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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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딧테 딧타맛땅 바윗사띠 ㅡ 산냐-와 관계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 ‘Diṭṭhe Diṭṭhamattaṁ Bhavissati’ – Connection to Saññā ’ 포스트 

     

    ‘딧테 딧타맛땅 바윗사띠(Diṭṭhe diṭṭhamattaṁ bhavissati)’는 바-히야 숫따(Bāhiya sutta) 및 말-루카뿟따 숫따(Mālukyaputta sutta)에서 인용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부처님의 가르침, 특히 산냐-(saññā)라는 개념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2025년 5월 3일 작성  및 개정

     

    바-히야 숫따(숫따 센트럴 사이트의 번역)

     

    1. 바-히야(Bāhiya)는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여행한 요기(수행자)였습니다. 그가 도착했을 때, 그는 붓다께서 다른 빅쿠들과 함께 탁발을 하려 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붓다께서는 탁발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지만, 바-히야는 최소한 짧은 가르침이라도 전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은 짧은 게송(‘Bāhiya Sutta (Ud 1.10)’)을 말씀하셨습니다.

     

    Tasmātiha te, bāhiya, evaṁ sikkhitabbaṁ:’‘diṭṭhe diṭṭhamattaṁ bhavissati, sute sutamattaṁ bhavissati, mute mutamattaṁ bhavissati, viññāte viññātamattaṁ bhavissatī’ti.Evañhi te, bāhiya, sikkhitabbaṁ.”

     

    • * “바히야여, 그렇다면 이렇게 수행해야 한다보이는 것에는 보이는 것만이 있을 뿐이고, 들리는 것에는 들리는 것만이 있을 뿐이며, 생각에는 생각만이 있을 뿐이고, 아는 것에는 아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수행해야 한다.” 

     

    “Yato kho te, bāhiya, diṭṭhe diṭṭhamattaṁ bhavissati, sute sutamattaṁ bhavissati, mute mutamattaṁ bhavissati, viññāte viññātamattaṁ bhavissati, tato tvaṁ, bāhiya, na tena. Yato tvaṁ, bāhiya, na tena;tato tvaṁ, bāhiya, na tattha.Yato tvaṁ, bāhiya, na tattha, tato tvaṁ, bāhiya, nevidha na huraṁ na ubhayamantarena.”Esevanto dukkhassā”ti.

     

    • * “이런 식으로 수행하면 그것에 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에 의하지 않으면, 그것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에 있지 않으면, 이 세상이나 저 세상 또는 그 둘 사이의 세상에 있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고통의 끝이다.” 

     

    “Atha kho bāhiyassa dārucīriyassa bhagavato imāya saṅkhittāya dhammadesanāya tāvadeva anupādāya āsavehi cittaṁ vimucci.”

     

    • * “그러자, 부처님의 이 간략한 담마로 인해, 바-히야의 마음은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바로 번뇌에서 벗어났다. (그는 아라한과에 이르렀다.)”

     

    2. 위의 두 빠알리 구절에 대한 번역은 단지 빠알리 낱말을 영어로 번역한 숫따 센트럴 번역자의 번역입니다

     

    • * 그 낱말별 직역으로 담마(Dhamma) 개념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세히 설명해도 이해하기 어려워합니다.

    • * 붓다 당시에도 바-히야 존자는 그 두 구절의 의미를 깨닫고 아라한과를 성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조차도 아라한과를 성취하기 위해 몆 주간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 * 다행히도, 또다른 숫따에서는 위의 두 구절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합니다.

    • * ‘Mālukyaputta Sutta (SN 35.95)’에서 붓다께서는 말-루카뿟따 존자에게 동일한 게송을 말씀하셨지만, 먼저 몇 가지 설명적 개념을 제공하셨습니다.

    • * 붓다께서 말-루카뿟따 존자에게 제공하신 배경 자료를 살펴보겠습니다.

     

    말-루카뿟따 숫따(SN 35.95)에 있는 배경 자료

     

    3. ‘Mālukyaputta Sutta (SN 35.95)’에서, 붓다께서는 바히야 존자에게 말씀하신 두 개의 핵심 구절(위의 #1)을 더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먼저 기본적인 토대를 설명하셨습니다. 필자는 위 링크 주소를 붓다께서 말-루카뿟따 존자에게 그 설명을 시작하신 곳에 링크했습니다. 아래에서 그 기본적인 개념을 해석하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낱말별 직역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낱말별 직역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숫따 해석 -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Taṁ kiṁ maññasi, mālukyaputta,ye te cakkhuviññeyyā rūpā adiṭṭhā adiṭṭhapubbā, na ca passasi, na ca te hoti passeyyanti? Atthi te tattha chando vā rāgo vā pemaṁ vā”ti?

     

    • * 주된 개념: “말-루카뿟따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에 본 적이 없거나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를 본다면 어떤 바람 또는 탐욕이 일어나겠는가?

     

    말-루카뿟따 존자는 “아닙니다.”로 대답했습니다.

     

    • * 우리는 이전 경험을 바탕으로 사물/사람에 대한 의견/욕망을 형성합니다. 두 사람은 주어진 사물 또는 특정 사람에 대해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질 수 있습니다. 먼저 비활성 물체를 생각해보겠습니다. 그 사물은 어떤 사람에게는 완전히 낯설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매우 친숙할 수 있습니다.

