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까-마 산냐-를 극복 ㅡ 사띠빳타-나 부미 또는 자-나
원문: Sutta Interpretation 섹션의 ‘Overcoming Kāma Saññā – Satipaṭṭhāna Bhumi or Jhāna’ 포스트
까-마 산냐-(Kāma Saññā)는 두 가지 방법으로 극복될 수 있습니다. 세간 방법은 까-마 라-가(kāma rāga)를 의도적으로 억누르는 것입니다. 출세간(성스런) 방식은 감각 절제와 통찰 명상(위빠사나-)을 결합한 것으로, 이는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의 기초입니다.
2025년 8월 23일 작성
빠띠소따가-미의 두 가지 가능한 결과
1. 이전 두 개의 포스트에서, 아누소따가-미(빤쭈빠-다-낙칸다의 성장 ㅡ '아누소따가-미')와 빠띠소따가-미(빠띠소따가-미 ㅡ 사띠빳타-나 부미와 닙바-나를 향해 감)를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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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아누소따가-미/빠띠소따가-미(anusotagāmi/paṭisotagāmi)는 해당 과정이나 그 과정을 따르는 사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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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든 모르든, ‘배우지 못한’ 뿌툿자나(puthujjana)는 재탄생 과정뿐만 아니라 까-마 로까(kāma loka)에도 갇힌 아누소따가-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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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과를 얻고자 노력하는 ‘배운 뿌툿자나’(성자로부터 담마를 배우는 것의 의미)는 빠띠소따가-미일 것입니다. 아나-가-미 단계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소따빤나 또는 사까다-가-미, 또는 아라한뜨가 되고자 노력하는 아나-가-미도 빠띠소따가-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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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이, 호흡 명상이나 까시나 명상을 기르는 아나리야 요기도 세간적 의미에서 빠띠소따가-미일 것입니다. 그들도 또한 까-마 로까를 초월하고 루빠 로까와 관련된 자-나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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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도표는 (까-마 로까에서) 빠띠소따가-미에 대한 그 두 가지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까-마 산냐-를 극복하여 ‘세상 안에서’ 루빠 로까에 해당하는 루빠 산냐-로 올라가는 것(즉, 자-나를 성취)입니다. 다른 하나는 모든 유형의 산냐-를 극복하여 사띠빳타-나 부미로 나아가고 소따빤나 팔라 순간에 이르는 것입니다.
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 ‘Overcoming Kāma Saññā – Satipaṭṭhāna Bhumi or Jhāna’
까-마 산냐-를 극복 ㅡ 자-나 또는 사띠빳타-나 부미
2. ‘나와 깜마’ 단계를 멈추고(즉, 주로 몸과 말을 통해 행해지는 그 깜마를 멈추고), 또한 탐욕스럽거나 화내는 마음성향을 유발할 수 있는 감각 입력을 접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마음을 ‘뿌라-나 깜마’ 단계가 시작되는 결정적 시점으로 이동시켜 ‘까-마 산냐-’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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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결정적 시점에 도달했을 때, 가능한 결과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음은 ‘사띠빳타-나 부미’ 또는 첫 번째 자-나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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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라-나 깜마’ 단계의 결정적 시점에 도달하면, 성자의 지도하에서 뿌툿자나의 마음은 까-마 산냐-를 극복하고 ‘사띠빳타-나 부미’로 도약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아나리야 요기(세간적 수행자)의 마음은 까-마 산냐-를 일시적으로 뛰어넘어 루빠 로까 산냐-의 ‘루빠 로까’, 즉 제1자-나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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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체적으로, 그 결정적 시점은 아래 도표의 단계 1과 단계 2 사이입니다. 우리는 이 도표를 ‘빤쭈빠-다-낙칸다의 성장 ㅡ 아누소따가-미’와 ‘빠띠소따가-미 ㅡ 사띠빳타-나 부미와 닙바-나를 향해 감’에서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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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 ‘Growth of Pañcupādānakkhandha’
아나리야 요기는 자-나에 접근하기만 할 수 있다
3. 위 첫 번째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결정적 시점에서 까-마 산냐-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아나리야 요기에게는 단 하나의 결과만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자-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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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 다-뚜 단계에서 까-마 산냐-가 미세한 들러붙음을 유발하여 (단계 1에서 바힛따 윈냐-나와 앗잣따 윈냐-나 단계 모두로 나아간 마음으로) 마음에 짝쿠 윈냐-나가 자리잡았지만, 그 단계에서 들러붙음의 수준은 마음이 제1자-나를 통해 ‘루빠 로까’로 뛰어넘을만큼 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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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아나리야 요기(세간적 수행자)가 성취할 수 있는 최대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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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띠빳타-나 부미’에 도달하는 것은 아래에서 논의하는 것처럼, 성스런 진리를 이해해야만 가능합니다.
