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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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쿠 윈냐-나에는 오염이 없는가?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 Is Cakkhu Viññāṇa Free of Defilements? ’ 포스트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ṇa) 또는 6가지 유형의 모든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는 라-가, 도사, 또는 모하로 오염됩니다. 더욱이, ‘루빠(rupa)’는 외부 실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짝쿠(cakkhu)’는 육체적 눈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뿌툿자나(보통 인간)는 빤짝칸다(pañcakkhandha)가 아니라 항상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에 들러붙습니다.

     

    2025년 1월 31일 작성; 2025년 2월 8일 개정(도표, #7~#9)

     

    빤짝칸다에는 짝쿠 윈냐-나가 없다

     

    1. ‘Chachakka Sutta (MN 148)’에 있는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 윈냐-낭(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 viññāṇaṃ)” 구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보는 사건’을 묘사합니다. 위 링크 주소에 있는 영어 번역은 “눈 의식(안식)은 눈과 광경(시각대상)에 의존하여 일어난다.”입니다.

     

    • * 따라서, ‘짝쿠(cakkhu)’, ‘루빠(rupa)’, 및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ṇa)’가 각각 ‘눈’, ‘광경(시각대상)’, 및 ‘눈 의식’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 * “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 viññāṇaṃ” 과정이 순수하게 ‘보는 사건’에서 처음에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흔한 오해입니다. 이것은 종종 오염이 없는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라고 잘못 불립니다. 필자도 몇 년 전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웹사이트에는 개정이 필요한 구 포스트들이 있습니다.

    • * 그 모든 번역은 100% 잘못입니다. 이 번역은 우리가 실제로 우리의 ‘육체적 눈’으로 ‘외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그러나, 붓다께서는 보통 사람(뿌툿자나)은 항상 ‘외부 대상의 왜곡된 버전’(rupa āyataṇa)을 보고 짝쿠 인드리야(cakkhu indriya)는 항상 오염되어 짝쿠 아-야따나(cakkhu āyataṇa)로 작용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따라서,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ṇa)는 단순한 ‘눈 의식’ 이상입니다. 즉, ‘단지 보는 것’이 아닙니다.

    • * ‘외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diṭṭthe diṭṭhamattaṁ bhavissati’) 유일한 사람은 아라한입니다.

     

    2. 이전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10가지 유형의 상요자나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뿌툿자나의 마음은 항상 순간적으로 모든 감각 입력에 들러붙습니다. ‘까-마 산냐- ㅡ 우회하여 사띠빳타-나를 육성하는 방법’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는 빤짝칸다(pañcakkhandha)에 있고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는 그 위빠-까 윈냐-나에 들러붙을 때만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것이 이해해야 할 결정적인 점입니다!

    • * 따라서, ‘짝쿠’는 ‘오염된 눈 기능(기관)’, 즉 ‘짝쿠 아-야따나(cakkhu āyataṇa)’를 의미하고, ‘루빠’는 ‘마음이 만든 외부 루빠 버전’(rupa āyataṇa)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짝쿠 윈냐-나는 ‘오염된 눈 의식’을 의미합니다.

    • * 세가지 모두(짝쿠, 루빠, 및 짝쿠 윈냐-나)는 아라한과에 도달한 후에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 * 아라한의 마음은 “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 viññāṇaṃ”를 거치지 않습니다. 아라한이 보는 것에 대해서는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ṇa)라고 하지 않고 “diṭṭhe diṭṭhamattaṁ bhavissati”라고 합니다. ‘감각 입력은 (왜곡된) 산냐-와 빤쭈빠-다-낙칸다를 촉발시킨다’ 포스트의 #7을 참조하세요.

    • * 그것이 아라한 단계에서 성취될 때, 그 아라한은 여전히 육체적 눈을 가지고, 세상에 시각대상이 있고, 아라한은 여전히 ‘눈 의식’, 즉 ‘시각 감각’을 가집니다.

     

    루빠는 ‘정신적 구성 개념’이다 ㅡ 그것은 ‘루빠 아-야따나’다 

     

    3. 그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보는 사건’에서 마음은 순식간에 많은 단계를 거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 6가지 유형의 루빠에 기반한 ‘마음 오염의 진행’은 SN 14에 있는 많은 숫따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몇 가지 핵심 단계는 ‘Saññānānatta Sutta (SN 14.7)’에 간결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필자는 이 단계들을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 포스트와 여러 다른 포스트들에서 논의하였습니다. 붓다께서는 이 과정은 여러 다른 방식(예를 들어, 이답빳짜야따- 빠띳짜 사뭅빠-다)으로 설명하셨으며, 필자는 아래에서 그런 다양한 버전을 언급하겠습니다.

