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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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삭까-야 딧티 ㅡ '세상의 결실없는 본질을 보지 못함'

     

    원문: Bhāvanā (Meditation) 섹션의 ‘Sakkāya Diṭṭhi – “Not Seeing the Unfruitful Nature of the World”’ 포스트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는 감각적 즐거움이 유익하고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잘못된 견해로 흔히 해석됩니다. 더 심오한 측면은 심지어 중립적인 감각 입력조차도 외부 세계의 실재를 왜곡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늘은 실제로 파란색이 아니며, 원자는 대부분 ‘빈 공간’이므로 강철과 다이아몬드조차도 실제로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처럼 고형이지 않습니다. 삭까-야 딧티는 이런 잘못된 결론까지 포함합니다. 

     

    2024년 6월 29일 작성; 2026년 3월 21일 재작성

     

    ‘큰 그림’

     

    1. 사성제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요약하는 한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i) 재탄생 과정에는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훨씬 더 많고, (ii) 그것의 근본 원인은 세간적 즐거움에 대한 들러붙음(땅하-)이며, (iii) 감각적 즐거움이 기만적이고 ‘마음이 만든’ 것임을 깨달음으로써(즉, 아윗자-를 극복함으로써) 땅하-는 극복될 수 있고, (iv) 그것을 하는 길은 성스런 팔정도를 따르는 것이다. 

     

    • * 따라서, 재탄생 과정에서 고통의 근본 원인은 여러 감각 입력(아-람마나)에 들러붙는 경향입니다. 다음은 우리가 좋아하는(즉, 라-가로) 것들 뿐만 아니라 싫어하는(즉, 도-사로) 것들과 중립적으로(즉, 모하로) 인식하는 것들에 들러붙는(땅하-) 것을 강조하는 단순화된 분석입니다.

    • * 다섯 가지 육체 감각은 시각 대상, 소리, 맛, 냄새, 및 신체 감촉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것들의 일부는 기쁨과 행복을 가져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추구하고 ‘우리를 방해하는’ 다른 것들을 피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탐함(라-가) 또는 성냄(도사)를 통해 그런 감각 경험에 들러붙습니다(땅하-). 그 수카 또는 둑카 웨다나-조차도 약한 마나빠(manapa) 또는 아마나빠(amanapa)로 시작됩니다. 우리의 무지(아윗자-) 때문에 그것들이 (‘뿌라-나 깜마’ 단계의) 강한 느낌으로 구축되는데, 이는 ‘경험된 앗사-다(감각적 즐거움)는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 포스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먼저 그 포스트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 우리는 무지(아윗자-)로 인해, 아둑카마수카 웨다-나(adukkhamasukha vedanā), 즉 중립적인 웨다나-로서도 들러붙습니다(땅하-). 이 매우 중요한 측면은 아래 #4에서 논의하겠습니다.

     

    ‘까-마 산냐-’의 역할

     

    2. 앞서 깊게 논의한 바와 같이, 우리의 감각 경험은 속이고 있습니다. 감각 경험은 외부 세계의 루-빠(시각 대상, 소리, 맛, 냄새, 및 감촉)을 정확하게 묘사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외부 세상에는 ‘다채롭거나 맛있거나 마음을 즐겁게 하는 다른 것들이 없습니다. 그런 ‘인상’ 즉, ‘잘못된 인식/까-마 산냐-’는 마음 자체에 자동적으로 생겨납니다. ‘루-빠 사무다야 ㅡ 마음에 의해 다채로운 세상이 창조된다’를 참조하세요.   

     

    • * 그러한 관찰은 붓다께서 (색깔, 음색, 맛, 냄새, 또는 ‘유쾌한/불쾌한’ 감촉이 없는 외부 루빠에 기반하여)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형된/꾸민 루-빠의 아닛짜 본질이라고 부르신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아닛짜는 '마음이 만든' 앗사-다가 본질없다는 것을 의미한다’을 참조하세요.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인간의 삶은 무색채의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잘못된 인식/까-마 산냐-’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 * 최근 이 주제에 대해 많은 포스트를 올렸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포럼에서 자유롭게 질문해 주세요. 현대 과학은 이제 외부 루-빠에는 색깔, 음색, 맛, 냄새, 또는 ‘유쾌한/불쾌한’ 감촉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예를 들어, ‘인식(산냐-)의 환상 ㅡ 이는 과학적 합의(의견 일치)다’를 참조하세요.

