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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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빠-나 ㅡ 붓다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세간 견해를 버림

     

    원문: ‘Ānāpāna – Adopting Buddha’s Worldview and Discarding ‘Mundane Views’ ’ 포스트 

     

    아-나-빠-나사띠 숫따(Ānāpānasati Sutta)는 닙바-나에 이르는 세 가지 주요 단계를 설명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붓다 세계관을 받아들이고(‘āna’) 세간 세계관을 버림으로써(‘āpāna’) 닙바-나의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2026년 5월 8일 작성

     

    소개

     

    1. 아-나-빠-나사띠 숫따(Ānāpānasati Sutta)는 빅쿠 수자또의 영어 번역(‘Ānāpānasati Sutta (MN 118)’ 참조), 빅쿠 보디의 영어 번역(‘118. Mindfulness of Breathing’ 참조), 타닛사로 빅쿠의 영어 번역(‘Ānāpānasati Sutta: Mindfulness of Breathing’ 참조)에서 ‘호흡 마음챙김(Mindfulness of Breathing)’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 *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가 주로 ‘호흡 명상’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 * 이 포스트에서는 그런 해석이 아-나-빠-나사띠 숫따(MN 118)뿐만 아니라 띠삐따까에 기록된 부처님의 가르침과도 일치하지 않는 이유를 간락하게 설명하겠습니다.

    • * 또한 부처님께서 아-나-빠-나사띠 숫따에서 닙바-나에 이르는 길을 세 가지 주요 단계로 요약하셨다는 사실을 기리켜 보이겠습니다.

    • * 다음 포스트에서는 마하-사띠빳타-나 숫따에 설명된 아-나-빠-나사띠(사띠빳타-나)의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제공하겠습니다.

     

    아-나-빠-나사띠에 대한 아나리야 해석   

     

    2. 일반적으로 빠알리 낱말 아-나-빠-나(ānāpāna)에서, ‘아-나(āna)’는 ‘받아들여야’ 하는 어떤 것을 의미하고, ‘아-빠-나(āpāna)’는 그 반대인 ‘버려야’ 하는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몸에 좋은 음식만 먹고 나쁜 음식은 피하거나 버려야 합니다. 

     

    • * 또 다른 일상적인 용법에서, ‘아-나(āna)’는 ‘숨을 들이쉬다’, ‘아-빠-나(āpāna)’는 ‘숨을 내쉬다’로 여겨집니다. 여기서, ‘사띠(sati)’는 마음챙김을 의미하므로,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는 ‘마음챙김하며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김하며 숨을 내쉬다’로 해석됩니다.

    • * 힌두교에서,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산스크리트어: ānāpānasmṛti)라는 용어는 문자 그대로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을 의미합니다.

    • * 따라서, 위 #1에서 인용한 모든 번역자들이 채용한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는 아나리야(비불교)적 해석입니다. 아-나-빠-나사띠를 ‘호흡 명상’으로 설명하는 영어 웹사이트와 문헌은 훨씬 더 많습니다.

     

    3. ‘호흡 명상’의 매우 큰 매력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호흡 명상’을 통해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그들의 정의에 따르면 ‘사마타’), 그 후에 ‘통찰 명상’, 즉 ‘위빠사나-’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 이는 아래 #6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아-나-빠-나사띠 숫따(MN118), 마하-사띠빳타-나 숫따(DN 22), 또는 닙바-나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논리적으로 들릴 것입니다.

    • * 아나리야 요기(수행자)들이 ‘호흡 명상’을 사마타 명상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그것은 붓다 담마의 사마타 명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호흡 명상이 주는 일상적인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는 실제로 있는데, 마음을 호흡(또는 흙덩이 또는 호흡할 때 배가 오르내리는 것과 같은 모든 비활성 대상)에 집중하면 마음을 ‘감각적’이거나 ‘화냄’을 자극하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게 할 수 있고, 일시적으로 빤짜 니-와라나(다섯가지 장애)를 억제하여 마음을 고요하게 할 수 있습니다.