    • * 까-마, 루빠, 및 아루빠 로까의 모든 영역에 대한 ‘마음 오염 과정’의 일반적인 개요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트인  ‘까-마 산냐- ㅡ 우회하여 사띠빳타-나를 육성하는 방법’의 맨 위에 있는 도표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다음 도표에서는 필자가 (까-마 로까에 대한) 주된 단계를 보여주기 위해 그것을 수정하였습니다.

     

    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 ‘Distorted Sanna in Kama Loka -2

     

    도표의 주 특징

     

    4. 감각 입력을 받으면,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의 마음은 (왜곡된) 까-마 산냐-와 함께 ‘까-마 다-뚜(kāma dhātu)’에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꿀을 조금 맛보면 단맛을 자동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도표에 표시된 ‘까-마 다-뚜’ 단계입니다. 까-마 로까(kāma loka)와 관련된 5가지 상요자나(saṁyojana)를 제거한 아라한뜨(또는 아나가미)의 마음은 이 까-마 다-뚜 상태에 머뭅니다.

     

    • * 모든 다른 이들의 마음은 자동적으로 ‘바힛다 윈냐-나(bahiddha viññāṇa)’와 ‘앗잣따 윈냐-나(ajjhatta viññāṇa)’ 단계에 이릅니다.

    • * 이 두 단계가 끝나면, 짝꾸 인드리야(cakkhu indriya)는 짝쿠 아-야따나(cakkhu āyataṇa)로 전환되는데, 이 감각 기능은 마음에 라-가, 도사, 또는 모하로(즉, 상깝빠 생성으로) 대상을 계속 보는데 사용됩니다. 외부 루빠의 이미지는 마음이 만든 ‘루빠 아-야따나(rupa āyataṇa)’가 됩니다. 즉 그 루빠는 마음에 라-가, 도사, 또는 모하로 주의 집중의 초점이 됩니다. 이것이 도표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 * 더욱이, 마음은 (시각 대상을 인식하는) ‘눈 의식’을 넘어 (그 시각 대상과 관련된 기대로) 짝꾸 윈냐-나로 나아갔습니다.  

    • * 이 ‘바힛다 윈냐-나(bahiddha viññāṇa)’와 ‘앗잣따 윈냐-나(ajjhatta viññāṇa)’에는 상응하는 ‘바힛다 루빠’ / ‘앗잣따 루빠’, ‘바힛다 웨다나-’ / ‘앗잣따 웨다나-’, ‘바힛다 산냐-’ / ‘앗잣따 산냐-’, ‘바힛다 상카-라’ / ‘앗잣따 상카-라’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유형은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의 11가지 범주에 포함됩니다. ‘다섯 무더기(오온) - 소개’ 포스트의 #1을 참조하세요. 물론, 보통 인간(뿌툿자나)는 결코 빤짝칸다(pañcakkhandha)를 경험하지 않고 항상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를 경험합니다.  ‘감각 입력은 (왜곡된) 산냐-와 빤쭈빠-다-낙칸다를 촉발시킨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5. 이답빳짜야따- 빠띳짜 사뭅빠-다(PS) (‘이답빳짜야-따- 빠띳짜 사뭅빠-다 ㅡ 일생 중의 바와 및 자-띠’ 포스트 참조)도 감각 입력을 받을 때 마음이 진화하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 과정과도 연관지어 보겠습니다. 

     

    • * 감각 입력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로 PS(연기) 과정이 시작되게 합니다. 이것은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Chachakka Sutta (MN 148)’의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 윈냐-낭(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 viññāṇaṃ)”과 동일합니다. 

    • *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의 다음 단계는 “띤낭 상가띠 팟소(tiṇṇaṁ saṅgati phasso)”입니다. 위 도표에서, 그 단계는 마음에 일어나는 까-마 구나로 생기는 ‘라-가, 도사, 모하로 삼팟사’에 해당합니다. PS 단계 “윈냐-나 빳짜야- 나-마루-빠, 나-마루-빠 빳짜야- 살라-야따나,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소”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 * 다음, 차착까 숫따(그리고 PS)에서 “팟사 빳짜야- 웨다나-”는 “삼팟사 자- 웨다나-”입니다. 다음에, 차착가 숫따(그리고 PS)에서, 또한 위 도표에서, “웨다나- 빳짜야- 땅하-”가 이어집니다. 물론, 이 ‘웨다나-’는 “삼팟사 자 웨다나-”입니다.

