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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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윗자-는 까-마 로까의 까-마 산냐-에 의해 촉발된다

     

    원문: Sutta Interpretation 섹션의 ‘Avijjā is Triggered by Kāma Saññā in Kāma Loka’ 포스트

     

    아윗자-(avijjā)는 ‘사성제를 모르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사성제는 까-마 로까의 고통이 어떻게 까-마 라-가와 함께 ‘세간적 즐거움’에 들러붙는 것을 통해 일어나는지를 설명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런 ‘세간적 즐거움’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마음으로 만들어지고(mind-made) 빠띳짜 사뭅빠-다에 의해 생성된 까-마 산냐-를 통해 발생하는지 논의합니다. 아윗자-는 이런 ‘마음을 속이는’ 메커니즘에 대한 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5년 9월 13일 작성

     

    고통의 근본 원인 ㅡ 아윗자-와 땅하-

     

    1.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한 사람들은 고통의 근본 원인이 사성제에 대한 무지(avijjā)라는 것을 압니다. 때로는 그 근본 원인이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는 경향, 즉 땅하-(taṅhā)라고 언급되기도 합니다. 

     

    • *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는 경향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 * 아무리 노력해도, (두 가지 예만 들자면) 특정한 시각 대상이나 맛에 ‘매력적인 특질’이 있다는 ‘본능’ 또는 ‘인식’을 극복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 * 남성은 ‘잘 생긴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며, 우리 모두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장 위대한 마술 ㅡ ‘세간 실체’

     

    2. ‘세상’(모든 유정체와 외부 환경)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매우 실제적입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건강과 신체 기능(의학 분야), 동물(동물학과 수의학), 식물과 나무(생물학), 물리학에서 무정체의 운동(미세 입자부터 별과 행성의 운동까지)에 대한 수많은 연구를 행합니다.

     

    • * 과학자들은 달에 갈 로켓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달은 실제하며, 달에 갔다가 돌아오는 로켓도 실제합니다.

    • * 우리의 감각 경험과 관련해, 기존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 모든 조사 역시 우리의 경험을 확증해줍니다.

    • * 예를 들어, 인간은 꿀이나 설탕을 섭취할 때 단맛을 느낍니다. 과학자들은 설탕의 단맛이 설탕에 포함된 자당 분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세간 실제(mundane reality)’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 * 세간 실제에서, 세상에는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들’이 있는데, 시각 대상, 소리, 맛, 냄새, 및 감촉이 그것들입니다. 이것들은 세상의 ‘외부 루빠’입니다. 이 세간 실제에서, 즐거움은 그런 루빠에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꿀은 단맛이 있는데, 전통적인 이해는 그 단맛이 꿀에 있다고 합니다. 시각 대상과 다른 감각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위대한 마술’은 세상 내[에 빠진 상태]에서는 밝혀질 수 없다

     

    3. 붓다께서 세상에 태어나시기 전까지, 인간은 ‘세간 실체’에 대해서만 알 수 있었습니다.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와 같은) 요기들은 감각적 즐거움의 결함(폐해)를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며 부도덕한 행위에 빠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감각적 즐거움을 삼가면, 자-나를 계발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감각적 즐거움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 그러나,  그들도 감각적 즐거움이 외부 루빠에 내재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감각적 끌림을 피하기 위해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 * 그 덕분에 그들은 루빠 자-나(rupa jhāna)와 아루빠 사마빳-띠(arupa samāpatti)를 계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접근 방식이 그들을 미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것은 루빠 로까 또는 아루빠 로까에서 가능한 그 자-나 또는 사마빳-띠의 즐거움도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속임수’이기 때문입니다.

    • * 처음에, 붓다(또는 더 정확하게는 보디삿따)께서는 두 요기로부터 그 기법을 배웠습니다.

