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아-나-빠-나사띠 숫따 ㅡ 완전한 개요
원문: Sutta Interpretation 섹션의 ‘Ānāpānasati Sutta – Complete Overview’ 포스트
아-나-빠-나사띠 숫따(Ānāpānasati Sutta)는 마음 계발의 여러 단계를 개괄적으로 설명합니다. 이 숫따는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데 최소한 필요한 기본인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로 시작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까-예 까-야-누빳사나-(Kāye Kāyānupassanā)로, 일시적으로 ‘까-마 산냐-(kāma saññā)’를 극복하여 마음대로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 다음, 더 높은 막가 팔라(도과)를 얻기 위해 삿따 봇장가(Satta Bojjhaṅga)를 육성합니다.
2025년 11월 22일 작성/개정
아-나-빠-나사띠 숫따의 청사진
1. ‘Dutiyaānanda Sutta (SN 54.14)’에서 붓다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물으셨습니다. “아난다여, 한 가지 것을 개발하고 육성하면 네 가지 것을 달성하고, 그 네 가지 것을 개발하고 육성하면 일곱 가지 것을 달성하고, 그 일곱 가지 것을 개발하고 육성하면 두 가지 것을 달성하는 것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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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 직접 답을 표식 2.2에서 알려주셨는데, “Ānāpānassatisamādhi, ānanda, ekadhammo bhāvito bahulīkato cattāro satipaṭṭhāne paripūreti, cattāro satipaṭṭhānā bhāvitā bahulīkatā satta bojjhaṅge paripūrenti, satta bojjhaṅgā bhāvitā bahulīkatā vijjāvimuttiṁ paripūrentīti.”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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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아-나-빠-나사띠 사마디(Ānāpānassati samādhi)를 개발하고 육성하면 짯따-로 사띠빳타-나(cattāro satipaṭṭhāna)을 달성하는 한 가지 것이다. 짯따-로 사띠빳타-나를 개발하고 육성하면 삿따 봇장가(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인)를 달성한다. 그리고, 삿따 봇장가를 개발하고 육성하면 지혜와 이 세상으로부터 해방, 즉 닙바-나(Nibbāna), 즉 아라한과(Arahanthood)를 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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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 과정을 시작하려면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여야 하며, 아-나-빠-나사띠의 첫 단계에 들어가려면 최소한 사띠의 최소 레벨을 갖춰야 합니다. 아래 #3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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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링크의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으로 몰입하는 것이 한 가지 것이고… 그것을 개발하고 육성하면 앎과 해방을 성취한다.” 호흡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어떻게 아라한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번역자에게 이 질문을 한 사람이 있나요?
아-나-빠-나사띠의 단계들
2. ‘아-나-빠-나사띠 ㅡ 사띠빳타-나와 관계’ 포스트에서 가리켜 보인 바와 같이, 아-나-빠-나사띠의 첫 단계는 닙바-나의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전체 빤쭈빠-다-낙칸다 까-야(숫따에는 대부분 ‘까-야’로만 언급됨)의 아닛짜 본질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나-빠-나사띠의 첫 단계 ㅡ '까-야'의 아닛짜 본질을 봄’과 ‘아-나-빠-나사띠의 첫 단계 ㅡ 아-나-빠-나사띠 숫따의 구절’ 포스트에서 첫 단계를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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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단계는 일시적으로 까-마 산냐-(kāma saññā)를 극복하여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문자 그대로는 ‘사띠, 또는 마음의 초점을 사띠빳타-나 부-미에 두는 것’을 의미함)를 육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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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의한 바와 같이,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는 아-나-빠-나사띠의 첫 단계에서 육성되고, 까-예 까-야-누빳사나-(Kāye Kāyānupassanā)는 아-나-빠-나사띠의 두 번째 단계에서 육성됩니다. ‘까-예 까-야-누빳사나 ㅡ 사띠빳타-나의 세부 사항’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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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단계는 정기적으로 사띠빳타-나 부-미에 접근하여 ‘삿따 봇장가(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인)를 육성하여 더 높은 막가 팔라(도과)를 얻는 것입니다. ‘아-나-빠-나사띠 ㅡ 사띠빳타-나와 관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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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식이 있는) 두 개의 숫따를 모두 인쇄해서 준비해 두면 좋습니다. 그러면 필자가 구절들을 언급할 때, 각자가 그 구절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나-빠-나사띠의 첫 단계에 대한 세부 사항
3. 다음 구절은 ‘Ānāpānasati Sutta (MN 118)’에 나와 있는데, “So satova assasati satova passasati.”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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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짧은 구절에는 많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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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사또와(satova)’는 ‘사띠와 함께’라는 뜻입니다. 이 첫 단계에서는 적어도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의 사띠(sati)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로까(세상, loka)’, 즉 ‘빤쭈빠-다-낙칸다 까-야(pañcupādānakkhandha kāya)’, 또는 간단히 ‘까-야(kāya)’를 보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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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그 수준의 ‘사띠’를 높이려고 노력할 것이고 그것은 “So satova assasati satova passasati.”로 표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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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사사띠(assasati)’와 ‘빳사사띠(passasati)’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두 개의 숫따가 있습니다.
