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로까와 닙바-나(알로까) ㅡ 완전한 개관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 Loka and Nibbāna (Aloka) – Complete Overview ’ 포스트
로까(loka)와 닙바-나(Nibbāna)는 반대입니다. 닙바-나를 얻으려면, 세상(로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상에 들러붙음은 세상의 세 가지 모든 로까-(까-마, 루빠, 아루빠)와 관련된 ‘왜곡된 산냐-’에 기반합니다.
2025년 2월 8일 작성
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 ‘Distorted Saññā, Loka, and Nibbāna’
로까와 닙바-나 ㅡ 개관
1. 세상에 들러붙음은 세상의 세 가지 모든 로까-(까-마, 루빠, 아루빠)와 관련된 ‘왜곡된 산냐-’에 기반합니다. 닙바-나(아라한과)를 얻으려면, 먼저 소따빤나 단계에서 (위 도표에 표시된) ‘세상의 참된 본질(아닛짜, 둑카, 아낫따 특성)을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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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소따빤나는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를 육성하여 까-마 로까(kāma loka)와 연관된 ‘왜곡된 산냐-’를 극복해야 하는데, 이는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서 성취됩니다. 그것은 까-마 로까에서 성취되거나 (자-나를 육성함으로써) 루빠 로까를 통해 성취될 수 있습니다. 다음 포스트에서 그 세부 사항을 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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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아나-가미는 아라한과에 이르기 위해 사띠빳타-나를 더욱 육성하여 루빠 로까와 아루빠 로까와 연관된 ‘왜곡된 산냐-’를 극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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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단계들은 위 도표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2. 위 도표는 이전 두 개의 포스트인 ‘까-마 산냐- ㅡ 우회하여 사띠빳타-나를 육성하는 방법’와 ‘짝쿠 윈냐-나에는 오염이 없는가?’에 있는 도표를 확장한 것입니다. 그 두 개의 도표를 인쇄하여 위 도표를 논의하는 동안 참조해 보세요. (주: 필자는 후자의 포스트에 있는 도표는 수정하였습니다.) 필자는 프레젠테이션을 점진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필자도 저의 이해를 미세 조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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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툿자나(보통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오른쪽의 ‘분홍색 박스’ 안에 있습니다. 번뇌(오염원)와 왜곡된 산냐-가 없는 마음은 왼쪽에 표시된 ‘빠밧사라 마음’(빠밧사라 찟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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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은 살아 있는 아라한에게만(왼쪽에 표시된 대로 ‘아라한뜨 팔라 사마-빳띠’에 있는 동안) 빠밧사라 상태에 있습니다. 일상 생활을 하는 동안, 아라한의 마음은 (까-마 산냐-와 함께) 까-마 다-뚜(kāma dhātu)에 있습니다. 아라한이 루빠 자-나에 있을 때, 그 마음은 (루빠 산냐-와 함께) 루빠 다-뚜에 있습니다. 아라한이 아루빠 사마-빳띠에 있을 때, 그 마음은 (아루빠 산냐-와 함께) 아루빠 다-뚜에 있습니다. 이 다뚜 상태들은 ‘분홍색 박스’의 바깥, 즉 31영역으로 된 세상의 바깥에 있습니다. 따라서, 아라한은 까-마, 루빠, 또는 아루빠 로까에 속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아닛따 특성’을 이해하기 쉬운 방식
3. 감각 입력을 받을 때, 뿌툿자나의 마음은 항상 바힛다 윈냐-나(bahiddha viññāna)에서 시작되어 ‘분홍색 박스’ 안으로 갑니다. 따라서, 도표에 표시된 대로, 그 마음은 항상 닙바-나에서 멀어집니다. 즉, 뿌툿자나의 마음은 항상 ‘세상 속으로 더 깊이’(위빠리나-마, viparināma), 즉, 도표의 오른쪽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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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에, ‘빠리나-마(parināma), 즉 ‘(닙바나로) 향상되는 이동’은 왼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위빠리나-마 ㅡ 두 가지 의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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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해서, 뿌툿자나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를 생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비상카-라로 행한 행위의 결실없음 또는 ‘아닛짜 특성’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 행위는 항상 마음을 ‘닙바-나의 닛짜 특성’에서 벗어나 ‘세상의 아닛짜 특성’으로 움직입니다. 그들은 세간의 즐거움을 갈구하고(우빠-다-나, upādāna)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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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누군가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적어도 ‘괴로움의 성스런 진리’(‘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또는 ‘간단히 말해서, 괴로움은 세간의 즐거움을 갈구하는 것’)를 이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첫 숫따에 있는 불교의 에센스’ 포스트의 #2를 참조하세요.
