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소따빤나 아누가-미와 오염된 마음의 아닛짜/위빠라나-미 본질
원문: Sutta Interpretation 섹션의 ‘Sotapanna Anugāmi and Anicca/Viparināmi Nature of a Defiled Mind’ 포스트
소따빤나 아누가-미는 각자의 로까(빤쭈빠-다-낙칸다 또는 각자의 오염된 생각과 같음)의 아닛짜와 위빠리나-미 본질(특질)을 이해하는 자입니다. 이 두가지 특질은 감각 사건에서 빤쭈빠-다-낙칸다를 생성(또는 빠띳짜 사뭅빠-다 사이클을 시작)할 때마다 각자가 닙바-나에서 멀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2025년 10월 9일 작성
소개
1. 칸다 숫다(Khandha Sutta, SN 25.10)는 소따빤나 단계에 대한 몇 가지 핵심 사실을 나타냅니다. 그것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할 수 있습니다.
i. 소따빤나가 되기 위한 필수 요건은 몇 개의 간결한 구절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ii. 여기에는 두 가지 유형의 소따빤나 아누가-미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삿다-누사-리-(Saddhānusārī)와 담마-누사-리-(Dhammānusārī)입니다.
iii. 또한, 두 유형 모두는 죽기 전에 소따빤나 팔라 순간을 얻는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iv. 이 숫따는 또한 그들이 사악처(아빠-야-)에 태어나지 않는다고 확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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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ii)부터 (iv)까지 간략하게 논의한 다음, (i)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두 가지 유형의 소따빤나 아누가-미 ㅡ 삿다-누사-리-와 담마-누사-리-
2. ‘Khandha Sutta (SN 25.10)’는 “이 설명(아래에 논의됨)에 믿음을 가지고(saddahati) 이를 받아들이는(adhimuccati) 자를 믿음으로 따르는 자(Saddhānusārī)라고 한다. 그들은 성자(sappurisa)의 영역(bhūmi)에 들어갔고, 뿌툿자나의 영역(puthujjana bhūmi)을 초월했다.”고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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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식 2.1에서, 숫따는 “이 설명(아래에 논의됨)을 지혜로 이해하고(paññāya mattaso) 숙고한 후 받아들이는(nijjhānaṁ khamanti) 자를 지혜로 따르는 자(Dhammānusārī)라고 한다. 그들은 성자(sappurisa)의 영역(bhūmi)에 들어갔고, 뿌툿자나의 영역(puthujjana bhūmi)을 초월했다.”고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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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삿다-누사리(Saddhānusārī)도 충분한 지혜로 요건(아래 #5부터 시작하여 논의됨)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즉, 맹목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소따빤나 아누가-미는 죽기 전에 소따빤나가 된다
3. 표식 1.9와 2.3에서는, 삿다-누사리- 또는 담마-누사리-는 죽기 전에, 즉 동일한 생에서 소따빤나 팔라 순간을 얻는다(즉, 소따빤나가 됨)고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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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문에 소따빤나 아누가-미도 아빠-야-에 태어나지 않는 성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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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죽기 전에 반드시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므로, 아빠-야-(apāyā)에 재탄생하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소따빤나 아누가-미도 아빠-야-로부터 자유롭다
4. 여덟 아리야-(성자), 즉 ‘앗타 뿌리사 뿍갈라-(aṭṭha purisa puggalā)’가 있습니다. 그들은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 소-따빤나(Sōtapanna), 사까다-가-미 아누가-미(Sakadāgāmi Anugāmi),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아나-가-미 아누가-미(Anāgāmi Anugāmi), 아나-가-미(Anāgāmi), 아라한뜨 아누가-미(Arahant Anugāmi), 및 아라한뜨(Arahan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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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세 성자는 아빠-야-에 재탄생하는 것에서 벗어납니다. 사까다-가-미와 아나-가-미 아누가-미는 인간 영역에 재탄생하는 것에서도 벗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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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가-미와 아라한뜨 아누가-미는 까-마 로까(kāma loka)에서 벗어납니다. 즉, 그들은 데와(Deva) 영역에도 재탄생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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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은 모든 영역에 재탄생하는 것에서 벗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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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뿌툿자나가 소따빤나 아누가-미가 되기 위한 요건(그리고 같은 생에서 소따빤나가 되는 요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세상의 아닛짱 위빠리나-미 안냐타-바-위 본질을 이해
5. 숫따의 시작 부분(표식 1.2)에서, 붓다께서는 뿌툿자나가 소따빤나 아누가-미/소따빤나가 되기 위한 요건을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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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Rūpaṁ, bhikkhave, aniccaṁ vipariṇāmi aññathābhāvi”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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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의 나머지 네 가지 구성 요소인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에 대해서도 반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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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번 강조했듯이,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는 대부분의 경우(특히 이것들이 함께 나타날 때)에는 빤쭈빠-다-낙칸다의 각 구성 요소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루-빠(rūpa)는 외부 루빠가 아니라, 외부 루빠를 기반으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마음이 만든 루-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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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그 구절들은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pañcupādānakkhandha, bhikkhave, aniccaṁ vipariṇāmi aññathābhāvi.”