    • * 그러나, 보디삿따께서는 (숲속에 숨어서 까-마 라-가를 억눌려) 자-나를 얻는 그들의 접근 방식이 윤회의 결박(족쇄)를 끊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때가 보디삿따께서 그들을 떠나 세상의 궁극 실재(실체)를 발견하신 때입니다. 아래에서 논의하겠지만, 그것은 ‘마음을 즐겁게 하는 감각’이 (까-마 로까의 ‘까-마 산냐-’를 통해) 마음 자체에서 생성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붓다께서 궁극 실재(실체)를 밝혀내셨다    

     

    4.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그 안에는 본질적인 맛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어떨까요? 여성(또는 남성)이 본질적으로는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어떨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최고의 마술에 속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어떨까요?  

     

    • * 그러면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 * 붓다께서 가르치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붓다께서는 그 속임수에 두 가지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는데, (i)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우리는 (아비)상카-라를 생성하고, 이는 다시 깜마 에너지를 생성한다는 것과, (ii) 여러 생에 걸쳐 축적된 깜마 에너지는 미래 재탄생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 * 그러므로, 이것은 붓다께서 그 과정을 발견하실 때까지 끊을 수 없는 악순환입니다

     

    두 가지 실제와 빠라맛따 담마

     

    5. 세간적 즐거움(특히 시각 대상, 소리, 냄새, 맛, 감촉에 대한 즐거움)의 ‘즐거운 감각’을 무시하는 것은 그것들이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될 때 훨씬 더 쉬워집니다. 붓다께서는 두 가지 실재(실체)가 있다고 가리켜 보였습니다.

     

    i.  우리가 감각을 통해 경험하는 것은 실제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과 주변 세상이 모두 그런 감각을 제공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세간 실제입니다.

    ii. 그러나 그것은 궁극 실재(빠라맛따 담마-)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의 집합적 마음 구조’를 통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유정체’를 의미합니다. ‘빠띳짜 사뭅빠-다는 외부 세계도 창조한다!’를 참조하세요.

     

    아윗자-는 그 과정을 파악할 수 없는 무능력이다 

     

    6. 아윗자-의 주요 측면 중의 하나는 그 심오한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 우리 모두는 전통적인 마술을 보는 것을 즐겼습니다. 만약 그 속임수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면, 그 즐거움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속임수를 알아내기 어려워진다면, 우리는 그것이 진짜 결과라고 믿을 수도 있습니다.

    • * 삶과 관련된 마술은 누구나 경험해 본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붓다께서 그것을 설명해 주셨을 때도, 그 속임수를 알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7. 대부분의 사람들은 닙바-나를 얻는 것은 나두고라도, 자-나를 얻기 위해서도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들러붙음을 멈춰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 * 오늘날 사람들은 감각적 매력들(영화, TV, 비디오 게임, 등)로 폭격을 당하고 있으며,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고 싶은 욕구를 억제하는 것조차 훨씬 더 어렵습니다.

    • * 하지만, 그들이 그 모든 감각적 즐거움이 실제가 아니라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그것을 억누르는 것이 더 쉬워질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없애기 위해 확고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쉬워집니다.

    • *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누구에게나 ‘왜곡된 산냐-’(까-마, 루빠, 및 아루빠 로까에 있는 산냐- 유형)의 기원을 ‘지혜로 보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까-마 로까의 ‘까-마 산냐-’를 이해하는 것으로도 충분한데, 같은 원리가 루빠와 아루빠 로까에도 적용됩니다.

     

    신기루에 들러붙는 것은 모든 고통의 원인이다!

     

    8. 고통이 발생하는 기본적인 개념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i) 즐거운 것들(시각 대상, 소리, 맛, 냄새, 감촉, 및 기억)이 있다. (ii) ‘그것들을 더 많이’ 얻으려고 할 때, 우리는 부도덕한 행위(아꾸살라 깜마)에 빠지기가 쉽다. (iii) 그 아꾸살라 깜마들은 삶 중에 고통(질병, 부상 등) 뿐만 아니라 동물 영역과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영역’에 재탄생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 * 따라서, 고통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즐거운 것들에 들러붙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즐거운 것들’을 피하려고 하면, 그것은 성냄이나 적어도 좌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더 나쁠 수도 있습니다.  

     

    아윗자-와 땅하-를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

     

    9. 위의 내용을 생각해 보세요. 어떤 면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해결될 수 있습니다.

