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type":"img","src":"https://cdn.quv.kr/f5120tiws%2Fup%2F5c9ef7f87c581_1920.png","height":80}
  • 붓다 담마
  • 주요 담마 개념
  • 리빙 담마
  • 방 안의 코끼리
  • 담마와 과학
  • 세 단계 실천
  • 빠띳짜 사뭅빠다(연기)
  • 자아가 있는가?
  • 바와나(명상)
  • 아비담마
  • 담마빠다(법구경)
  • 숫따(경) 해석
  • 붓다 담마ㅡ상급
  • 음성법문
  • JBM 법문-녹취
  • 원문 홈
  • {"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Nanum Barun Gothic"]}

     

    꾸살라/아꾸살라와 뿐냐/아뿐냐 깜마

     

    원문 : Buddha Dhamma 섹션의 ‘Kusala/Akusala and Puñña/Apuñña Kamma

     

    뿐냐(puñña) 깜마와 아뿐냐(apuñña) 깜마는 각각 도덕적 행위와 부도덕한 행위입니다. 전자는 좋은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지게 하고 후자는 나쁜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는 닙바-나로 이끄는 깜마인 반면에,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dasa akusala)는 재탄생 과정을 영속화합니다. 꾸살라 깜마는 ‘뿌라-나 깜마’ 단계의 초기, 자동적인 깜마 생성을 차단함으로써 아꾸살라 깜마의 시작을 영구적으로 막는 것을 지칭합니다. 

     

    2026년 1월 17일 작성

     

    소개

     

    1. 뿐냐 깜마(puñña kamma)와 아뿐냐 깜마(apuñña kamma)를 각각 도덕적 행위와 부도덕한 행위로 기억하는 것이 쉽습니다. 따라서, 베푸는 행위나 기타 친절한 행동과 같은 도덕적 행위는 뿐냐 깜마입니다. 타인을 해치는 행위(살인, 도둑질, 거친말  등)는 아뿐냐 깜마입니다.

     

    • *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는 몸, 말, 및 마음으로 행해진 열 가지 유형의 부도덕한 행위(다사 아꾸살라)입니다. 그러므로, 아뿐냐 깜마는 아꾸살라 깜마와 동일합니다.

    • * 많은 사람들이 꾸살라 깜마와 뿐냐 깜마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동일하지 않습니다.

    • * 꾸살라 깜마는 자신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닙바-나를 향하여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오직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 이상에 도달한 자만이 꾸살라 깜마를 행할 수 있습니다. 닙바-나에 이르는 성스런 길을 따르기 위해서는 먼저 소따빤나 단계에서 부처님의 세계관을 이해해야 합니다.

    • * 뿐냐 깜마 그 자체로는 닙바-나에 이를 수 없지만, 그것들은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필수적입니다. 이 포스트의 끝에서 그 점이 명확해질 것입니다.

     

    뿐냐 깜마 ㅡ 다-나, 실라, 바-와나-

     

    2. 뿐냐 깜마의 열 가지 유형

     

    i. 다-나(dāna, 보시)

    ii. 다른 이들에게 공덕을 회향(빳띠다-나, pattidāna) 

    iii. 다른 이들의 공덕을 즐거워함(수용, 참여)(빳따-누모다나-, pattānumodanā)

    iv. 실라(도덕), 즉 5, 8, 10계를 지킴

    v. 연장자나 덕높은 이를 공경함(아빠짜야마, apacayaṃa)

    vi. 종교적 장소에 경의를 표하고, 그런 장소 등을 관리함(웨이야-왓짜, veyyāvacca) 

    vii. 명상(바-와나-, bhāvanā)

    viii. 담마를 설하는 것을 들음(담마 사와나, Dhamma savana)

    ix. 담마를 가르침(담마 데사나-, Dhamma desanā)

    x. 자신의 잘못된 견해, 특히 깜마에 대한 견해를 바르게 함(딧티주깜마, diṭṭhijukamma)

     

    3. 세 가지 범주(다-나, 실라, 바-와나-)는 ‘Puññakiriyavatthu Sutta (AN 8.36)’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이 숫따는 세 가지 범주를 닦는 것이 어떻게 다양한 재탄생으로 이어지는지 설명합니다. 

     

    • * 첫째, 어떤 사람들은 공덕을 짓는 영역으로 약간의 보시(다-나)와 도덕적인 행위(실라)를 실천하였지만, 공덕을 짓는 영역으로 명상(바-와나-)을 하는 것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불우한 사람들(건강하지 않거나 가난한 사람들)로 재탄생합니다.