    • * 만약 장기간에 걸쳐 그렇게 할 수 있다면(빤짜 니-와라나에서 멀리 떨어져 지낼 수 있다면), 알-라라 깔-라-마 같은 고대 요기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나리야 자-나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숲속 깊이 들어가, 빤짜 니-와라나를 유발하고 탐함이나 성냄을 통해 들러붙음(땅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감각 입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냈습니다.

    • * 따라서, 이 호흡 명상은 부처님 이전 시대에도 고대 요기(수행자)들이 세간(아나-리야) 자-나를 얻기 위해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명상법입니다.

     

    4. 이 혼란은 부처님과 가까이 지냈던 일부 빅쿠들 사이에서도 있었습니다. 좋은 예로 야소다라 공주의 오빠이자 아난다 존자와 같은 시기에 빅쿠가 된 데와닷따 빅쿠를 들 수 있습니다.

     

    • * 데와닷따 빅쿠는 의심의 여지없이 부처님의 설법을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르침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쉬운 길인 아나리야 자-나를 기르는 것에 매진하여 상당히 성공했습니다. 그는 모든 자-나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잇디(신통력)까지 얻었습니다.

    • * 어느날, 데와닷따는 뱀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아자삿뚜 왕자의 무릎 위에 나타났습니다. 왕자는 놀랐고, 데와닷따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자 왕자는 크게 감명받았습니다. 그때 데와닷따는 왕자를 설득하여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라고 했고, 자신은 부처님의 목숨을 빼앗아 ‘붓다’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 * 알다시피, 데와닷따는 부처님의 발을 다치게 했을 때, 모든 신통력과 자-나에 들어가는 능력을 잃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도 지옥에 태어났습니다.

    • * 자-나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은 우리 모두(그리고 모든 동물 또는 모든 유정체까지)가 이 시작이 없는 재탄생 과정(윤회)에서 수없이 가장 높은 자-나를 얻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을 한 번 더 경험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붓다고사는 호흡 명상을 테라와다 불교에 추가했다

     

    5. 붓다고사(Buddhaghosa)의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가 (기원후 5세기에) 테라와-다 담마의 기초로 받아들여진 후,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를 ‘호흡 명상’으로 잘못 해석하는 것이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 * 붓다고사는 불교로 개종하기 전에는 힌두교 신자였습니다. B. C. Law의 ‘The Life and Work of Buddhaghosa’(1927년)을 참조하세요. 일각에서는 그가 붓다 담마에 힌두교 개념을 도입하기 위해 불교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니면 악의없이 자신이 아-나-빠-나사띠라고 이해한 것을 그대로 사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 * 어느 쪽이든, 올바른 해석은 이 모든 세월 동안 감춰져 있었습니다. ‘붓다고-사의 위숫디막가 ㅡ 집중된 분석’을 참조하세요.  

    • * 참된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는 위숫디막가는 물론이고 오늘날의 어떤 마하-야-나(대승) 또는 테라와-다 문헌에도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2000여년 전에 쓰여진 빠알리 띠삐따까는 예외임). 따라서, 이를 찾으려면 띠삐따까를 직접 참조해야 합니다. 띠삐따까에는 많은 숫따에 묘사되어 있으며, 저는 최근에 ‘붓다 담마’ 섹션의 새로운 시리즈에 이에 대한 완전한 개요를 다루었습니다.   