     

    • * 핵심은 아윗자-와 땅하-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둘 다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해 일어나는) 빠띳짜 사뭅빤나(Paṭicca Samuppanna)며, 까-마 로까의 ‘까-마 산냐-’로 인해 일어납니다.  

    • * 몇 가지 숫따-를 사용하여 이 중요한 개념을 논의해 보겠습니다. 

     

    아윗자-와 땅하-를 유발하는 산냐-의 역할

     

    10. ‘Gotama Sutta (SN 12.10)’에서, 붓다께서는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해 온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는지 깨달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 * 표식 2.1에서: 붓다께서는 늙음(자라-), 죽음(마라나), 등과 관련된 모든 고통이 각각의 재탄생(자-띠)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자-띠(jāti)가 일어날 때마다 항상 고통을 겪고 궁극적으로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자-띠가 멈출 때까지 고통은 멈출 수 없습니다.

    • * 하지만, 마음은 어떻게 자-띠로 이어지는 씨앗(업 에너지)를 만들어낼까요? 마음은 유혹하여 그것에 들러붙게 하는 무언가에 반드시 주의를 집중하여 업 에너지를 생성합니다. 표식 2.2에서: ‘kimhi nu kho sati jarāmaraṇaṁ hoti, kiṁpaccayā jarāmaraṇan’ti?라고 말씀하십니다.

     

    11. 돌파구가 생겼습니다. “Tassa mayhaṁ, bhikkhave,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jātiyā kho sati jarāmaraṇaṁ ho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n’ti.” (“나는 지혜로 깨달았다. ‘재탄생이 있을 때 늙음과 죽음이 있다. 늙음과 죽음은 재탄생에 조건지어져 있다.’ ”)

     

    • * 그리고, 표식 3.1에서, 붓다께서는 자-띠로 이어지는 단계들을 설명하십니다. 그 단계들은 바와(축적된 깜마 에너지), 우빠-다-나(의식적으로 감각 입력에 들러붙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땅하-, 삼팟사ㅡ자-ㅡ웨다나, 삼팟사, 살라-야따나(12가지 유형의 앗잣따와 바힛다 아-야따나), 나-마루-빠, 윈냐-나, 상카-라, 및 아윗자-입니다.

    • * 표식 4.1에서: 그러므로, 자-띠의 생성은 “avijjā paccayā saṅkhārā”로 시작하여 9단계를 거쳐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즉 “모든 종류의 고통”으로 정점에 이릅니다. 

    • * 붓다께서는 “이것이 바로 이 고통의 덩어리 전체가 일어나는 방식이다”, 즉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표식 4.3)라고 결론지으셨습니다.

    • * 그것은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부처님의 담마”를 깨달은 것이었습니다(표식 4.4). 

     

    빠띳짜 사뭅빠-다의 모든 항목은 마음에서 일어난다

     

    12. 빠띳짜 사뭅빠-다의 모든 항목은 먼저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 * 처음 항목들은 아윗자-(avijjā)에서 바와(bhava)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음과 관련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바와는 몸, 말, 및 마음을 통해 행한 깜마(kamma)를 통해 축적된 깜마 에너지며, 이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아비)상카-라에 기반합니다.

    • * 관습적으로 자-띠(jāti)를 ‘육체적 탄생’으로만 연관짓습니다. 그러나, 최초 자-띠는 깜마 에너지를 축적하는 동안에 마음 속에서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X)이 다른 사람(Y)를 칼로 반복적으로 찌르는 과정을 생각해 보세요. 먼저, 마음 속에서 살인의 생각이 일어나고(mano sankhāra), 그 다음 X는 Y를 말로 위협하며(vaci saṅkhāra, 그 다음 X는 Y를 찌르는 행위를 합니다(육체 행위는 kāya sankhāra로 행해짐). 모든 유형의 상카-라는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결정적인 중요한 점은 세 가지 유형의 상카-라를 생성하는 동안, X는 동물 또는 지옥 중생의 마음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며, X는 말그대로 ‘사나운 동물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살인이 행해지고 나면, X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으며, Y를 죽인 것을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X는 일시적으로 ‘사나운 동물로 태어났습니다.’ 그 다음 그 ‘자-띠’는 자라-, 마라나, 소까 등의 단계를 거칩니다. 그 ‘일시적 자-띠’는 결국 마라나로 끝납니다.   

