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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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 앗사-다와 고통은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

     

    원문: Buddha Dhamma 섹션의 ‘Kāma Assāda and Pain Are Mostly Mind-Made’ 포스트 

     

    뿌툿자나(범부)에게 까-마 앗사-다(감각적 즐거움)는 감각 입력을 받는 순간 순식간에 마음 속에 구축됩니다. 그러나, 가장 강렬한 레벨의 앗사-다(즐거움의 느낌)조차도 아라한도 느끼는 매우 약한 마나-빠(manāpa) 단계에서 시작되며,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둑카 웨다나-(dukkha vedanā)는 약한 아마나-빠(amanāpa)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상요자-나(saṁyojana)의 수가 줄어들수록(막가 팔라가 더 높아짐에 따라) 수카/둑카는 단계적으로 감소하여 아라한 단계에서는 마나-빠/아마나-빠 수준에 도달합니다.

     

    2026년 5월 1일 작성; 2026년 5월 2일 개정

     

    소개

     

    1. ‘Aṅguttara Nikāya (1.48)’에서, 붓다께서는 마음이 우주에서 가장 빠른 실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 링크 주소의 #48을 참조하세요.

     

    • * 짧은 경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마음만큼 빨리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비유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 * 우리의 마음은 까-마 로까(kāma loka)에서 까-마 다-뚜(kāma dhātu) 단계에서 시작합니다. 마음은 여섯 가지 감각 중의 어느 하나를 통해 까-마 다-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섯 가지 가능한 루빠(루빠 루빠, 삿다 루빠 내지 담마 루빠) 중의 하나가 먼저 마음에 인식되어야 합니다. 아래 #3의 도표를 참조하세요.  

    • * 이 포스트에서는 루빠 루빠, 즉 보통 줄여서 루빠라고 하는 루빠에 기반한 시각 사건에 초점을 맞춰 보겠습니다. 여기서, 마음은 먼저 ‘루빠 다-뚜’를 경험합니다. (소리를 받아들이는 경우에는 삿다 루빠를 통해 경험하게 되는 등입니다.)

    • * 그러면 순식간에 마음은 여러 단계를 거쳐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ṇa) 단계에 도달합니다. 이는 어떤 광경(시각 대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이는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nkhara paccayā viññāṇa) 단계인데, 이는 또한 윈냐-나 빳짜야- 나-마루빠(viññāṇa paccayā nāmarupa)를 통해 ‘나-마루빠’를 생성합니다.

    • * 그 광경(생성된 나-마루빠)이 매력적이라면(즉, 까-마 구나를 생성한다면), 그것은 ‘나-마루빠 빳짜야- 살라-야따나’에서 시작하여 끝(자-띠 빳짜야- …)까지 이어지는 빠띳짜 사뭅빠-다의 나머지 단계를 거쳐 발전할 수 있습니다.   

     

    초기 약한 레벨의 ‘마나-빠’

     

    2. 모든 감각 입력은 ‘까-마 로까’에 내재된 ‘까-마 산냐-’를 통해 ‘까-마 다-뚜’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아래 #3의 도표를 참조하세요.

     

    • * 그 ‘까-마 산냐-(kāma saññā)’는 마음 속에 무지로 (i) 좋아하는 감각(manāpa), (ii) 싫어하는 감각(amanāpa), (iii) 중립 감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유형의 예로는 푸른 하늘을 보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좋아함이나 싫어함을 유발하지는 않지만, 하늘이 실제로 파랗지 않기 때문에 마음은 여전히 속고 있는 것입니다. 아래 #16에서 강조된 것처럼 세상의 어떤 대상도 ‘색깔’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 * 이전 포스트, 특히 ‘마하-웨달라 숫따 ㅡ 산자-나-띠, 위자-나-띠, 빠자-나-띠’의 #12부터 #15까지에서 이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거기서 강조했듯이, 그리고 ‘Nibbānadhātu Sutta (Iti 44)’에서 언급되었듯이, 아라한들도 마나-빠(manāpa)와 아마-나빠(amanāpa)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뿌툿자나의 경우, 마나-빠는 훨씬 더 강한 수준의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로 발전할 수 있으며, 아마-나빠는 상황에 따라 격렬한 분노나 극심한 고통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 * 먼저 마나-빠가 어떻게 뿌툿자-나에게 있어 훨씬 더 강력한 ‘까-마 앗사-다’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보겠습니다. 