‘상요자나’는 마음이 ‘다-뚜 상태’에 머무르지 못하게 한다
4. 붓다께서는 세상을 세 가지 로까-, 즉 까-마 로까(kāma loka), 루빠 로까(rupa loka), 및 아루빠 로까(arupa loka)로 나누셨습니다. ‘산딧티꼬 ㅡ 그 의미는 무엇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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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 로까에 태어난 모든 이들의 마음은 먼저 까-마 다뚜(kāma dhātu)에 들어갑니다. 까-마 로까와 관련된 처음 다섯 가지 상요자나 중 적어도 하나가 끊어지지 않고 남아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 경우에, 마음은 자동적으로 바힛다 윈냐-나 단계로 이동하여 까-마 로까(kāma loka)/까-마 바와(kāma bhava)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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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빠 로까에 태어난 모든 이들(루빠 로까 브라흐마들)의 마음은 먼저 루빠 다뚜(rupa dhātu)에 들어갑니다. 루빠 로까와 관련된 네 가지 더 높은 상요자나(루빠 라-가, 마-나, 웃닷짜, 아윗자-) 중 적어도 하나가 끊어지지 않고 남아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 경우에, 마음은 자동적으로 바힛다 윈냐-나 단계로 이동하여 루빠 로까(rupa loka)/루빠 바와(rupa bhava)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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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루빠 로까에 태어난 모든 이들(아루빠 로까 브라흐마들)의 마음은 먼저 아루빠 다뚜(arupa dhātu)에 들어갑니다. 아루빠 로까와 관련된 네 가지 더 높은 상요자나(아루빠 라-가, 마-나, 웃닷짜, 아윗자-) 중 적어도 하나가 끊어지지 않고 남아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 경우에, 마음은 자동적으로 바힛다 윈냐-나 단계로 이동하여 아루빠 로까(arupa loka)/아루빠 바와(arupa bhava)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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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힛다 윈냐-나 단계로 전환되는 여부는 관련된 상요자나에 의해 결정됩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해당하는 상요자나가 끊어지지 않고 남아 있으면 마음이 자동적으로 ‘분홍색 박스’ 내의 세 가지 로까 중의 하나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5. 위 강조 표시된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몇가지 예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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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의 마음은 열 가지 모든 상요자나를 제거했습니다. 따라서, 결코 ‘분홍색 박스’ 내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일상 생활 동안, 아라한의 마음은 까-마 산냐-(kāma saññā)와 함께 까-마 다뚜(kāma dhātu)에 머물지만 오염은 없습니다. 그 아라한이 루빠 자-나(rupa jhāna)에 들어가면, 그 마음은 자-나 산냐-(jhāna saññā)와 함께 루빠 다-뚜(rupa dhātu)에 머무릅니다. 그 아라한이 아루빠 사마-빳띠(arupa samāpatti)에 들어가면, 그 마음은 아루빠 사마-빳띠 산냐-와 함께 아루빠 다-뚜에 머무릅니다. 