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살인자가 한 시간 만에 소따-빤나로 ㅡ 어떻게 가능할까?
원문: Buddha Dhamma ㅡ Systematic 섹션의 ‘Murderer to a Sotapanna in an Hour – How Is That Possible?’ 포스트
만약 마음이 이전의 어떤 감각 입력에 집중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감각 입력이 들어오면 마음은 초기 까-마 다-뚜 단계로 재설정됩니다. 그러면 마음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고, 심지어 막가 팔라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앙굴리말라가 살인자에서 아마 한시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내에 소따-빤나로 된 방식입니다. 이는 단지 세계관의 변화만으로도 가능하지만, 그 변화는 엄청난 것입니다.
2026년 8월 8일 작성
마음은 빠르고 급격하게 변화할 수 있다
1. ‘소따-빤나 단계 ㅡ 본질적인 개념과 불필요한 개념’ 포스트의 말미에서 저는 아무리 부도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도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을 파악하면 단시간에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가리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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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유는 마음이 매우 빠르게 ‘재설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순간에는 살인자의 마음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아-람마나(새로운 감각 입력)가 들어오면, 마음은 순식간에 소따빤나의 마음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소따-빤나는 살인은 물론이고 다른 이를 다치게 하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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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굴리말라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손에 칼을 들고 부처님을 쫓아가 죽이거나 손가락을 잘라 손가락 목걸이에 추가하려고 했습니다. ‘앙굴리말라 이야기 - 붓다 담마에 대한 많은 통찰’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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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따는 낱말 하나하나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보통 일어난 일과 결과, 그리고 많아야 몇 가지 핵심적인 담마 개념만을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Aṅgulimāla Sutta (MN 86)’, 또는 ‘Aṅgulimālattheragāthā’는 앙굴리말라가 어떻게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거의 제공하지 않습니다. 단지 대화가 시작되었고, 앙굴리말라가 칼을 버리고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했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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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숫따는 그게 전부이며, 앙굴리말라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한 후 빅쿠가 되기를 요청했고 그 자리에서 출가했다는 내용이 뒤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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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이 포스트에서는 마음의 그런 급격한 변화가 그토록 빠르게 일어날 수 있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부처님의 세계관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에게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소따-빤나 단계는 ‘까-마 앗사-다’의 기원과 위험성을 파악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2. 앙굴리말라는 오계나 팔계를 지키며 삶을 살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에게 일어난 유일한 것은 부처님의 세계관, 즉 그런 ‘감각적 즐거움’은 ‘까-마 로까 산냐-’를 통해 만들어진 ‘마음이 만든 환상’이라는 것을 파악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사소한 변화가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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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단지 그 이해에 기반하여 자동적으로 도덕적 행위로 전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소따-빤나가 삼마- 딧티로 바뀐 후에는 ‘아빠-야가-미 행위’를 하는 생각이 마음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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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라를 기르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적절한 조건하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필요한 실라를 쌓았습니다. 실라, 즉 ‘도덕적 행위’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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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해, 어떤 사람들은 단지 살생이나 도둑질 등을 하지 않는 것만을 도덕적 행위(실라)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실행하지 않지만) 그 사람에게 ‘타인을 해치려는 생각이나 음란한 행위를 하려는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도덕적 행위’, 즉 ‘실라(sila)’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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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의 마음속에는 깨지지 않는 도덕적 행위(아리야깐-따 실라)가 영구히 자리잡고 있으며, 그 실라는 다음 생에서도 결코 깨지지 않습니다. 그 아리야깐-따 실라에 필요한 것은 오직 세계관의 변화입니다. 문제는 그 세계관이 ‘믿기 어려운’ 세계관이라는 점입니다. ‘소따빤나의 독특한 세계관’을 참조하세요.