     

    마음의 오염이 증가함에 따라 앗사-다가 증가하는 단계

     

    3. 포스트 ‘경험된 앗사-다(감각적 즐거움)는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에서 기본적인 개념들을 설명했습니다. 그 포스트의 #9에서, 뿌툿자나에게 있어서 마나-빠가 훨씬 더 강력한 수준의 ‘까-마 앗사-다’로 성장하는데 관련된 핵심 단계들을 논의했습니다. 

     

    • * 거기서 설명된 바와 같이, ‘마음의 오염(그리고 까-마 앗사-다의 생성)’은 ‘한 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지만, 여러 단계를 거쳐 일어납니다. 다음은 그 포스트에서 발췌한 세 가지 주요 단계입니다.  

     

    단계 1: ‘마나-빠(manāpa)’에 들러붙음은 ‘상깝빠(saṅkappa)’로 이어짐: 초기의 마음 오염은 ‘까-마 다-뚜(kāma dhātu)’ 단계에서 ‘까-마 산냐-(kāma saññā)’에 의해 촉발되며,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의 아주 초기 단계에서 ‘마나-빠’(‘좋아함의 기미/흔적’)만을 일으킵니다. 이는 자동적으로 뿌툿자나의 마음에 ‘까-마 상깝빠’를 일으킵니다. 이 지점에서 ‘까-마 라-가(kāma rāga)’가 일어납니다(이것은 ‘saṅkapparāgo purisassa kāmo’ 단계임).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과는 달리, ‘까-마 라-가’는 매우 약합니다. 이는 ‘뿌라-나 깜마’ 단계의 초기에 일어나며, 이후 단계에서 마음이 더 오염되면 ‘까-막찬다(kāmacchanda)’(훨씬 강한 형태)로 자랍니다.

     

    일단 ‘뿌라-나 깜마’ 단계에 들어서면, 뿌툿자나의 마음은 빠르게 ‘바힛다 윈냐-나(bahiddha viññāna)’ 단계를 거쳐 ‘앗잣따 윈냐-나(ajjhatta viññāna)’ 단계에 이릅니다. 이 단계에서도 마음은 더욱 많은 ‘상깝빠’를 생성하고, 자체가 더욱 오염됩니다.

     

    단계 2: ‘까-마 구나(kāma guṇa)’에 들러붙음은 ‘사라 상깝빠(sara saṅkappa)’와 ‘게하시따 소마낫사(gehasita somanassa)’로 이어짐: ‘뿌라-나 깜마’ 단계의 중간에, 마음은 ‘짝쿠윈네이야 루빠(cakkhuviññeyya rupa)’를 생성하고, (그 순간의 마음 성향에 기반하여) 이것이 충분한 ‘까-마 구나’를 가지면 ‘사라 상깝빠’(때때로 ‘게하시따 사라 상깝빠’라고도 함)를 생성하며, 이는 ‘바힛다/앗잣짜 윈냐-나’로 이어진 ‘상깝빠’보다 더 강합니다. 이 단계에서 ‘수카 웨다나-’는 ‘게하시따 소마낫사’로 강화되는데, 즉 앗사-다가 더욱 커집니다.

     

    단계 4(도표에서):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는 강력한 깜마를 축적하기 시작하기 시작하고 ‘앗사-다’를 더욱 증가시킴: ‘나와 깜마’ 단계에 이르면, 마음 오염은 미래 생에서도 위빠-까를 가져올 수 있는 마노, 와찌, 및 까-야 깜마의 원인이 되는 마노, 와찌, 및 까야 상카-라로 훨씬 강해집니다. 이 단계에서 생성된 ‘마음의 즐거움’(소마낫사 웨다나-)은 단계 2와 단계 3에서 생성된 ‘게하시따 소마낫사’보다 더 강합니다.  마음이 ‘참으로 몰입하면’ 그 앗사-다(assāda)는 훨씬 더 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 * 다음 포스트도 그 포스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 ‘Growth of Pañcupādānakkhandha’ 

     

    빤짜깡가 숫따에 정의된 ‘까-마 수카’

     

    4. ‘Pañcakaṅga Sutta (SN 36.19)’에서, 붓다께서는 ‘까-마 수카(kāma sukha)’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셨습니다. “Yaṁ kho, ānanda, ime pañca kāmaguṇe paṭicca uppajjati sukhaṁ somanassaṁ—idaṁ vuccati kāma sukhaṁ.”

