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깜마 니로다 ㅡ 이것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원문 : Buddha Dhamma 섹션의 ‘Kamma Nirodha – How Does It Happen?’
깜마 니로다(kamma nirodha)는 새로운 깜마의 축적이 그치는 것을 의미하며, 기존의 깜마 에너지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깜마 니로다는 단순히 다시 아꾸살라(dasa akusala)를 의도적으로 삼가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깜마 니로다는 뿌라-나(초기) 깜마 생성의 자동적인 시작을 그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습니다.
2026년 1월 24일 작성
소개
1. 깜마(kamma)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에 관해 흔히 두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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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은 ‘깜마 니로다(kamma nirodha)’가 위빠-까를 가져올 수 있는 축적된 깜마 에너지를 소멸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붓다께서 가르치진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동시대 인물이며 그의 가르침이 오늘날 인도에서 자이나교로 이어지고 있는 마하-위-라(Mahāvīra)가 가르친 것입니다. 마하-위-라는 띠삐따까(Tipiṭaka)에서 니간타 나-따뿟따(nigaṇṭha nāṭaputta)로 언급됩니다. ‘Nigaṇṭhanāṭaputta Sutta (SN 41.8)’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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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사 아꾸살라(열 가지 불선)을 의도적으로 삼가면 깜마 축적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붓다께서는 마음이 감각 입력에 자동적으로 들러붙는 초기 깜마 축적 단계(뿌라-나 깜마)를 거친 후, 의식적으로 이를 자각하고 ‘나와 깜마(nava kamma)의 아꾸살라 깜마를 짓는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초기 뿌라-나 깜마 단계를 이해함으로써 멈출 수 있을 때까지는 참으로 다사 아꾸살라를 삼가할 수는 없으며, 결국에는 유혹에 굴복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축적된 깜마 에너지는 파괴될 수 없다
2. 붓다께서는 축적된 깜마 에너지는 [무수한 년 동안 유지되므로] 소멸될 수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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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 축적된 깜마 에너지가 결과(위빠-까)를 가져오는 조건(빳짜야-)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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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 말, 또는 마음을 통해 (나와) 깜마가 행해지면, 깜마 에너지는 윈냐-나 다-뚜(viññāṇa dhātu)로 방출되어 무수한 년까지 그곳에 남아 있으며, 그 에너지는 매우 천천히 소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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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경우, 아-난따리까 깜마(예를 들어, 부도덕한 측면에서 부모를 죽이는 행위나, 도덕적인 측면에서 자-나를 기르는 것)은 직접 그 위빠-까를 가져옵니다. 그런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과거에 행한 특정한 깜마가 어떤 위빠-까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깜마 위빠-까’라는 주제는 부처님 외에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네 가지 중의 하나입니다.( ‘Acinteyya Sutta (AN 4.77)’ 참조).
3. 그러나, 축적된 깜마 에너지가 그 결과(위빠-까)를 가져올 조건이 존재하는 한, 재탄생 과정에서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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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주된 조건(그리고 또한 근본 원인)이 아윗자-(avijjā), 즉 깜마 축적 과정 전체에 대한 무지라고 가리켜 보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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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깜마 축적 과정은 단순히 악행을 의도적으로 삼가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멈출 수 없지만, 물론 그 노력도 해야 합니다.
깜마 축적은 다사 아꾸살라를 삼가는 것으로 멈춰질 수 있는가?