소따-빤나 팔라 순간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실라 육성이 아니라 ‘뿌라-나 깜마’ 단계를 그치는 것이다
3.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기본 개념은 ‘빠띠소따가-미 ㅡ 사띠빳타-나 부미와 닙바-나를 향해 감’에서 개략적으로 설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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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도표는 그 포스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역주: 약간 변경한 것임).
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 ‘Angulimāla Overcoming Kāma Saññā’
4.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의 손가락을 자르려는 의도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 의도가 그의 마음을 ‘나와 깜마(nava kamma)에 이르게 하여 칼을 손에 든채 부처님을 쫓기 시작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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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는 왜 부처님이 천천히 걷고 계신데도 따라잡을 수 없는지 의아해했습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부처님께 멈추라고 외쳤습니다. 부처님께서 자신은 이미 멈춰 섰으니 앙굴리말라도 멈추라고 하시자, 앙굴리말라는 더욱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 다음, 붓다께서는 자신은 깜마 축적을 멈춤으로써 재탄생 과정(윤회)을 멈췄지만, 앙굴리말라는 사람을 죽임으로써 재탄생 과정(윤회)를 길게 늘리고 있다고 설명하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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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의 손가락을 자르겠다는 원래의 목표를 잊었습니다. 그는 즉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칼을 내려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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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PS(빠띳짜 사뭅빠-다)에서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 단계를 거치면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에 이르게 되며,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즉, 마음이 ‘나와 깜마’ 단계에서는 같은 사이클 내에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도표 하단의 화살표는 이러한 점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되돌아 가는 것’이 이 사이클/도표 내에서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이것이 하나의 도표로 특정 개념을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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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몇 가지 도표를 추가하여 더 자세히 설명한 내용입니다(역주: 번역 도표는 위 번역 도표를 참조).
살인자에서 소따-빤나로 사고방식의 변화를 보여주려면 많은 도표가 필요할 것이다
5. 이 말씀으로 인해 앙굴리말라는 위의 도표에서 묘사된 ‘부도덕한 마음성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초점 또는 새로운 아-람마나(ārammaṇa)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마음성향의 점진적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도표가 필요합니다. 마음성향이 바뀔 때, 마음은 ‘까-마 다-뚜(kāma dhātu)’ 단계에서부터 재설정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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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그림의 네 개의 도표는 이 변화를 대락적으로 보여줍니다. 첫 번째 도표(A)는 앙굴리말라의 ‘초기 부도덕한 마음성향’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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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앙굴리말라의 마음은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나와 깜마’ 단계에서 벗어났습니다. 다음 도표(B)는 ‘나와 깜마’ 단계가 사라진 후의 단계를 보여주며, 이는 새로운 ‘까-마 다-뚜’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이는 그의 마음이 ‘도덕적’으로 바뀌었고, ‘나와 깜마’ 단계에서 모든 유형의 새로운 깜마 에너지를 생성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A)와 (B) 사이에는 여러 단계의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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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께서 자신의 세계관을 설명하시자, 앙굴리말라의 마음은 더욱 ‘까-마 다-뚜’ 단계에 가까워졌습니다. 모든 각 도표는 ‘까-마 다-뚜’ 단계에서 시작하지만, 매 사이클마다 점점 더 오염이 줄어든다는 것에 유의하세요.