    • * 다음, 어떤 사람들은 공덕을 짓는 영역으로 적당한 정도의 보시와 도덕적 행위를 실천하였지만, 공덕으로 짓는 영역으로 명상까지는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유복한 사람들(건강하고 부유한 사람들)로 재탄생합니다.

    • * (표식 4.1~9.3) 다음으로, 어떤 사람들은 탁월한 정도로 보시와 도덕적 행위를 실천하였지만, 명상까지는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쌓은 보시와 도덕적 행위의 정도에 따라 (높아지는 순서로) 짜-뚜마하-라-지까(Cātumahārājika), 따-와띰사(Tāvatiṁsa), 야-마(Yāma), 뚜시따(Tusita), 님마-나라띠-(Nimmānaratī), 및 빠라님미따와사왓띠-(paranimmitavasavattī)라는 천상계에 재탄생합니다.

    • * 16가지 루빠 로까 브라흐마 영역에 재탄생하려면 바-와나-(Bhāvanā)를 닦아야 합니다. 자-나를 닦는 이들은 16가지 루빠 로까 브라흐마 영역(색계 범천 영역)에 재탄생하고, 이를 넘어 아루빠 사마-빳띠를 닦는 이들은 4가지 아루빠 로까 브라흐마 영역(무색계 범천 영역)에 재탄생합니다.

    • * 다-나, 실라, 바-와나-를 거의 실천하지 않으면서 다사 아꾸살라를 행하는 이들은 아래 #5에 논의된 바와 같이 사악처(아빠-야-)에 재탄생합니다.

     

    뿐냐 깜마를 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4. 뿐냐 깜마가 직접적으로 닙바-나에 이르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이것들은 뿌툿자나(범부)에게 필수적입니다.

     

    • *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려면 인간계 이상의 영역에 재탄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 사악처(동물계를 포함한 아빠-야)의 어떤 곳에 태어난 이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 * 그러므로, 적어도 다-나(보시)실라(도덕행)라는 두  범주를 반드시 실천해야 합니다.

     

    다사 아꾸살라 ㅡ 몸, 말, 마음으로 행해짐   

     

    5. 다음은 몸, 말, 마음으로 행해지는 열 가지 유형의 아꾸살라 깜마(아뿐냐 깜마)입니다.

     

    • * 세 가지 까-야 깜마(와찌 상카-라에 기반): 빠-나-띠빠-따-(살생), 아딘나-다-나-(주지 않은 것을 취함), 까-메-수 밋차-짜-라(잘못된 성적 행위뿐만 아니라 과도한 감각적 즐거움)

    • * 네 가지 와찌 깜마(와찌 상카-라에 기반): 무사-와-다(거짓말), 삐수나-와-짜-(중상/비방), 빠루사-와-짜-(거친말), 삼빱빨라-빠-(쓸데없는 말)

    • * 세 가지 마노- 깜마(마노- 상카-라에 기반하여 마음으로 행해진 부도덕한 행위): 아빗자-(탐욕, 다른 이의 소유물을 탐함), 브야-빠-다(악의, 증오), 밋차-딧티(잘못된 견해)

    • * 이것들은 ‘열가지 부도덕한 행위(다사 아꾸살라)’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빠-빠 깜마 = 강력한 아뿐냐/아꾸살라 깜마

     

    6. ‘빠-빠 깜마(pāpa kamma)’는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와 같은 의미지만, 일반적으로 더 나쁜 형태의 아꾸살라 깜마를 가리키며, 이는 필연적으로 아빠-야-에 재탄생으로 이어지는데 가장 낮은 곳(니라야, 즉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 * 빠알리어와 싱할라에서 ‘빠-빠(pāpa)’는 명백한 ‘악’ 또는 ‘죄악’ 행을 의미하는데, 사람을 죽이거나 동물을 일상적으로 죽이는 행위, 성폭행, 니야따 밋차- 딧티(niyata micchā diṭṭhi, 열 가지 유형의 잘못된 견해를 갖는 것) 등이 빠-빠 깜마의 예입니다.

    • * ‘10가지 유형 사견의 위험함과 4가지 가능한 길’의 #4를 참조하세요.   

     

    재탄생은 축적된 깜마 에너지에 따라 이루어진다

     

    7. 위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재탄생은 자신이 지은 깜마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즉, 재탄생은 축적된 깜마의 결과(위빠까)입니다.