    • * 그 ‘친숙함’은 붓다께서 다양한 정신적 측면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신 정신적 요소 중의 하나인 산냐-(saññā)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다음 예는 이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보여줍니다. 

     

    산냐- ㅡ 이전 경험에 기반

     

    4. 1980년 코메디 영화인 ‘Gods Must Be Crazy’는 세상 대상에 대한 산냐-(saññā)가 친숙함과 경험을 통해 어떻게 마음에 확립되는지(‘전제 조건화’)에 대한 좋은 예를 제공합니다.

     

    • * 영화의 주연은 칼리하리 사막의 수렵채집민인 Xi로서, 그의 부족은 비행기에서 떨어진 구형(구식) 코카-콜라 병을 발견합니다.

    • * 그 부족은 현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었으므로, 그들은 콜라 병 또는 유리 병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유리 병을 보자 완전히 당황했습니다. 처음에는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 다음  비디오 클립의 1분 정도까지로, 개념을 얻기에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영화 스토리라인의 다른 측면과 관련이 있습니다.

    • https://youtu.be/0OwxUj1h2pg

    • * 우리가 콜라 병을 보면, 마시는 것이라는 산냐-가 우리 마음에 즉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Xi(또는 그 부족의 모든 사람)은 콜라 음료의 맛을 본 적도,  콜라 병을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것들에 대한 산냐-를 생성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들은 완전히 신비로운 존재였습니다.

    • * 어떤 대상을 식별하려면, 즉 그것에 대한 산냐-를 확립하려면 그것에 대한 사전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 * 위의 내용은 ‘산냐-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산냐-의 의미를 잘 이해하려면 그 포스트를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 * 콜라 병을 맛있는 음료가 담긴 병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콜라의 맛도 알 수 없습니다. 빈 콜라 병만 보아도 콜라의 달콤한 맛이 떠올라 콜라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Xi는 콜라 병을 보았을 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당황했습니다!

    • * 이제, 콜라 병 대신, 사람에 대한 산냐-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5. A, B, C 세 사람이 작은 커피숍에 앉아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들은 모두 문을 향해 앉아 있고, X라는 사람이 들어옵니다.  X는 A의 절친한 친구이고 B의 최악의 적이고, C는 X를 모른다고 가정해 보세요. 우리는 또한 그들 모두가 남성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 * 자, 순식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봅시다. A는 X를 자신의 친구로 인식하고 미소를 짓습니다. B는 X를 적으로 인식하고 얼굴이 어두워집니다.

    • * 반면에, C의 마음은 X에 대해 아무것도 등록하지 않으며, X는 C에게 그저 또 다른 사람일 뿐입니다. C는 즉시 자신이 하던 일로 돌아갑니다.

    • * 그런 빠른 인식은 각 찟따(대략 생각으로 번역)와 함께 일어나는 산냐-(정신 요소, 쩨따시까) 때문에 가능합니다. ‘산냐-는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웨다나-를 일으킨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위 예는 ‘정말 놀라운 속도로 빠른 생각(찟따)의 순간적 진화’ 포스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산냐-’에 따른 감정

     

    6. 핵심: 우리의 감정(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우리의 느낌)은 즉시 생성되는 산냐-(saññā)에 달려 있습니다.

     

    • * 위 #5에서 논의된 예에서, 사람 C는 X에 대해 낯섭니다. 따라서, 그의 마음은 X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생성하지 않았습니다.

    • * 반면에, A의 마음은 X를 보자마자 즉시 ‘좋은 감정’을 생성했고, B의 마음은 X에 대해 ‘나쁜 감정’을 생성했습니다.

    • * 따라서, 감정(산냐-, 웨다나-)이 생성되는 것은 마음 속에서 생성되는 ‘산냐-’의 유형에 따라 달라집니다.

     

    도덕적/부도덕적 행위는 감정에 기반한다

     

    7. 위 #4에서, Xi는 빈 콜라병을 보고 ‘콜라 맛의 산냐-’를 생성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콜라가 가득 든 콜라 병을 건네주더라도 그는 ‘병 안에 있는 음료를 마시고 싶은 욕망’을 형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에, Xi는 콜라 병을 보고 당황했습니다. 콜라 병은 낯선 것이었고, 그는 그것을 신이 그들에게 내려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 아이가 콜라 한 병을 받았을 때, 느끼는 기쁨과 비교해 보세요. 아이의 마음에 생성된 산냐-가 그 기쁨의 감정, 즉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산냐-와 웨다나는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 느낌의 대부분은 산냐-에 기반합니다. ‘땅하- ㅡ 마음이 만든 웨다나-를 일으키는 산냐-의 결과’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런 산냐-/웨다나-에 기반하여, 사람들은 ‘그것들을 더 얻기 위해’ 부도덕한 행위를 합니다.

    • * 달리 말하면, 산냐-와 연관된 (마음이 만든) 웨다나-는 윈냐-나의 확장과 이어지는 아비상카-라 생성의 원인이고, 이것은 재탄생 과정/고통을 지속시키게 합니다. ‘윈냐-나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것이 붓다께서 말-루카뿟따 존자에게 전달하고자 하신 핵심 요점입니다.

