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마음은 까-마 산냐-와 함께 까-마 다-뚜 단계에서 '시작'된다
원문: Buddha Dhamma ㅡ Systematic 섹션의 ‘Mind ‘Starts’ at the Kāma Dhātu Stage With Kāma Saññā’ 포스트
까-마 로까(kāma loka)에서, 마음은 까-마 다-뚜(kāma dhātu)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까-마 산냐-(kāma saññā)는 그 초기 단계에서 자동으로 마음에 내재됩니다. 이 까-마 산냐-는 아윗자-를 유발하여, 모든 감각 입력에 대한 반응으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과정을 시작합니다.
2026년 6월 12일 작성
마음은 오염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된다
1. 붓다께서는 마음이 [처음에] ‘오염이 없는’ 빠밧사라 상태를 가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오염되는 이 과정이 바로 ‘Pabhassara Sutta (AN 1.51)’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전 포스트인 ‘빠띳짜 사뭅빠-다 ㅡ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는 출발점’의 서두에서 이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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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마음을 오염시키는 ‘내재된 촉발자’가 있습니다. 까-마 로까(kāma loka)에 사는 우리에게 그것은 까-마 산냐-(kāma saññ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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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포스트(빠띳짜 사뭅빠-다 ㅡ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는 출발점)에서 언급했듯이, 상윳따 니까-야 제2권에는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많은 개념들이 담겨 있습니다.
까-마 다-뚜 단계는 오염이 없다
2. ‘까-마 로까’에서 모든 감각 경험은 ‘까-마 다뚜’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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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다-뚜(dhātu)’는 어떤 실체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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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윳따 니까-야 제2권 SN 14.1부터 SN 14.10까지의 일련의 숫따에서는 그 촉발자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개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몇몇 숫따만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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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숫따들은 ‘까-마 산냐-’가 마음에 아윗자-를 생성시키는 촉발자라고 가리켜 보입니다. 또한 마음이 단계적으로 오염되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오염된다는 것을 명확히 합니다. 이 단계들은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 초기에 일어납니다. 우리가 이 과정을 의식하게 되는 것은 마음이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에 이르러서입니다. 일반적인 개요는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에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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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 산냐-’의 역할을 논의하기 전에, 마음의 ‘바왕가 상태’에 대해 조금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만약 이 개념이 생소하더라도 염려하지 마세요.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설령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습니다.
마음의 바왕가 상태
3. 마음이 특정한 아-람마나(ārammaṇa)에 초점을 맞추지 않을 때, 마음은 기본적으로 ‘바왕가 상태’에 있습니다. 마음은 비활성 상태(즉, 찟따가 일어나지 않음)이지만, 살아 있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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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잠에 들었거나 무의식 상태일 때, 마음은 ‘바왕가 상태’에 있습니다. 이는 마치 자동차가 중립 기어 상태에 있는 것과 유사한데, 살아있지만 움직이지 않는 상태, 즉 활동적이지 않은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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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어를 넣은 상태가 되면, 자동차는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은 아-람마나(ārammaṇa)(감각 입력)를 통해 활성화되고, 일련의 찟따가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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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람마나를 받기 전에는 마음이 ‘바왕가 상태’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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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마음은 ‘중립 바왕가 상태’에서 ‘활성 초기 상태’(다-뚜 단계)로 아-람마나를 통해 이동합니다.
‘바왕가 상태’에서 ‘까-마 다-뚜’ 상태로 전환
4. 마음은 감각 입력, 즉 아-람마나를 받으면 비활성인 ‘바왕가 상태’에서 활성인 ‘까-마 다-뚜’ 단계로 전환됩니다. 이는 띠삐따까의 상윳따 니까-야 제2권의 다-뚜 상윳따(Dhātu Saṁyutta)의 첫 번째 숫따( ‘Dhātunānatta Sutta (SN 14.1)’ )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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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가지 유형의 루-빠(루-빠, 삿따, 간다, 라사, 폿탑빠, 담마) 중의 하나가 여섯 가지 감각(짝쿠, 소따, 가-나, 지와-, 까-야, 마노)를 통해 와서 상응하는 여섯 가지 유형의 윈냐-나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처음에] 모두 오염이 없는 다-뚜 상태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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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크 주소에 있는 번역에 따르면 이것은 ‘요소의 다양성(dhātu nānattaṁ)’이라고 불립니다. 다양성이란 여섯 가지 감각 기관에서 오는 감각 입력이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시각 대상(광경)은 소리 또는 맛 등과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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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크 주소에 있는 번역에서는 ‘다-뚜(dhātu)’를 ‘요소(element)’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계속해서 ‘다-뚜(dhātu)’라고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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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 다-뚜(kāma dhātu)는 첫 번째 찟따(citta)를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대상을 볼 때, 마음은 짝쿠 다-뚜(cakkhu dhātu), 루-빠 다-뚜(rūpa dhātu), 및 짝쿠 윈냐-나 다-뚜(cakkhu viññāṇa dhātu)로 시작합니다.
