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경험된 앗사-다(감각적 즐거움)는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
원문 : Buddha Dhamma 섹션의 ‘Assāda (Sense Pleasure) Experienced Is Mostly Mind-Made’
앗사-다(assāda)(감각적 즐거움)는 ‘까-마 산냐-(kāma saññā)’로 시작되며, 이 까-마 산냐-는 ‘좋아함의 기미/흔적’(manāpa)을 촉발시키고 마음이 순식간에 많은 재집착 단계를 거친 후 뿌툿자나가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강한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로 급속히 자랍니다. 따라서, 뿌툿자나가 ‘까-마 산냐-’를 통해 경험하는 즐거움(앗사-다)은 아라한이 경험하는 ‘좋아함의 기미/흔적’(manāpa)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합니다.
2026년 2월 21일 작성
‘까-마 산냐-’의 효과 ㅡ 뿌툿자나와 아라한 사이의 차이
1. 뿌툿자나(붓다 담마를 접하지 못한 사람)나 아라한은 감각 입력으로 동일한 ‘까-마 산냐-’를 경험한다고 많은 포스트에서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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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자동적으로 ‘까-마 산냐-’를 경험할 것입니다. 이는 미묘한 ‘좋아함의 감각’을 느끼게 합니다. 붓다께서는 이것을 ‘마나-빠(manāpa)’라고 부르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사과의 붉은색과 단맛을 경험하는데, 이 두 가지 모두는 ‘마음이 만든’ 지각/인식입니다. ‘인간의 삶은 무색채의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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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가지 상요자나를 모두 가진) 뿌툿자나의 마음은 즉시 그 까-마 산냐-에 들러붙고, 마음은 자동적으로 까-마 로-까(kāma loka)로 이동합니다. 아래 도표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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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에, 모든 아라한의 마음(모든 상요자나가 끊어진 마음)은 ‘까-마 로까’로 이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아라한의 마음은 그 초기의 ‘마나-빠’인 ‘수카의 기미/흔적’에 들러붙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라한의 마음은 어떤 때에도 아주 미미하게라도 오염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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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가-미의 마음도 ‘까-마 로까’로 이동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까-마 로까와 관련된 다섯 가지 상요자나를 제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자-나 산냐-(jhāna saññā)’ 또는 ‘아루빠 사마-빳띠 산냐-(arupa samāpatti saññā)’에 들러붙어 각 ‘루빠 로까’와 ‘아루빠 로까’로 이동합니다.
‘마나-빠/아마나-빠’와 ‘수카/두카’ 웨다나-
2. 어떤 감각 입력에서 ‘까-마 산냐-’는 뿌툿자나나 아라한에게 ‘싫어함의 기미/흔적’(amanāpa)을 불러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썩은 음식의 맛이 그렇습니다. 뿌툿자나에게는 이것이 강한 ‘두카 웨다나-(dukha vedanā)’로 이어질 수 있지만, 아라한의 마음은 아마나-빠(amanāpa)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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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조차도 ‘왜곡된 산냐-’에서 생성된 ‘마나-빠/아마나-빠, 즉 ‘좋아함/싫어함’의 감정을 경험합니다. ‘Nibbānadhātu Sutta (Iti 44)’을 참조하세요. “Tassa tiṭṭhanteva pañcindriyāni yesaṁ avighātattā manāpāmanāpaṁ (“manāpa/amanāpa“) paccanubhoti, sukhadukkhaṁ paṭisaṁvedeti.” 링크 주소에 있는 영어 번역은 적절한데, “그들(아라한들)의 오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감각이 작동하는 한, 그들은 계속해서 유쾌하고 불쾌한 것을 경험하고, 즐거움과 고통을 느낀다.”입니다. 또한, 여기서 ‘수카둑카(sukhadukkha)’(sukha와 dukkha)는 아라한이 느끼는 ‘신체 접촉’을 의미한다는 것에 유의하세요. 아래 #12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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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트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마나-빠(manāpa)’ 측면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뿌툿자나의 마음은 좋아함의 기미/흔적(마나-빠)을 확대하여 ‘앗사-다’의 레벨로 증가시킨다
3. 이제, 다음으로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뿌툿자나가 ‘까-마 산냐-’로 경험하는 초기의 ‘좋아함의 기미/흔적’(마나-빠)은 그것을 자각할 때쯤에는 ‘강한 수카 웨다나’(앗사-다)로 크게 자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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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툿자나의 마음은 여러 단계로 유혹하는 감각 입력에 계속 들러붙습니다.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이 단계들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납니다. 즉 뿌툿자나는 그 과정을 알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 단계들은 아래 #9에서 논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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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나와 깜마’ 단계(이 단계에도 ‘수카 웨다나-’가 점차 증가하는 여러 단계가 있음)에 완전히 들어선 후에야 뿌툿자나는 감각 입력으로 인해 이미 강화된 ‘수카 웨다나-’를 자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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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툿자나에게도, ‘뿌라-나 깜마’ 단계의 앗사-다는 ‘나와 깜마’ 단계보다 훨씬 더 약합니다. 뿌툿자나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다 보면 어느 순간에 빠띠소따가-미(‘빠띠소따가-미 ㅡ 사띠빳타-나 부미와 닙바-나를 향해 감’을 참조)가 되고, 마음은 ‘뿌라-나 깜마’ 단계에 이르러 ‘낮은 수준의 앗사-다’를 경험합니다. 