     

    • * 번역: “다섯 가지 종류의 감각적 자극(pañca kāmaguṇa)에서 발생하는 수카(sukha)와 소마낫사(somanassa)를 감각적 즐거움(까-마 수카)이라 한다.”

    • * 위 #3의 단계에서 볼 수 있듯이, 이는 단계 2에서 시작되는데, 유혹하는/매력적인 감각 입력에 반응하여 마음에 생기는 빤짜 까-마구나(pañca kāmaguṇa)에 들러붙는 마음으로 시작됩니다.

    • * 여기서, 빤짜 까-마구나(다섯가지 유형의 까-마 구나)는 무지한 마음이 감각 입력(시각 대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및 담마)에 부여하는 ‘마음이 만든 거짓된 매력적인 속성’을 의미합니다. 까-마 구나(kāma guṇa) 때문에, 우리는 세상 것에 들러붙어 그것들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부 사항은 ‘까-마 구나 - 들러붙음(땅하-)의 기원’을 참조하세요.  

     

    까-마 구나는 까-마 로까와 관련된다

     

    5. 더욱이, 막가 팔라(magga phala)가 높아질수록 까-마 구나의 강도가 약해지고,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서는 까-마 라-가 상요자나(kāma rāga saṁyojana)가 제거되면서 완전히 제거됩니다. 그러므로, 아나-가-미 또는 아라한은 까-마 구나를 전혀 생성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마음은 약한 ‘마나-빠’(미미한 좋아함)외에 어떤 추가적인 감각적 즐거움을 생성하지 않습니다.

     

    • * 아라한, 아나-가-미, 사까다-가-미, 소따빤나, 그리고 뿌툿자나가 같은 음식을 먹는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 음식은 뿌툿자나가 여태껏 먹어본 것 중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입니다. 소따빤나는 뿌툿자나보다 덜 맛있다고 느낄 것이고, 사까다-가-미는 훨씬 더 덜 맛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아라한이나 아나-가-미는 그저 ‘미미한 좋아함’(마나-빠)만 느낄 뿐입니다.

    • * 이는 뿌툿자나의 마음이 식사에 대해 가장 강한 까-마 구나를 생성하는 반면, 소따빤나와 사까다-가-미의 마음은 감소된 까-마 구나를 생성하기 때문입니다.

    • * 아라한이나 아나-가-미의 미음은 어떤 까-마 구나도 생성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둘 모두 까-마 라-가 상요자나(kāma rāga saṁyojana)를 제거했기 때문입니다.

    • * 이것이 바로 까-마 앗사-다(감각적 즐거움)가 전적으로 ‘마음이 만든’ 이유입니다! 

     

    고통은 산냐-를 통해서도 느껴진다!

     

    6. 반대 상황에서, 아마나-빠(예, 위협적이거나 거친 말을 들음에 따라 생김)는 뿌툿자나에게는 맹렬한 분노로 이어질 수 있지만, 아라한이나 아나-가-미에게는 아마나-빠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 * 뿌툿자나는 가장 큰  고통을 느낄 것이고, 소따-빤나와 사까다-가-미는 그보다 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반면에, 아라한이나 아나-가-미의 마음은 가벼운 불쾌감(아마나-빠)을 느낄 것입니다.

    • * 이제, 예를 들어 손가락이 잘리는 것과 같은 부상으로 인한 고통을 생각해 보세요. 아라한도 그 고통을 뿌툿자나와 같이 느껴야 할 것 같습니다.

    • * 그러나, 고통 또한 신경계를 통해 발생하는 산냐-(saññā)입니다. 이는 혀 감각기관에 의해 유발된 맛이나 코 감각기관에 의해 유발된 냄새와 다를 바 없습니다. 참고 자료 1의 비디오에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만약 고통이 ‘실재’한다면 모든 사람이 느껴야 할 것입니다. (참고 자료 1의 사람의 경우에는 신경계나 뇌의 결함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만, 아라한은 감각기관이 정상적으로 작동함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세요. #12 및 #13을 참조하세요.)