     

    13. X는 이제 동물로 재탄생하기에 적합한 깜마 에너지를 축적했습니다. 그것은 윈냐-나 다-뚜(viññāṇa dhātu)에 ‘바와 에너지(bhava energy)’로 남아 미래에 X가 동물로 재탄생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미래에 ‘바와 빳짜야- 자-띠’에 해당합니다.

     

    • * 그런 일어남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하며, ‘바와 빳짜야- 자-띠(bhava paccayā jāti)’를 단지 재탄생에만 적용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 * 우리는 위의 논의를 바탕으로 몇 가지 매우 중요한 관찰을 할 수 있습니다.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 = ‘아윗자-야 사띠 상카-라- 혼띠’

     

    14. 위의 논의를 통해 또 다른 매우 중요한 점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한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이 먼저 마음에서 진행되어 바와(bhava), 즉 깜마 에너지를 생성하고, 이는 (조건에 따라) 미래 위빠-까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더욱이, 새로운 존재를 움켜잡기 위해서는 쭈띠ㅡ빠띠산디 순간에 ‘우빠-다-나 빳짜야- 바와’와 ‘바와 빳짜야- 자-띠’ 단계가 마음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 *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이  첫 단계인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로 쭈띠ㅡ빠띠산디 순간에 시작되어야 합니다. 

    • * 위에서 논의된 ‘Gotama Sutta (SN 12.10)’에서, 다음 구절이 표식 3.13에 있는데, “avijjāya kho sati saṅkhārā honti, avijjā paccayā saṅkhārā’ti.”입니다. 번역: “아윗자-가 마음에 나타나면, 상카-라가 일어난다. 이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다(와 같은 의미다).”

    • * 표식 6.13에서 그 반대를 말씀하시는 것에서도 확인되는데, “avijjāya kho asati saṅkhārā na honti, avijjā nirodhā saṅkhāra nirodho’ti.”입니다. 번역: “아윗자-가 마음에 나타나지 않으면, 상카-라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아윗자-가 그치면(니로도), 상카-라도 일어나지 않는다(니로도)(와 같은 의미다).” 

    • * 이러한 요점은 다른 숫따에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Parivīmaṁsana Sutta (SN 12.51)’를 참조하세요.

    • * 이제 이 포스트의 핵심에 도달했습니다

     

    아윗자-를 촉발하는 것은 ‘내장된 산냐-’다

     

    15. 빠띳짜 사뭅빠-다에 나오는 모든 항목은 ‘빠띳짜사뭅빤나- 담마-(paṭiccasamuppannā dhammā)’ 즉 ‘의존적으로 생겨난 현상’입니다. ‘Paccaya Sutta (SN 12.20)’를 참조하세요. 

     

     

    16. 그러면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왜 빠띳짜 사뭅빠-다에는 ‘산냐- 빳짜야- 아윗자-(saññā paccayā avijjā)’라는 항목이 없는가? 

     

    • * 그 이유는 산냐-(‘왜곡된 산냐-, 즉 위빠리따 산냐-’)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몸뿐만 아니라 세상의 외부 감각 대상에도 내재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모든 항목은 일어나는 것이 멈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그것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 * 그러나, 마음이 ‘세상의 참된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면(야타-부따 냐-나), 그 ‘왜곡된 산냐-, 즉 위빠리따 산냐-’에 기반한 아윗자-가 촉발되지 않습니다

    • * 그 야타-부따  냐-나(yathābhuta ñāna)는 닙바-나의 네 단계(소따빤나, 사까다-가-미, 아나-가-미, 아라한뜨)에서 실현되며, 아라한뜨 단계에서 완성됩니다.

    • * 따라서, 아라한의 마음조차도 그 ‘왜곡된 산냐-, 즉 위빠리따 산냐-’를 생성하지만, [아라한은] 그것에 기반한 어떤 감각 입력에도 들러붙지 않습니다. 