    • * 그 단계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며 위 도표의 ‘뿌라-나 깜마’ 단계에 있습니다.

     

    6. 강한 깜마 축적은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 단계에서 시작되고 위 도표에서 ‘나와 깜마’(새로운 깜마) 단계에 속합니다. 차착까 숫따에서 마음의 진행 설명은 이 단계에서 그칩니다.

     

    • * PS에서, “우빠-다-나 빳짜야 바오-” 단계는 ‘나와 깜마’ 단계의 시작입니다. 그것은 마음, 말, 그리고 육체 행위(까-야, 와찌, 마노 깜마)을 통한 의식적 깜마 축적을 나타냅니다. 

    • * 위 도표에서, 이것은 ‘Madhupiṇḍika Sutta (MN 18)’를 포함하여 SN 14의 많은 숫따와 다른 여러 숫따에 따르면 여러 단계들로 나누어집니다. 다양한 숫따의 설명은 단계 수가 다를 수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자기 일관성이 있습니다.

    • * 예로서, ‘Saññānānatta Sutta (SN 14.7)’를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의 경우) 시각 입력을 받을 때의 마음 진행

     

    7. 6가지 유형의 루빠에 기반한 ‘마음 오염’의 진행은 SN 14의 많은 숫따에서 논의됩니다. 그것은 'Saññānānatta Sutta (SN 14.7)'에서 시각 사건에 대해 간결하게 설명됩니다. 

     

    그곳에서는 “Rūpa dhātuṁ, bhikkhave, paṭicca uppajjati rūpa saññā, rūpa saññaṁ paṭicca uppajjati rūpa saṅkappo, rūpa saṅkappaṁ paṭicca uppajjati rūpacchando, rūpacchandaṁ paṭicca uppajjati rūpapariḷāho, rūpapariḷāhaṁ paṭicca uppajjati rūpapariyesanā”, , “루-빠 다-뚜는 그 광경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일으킨다(rūpa saññā). 그 인식은 그것에 대한 생각을 일으킨다(rūpa saṅkappa). 생각은 그런 광경에 대한 바람을 일으킨다(rūpacchanda). 광경에 대한 바람은 광경에 대한 열정을 일으킨다(rūpa pariḷāha). 광경에 대한 열정은 광경의 추구/조사를 일으킨다(rūpa pariyesanā).”라고 합니다. 마지막 것에서, ‘빠리예사나-(pariyesanā)’는 ‘조사’를 의미하는데, 누군가 무엇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것을 최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조사합니다.

     

    • * 그 다음, 구절은 6가지 모든 감각에 대해 반복되는데, “dhamma dhātuṁ paṭicca uppajjati dhamma saññā, dhamma saññaṁ paṭicca uppajjati dhamma saṅkappo, dhamma saṅkappaṁ paṭicca uppajjati dhammacchando, dhammacchandaṁ paṭicca uppajjati dhamma pariḷāho, dhammapariḷāhaṁ paṭicca uppajjati dhamma pariyesanā.”로 끝납니다.

    • * 예를 들어, 소리를 들을 때 삿다 다-뚜(sadda dhātu)가 작용합니다. 삿다 다-뚜는 그 소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일으킵니다(sadda sañña). 그 인식은 그 소리에 대한 생각을 일으킵니다(sadda saṅkappa).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런 소리에 대한 바람을 일으킵니다(saddacchanda). 소리에 대한 바람은 소리에 대한 열정을 일으킵니다(sadda pariḷāha). 그런 소리에 대한 열정은 그런 소리의 추구/조사를 일으킵니다(sadda pariyesanā).

     

    8. 마음이 빠리예사나-(pariyesanā) 단계에 도달하면 깜마 생성이 시작되는데, “Kāmapariyesanaṁ, bhikkhave, pariyesamāno assutavā puthujjano tīhi ṭhānehi micchā paṭipajjati—kāyena, vācāya, manasā”, 즉,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은 몸, 말, 및 마음이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깜마를 생성한다”입니다. 예를 들어, “Sanidāna Sutta (SN 14.12).”를 참조하세요.