자-나또/빳사또로만 사띠빳타-나 부미에 접근할 수 있다
4. 이제 성자(아리야)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는 뿌툿자나를 생각해 보세요. 그의 마음 또한 ‘뿌라-나 깜마’ 단계의 결정적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만약 그들이 빤쭈빠-다-낙칸다에 들러붙는 아닛짜 본질을 파악한다면,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또한 아나리야 요기(세간적 수행자)의 경우와 같이 자-나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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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기술(진술)들은 ‘자-나또’와 ‘빳사또’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면 ‘자-나또’가 됩니다. 그러나, 지혜로 그 의미를 파악할 때(‘빳사또’)까지는 까-마 산냐-를 극복할 수 없고 사띠빳타-나 부미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자-나또 빳사또와 아-자-니야 ㅡ 기억해야 할 결정적인 말들’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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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위 #2에서 언급한 ‘결정적 시점’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빤쭈빠-다-낙칸다의 성장에서 다섯 단계
5. 빤쭈빠-다-낙칸다의 성장에서 다섯 단계는 ‘빤쭈빠-다-낙칸다의 성장 ㅡ 아누소따가-미’ 포스트에서 논의되었습니다. 그 다섯 단계는 위의 두 번째 도표에 나와 았습니다. 위 #2에서 언급한 ‘결정적 시점’에 도달하기 위한 핵심 단계들을 파악하기 위해 그 다섯 단계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단계 1: 마음은 ‘까-마 다-뚜’ 단계에서 ‘까-마 산냐-’에 자동적으로 들러붙습니다. 이 단계는 다섯 가지 하위 상요자나(삭까-야 딧티, 위찌낏짜-, 실랍바따 빠라-마-사, 까-마 라-가, 빠띠가)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 단계는 바힛다 윈냐-나와 앗잣따 윈냐-나의 생성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촉발합니다. 앗잣따 윈냐-나의 형성은 상응하는 ‘아-야따나’의 생성(예를 들어, 시각적 감각 입력의 경우에, 짝쿠 아-야따나와 루빠 아-야따나가 형성됨)과 동일합니다.
단계 2: 마음은 ‘아-따따나(āyatana)’ 단계에서 인지된 ‘까-마 구나(kāma guṇa)’에 들러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순간에 존재하는 마음성향(또는 ‘가띠’)과 어떤 유형의 감각 입력을 경험하느냐입니다. 마음이 ‘까-마 구나’에 들러붙는 것을 막기 위해 ‘좋은 가띠’를 유지하고 감각적 유혹을 피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단계 2가 발생하면, 단계 3 내지 단계 5로 자동적인 진행이 멈춰질 수 없습니다.)
단계 5: 빠띳짜 사뭅빠-다의 ‘우빠-다-나 빳짜야- 바와’ 단계에 도달하면(단계 4), 단계 5에서 의식적으로 ‘새로운 강한 깜마’(또는 ‘나와 깜마’)를 쌓기 시작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자신을 훈련할 수 있습니다. 즉, 부도덕한 행위, 말, 및 생각(까-야, 와찌, 및 마노 깜마)에 빠지려는 충동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는 ‘실-라’, 즉 ‘도덕적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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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2에서 언급한 결정적 시점에 도달하려면 먼저 단계 5를 극복하고, 그 다음 단계 2로 가야 합니다. 결정적 시점은 단계 1과 단계 2 사이입니다. 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빠띠소따가-미입니다. 성스런 진리를 이해하는 빠띠소따가-미(Paṭisotagāmi)만이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가 소따빤나 팔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실-라의 기본 레벨 ㅡ 단계 5를 역행
6.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실-라’ 또는 ‘도덕적 행위’는 단계 5를 역행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지 못했을지라도, (‘인간 가띠’의 일부로) 부도덕한 행위를 피하려는 선천적인 (내재된) 산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히리(‘부끄러움’)과 옷땁빠(‘두려움’)입니다. ‘Hirīottappa Sutta (AN 7.65)’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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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히리와 옷땁빠는 육성하고 키워야 합니다. 오계를 지키겠다고 결심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한달에 며칠 동안 팔계를 실천하여 실-라를 실천/육성하는 것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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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적 유혹에 들러붙으려는 충동(단계 5)을 의도적으로 억누르는 것이 중요한 첫 걸음인 반면에, 앞의 단계 2가 어떻게 마음이 단계 3과 단계 4를 거쳐 단계 5로 불가피하게 넘어가는 조건을 촉발하는지 이해함으로써 ‘실-라’, 즉 ‘도덕적 행위’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마음을 즐겁게 하는 감각 입력’을 피하기 위한 것입니다.