     

    8. 그리고 붓다께서는 사람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즉 산냐-를 생성하거나 개발하지 못한 소리, 냄새, 맛, 감촉, 그리고 관념(개념)에 대한 질문을 반복하셨습니다.  

     

    • * 대답은 “아닙니다.”였습니다.

    • * 그러므로, 사람이 감각 입력이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즉 그것들이 수카 산냐-/웨다나-를 생성하지 않는다면 (모든 여섯 가지 감각을 통한) 모든 감각 입력에 유혹당하거나 매력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위 #4에서 논의한 경우에, 아마존 부족은 코카 콜라(또는 콜라)를 마시는 것에 대한 산냐-를 발달시키지 않았고, 병을 보는 것만으로는 수카 산냐-/웨다나-를 생성하지 않았습니다.

    • * Xi와 그의 부족에게 콜라라는 음료가 소개되면, 그들 역시 콜라에 대한 산냐-를 발달시킬 것입니다. 소개된 후, 콜라가 가득한 콜라 병을 볼 때, 그들의 마음은 수카 산냐-/웨다나-를 생성할 것입니다. 이것이 신생아가 세상것에 대한 산냐-를 발달시키는 방식인데, 부모의 도움으로, 형색, 소리, 냄새 등을 경험함으로써 발달시킵니다. ‘왜곡된 산냐-는 모든 어른에게는 일어나지만 신생아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산냐-의 측면

     

    9. 우리 모두는 감각 입력에 익숙해지면 그런 산냐-를 생성할 수 있는 몸(정신적 몸과 물질적 몸 모두)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 * 그러나 붓다께서는 그것들이 ‘왜곡된 산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콜라를 달게 맛보더라도 그것은 ‘만들어진 맛’입니다. 그렇습니다. 콜라의 단맛이 콜라에 있는 자당 분자로 인해 실제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콜라에 있는 자당 분자의 기원(그리고 우리의 감각 기관이 그것을 달콤하게 느끼는 이유)은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에 있으며, 이해하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왜곡된 산냐-(산자-나-띠)에 속음 ㅡ 들러붙음(땅하-)의 기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뿌툿자나(puthujjana)가 그 ‘내장된’ 산냐-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세간적 조사’도 그런 산냐-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설탕의 단맛이 자당 분자 때문이라고 확인합니다.

    • * ‘설탕이 자당 분자로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리고 우리의 물질적, 정신적 몸이 어떻게 형성되어 설탕에 기반한 ‘수카 산냐-/웨다나-’를 제공하는지를 밝혀내려면 붓다가 되어야 합니다.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설명합니다. ‘붓다의 세계관(Worldview of the Buddha)’ 서브섹션의 처음 몇 개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를 위해서는 빠띳짜 사뭅빠-다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 * ‘왜곡된 산냐-’에 기반한 이런 ‘수카 산냐-/웨다나-’는 우리에게 그런 광경(시각 대상), 맛 등을 갈망하게 만듭니다. ‘그것들을 더 많이’ 얻기 위해 우리는 고통의 근원인 부도덕한 행위에 빠지기 쉽습니다. 고통을 극복하려면 그 ‘왜곡된 산냐-’의 기원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메커니즘을 이해한 후에도, 그 ‘왜곡된 산냐-’에 속지 않도록 수행해야 합니다.

    • * 그 마지막 사항은 표식 10.1에서 말-루카뿟따 존자에게 가리켜 보이셨는데, 이에 대해 아래에서 논의하겠습니다.

     

    ‘수카 산냐-/웨다나-’의 기원과 들러붙지 않는 방법

     

    10. “Ettha ca te, mālukyaputta, diṭṭhasutamutaviññātabbesu dhammesu diṭṭhe diṭṭhamattaṁ bhavissati, sute sutamattaṁ bhavissati, mute mutamattaṁ bhavissati, viññāte viññātamattaṁ bhavissati.”

     

    • * 위 링크에 있는 (낱말별) 직역: “그러면,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생각, 아는 것에 관해서는, 보이는 것에는 단지 보이는 것만이 있을 뿐이고, 들리는 것에는 단지 들리는 것만이 있을 뿐이고, 생각에는 단지 생각만 있을 뿐이고, 아는 것에는 단지 아는 것만 있을 뿐이다.” 

    • * 그러나, 이 매우 중요한 구절에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11. 그 구절에서, ‘diṭṭhasutamutaviññātabbesu dhammesu’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 * 이는 광경(diṭṭha), 소리(suta), 맛/냄새/감촉이라는 세가지 밀접한 접촉(muta)에 기반한 세간적인 것에 집착하고 이를 마음 또는 윈냐-나로 상기할 때, 마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담마’(또는 업 에너지)를 말합니다.

    • * 그 ‘왜곡된 산냐-’가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해 어떻게 생기는지 이해하게 되면,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살게 될 것입니다(bhavissati). 즉, 그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그런 수카 산냐-/웨다나-를 경험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구절의 나머지인 “diṭṭhe diṭṭhamattaṁ bhavissati, sute sutamattaṁ bhavissati, mute mutamattaṁ bhavissati, viññāte viññātamattaṁ bhavissati.”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바윗사띠(bhavissati)’는 그 ‘잘못된/왜곡된 산냐-’에 의해 생성된 수카 웨다나-에 집착하지 않고 ‘사는/훈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물론, 그것은 ‘잘못된/왜곡된 산냐-’가 어떻게 내장되어 있는지 이해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 *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다음 구절(표식 10.20)에서 그 결과가 설명되는데, 이에 대해 아래에서 논의하겠습니다.

