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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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의 독특한 세계관 

     

    원문: Buddha Dhamma ㅡ Systematic 섹션의 ‘Unique Worldview of a Sotāpanna’ 포스트 

     

    소따-빤나는 다른 누구와도 완전히 다른 세계관으로 성스런 팔정도를 시작합니다. 소따-빤나는 뿌툿자나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만큼 많은 번뇌를 마음에서 제거했는데, 이는 단지 세계관의 변화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의 첫 단계가 단지 관점의 변화, 즉 부처님의 관점을 받아들이고(āna) 세속적 관점을 버리는(āpāna) 것만을 의미하는 이유입니다. 

     

    2026년 5월 29일 작성

     

    뿌툿자나는 오직 부처님의 세계관을 깨달음으로써만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한다

     

    1. 소따-빤나가 되기 위한 유일한 요건은 부처님의 세계관이 진실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 속의 딧티 상요자나(diṭṭhi saṁyojana)가 사라집니다.

     

    • * 첫 번째 견해인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는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세속적 즐거움을 더 추구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 * 그 견해를 버리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모든 의심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즉, 위찌낏차- 상요자나가 제거됩니다).

    • * 그들은 또한 단순히 도덕적 행위만 하거나(실라) 또는 자-나를 기르는 것과 같은 정해진 절차를 따르는 것만으로는 닙바-나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는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āmāsa)라는 세 번째 딧티 상요자나를 끊는 것입니다.

    • * 그 때문에 세속적인 세계관을 거부하고(āpāna) 부처님의 세계관을 받아들이는(āna) 것이 뿌툿자나가 소따-빤나 지위로 높아지는 것입니다. ‘아-나-빠-나 ㅡ 붓다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세간 견해를 버림’을 참조하세요. 

     

    부처님의 세계관을 파악하면 미래 고통의 99% 이상 사라진다!

     

    2. 그러한 ‘세계관의 변화’만으로도 상상할 수 없는 양의 번뇌를 마음에서 없앨 수 있습니다. 이는 소따-빤나가 아빠-야가-미 행위, 즉 아빠-야 재탄생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깜마를 지을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 * ‘Paṭhamasinerupabbatarāja Sutta (SN 56.49)’를 시작으로 일련의 숫따에 많은 비유가 있습니다.

    • * 그 첫 번째 숫따에서는 “소따-빤나가 겪어야 하는 고통의 양은 시네루 산에서 그 꼭대기에 있는 모래알 일곱 개에 비할 수 있다”고 합니다.

    • * 범부 인간(뿌툿자나)이 겪어야 하는 고통의 양은 산 전체의 모래알 수에 비할 수 있습니다. 

     

    3. ‘Nakhasikha Sutta (SN 13.1)’에서는 소따-빤나가 없앤 엄청난 양의 고통을 더욱 강조합니다.

     

    • * 한 때, 붓다께서 손톱 끝으로 약간의 흙을 집어드시고 빅쿠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빅쿠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끝으로 집어든 약간의 흙이 거대하느냐, 아니면 이 광대한 대지의 흙이 더 거대하느냐?” 

    • * 물론, 빅쿠들은 이 대지의 흙의 양이 손톱 위의 약간의 흙보다 비교할 수 없이 많다고 대답했습니다. 

    • * 그러자 붓다께서는 빅쿠들에게 소따-빤나가 없앤 고통의 양은 대지 전체의 흙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소따-빤냐가 제거해야 할 고통의 양은 손톱 위에 있는 약간의 흙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엄청난 차이를 생각해 보세요!

    • * 그러므로, 소따-빤나가 미래의 재탄생에서 겪게 될 고통의 양은 범부의 고통에 비하면 극히 미미합니다. 이는 소따-빤나가 다시는 아빠-야(apāya)에 태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Pañcaverabhaya Sutta (SN 12.41)’를 참조하세요.