‘까-마 다-뚜 단계’는 ‘왜곡된 까-마 산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염되지 않았다
5. 활동하는 마음의 초기 다-뚜 상태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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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쿠, 루-빠, 및 짝꾸 윈냐-나를 수반하는 ‘감각 사건’( ‘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 viññāṇaṁ’ )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짝쿠 인드리야가 경험한 루-빠는 짝쿠 윈냐-나를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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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루-빠’는 눈/뇌에 의해 처리되고, 그 인상은 정신적 몸 / 마노마야 까-야 / 간답바의 짝쿠 인드리야로 전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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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짝쿠 인드리야(짝쿠 다-뚜)가 활성화되고, 그것이 외부 루-빠(루-빠 다-뚜)의 인상을 받아들이며, 초기 짝쿠 윈냐-나(짝쿠 윈냐-나 다-뚜)가 일어납니다.
루-빠 산냐-는 루-빠 다-뚜에 할당된다 ㅡ 여전히 까-마 다-뚜에 있음
6. 위 #5의 논의에 따르면, 초기 ‘다-뚜’ 단계에서 짝쿠, 루-빠, 및 짝쿠 윈냐-나와 관련된 특성값은 다음과 같은데, 짝쿠 다-뚜(오염되지 않은 짝쿠 인드리야), 루-빠 다-뚜(뇌로부터 받은 외부 루-빠의 인상에 대한 인상), 및 짝쿠 윈냐-나 다-뚜(오염되지 않은 짝쿠 윈냐-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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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ññānānatta Sutta (SN 14.7)’는 루-빠 산냐-가 어떻게 자동으로 ‘루-빠 다-뚜 단계’에 할당되는지를 설명합니다. 표식 3.1: 시각 대상에 대응하는 루-빠 다-뚜는 자동적으로 루-빠 산냐-를 생성한다. ‘Rūpadhātuṁ, bhikkhave, paṭicca uppajjati rūpa saññ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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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오염되지 않았는데, 까-마 산냐-는 비록 루-빠의 본질을 왜곡(예를 들어, 색깔을 부여하는 것처럼)시키기는 하지만 오염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에는 라-가, 도사, 모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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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오염되지 않은 다-뚜 단계와 관련된 특성값은 짝쿠 다-뚜(오염되지 않은 짝쿠 인드리야), 루-빠 다-뚜(루-빠 산냐-에 기반한 ‘마음이 만든 루-빠’), 및 짝쿠 윈냐-나 다-뚜(오염되지 않은 짝쿠 윈냐-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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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점은 마음이 아직 오염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단지 ‘루-빠 산냐-’에 속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라한도 사과를 붉은 색깔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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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우리는 마음의 이후 연속적인 오염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까-마 로까로 이동한다 ㅡ 바힛다 윈냐-나가 일어난다
7. 뿌툿자나의 마음은 자동으로 그 ‘마음이 만든 루-빠’에 들러붙습니다. 이 단계는 오직 ‘까-마 라-가 상요자나’의 상태에만 달려 있습니다. 아래 #12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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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단계는 또한 ‘Saññānānatta Sutta (SN 14.7)’의 표식 3.1에 있는 ‘rūpa saññaṁ paṭicca uppajjati rūpa saṅkappo’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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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bbedhika Sutta (AN 6.63)’에 명시된 바와 같이, ‘saṅkappa rāgo purisassa kāmo,’이며, 따라서, 이 단계를 통해 자동으로 까-마 로까에 들어갑니다. 따라서, 이는 ‘나와 깜마’ 단계보다 훨씬 이전, ‘뿌라-나 깜마’ 단계의 아주 초반에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 이전의 요기들이 ‘까-마 라-가 상요자나(kāma rāga saṁyojana)’ 또는 까-마 라-가 아누사야(kāma rāga anusaya)를 마음에서 결코 제거할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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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마음이 오염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오염된 찟따인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의 바힛다 까-야(bahiddha kāya)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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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냐-나는 이제 오염된 ‘바힛다 윈냐-나’ 상태에 있습니다. 여기서 ‘루-빠’는 루-빠 산냐-에 기반한 ‘마음이 만든 루-빠’와 동일하지만, ‘바힛다 단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바힛다 루-빠’라고 불립니다. 짝쿠 인드리야는 여전히 동일한 오염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다음 단계 ㅡ 앗잣따 윈냐-나가 일어난다