     

    12. “Yato kho te, mālukyaputta, diṭṭhasutamutaviññātabbesu dhammesu diṭṭhe diṭṭhamattaṁ bhavissati, sute sutamattaṁ bhavissati, mute mutamattaṁ bhavissati, viññāte viññātamattaṁ bhavissati; tato tvaṁ, mālukyaputta, na tena. Yato tvaṁ, mālukyaputta, na tena; tato tvaṁ, mālukyaputta, na tattha. Yato tvaṁ, mālukyaputta, na tattha;tato tvaṁ, mālukyaputta, nevidha, na huraṁ, na ubhayamantarena.”Esevanto dukkhassā”ti.

     

    • * 여기서, “Yato kho te, mālukyaputta,”는 “말-루카뿟따여, 그렇게 살 수 있다면(즉, 그런 수카 산냐-/웨다나-에 집착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diṭṭhe diṭṭhamattaṁ bhavissati”는 “보는 것을 넘어서지 않도록, 즉 그 광경에서 생기는 ‘왜곡된 산냐-’에 집착하지 않도록 수행하라”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sute sutamattaṁ bhavissati”는 “듣는 것을 넘어서지 않도록, 즉 그 소리에서 생기는 ‘왜곡된 산냐-’에 집착하지 않도록 수행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다른 감각 입력에도 적용됩니다.

    • * 구절의 나머지는 그런 삶/훈련의 결과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 * “tato tvaṁ, mālukyaputta, na tena”는 “그렇게 살거나 훈련하면, 그 사고방식/존재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까-마 로까(kāma loka)에서 세상 것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런 존재를 위한 업 에너지(담마-)를 생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 * 여기서, ‘야또(yato)’, ‘따또(tato)’, 및 ‘떼나(tena)’는 ‘원인’과 ‘결과’를 나타내는 데 반복적으로 쓰였습니다. ‘이렇게 훈육하면(yato)’, ‘어떤 결과(tena)’로 ‘이어진다(tato)’는 뜻입니다.

    • * 예를 들어, ‘Vijjā Sutta (Iti 40)’의 다음 구절, “Yato ca hoti pāpiccho, ahirīko anādaro; Tato pāpaṁ pasavati, apāyaṁ tena gacchati”에서 그 사용법이 명확합니다. “그들은 많은 사악함을 만들어 내고(tato), 그 결과(tena)로 그들을 아빠-야에 가게 한다(tato).”는 뜻입니다.

     

    13. 다음 구절 “Yato tvaṁ, mālukyaputta, na tena; tato tvaṁ, mālukyaputta, na tattha”에서, 붓다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너(말-루카뿟따)는 그런 존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런 존재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 * 여기서, ‘땃타(tatta)’는 최종 결과입니다.

    • * 이어지는 “Yato tvaṁ, mālukyaputta, na tattha; tato tvaṁ, mālukyaputta, nevidha, na huraṁ, na ubhayamantarena. Esevanto dukkhassā”ti,”는 “너가 그런 존재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이 존재에 있지 않을 것이고(nevidha = nevi idha, ‘이 존재에, 여기가 아닌’), 또는 그런 존재에 있지 않을 것이며(na huraṁ), 또는 다른 어떤 존재 사이에도 있지 않을 것이다(na ubhayamantarena)”를 의미합니다.

    • * 그것은 모든 존재에 대한 업의 발생을 멈추게 했기 때문입니다.

     

    (왜곡된) 산냐-는 집착의 근본 원인이다

     

    14. ‘감각적 즐거움’의 근본적인 본질에 대한 무지로 인해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시작하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통해 업 에너지(담마-)가 생성되는 과정과 관계를 만드는 것이 본질적입니다. 그런 ‘즐거움’은 마음으로 만들어지고, ‘왜곡된 산냐-’로 나타납니다.

     

    • * ‘물-라빠리야-야 숫따 ㅡ 모든 것의 뿌리’ 포스트에서 가리켜 보인 바와 같이, (왜곡된) 산냐-는 모든 것의 뿌리입니다! 모든 고통은 ‘내장(built-in)’ 산냐-에 집착함을 통해 일어납니다.

    • *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우빠-다-나 빳짜야- 바오-(upādāna paccayā bhavō)’ 단계에서 업 에너지(담마-)가 생성되고, 이는 다시 재탄생(‘바와 빳짜야- 자-띠)’과 고통(‘자-띠 빳짜야- 자라-, 마라나, 소까 빠리데와 둑카 도-마낫수빠-야사- 삼바완’띠’)으로 이어지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 * 또한, ‘담마-란 무엇인가? ㅡ 더 깊은 분석’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말-루카뿟따 존자는 기본 개념을 이해했다

     

    15. 말-루카뿟따 존자는 붓다께서 간략히 설명하신 기본 개념을 이해했습니다. 이어지는 구절(표식 11.1)에서, 말-루카뿟따 존자는 그 자신의 말로 그 개념을 설명했는데,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다. 말-루카뿟따 존자께서 자신의 이해를 표현하기 위해 설명한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Imassa khvāhaṁ, bhante, bhagavatā saṅkhittena bhāsitassa vitthārena atthaṁ ājānāmi:‘Rūpaṁ disvā sati muṭṭhā, Piyaṁ nimittaṁ manasi karoto; 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tiṭṭhati. Tassa vaḍḍhanti vedanā, anekā rūpasambhavā; Abhijjhā ca vihesā ca,cittamassūpahaññati; Evaṁ ācinato dukkhaṁ, ārā nibbāna vuccati.”