    • * 이는 전적으로 다른 모든 ‘세속적인 견해’를 거부하고 ‘부처님의 세계관’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세상의 참된 본질’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야타-부-따 냐-나), 즉 우리는 마음 자체가 생성한 환상에 들러붙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마음이 만든 강력한 (사견이 함께 하는) ‘까-마 앗사-다’는 아빠-야가-미 깜마로 이어진다

     

    4. 논의했듯이, 모든 감각 입력의 ‘즐거움’은 각자가 지닌 끊어지지 않은 상요자나와 함께 자랍니다. ‘가장 즐거운 경험’조차도 단지 약한 마나-빠(manāpa)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이를 알지 못하는 뿌툿자나는 (마음이 만든) 루-빠가 실제로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믿습니다. ‘까-마 앗사-다와 고통은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 포스트를 주의깊게 읽어보세요.

     

    • * 실제로 막가 팔라(magga phala)가 높아질수록 이 ‘마음이 만든 즐거움의 감소’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각자가 검증 가능한 이유입니다.

    • * 그것이 바로 붓다 담마의 ‘에히빳시까(ehipassika)’ 특성입니다. 결과는 이 생 자체에서 확인될 수 있습니다

     

    5. 따라서, ‘마음이 만든 루-빠’가 참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외부 루-빠’ 또는 ‘루-빠’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무지로 인해, ‘즐거움의 높아짐’은 전적으로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이 내용은 ‘Māra Sutta (SN 23.1)’에 간결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 * 붓다께서는 “Rūpe kho, rādha, sati māro vā assa māretā vā yo vā pana mīyati”, 즉 “라-다여, 루-빠에 들러붙으면, 죽음은 불가피하다”(여기서, ‘사띠’는 마음을 집중한다는 뜻임)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루-빠에 들러붙으면 아윗자-와 함께 또다른 빠띳짜 사뭅빠-다가 시작되어 삶/죽음 사이클이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링크 주소에 있는 직역과 비교해 보세요.)

    • * 그러므로,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른 네 가지 실체(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도 (마음이 만든) 루-빠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의 일부입니다.

    • * 붓다께서 설명하셨듯이, 바르게 볼 때(즉, 까-마 산냐-가 어떻게 아윗자를 유발시키고 오염된 생각이 일어나게 하는지를 볼 때), 그런 ‘즐거움의 환상’에 대한 갈망이 크게 줄어듭니다.

    • *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마술쇼를 볼 때, 마술의 속임수를 알아채지 못하면 더욱 흥미진진할 것입니다. 하지만 속임수가 밝혀지면, 더 이상 마술쇼를 즐길 수 없을 것입니다. ‘까-마 산냐-(kāma saññā)’는 우리가 경험한 최고의 마술입니다. 

     

    잘못된 견해에 기반한 하나의 아꾸살라가 대부분의 고통의 근본 뿌리다!

     

    6.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깜마 에너지의 축적에 기여하는 열 가지 유형의 아꾸살라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열가지 부도덕한 행위(다사 아꾸살라)’을 참조하세요.

     

    • * 소따-빤나는 다사 아꾸살라 중의 하나, 즉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만을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상상할 수 없는 미래의 고통을 극복하기에 충분합니다! 이는 자신의 세계관의 중요성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바로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의 첫 번째 단계가 그것인 이유입니다. ‘아-나-빠-나 ㅡ 붓다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세간 견해를 버림’을 참조하세요.

    • 요점은 (세 가지 딧티 상요자나에 내재된) 그 밋차- 딧티를 제거하면 나머지 아홉가지 아꾸살라의 힘이 모두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소따-빤나가 다른 아홉가지에 따라 행할 수 밖에 없더라도, 소따-빤나들은 결코 아빠-야가-미 깜마에 이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견해’를 극복하는 힘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 * 이것은 ‘소-따빤나가 제거한 유일한 아꾸살라는 무엇인가?’ 포스트에서 논의됩니다.

     

    부처님의 세계관과 세속적 세계관

     

    7. 붓다께서는 다른 종교, 철학, 그리고 현대 과학의 세계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비록 그 설명이 다르기는 해도 최근 몇 년 동안 붓다 세계관의 핵심적인 특징들을 일부 수용해 왔습니다.

     

    • * 필자는 ‘세속적(평범한) 세계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부처님의 세계관’과 대비되는, 다른 종교, 철학, 그리고 현대 과학이 공유하는 ‘표준 세계관’을 묘사하고자 합니다.