     

    • * ‘Ayyikā Sutta (SN 3.22)’에서는 모든 이들(그 구절의 ‘sabbe sattā’)은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고 설명합니다. 오직 아라한만이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 * 모든 이들은 자신의 행위에 따라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빠-빠 깜마를 짓는 이들은 니라야(지옥, 즉 가장 낮은 영역)에 가는 반면에, 뿐냐 깜마를 짓는 이들은 선처에 갑니다(‘puññakammā ca suggatiṁ’).

    • * 그리고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선행을 하고 내생에 투자해야 합니다. 유정체의 선행은 내세에서 자신을 지탱해 줍니다.”

    • * 이것이 뿐냐 깜마에 관해 중요한 점인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선처에 태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 * 물론, 성자(소따빤나 아누가-미 이상)는 아빠야에 재탄생할 수 없습니다.

    • * 붓다께서는 대부분의 인간이나 심지어 천신들도 아빠-야-(apāyā)에 재탄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쭈띠와 마라나 ㅡ 바와 및 자-띠와 관련’을 참조하세요.

     

    두 가지 팔정도

     

    8. 위 논의를 통해,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 선처에 재탄생하려면 최소한 다-나(Dāna)실라(Sila) 범주를 닦고 다사 아꾸살라를 삼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성스런 팔정도에 이르기 전에 먼저 세간 팔정도를 따라야 합니다. ‘마하- 짯따-리-사까 숫따(대 40가지에 대한 법문)’에 더 자세한 내용이 있습니다.

     

    • * 그러므로, ‘선행’은 두 가지 차원에서 행해집니다. 세간 팔정도에서는 뿐냐 깜마를 행할 수 있습니다.

    • * 다시 말해, 뿐냐 깜마(puñña kamma)도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피할 수 없는 상깝빠’를 통해) 어느 정도 ‘오염’됩니다. 이것은 아래 #14에서 논의됩니다.

    • * 약한 상카-라(상깝빠)의 자동적 생성은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점차 멈추게 되는데,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에서 멈추기 시작합니다. 이는 아라한 단계에서 완전히 멈추게 됩니다.

     

    그것은 ‘단계적’ 과정이다

     

    9.  세간 팔정도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열 가지 잘못된 견해를 제거해야 합니다.

     

    • * 다음의 중요한 점은 열 가지 유형의 잘못된 견해를 없애야 할 필요성을 보여줍니다.

    • * 붓다 담마의 목표는 재탄생 과정의 고통을 끝내는 것입니다. 만약 육체의 죽음으로 삶이 끝난다고 믿는다면(즉, 재탄생 과정이 없다고 믿는다면), 성스런 팔정도를 닦을 필요가 없습니다

    • * 관련된 잘못된 견해들의 대부분(‘10가지 유형 사견의 위험함과 4가지 가능한 길’의 #4를 참조) 재탄생이 없다는 견해인 웃체다 딧티(uccheda ditthi)와 관련이 있습니다.

    • * 이것이 바로 과학자들(대부분은 재탄생을 믿지 않음)이 뇌에서 (왜곡된) 산냐-가 일어나는 것을 설명하려고 애쓰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식(산냐-)의 환상 ㅡ 이는 과학적 합의(의견 일치)다’을 참조하세요.

     

    꾸살라 깜마는 무엇인가?

     

    10. ‘Kusala Sutta (AN 10.180)’에서는 아꾸살라(akusala)와 꾸살라(kusala)가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 *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즉 열 가지 유형의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는 위 #5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육체를 통한 세 가지 유형, 말을 통한 네 가지 유형, 그리고 마음을 통한 세 가지 유형입니다.

    • * 그리고 마음이 아꾸살라 깜마를 생성하는 능력을 잃으면 꾸살라 깜마가 자동적으로 육성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 * 여기서 핵심은 ‘웨라마니-(veramaṇī)’라는 낱말인데, 이는 “마음이 모든 세간의 즐길거리(감각적 즐거움, 자-나의 즐거움, 및 아루빠 사마-빳띠)에 대한 갈망을 잃었다”는 의미입니다.