그때에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가 앗사-다를 극복하고 소따빤나 팔라 순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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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문에 ‘나와 깜마’ 단계에 여전히 있는 동안에는 ‘아닛짜 특성’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명상할 수 없습니다! 그때에는 ‘까마 산냐-’에 들러붙음이 너무 강해서 극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 오염의 단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4. 그러므로, ‘까-마 산냐-’와 함께 시작하여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를 거쳐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에 이르는 ‘마음 오염’에 대한 세부 사항을 이해하는 것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데에도 매우 유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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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반대 방향으로 가서 ‘뿌라-나 깜마’ 단계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단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그 단계에서 앗사-다의 힘이 약해져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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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략히 말하면, 그러한 되돌림의 단계는 다음과 같은데, (i) ‘나와 깜마’ 단계에서 새로운 강력한 깜마(까-야, 와찌, 및 마노 깜마)를 생성하는 것을 삼가고, (ii) 마음이 빠띳짜 사뭅빠-다의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 단계에 이르지 않도록 감각을 제어하며(indriya saṁvara), (iii)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마음 오염’의 초기 단계의 세부 사항을 숙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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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단계들은 중단없이 이행되어야만 마음이 점진적으로 덜 오염된 ‘뿌라-나 깜마’ 단계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까-마 산냐-’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최소한 몇 시간은 꾸준히 할애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5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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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어느 시점에서, 마음은 ‘까-마 산냐-’를 극복하고 ‘사띠빳타-나 부-미’로 뛰어들 것입니다. ‘까-마 산냐-를 극복 ㅡ 사띠빳타-나 부미 또는 자-나’를 참조하세요.
그 노력을 위해 하루를 따로 할애하기
5. 이 때문에 불교 국가에서는 하루(보통 매달 보름날)를 정해 이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들은 보통 ‘팔계’ 또는 ‘십계’까지 지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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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법문을 듣고 위빠사나-를 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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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이는 그들로 하여금 아꾸살라 깜마를 삼가게 하여 마음이 ‘나와 깜마’ 단계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또한 인드리야 상와라(indriya saṁvara)를 유지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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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법문을 듣고 위빠사나-에 집중하면, 마음은 점차 ‘뿌라나 깜마’ 단계를 거쳐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로서 아직 ‘뿌라-나 깜마’ 단계에 머물면서 점차 사띠빳타-나 부-미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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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준히 노력을 기울이면 어느 시점에서, 까-마 산냐-(kāma saññā)를 극복하고 처음으로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역주: 사띠빳타-나 부-미의 제2영역에서] 소따빤나 팔라(Sotapanna phala)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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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 단계들을 알지 못해도,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즉, 빤짜 우빠-다-낙칸다)의 아닛짜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소따빤나 팔라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결국 그 단계들을 거치게 됩니다.
우뽀사타 ㅡ 실천 수행에 전념하는 날
6. 부처님 시대에, 하루를 명상으로 보내는 이 실천 수행을 ‘우뽀사타(uposatha)’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소따빤나가 더 높은 막가 팔라를 얻기 위해 행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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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Uposatha Sutta (AN 3.70)’에서 위사-카-(Visākhā)에게 올바른 ‘우뽀사타’ 버전을 실천하는 방법을 설명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두 가지 잘못된 수행법이 행해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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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번역에서는 ‘uposatha(우뽀사타)’를 ‘Sabbath(안식일)’로 번역되었다는 것에 유의하세요. 안식일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휴식과 예배를 위해 따로 마련된 날입니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우뽀사타(uposatha)의 참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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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뽀사타(uposatha)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표식 4.1에서 시작됩니다.