4. ‘Assāsappatta Sutta (SN 38.5)’는 “Yato kho, āvuso, bhikkhu channaṁ phassāyatanānaṁ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pajānāti, ettāvatā kho, āvuso, assāsappatto hotī’ ti.”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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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빅쿠가 여섯 가지 접촉(channaṁ phassāyatanānaṁ)의 기원(samudaya), 그 일어남의 그침(atthaṅgama, nirodha), 그것들의 만족(assāda), 그것들의 결함(ādīnava),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벗어남(nissaraṇa)을 참으로 이해하게 되면, 그 때 그들은 위안, 즉 ‘진정(열내림, cooling down)’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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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적어도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에 도달한 사람을 가리키고 여섯 가지 내부 아-야따나(짝카-야따나 내지 마나-야따나)에 들러붙는 것의 ‘아닛짜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한 자를 가리킵니다. 이는 ‘빤쭈빠-다-낙칸다 까-야(pañcupādānakkhandha kāya)’, 또는 간단히 ‘까-야(kāya)’의 ‘아닛짜 본질’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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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소따빤나 아누가-미로서 앗사-삽빳또(assāsappatto)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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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So satova assasati satova passasati”에 참여하면 소따빤나 팔라(Sotapanna phala) 순간에 이를 수 있습니다.
5. ‘Paramaassāsappatta Sutta (SN 38.6)’는 그런 이해가 완전해지면, 아라한 단계, 즉 ‘궁극적(parama) 진정(열내림)’에 도달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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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구절은 “Yato kho, āvuso, bhikkhu channaṁ phassāyatanānaṁ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viditvā anupādāvimutto hoti, ettāvatā kho, āvuso, paramassāsappatto hotī ‘ti.”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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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서, ‘yathābhūtaṁ viditvā anupādāvimutto hoti’는 그 아-야따나(āyatana)의 참된 본질을 완전히 파악하고 재탄생 과정에서 벗어난 아라한을 지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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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아라한은 ‘궁극적 위안’, 즉 ‘궁극적 진정’(parama assāsa patto)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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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을 성취하려면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의 모든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6. 여기서 ‘앗사(assa)’는 ‘받아들이다’라는 뜻이지만, 구체적으로는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빳사(passa)’는 지혜로 그것을 파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나또(jānato)’와 ‘빳사또(passato)’라는 낱말도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 참된 의미를 파악한 사람을 지칭합니다. ‘자-나또 빳사또와 아-자-니야 ㅡ 기억해야 할 결정적인 말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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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앗사-사 빳또(assāsa patto)’(‘assāsappatto’로 운이 맞춰짐)는 가르침을 올바르게 받아들이고 파악하는 것을 의미하며, 즉 ‘빳사또(passato)’와 같습니다. 빳사또의 첫 번째 레벨이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 즉 성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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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parama asāsappatto’(paramassāsappatto)는 아라한이 될 것입니다.
아-나-빠-나사띠의 두 번째 단계 = 사띠빳타-나 =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감
7. 아-나-빠-나사띠의 두 번째 단계는 ‘Ānāpānasati Sutta (MN 118)’의 표식 23.1에서 28.1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빠알리 문헌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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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thaṁ bhāvitā ca, bhikkhave, ānāpānassati kathaṁ bahulīkatā cattāro satipaṭṭhāne paripūreti?” 번역: 아-나-빠-나사띠를 어떻게 육성하여 사띠빳타-나를 달성하는가? (그것은 까-마 라-가와 빠띠가를 제거하여 사띠빳타-나 부-미에 마음대로 들어가는 것임에 주목하세요.)