4. 많은 사람들은 다사 아꾸살라를 의도적으로 삼가함으로써 깜마 축적이 멈춰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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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칙적으로는 맞습니다. 재탄생을 가져올 수 있는 깜마 에너지는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즉 열 가지 유형의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를 통해 발생하는데, 여기에는 몸에 의한 세 가지, 말에 의한 세 가지, 그리고 마음에 의해서만 세 가지 더 있습니다. 이들은 까-야 깜마(kāya kamma), 와찌 깜마(vaci kamma), 마노 깜마(mano kamma)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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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이전의 고대 요기/수행자(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 등)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도 대부분의 아꾸살라 깜마가 감각적 욕망을 충족하려는 욕구, 즉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광경, 음악, 음식, 향기를 즐기고, 성행위 및 다른 육체적 편안함에 머물려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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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그들은 그런 ‘감각적 유혹’이 최소화된 정글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중립적인 대상’(호흡이나 까시나 대상, 진흙덩이나 ‘불’과 같은 것)에 마음을 집중하는 데 보냈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의 마음은 ‘까-마 로까’에서 벗어나 루빠 로까 브라흐마(rupa loka Brahma)의 마음 상태에 해당하는 자-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16가지 루빠 로까 브라흐마 영역은 다양한 강도의 네 가지 자-나의 마음 상태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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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내용을 다르게 표현하면, 그 요기들은 ‘까-마 산냐-(kāma saññā)’를 일시적으로 극복하고 마음을 루빠 로까 브라흐마들이 경험하는 ‘자-나 산냐-(jhānic saññā)’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5. 그 요기들 중 일부는 또한 네 가지 자-나 상태와 관련된 ‘자-나 산냐-’를 일시적으로 극복하고 아루빠 로따 브라흐마의 마음 성향으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즉 아루빠 사마-빳띠(arupa samāpatti)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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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āmaputta)는 [뿌툿자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아루빠 사마-빳띠를 얻었는데, 이는 아루빠 로까의 가장 높은 영역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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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해, 웃다까 라-마뿟따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영역의 마음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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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죽은 후, 고통이 가장 적은 세계에 재탄생하였습니다. 그곳의 고통은 그 영역에서 분리되어 생을 마감할 때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 후에는 그는 행하는 것에 따라 어떤 영역(아빠-야-를 포함)에든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
깜마 니로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상요자나를 제거해야 한다
6. 그러므로, 깜마 니로다(다사 아꾸살라를 행하는 것으로 이끄는 근본 원인을 제거)는 ‘뿌라-나 깜마’ 단계를 포함하여 깜마 축적 과정 전체에 대한 무지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재탄생 과정의 족쇄를 끊으려면 열 가지 상요자나(saṁyojana)를 제거해야 하는데, 이는 마음의 오염 과정 전체를 이해해야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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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과정에는 마음이 ‘나와 깜마’ 단계에 도달하기 전의 ‘뿌라-나 깜마’ 단계가 포함되며, 이 단계에서 다사 아꾸살라 축적이 일어납니다. 아래 도표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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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감각 사건으로, 모든 유정체의 마음은 ‘오염 없는’ 상태(‘다-뚜’ 단계라고 함)에서 출발하지만, 특정 영역과 관련된 ‘산냐-’의 영향을 자동적으로 즉시 받게 됩니다(그러나, 오염되지는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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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인간은 어떤 감각 사건에 반응하여 ‘까-마 산냐-’를 경험할 것입니다. 이 ‘까-마 산냐-’는 오염원이 아니지만, ‘까-마 라-가 상요자나(kāma rāga saṁyojana)’를 제거하지 못한 마음에는 오염을 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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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 라-가 상요자나’를 없애려면 ‘까-마 산냐-’를 영구적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다시는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지 않게 되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이때 비로소 아나-가-미(Anāgāmi)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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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가미가 되기 전에, 먼저 짧은 기간 동안 ‘까-마 산냐-’를 일시적으로 극복하여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전환은 ‘루빠 로까’(즉, 아나리야 자-나를 얻는 것)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까-마 산냐-’에서 벗어나는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로 전환입니다. ‘까-마 산냐-를 극복 ㅡ 사띠빳타-나 부미 또는 자-나’를 참조하세요.
까-마 산냐-를 극복함으로써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감
7. 까-마 산냐-를 극복하려면 마음은 ‘뿌라-나 깜마’ 단계 초기의 바힛다(bahiddha) 및 앗잣따(ajjhatta) 단계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뿌라-나 깜마’ 단계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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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에 있는 동안, ‘까-마 산냐-’의 영향을 받지 않고 ‘Kammanirodha Sutta (SN 35.146)’에 주어진 틀의 세부 사항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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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그것을 많은 포스트에서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까-마 산냐-를 극복 ㅡ 사띠빳타-나 부미 또는 자-나’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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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 포스트 시리즈에서는 이를 더 간단한 용어로 설명하겠습니다.