    • * 위 관찰 내용은 또 다른 중요한 함의를 지닙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당연하게 여기는 어떤 경험들도 환상입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는 색깔이 없으므로, 우리가 인식하는 ‘푸른 하늘’과 ‘초록 잔디’는 실제가 아닙니다. 둘 다 실제로는 색깔이 없습니다. 아래 #4를 참조하세요.  

     

    들러붙음은 둑카 웨다나-에 기반한다

     

    3. 위 #1에서 가리켜 보였듯이, 우리는 세상의 ‘싫어하는 것들’에 성냄으로 들러붙습니다. 이것이 들러붙음(땅하-)의 두 번째 측면입니다. 사람이나 사물이 우리의 앞길을 방해할 때, 우리는 그것들을 싫어하게 되는데, 하지만 그것들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우리 마음은 둑카 웨다나-를 생성합니다.  

     

    • * 그것은 우리 마음이 그런 ‘싫어하는 것들’에도 들러붙는다는 뜻입니다. 마음은 그것들을 없애거나 피하고 싶어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다시 말해, 마음은 싫어하는 것을 통해 들러붙습니다. 마음은 그 적을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 * 그것이 땅하-의 두 번째 측면입니다.

    • * 그러므로, ‘까-마 라-가’와 ‘빠띠가’ 또는 ‘도사(싫어함)’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나-가-미 단계에서 ‘까-마 라-가 상요자나(kāma rāga saṁyojana)’를 제거하면 ‘빠띠가 상요자나(paṭigha saṁyojana)’도 자동적으로 제거됩니다.

     

    들러붙음은 중립 웨다나-에 기반한다

     

    4. 우리는 ‘좋아함’과 ‘싫어함’으로(‘수카 웨다나-’ 또는 ‘둑카 웨다나-’로) 들러붙는 것 외에, 중립 웨다나-(아둑카카수카 웨다나-)로도 들러붙습니다. 이것이 들러붙음(땅하-)의 세 번째 측면입니다

     

    • * 세 번째 유형의 중립 웨다나-는 다음과 같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뿌툿자나(보통 인간)가 푸른 하늘이나 단단한 강철 덩어리를 볼 때, 그들은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 * 푸른 하늘을 보는 것과 같이, (중립 웨다나-를 생성하는) ‘중립적인 사건’을 생각해 보세요. 마음은 하늘이 실제로 파랗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만, 그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색깔은 (까-마 산냐-로 인해) 마음이 만든 것이다’를 참조하세요. 우리는 육체나 강철 덩어리가 ‘단단하다’고 인식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의 들러붙지 않음은 요니소 마나시까-라에 기반한다’의 #11을 참조하세요. 두 경우에, 마음은 그 사건에 ‘가치’를 부여합니다. 다시 말해, 그것을 참으로 받아들입니다. 

    • * 비록 마음이 그런 ‘잘못된 결론’으로 ‘나와 깜마’ 단계에 이르지는 않더라도, 그 무지는 ‘뿌라-나 깜마(초기 깜마)’ 단계를 시작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여전히 오염됩니다.

     

    뿌툿자나는 삭까-야 딧티로 들러붙는다(땅하-)

     

    5. 땅하-(taṇhā)라는 낱말은 ‘곳(자리)’을 뜻하는 ‘탄(thán)’과 ‘융합됨/용접됨 또는 부착됨’(싱할라어로는 හා වීම)을 의미하는 ‘하(hā)’가 합쳐진 것입니다. taṇhā의 ‘tan’은 ‘thunder’에 있는 ‘thun’처럼 발음되는 것에 유의하세요. ‘땅하- ㅡ 탐함과 미워함과 미혹함을 통해 어떻게 들러붙는가?’을 참조하세요.

     

    • * 따라서, 땅하-(taṇhā)는 세 가지 유형의 웨다나- 모두에서 발생됩니다. 이 세 가지 유형의 느낌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성스런 팔정도를 길러야 합니다. ‘Vedanā Sutta (SN 45.29)’를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뿌툿자나는 아윗자-로 (세 가지 유형의 모든 웨다나-에 들러붙음에 기반하여) 항상 모든 감각 입력에 들러붙고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을 시작합니다. 이는 또한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를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 가지 유형의 모든 웨다나-에 대한 들러붙음은 마음이 각각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러한 잘못된 견해는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입니다.