다운로드/인쇄: ‘Angulimāla Overcoming Kāma Saññ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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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표 (C)는 앙굴리말라의 마음이 바힛다/앗잣따 단계, 즉 ‘까-마 다-뚜’ 단계에 매우 근접한 지점에서 멈춘 결정적인 단계를 보여줍니다. 여기부터, 그의 마음은 ‘단순히 ‘까-마 다-뚜’ 단계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단계를 건너뛰고 모든 유형의 ‘왜곡된 산냐-’도 없는 ‘사띠빳타-나 부-미’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는 ‘Nopariyesanānānatta Sutta (SN 14.8)’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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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띠빳타-나 부-미에 이르는 마지막 단계(D)는 오직 부처님의 세계관을 이해(자-나또/빳사또)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세간의 즐거움’에 들러붙음의 ‘아닛짜 본질’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 앙굴리말라 이야기는 그것이 단시간에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6. 네 개의 도표 각각은 새로운 까-마 다-뚜 단계에서 시작되는 사건들을 보여줍니다. 즉, 각 도표는 하나의 고정된 마음성향이 단 하나의 감각 사건에서 일어나는 것을 설명합니다. 만약 마음이 새로운 감각 사건으로 인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면, ‘까-마 다-뚜’ 단계에서 새로운 과정이 시작되며, 즉 새로운 도표가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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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굴리말라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 그의 마음성향이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몇 분마다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되었고, 그의 마음은 점차 ‘나쁨에서 좋음’으로 바뀌어 부처님의 가르침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 완전한 변화를 보여주려면 위와 같은 도표가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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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도표(A)는 그가 처음 손가락을 자르려는 의도를 가졌던 ‘나와 깜마’ 단계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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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가, 새로운 감각 입력이 마음에 들어와, 새로운 도표(B)가 시작되는데, 이 도표는 나와 깜마 단계까지는 가지 않습니다. 마음이 좋은 쪽의 새로운 마음성향으로 전환하려면 ‘나와 깜마’ 단계 이전에 멈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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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좋은 쪽’의 후속 사건(도표 C)은 단계 1에서 멈추게 되는데, 이때 그의 마음은 더 이상 살인자의 마음성향이 아닙니다. 이 시점에 그의 마음성향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완전히 받아들인 상태입니다. 위 그림에서 도표의 각 쌍 사이에는 여러 개의 도표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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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이어, 그의 마음은 까-마 다-뚜 단계를 건너뛰고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 상황에 해당하는 도표(D)에서 오른쪽 부분 전체(빨간 테두리로 표시된 부분)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 때 그는 소따-빤나 단계를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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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것이 한 시간 안에 일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앙굴리말라의 경우는 특이한 사례였다
7. 물론, 모든 범죄자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앙굴리말라를 만나러 가신 것은 앙굴리말라의 마음을 들여다보시고 그가 가르침을 이해할 능력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앙굴리말라를 비롯하여 아래에 언급된 이들은 전생에 ‘빠-라미따-’(즉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빠-라미따- ㅡ 뿌툿자나가 붓다로 되는 방법’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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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을 뵙고 한 시간 내에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알-라와까, 우빨-리, 그리고 야사의 부모님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바-히야와 야사는 부처님을 뵙고 몇 시간 내에 아라한과에도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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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앙굴리말라의 경우처럼 겉모습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부처님의 세계관을 이해하면 상상할 수 없을만큼 많은 번뇌가 사라진다
8.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부도덕한 행위에 자동적으로 빠지지 않게 됩니다. 이제 이와 관련된 문제를 논의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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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와 뿌툿자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번뇌의 상대적인 양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해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데, 손톱에 올려질 수 있는 적은 흙과 전체 지구에 있는 흙의 상대적 양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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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붓다께서 직접 제시하신 비유이며, 짧은 숫따인 ‘Nakhasikhā Sutta (SN 13.1)’에 나옵니다. 또한 ‘소따-빤나 단계 ㅡ 본질적인 개념과 불필요한 개념’ 포스트의 #8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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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이런 비유를 그저 읽을 뿐, 그 말의 엄청난 의미를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지구 전체의 모래에 대해서는 잠시 잊어버리고, 몇 알갱이의 모래와 에베레스트 산에 있는 모래만 비교해 보세요. 에베레스트 산의 기저부 경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지구 안에는 3억6천만 개에서 36억 개의 에베레스트 산(정상 부분의 모래만 포함한다면 최대 7천2백억 개의 에베레스트 산)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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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하면, 더 잘 시각화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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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면, 밋차- 딧티(삭까-야 딧티를 포함하여 10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가 완전히 제거됩니다. 10가지 아꾸살라 중에서 소따-빤나에게 제거된 유일한 아꾸살라가 이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나머지 9가지 아꾸살라 깜마의 ‘아빠-야가-미(악처로 가는) 강도’까지 제거되므로, 아꾸살라(번뇌)의 99% 이상이 마음에서 사라진 셈입니다. ‘소-따빤나가 제거한 유일한 아꾸살라는 무엇인가?’을 참조하세요.