상요자나(재탄생 과정에 속박)를 없애기 위한 틀
8. 붓다께서는 짧은 숫따인 ‘Kammanirodha Sutta (SN 35.146)’에서 ‘깜마 생성 과정을 멈추는 틀’을 설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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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따의 제목인 ‘깜마 니로다(kamma nirodha)’는 ‘깜마(깜마 에너지) 생성을 멈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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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숫따에서, 붓다께서는 깜마 생성이 두 단계로 일어난다고 가리켜 보이셨는데,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뿌라-나(초기, 약한) 깜마 생성’과 그 이후의 ‘나와 깜마’ 단계에서 일어나는 ‘강력한/강한 깜마 생성’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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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뿌라-나 깜마’ 단계를 멈추지 않고서는, 이어지는 ‘나와 깜마’ 단계를 멈추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9. 위 #6에 설명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까-야 , 와찌, 및 마노 깜마를 통해 다사 아꾸살라에 관여하는 ‘나와 깜마’ 단계만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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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 이전에, 미묘한 ‘약한 깜마 생성 과정’이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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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이전에, 알-라-라 깔-라-마(Ālāra Kālāma) 같은 고대 요기/수행자들은 전체 ‘깜마 생성 과정’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깜마 생성 과정’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뿌라-나 깜마’ 단계를 알지 못했습니다.
깜마니로다 숫따
10. 우리는 ‘꾸살라/아꾸살라와 뿐냐/아뿐냐 깜마’ 포스트의 #15에서 깜마니로다 숫따(Kammanirodha Sutta)를 간략하게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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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마 생성 과정은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부처님께서 이를 설명하시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에 있는 아윗자(무지)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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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서 깜마 생성 과정이 이렇게 시작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과정을 멈출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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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마 생성 과정은 상깝빠(saṅkappa)를 통해 자동으로 발생하는 ‘약한 깜마’로 시작됩니다(이는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에 따라 깜마 축적의 초기에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에 있는 상카-라입니다). 이는 짝쿠 인드리야(보는 감각기능)이 짝쿠 아-야따나(짝카-야따나)로 변하는 때입니다. 짝쿠 아-야따나는 보이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마음이 더 많은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 다른 활동에 몰두하도록 자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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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것은 ‘감각 기능이 어떻게 '내부 아-야따나'가 되는가?’를 참조하세요.
짝쿠 인드리야가 짝쿠 아-야따나로
11. 아라한에게는 짝쿠 인드리야(보는 감각 기능)가 짝쿠 아-야따나로 자동적으로 전환되는 과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즉, 아라한의 마음은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아라한의 마음은 여전히 까-마 산냐-(kāma saññā)로 대상을 보지만 ‘즐거운 까-마 산냐-’에 들러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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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도표를 통해 그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영문 다운로드/인쇄: ‘Purana and Nava Kamma -2-revision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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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도표는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 포스트를 다 읽으신 후,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해당 포스트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2. 짝쿠 인드리야(cakkhu indriya)가 짝쿠 아-야따나(cakkhu āyatana)로 바뀌는 과정은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에서 네 가지 핵심 단계를 거쳐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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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단계: 육안은 외부 대상의 이미지를 포착합니다. 그리고 그 정보는 시신경을 통해 뇌로 보내집니다. 뇌는 그 정보를 처리하여 육체 안에 갇힌 간답바에 있는 마음 자리(하다야 왓투)로 전달합니다. 간답바는 ‘정신적 몸’을 의미합니다. ‘리빙 담마’ 섹션의 ‘멘탈 바디 - 간답바(Mental Body – Gandhabba)’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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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단계: 마음은 자동적으로 ‘까-마 산냐-’를 생성하고 그 외부 대상의 이미지를 ‘마음이 만든 루빠’로 변환합니다. 이 과정은 까-마 로까(kāma loka)에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데, 왜냐하면 그 ‘까-마 산냐-’는 ‘까-마 로까’에 태어난 모든 사람의 정신적 몸과 육체 모두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라한의 마음도 이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마음이 만든 루빠’를 생성합니다. 마음은 여전히 오염되지 않은 ‘까-마 다-뚜(kāma dhātu)’ 단계에 있습니다. 위 도표를 참조하세요. 붓다께서는 바-히야(Bāhiya)에게 이 단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diṭṭhe diṭṭhamattaṁ bhavissati’). ‘딧테 딧타맛땅 바윗사띠 ㅡ 산냐-와 관계’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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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단계: 이 단계는 오로지 마음에 ‘까-마 라-가 상요자나(kāma rāga saṁyojana)’가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까-마 라-가 상요자나’가 그대로 있다면, 마음은 자동적으로 상깝빠(saṅkappa)라고 불리는 ‘미묘한/약한 상카-라’를 생성하여 그것에 들러붙습니다. 이 결정적인 단계를 거치면서 마음은 ‘까-마 로까(kāma loka)’로 옮겨갑니다. 이것이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에 따른 깜마 축적의 초기에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의 첫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까-마 라-가’가 자동적으로 생성되는데, 이것이 붓다께서 ‘Nibbedhika Sutta (AN 6.63)’에서 ‘saṅkappa rāgo purisassa kāmo’, 즉, ‘까-마 라-가는 까-마 상깝빠(‘라-가’로 오염된 마노 상카-라)로 정의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빤쭈빠다낙칸다의 초기 다섯 가지 실체(바힛다 루빠부터 바힛다 윈냐-나까지)는 이 단계에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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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째 단계: 다음 단계에서, 마음은 그 바힛다 루빠에 다시 들러붙고, 까마 상깝빠가 더 생성되어, 앗잣따 루빠와 그와 관련된 빤쭈빠다낙칸다의 네가지 실체, 즉 앗잣따 웨다나부터 앗잣따 윈냐-나로 이어집니다. 이제, 짝쿠 아-야따나의 생성이 완료됩니다. 이 바힛다 윈냐-나(bahiddha viññāṇa)는 ‘보는 사건’에 대한 짝쿠 윈냐-나와 동일합니다.