(@24.1) Yasmiṁ samaye, bhikkhave, bhikkhu dīghaṁ vā assasanto ‘dīghaṁ assasāmī’ti pajānāti, dīghaṁ vā passasanto ‘dīghaṁ p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ṁ vā assasanto ‘rassaṁ 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ṁ vā passasanto ‘rassaṁ passasāmī’ti pajānāti; ‘sabbakāyapaṭisaṁ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sabbakāyapaṭisaṁ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ṁ kāyasaṅkhāraṁ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ṁ kāyasaṅkhāraṁ passasissāmī’ti sikkhati;
(@24.5) kāye kāyānupassī, bhikkhave, tasmiṁ samaye bhikkhu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Kāyesu kāyaññatarāhaṁ, bhikkhave, evaṁ vadāmi yadidaṁ—assāsapassāsā. Tasmātiha, bhikkhave, kāye kāyānupassī tasmiṁ samaye bhikkhu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두 숫따에 공통 구절
8. 까-예 까-야-누빳사나-(Kāye Kāyānupassanā)에 관하여, 아-나-빠-나사띠 숫따의 첫 구절(표식 24.1)은 마하-사띠빳타-나 숫따의 그것(표식 2.9)과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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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구절은 ‘까-예 까-야-누빳사나 ㅡ 사띠빳타-나의 세부 사항’의 #8부터 논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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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서 논의된 바와 같이, ‘빳삼바양(Passambhayaṁ, passam ubhayaṁ) 까-야상카-랑(kāyasaṅkhāraṁ)’은 ‘까-예 까-야-누빳사나-’의 두 번째 단계에서 ‘두 가지 유형의 까-야 상카-라를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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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passambhayaṁ kāyasaṅkhāraṁ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ṁ kāyasaṅkhāraṁ passasissāmī’ti sikkhati’ 구절은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 내의 두 가지 유형의 ‘까-야’(앗잣따 까-야와 바힛다 까-야)를 나타냅니다. ‘까-예 까-야-누빳사나 ㅡ 사띠빳타-나의 세부 사항’의 #13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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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아-나-빠-나사띠 숫따의 구절(표식 24.5)(위 #7 참조)은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의 까-예 까-야-누빳사나-에 해당하는 구절과 다릅니다. 그것은 다른 (하지만 관련된) 측면을 묘사합니다. 이제 그것을 논의해 보겠습니다.
까-야 상카-라 = 빤쭈빠-다-낙칸다 까-야와 관련된 모든 상카-라
9. 두 숫따의 어느 곳에서나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에 있는 ‘까-야’는 육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빤쭈빠-다-낙칸다 까-야(pañcupādānakkhandha kāya)’를 가리킨다는 점에 유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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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여기서 ‘까-야 상카-라’는 육체로 행한 깜마(kamma)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빤쭈빠-다-낙칸다 까-야’에서 일어나는 모든 유형의 상카-라를 지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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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의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까-야 상카-라’는 대부분 상깝빠(saṅkappa)라고 불리는 상카-라의 약한 버전입니다.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의 #7을 참조하세요.
