마의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했고, (이해를 바탕으로 한) 그 믿음은 미래 재탄생 내내 우선할 것입니다.

  • * 그것은 ‘마법의 효과’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존재(유정체)는 업 에너지의 연속적인 흐름입니다. ‘환생이란 무엇인가? - 생명 흐름의 개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소따-빤나 팔라(Sotāpanna phala) 순간에 일어나는 일은 그 생명 흐름의 가띠(gati, 성향)가 돌이킬 수 없게 바뀌는 것입니다. 소따-빤나 성자는 지옥 중생(강한 미움의 성향), 뻬따(강한 탐함의 성향), 아수라(더부살이 성향), 동물(그 모두가 혼합됨, ‘띠리산_tirisan’은 ‘모든 세가지 산_san’)에 적합한 모든 가띠(gati, 성향)를 영구적으로 제거하였습니다.

  • * 평가하는 한 가지 방법은 (소따-빤나 단계를 향해 행하는 동안 내내) 자신의 그런 가띠(gati)가 얼마나 좋게 바뀌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현저한 변화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가띠(gati, gathi)에 대한 논의를 보려면 오른쪽 상단에 있는 검색 박스를 사용하세요.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을 본다는 것

 

5.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거울을 보고 비춰진 우리 이미지(상)를 볼 때 우리는 그것이 다른 사람이나 자신이 아니라 단지 이미지(상)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 두 번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 * 그러나 거울이나 물에 비춰진 것을 보고 짖는 개를 보셨지요? 개는 그것이 다른 개라고 생각하고 짖습니다. 개는 비춰지는 현상의 실제를 알지 못합니다.

  • * 이와 마찬가지로, 보통 사람은 각자의 물질적 부를 매우 높게 평가합니다. 그러한 물질적인 것들, 직함, 인정 등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할’ 의향이 있습니다.

  • * 그러나 소따-빤나는 그런 분투의 결실없음을 본능적으로 압니다. 소따-빤나는 여전히 감각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고, 그래서 예를 들면 여전히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성적 행위를 하는 것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관계 이외의 성적 행위를 하거나, 지나치게 탐하여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등의 극단으로는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가지 않습니다.

  • * 소따-빤나는 로-바(lōbha)는 까-마 라-가(kāma rāga)로, 도-사(dōsa)는 빠띠가(paṭigha)로 그 레벨을 줄였습니다. 다시 말해, 다섯 가지 장애로 인해 마음이 완전히 덮힌 탐욕이나 증오는 ‘들러붙음(attachment)’과 ‘싫어함(dislike)’의 레벨로 줄어들었습니다. “ ‘로-바, 도-사, 모-하’ 대 ‘라-가, 빠띠가, 아윗자-’ ”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가장 중요한 것은 사악처에 재탄생할 정도의 부도덕한 행, 즉 ‘아빠-야가-미 행’은 결코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거울 속의 우리 이미지가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그 비춰진 것과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따-빤나는 본능적으로 심대하게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것을 피합니다. 그런 행위의 결과 등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마음은 자동적으로 그런 행위를 차단합니다.

 

자-나는 기분전환 활동일 수 있음

 

6. 사전에 어떤 자-나(jhāna, 선정)에도 도달할 수 없어도 소따-빤나(심지어 아라한뜨)가 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데사나(desana, 법문)를 듣고 아라한과에 도달했습니다.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빠짜라(Upacara, 근접)와 아눌로마(anuloma, 순응) 사마디(samadhi, 삼매)로 충분합니다. 또한 자-나(jhāna)와 막가 팔라(magga phala)는 서로 다른 두 가지입니다. ‘리빙 담마’ 섹션의 ‘사마디, 자나, 막가 팔라(Samādhi, Jhāna (Dhyāna), Magga Phala)’ 서브 섹션을 참조하세요. 