까-예 까-야-누빳사나-는 ‘뿌라-나 깜마’ 단계에 관한 것이다
13. ‘Mahā Satipaṭṭhāna Sutta (DN 22)’는 ‘Kāye Kāyānupassanā’로 시작됩니다(표식 1.9): “Idh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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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예 까-야누빳사나-(Kāye Kāyānupassanā)는 빤쭈빠-다-낙칸다 까-야(pañcupādānakkhandha kāya)의 또 다른 까-야(kāya)에 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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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까-야 안의 까-야’는 빤쭈빠-다-낙칸다 까-야의 ‘뿌라-나 깜마’ 단계입니다. ‘빤쭈빠-다-낙칸다 까-야’의 초기 부분(‘뿌라-나 깜마’ 단계)은 오직 부처님만이 드러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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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식 2.11에서) ‘Iti ajjhatta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이 구절은 붓다께서 ‘빤쭈빠-다-낙칸다 까-야’의 생성에서 앗잣따 및 바힛다 단계에 집중하라고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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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말해, 고통의 기원은 빤쭈빠-다-낙칸다의 앗잣따와 바힛다 단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해야 합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단계는 또한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의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 단계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아윗자-(avijjā)는 이 두 가지 결정적인 단계(앗잣따와 바힛다)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빤쭈빠-다-낙칸다의 초기 단계의) 바힛다 단계가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도 원인에 의한 것입니다. 그 원인은 마음이 뇌로부터 외부 루빠의 이미지를 받자마자 일어나는 까-마 산냐-(kāma saññ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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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까-마 산냐-’가 일어나지 않으면, 마음은 외부 대상에 들러붙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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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우리는 이 전체 과정을 배우고 두 단계 과정을 통해 까-마 산냐-에 자동적으로 들러붙는 것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때까지 이 자동적인 들러붙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 두 단계 과정은 (i) 이 전체 과정을 완전히 이해함으로써 처음 세 가지 상요자나를 제거하고, (ii) 까-마 라-가(kāma rāga)와 빠띠가(patigha)라는 다음 두 가지 상요자나를 제거함으로써 까-마 산냐에 들러붙는 경향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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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을 완료함으로써 소따빤나(Sotapanna)가 되고 (ii)를 완료함으로써 아나-가-미(Anāgāmi)가 됩니다.
요약
15. 우리가 고통으로 가득한 재탄생 과정(윤회)에 갇혀 있는 것은 ‘까-마 산냐-’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회피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5분 내지 10분 정도 포스트를 읽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조사/연구하고 숙고하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을 물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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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의 고통을 멈추게 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다면, ‘산(saṅ) 생성’에 관한 세부사항을 이해해야 합니다(‘saṅ’ ‘uppāda’는 ‘samuppāda’로 운이 맞춰짐). 알다시피, 산(saṅ)은 라-가, 도사, 모하라는 오염원을 의미합니다. ‘빠띳짜 사뭅빠-다 ㅡ '빠띠+이치차' + '사마+웁빠-다' ’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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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포스트에서는 ‘우리가 인지하는 루빠’와 실제로 존재하는 ‘외부 루빠’의 차이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이를 통해 좀 더 눈이 열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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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현대 과학이 부처님의 가르침, 즉 (까-마 산냐-로) ‘우리가 인식하는 루빠’가 ‘외부 루빠’와 매우 다르다는 것을 확인해 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행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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