마눗사쭈띠니라야 숫따 ㅡ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의 어려움
9. ‘Manussacutiniraya Sutta (SN 56.102)’에서, 붓다께서는 빅쿠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셨는데, ‘yo vāyaṁ mayā paritto nakhasikhāyaṁ paṁsu āropito, ayaṁ vā mahāpathavī’ ti’, 즉 ‘내 손톱에 묻은 조금의 흙이 많은가? 아니면 이 거대한 지구의 흙이 많은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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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번에는 붓다께서는 그 비교를 다르게 하시는데, ‘인간으로 죽어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중생은 내 손톱에 묻은 조금의 흙처럼 적지만, 인간으로 죽어 지옥에 재탄생하는 중생은 이 지구 전체의 흙만큼 많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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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인구가 약 80억명이므로, 이 인간 바와(bhava)가 끝날 때 극소수의 사람(뿌툿자나)만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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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붓다께서 살아계실 때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막가 팔라(magga phala)를 성취했습니다. 그 반면에, 부처님이나 다른 성자들이 가르침을 전하지 않는 시대에는 아무도 막가 팔라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위의 수치는 오랜 기간에 걸친 평균치입니다.
10. 붓다께서 위의 두 경우에 동일한 비유를 사용하셨다는 사실은 둘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래 인용한 두 포스트에서 설명했듯이, 뿌툿자나가 짓는 깜마의 대부분은 ‘아빠-야가-미 깜마(apāyagāmi kamma, 악처로 가는 깜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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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살인과 같은 극도로 부도덕한 행위를 해야 아빠-야(악처)에 재탄생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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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다사 아꾸살라(10가지 불선) 중에서 가장 강한 아꾸살라 깜마는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입니다. 여기서 밋차- 딧티에는 삭까-야 딧티도 포함된다는 점에 유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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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10가지 아꾸살라 깜마를 40가지로 확장하시고, 그들 각각이 아빠-야-(악처)에 태어나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깜마의 세부사항 ㅡ 의도, 영향받는 자, 깜마 빠타’의 #11을 참조하세요. 또한 ‘소-따빤나가 제거한 유일한 아꾸살라는 무엇인가?’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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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야-에서 당하는 고통에 대한 긴(자세한) 설명은 ‘Bālapaṇḍita Sutta (MN 129)’에 있습니다.
‘왜곡된 산냐-’는 삭까-야 딧티의 근본 원인이다
11. 그 비교의 엄청난 규모는 앙굴리말라가 ‘지구상의 모든 모래알만큼 많은 번뇌’를 없애고 고작 몇 알의 모래에 해당하는 번뇌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을 때 비로소 분명해집니다! [앙굴리말라의] 그 번뇌의 소멸은 단 한시간 내에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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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 비유는 소따-빤나가 ‘잘못된 세계관’ 또는 ‘삭까-야 딧티’를 버리는 것만으로 얻게 되는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의 엄청난 힘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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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삭까-야 딧티가 ‘왜곡된 산냐-(까-마 로까에 있는 우리에게는 ‘까-마 로까 산냐-)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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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마음은 까-마 로까 산냐-와 함께 까-마 다-뚜 단계에서 '시작'된다’와 ‘사람들은 왜 부도덕한 행을 즐기는가? ㅡ 딧티가 핵심이다’을 참조하세요.