    • * 이 모든 것은 육체에 부착된 감각기관을 통해 생성되는 산냐-(saññā)입니다! 여섯 감각기관 중의 하나를 통해 들어오는 산냐-는 오직 마나-빠(manāpa), 아마나-빠(amanāpa), 또는 중립 느낌만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증폭된 ‘즐거움/고통’은 그 순간에 마음 자체에서 생성됩니다. 마음을 마나-빠/아마나-빠 단계에 유지하면서 ‘즐거움/고통’으로 발전시키지 않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는 ‘Indriyabhāvanā Sutta (MN 152)’에서 논의됩니다.

     

    아-나-빠-나사띠 ㅡ 아라한에 이르기 위한 세 가지 주요 단계

     

    7. 인드리야바-와나- 숫따를 논의하기 전에, 아-나-빠-나사띠 숫따(MN 128)에 요약된 대로 아라한과에 이르는 세 가지 주요 단계를 요약하겠습니다. (i) 아-나-빠-나사띠로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고, (ii) 마음대로 사띠빳타-나 부-미(‘로끼야 산냐’에서 벗어남)에 들어가기 위해 사띠빳타-나를 육성하고, (iii)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동안, 더 높은 막가 팔라를 얻기 위해 삿따 봇장가(Satta Bojjhaṅga)를 육성합니다.

     

    • * 따라서, 오직 소따-빤나만이 아-나-빠-나사띠의 두 번째 단계인 사띠빳타-나를 육성할 수 있습니다. 인드리야 바-와나-(Indriya Bhāvanā)는 사띠빳타-나의 일부입니다.

    • * 따라서, 소따-빤나만이 ‘Indriyabhāvanā Sutta (MN 152)’에 설명된 인드리야 바-와나-를 육성할 수 있습니다.

    • * 여기서는 이 포스트와 관련된 인드리야바-와나- 숫따의 구절들만 논의하겠습니다. 

     

    인드리야바-와나- 숫따 ㅡ 감각 절제

     

    8. ‘Indriyabhāvanā Sutta (MN 152)’는 인드리야 바-와나-를 육성한 후에 여섯 가지 감각 기능을 통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 * 그것은 눈 기능에서 시작합니다. 표식 4.2부터 4.12까지 구절들의 의미를 요약하겠습니다.

    • * (인드리야 바-와나-를 성공적으로 완성한) 사람이 눈으로 어떤 것을 볼 때, 그의 마음에는 유쾌한 것(마나-빠), 불쾌한 것(아마나-빠), 그리고 중립적인 것이 일어납니다. 이는 마음이 위 #3의 단계 1을 극복하고 ‘까-마 산냐-’로 까-마 다-뚜에 있을 때 일어납니다. 

    • * 마음이 그런 미묘한 느낌조차 극복하면, 마나-빠(manāpa)나 아마나-빠(amanāpa)로부터 벗어난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에 이르게 됩니다. 위 #3의 도표를 참조하세요.

     

    9. 소따빤-나가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갈 수 있고 (그곳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후에야 비로소 위빠사나-를 행하여 더 높은 막가 팔라를  얻을 수 있습니다.

     

    • * 따라서, 인드리야 바-와나-는 사띠빳타-나 수행의 일부입니다.

    • * 사띠빳타-나 부-미에 마음대로 들어가는 능력을 얻게 되면, 소따-빤나는 삿따 봇장가(보통 ‘깨달음의 일곱가지 인자’로 번역됨)를 육성하여 더 높은 막가 팔라를 얻을 수 있습니다. 

    • * ‘아-나-빠-나사띠 숫따 ㅡ 완전한 개요’에서 아-나-빠-나사띠 숫따의 세 가지 주요 단계를 요약했습니다.

     

    고통/분노의 경험과 관련된 구절들

     

    10. 이제, 예를 들어, 부상으로 인한 고통의 경험과 관련된 구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 * 이는 표식 8.1부터 8.11까지의 구절에서 논의되며, 위 #8에서 요약된 눈 기능에 대한 내용(표식 4.2부터 4.12까지)과 유사합니다. 