    • * ‘세계관’ 같은 낱말을 겁내지 마세요. 그건 단지 각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을 의미할 뿐입니다.

    • * 대부분의 종교는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세상의 다른 즐거움들이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힌두교(적어도 그 일부 종파)는 다소 다르게, 자-나(jhāna)에 도달하고 힌두교의 창조주인 마하- 브라흐마(Mahā Brahama)와 합일하기 위해서는 감각적 욕망을 극복(즉, ‘까-마 라-가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 물질 세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하는 철학을 포함하여 다양한 철학들이 존재합니다!

    • * 마침내, 현대 과학은 최근 우리가 세상에 대해 ‘잘못된 인식’(‘까-마 산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것이 ‘종의 진화’의 결과라고 말하는데, 즉 우리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 * 그것들은 모두 ‘세속적 세계관’에 속합니다. 현대 과학은 [부처님의 세계관에] 근접하지만, ‘잘못된 인식’(‘까-마 산냐-’)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 잘못되었습니다.  

     

    어느 세계관이 올바른가?

     

    8. 물론, 각자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창조주가 세상을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증명할 증거는 없습니다. 사람은 증거없이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더욱이, 창조주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 * 아래 #9에서 현대 과학이 제시하는 ‘진화론’에 반하는 증거에 대해 간략하게 논의하겠습니다.

    • * 반면에, 부처님의 세계관은 견고한 틀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복잡한 이론이며, 숫따는 주로 유정체의 생겨남은 마음 속에서 생성되는 깜마 에너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비담마의 보다 상세한 개념/분석을 통해, 외부 세계가 또한 어떻게 깜마 에너지에 기반하여 생겨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 분석 부분이 너무 복잡하고 불필요합니다(이것이 아비담마의 분석은 숫따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 * 부처님의 세계관은 단순한 가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깜마 에너지가 어떻게 유정체의 ‘일시적 존재’를 만들어내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앞으로 이 섹션의 포스트에서 부처님의 세계관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더 많은 증거를 제시하겠습니다.

    • * 완전성을 기하기 위해, 현대 과학에서 제시된 ‘진화론’의 문제점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진화론의 문제점

     

    9. 진화론은 ‘생각이 뇌에서 발생한다’는 중요한 전제에 기반합니다. 뇌(즉, 육체)가 죽으면 그 유정체는 끝납니다. 죽음은 생명의 완전한 끝입니다. ‘종의 진화’는 DNA의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 * 다음은 다윈 진화론 옹호자들이 직면한 주요 장애물입니다. 과학자들(그리고 다른 옹호자들)은 비활성 원자/분자로 이루어진 뇌에서 어떻게 생각이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를 ‘의식의 난제’라고 합니다. 또한 그들은 ‘(잘못된) 인식’을 지칭하기 위해 퀄리아(qualia)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들은 ‘퀄리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도 ‘의식의 난제’를 설명하는 것과 동일한 문제에 직면합니다. 두 문제 모두 비활성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진 뇌에서 어떻게 그런 정신적 측면이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됩니다!

    • * (‘유물론적 세계관’에 기반한) 다윈의 이론에 반하는 증거가 두 가지 더 있습니다. 하나는 재탄생 이야기(‘재탄생(윤회)의 증거’ 참조)고 다른 하나는 임사 체험(NDE)(‘임사 체험(NDE): 뇌는 마음이 아니다’ 참조)입니다.    

     

    10. 현대 과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시대부터 물질 세계에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1600년대 갈릴레오 이후, 접근 방식은 철학에서 과학으로 바뀌었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실험적 증거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 * 그 노력은 1900년대에 양자역학의 발견과 함께 가속화되었습니다.

    • * 그러나, 현대 과학은 고통의 문제나 정신 현상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정신적 측면’은 종교의 몫으로 남겨졌습니다.