 

  • * 그것은 소따-빤나(Sotāpanna)가 재탄생할 수 있는 곳을 보면 분명해집니다. 소따-빤나는 인간계 또는 그 위의 영역(천상계, 범천계)에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제1아나리야 자-나(제1세간 선정)을 얻으면, 브라흐마(Brahma, 범천) 영역에 태어납니다. 따라서 [아리야 자-나(ariya  jhāna, 출세간 선정)가 아닌]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 세간 선정)만이라도 얻은 소따-빤나(Sotāpanna)는 인간계에 재탄생하지 않습니다. 

  • * 한편, 소따-빤나가 아니지만 아나리야 자-나(세간 선정)를 얻은 자도 브라흐마 영역(범천계)에 태어납니다. 그러나 그 자는 [세간 선정도 얻지 못한 소따-빤나에 비해] 사악처에 탄생하는 것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 * 위에서 설명한 것은 89가지 찟따(citta)에서 121가지 찟따(citta)로 확장한 것과 일치합니다. 추가적인 40가지 찟따(citta)는 다양한 (아나리야, anariya) 자-나(jhāna) 레벨의 사람들이 닙바-나(Nibbāna)의 4단계에 도달할 때 발생합니다. ‘89가지(121가지) 유형의 찟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러나 이것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닌 전문적 세부 사항입니다. 필자는 단지 일관성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리야 자-나와 아나리야 자-나 경험은 동일함 

 

7. 우리는 또한 자-나(jhāna, 선정) 경험은 아나리야 자-나/사마-빳띠(anariya jhāna/samāpatti)의 경우와 아리야 자-나/사마-빳띠(Ariya jhāna/samāpatti)의 경우가 동일하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루빠와짜라(rupavacara, 색계)와 아루빠와짜라(arupavacara, 무색계)의 정신 상태입니다. 그것들은 여전히 31영역 이 세상에 속합니다. 그러나 미묘한 차이는 아나리야 자-나에서 나타나는 아누사야(anusaya)로 인한 것에 있습니다. ‘따뿟사 숫따(AN 9.41) ㅡ 아꿉빠- 쩨-또-위뭇띠’ 포스트의 #8, #10 등을 참조하세요.

 

  • * 붓다 출현 전에도 가장 높은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ā)를 달성하고 더 높은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upāvacara samāpatti)로 나아가고 신통력도 길렀던 요기(yogi, 금욕 수행자)들이 있었습니다.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로 쩨또 위뭇띠(ceto vimutti, 마음 해탈)(또는 ceto vimukthi)가 된 것은 빤냐- 위뭇띠(paññā vimutti, 지혜 해탈)로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를 얻은 것과는 다릅니다. 전자에서는 오염원이 가라앉은(눌려진) 상태이고, 후자에서는 오염원이 제거된 상태입니다.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upāvacara samāpatti)는 오늘날 비록 ‘상위 자-나-(higher jhānā)’로 불리고 있지만, 그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오직 네 가지(아비담마의 분석에서는 다섯 가지)의 자-나-(jhānā)만 있습니다. 상위 아루빠-와짜라 정신 상태는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upāvacara samāpatti)입니다. ‘89가지(121가지) 유형의 찟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물론,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도 달성하면, 위빠사나-(vipassanā)를 하고(아닛짜, 둑카, 아낫타를 이해) 도과(magga phala)를 얻기가 더 쉽습니다.  

 

아리야 자-나와 아나리야 자-나는 본질적으로는 매우 다름

 

8. 단지 아꾸살라(akusala) 생각과 감각적 즐거움(까-마 라-가, kāma rāga)에 대한 갈망을 억누르는 것만으로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 세간 선정)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 * 반면에, 아리야 자-나(Ariya jhāna, 출세간 선정)를 달성하려면 감각적 즐거움(까-마 라-가, kāma rāga)에 대한 갈망(아누사야, anusaya)를 제거해야 합니다. 따라서 첫 번째 아리야 자-나(Ariya jhāna)를 달성하려면 아나-가-미(Anāgāmi)가 되어야 합니다. ‘명상으로 가능한 결과 ㅡ 사마-디, 자-나, 막가 팔라’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다음 데사나(desana, 법문)에서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ero)께서 자-나(jhāna)와 막가 팔라(magga phala)의 차이를 설명하고 계십니다(싱할라어 법문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 핵심부분만 추출하였습니다).