     

    • * “이것이 제가 부처님의 간략한 말씀의 상세한 의미를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볼 때, 광경의 매력(주: 이 매력은 왜곡된 산냐-로 인해 일어남)에 집중하면 마음챙김이 사라집니다(Rūpaṁ disvā sati muṭṭhā). 그것은 ‘삐야 니밋따(piya nimitta)’, 즉 ‘좋아하는 감각 대상’이 됩니다. 욕망이 가득한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면(Sārattacitto vedeti), 그 마음이 자리 잡습니다(Tañca ajjhosa tiṭṭhati). 많은 즐거운 느낌이 자라고(Tassa vaḍḍhanti vedanā), 마음은 많은 미래 가능성을 생성합니다(anekā rūpasambhavā). 마음은 그것을 즐길 때는 탐욕스러워지고, 그것을 잃으면 우울해지는데, 결국 마음은 지칩니다(Abhijjhā ca vihesā ca,cittamassūpahaññati). 이렇게 고통을 축적하면, 닙바-나에서 멀어집니다(Evaṁ ācinato dukkhaṁ, ārā nibbāna vuccati).”

     

    “Na so rajjati rūpesu, rūpaṁ disvā paṭissato; Virattacitto vedeti, tañca nājjhosa tiṭṭhati. Yathāssa passato rūpaṁ, sevato cāpi vedanāṁ; Khīyati nopacīyati, evaṁ so caratī sato; Evaṁ apacinato dukkhaṁ, santike nibbāna vuccati.”

     

    • * “그러나, 마음이 사띠빳타-나 부미(patissato; ‘paccupatthita sati’ 또는 ‘Satipaṭṭhāna Bhumi’와 동일)에 있으면, 광경에 유혹되지 않을 것입니다(Na so rajjati rūpesu). 욕망이 없는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한다면(Virattacitto vedeti), 그것에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tañca nājjhosa tiṭṭhati). 그 루빠의 참된 본질(즉, 왜곡된 산냐-로 인해 마음에 일어난다는 것)을 안다면, 여전히 웨다나-를 경험할 것입니다(Yathāssa passato rūpaṁ, sevato cāpi vedanāṁ).  그러나, (그 사람은 그 루빠의 아닛짜 특성을 숙고할 것이고) 그것을 지속하기 위한 아비상카-라를 형성하지 않을 것이고(Khīyati nopacīyati),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이 사띠와 함께 사는 방식입니다(evaṁ so caratī sato). 그것은 상요자나를 약화시키고 끊어내고 고통의 가능성을 멈추게 합니다(Evaṁ apacinato dukkhaṁ). 이것은 그 사람을 닙바-나에 더 가까이 데려갑니다(santike nibbāna vuccati).

     

    다른 다섯 감각 입력에 대해 그 구절을 반복

     

    16. 그리고 말-루카뿟따 존자는 나머지 다섯 가지 감각 기능인 삿다(소리), 간다(냄새), 라사(맛), 팟사(촉각), 담마(기억/개념)에 대해서도 비슷한 게송을 각각 반복했습니다(표식 14.1, 표식  16.1, 표식 18.1, 표식 20.1, 표식 22.1).

     

    • * ( 이 의미심장한 설명은 그 자체로 ‘Mālukyaputtattheragāthā (Thag 16.5)’에 나와 있습니다.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 대응하는 아-야따나(바힛다/앗잣따 단계)로 전환되는 것은  “Rūpaṁ disvā sati muṭṭhā” (표식 1.1), “Saddaṁ sutvā sati muṭṭhā” (표식 3.1), “Gandhaṁ ghatvā sati muṭṭhā” (표식 5.1), “Rasaṁ bhotvā sati muṭṭha” (표식 7.1), “Phassaṁ phussa sati muṭṭha” (표식 9.1), “Dhammaṁ ñatvā sati muṭṭha” (표식 11.0)로 설명되어 있음에 주목하세요.

    • * 그러나 그 메커니즘의 참된 본질을 이해한 후에는 마음이 그것에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Na so rajjati rūpesu” (표식 13.1), “Na so rajjati saddesu” (표식 15.1), “Na so rajjati gandhesu” (표식 17.1), “Na so rajjati rasesu” (표식 19.1), “Na so rajjati phassesu” (표식 21.1), 및 “Na so rajjati dhammesu” (표식 23.1)을 참조하세요. 그것이 사띠빳타-나 바와나의 기본입니다! )

    • * 그 다음, ‘Mālukyaputta Sutta (SN 35.95)’의 표식 36.1에서 말-루카뿟따 존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습니다.

     

    “Imassa khvāhaṁ, bhante, bhagavatā saṅkhittena bhāsitassa evaṁ vitthārena atthaṁ ājānāmī”ti.