8. 이제 그 짝쿠 인드리야가 ‘마음이 만든 루-빠’와 오염된 접촉(삼팟사)을 하여 짝카-야따나(짝쿠 아-야따나)가 됩니다. 이것은 윈냐-나를 ‘바힛다 윈냐-나(bahiddha viññāṇa)’에서 ‘앗잣따 윈냐-나(ajjhatta viññāṇa)’로 더욱 오염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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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단계는 ‘Vedanānānatta Sutta (SN 14.4)’에 있는데, ‘Cakkhu dhātuṁ, bhikkhave, paṭicca uppajjati cakkhu samphasso.’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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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동일한 구절에 명시된 대로 ‘cakkhusamphassa-jā-vedanā’를 생성하는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데, ‘cakkhu samphassaṁ paṭicca uppajjati cakkhusamphassajā vedanā.’입니다.
위의 단계는 모든 감각 입력에 대해 예외없이 일어난다
9. 위 단계는 감각 입력에 관계없이 예외적으로 적용되며, 심지어 좋아함 또는 싫어함을 통해 들러붙음을 유발하지 않는 시각 대상에도 적용됩니다. 풀잎 하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아윗자-를 통해 까-마 로까(kāma loka)로 향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아윗자-는 풀의 ‘푸르름’이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데, 초록색은 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루-빠 산냐-를 통해) 마음이 부여한 것입니다! ‘루-빠 사무다야 ㅡ 마음에 의해 다채로운 세상이 창조된다’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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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의 마음 오염은 ‘짝쿠삼팟사 자- 웨다나-(cakkhusamphassa jā vedanā)’가 땅하-(taṇhā)를 생성할 만큼 충분히 강한 경우에만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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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되면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웨-다나- 빳짜야- 땅하-’와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 단계, 그리고 ‘나와 깜마’ 단계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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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분석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제 목표는 ‘뿌라-나 깜마’ 단계를 촉발하여 빠띳짜 사뭅빠-다를 시작하는데 있어 ‘까-마 산냐-’의 역할을 명확히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자세한 단계는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을 참조하세요. 그 포스트의 다음 도표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영문 다운로드/인쇄: ‘Purana and Nava Kamma -2-revision 4’
결정적인 점(핵심)
10. 다음은 결정적인 점(핵심)입니다.
(i) ‘다-뚜 단계’에 있는 모든 실체에는 번뇌가 없습니다. 오직 ‘루-빠’만이 ‘외부 루-빠’에 관해 왜곡됩니다. 사과를 보는 예에서, 사과 자체에는 색깔이 없지만 마음은 ‘붉은 사과’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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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바로 아라한도 사과를 ‘붉은 사과’로 보는 이유입니다.
(ii) 마음은 관련된 ‘까-마 산냐-’에 들러붙을 때만 오염됩니다. 예를 들어, 대상을 보는 경우, 들러붙음은 마음이 ‘루-빠 산냐-(rūpa saññā)’에 들러붙을 때만 일어납니다. 맛을 느끼는 경우에, 들러붙음을 유발하는 것은 ‘라사 산냐-(rasa saññ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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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까-마 라-가 상요자나(kāma rāga saṁyojana)’에 따라 자동으로 결정됩니다. 마음에 그 상요자나가 있으면 자동으로 들러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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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 때문에 아라한과 아나-가-미의 마음만이 까-마 로까(kāma loka)의 어떤 아-람마나(ārammaṇa)에도 들러붙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어떤 종류의 ‘까-마 산냐’에도 ‘속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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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 라-가 상요자나’가 있으면, 까-마 산냐-가 이를 촉발시키고, 마음은 자동으로 ‘상깝바(saṅkappa)’라고 하는 약한 형태의 상카-라를 생성하게 됩니다. 이것만으로도 마음이 오염되고 ‘까-마 바와’로 향하기에 충분합니다. 이제 이를 명확하게 해 보겠습니다.