까-예수 까-얀냐따라-항 ㅡ 앗사-사빳사-사-의 더 깊은 측면
10. 아-나-빠-나사띠 숫따의 24.5절에는 “Kāyesu kāyaññatarāhaṁ, bhikkhave, evaṁ vadāmi yadidaṁ—assāsapassāsā.”라는 새로운 구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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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āyesu kāyaññatarāhaṁ, bhikkhave, evaṁ vadāmi yadidaṁ—assāsapassāsā”는 “안냐따라 까-야(aññatara kāya), 즉 (뿌라-나 깜마 단계의) 앗잣따 까-야와 바힛다 까-야를 이해해야 하고(assāsa)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passāsa)고 나는 말한다(vadāmi)”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빳사(passa)’가 ‘지혜로 본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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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āyaññatarāhaṁ(kāya aññatara ahaṁ)에서 아항(ahaṁ)은 붓다께서는 ‘나는 말한다’고 하실 때의 그 ‘나’를 지칭합니다. 빠알리 구절에는 많은 낱말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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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예 까-야-누빳사나 ㅡ 사띠빳타-나의 세부 사항’의 #9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까-야 안의 까-야’는 ‘빤쭈빠-다-낙칸다 까-야’의 ‘뿌라-나 깜마’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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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략히 논의한 바와 같이, 마음은 먼저 ‘나와 깜마’를 멈추고 뿌라-나 깜마 단계의 시작에 가까워져서 ‘까-마 산냐-’가 없는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가야 합니다. ‘아-나-빠-나사띠의 첫 단계 ㅡ 아-나-빠-나사띠 숫따의 구절’의 #7에서 시작하여 이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감
11. (일시적으로) ‘까-마 산냐-’에서 벗어나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가려면, 자신의 마음에서 (까-마 라-가와 빠띠가로 인한) 아빗자-(abhijjhā)와 도마낫사(domanassa)를 극복해야 합니다. 이는 까-예 까-야, 즉 뿌라-나 깜마 단계의 기원을 숙고하는 중에 일어납니다. 구체적으로, (뿌라-나 깜마 단계의) 앗잣따 까-야(ajhatta kāya)와 바힛다 까-야(bahiddha kāya)가 어떻게 ‘까-마 산냐-(kāma saññā)’에 자동적으로 들러붙음으로 인해 일어나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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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24.5절의 첫 부분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위 #7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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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예 까-야-누빳사나(Kāye Kāyānupassanā)를 실천함으로써, 로까(빤쭈빠-다-낙칸다 까-야)에 관하여 자신을 훈련(위네이야)하여 마음에서 (갈망과 불쾌로 인한) 아빗자-(abhijjhā)와 도마낫사(domanassa)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앞 구절, “kāye kāyānupassī, bhikkhave, tasmiṁ samaye bhikkhu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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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천을 통해, 우리는 마음대로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가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위빠사나-에 전념하거나, 더 구체적으로 삿따 봇장가를 육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나-빠-나사띠의 세 번째 단계입니다.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동안에 사띠가 함께 한다
12.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을 때, 우리는 (‘까-마 산냐-’에서 벗어난) 사띠와 함께 합니다. 아래 도표에 그 내용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 ‘Aniccaṁ vipariṇāmi aññathābhā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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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표는 ‘소따빤나 아누가-미와 오염된 마음의 아닛짜/위빠리나-미 본질’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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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예 까-야-누빳사나-(및 연관된 웨다나-수 웨다나-누빳사나- , 찟떼수 찟따-누빳사나-, 및 담메수 담마-누빳사나-)를 행함으로써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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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짧은 숫따인 ‘Sati Sutta (SN 47.44)’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뭇탓사띠 ㅡ 사띠 없는 자
13. 아-나-빠-나사띠 숫따의 찟떼수 찟따-누빳사나-에 대한 설명에는 “Nāhaṁ, bhikkhave, muṭṭhassatissa asampajānassa ānāpānassatiṁ vadāmi.”라는 구절(표식 26.6)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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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의미는 “나는 사띠가 적어도 소따빤나 아누가-미 수준에 이르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나-빠-나 사띠를 육성하는 것(그리고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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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뭇탓사띳사(muṭṭhassatissa)(muṭṭha sati를 지닌 자, 즉 뿌툿자나)로는 아-나-빠-나 사띠의 첫 단계조차 수행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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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다시피, 그 ‘최소한의’ 사띠 수준은 소따빤나 아누가-미 수준에서 세상(로까 또는 ‘빤쭈빠-다-낙칸다 까-야’와 동등)의 아닛짜 본질을 지혜롭게 볼 때 달성됩니다. ‘소따빤나 아누가-미와 오염된 마음의 아닛짜/위빠리나-미 본질’에서 논의된 ‘아닛짜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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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아-나-빠-나사띠의 첫 단계 ㅡ '까-야'의 아닛짜 본질을 봄’을 참조하세요. 물론, 이 제목에 있는 ‘까-야’는 ‘빤쭈빠-다-낙칸다 까-야’입니다.