    • * 따라서, 뿌툿자나는 언제나 아누소따가-미(anusotagāmi)(재탄생 과정의 흐름에 따라가는 자)입니다.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와 그와 관련된 다른 두 가지 딧티인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āmāsa)와 위찌낏차-(vicikicchā)를 버림으로써 소따빤나(Sotapanna)이자 빠띠소따가-미(paṭisotagāmi)가 됩니다. ‘빤쭈빠-다-낙칸다의 성장 ㅡ 아누소따가-미’와 ‘빠띠소따가-미 ㅡ 사띠빳타-나 부미와 닙바-나를 향해 감’를 참조하세요.

     

    땅하-는 까-마 산냐-로 인해 일어난다

     

    6. 우리의 오염된/잘못된 생각, 말, 행동은 감각 입력(아-람마나)에 기반하여 발생하는데, 이는 모든 감각 경험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rūpaṁ attato samanupassati’ 구절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아래를 참조하세요.

     

    • * 그러한 결론은 ‘왜곡된 산냐-’, 즉 ‘까-마 산냐-’에 기반합니다.

    • * 외부 루-빠를 경험할 때, 마음은 까-마 산냐-에 기반하여 외부 루-빠에 대한 그 자체의 버전을 만듭니다. 앞서 논의했듯이, 사과는 붉은 색깔이나 단맛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몸 안에 내재된 까-마 산냐-를 통해 색깔과 맛을 경험합니다.

    • * 그 까-마 산냐-는 뿌툿자나에게도 처음에는 약한 들러붙음만 촉발시킵니다. 그러나 끊어지지 않은 상요자나의 수와 그 순간에 우세한 가띠에 따라, 들러붙음은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당히 커질 수 있을 것입니다. 들러붙음이 ‘나와 깜마’ 단계에 이를 정도로 강해지면, 뿌툿자나는 들러붙음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때쯤이면, 빠띳짜 사뭅빠-다의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 단계가 이미 완료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루-빠 우빠-다-낙칸다(rūpa upādānakkhandha)의 성장은 그 강한 들러붙음에 대해 ‘나와 깜마’ 단계에서 계속됩니다.      

    • * 루-빠 우빠-다-낙칸다(rūpa upādānakkhandha)의 성장에 기반하여(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음이 만든 웨다나-(삼팟사 자- 웨다나-)도 증가합니다. 즉 웨다나- 우빠-다-낙칸다(vedanā upādānakkhandha)도 성장합니다. 사실, 모든 다섯가지 우빠-다-낙칸다는 주어진 감각 경험으로부터 함께 발생합니다.

     

    ‘깜마 니로다’(깜마 축적의 멈춤)과 ‘뿌라-나 깜마’ 단계

     

    7. 결정적인 점은 모든 깜마 축적은 ‘뿌라-나 깜마’ 단계의 초기에 ‘까-마 산냐-’에 대한 약한 들러붙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 * 초기의 들러붙음이 멈춰지지 않는 한, 강력한 깜마가 쌓이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 * 이 때문에 닙바나를 얻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 * ‘깜마 니로다 ㅡ 이것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을 참조하세요.

    • * 또한 빤짜 우빠-다-낙칸다(pañca upādānakkhandha)에 대한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다섯 무더기(오온) - 소개’을 참조하세요. 

     

    삭까-야(또는 사쓰까-야) = 빤쭈빠-다-낙칸다

     

    8. ‘사쓰(sath)’는 ‘결실있는’ 또는 ‘중대한’, 또는 적어도 ‘의미있는’이라는 뜻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까-야(kāya)’는 무더기(더미)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그것은 다섯 무더기, 즉 빤짝칸다(pañcakkhandha)를 지칭합니다.

     

    • * 어떤 것이 (라-가에 기반하여) 결실있는 것으로 인식되면, 우리는 그것을 더 얻기를 원할 것입니다. 싫어하는 대상의 경우에, 마음은 여전히 그것에 ‘가치’나 ‘의미’(도사에 기반함)를 부여하고, 그것을 없앨 방법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푸른 하늘을 보는 것과 같은) 중립적인 상황에서는, 마음은 모하(moha)에 기반하여 그 사건이 ‘의미있다’(하늘이 실로 파랗다는 것)고 믿습니다. 이 세 가지 모두 ‘사쓰(sath)’에 속합니다. 