도표에 표시된 바와 같이, 아라한이 어떤 유형의 왜곡된 산냐-도 없는 ‘아라한뜨 팔라 사마-빳띠’에 들어가면, 그 마음은 빠밧사라(pabhassara) 상태에 있습니다. ‘아라한뜨 팔라 사마-빳띠’와 까-마, 루빠, 또는 아루빠 산냐와 함께 다-뚜 단계에 있는 것과의 차이에 유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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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와 사까다-가-미는 다섯 가지 낮은 상요자나 중의 두 가지(까-마 라-가, 빠띠가)가 끊어지지 않고 남아 있으므로, 그들의 마음은 자동적으로 까-마 바와(kāma bhava)/까-마 로까(kāma loka)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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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가-미 단계에서는 까-마 로까와 연관된 다섯 가지 모든 상요자나가 끊어졌습니다. 따라서, 아나-가-미의 마음도 일상 생활에서 (까-마 산냐-와 함께 하지만 까-마 라-가가 없이) 까-마 다-뚜(kāma dhātu)에 머무릅니다. 아나-가-미가 자-나를 육성하면, 까-마 라-가(kāma rāga)가 없기 때문에 그것은 자동적으로 아리야 자-나가 됩니다. 자-나에 있는 동안, 아나-가-미는 루빠 라-가 상요자나(rupa rāga saṁyojana)가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그 마음은 루빠 로까(rupa loka)/루빠 바와(rupa bhava)에 머무릅니다. 자-나에 있는 동안 아나-가-미와 아라한 사이의 차이에 유의하세요.
‘왜곡된 산냐-’없이 삼마- 사띠(사띠빳타-나 부미)를 처음 경험
6. 뿌툿자나는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할 때 처음으로 ‘왜곡된 산냐-가 없는’ 삼마- 사띠(사띠빳타-나 부미)를 경험합니다. 소따빤나 팔라(Sotapanna phala) 순간에, 마음은 까-마 로까와 연관된 ‘왜곡된 산냐-’(또는 자-나에 있다면 루빠 로까와 연관된 ‘왜곡된 산냐-’)를 극복하고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umi)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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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마음은 그곳에 잠시만 머물고 까-마 로까/까-마 바와 또는 루빠 로까/루빠 바와로 돌아갑니다. 주: 도표가 보여주듯이, 뿌툿자나는 아루빠 로까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거나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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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는 사띠빳타-나를 육성함으로써 사띠빳타-나 부미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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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가 사띠빳타-나를 육성하기 시작하면, 그렇게 큰 노력이 없이도 사띠빳타-나에 돌아갈 수 있습니다(하지만 사소한 일은 아닙니다). 소따빤나는 수행을 통해 거기에 도달할 수 있고 거기에 머물러 더 높은 막가 팔라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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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몇몇 잘 알려진 제자들(위사-까 및 아나-따삔디까가 두 가지 예임)은 더 높은 도과를 성취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소따빤나로 남아 있었습니다.