‘왜곡된 산냐-’는 사람들이 ‘감각적 즐거움’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게 만든다
12. 삭까-야 딧티를 비롯한 대부분의 잘못된 견해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 내재된 ‘까-마 로까 산냐-’ 때문에 발생합니다. ‘까-마 로까 산냐-’가 인간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은 다음 사례들을 통해 또다른 방식으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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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보다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부모(또는 다른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한 젊은 커플이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모두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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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 또는 약물 사용의 즐거움’에 중독됩니다. 이는 심각한 질병과 조기 사망으로 이어집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얻은 돈으로 ‘즐거운 삶’을 누리고 싶다는 희망으로 살인을 저지르거나 뇌물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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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인간이 ‘까-마 앗사-다’, 즉 ‘감각적 즐거움’에 눈이 멀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Alagaddūpama Sutta (MN 22)’ 및 ‘Kāma Sutta (Snp 4.1)’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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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중생들은 각자가 속한 영역에서 누릴 수 있는 ‘마음이 만든 즐거움’에 눈이 멀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까 브라흐마(Baka Brahma)는 브라흐마 영역에서 누리는 ‘자-나의 즐거움’에 매료되었습니다. 붓다께서는 그에게 그의 무지를 깨닫게 해 주시려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실제로, 숫따에는 바까 브라흐마가 납득했는지 여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Brahmanimantanika Sutta (MN 49)’을 참조하세요.
’왜곡된 산냐-는 땅하-, 딧티, 및 마-나를 일으킨다
13. 세상 것들에 대한 들러붙음(땅하-), 잘못된 견해(딧티), 그리고 영원한 영혼에 대한 생각(아스미 마-나)은 ‘왜곡된 산냐-’에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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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적인 개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에는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들’이 있다는 인식은 그런 것들을 갈망하게 합니다(땅하-). 그것은 또한 이러한 즐거움을 누리는 ‘영원한 나가 있다’는 생각을 낳고, 이는 ‘아스미 마-나(asmi māna)로 이어집니다. 이 두가지 모두는 세상에 대한 잘못된 견해(딧티), 특히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들이 실제로 세상에 존재한다’는 견해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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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에땅 마마, 에소하마스미, 에소 메 앗따-'띠 ㅡ 땅하-, 마-나, 딧티와 관계’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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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재탄생 과정이 구축되는 토대는 딧티(diṭṭhi)입니다. 이는 특히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로 알려져 있으며, 다른 두 가지 상요자나(위찌낏차-와 실랍바따 빠라-마-사)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왜곡된 산냐-’는 딧티 상요자나를 일으킨다
14. 여기서, 위찌낏차-(vicikicchā)는 부처님의 세계관에 대한 의심을 의미하고,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āmāsa)는 실라(sila)에 따르기만 하면, 즉 까-야, 와찌, 마노 깜마를 행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삼가하기만 하면 닙바-나에 이를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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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뿌라-나 깜마’ 단계를 알지 못하고, 알-라라 깔-라-마와 같은 고대 요기(수행자)들처럼 실랍바따 빠라-마-사에 빠져 있습니다. 아래 #18을 참조하세요. 그들은 실라를 기르는 것(또는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한 후에야 이해/수행할 수 있는 사띠빳타-나와 같은 심오한 개념을 배우는 것)에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왜곡된 산냐-를 통해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배우는 데, 즉 ‘뿌라-나 깜마’ 단계를 이해해야 하는 절실한 필요성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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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소따-빤나가 소따-빤나 팔라와 함께 자동으로 깨지지 않는 ‘아리야깐-따 실라(Ariyakānta Sila)’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소따-빤나는 그 실라를 지키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소따-빤나의 마음은 자동으로 ‘아빠-야가-미 행위’에 빠지지 않도록 방지되기 때문에 그 실라는 자동으로 실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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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 앙가 - 소따-빤나의 4가지 특질’의 #5를 참조하세요.