    • * 따라서, ‘사쓰까-야(sathkāya)’는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사쓰까-야’는 ‘빤짝칸다가 결실있다/중대하다/의미있다’는 뜻입니다. 

    • * 또한, ‘사쓰까-야(Sathkāya)’는 ‘삭까-야(Sakkāya)’로 운이 맞춰집니다. 따라서, ‘삭까-야(Sakkāya)’는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를 뜻합니다.

     

    삭까-야(Sakkāya)의 정의는 ‘Sakkāya Sutta (SN 22.105)’에 있는데, “Katamo ca, bhikkhave, sakkāyo? Pañcupādānakkhandhātissa vacanīyaṁ. Seyyathidaṁ—rūpupādānakkhandho, vedanupādānakkhandho, saññupādānakkhandho, saṅkhārupādānakkhandho, viññāṇupādānakkhandho.”입니다.

     

    번역: “삭까-야는 빤쭈빠-다-낙칸다, 즉 루-뿌빠-다-낙칸다, 웨다누빠-다-낙칸다, 산뉴빠-다-낙칸다, 상카-루빠-다-낙칸다, 윈냐-누빠-다-닥칸다다.”

     

    삭까-야의 생성은 ‘마음이 만든 루빠’에 들러붙음(땅하-)에서 시작된다

     

    9. 삭까-야(빤짜 우빠-다-낙칸다)의 생성은 ‘마음이 만든 루빠’에 들러붙음(땅하-)에서 시작됩니다.

     

    • * ‘마음이 만든 루-빠’에 들러붙음을 바탕으로, 마음은 감각 대상을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기대(윈냐-나)와 함께 (아비)상카-라의 생성으로 이어집니다.

    • * 더욱이, 논의한 바와 같이 ‘마음이 만든 루-빠’는 내재된 ‘까-마 산냐-’에 기반하여 발생합니다.

    • * 그것은 다음 숫따에서 확인됩니다.

     

    삭까-야 딧티 ㅡ 위의 핵심 개념을 모름

     

    10. ‘Sakkāyadiṭṭhi Sutta (SN 22.155)’는 “rūpe kho, bhikkhave, sati, rūpaṁ upādāya, rūpaṁ abhinivissa sakkāya diṭṭhi uppajjati”, 즉 “루-빠에 집중하고 그것에 우빠-다-나를 생성하고(rūpaṁ upādāya) 그 루-빠/아-람마나에 매이는(abhinivissa) 때에, 삭까-야 딧티가 일어난다.”고 설명합니다.

     

    • * 그 다음,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에 대해 동일한 구절이 반복됩니다.

    • * 그 모두는 루-빠(rūpa)에 들러붙음으로 시작된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 * 동일한 숫따가 (표식 1.9에서 시작하여)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의 아닛짜 및 둑카 특성을 이해할 때, 그 잘못된 견해가 없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소따빤나 단계는 ‘아낫따’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11. 이 숫따에서는 ‘아낫따 특성’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세요. ‘아낫따 특성’은 아라한 단계에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 * 우리가 알다시피, 다섯 수행자는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ppavattana Sutta)를 듣고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했지만, 아낫따 락카나 숫따(Anatta Lakkhana Sutta)를 듣고 ‘아낫따(anatta) 특성/본질’을 깨달음으로써 아라한과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아닛짜(anicca) 특성이 둑카로 이어지게 한다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됩니다.

    • * 더욱이,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세상의 즐거움’이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이 필요합니다. ‘아닛짜는 '마음이 만든' 앗사-다가 본질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를 참조하세요.

     

    ‘앗따또 사마누빳사띠’는 아낫따 특성의 앗따/아낫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12. ‘Dutiyaisidatta Sutta (SN 41.3)’는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다르지만 관련된 방식으로 정의하는데, “Idha, gahapati, assutavā puthujjano ariyānaṁ adassāvī ariyadhammassa akovido ariyadhamme avinīto, sappurisānaṁ adassāvī sappurisadhammassa akovido sappurisadhamme avinīto rūpaṁ attato samanupassati, rūpavantaṁ vā attānaṁ, attani vā rūpaṁ, rūpasmiṁ vā attānaṁ.”입니다.

     

    • * 이 구절은 삭까-야 딧티와 '마음이 만든 루-빠' 포스트에서 논의했습니다.