     

    • * 그 모든 것은 짧은 시간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거나, 훔치거나, 성적으로 부적절하게 행하거나, 심지어 죽이는 결정은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른 경우에는 수반되는 ‘계획 수준’에 따라 몇 분에서 몇 시간, 며칠이 걸릴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모든 감각 입력이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루 중에, 우리는 까-야 깜마(kāya kamma)  및 와찌 깜마(vaci kamma)를 행하는 단지 몇 가지 감각 입력에만 강하게 들러붙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하는 것’(위딱카/위짜-라를 행함)은 와찌 깜마에 포함됩니다.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짝쿠는 ‘정신적 구성 개념’이다 ㅡ 그것은 ‘짝쿠 아-야따나’다

     

    9. 'Kammanirodha Sutta (SN 35.146)': “Cakkhu, bhikkhave, purāṇa kammaṁ abhisaṅkhataṁ abhisañcetayitaṁ vedaniyaṁ daṭṭhabbaṁ..”

     

    번역:짝쿠(cakkhu)뿌라-나 깜마(깜마 축적이 일어나는 감각 입력의 초기 단계를 의미)를 통해 일어난다. 이는 아비상카-라로 이어지고(abhisaṅkhataṁ) 아비산쩨따나-로 이어질(abhisañcetayitaṁ) 수 있으며 (마음이 만든) 웨다나-로 이어진다(vedaniyaṁ)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daṭṭhabbaṁ)..” 

     

    • * 대상을 볼 때, “짝쿠 윈냐-나가 짝쿠와 루-빠에 기반하여 일어난다”, 즉, “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 viññāṇaṁ.” 입니다. 이 단계에서, 짝쿠 윈냐-나는 이미 ‘앗잣따 윈냐-나’ 단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라한뜨나 아나-가-미의 경우, 그것은 까-마 다-뚜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 * 여기서, ‘짝쿠(cakkhu)’는 ‘눈’을 의미하지 않는데, 그것은 오염된 ‘짝쿠 아-야따나’를 의미합니다. (대비하여, 아라한뜨/아나-가-미의 경우에는 오염되지 않은 ‘짝쿠 인드리야’임). 위 구절이 말하는 바는 바로 이것인데, 마음이 ‘까-마 다-뚜’ 단계에서 ‘까-마 바와’ 단계로 옮겨갈 때 ‘왜곡된 산냐-’에 의해 오염되었을 때 이미 오염되었다는 것입니다. 

    • * 어떤 사람들은 ‘뿌라-나 깜마’를 ‘과거 깜마’의 결과로 해석함으로써, “짝쿠뿌라-나 깜마를 통해 일어난다”를 “육체적 눈과거 깜마로 인해 일어난다”로 해석합니다. 실로, 그것은 위 링크 주소의 번역인데, “눈은 예전(구) 행위다”라는 번역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잘못된 번역입니다. 우리가 알 수 있듯이, ‘Pahāna Sutta (SN 35.24)’에서는 아라한과를 얻으려면 ‘짝쿠가 제거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라한은 육안을 잃지 않습니다! 

     

    짝쿠, 루빠, 짝쿠 윈냐-나는 이 생에서 일어나지 않게 멈춰질 수 있다

     

    10. ‘Pahāna Sutta (SN 35.24)’에서는 “Cakkhuṁ, bhikkhave, pahātabbaṁ, rūpā pahātabbā, cakkhuviññāṇaṁ pahātabbaṁ..”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거기서 “눈을 버려야 한다. 광경(시각 대상)을 버려야 한다. 눈 의식을 버려야 한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먼저, ‘pahātabbaṁ’는 숫따의 문맥에서 ‘제거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번역은 육체적 눈, 외부 대상, 눈 의식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 올바른 번역은 “짝쿠는 제거되어야 한다. 루빠는 제거되어야 한다. 짝쿠 윈냐-나는 제거되어야 한다”입니다. 여기서 ‘짝쿠(cakkhu)’는 ‘짝카-야따나(짝쿠 아-야따나)’고, ‘루빠’는 ‘루빠-야따나(루빠 아-야따나)’며, ‘짝쿠 윈냐-나’는 그것들을 보는 것에 더하여 루빠를 즐기는 기대를 가지는 것입니다.

    • * 아라한과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 눈, 외부 대상, 또는 그 외부 대상을 보는 능력(기능)을 제거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라한과에 도달한 후에, 아라한은 시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외부 세계는 그대로 남아 있고, 아라한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외부 세계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 아라한뜨 팔라 순간에 제거되는 것은 짝쿠 아-야따나, 루빠 아-야따나, 짝쿠 윈냐-나입니다. 후자에 관해서, 아라한이 보는 것은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ṇa)’라고 하지 않고 ‘딧테 딧타맛땅 바윗사띠(diṭṭthe diṭṭhamattaṁ bhavissati)라고 합니다. ‘감각 입력은 (왜곡된) 산냐-와 빤쭈빠-다-낙칸다를 촉발시킨다’ 포스트의 #7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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