15. 그 상상할 수 없는 감소는 재탄생 과정의 첫 세 가지 족쇄를 제거함으로써 가능해졌습니다. (삭까-야 딧티를 포함하여) 그 세 가지 제거는 모두 ‘왜곡된 산냐-’로 인해 일어나는 잘못된 견해를 제거하는 것에 기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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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부처님의 세계관과 뿌툿자나인 사람의 세계관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뿌툿자나는 세상이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들(즉, 다채로운 것, 맛있는 것 등)로 가득차 있다고 인식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런 ‘마음을 즐겁게 하는 측면’은 ‘왜곡된 산냐-’를 통해 마음 자체가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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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현대 과학은 부처님의 세계관을 입증했습니다. 예를 들어, ‘'마음이 만든' 인식이 없다면, 세상에는 색깔도 소리도 맛도 냄새도 감촉도 없다’와 ‘왜곡된 인식 ㅡ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을 참조하세요. 그러나, 아무리 많은 증거가 제시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내재된’ ‘왜곡된 산냐-’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까-마 로까에 있는 우리에게는 ‘왜곡된 산냐-’가 ‘까-마 로까 산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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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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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중요한 점은 짧은 시간 안에 마음성향에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변화’를 이루어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16. 소따-빤나 단계는 인간 세상의 어떤 성취(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가 되는 것조차도 마찬가지입니다. ‘Cakkavattirāja Sutta (SN 55.1)’을 참조)보다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막가 팔라를 얻지 못한 모든 천신이나 범천을 포함하여 전체 세상 내에서 가장 높은 영역의 존재 레벨보다도 뛰어납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는 미래에 아빠-야(악처)에 다시 태어날 수 있지만, 소따-빤나에게는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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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성취를 이루는데 필요한 것이 단지 사고방식(세계관)의 변화일 뿐이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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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세계관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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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또한 마음이 ‘참된 본질’을 파악하는 것(즉, ‘야타-부따 냐-나’)을 방해하는 ‘잘못된 견해의 힘’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많은 증거가 제시되더라도, 빤짜 니-와라나(다섯가지 장애)에 덮인 마음은 그 모든 증거를 간과하는(무시하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참고: 왜곡된 산냐-의 영향을 받는 모든 마음은 ‘빤짜 니-와라나’라고 불리는 다섯가지 유형의 장애/방해물에 의해 가려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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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그런 ‘까-마 앗사-다’가 모두 마음이 만든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까-마 앗사-다와 고통은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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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부처님 자신이 붓다가 되신 직후에 깨달으신 것이며, ‘까-마 앗사-다’에 취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세계관’을 가르칠 수 있을 지 의문을 품으셨던 것입니다. ‘Brahmāyācana Sutta (SN 6.1)’을 참조하세요.
17. 다시 말하면, 이것은 철학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과학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세상에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은 없다는 데 동의합니다. ‘'마음이 만든' 인식이 없다면, 세상에는 색깔도 소리도 맛도 냄새도 감촉도 없다’와 ‘인식(산냐-)의 환상 ㅡ 이는 과학적 합의(의견 일치)다’을 참조하세요. 그들은 그런 ‘환상’은 뇌가 만든 것이며, 그것들은 종의 진화에 기인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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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진화론’은 생각/인식이 뇌에서 발생한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이 가정을 검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 문제는 아직 설명되지 않고 해결되지 않은 ‘의식의 난제’입니다. 뇌속의 비활성 물질이 생각과 인식을 만들어낼 수는 없기 때문에 이 문제는 결코 설명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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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록 산냐-가 환상일지라도, 우리는 산냐- 없이는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산냐-는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해 생겨나며, 이를 통해 유정체는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해 보세요! ‘세상은 '마음이 만든' 인식(산냐-)에 따라 작동한다’을 참조하세요. 따라서, 우리는 현명하게 이 두 가지 측면의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인간의 삶은 무색채의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을 참조하세요.