     

    • * “저는 부처님께서 간략하게 말씀하신 내용의 자세한 의미를 이렇게 이해합니다.”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셨습니다(‘Mālukyaputta Sutta (SN 35.95)’의 표식 36.2). “Sādhu sādhu, mālukyaputta. Sādhu kho tvaṁ, mālukyaputta, mayā saṅkhittena bhāsitassa vitthārena atthaṁ ājānāsi”

     

    • * “잘했다. 잘했다. 말-루카뿟따여! 내가 간략하게 말한 내용의 자세한 의미를 이해한 것이 훌륭하다.”

    • * 그리고, 붓다께서는 같은 구절을 반복하여 확인하셨습니다(표식 36.1에서 표식 41.1까지)

     

    17. 말-루카뿟따 존자가 사띠빳타-나를 길러 아라한과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며칠이 더 걸렸습니다. ‘Mālukyaputta Sutta (SN 35.95)’의 표식 42.2를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우리는 바-히야 존자가 다른 설명이 없이 단 두 구절만으로 아라한과를 얻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 *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배경 지식이 필요합니다.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사띠빳타-나에 대한 포스트 시리즈를 시작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바히야 숫따(Ud 1.10)와 말-루카뿟따 숫따(SN 35.95)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 필자는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와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이 숫따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수 세기 동안 묻혀 있던 이 심오한 개념들을 통해서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스승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ero)께서 이 문제를 풀어내셨습니다.

     

    ‘딧테 딧타맛땅 바윗사띠’는 사띠빳타-나에서 경험된다

     

    18. 위 #15로부터, 우리는 ‘diṭṭhe diṭṭhamattaṁ bhavissati’는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umi)에 있을 때 경험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마음이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동안에는 ‘보이는 것’에 마음이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 * 이것은 아래 도표에서 가리키고 있습니다. (주: 이 도표는 ‘윈냐-나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에 있는 도표의 업데이트 버전임)  

    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 Satipaṭṭhāna – Basic Idea – version 2

     

    • * 따라서, 소따빤나는 사띠빳타-나를 육성하여 사띠빳타-나 부미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일단 도달하면, 위빠사나-를 육성하여 더 높은 도과(막가 팔라)를 얻을 수 있습니다.

    • * 마음이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umi)에 있는 한, 그 사람은 ‘왜곡된 산냐-’없이 볼 수 있습니다(즉, ‘딧테 딧타맛땅 바윗사띠’가 적용됨). 그러나 그 사람이 일상 생활로 돌아오면, 그 사람의 마음은 사띠빳타-나 부미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 * 붓다께서 말씀하신 ‘감각 기능을 억제하는 수행’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래 #19를 보세요.

    • * 필자는 몇 개의 포스트에서 ‘왜곡된 산냐-’를 건너뛰고 ‘사띠빳타-나 부미’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윈냐-나와 그 진정한 의미’의 #9와 그곳의 참조 내용을 참조하세요.)

    • * 또한, 아라한의 마음(일상 생활 동안)은 ‘까-마 다-뚜(kāma dhātu)’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이 상태에서는 ‘딧테 딧타맛땅 바윗사띠’가 항상 적용된다는 점에 유의하세요. 위 도표를 참조하세요. 여기서, ‘왜곡된 산냐-’가 존재하지만, 아라한의 마음은 그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바-히야 숫따로 되돌아가서

     

    19. 위의 말-루카뿟따 숫따에 대한 논의가 #1(위의 #10~#13에서 설명)에 있는 바-히야 숫따의 짧은 두 개의 구절을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1에 있는 바-히야 숫따의 첫 구절의 핵심 낱말은 ‘식키땁방(sikkhitabbaṁ)’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감각을 자제하고 감각적 즐거움을 피한다는 의미입니다

     

    • * 이 감각적 즐거움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며 더 깊은 차원의 환상입니다. 예를 들어, ‘왜곡된 산냐-(산자-나-띠)에 속음 ㅡ 들러붙음(땅하-)의 기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것들을 즐기는 데는 위험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더 많은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우리는 원치않는 결과(위빠-까)를 초래하는 부도덕한 생각, 말, 행동에 빠지기 쉽습니다. 축생과 같은 낮은 차원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 * 광경(시각 대상), 소리, 맛, 냄새, 및 감촉에 대한 우리의 갈망과,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생각은 그것들이 우리 마음속에 자동적으로 생성하는 기쁨/즐거움의 감각에 기반합니다. 윈냐-나를 통해 식별되는 다른 세 가지 육체 감각을 통해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 너머로 나아가지 마세요. 그것은 감각적 경험이 가져오는 어떤 기쁨/즐거움의 감각에도 유혹받지 말라는 뜻입니다.

    • * 두 번째 구절: 이런 식으로 수행하면, 너(너의 미래)는 그것(즉, 특정 영역의  미래 존재)에 의해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너는 ‘그 영역’에  있지 않을 것이다(즉, 너는 거기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너는 여기(인간 세계)나 거기(그 영역)나 그 사이(아라한의 ‘안따라-빠리닙바-이’와 같음)에 있지 않을 것이다. 거친 레벨에서, 까-마 로까(kāma loka)의 아-람마나(ārammana)에 대한 집착은 까-마 로까에 재탄생을 가져옵니다.  자-나에 대한 집착은 루빠 로까(rupa loka)에 재탄생을 가져옵니다. 아루빠 사마-빳띠에 대한 집착은 아루빠 로까(arupa loka)에 재탄생을 가져옵니다. 특정 유형의 아-람마나는 특정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어떤 재탄생도 일어나지 않을 때, 닙바-나를 얻고 재탄생 과정은 끝납니다(그리고 고통도 끝납니다).