    • *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 사이의 연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도에 들어서였습니다. 물질 세계는 모두가 공유하고 물질 속성을 누구나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세계고, 정신 세계는 개인적으로 주관적이며 실험으로 검증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하지만, 그 차이 때문에 ‘유물론적 접근’으로는 ‘정신 현상’을 탐구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의 ‘정신적 측면’이 동일할 수는 없습니다. 비활성 물체의 운동에 대한 조사에서, 두 사람이 똑 같은 결과를 얻는 경우와 비교해 보세요. 따라서, ‘정신 영역’을 물질 영역에서 시작하여 탐구할 수 없습니다. ‘정신 영역’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과학자들이 ‘의식의 난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 * 그 ‘유물론적 세계관’은 또한 세계(우주)가 약 140억 년 전에 ‘빅뱅’으로 생겨났다는 가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과학(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과율이라는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본 원인이 없이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아-나-빠-나사띠의 두 번째 단계

     

    11(10). ‘세속적 견해’를 영원히 버림으로써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면, 닙바-나에 이르는 ‘로드맵’이 명확해집니다. 번뇌가 마음에 어떻게 일어나는지(둑카 사무다야) 그리고 그런 번뇌가 마음에 일어나는 것을 멈추는 방식(둑카 니로다)을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 * 그런데, 둑카 사무다야(dukkha samudaya)는 로까 사무다야(loka samudaya)와 동일하고, 둑카 니로다(dukkha nirodha)는 로까 니로다(loka nirodha)와 동일합니다. 아라한과에 도달할 때, 그것은 로까 사무다야를 멈추고 로까 니로다를 얻는 것과 동일합니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와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가 멈추는 것입니다!

    • * 그것이 성스런 팔정도가 시작되는 때입니다. 소따-빤나의 마음은 소따-빤나 팔라를 얻는 순간에, 즉 그 마음이 잠시 팔라 순간에 ‘삼마- 사마-디’(모든 로끼야 산냐-에서 벗어난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상태)에 도달할 때 여덟 단계를 모두 거쳤습니다. 그러나 이제, 소따-빤나는 사띠빳타-나를 육성하여 마음대로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가 위빠사나-를 행하여, 더 높은 막가 팔라를 얻어야 합니다. 

    • * 그것은 아-나-빠-나사띠의 두 번째 단계입니다. ‘아-나-빠-나사띠 ㅡ 마음챙김(사띠)은 붓다 세계관에 기반한다’을 참조하세요.   

     

    12(11). 소따-빤나는 감각 입력이 있을 때 마음 속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아윗자-의 근본 원인을 이해합니다. 그것은 내재된 까-마 산냐-(kāma saññā)입니다. 이는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는데 필요한 네 가지 조건 중의 하나인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를 달성하는 것과 같습니다. ‘소따-빤나 막가/팔라를 얻기 위한 4가지 조건’을 참조하세요.

     

    • * 여기서, ‘요-니(yōni)’는 ‘기원’을 의미하고 ‘마나시까-라(manasikāra)’는 ‘특정한 마음성향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는 장음 ‘o’로 된 yōni로 발음됨)는 ‘기원 또는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교의 들러붙지 않음은 요니소 마나시까-라에 기반한다’을 참조하세요.

    • * 붓다께서는 짧은 ‘Kammanirodha Sutta (SN 35.146)’에서 ‘깜마 생성 과정’을 멈추는 틀을 설명하셨습니다. 숫따의 제목인 ‘kamma nirodha’는 ‘깜마(깜마 에너지) 생성을 멈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거기서 붓다께서는 깜마 생성이 두 단계로 일어난다고 가리켜 보이셨습니다. 첫 번째는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에서 일어나는 ‘뿌라-나(초기, 약한) 깜마 생성’이고, 두 번째는 그 이후의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에서 일어나는 ‘강력한/강한 깜마 생성’입니다.  

    • * ‘까-마 산냐-(kāma saññā)’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해함으로써 ‘뿌라-나 깜마’ 단계를 먼저 멈추지 않고서는 그 뒤를 잇는 ‘나와 깜마’ 단계를 멈출 수 없습니다.