소따빤나 단계에는 세상의 아닛짜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도달
7. ‘까-마 산냐- ㅡ 우회하여 사띠빳타-나를 육성하는 방법’의 도표에서는 마음이 바힛다 단계에 들어가면 닙바-나에서 멀어진다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위 도표에서 보듯이, 마음이 닙바-나(‘빠밧사라 마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 반대방향인 왼쪽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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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툿자나는 먼저 ‘나와 깜마(nava kamma)’를 극복해야 하고, 그 다음에 ‘뿌라-나 깜마’ 단계를 극복해야 합니다. 위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까-마 산냐-’를 극복하고 처음으로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umi)로 전환할 때까지 닙바-나를 향해 자신의 마음을 전환해야 합니다(‘분홍색 박스’ 내의 왼쪽). 곧 있을 포스트에서 이 과정을 논의하겠습니다. 먼저 ‘전체적인 개관’을 갖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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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툿자나가 (왼쪽의) 닙바-나를 향한 첫 걸음은 세상의 아닛짜, 둑카, 및 아낫따 특성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도덕적인 생활을 하고,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가 위 #1~#3에서 내린 결론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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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마음은 ‘나와 깜마’ 또는 ‘뿌라-나 깜마’ 단계에 있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왼쪽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첫 단계는 ‘나와 깜마’ 단계에서 행해지는 아꾸살라 깜마를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상요자나는 빤냐-(지혜)의 육성을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
8. 첫 번째 막가 팔라(소따빤나)에는 붓다 세계관의 전체적 개관이 마음에 스며들 때 도달됩니다. 그것은 까-마 다-뚜에서 바힛다 윈냐-나로 전환이 멈춰질 때까지는 미래의 괴로움이 멈춰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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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분홍색 박스’에 들어가는 순간, 마음은 항상 ‘분홍색 박스’ 내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기존의 괴로움에 더하기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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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 다-뚜에서 바힛다 윈냐-나로 전환을 멈추려면, 적어도 처음 세 가지 상요자나를 끊어야 합니다. (세 가지 모두 세상에 대한 잘못된 견해, 즉 세간의 즐거움이 사람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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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 로까에 있는 뿌툿자나의 경우(인간을 생각해 보면), ‘분홍색 박스’ 안으로 자동 이동은 처음 다섯 가지 상요자나, 즉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 위찌낏차-(vicikicchā),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āmāsa), 까-마 라-가(kāma rāga), 및 빠띠가(paṭigha)를 제거함으로써만 피할 수 있습니다. 처음 세 가지는 ‘분홍색 박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소따빤나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삭까-야 딧티는 세상이 지속적인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삭까-야 딧티는 법문을 듣거나, 읽거나, 위의 생각을 숙고하는 동안에 제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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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소따빤나는 까-마 라-가(그리고 까-마 라-가의 부산물인 빠띠가)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왜곡된 까-마 산냐-(kāma saññā)에 들러붙고 까-마 로까(kāma loka)에 들어갑니다. 까-마 라-가(kāma rāga)를 제거하는 방법은 까-마 산냐-에 들러붙는 경향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Sāriputta Sutta (AN 3.33)’를 참조하세요. 곧 있을 포스트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요약해 보겠습니다.
까-마 라-가를 제거하여 아나-가-미 단계에 도달
9. 까-마 산냐-는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를 육성함으로써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사띠빳타-나를 육성하려면 감각 입력에 들러붙음이 신기루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왜곡된 산냐-(산자-나-띠)에 속음 ㅡ 들러붙음(땅하-)의 기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인간은 이와 연관된 (왜곡된) 까-마 산냐-로 인해 빤짜 까-마(pañca kāma)(다섯 가지 육체 감각으로 경험됨)에 들러붙습니다. 까-마 산냐-는 그것이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해함으로써만 극복될 수 있습니다. 즉, 까-마 산냐-는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umi)에 있는 동안 위빠사나-와 함께만 극복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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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를 육성한 사람들은 까-마 산냐-(kāma saññā)에 들러붙는 경향을 일시적으로 억눌렸습니다.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 한 채, 자-나를 얻었고, 그래서 여전히 10가지 윤회 족쇄(상요자나)를 모두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나 상태에 있을 때, 그들은 루빠 로까 브라흐마(rupa loka Brahma)의 마음성향과 비슷한 마음성향입니다. 만약 그들이 자-나 사마-빳띠(즉, 자-나 찟따가 연속적으로 흐르는 상태)에 있다면, 그들의 마음은 사마-빳띠에 있는 동안에는 까-마 로까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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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들이 자-나에서 나오자마자 이런 마음은 다시 까-마 산냐-(kāma saññā)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즉, 그들은 항상 오른쪽의 ‘분홍색 박스’ 안에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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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설명은 또한 아루빠 사마-빳띠에도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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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루빠 자-나(rupa jhāna)와 아루빠 사마-빳띠(arupa samāpatti)에 들어갈 수 있는 요기(수행자)는 마음대로 그 정신 상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재탄생 과정에 갇혀 있습니다. 즉, ‘분홍색 박스’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브라흐마 영역의 (왜곡된) 산냐-