빤쭈빠-다-낙칸다 = 각자의 오염된 생각
6.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빤쭈빠-다-낙칸다(루빠 우빠-다-낙칸다부터 윈냐-나 우빠-다-낙칸다까지)의 다섯 구성 요소는 모두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이것들은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오염된 생각’입니다. 따라서, 빤쭈빠-다-낙칸다는 ‘오염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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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생각’은 감각 입력에 의해 촉발됩니다. 우리는 경험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 ‘그다지 많은 생각’을 하지 않지만, 어떤 것들은 우리 마음 속에서 많은 ‘생각’을 촉발합니다. 필자는 차트에서 두 세트의 콘(cone)을 사용하여 ‘생각’의 확장을 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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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콘은 ‘뿌라-나 깜마’ 단계의 상대적으로 좀 약한 ‘생각’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잠재의식적 생각은 모든 감각 경험과 함께 일어납니다. 아래 #9에 있는 도표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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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감각 입력에 강하게 들러붙어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에 이르면, 마음은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로 넘어갑니다. 이 단계에서는 많은 강력한 ‘생각’과 함께 가장 강력한 깜마가 축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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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마음은 ‘나와 깜마’ 단계에서 동요되어 더 많은 감각적 즐거움(까-마 라-가와 함께)을 구하거나 화냄(빠띠가와 함께)으로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모든 방해(장애)를 제거하려고 합니다. 반면에, 마음이 대부분 ‘뿌라-나 깜마’ 단계에 있다면 비교적 평온합니다. 그러나, 그 단계에서도 마음은 여전히 아윗자-(avijjā), 즉 무명으로 덮여 있습니다.
마음은 왜 모든 감각 입력에 들러붙는가?
7. 논의한 바와 같이, 마음이 항상 라-가, 도사, 모하/아윗자-를 갖는 이유는 ‘(왜곡된/위빠리따) 산냐-’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전 포스트인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빳짜야-'는 무슨 의미인가?’를 포함한 많은 포스트에서 이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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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우리는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마음을 거쳐 지나가는 미묘하고 약한 ‘오염된 생각’을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새로운 감각 입력을 받은 순간, 그 마음과 관련된 끊어지지 않은 상요자나(saṁyojana)에만 따라 미묘한 생각이 자동으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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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 입력에 따라, 각자의 정신 상태(그 순간의 ‘가띠’)에 따라 더 많은 생각이 단계적으로 일어납니다. 들러붙음이 강하면, 마음은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 단계(까-마 라-가 또는 빠띠가와 함께)로 나아가 ‘나와 깜마’ 단계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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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주로 ‘나와 깜마’ 단계에서 ‘생각’을 인식하게 되고, 그 생각들은 심하게 오염됩니다.
8.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뿌툿자나의 마음은 항상 오염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이나 풀잎을 바라보거나 호흡(세상과 관련된 어떤 것)에 집중하더라도, 그 생각에는 아윗자-(avijjā)가 있습니다. 이는 뿌툿자나의 마음이 항상 빤쭈빠-다-낙칸다, 즉 ‘오염된 생각들의 무더기’를 불러일으킨다는 말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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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해, 뿌툿자나는 라-가, 도사, 그리고/또는 모하/아윗자-가 전혀 없는 생각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뿌툿자나는 항상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 오취온)를 생성하고, 결코 빤짝칸다(pañcakkhandha, 오온)를 생성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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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툿자나의 경우) 감각 입력으로 인해 빤쭈빠-다-낙칸다가 촉발되는 것은 모든 유정체에 내재된 ‘(왜곡된/위빠리따) 산냐-’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포스트에서 논의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윗자-는 까-마 로까의 까-마 산냐-에 의해 촉발된다’를 참조하세요.