웹 링크: Waharaka Thero - Difference between Magga Phala and Jhāna in Sinhala

 

변화는 자신이 스스로 볼 수 있음

 

9.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전에도, 다른 사람과 모든 유정체를 향한 행동과 태도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길(팔정도)을 따르기 시작함에 따라 점차적으로 변합니다.

 

  • * 그러나,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 도달한 후에 현저한 변화가 있습니다. 그 변화는 하루 안에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습니다. 되돌아 보았을 때, 생활방식에 일부 중대한 차이가 나타나는 데 몇 주 또는 몇 달이 걸릴 수 있습니다.

  • *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면]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는 경향이 줄어듭니다. 담마(Dhamma)를 배우고 아직 명확하지 않은 개념을 숙고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특성)에 대해 더 많이 발견하는 것은 대단히 즐겁습니다.

  • * 또한 전에는 눈치 채지 못한 것들을 알아 차리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의 ‘자기 유발’ 시달림(괴로움)의 분명한 사례들을 보게 되는데, 사람들이 ‘더 열심히 파티’를 하면서 인생을 즐기려고 하지만, 지치기만 할 뿐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 * 소따-빤나 단계를 확신할 수 있는 매우 명확한 방법은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 위찌낏짜(vicikiccā) 및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āmāsa)라는 3가지 상요-자나(samyōjana)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삭까-야 딧티는 '개성(나)'이라는 견해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자신의 성취를 선언해야 할까?

 

10. 그 다음, 이런 의문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이 도달한 막가 팔라(magga phala) 상태를 선언하는 것이 적절한가, 또는 붓다께서 허용하셨는가?

 

  • * 띠삐따까(Tipiṭaka, 삼장)에 명시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누군가가 존경, 돈, 인기(주목, 평판) 등을 받을 속셈으로 특정 막가 팔라(magga phala)에 도달했다고 거짓되게 선언한다면, 그것은 나쁜 깜마(kamma, 업)입니다. 그것은 전통적인 [테라와다] 빅쿠(bikkhu)에게는 빠-라-지까(pārājika)가 되어, 자동적으로 빅쿠의 자격을 잃고, 그 행위로 인해 니라야(niriya, 지옥)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 * 막가 팔라(magga phala) 상태의 선언이 금지되지는 않았습니다. 소따-빤나에 도달한 사람이 특히 다른 자들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선언할 수 있습니다. 마하- 빠리닙바-나 숫따( ‘Mahā Parinibbāna Sutta, DN 16’ )에서는, “Katamo ca so, ānanda, dhammādāso dhammapariyāyo, yena samannāgato ariyasāvako ākaṅkhamāno attanāva attānaṃ byākareyya: ‘khīṇanirayomhi khīṇatiracchānayoni khīṇapettivisayo khīṇāpāyaduggativinipāto, sotāpannohamasmi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ti.”로 설해져 있습니다.

  • * 동일한 구절(“이것을 가진 성스런 제자는 ‘나는 지옥, 동물, 및 아귀계에 태어나는 것을 끝냈다. 나는 수다원이다! 나는 더 낮은 영역에 태어날 가능성이 없고 마지막 해탈인 열반을 향한다.’라고 스스로 선언할 수 있다.”)이 네 개의 숫따 시리즈(SN 55.7 ~ SN 55.10)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Paṭhamagiñjakāvasatha Sutta (SN 55.8)’를 참조하세요.

  • * 막가 팔라(magga phala)에 도달한 사람의 대부분은 그 도달을 선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나(jhāna)도 마찬가지로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통력을 얻으려고 자-나(jhāna)를 개발하기 시작하지만, 일단 그곳에 도달하면, 그들은 그 신통력도 결실없음(실속없음)을 벌써 보았습니다.