‘뿌라-나 깜마’ 단계의 중요성
18. 요즘 또 다른 문제는 사람들이 뿌라-나 깜마 단계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뿌라-나 깜마는 마음이 깜마를 축적하기 시작하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은 그 단계에서 ‘약하게 오염된’ 상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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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오염의 그 단계는 순식간에 끝나고, 만약 마음이 그 감각 입력에 들러붙으면 ‘나와 깜마’ 단계에 이릅니다. 그때 우리는 감각 입력을 알고 의식적으로 까-야, 와찌, 및 마노 깜마를 짓기 시작합니다.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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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가르침)이 없을 때, 사람들은 오직 ‘나와 깜마’ 단계만 압니다. 그들은 까-야, 와찌, 마노 깜마를 의도적으로 삼가면 자동으로 닙바-나에 이르게 된다고 잘못 믿습니다. 그들은 또한 모든 감각 경험이 ‘깜마 위빠-까’라고 잘못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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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두 가지 가정은 모두 잘못되었습니다. 부처님 이전에도 알-라라 깔-라-마와 같은 고대 요기(수행자)들은 ‘나와 깜마’ 단계를 멈추기 위해 깊은 숲속에 살며 ‘감각적 유혹’에서 떨어져 살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감각적 즐거움을 피할 수 있었고 자-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재탄생 과정에 묶는 ‘윤회 족쇄’(상요자나)를 끊는 것이 아니므로, 미래에 아빠-야-(악처)에 재탄생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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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문에 닙바-나를 얻는 것(소따-빤나 단계부터 시작하여 모든 막가 팔라를 얻는 것)은 부처님만이 발견할 수 있는 ‘뿌라-나 깜마’ 단계를 완전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요약
19. 이 포스트에서 설명하고자 했던 몇 가지 핵심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인간의 마음에만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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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감각 입력이 들어오면 마음은 이전의 감각 입력에 여전히 집중하고 있지 않는 한, ‘거의 순수한 상태’(‘까-마 다-뚜’ 단계)로 ‘재설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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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거의 순수한 상태’에서, 마음은 오염되지 않지만 ‘까마 로까 산냐-’를 지니고 있습니다. 만일 마음에 ‘까-마 라-가 상요자나’가 온전히 남아 있다면, 그것이 아윗자-(avijjā)를 유발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빠띳짜 사뭅빠-다(또는 위 첫 번째 도표에 묘사된 빤쭈빠-다-낙칸다 과정)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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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 다-뚜’ 단계로 재설정되면, 마음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따라(새로운 감각 입력을 따라) 진행할 수 있고, 막가 팔라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앙굴리말라가 부처님의 설명을 통해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한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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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조건만 충족하면 되는데, 바로 세속의(평범한) 세계관을 버리고 부처님의 세계관의 진리를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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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세계관을 이해하면 마음은 까-마 다-뚜 단계를 건너뛰고 모든 종류의 ‘왜곡된 산냐-’에서 벗어난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윗자-는 일어날 수 없고(아누사야와 상요자나가 작용하지 않음), 마음은 오염되지 않은 마음으로 위빠사나-에 전념하여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까-마 다-뚜’ 단계를 건너뛰려면 부처님의 세계관을 이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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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속의(평범한) 세계관은 세상에는 마음을 즐겁게 하는 볼거리, 소리, 맛 등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세계관은 그것은 잘못되었으며, 이러한 것들은 ‘마음이 만든 환상’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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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현대 과학은 부처님의 세계관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였지만, 그런 환상은 뇌가 만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현대 과학의 설명은 부처님의 설명과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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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이 만든 환상’이 어떻게 빠띳자 사뭅빠-다를 통해 일어나는지를 또한 이해햐야 합니다. 현대 과학의 ‘뇌가 환상을 만든다’는 이론은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반면에, 부처님의 ‘마음이 환상을 만든다’는 설명은 깜마의 법칙과 재탄생 과정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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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과학은 ‘의식의 난제’, 즉 느낌과 인식이 어떻게 비활성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진 뇌에서 발생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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