    • * 거기서 논의된 바와 같이, 들러붙음은 네 가지 레벨로 일어나는데, 가장 강한 것(rūpaṁ attato samanupassati)으로 시작합니다. 네 번째(rūpasmiṁ vā attānaṁ)는 최소의 끌림을 나타냅니다. 그 네 단계는 또한 개인(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한 잘못된 견해를 가짐)과 감각 입력(아-람마나)의 유형에 따라 달라집니다.

    • * 그 논의는 오직 라-가(rāga)와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로 들러붙음에만 초점을 맞추었지만, 도사(dosa)와 모하(moha)를 통한 들러붙음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 * 따라서, 앗따또 사마누빳사띠(attato samanupassati)는 아낫따(anatta) 특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닛짜(anicca) 특성에만 연관이 있습니다. 여기서, 앗따또 사마누빳사띠는 단지 ‘마음이 감각 입력에 부여하는 의미’를 가리킵니다. 아낫따(anatta) 특성은 ‘루-빵 앗따또 사마누빳사띠(rūpaṁ attato samanupassati)’를 취한 결과입니다. 

     

    비유

     

    13. 삭까-야 딧티삭까-야 사이의 그 차이에 대한 비유를 들겠습니다.

     

    • * 건강에 악영향의 의학적 증거를 조사한 후에, 술중독자는 음주가 건강 문제와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삭까-야 딧티의 제거에 유사함). 따라서, 음주에 대한 어떤 잘못된 견해도 더 이상 거기에 없습니다.

    • * 그러나, 그 사실을 이해한 후에도(즉, 잘못된 견해의 제거 후에도), 술중독자는 여전히 술을 마시는 선천적 갈망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네, 그것이 나에게 나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것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갈망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주 습관을 극복하기가 그렇게 힘듭니다.

    • * 음주가 즐거운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그 선천적 인식은 우리가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고자 하는 고유한 갈망과 유사합니다. 술중독자는 그 습관적 음주를 극복하기 위해 음주의 해로운 결과를 지속적으로 숙고해야 합니다.

    • * 동일한 식으로, 소따빤나는 아나-가-미 단계로 진전하기 위해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는 해로운 결과를 지속적으로 숙고해야 합니다.

    • * 소따빤나의 마음이 ‘까-마 산냐-(kāma saññā)’를 극복하여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에 있을 때 그 숙고는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그 때문에 소따빤나는 아나-가-미 단계에 이르기 위해 사띠빳타-나를 육성해야 합니다. ‘사띠빳타-나 부-미 ㅡ 로까 산냐-에서 벗어남’를 참조하세요.

     

    삭까-야 딧티를 제거하는 방법

     

    14. ‘Sakkāyadiṭṭhipahāna Sutta (SN 35.166)’는 삭까-야 딧티를 제거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 * 숫따는 “Cakkhuṁ kho, bhikkhu, dukkhato jānato passato sakkāyadiṭṭhi pahīyati”, 즉 “짝쿠(cakkhu)가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듣고 이해(jānato passato)함으로써 삭까-야 딧티를 제거한다.”라고 말합니다.

    • * ‘짝쿠’는 ‘육체적 눈’, 즉 ‘짝쿠 인드리야’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짝쿠 인드리야를 ‘짝쿠 아-야따나(짝카-야따나)’로 사용하여, 아윗자-로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 루-빠, 짝쿠 윈냐-나, 짝쿠 삼팟사, 및 삼팟사ㅡ자-ㅡ웨다나-에 대해 동일한 구절이 반복됩니다. 

    • * 삭까-야, 즉 빤쭈빠-다-낙칸다는 항상 ‘까-마 산냐-’에 기반한 외부 루-빠에 대한 잘못된 특징 규정’으로 시작된다는 것에 유의하세요. ‘산냐-니다-나- 히 빠빤짜 상카- ㅡ 부도덕한 생각은 '왜곡된 산냐-'에 기반한다’와 ‘왜곡된 산냐-(산자-나-띠)에 속음 ㅡ 들러붙음(땅하-)의 기원’을 참조하세요.

    • * 또한, 위 구절에서, 우리는 ‘지혜로 배우고 이해함’이라는 뜻의 ‘자-나또 빳사또(jānato passato)’라는 용어를 접합니다. ‘ '자-나또 빳사또'와 아-자-니야 ㅡ 기억해야 할 결정적인 말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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