  • * 특히, 전생을 볼 수 있는 신통력을 개발할 때, 자신(그리고 다른 이들)이 전생에서 겪은 것에 대해 끔찍함을 느끼게 됩니다. 더 이상 전생을 되돌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띠삐따까(삼장)에 있는 예/설명

 

11. 이제 띠삐따까(Tipiṭaka)의 일부 일화를 논의하여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점을 명확하게 하겠습니다.

 

  • * 위사-까(Visāka, 부처님의 주요 여성 재가 제자 중  한 분)는 어린 나이에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120세에 죽을 때까지 자-나(jhānā) 또는 더 높은 단계의 막가 팔라(magga phala)도 개발하지 않고 그 단계에 머물렀습니다. 붓다께서는 위사-까가 여러 번(필자가 기억하기로는 11번) 데와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값비싼 수도원인 제따와나라마야(Jetavanaramaya)를 지은 부유한 사업가인 아나타삔디까(Anathapindika)는 부처님으로부터 처음 데사나(desana, 법문)를 듣고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그 분은 죽어 뚜시따(Tusita, 6가지 천상세계 중의 하나) 영역에 태어났습니다. 그 천상 세계도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 속하기 때문에, 그 분은 아리야 자-나(Ariya jhāna)에는 결코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 * 마하-나-마(Mahānāma)는 싯다르타(Siddhartha) 왕자의 가족과 친척 관계였던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붓다께서는 그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마하-나-마는 사업 활동을 할 때, 종종 하인들에게 짜증과 화를 내고 고함을 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표출이 있은 후에는, “내가 여전히 이와 같이 화를 내게 된다면, 아직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지 못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찾아뵙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고 붓다께서 그렇게 선언하신 것이 확실한지 묻곤 했습니다. 마하-나-마는 붓다께서 3번째로 확인을 해 주실 때까지, 여전히 자신이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렀는지 의구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Paṭhama Mahānāma Sutta, SN 55.21’ 를 참조하세요..

  • * 핵심은 증오(dōsa, 도-사)와 화냄(paṭigha, 빠띠가)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빠띠가(paṭigha)는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서만 제거됩니다.

 

띠삐따까(삼장)에 있는 추가 설명

 

12. 그 다음, 카스트의 높은 계급에 속했던 사라까-니 브라-흐민(Sarakāni brāhmin)도 있었습니다. 그 브라-흐민은 술을 마시고 자주 취하곤 했습니다. 베다 브라-흐민(vedic brāhmin)들인 그의 친척들은 그들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그와 의절하였습니다. 그도 또한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했지만, 그 성취 후에도 음주습관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위에서 언급한) 마하-나-마(Mahānāma)는 붓다께 사라까-니(Sarakāni)가 어디에 태어났는지 여쭈었습니다. 붓다께서는 사라까-니(Sarakāni)는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했으며 천신(데와, deva)으로 태어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라까-니의 친척들은 이 말씀을 듣고 경멸적으로 크게 웃었으며, “사라까-니가 소따-빤나라면, 우리 모두는 아라한이다”라고 표명했습니다.  마하-나-마(Mahānāma)가 돌아가 이것을 붓다께 보고했을 때, 붓다께서는 그 무지한 브라-흐민들은 겉으로 드러난 것을 근거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설명은 ‘Paṭhamasaraṇānisakka Sutta (SN 55. 24)’에 있습니다.

 

  • * 물론, 그 일화는 부도덕한 활동을 계속하더라도 여전히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알코올을 마시는 것 그 자체는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부도덕한 행위) 중 하나가 아니지만,  술을 많이 마시면 다사 아꾸살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라까-니(Sarakāni)는 아마도 그의 오랜 습관을 어느 정도 지속했지만 ‘술에 취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소따-빤나는 강한 탐욕(로-바, lōbha)만 제거합니다. 까-마 라-가(kāma rāga,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음)는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서만 제거됩니다.