    • * (바-와나-를 성공적으로 완성한) 사람이 몸으로 감촉을 느낄 때, 그의 마음에는 유쾌한 것(마나-빠), 불쾌한 것(아마나-빠), 그리고 중립적인 것이 일어납니다. 이는 마음이 단계 1을 극복하고 ‘까-마 산냐-’로 까-마 다-뚜에 있을 때 일어납니다. 

    • * 마음이 그런 미묘한 느낌조차 극복하면, 마나-빠(manāpa)나 아마나-빠(amanāpa)로부터 벗어난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에 이르게 됩니다.

     

    11. 그러나, 마나-빠/아마나-빠 레벨을 넘어서지 못하는 그런 경험은 소따-빤나가 사띠빳타-나 세션에 있을 때에만 해당됩니다. 

     

    • * 명상에서 나와서 일상 생활을 하게 되면, 부상으로 인한 고통을 경험하게 되겠지만, 앞서 다른 감각 기능에 대해 논의한 것처럼 뿌툿자나의 고통보다는 다소 덜할 것입니다.

    • * 그러나, 아라한의 마음은 일상 생활에서도 결코 마나-빠/아마나-빠 레벨을 넘어서 증가하지는 않습니다.

    • * 그러므로, 붓다께서 데와닷따에게 발에 상처를 입으셨을 때, 단지 아마나-빠만 느끼셨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를 치료해야 할 필요는 있었습니다.

     

    까까쭈-뿌마 숫따 ㅡ 톱의 비유

     

    12. ‘Kakacūpama Sutta (MN 21)’에서, 붓다께서는 아라한의 경우에 극단적 상황에 대해 비유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설명은 표식 20.1 ~ 21.5에 나옵니다.  

     

    • * 그 구절의 의미: 두 명이 강도가 자신을 묶고 톱으로 팔다리를 하나씩 자르기 시작하더라도, 평정을 유지하고 그들에게 조금의 분노조차 생기지 않아야 한다. 아라한은 의도적으로 평정을 유지할 필요가 없으며, 자동적으로 평정을 유지한다.

    • * 아라한들은 아스미 마나(asmi māna)를 포함하여 모든 상요자나를 제거했습니다. ‘이 육체는 내 것이다’라는 산냐-는 그들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상처로 인해 일어나는 아마나-빠 산냐-(amanāpa saññā)는 뿌툿자나처럼 고통으로 확장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 * (‘아스미 마-나 상요자나’를 제거하지 않은) 아나-가-미는 뿌툿자나보다 고통은 덜하겠지만 부상으로 인한 고통을 여전히 느낄 것입니다.

     

    아디뭇따 테로의 이야기

     

    13. 띠삐따까에서 아디뭇따 존자(아라한)에 관한 다음 이야기는 실화로 이를 설명합니다.

     

    • * 강도 무리가 존자를 붙잡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 * 그들은 존자를 제물로 바치기 위해 끌고 갔지만, 존자가 죽음으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보통 희생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목숨을 구걸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 * 다음 이야기는 강도들이 그에게 왜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Adhimuttattheragāthā’을 참조하세요.

    • * 존자의 답변은 표식 3.1부터 15.4까지에 나와 있습니다. 존자는 그들에게 자신의 죽음으로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합니다(존자는 아스미 마-나, 즉 ‘나라는 감각’을 포함하여 열 가지 상요자나를 모두 끊었기 때문입니다). 

    • * 거기에 언급된 바와 같이, 결국 일부 강도들은 빅쿠가 되어 마침내 아라한과를 성취했습니다.

     

    요약

     

    14. 어떤 감각 입력이든 매우 약한 마나-빠 또는 아마나-빠 수준의 느낌(실제로는 산냐-)만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 * 끊어지지 않은 상요자나에 따라, 마나-빠와 아마나-빠 단계는 기쁨이나 고통의 감각으로 크게 증폭될 수 있습니다. 모든 상요자나가 그대로 있는 뿌툿자나의 경우에는 증폭이 가장 높습니다.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함에 따라 증폭은 점차 감소하고, 더 높은 막가 팔라로 이어집니다. 열 가지 모든 상요자나가 끊어진 아라한의 마음은 초기 마나-빠와 아마나-빠 단계에서 더 이상 상승하지 않습니다.