막가 팔라를 얻음
7. ‘Vimuttāyatana Sutta (AN 5.26)’는 막가 팔라(magga phala)를 얻는 다섯 가지 방법을 설명하는데, (i) 성스런 스승으로부터 담마를 배우는 동안, (ii) 자신이 타인에게 담마를 가르치는 동안, (iii) 및 (iv) 성스런 스승으로부터 배운 담마 개념을 자세히 숙고하는 동안, (v) 명상 주제(사마-디 니밋따)에 완전히 몰입하는 동안입니다. (ii)와 (v)는 성자가 더 높은 막가 팔라를 얻는 것에만 해당됩니다. 나머지 세 가지는 뿌툿자나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도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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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관련된 담마 개념을 파악하고 각 상요자나를 부수는/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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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삐따가에 나오는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위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꼰단냐 존자는 부처님의 첫 설법을 통해 배운 담마를 숙고하는 동안에 소따빤나 팔라 순간에 도달했습니다. 또 다른 사례는 찟따핫타 존자가 일곱 번째로 빅쿠가 되기 위해 사원으로 가는 중에 소따빤나 팔라 순간에 도달했는데, 그는 배운 담마를 되새기며 소따빤나 팔라에 도달했습니다. ‘소따-빤나 막가/팔라를 얻기 위한 4가지 조건’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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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한 번 듣는 것만으로 소따빤나 팔라 순간에 도달했지만, 소따빤나 팔라 순간은 숙고하는 중에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필요한 담마 개념(특히, 세상의 ‘아닛짜 특성’)을 성자(아리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마음 오염이 증가함과 함께 앗사-다가 증가하는 단계
8. 이제, ‘까-마 산냐-를 극복 ㅡ 사띠빳타-나 부미 또는 자-나’를 포함하여 많은 포스트에서 논의한 마음의 오염 단계에 대한 논의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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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도표는 그 포스트의 #2(두번째 도표)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 도표는 아래 #9에서 논의된 단계를 명확히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 ‘Growth of Pañcupādānakkhandha’
상깝빠, 사라 상깝빠, 및 마노, 와찌, 까-야 상카-라
9. ‘마음의 오염’은 ‘한 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지만, 여러 단계를 거쳐 일어납니다. 다음은 세 가지 주요 단계입니다(위 도표의 네 단계에 해당하며, 동일한 유형의 ‘사라 상깝빠(sara saṅkappa)’가 단계 2와 같이 단계 3에 일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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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계 1: ‘마나-빠(manāpa)’에 들러붙음은 ‘상깝빠(saṅkappa)’로 이어짐: 초기의 마음 오염은 ‘까-마 다-뚜(kāma dhātu)’ 단계에서 ‘까-마 산냐-(kāma saññā)’에 의해 촉발되며,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의 아주 초기 단계에서 ‘마나-빠’(‘좋아함의 기미/흔적’)만을 일으킵니다. 이는 자동적으로 뿌툿자나의 마음에 ‘까-마 상깝빠’를 일으킵니다. 이 지점에서 ‘까-마 라-가(kāma rāga)’가 일어납니다(이것은 ‘saṅkapparāgo purisassa kāmo’ 단계임. 참고 사항 1을 참조).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과는 달리, ‘까-마 라-가’는 매우 약합니다. 이는 ‘뿌라-나 깜마’ 단계의 초기에 일어나며, 이후 단계에서 마음이 더 오염되면 ‘까-막찬다(kāmacchanda)’(훨씬 강한 형태)로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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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뿌라-나 깜마’ 단계에 들어서면, 뿌툿자나의 마음은 빠르게 ‘바힛다 윈냐-나(bahiddha viññāna)’ 단계를 거쳐 ‘앗잣따 윈냐-나(ajjhatta viññāna)’ 단계에 이릅니다. 이 단계에서도 마음은 더욱 많은 ‘상깝빠’를 생성하고, 자체가 더욱 오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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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계 2: ‘까-마 구나(kāma guṇa)’에 들러붙음은 ‘사라 상깝빠(sara saṅkappa)’와 ‘게하시따 소마낫사(gehasita somanassa)’로 이어짐: ‘뿌라-나 깜마’ 단계의 중간에, 마음은 ‘짝쿠윈네이야 루빠(cakkhuviññeyya rupa)’를 생성하고, (그 순간의 마음 성향에 기반하여) 이것이 충분한 ‘까-마 구나’를 가지면 ‘사라 상깝빠’(때때로 ‘게하시따 사라 상깝빠’라고도 함)를 생성하며, 이는 ‘바힛다/앗잣짜 윈냐-나’로 이어진 ‘상깝빠’보다 더 강합니다. 