  • * 마하-나-마 숫따(Mahānāma sutta, 위에서 언급한 ‘마하-나-마’에게 설한 경)에서 붓다께서는 소따-빤나의 실라(sila, 도덕적 행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pānātipātā pativiratō hōti, adinnādānā pativiratō hōti, kamēsu micchācārā pativiratō hōti, musāvādā pativiratō hōti, surāmēraya majjapamā dattānā pativiratō hōti.”입니다. 오계의 깊은 의미를 깨닫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오계 – 붓다께서 의미하신 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위에서 ‘빠띠위라또- 호-띠(pativiratō hōti)’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좋아하여 하지는 않는다’를 의미합니다. 결국, 소따-빤나(Sotāpanna)는 (‘아리야 자-나’에 도달하지 않았다면) 아직 까-마 로-까(kāma lōka) 중 높은 영역에서는 벗어나지 못했으며, 사악처에서만 벗어났습니다.

 

‘아스미 마-나’는 아라한 단계에서만 제거됨

 

13. 어떤 사람들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나(me)’라는 감각 또는 ‘자기(self)’라는 감각을 제거하려고 힘쓰지만, 그것은 아라한뜨(Arahant) 단계에서만 제거됩니다.

 

  • * 31 영역에 묶여 있는 한, ‘자기(self)’라는 감각은 있습니다. 이 ‘가띠(gati)’는 위 #4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아빠-야(apāya)에 재탄생하는 것에 적합한 가띠(gati)에서 시작하여 단계적으로 제거됩니다. 아나-가-미(Anāgāmi)라도 ‘자기’라는 감각이 남아 있지만,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들러붙음은 대부분 없을 것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고는 대학 시험에 합격할 수 없습니다.

  • * 각 단계를 통해 체계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닙바-나로 가는 방법 - 아-사와의 제거’ 포스트와, ‘4단계의 닙바-나에 대한 조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31영역의 이 물질 세계에 묶여있는 한, ‘자기(self)가 있다’거나 ‘자기가 없다(no-self)’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잘못되고 극단적인 견해입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아닛짜, 둑카, 아낫따(Anicca, Dukkha, Anatta)’ 서브 섹션을 참조하세요.

  • *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에 대한 잘못된 개념으로 하는 모든 명상은 [이해가] 성장하지 않습니다. 올바른 유형의 명상을 하고 있다면, 자신의 이해가 성장됨을 느낄 수 있습니다. ‘13. 소따빤나 단계를 위한 깜맛따나(암송)’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부처님만이 다른 사람의 성취를 알 수 있음

 

14. 마지막으로, 부처님만이 다른 사람이 막가 팔라(magga phala)에 도달했는지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과] 성취를 선언하는 것이 성스런 목적에 도움이 될 때, 그 자신의 성취를 스스로 선언하는 사람의 예가 많이 있습니다.

 

  • * 띠삐따가(Tipiṭaka)에 따르면, 처음 4번의 불교 결집 모임(담마 상가-야나-,  Dhamma Sangāyanā)에 참가한 자는 모두 아라한이였습니다. 그래서 그 4번의 상가-야나-(Sangāyanā)에 참가한 수천명의 아라한들은 모두 스스로 자신이 아라한임을 선언했음에 틀림없습니다.

  • * 아난다 존자는 첫번째 상가-야나-(Sangāyanā) 바로 전날 밤에  아라한과에 도달하셨습니다. 존자는 (신통력으로) 하늘을 날아서 결집 모임 장소에 와서 열쇠 구멍을 통해 내부 홀에 들어가셨습니다. 존자는 자신의 성취를 다른 아라한들이 어떤 의심도 가지지 않도록 그렇게 하셨습니다.

  • * 아라한들이나 붓다께서 그런 초능력 행위를 하는 경우는 비교적 적습니다. 아난다 존자의 아라한과 성취에 대해서는 다른 아라한들이 의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첫번째 상가-야나-(Sangāyan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따-빤나 아누가-미와 소따-빤나', ‘소따-빤나 막가/팔라를 얻기 위한 4가지 조건’, 및 ‘소따빳띠 앙가 - 소따-빤나의 4가지 특질’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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