     

    요약

     

    17. 어떤 감각 입력이든, 마음은 외부 감각 입력에 대한 자신만의 버전을 만들어냅니다. 즉, 마음이 만든 루빠는 외부 루빠의 참된 본질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마음은 들어오는 감각 입력과 동시에 경험하는 ‘왜곡된 산냐-, 즉 위빠리따 산냐-’를 기반으로 그 외부 루빠의 버전을 만들어냅니다.

     

    • * 예를 들어(필자가 여러 번 언급했듯이), 꿀의 단맛은 ‘왜곡된 산냐-, 즉 위빠리따 산냐-’입니다. 그런 맛은 궁극 실재에서 꿀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꿀의 단맛이 실제적이며 꿀에 자당 분자가 존재하기 때문임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간 실제입니다. 사람들은 궁극 실재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세간 실제에 갇혀 있고, 따라서 윤회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 * 우리 몸과 꿀은 모두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해 생겨납니다. 인간 혀의 감각은 꿀이나 설탕에 있는 자당 분자를 만났을 때 ‘단맛’이라는 ‘왜곡된 산냐-, 즉 위빠리따 산냐-’를 느끼도록 설계되었습니다.

    • * 하지만, 다른 종들(다른 영역의 존재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동물과 비교할 수만 있음)의 경우, 설탕이 그들의 혀로 ‘단맛’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호랑이나 소 같은 많은 동물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곰처럼 단맛을 느끼는 동물들도 있습니다. 

     

    18. 뿌툿자나의 마음이 그런 산냐-를 경험하면, 그 산냐-가 꿀의 달콤한 맛이든, 여성의 아름다움이든 외부 대상과 연관되어 있다고 믿는 무지(아윗자-) 때문에 그것에 들러붙습니다.

     

    • * 그러나, 아라한은 그런 ‘매력적인 특질’이 꿀이나 여성에게 내재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그 인상을 자동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임을 ‘지혜로 보았습니다’. 그 때문에 붓다께서는 ‘산냐-’를 신기루라고 칭하시고 윈냐-나를 마술사라고 칭하셨습니다. ‘왜곡된 산냐-(산자-나-띠)에 속음 ㅡ 들러붙음(땅하-)의 기원’를 참조하세요.

     

    ‘내장된 산냐-’는 사띠빳타-나 부미에서는 작용하지 않는다

     

    19. 또 다른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 ‘왜곡된 산냐-, 즉 위빠리따 산냐-’는 마음이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동안에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 * 우리는 소따빤나의 마음이 어떻게 까-마 산냐-(‘왜곡된 산냐-, 즉 위빠리따 산냐-’)에서 벗어나 사띠빳타-나 부미로 전환될 수 있는지 논의했습니다.

    • * 우리는 ‘까-마 산냐-를 극복 ㅡ 사띠빳타-나 부미 또는 자-나’를 비롯한 여러 포스트에서 이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 * 사띠빳타-나 부미에 도달할 수 있다면, 스스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까-마 산냐-’에서 벗어나 훨씬 더 명확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을 때만 참으로 ‘삼마- 사띠(Sammā Sati)’를 가집니다

     

    20. 현재 시리즈의 포스트들은 ‘사띠빳타나 숫따 ㅡ 새로운 시리즈(Satipaṭṭhāna Sutta – New Series)’ 서브섹션에 있습니다.

     

    역주:

    본 포스트에서, 세간 실제(mundane reality)는 세간적 궁극 실재라는 찟따, 쩨따시까, 및 루빠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다. 이는 우리의 집합적 마음 구조에 의해 실제적으로 인식되는 세상을 포함하는 실제적 개념이다(#5 참조). 즉, 각 유정체 또는 유정체 집단의 ‘왜곡된 산냐-’에 따라 서로 다르게 왜곡되게 인식되는 실제 현상을 포함하는 실제적 개념이다.

    알다시피, 궁극 실재(빠라맛타 담마)(ultimate reality)는 아비담마에서 크게 네 가지(찟따, 쩨따시까, 루빠, 닙바-나)로 나누어지며, 세상을 이루는 궁극 실재는 찟따, 쩨따시까, 루빠이고, 이와 배타적으로 반대되는 궁극 실재는 닙바-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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