이 단계에서 ‘수카 웨다나-’는 ‘게하시따 소마낫사’로 강화되는데, 즉 앗사-다가 더욱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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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계 4(도표에서):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는 마노, 와찌, 까-야 상카-라를 통해 강력한 깜마를 축적하기 시작하는 단계로 이어지고, ‘앗사-다’가 의식적으로 경험됨: 그 다음, ‘나와 깜마’ 단계에 이르면, 마음 오염은 미래 생에서도 위빠-까를 가져올 수 있는 마노, 와찌, 및 까-야 깜마의 원인이 되는 마노, 와찌, 및 까야 상카-라로 훨씬 강해집니다. 이 단계에서 생성된 ‘마음의 즐거움’(소마낫사 웨다나-)은 단계 2와 단계 3에서 생성된 ‘게하시따 소마낫사’보다 더 강합니다. 마음이 ‘참으로 몰입하면’ 그 앗사-다(assāda)는 훨씬 더 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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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용어를 모두 알지 못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나아가면서 점차 설명하겠습니다. 필자는 이 가르침의 깊이에 정말 감탄할 따름입니다! 중요한 점은 뿌툿자나가 느끼는 앗사-다는 아라한이 경험하는 ‘마나-빠’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입니다. 뿌툿자나는 중간 단계들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경험하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오직 ‘나와 깜마’ 단계에서 생성된 강한 앗사-다(강한 소마낫사 웨다나-)만을 경험합니다!
10. 위 도표의 ‘확장 콘’은 단지 가이드(안내)로서만 취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마음이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는 ‘서서히 오염되고’ 그 오염이 ‘나와 깜마’ 단계에서는 가속화됨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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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사-다’는 또한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는 서서히 증가하고, ‘나와 깜마’ 단계에서는 급격히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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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따라, ‘깜마 생성’은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상깝빠와 사라 상깝빠를 통해) 서서히 증가하고, 강력한 마노, 와찌, 및 까-야 상카-라로 ‘나와 깜마’ 단계에서 가속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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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앗사-다(마음이 만든 즐거움)와 (들러붙음을 통한) 깜마 축적은 서로를 먹여 살립니다. 이 둘은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는 의식적으로 자각하지 못하면서도 순식간에 자랍니다.
마음이 만든 ‘삼팟사 자- 웨다나-’는 각 단계에 기여한다
11.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깜마 축적의 강도와 (‘삼팟사 자- 웨다나-’ 생성을 통한) ‘경험되는 웨다나-’(‘삼팟사 자- 웨다나-’ 생성을 통함)는 마음의 오염이 심해질수록 증가합니다. 이는 ‘마나-빠’ 단계에서 시작하여 ‘게하시따 소마낫사’ 단계를 거쳐, ‘유혹하는 감각 입력’의 경우에 ‘나와 깜마’ 단계에 도달한 후 가장 높은 ‘소마낫사’ 단계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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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 산냐’와 함께 일어나는 초기의 ‘좋아함의 기미/흔적’(마나-빠)은 경험되는 초기의 ‘웨다나-’입니다. 여기서는, 마음의 오염이 일어나지 않지만, 여전히 ‘삼팟사(samphassa)’라고 불립니다. 이는 ‘산냐-와 접촉’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산/san’, 즉 오염원의 접촉은 분명히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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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해석은 ‘Sūciloma Sutta’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때, 수-찔로마(Sūciloma)라는 약카(yakkha)가 부처님을 괴롭히려 왔습니다. 그는 부처님께 다가가서 몸에 기대었는데, 붓다께서는 몸을 빼셨습니다. 그러자 수-찔로마가 물었습니다. “수행자여, 나를 두려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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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수-찔로마와의 접촉이 불편했기(‘api ca te samphasso pāpako’) 때문에 물러났을 뿐이라고 답하셨습니다. ‘Sūciloma Sutta (SN 10.3)’를 참조하세요. 또한 ‘빠-빠꼬(pāpako)’는 단순히 ‘낮은/불편한’이라는 뜻이며 ‘빠-빠 깜마(pāpa kamma)’와는 관련이 없다는 점에 유의하세요.