뿌툿자나의 마음은 ‘아닛짱 위빠리나-미 안냐타-바-위’다
9. 위에서 논의했듯이, 뿌툿자나의 마음은 항상 오염된 상태에서 시작하며, 더 오염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오염된 생각에 지배받은 ‘잘못된 방향’으로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런 생각은 마음을 동요시키고, 더 나아가 오염된 마음으로 악업을 짓게 하여 미래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 개념은 ‘아닛짱 위빠리나-미 안냐타-바-위(aniccaṁ vipariṇāmi aññathābhāvi)’라는 구절에 잘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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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에, 우리는 아라한 단계에서 닙바-나에 도달한 마음은 라-가, 도사, 그리고/또는 모하/아윗자-의 흔적조차 갖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라한의 마음은 ‘(왜곡된/위빠리따) 산냐-’의 영향을 받을 수 없습니다. 비록 그것이 아라한에게도 일어나지만, 그들의 마음은 그것에 들러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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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두 가지 상황은 아래 까-마 로까의 도표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까-마 로까의 ‘(왜곡된/위빠리따) 산냐-’는 ‘까-마 산냐-’입니다. 아래에서는 까-마 산냐-(kāma saññā)를 가진 까-마 로까(kāma loka)의 인간 뿌툿자나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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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 로까의 모든 감각 입력은 까-마 산냐-와 함께 까-마 다-뚜(kāma dhātu)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 ‘Puthujjana’s and Arahant’s Minds’
빠리나-마와 위빠리나-마
10. evolution(진화) (pariṇāma의 영어 번역)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언가가 점진적으로 발전/개선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잘 알려진 ‘진화론’(싱할라어로 පරිනාම වාදය)은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다윈의 이론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원숭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하여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 이론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잘못되었지만, 그것은 ‘진화’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진화(evolution)’를 뜻하는 빠알리 낱말은 ‘빠리나-마(pariṇām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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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위빠리나-마(vipariṇāma) (싱할라어로 විපරිනාම)는 그 반대, 즉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언가가 점진적으로 퇴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빠리나-마(vipariṇāma)의 영어 낱말은 devolution(퇴화)입니다. 이는 기능, 특성 또는 구조의 쇠퇴 또는 잃음(손실)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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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냐타-바-와(aññathābhāva)’라는 낱말도 다소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점진적으로 무질서나 쇠퇴/타락으로 간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위빠리나-마(vipariṇāma)’와 의미가 다소 유사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위빠리나-마’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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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도표에서 보여 주듯이, 뿌툿자나의 마음은 항상 ‘위빠리나-마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왜냐하면 감각 입력과 함께 오는 까-마 산냐-에 들러붙게 강제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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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절에 있는 다른 낱말은 ‘아닛짜(anicca)’입니다.
아닛짜는 무슨 의미인가?
11. 잇짜(icca)(‘ichcha’로 발음)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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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닛짜(nicca)’(‘nichcha’로 발음)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얻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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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닛짜(anicca)는 닛짜(nicca)의 반대말입니다. 이는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것의 이면에 있는 행복과 고통 없음을 (단기적으로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뿌툿자나의 마음은 라-가, 도사, 그리고/또는 모하/아윗자-로 시작하므로, (소따빤나 아누가-미가 될 때까지) 결코 번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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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닛짜(anicca) 본질’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아닛짜 - 진정한 의미(Anicca – True Meaning)’ 서브섹션을 참조), 본질은 위의 요점에 있습니다.
뿌툿자나의 마음은 ‘아닛짱 위빠리나-미 안냐타-바-위’에 갇혀 있다
12. 내재된 ‘(왜곡된/위빠리따) 산냐-’(까-마 로까의 까-마 산냐-) 때문에, 어떤 감각 입력이든 뿌툿자나의 마음에서 아윗자-가 촉발됩니다. 따라서, 마음은 어떤 감각 입력이든 시작부터 오염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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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뿌툿자나의 마음은 라-가, 도사, 모하/아윗자-로 점진적으로 오염되는 ‘현명하지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강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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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칸다 숫따(SN 25.10)에 명시된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의 ‘아닛짱 위빠리나-미 안냐타-바-위(aniccaṁ vipariṇāmi aññathābhāvi)’ 본질( 루-빠 우빠-다-낙칸다에서 윈냐-나 우빠-다-낙칸다, 즉 빤쭈빠-다-낙칸다로 축약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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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뿌툿자나의 생각은 ‘아닛짱 위빠리나-미 안냐타-바-위(aniccaṁ vipariṇāmi aññathābhāvi)’ 본질을 띠도록 강제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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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문에 뿌툿자나는 고통으로 가득한 재탄생 과정에 갇힙니다.