‘실-라’의 더 깊은 레벨은 단계 2를 이해하는 것이 기반한다
7. 부처님의 출현 전에도, 알라-라 깔-라-마와 같은 고대 요기(수행자)들은 ‘매력적인 감각 입력’을 피함으로써 가장 나쁜 까-야, 와찌, 및 마노 깜마를 짓지 않고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이 쉽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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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성인용 비디오나 영화를 습관적으로 시청한다면, 마음은 항상 성적인 행위에 대한 갈망과 욕망으로 가득하게 되는데, 그런 행위는 ‘까-마 산냐-’를 위한 연료가 됩니다. 다음 맛있는 식사에 집중하는 마음성향으로 살아가면, 맛있는 음식에 대한 ‘까-마 산냐-’가 자라는 것을 돕습니다. 이런 예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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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라 깔-라-마와 같은 고대 아나리야 요기(세간 수행자)들은 감각적 산만함에서 벗어나 숲에서 살았습니다. 까-마 라-가를 촉발할 여성도, 맛있는 음식도, 좋은 향기도, 호화로운 집 등(‘니밋따’, 즉 감각적 끌림/매력이라고 함)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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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 아나리야 요기들은 여성, 맛있는 음식, 좋은 향기, 호화로운 집 등이 까-마 구나(즉 ‘마음을 즐겁게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피함으로써 그들은 까-마 산냐-(kāma saññā)를 극복하고 자-나(jhāna)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자-나에 도달한다는 것은 까-마 로까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 ‘루빠 로까’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나는 ‘루빠 로까’에 사는 브라흐마-(Brahmā)들의 마음성향입니다.
8. 붓다께서는 까-마 구나(‘마음을 즐겁게 하는’) 특성은 여성, 맛있는 음식, 좋은 향기, 호화로운 집 등과 같은 외부적인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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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내재된’ 까-마 산냐-가 그렇게 보이게 만듭니다. 심지어 외부의 물리적 세계 조차도 그런 ‘왜곡된 까-마 산냐-’를 제공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는 외부 세계도 창조한다!’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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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에 대해서는 ‘까-마 구나 - 들러붙음(땅하-)의 기원’ 포스트에서 논의하였습니다.
자-나에 들어감
9.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감각적 끌림(매력)에서 벗어난’ 환경에서 아나리야 요기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앗잣따 윈냐-나(ajjhatta viññāna) 직후에 마음을 ‘초기 단계’로 가져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마음이 ‘매력적인 감각 입력’을 만나지 못하면 단계 2로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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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점에서 마음은 ‘까-마 로까’와 관련된 ‘까-마 산냐-’를 극복하고 ‘루빠 로까’로 뛰어올라 제1자-나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위의 첫 번째 도표를 참조하세요.
어떤 사람들은 자-나에 쉽게 들어갈 수 있다
10. 더욱이, 위의 과정은 이전 생에 자-나를 기른 뿌툿자나(puthujjana)에게 쉽게 일어날 수 있으며, 또한 현재 인간으로 존재하기 직전에 브라흐마 영역에 살았다면 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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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사람들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자-나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호흡과 같은 ‘중립적인 감각 대상’에 오랫동안 마음을 집중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시간 동안 마음은 ‘나와 깜마’ 단계뿐만 아니라 위의 단계 2를 극복하고 자-나에 도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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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 자-나에서 ‘사띠빳타-나 부미’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계 1부터 단계 5까지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사띠빳타-나 부미’에는 성스런 진리, 빠띳짜 사뭅빠-다, 및 띨락카나(모두 동일한 것을 의미함)를 이해함으로써 까-마 로까, 루빠 로까, 또는 아루빠 로까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다섯 단계 모두(특히 단계 1)를 이해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의 근본을 이해한 것입니다.