    • * 마나-빠가 ‘까-마 수카’(감각적 즐거움)로 구축되는 것은 위 #3의 단계 2에서 시작됩니다.

    • * ‘까-마 수카’와 ‘까-마 둑카’(고통을 포함)는 모두 막가 팔라가 높아질수록 줄어들고, 아라한 단계에서 사라집니다.  

     

    15. 이 전체 과정은 아-나-빠-나사띠 숫따(MN 128)에서 세 가지 주요 단계로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아-나-빠-나사띠 숫따 ㅡ 완전한 개요’를 참조하세요. 이 세 단계 과정의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는 마하-사띠빳타-나 숫따(DN 22)에서 상세히 논의됩니다. ‘까-예 까-야-누빳사나 ㅡ 사띠빳타-나의 세부 사항’를 참조하세요.  

     

    • * 관련 포스트들의 대부분은 ‘붓다 담마’ 섹션에 있습니다. 오래된 포스트들은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다섯 무더기(빤짝칸다) ㅡ 새로운 시리즈(Five Aggregates (Pañcakkhandha)– New Series)’ 서브섹션, ‘숫따(경) 해석’ 섹션의 ‘사띠빳타나 숫따 ㅡ 새로운 시리즈(Satipaṭṭhāna Sutta – New Series)’ 서브섹션, 및 ‘담마와 과학’ 섹션의 ‘붓다의 세계관(Worldview of the Buddha)’ 서브섹션에 있습니다. 더 오래된 포스트들은 모든 포스트들이 시간순으로 정렬된 ‘New / Revised Posts’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 그 포스트들에서 아나-가-미 단계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내용이 논의되었습니다.

    • * 다음으로는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일련의 단계를 설명하는 새로운 섹션을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올린 대부분의 포스트들이 많은 분들에게는 ‘달성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6. 지난 3년간의 포스트들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섯가지 육체 감각으로 감지되는 모든 외부 루빠는 색깔, 맛, 냄새 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 붓다께서는 그것들을 ‘까-마 산냐-’를 통해 생성된 ‘신기루’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는 앞서 논의한 바와 같습니다.

    • * 다행히도 최근 몇 년 동안 현대 과학이 이를 확인해 주었습니다.

    • * 다섯 가지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은 ‘색깔 인식’이 신기루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늘은 파란색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일몰 때 보이는 여러가지 색깔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참고 자료 2의 비디오에서 과학적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17.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제 붓다께서 “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즉 “간단히 말해서, 고통의 기원은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의 다섯 무더기에 대한 갈망이다(pancupādānakkhandha)”라고 말씀하신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 * 위 #3의 도표는 루-빠(단조로운 외부 루-빠에 대해 마음이 만든 버전)에 들러붙는 것으로 시작하여,  마음이 어떤 감각 입력에 어떻게 들러붙는지를 보여줍니다. 

    • * 마음이 ‘확장’됨에 따라(도표에서 넓어지는 ‘콘’으로 표시됨), 모든 다섯가지 실체에 들러붙음(즉, 오취온/pancupādānakkhandha)을 계속합니다.

    • *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행복(수카)의 확장을 가져오고, 다른 어떤 경우에는 고통(둑카)의 확장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도표에는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깜마 에너지의 축적이 미래 재탄생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재탄생은 아빠-야-(악처)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인간이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며 부도덕한 행위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슬픈 진실은 그런 ‘감각적 즐거움’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 *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는 것의 위험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즉, ‘내재된 산냐-’의 기만적인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사람은 결코 재탄생 과정을 피할 수 없습니다!

     

    참고 자료

     

    1. 선천성 무통각증(congenital insensitivity to pain)과 같은 드문 질환 때문에 부상을 입어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외부 자극이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통증은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종 신뢰할 수 없는 마음의 경보 시스템입니다.

    https://youtu.be/CzJEsOVnhoQ

     

    2. 다음은 색채 시각은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또다른 AI 생성 비디오입니다. 색깔은 외부 대상(사과는 빨간색이 아님)이나 빛(전자기파는 무색채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https://youtu.be/EJFGoi_B0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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