    • * 그것은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에 도달하여, 마음에 아빗자-(abhijjā)와 브야-빠-다(vyāpāda)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멈추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11. 우리는 뿌툿자나의 마음은 자동적으로 모든 감각 입력으로 오염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풀 한 포기나 하찮은 조약돌 하나만 봐도 뿌툿자나의 마음은 초기 ‘까-마 다-뚜’ 단계에서 오염된 ‘바힛다 윈냐-나’ 단계로 옮겨가기에 충분합니다. ‘사띠빳타-나 부-미 ㅡ 로까 산냐-에서 벗어남’을 참조하세요.

     

    • *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일어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 마음의 그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오염은 우리와 모든 유정체에 내재된 ‘왜곡된 산냐-’ 때문에 발생합니다. 따라서, 감각 입력이 들어오면 바로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가 시작됩니다. 아래 #14를 참조하세요.

    • * 물론, 모든 감각 입력이 다사 아꾸살라가 행해지는 ‘나와 깜마’ 단계의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뿌툿자나에게는 모든 감각 입력에 대해 아꾸살라 깜마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 * 그런데, ‘뿌툿자나(puthujjana)’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뿌투(puthu)’는 ‘많은’을 의미하고, ‘자나(jana)’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살고 있는 약 80억명의 사람들 중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10억명에 훨씬 못 미치며, 이들 대부분은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을 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꾸살라 깜마에 대한 웨라마니-(완전히 멀리함) 

     

    12. 그러므로, 아라한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다사 아꾸살라를 피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오직 아라한만이 마음을 웨라마니- 상태로 훈련했습니다. 웨라마니-(veramaṇī)에 대한 설명은 위 #10을 참조하세요.

     

    • * 아라한의 마음은 감각적 즐거움, 자-나의 즐거움, 그리고 아루빠 사마-빳띠에 들러붙지 않습니다. 아라한들은 그런 ‘마음을 즐겁게 하는 산냐-’를 들러붙음이 없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 * 아라한들은 일상 생활을 할 때, 다채로운 것들을 보고, 듣기 좋은 음악을 듣고, 꿀의 달콤함을 느끼는 등 다양한 감각을 경험하지만,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이 들러붙지 않습니다. 자-나 또는 아루빠 사마-빳띠에 있을 때, 아라한들은 그것들에 들러붙음이 없이 상응하는 감각만을 경험합니다.

    • * 아라한은 재탄생 과정(윤회)에 얽매이는 열 가지 족쇄(상요자나)를 모두 끊어냄으로써 그런 능력을 얻었습니다. 이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며, 각 단계는 지혜를 육성함으로써, 즉 ‘왜곡된 산냐’에 들러붙는 것이 결실없고 얼마나 위험한지를 이해함으로써 실현됩니다.

     

    13. ‘Sabhiya Sutta (Snp 3.6)’에서, 붓다께서는 수비야(Subhiya)에게 사람이 어떻게 꾸살라 깜마를 축적할 수 있는 ‘능숙한 사람’(paṇḍito)가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 * 그들은 인간, 천신 또는 범천 영역에 다시 재탄생하고자 하는 욕망을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물론, 그들은 삼마 딧티에 도달함(마음이 어떻게 ‘왜곡된 산냐-’에 들러붙음에 따라 자동적으로 오염되는지를 깨달음)으로써 아빠-야-에 재탄생하지 않는 첫 단계를 완료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소따빤나가 됩니다.

    • * 그 다음, 소따빤나는 사띠빳타-나를 육성하여 자주 사띠빳타-나 부-미(‘왜곡된 산냐-’가 없음)(역주: 사띠빳타-나 부-미의 제2영역에서만 왜곡된 산냐-가 없음)에 들어갑니다. 남아 있는 모든 막가 팔라에는 마음이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동안에 담마 개념(빠띳짜 사뭅빠-다, 띨락카나 등)에 온전히 집중함으로써 도달됩니다. 

     

    왜곡된 산냐-를 극복할 때까지는 다사 아꾸살라를 피할 수 없다

     

    14. 위 설명은 의지력으로 마음을 억제한다고 해서 다사 아꾸살라를 피할 수 없는 이유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 * 마음은 그것을 알기도 전에 이미 오염되어 버립니다. 즉, 우리는 빤쭈빠-다-낙칸다의 초기 단계를 인지하지 못합니다.

    • * 논의한 바와 같이, 빤쭈빠-다-낙칸다 과정(빠띳짜 사뭅빠-다 과정과 동일)이 시작될 때는 두 가지 뚜렷한 단계가 있는데, (i)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일어나는 ‘뿌라-나 깜마’ 단계, 그리고 (ii) 감각 입력을 인지하고 강력한(강한) 깜마를 축적하기 시작하는 ‘나와 깜마’ 단계가 그것입니다.