10. 16가지 루빠 로까 브라흐마(rupa loka Brahma) 영역에 있는 브라흐마들은 그 수명 전체 동안에는 까-마 산냐-(kāma saññā)가 일어나는 것이 보류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보고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루빠 산냐-(rupa saññā)와 삿다 산냐-(sadda saññā)의 일부를 그대로 유지하는데, 감각적 즐거움(까-마 앗사-다, kāma assāda)와 연관된 광경과 소리만이 그들에게 산냐-(saññā)를 촉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보거나 듣는 것에 대해 까-마 라-가(kāma rāga)를 생성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성향은 자-나 상태에 있는 인간의 마음성향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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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가지 아루빠 로까 브라흐마(arupa loka Brahma) 영역에 있는 브라흐마들은 오직 아루빠 사마-빳띠(arupa samāpatti)의 ‘담마 산냐-(dhamma saññā)’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보거나 들을 수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제한된 담마 산냐-는 그들의 수명 동안 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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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아나리야 브라흐마들은 그 수명의 마지막에 인간으로 태어납니다. 그 후, 그들의 미래 재탄생은 어떤 영역에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11. 위의 도표에 따라 보면, 루빠 로까 브라흐마에 대한 감각 입력은 루빠 로까(rupa loka)에 상응하는 바힛다 윈냐-나(bahiddha viññāṇa)에서 시작하며, 결코 ‘루빠 다-뚜(rupa dhātu)’ 단계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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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마음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서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에 이르지 않기 때문에,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만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재탄생을 가져올 수 있는 ‘강한 깜마’를 축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많은 미래의 재탄생을 촉발할 만큼 충분한 깜마 비자(kamma bija, 업씨앗)를 축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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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슷한 설명이 아루빠 로까 브라흐마(arupa loka Brahma)에도 적용됩니다.
아라한의 마음은 결코 ‘분홍색 박스’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12. 위 #2에서 가리켜 보인 바와 같이(그리고 위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살아있는 아라한의 마음은 일반적으로 ‘까-마 다-뚜(kāma dhātu)’에 있습니다. 마음이 까-마 다-뚜에 있는 동안 오염되지 않더라도, 그것은 (왜곡된) 까-마 산냐-(kamma saññā)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를 들어, 아라한도 꿀을 맛보면 달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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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이 자-나에 들어가면, 그 마음은 루빠 다-뚜(rupa dhātu)에 머뭅니다. 아라한은 ‘자-나의 즐거움’을 경험하지만 그것에 들러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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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이 아루빠 사마-빳띠(arupa samāpatti)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 마음은 아루빠 다-뚜(arupa dhātu)에 머뭅니다. 아라한은 ‘사마-빳띠의 즐거움’을 경험하지만 그것에 들러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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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이 아라한뜨 팔라 사마-디(Arahant-phala samādhi)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 마음은 그 어떤 ‘왜곡된 산냐-’가 없는 ‘빠밧사라 상태’에 있습니다(도표의 왼쪽 끝).
아나-가-미(그리고 아라한)만이 아리야 자-나에 있을 수 있다
13. 아나-가-미(Anāgāmi)가 자-나(jhāna)를 육성하면, 아리야 자-나(Ariya jhāna)가 됩니다(아나-가-미에게는 ‘까-마 라-가/빠띠가’가 제거되었기 때문에 까-마 로까에 속하지 않음). 아나-가-미는 루빠 라-가를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루빠 바와(rupa bhava), 즉 루빠 로까(rupa loka)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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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의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의 마음은 자-나에 있는 동안 ‘루빠 바와’, 즉 ‘루빠 로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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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중에 명확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포럼에서 문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