     

    우빠와-나산딧티까 숫따 ㅡ 추가 설명

     

    20. ‘Upavāṇasandiṭṭhika Sutta (SN 35.70)’에서, 붓다께서는 마음이 시각 대상에 집착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두 단계로 설명하셨습니다. “Idha pana, upavāṇa, bhikkhu cakkhunā rūpaṁ disvā rūpappaṭisaṁvedī ca hoti rūparāgappaṭisaṁvedī ca.”

     

    • * “우빠와-나여, (‘왜곡된 산냐-’와 함께 발생하는) 눈으로 시각 대상을 보는 빅쿠를 예로 들어보자.”  이 단계는 아라한에게도 일어나며, 위 구절의 rūpappaṭisaṁvedī(rūpa paṭisaṁvedī)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마음으로 만들어진) 루빠’는 태어날 때 우리 몸에 내재된 ‘왜곡된 산냐-’에 기반합니다. 

    • * 시각 대상(광경)에 대한 욕망은 마음이 그 (마음으로 만들어진) 루빠에 갈망(라-가)으로 집착하느냐에 따라 실현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뿌툿자나는 (시각 대상이 매력적이든 혐오스럽든) 집착할 수 있지만, 아라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위 구절에서 rūparāgappaṭisaṁvedī(rūpa rāga paṭisaṁvedī)라는 두번째 단계입니다.

    • * 다시 말해, 이는 #5의 예를 통해 명확해집니다. A, B, C  세 사람 모두가 같은 사람 X를 보았습니다. 즉, 모두 X의 같은 외부 루빠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생성된 루빠’는 그들의 마음에서 생성된 서로 다른 종류의 산냐-에 기반했습니다. A는 ‘친구라는 산냐-’를 생성했고, B는 ‘적이라는 산냐-’를 생성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 ‘마음이 만든 루빠’에 좋아함(라-가 산냐-)과 싫어함(빠띠까 산냐-)으로 집착했습니다. 반면에 C는 X가 낯설기 때문에 어떤 감정도 생성하지 않았습니다.

    • * #4의 예에서, Xi는 유리병이라는 개념/생각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5의 C(적어도 X를 사람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음)와, Xi(콜라병은 커녕 유리병을 전혀 경험하지 못함)의 산냐- 차이에 주목하세요. 따라서, Xi는 집착을 피하는 것 외에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유리병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차원의 산냐-입니다.

     

    21. 그리고 붓다께서는 다른 다섯 가지 감각 입력에 대해서도 같은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 * 예를 들어, 표식 3.1에서는 음식을 맛보는 과정이 다음과 같이 설명됩니다. “Puna caparaṁ, upavāṇa, bhikkhu jivhāya rasaṁ sāyitvā rasappaṭisaṁvedī ca hoti rasarāgappaṭisaṁvedī ca. Santañca ajjhattaṁ rasesu rāgaṁ ‘atthi me ajjhattaṁ rasesu rāgo’ti pajānāti.”

    • * 번역: 혀가 맛있는 음식을 느낄 때(jivhāya rasaṁ sāyitvā rasappaṭisaṁvedī), 그 맛에 대한 갈망이 생길 수 있다(rasa rāga paṭisaṁvedī). 두 번째 단계가 일어나면, “라사 라-가(rasa rāga)가 내 안에 일어났다(‘atthi me ajjhattaṁ rasesu rāgo’ti)”는 것을 즉시 알게 될 것이다.

     

    22. 그 다음, 표식 5.1에서, 붓다께서는 모든 상요자나를 제거한 자(아라한)들은 마음을 즐겁게 하는 시각 대상을 경험하지만(rūpappaṭisaṁvedī)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다(no ca rūparāgappaṭisaṁvedī)고 설명하셨습니다.

     

    • * 표식 5: “그들은 그런 시각 대상을 보고 싶어하지 않으며, 그것을 알고 있다.” (Asantañca ajjhattaṁ rūpesu rāgaṁ ‘natthi me ajjhattaṁ rūpesu rāgo’ti pajānāti.)

    • *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 포스트의 #6에서, 루빠 빠띠상웨디-(또는 맛보는 사건에 대해서는 라사 빠띠상웨디-)는 까-마 다-뚜에 해당하고, 바힛다 윈냐-나는 루빠 라-가 빠띠상웨디-(또는 맛보는 사건에 대해서는 라사 라-가 빠띠상웨디-)에 해당합니다.

    • * 이러한 설명은 여섯 가지 유형의 감각 입력에 모두 적용됩니다. 표식 7.1에서는, 5가지 육체 감각을 통하지 않고 마음(mano)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 설명합니다.