    • * 뿌라-나 깜마와 나와 깜마에 대해서는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에서 논의했습니다. 뿌라-나 깜마는 ‘구(예전) 깜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깜마’를 의미합니다. 아래 도표는 그 포스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영문 다운로드/인쇄:Purana and Nava Kamma -2-revision 3

     

    • * 그러므로, 우리가 감각 입력을 인지할 때쯤이면 빤쭈빠-다-낙칸다/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이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 * 뿌툿자나(가장 높은 자-나와 아루빠 사마-빳띠를 닦은 알-라-라 깔-라-마 같은 고대 요기/수행자를 포함)는 ‘나와 깜마’ 단계만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처음 세 가지 상요자나조차 끊을 수 없습니다!

    • * 이것이 바로 ‘뿌라-나 깜마’ 단계를 완전히 이해한 후에야 재탄생 과정을 멈출 수 있는 이유입니다.

    • * 이것은 짧은 ‘Kammanirodha Sutta (SN 35.146)’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직역이 아닌 ‘닛데사’ 형태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숫따 해석 -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을 참조하세요. 

     

    깜마니로다 숫따 ㅡ 뿌라나 및 나와 깜마

     

    15. 깜마니로다 숫따는 붓다께서 “빅쿠들이여, 나는 너희에게 뿌라-나 깜마(상깝빠로 초기에 자동적으로 생성된 약한 깜마), 나와 깜마(아비상카-라로 후속적으로 의식적으로 생성된 강력한 깜마), 깜마의 그침(자동적인 ‘뿌라-나 깜마’ 단계를 포함하여 완전한 깜마 생성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상요자나의 소멸과 함께), 그리고 깜마의 그침에 이르는 실천을 가르치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 * (표식 1.4에서) ‘짝쿠’(짝쿠 아-야따나 또는 짝카-야따나)는 깜마 형성의 초기 단계(‘뿌라-나 깜마’)다. 뿌툿자나의 마음은 바힛다 윈냐-나 단계에서 자동적으로 ‘외부 루빠에 대해 마음이 만든 버전’에 처음에 들러붙고, 즉시 짝쿠 인드리야를 짝쿠 아-야따나로 변화시킨다. 이처럼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업 축적’ 과정이 시작된다.

    • * (표식 1.5~1.6에서) 6가지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감각 입력은 모두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

    • * (표식 1.7에서) 그것들은 모두 업 축적 과정을 시작하는 것들이다(링크의 영어 번역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은 ‘옛 깜마’가 아님).

    • * (표식 1.8에서) ‘나와 깜마’는 무엇인가?

    • * (표식 1.9에서) 그것들은 너희가 의식적으로 행하는 까-야, 와찌, 및 마노 깜마다. 이것들이 위 #5에 열거된 다사 아꾸살라입니다.

    • * (표식 1.11에서) ‘그리고 깜마의 그침은 무엇인가?’

    • * (표식 1.12에서) ‘모든 까-야, 와찌, 및 마노 깜마의 그침은 닙바-나, 즉 아라한 단계(위뭇띠)에 도달할 때 실현된다.’   

    • * (표식 1.13에서) ‘따라서, 아라한 단계에 도달하면 모든 깜마 생성이 멈춘다. 깜마가 일어나지 않는다(니로다).’

    • * (표식 1.14에서) ‘깜마 생성의 그침으로 이끄는 실천은 무엇인가?’

    • * (표식 1.16에서) ‘그것은 성스런 팔정도인데, 삼마- 딧티, 삼마- 상깝뽀, 삼마- 와-짜-, 삼마- 깜만또, 삼마- 아-지-오, 삼마- 와-야-모, 삼마- 사띠, 삼마- 사마-디다.’

    • * (표식 1.18에서) ‘빅쿠들이여, 나는 너희에게 뿌라-나 깜마, 나와 깜마, 깜마의 그침, 그리고 깜마의 그침으로 이끄는 실천을 가르쳤다.’