도표의 ‘아닛짱 위빠리나-미 안냐타-바-위’
13. 유일한 탈출구는 위의 설명을 알고 성스런 팔정도를 따라 (까-마 로까에 있는 자들의) 그 까-마 산냐-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래 도표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 ‘Aniccaṁ vipariṇāmi aññathābhā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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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까-마 산냐-(kāma saññā)’를 극복하는 과정은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Mahā Satipaṭṭhāna Sutta)에 개괄적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상세히 설명되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숫따(경) 해석’ 섹션의 새로운 시리즈인 ‘사띠빳타나 숫따 ㅡ 새로운 시리즈(Satipaṭṭhāna Sutta – New Series)’ 서브섹션에서 핵심 요소/개념을 논의해 왔습니다.
14. 그것들은 뿌툿자나가 소따빤나가 되기 위한 요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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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툿자나들은 빤쭈빠-다-낙칸다(빤짜 우빠-다-낙칸다)의 다섯 가지 구성요소가 모두 ‘아닛짱 위빠리나-미 안냐타-바-위(aniccaṁ vipariṇāmi aññathābhāvi)’에 해당된다는 것을 ‘지혜로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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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의한 바와 같이, 빤쭈빠-다-낙칸다의 다섯 가지 구성요소는 모두 ‘외부 루-빠’를 경험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각자의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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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부 루-빠’는 시각 대상(보통 루-빠라고 불리는 완나 루-빠), 소리(삿다 루-빠), 맛(라사 루-빠), 냄새(간다 루-빠), 감촉(뽓탑바 루-빠), 또는 마음에 떠오르는 기억/생각(담마 루-빠)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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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부 루-빠에 기반하여, 마음은 자신만의 루-빠 버전을 만듭니다. 그 ‘마음이 만든 루-빠’는 ‘루-빠 우빠-다-낙칸다’며, 이는 위 #5에서 가리켜 보인 바와 같이 대부분의 숫따에서 그냥 ‘루-빠’라고 불립니다.
칸다 숫따에 대한 잘못된 번역
15. ‘Khandha Sutta (SN 25.10)’의 “Rūpaṁ, bhikkhave, aniccaṁ vipariṇāmi aññathābhāvi”는 숫따 센트럴 번역자에 의해 “형태(색)는 무상하고, 쇠퇴하고, 소멸한다”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우리 자신의 육체를 포함한 모든 외부 대상이 무상하고, 쇠퇴하고 소멸하는 특질을 볼 수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해만으로 닙바-나의 소따빤나 단계를 성취하기에 충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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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논의한 대로, 그 짧은 구절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외부 루-빠가 아니라 마음만을 포함하는 훨씬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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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소따빤나 아누가-미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소따빤나 아누가-미가 되려면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16. 다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면 패러다임이 바뀔 것입니다.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는 각자의 오염된 생각, 즉 라-가, 도사, 및 모하/아윗자-가 있는 생각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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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 라-가, 도사, 및 모하/아윗자-가 있는 행위는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며, 이러한 행위는 미래에 (아빠-야-에 재탄생을 포함하여) 불쾌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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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행위는 마음에 일어나는 (아비)상카라에 기반합니다. 모든 유정체들에게 내재된 ‘(왜곡된/위빠리따) 산냐-’를 통해 아윗자-가 촉발되기 때문에, 이런 행위는 어떤 감각 입력에도 일어납니다. 그것은 모든 유정체가 영구적 고통에 갇히도록 세팅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7. 그러나 그것은 ‘자연이 잔인하다’거나 그와 같은 것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자연의 법칙인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해 일어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얻습니다. 즉, ‘빠띠(paṭi) + 잇짜(ichcha)’는 ‘사마(sama) + 웁빠-다(uppāda)’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근본원인에 기꺼이 들러붙는 것’은 ‘해당하는 (재)탄생’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동물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물처럼 행한다면(로바, 도사, 모하의 예), 동물로 재탄생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마찬가지로, ‘도덕적 가띠(moral gati)’를 육성한다면(세간적 알로바, 아도사, 아모하의 예), 인간이나 데와(Deva)로 재탄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 ㅡ ‘빠띠+이치차' + '사마+웁빠-다' ’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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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대부분의 재탄생은 아빠-야-(사악처)에서 일어나므로, 미래의 행복은 거의 없고 고통만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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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과정은 (지혜, 즉 담마 짝쿠로) ‘(왜곡된/위빠리따) 산냐-’라는 내재된 ‘아윗자- 촉발 메커니즘’이 어떻게 우리를 위의 영구적 재탄생 과정에 가두는지 보기(깨닫기) 전에는 극복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산딧티꼬(Sandiṭṭhiko)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산딧티꼬 ㅡ 그 의미는 무엇인가?’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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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가 칸다 숫따(SN 25. 10)에 따라 위 #5에서 강조된 “pañcupādānakkhandha, bhikkhave, aniccaṁ vipariṇāmi aññathābhāvi.” 구절을 이해할 때 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