뿌툿자나의 ‘까-마 앗사-다’와 아라한의 ‘마나-빠’
12. 그러므로, 뿌툿자나의 경우, ‘까-마 산냐-’가 ‘마나-빠’만을 유발하더라도, ‘삼팟사 자- 웨다나-’, 즉 ‘삼팟사를 통해 생성된 웨다나-’의 더 많은 단계로 이어집니다. 그 ‘삼팟사 자- 웨다나-’는 이후의 상깝빠와 사라 상깝빠와 함께 점점 더 강해집니다. 그것들은 ‘나와 깜마’ 단계에서 생성된 마노, 와찌, 및 까-야 상카-라에 대해 가장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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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뿌툿자나의 ‘마나-빠’는 아주 초기 단계에서 ‘까-마 상깝빠’를 촉발시킵니다. 상깝빠가 더 많이 생성될수록, 앗사-다도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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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사-다는 마음이 까-마 구나에 들러붙어 ‘앗잣따 윈냐-나’ 단계 후에 ‘까-막찬다’를 촉발시키면 일어나는 ‘사라 상깝빠’로 더욱 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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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나와 깜마’ 단계에 이르면, 감각 입력에 의식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까-마 앗사-다’는 훨씬 더 강해집니다. 이때 뿌툿자나는 ‘까-마 앗사-다를 자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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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우리는 뿌툿자나가 경험하는 ‘까-마 앗사-다’와 동일한 감각 입력으로 인해 아라한이 경험하는 약간의 호감(마나-빠) 사이의 엄청난 차이를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부상으로 인한 ‘아마나-빠’는 강하다
13. 위의 내용에 대한 예외는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해 ‘까-마 다-뚜’ 단계에서 느껴지는 초기 ‘아마나-빠(amanāpa)’입니다. 부상을 예로 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상의 ‘고통’은 신경계에서 생성된 산냐-에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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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를 통해 들어오는 ‘삿다 산냐-’(음악과 함께)와 다른 유형의 산냐-에 비해, ‘뽓탑바 산냐-’(몸 접촉)는 피부 아래의 신경계를 통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손가락을 베면, 몸(더 정확하게는, 마음)이 상처를 경고하는 ‘고통스러운 느낌’(뽓탑바 산냐-)을 생성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데, 그렇지 않으면 상처를 인지하지 못하고 과다 출혈로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드물게(깜마 위빠-까 때문에) 이러한 산냐-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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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감각기관을 통해 경험하는 약한 ‘마나-빠/아마나-빠’와는 달리, 이 ‘아마나-빠(amanāpa)’는 매우 강합니다. 아라한도 신경계를 통해 생성되는 호화로운 침대의 ‘수카 웨다나-’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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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뿌툿자나는 부상으로 인한 초기의 자동적인 ‘둑카 웨다나-’에 대해 걱정함으로써 (‘나와 깜마’ 단계의) ‘둑카 웨다나-’를 더 생성합니다. 이에 반해, 아라한에게는 그런 두 번째 유형의 ‘삼팟사 자- 웨다나-’가 없습니다. 이는 ‘Salla Sutta (SN 36.6)’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산냐-가 내재되어 있지 않다면 삶을 살 수 없다
14. #13의 논의는 우리 몸/마음이 특정한 산냐-를 제공하지 못하면 왜 삶을 살 수 없는지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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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인간의 삶은 무색채의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포스트에서 ‘색깔 산냐-’에 초점을 맞추어 그 세부 사항을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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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일한 식으로, 자연은 썩은 음식에 ‘역겨운 맛’을 부여하여 우리가 썩은 음식을 먹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가스 냄새를 맡아서 가스 누출을 자동으로 감지할 수 있습니다. 위 논의에서, 상처를 돌봄으로써 과다 출혈로 인한 사망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만약 상처가 ‘고통’이라는 산냐-를 촉발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처를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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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 미묘한 경우로서, 우리는 자동적으로 식사 시간이나 화장실에 갈 시간을 알아차립니다. 이것들도 산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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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우리는 ‘궁극 실재’를 이해하면서 ‘세간 실재’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삭까-야 딧티와 '마음이 만든 루-빠'의 #14를 참조하세요.
참고 사항
1. ‘Nasanti Sutta (SN 1.34)’를 참조하세요. 이전 구절(‘Na te kāmā yāni citrāni loke’)에서 언급했듯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감각적 즐거움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없으며, ‘감각적 즐거움’은 마음이 만들어낸 인식입니다. ‘루-빠 사무다야 ㅡ 마음에 의해 다채로운 세상이 창조된다’와 ‘인간의 삶은 무색채의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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