    • * 첫 번째 ‘뿌라-나 깜마’ 단계는 ‘내재된 까-마 산냐-’를 극복해야만 멈출 수 있습니다. 이 중요한 점을 이 포스트 시리즈에서 다시 한번 논의하겠습니다. 소따-빤나는 그 과정을 이해하고 있으며, 더 높은 막가 팔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까-마 산냐-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나-빠-나사띠의 세 번째 단계

     

    13(12).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게 되면, 삿따 봇장가(Satta Bojjhaṅga)를 육성하고 성스런 길의 여덟가지 요소(Ariya Aṭṭhaṅgika Magga)를 충족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 * 삿따 봇장가의 첫 번째 요인(sati sabbojjhaṅga)은 사띠빳타-나 부-미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것입니다. 그다음 위빠사나를 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담마윗짜야 삽봇장가(dhammavicaya sabbojjhaṅga)를 육성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삿따 봇장가의 다른 요인들을 완성하는 것으로 이끕니다.

    • * 그 과정에서 소따-빤나는 깨달음의 37가지 요인 모두(Bōdhipakkhiya Dhamma)를 육성합니다. 그것들은 짯따-로 사띠빳타-나-(cattāro satipaṭṭhānā), 짯따-로 삼맙빠다-나-(cattāro sammappadhānā), 짯따-로 잇디빠-다-(cattāro iddhipādā), 빤찐드리야(pañcindriya), 빤짜 발라(pañca bala), 삿따 봇장가-(satta bojjhaṅgā), 아리요 앗탄기꼬 막고(ariyo aṭṭhaṅgiko maggo)입니다. ‘Mahāparinibbāna Sutta (DN 16)’을 참조하세요. 

    • * (뿌툿자나가 아닌) 소따-빤나만이 이것들을 육성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이것이 사람들은 사띠빳타-나를 육성할 수 있기 전에 소따-빤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아-나-빠-나사띠의 두 번째 단계와 세 번째 단계에서는 아-나(āna)와 아-빠-나(āpāna) 과정이 계속되는데, 이는 첫 번째 단계에서는 주요 오해만 제거되기 때문이라는 것에 주목하세요.

     

    아-나-빠-나사띠 숫따는 위의 틀을 요약한다

     

    14(13). 이것이 바로 아-나-빠-나사띠의 첫 번째 단계가 ‘부처님의 세계관’을 받아들이고(āna) ‘세속적 세계관’을 버리는(āpāna) 것뿐인 이유입니다. 소따-빤나가 되기 위한 유일한 요건은 바로 이것입니다! 아-나-빠-나사띠에 대한 첫 번째 포스트에서 이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아-나-빠-나 ㅡ 붓다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세간 견해를 버림’을 참조하세요.  

     

    • * 그다음 아-나-빠-나사띠의 두 번째 단계는 짯따-로 사띠빳타-나(cattāro satipaṭṭhāna)를 육성하는 것입니다.

    • * 그것은 아-나-빠-나사띠의 세 번째 단계에서 삿따 봇장가(Satta Bojjhaṅga)와 성스런 팔정도(ariyo aṭṭhaṅgiko magga)를 충족시키게 할 수 있습니다.

    • * 아-나-빠-나사띠에 대한 두 번째 포스트에서 아-나-빠-나사띠의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를 논의했습니다. ‘아-나-빠-나사띠 ㅡ 마음챙김(사띠)은 붓다 세계관에 기반한다’을 참조하세요.

     

    15(14). 부처님의 가르침의 틀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 틀은 아-나-빠-나사띠 숫따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 * 이 ‘붓다 담마 ㅡ 체계화’ 섹션에서는 이 단계들이 띠삐따까의 상윳따 니까-야에서 어떻게 체계적으로 논의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 저도 최근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는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숫따와 함께 심오한 숫따들을 다루었습니다. 이 새로운 섹션에서는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개념들을 중심으로 숫따들을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 * 예를 들어,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전에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의 세부 사항을 배우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그러나, 아-나-빠-나사띠 숫따에 제시된 ‘진전의 순서’를 파악하고 그 첫 단계에 집중하는 것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데 필수적입니다.

    • *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위 #12(11)의 깜마니로다 숫따에서 요약된 ‘깜마 생성’ 순서를 이해하는 것은 유익합니다. 저는 ‘깜마 니로다 ㅡ 이것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서 이를 간략하게 다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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