14. 소따빤나 아누가-미는 아-나빠-나사띠의 첫 단계와 함께 처음으로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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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소따빤나는 사띠빳타-나 부-미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도록 아-나-빠-나사띠의 두 번째 단계를 육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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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에서 자세히 논의된 아-나-빠-나사띠의 두 번째 단계에 대한 세부 사항을 이해하는 것은 뿌툿자나에게도 유익할 것입니다. ‘까-예 까-야-누빳사나 ㅡ 사띠빳타-나의 세부 사항’을 참조하세요.
세 번째 단계에서 삿따 봇장가를 육성
15. 소따빤나가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가 머물 수 있는 능력을 얻으면, 삿따 봇장가(보통 ‘깨달음의 일곱 가지 요인’으로 번역됨)를 육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Ānāpānasati Sutta (MN 118)’의) 표식 29.1에서 시작하는 아-나-빠-나사띠의 세 번째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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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가지 봇장가의 첫 번째는 ‘사띠 삽봇장가(Sati Sabbojjhaṅga)’인데, 이는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동안에 ‘삼마- 사띠’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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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그들은 ‘까-마 산냐-(kāma saññā)’가 마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태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와 틸락카나(Tilakkhana)와 같은 담마 개념을 숙고할 수 있는데, 이를 담마위짜야 삽봇장가(Dhammavicaya Sabbojjhaṅga)(일곱 가지 삽봇장가 중의 두 번째)를 육성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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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다른 삽봇장가의 성취와 더 높은 막가 팔라(도과)로 이어지게 합니다.
요약
16. 위의 논의로 아-나-빠-나사띠 숫따와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필자의 노력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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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빠-나사띠 숫따는 아라한과에 도달하기 위한 기본 틀을 제공합니다.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는 사띠빳타-나를 육성하는 두 번째 단계에 대해 세부 사항을 제공합니다. ‘아-나-빠-나사띠 ㅡ 사띠빳타-나와 관계’에서 세 단계들을 가리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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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빠-나사띠의 첫 단계에서는 ‘sabbakāyapaṭisaṁ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sabbakāyapaṭisaṁ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구절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삽바까-야빠띠상웨디-(sabbakāyapaṭisaṁvedī)’는 ‘삽바 까-야(sabba kāya)’, 즉 다섯 가지 모든 요소(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를 포함하는 전체 ‘빤쭈빠-다-낙칸다 까-야’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이해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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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이 다섯 가지 요소가 감각 사건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우리는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에 대해 자세히 논의해야 합니다. 다음 포스트에서 이 주제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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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에 #12에서 언급한 다른 세 가지 유형의 아누빳사나-(웨다나-수 웨다나-누빳사나- , 찟떼수 찟따-누빳사나-, 및 담메수 담마-누빳사나-)를 논의하겠습니다.
17. 산냐- 개념에 대한 모든 관련된 포스트들은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며 (다음 순서로) 다음 섹션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자아가 있는가?’ 섹션의 '아낫따는 자아를 지칭하는가?(Does Anatta Refer To A Self?)’ 서브 섹션,
‘세 단계 실천’ 섹션의 ‘인식(산냐-) 이해를 통한 소따빤나 단계(Sotapanna Stage via Understanding Perception (Saññā)) 서브 섹션,
‘붓다 담마 ㅡ 상급’ 섹션.
‘바와나(명상)’ 섹션의 ‘명상 ㅡ 더 깊은 측면(Meditation ㅡ Deeper Aspects)’ 서브 섹션,
‘담마와 과학’ 섹션의 ‘붓다의 세계관(Worldview of the Buddha)’ 서브 섹션,
‘숫따(경) 해석’ 섹션의 ‘사띠빳타나 숫따 ㅡ 새로운 시리즈(Satipaṭṭhāna Sutta – New Series)’ 서브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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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모든 감각 사건에 대해 뿌툿자나에게 빤쭈빠-다-낙칸다( pañcupādānakkhandha )가 일어나는 걸까요? 적어도 어떤 경우에는 (오염 없이) 빤짝칸다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뿌툿자나가 모든 감각 입력에 대해 아윗자-(avijjā)로 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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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다음 포스트들에서 이 중요한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이는 내장된 산냐-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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