까-마 다-뚜에서 까-마 바와로 전환에는 깜마(상깝빠)가 필요하다
11. 이 초기 ‘까-마 다-뚜 단계’에서 ‘까-마 산냐-’를 생성한다고 해서 이미 ‘까-마 바와’에 도달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붓다께서 ‘Paṭhamabhava Sutta (AN 3.76)’에서 설명하셨듯이, ‘까-마 바와’에 이르기 위해서는 (산쩨따나-를 가진) 깜마가 발생해야 합니다(즉, 까-마 상깝빠를 생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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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ṭhamabhava Sutta (AN 3.76)’에서는 “Kāmadhātuvepakkañca, ānanda, kammaṁ nābhavissa, api nu kho kāmabhavo paññāyethā’ti?”, 즉 “만약 깜마가 일어나지 않는다면(kammaṁ nābhavissa), 까-마 다-뚜에서 까-마 다-뚜로 전환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라고 묻습니다. 답변은 “아닙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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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깜마는 위 #7의 “kāma saññ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 saṅkappo”에서 발생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깜마는 상카-라(saṅkhāra)와 함께 행해지며, ‘상깝빠(saṅkappa)’는 약한 상카-라를 의미합니다.
까-마 라-가 아누사야 / 상요자나의 중요성
12. 마음 오염의 첫 번째 단계인 ‘rūpa saññaṁ paṭicca uppajjati rūpa saṅkappo’(시각 대상의 경우에, 일반 구절은 ‘kāma saññ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 saṅkappo’임)는 ‘까-마 라-가 상요자나(또는 동등하게는 ‘까-마 라-가 아누사야’)가 그대로 있는 경우에만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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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가-미 단계 아래에 있는(따라서 ‘까-마 라-가 상요자나’가 끊어지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마음은 자동으로 아-람마나(ārammaṇa)에 들러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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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과 아나-가-미(‘까-마 라-가 상요자나’를 제거한 이들)는 마음이 까-마 로까의 어떤 아-람마나에도 들러붙지 않습니다.
요약
13. 까-마 로까에 태어난 모든 이들의 마음은 ‘까-마 산냐-’라는 내장(built-in) 촉발자와 함께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까-마 라-가 상요자나’가 있는 마음은 결코 빠밧사라(오염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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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 입력에 따라 특정한 유형의 까-마 산냐-가 활성화됩니다. 이에 기반하여 마음은 자신만의 ‘외부 루-빠’ 버전을 만듭니다. 이 마음은 결코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루-빠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보는 모든 시각 대상은 외부 세계의 해당 대상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차이가 있으며, 이 차이는 바로 까-마 산냐-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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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의했듯이, 어떤 외부 루-빠에도 색깔이 없습니다. 사과는 ‘빨간색’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하늘은 결코 ‘파란색’이 아니고, 일몰 때 무지개 색깔을 가지지 않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색깔 자체는 마음에 의해 생성된 ‘산냐-(saññā)’입니다. 예를 들어, ‘루-빠 사무다야 ㅡ 마음에 의해 다채로운 세상이 창조된다’와 ‘마하-웨달라 숫따 ㅡ 산자-나-띠, 위자-나-띠, 빠자-나-띠’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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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예로, 사과 역시 본질적인 ‘맛’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맛’은 마음이 만든 ‘라사 산냐-(rasa saññā)’입니다. ‘까-마 산냐-(kāma saññā)’는 여섯 가지 감각 입력 모두에 적용됩니다. ‘인식(산냐-)의 환상 ㅡ 이는 과학적 합의(의견 일치)다’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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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의 관련 포스트들은 ‘붓다 담마 ㅡ 체계화’ 섹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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