    • * (표식 1.19에서) ‘연민에서, 나는 제자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바라는 스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

    • * (표식 1.20에서) ‘나무 밑이나 빈 곳으로 가라(역주: 안정된 마음가짐으로 탐진치가 없는 상태를 만들라). 빅쿠들이여, 깜마의 그침(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가 사띠빳타-나를 길러 ‘뿌라-나 깜마’ 단계를 그침)을 실천하라! 태만하지 말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꾸살라 깜마는 막가 팔라를 얻는 데 필요하다

     

    16.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의 경우 ‘왜곡된 산냐-(인간의 경우에 ‘까-마 산냐-’)를 극복할 수 있어야만 ‘뿌라-나 깜마’ 단계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까-마 산냐-’를 극복하고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감으로써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소따빤나는 더 높은 막가 팔라를 얻기 위해 사띠빳타-나 부-미에 접근해야 합니다. 

     

    • * 이것은 ‘Kusalarāsi Sutta (SN 47.45)’에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 * 그곳에서는 ‘네 가지 유형의 마음챙김 명상(짯따-로 사띠빳타-나-)은 꾸살라를 축적하는 방식이다.’라고 합니다.

    • * 그 다음, ‘kāye kāyānupassanā, vedanāsu vedanānupassanā, citte cittānupassanā, 및 dhammesu dhammānupassanā’를 그 네 가지라고 언급합니다.

    • * 앞서 논의했듯이, 이것들은 마음이 ‘(왜곡된) 산냐-’에서 벗어나는(역주: 왜곡된 산냐-에 들러붙지 않는) 동안, 즉 마음이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을 때만 길러질 수 있습니다. ‘까-예 까-야-누빳사나 ㅡ 사띠빳타-나의 세부 사항’을 참조하세요.

     

    꾸살라 = 성스런 길을 닦음 = 재탄생 과정의 위험함을 이해함

     

    17. 꾸살라를 육성하는 것, 즉 꾸살라 깜마를 행하는 것사띠빳타-나를 닦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첫 번째 성스런 진리(제1성제)는 빤쭈빠-다-낙칸다 또는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의 시작으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고통(둑카)이라고 말합니다.

    • * 그것은 ‘(왜곡된) 산냐-’가 자동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왜곡된) 산냐-’에 속은 마음으로는 담마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할 때, 사람은 [윤회 중에] 처음으로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에 들어가 소따빤나 팔라 순간에 도달합니다. 이후의 막가 팔라에도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동안에 도달됩니다.

    • * 꾸살라 깜마를 육성하는 것은 빤쭈빠-다-낙칸다 또는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이나 틸락카나와 같은 다른 관련된 담마 개념을 조사하는 것입니다. ‘(왜곡된) 산냐-’와 함께 일어나는 위딱까/위짜-라 대신에,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중에는 오직 담마 위딱까 / 담마 위짜-라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 * ‘사띠빳타-나 부-미 ㅡ 로까 산냐-에서 벗어남’를 참조하세요.

     

    참고 역주:

     

    * ‘깜마’는 재탄생(윤회)를 유지하고 증가시키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이므로, 본문에서 사용된 ‘꾸살라 깜마’라는 용어는 (재탄생/윤회를 감소시키고 그치게 하며 닙바나로 가게 하는 의미의) ‘꾸살라 담마’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본문 #17의 뒷부분에서, ‘깜마’가 되게 하는 ‘vitakka / vicāra’와, ‘담마’가 되게 하는 ‘dhamma vitakka / dhamma vicāra’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 이 대체가 타당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대체 사용에 의하면, 아꾸살라 깜마는 빠빠 깜마를 포함하는 나쁜/해로운 깜마를 나타내는 용어로 쓰이고, 꾸살라 깜마는 재탄생을 유지/증가시키는 뿐냐 깜마를 포함하는 좋은/유익한 깜마를 나타내는 용어로 쓰이며, 꾸살라 담마는 재탄생을 감소시키고 그치게 하며 닙바-나로 가게 하는 (유학성자의) 출세간 수행의 행위를 나타내는 의미로 잘 쓰일 수 있다고 봅니다.

     

    * 꾸살라 담마는 꾸살라 깜마를 포함하는 의미로 쓰이더라도, 출세간 수행의 행위는 ‘꾸살라 깜마가 아닌’ 꾸살라 담마의 의미로 쓰일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아꾸살라 담마는 아꾸살라 깜마를 포함하고, 끼리야 담마는 뿌라나 깜마 또는 나와  깜마와 관련없는 아라한의 모든 일상 행위, 또는 출세간 수행 중의 유학성자의 과보 행을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꾸살라 담마는 출세간 수행 중의 유학성자의 꾸살라 행을 나타낼 수는 있지만, 아라한의 행위(끼리야 행)를 지칭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Nanum Barun Gothic"]}
    {"google":["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