사띠빳타-나 부미(자-나가 아님)는 막가 팔라에 필요하다
11. 붓다께서는 사띠빳타-나를 육성하는 일반적인 과정을 알려주셨습니다. 사띠빳타-나를 기르는 동안 자-나를 얻을 수도 있고,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 과정이 먼저 자-나로 이어진다면, 그 자-나에 있는 동안에도 사띠빳타-나를 기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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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라 깔-라-마와 같은 아나리야 요기들이 초기 단계에서 사용했던 기술 중 일부를 채택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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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드시 숲에 들어가거나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감각적 탐닉은 피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각적 생각’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면 그런 탐닉을 더욱더 쉽게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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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들은 ‘Sabbāsava Sutta (MN 2)’에 나열된 제2단계 내지 제6단계의 세간(평범한) 버전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것은 자제력을 행사하고, 필수적인 것만 사용하고, 사소한 불편함을 견디고, 나쁜 상황(예: 나쁜 동네에서 사는 것)을 피하고, 마음에 일어나는 현명하지 못한 유혹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소따-빤나 단계’의 #15에서 간략히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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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삽바-사와 숫따(Sabbāsava Sutta)의 단계를 성스런 진리의 이해와 함께 따르면, 그것 역시 사띠빳타-나를 충족시키고 모든 도과에 이르게 됩니다.
사띠빳타-나 부미에 도달하려면 ‘빤쭈빠-다-낙칸다가 둑카’라는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12. 위에서 논의한 단계 2부터 단계 5와는 달리, 단계 1은 위 #5에 나열된 다섯 가지 하위 상요자나를 제거해야만 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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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것은 빤쭈빠-다-낙칸다가 왜 고통/괴로움과 동일한지를 이해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첫 숫따에 있는 불교의 에센스’ 의 #8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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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위의 첫 번째 도표에서 분명합니다. 마음이 감각 입력에 들러붙고 빤쭈빠-다-낙칸다의 성장 과정을 시작(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을 시작하는 것과 동일)할 때마다, 도표 왼쪽에 위치한 닙바-나에서 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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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탄생 과정의 괴로움/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자신을 ‘까-마 로까’에 묶어두는 ‘까-마 산냐-’를 극복해야 합니다. 다음에, 자신을 ‘루빠 로까’에 묶어두는 ‘루빠 산냐-’를 극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아루빠 로까’에 묶어두는 ‘아루빠 산냐-’를 극복해야 합니다. ‘로까와 닙바-나(알로까) ㅡ 완전한 개관’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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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모든 단계는 마음이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동안에 완료됩니다. 그곳은 마음이 세상의 어떤 것에 자동적으로 들러붙게 만드는 어떤 유형의 산냐-에서 자유로운 곳입니다. 마음이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동안에는 빤쭈빠-다-낙칸다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떤 유형의 ‘로끼야 산냐-’, 즉 세상의 어떤 영역과 관련된 어떤 유형의 산냐-의 간섭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숙고(즉, 위빠사나에 참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반드시 읽어야 할 포스트
‘까-마 산냐- ㅡ 뛰어넘어 사띠빳타-나를 육성하는 방법’과 ‘로까와 닙바-나(알로까) ㅡ 완전한 개관’
(전체적) 역주:
출세간 수행(사띠빳타-나)은 뿌라나 깜마와 나와 깜마 단계가 있는 빤짜드와라 찟따위티(오문인식과정) 후에 일어나는 마노드와라 찟타위티(의문인식과정, 뿌라나 깜마 단계는 없고 나와 깜마 단계만 있는 찟따위티)에서 이루어지며, 이 마노드와라 찟따위티가 진행되는 중에 자-나 성취과정 또는 막가팔라(또는 팔라) 성취과정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막가팔라(또는 팔라) 성취과정이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게 되는 때라고 볼 수 있다.
마노드와라 찟따위티에서, 아꾸살라물라 연기(세간 수행 또는 아나리야 자-나도 이 연기에 해당)가 일어나지 않고 꾸살라물라 연기가 일어나는 때가 출세간 수행을 하는 때라고 볼 수 있으며, 이 때만 막가팔라(또는 팔라) 성취과정이 일어나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게 되는 때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