    • * ‘산딧티꼬 ㅡ 그 의미는 무엇인가?’ 포스트에서는 우빠와-나산딧티까 숫따(Upavāṇasandiṭṭhika Sutta)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왜곡된 산냐-는 단계적으로 제거된다

     

    23. 마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유형의 산냐-는 세 가지 주요 방식을 통해 집착으로 이어집니다. (i) 잘못된 견해(딧티, 특히 삭까-야 딧티), (ii) 갈애(땅하-), (iii) ‘나/내것’이라는 감각(마나). 윤회 족쇄(상요자나-)의 강도는 수행이 진행됨에 따라 체계적으로 약화되고 제거됩니다. 소따빤나는 세가지 딧티 상요자나(diṭṭhi saṁyojana)를 제거했고, 사까다가미(Sakadāgāmi)는 까-마 라-가와 빠띠가 상요자나를 약화시켰으며, 이 두 가지 상요자나는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서 제거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두 가지 땅하 상요자나(루빠 라-가와 아루빠 라-가)와 마-나(māna)와 관련된 세가지 상요자나(마-나, 웃닷짜, 아윗자)는 아라한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 * ‘물-라빠리야-야 숫따 ㅡ 모든 것의 뿌리’ 포스트에서 말했듯이, (왜곡된) 산냐-는 모든 윤회 족쇄(상요자나)의 근원입니다!

    • * ‘Paṭhamasamādhi Sutta (AN 11.18)’에서, 어떤 빅쿠들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빅쿠가 이와 같은 사마디의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까? 그들은 땅에서 땅을, 물에서 물을, 불에서 불을, 공기에서 공기를 인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무한한 공간의 차원에서 무한한 공간의 차원을, 무한한 의식의 차원에서 무한한 의식의 차원을, 무의 차원에서 무의 차원을,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차원에서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차원을 인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을, 저 세상에서 저 세상을 인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음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찾고, 탐구하는 것을 (실제하는 것으로) 인식하지 못할 것입니다(yampidaṁ diṭṭhaṁ sutaṁ mutaṁ viññātaṁ pattaṁ pariyesitaṁ anuvicaritaṁ manasā tatrāpi na saññī assa).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지각할 것입니다. 즉 그들은 여전히 지각을 지니고 있습니다(saññī ca pana assā).”

    • *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과 관련된 ‘왜곡된 산냐-’를 지니고 있습니다. 위의 구절에서, 그 빅쿠들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제거되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왜곡없이 산냐-를 유지하는 사마디가 있을 수 있는지 묻고 있었습니다.

     

    24. 붓다께서는 그런 왜곡되지 않은 산냐-가 있으며, “ ‘etaṁ santaṁ etaṁ paṇītaṁ, yadidaṁ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n’ti.”로 표현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그것은 오직 아라한 단계에서만 완전히 실현됩니다. 그곳에서는 심지어 빠타위, 아뽀, 떼조, 와요에 대한 산냐-조차도 ‘가짜’임이 완전히 실현될 것입니다.

     

    • * 아루빠 로까(ākāsānañcāyatana부터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까지)에 있는 존재조차도 왜곡된 산냐-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경향과 함께 ‘나/내것이라는 감각’(마나)이 사라지는 것은 아라한 단계입니다. 이는 우리뿐만 아니라 아나-가-미에게도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 * 그러나, 구절의 마지막 부분(푸른색과 갈색으로 강조 표시한 부분)은 현재 논의와 관련이 있습니다.

    • * 필자는 많은 숫따들이 이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을  가리켜 보이고 싶었습니다. 사띠빳타-나 바와나(Satipaṭṭhāna Bhavana)를 논의할 때 이 점에 대해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루빠’는 ‘외부 대상의 정신적 이미지’를 의미한다

     

    25. 다음은 위 논의에서 중요한 점입니다. 거의 모든 숫따에서 붓다께서 말씀하신 ‘루빠’는 ‘외부 루빠’가 아니라 ‘마음에 일어나는 정신적 이미지’를 의미합니다. 또한 ‘짝쿠(cakkhu)’는 육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 * 예를 들어, 위 #5에서 논의한 예에서, ‘보는 사건’(‘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 viññāṇaṃ’)인 ‘루빠’는 X의 외부 물질적 몸이 아닙니다. 더욱이, 짝쿠는 A, B, 또는 C의 ‘육체적 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 * 만약 그것이 똑같았다면, A, B, C는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을 것입니다!

    • * ‘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 viññāṇaṃ’에서, ‘짝쿠(cakkhu)’는 짝쿠 아-야따나(‘오염된 마음으로 보는’을 칭함)를 의미합니다. 아라한은 짝쿠 인드리야(cakkhu indriya)로 보는 것이지, 짝쿠 아-야따나(cakkhu āyatana)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 * 뿌툿자나(또는 아라한)가 시각대상(광경)을 볼 때, 그것들은 ‘외부 루빠’가 아니라 ‘왜곡된 산냐-에 따라 마음 속에 생성된 루빠’를 봅니다. 이것이 A, B, C가 X를 각각 친구, 적, 그리고 그저 다른 사람으로 인식한 이유입니다. 그들 각자는 마음 속에 자신만의 ‘X의 루빠’를 생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 viññāṇaṃ.”의 ‘루빠(rupa)’입니다.

    • * 거의 모든 숫따에서, ‘루빠’는 ‘왜곡된 산냐-’에 따라 만들어진 ‘마음이 만든 루빠’를 의미합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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