    • * ‘호흡 명상’이 불교 명상과 전혀 연관될 수 없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닙바-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닙바-나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6. 붓다께서 가르치신 핵심 메시지는 재탄생 과정이 많은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인데, 이는 대부분이 가장 낮은 네 가지 영역, 즉 아빠-야-에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닙바-나에 도달한다는 것은 재탄생 과정을 멈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것을 통해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하는 한, 닙바-나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 * ‘세상 것을 통해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갈망하거나 적어도 실재한다고 믿는 것들을 나타내는쭈빠-다-낙칸다 (pañcupādānakkhandha)(많은 사람들이 흔히 ‘다섯가지 집착의 무더기(오취온)’으로 번역함)를 계속해서 더하는(쌓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 * 닙바-나에 이르면, ‘31영역의 세상’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아라한은 아라한뜨 팔라(Arahant-phala, 아라한과)에 도달하는 순간에 닙바-나에 이릅니다. 그 후에는 육체가 죽을 때까지 ‘위빠까 육체(physical vipāka body)’만 남게 되며, 육체가 죽으면 세상과의 연결도 끊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붓다께서Loka Sutta (AN 4.23)’에서 닙바-나를 로까 니로다(loka nirodha)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 * 그러므로, 불교 명상에서는 결코 ‘세상 것’을 명상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목표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지, 세상과 관련된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 명상은 ‘세간적인 산냐-’를 취하는 것을 피한다

     

    7. 한때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께 호흡(공기)이나 까시나 대상을 명상 대상, 즉 니밋따(nimitta)로 사용하지 않고도 사마-디에 이를 수 있는지 여쭤보았습니다. ‘Saññā Sutta (AN 11.7)’를 참조하세요.

     

    • * 아난다 존자는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Siyā nu kho, bhante, bhikkhuno tathārūpo samādhipaṭilābho yathā neva pathaviyaṁ pathavisaññī assa, na āpasmiṁ āposaññī assa, na tejasmiṁ tejosaññī assa, na vāyasmiṁ vāyosaññī assa, na ākāsānañcāyatane ākāsānañcāyatanasaññī assa, na viññāṇañcāyatane viññāṇañcāyatanasaññī assa, na ākiñcaññāyatane ākiñcaññāyatanasaññī assa, n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e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ññī assa, na idhaloke idhalokasaññī assa, na paraloke paralokasaññī assa, yampidaṁ diṭṭhaṁ sutaṁ mutaṁ viññātaṁ pattaṁ pariyesitaṁ anuvicaritaṁ manasā, tatrāpi na saññī assa; saññī ca pana assā”ti?

    • * 링크 주소에 있는 영어 번역은 다음과 같이 개선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빅쿠가 이와 같은 사마디를 얻을 수 있습니까? 그들은  (까시나 명상에서 흙덩이를 사용하여) ‘빠타위 산냐-(pathavi saññā)’를 받아들임으로써 빠타위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까시나 명상에서 그릇의 물을 사용하여) ‘아-뽀 산냐-(āpo saññā)’를 받아들임으로써 아뽀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까시나 명상에서 불을 사용하여) 떼조 산냐-(tejo saññā)를 받아들임으로써 떼조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호흡 명상에서 공기를 사용하여) 와-요 산냐-(vāyo saññā)를 받아들임으로써 와-요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 * 그러므로, ‘호흡 명상’은 공기의 산냐-(saññā)를 니밋따로 삼습니다. 즉, ‘vāyo saññī assa.’입니다.

     

    와-요 산니- 앗사 ㅡ 무슨 뜻인가?

     

    8. 마음이 특정 대상에 집중하면 그 대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인식합니다. 산냐-(saññā)는 흔히 인식으로 번역되지만, 붓다 담마에서는 더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붓다께서는 붓다 담마를 이해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뿌툿자나)은 세상 것을 잘못되게 인식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즉, 뿌툿자나는 산냐- 위빨라-사(saññā vipallāsa), 즉 ‘왜곡된 인식’을 가집니다. 저는 이를 ‘왜곡된 산냐-’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뿌툿자나는 세상에는 다채로운 것이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이 만든 인식이 없다면, 세상에는 색깔도 소리도 맛도 냄새도 감촉도 없다’을 참조하세요. 이것이 바로 버려야 할 세계관입니다. 아래를 참조하세요

     

    • * 우리의 육체 또는 정신적 몸은 ‘왜곡된 인식’을 제공하도록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해) ‘프로그램/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돌이나 다이아몬드를 ‘단단한 것’으로 인식하지만, 현대 과학도 ‘모든 단단한 물체’의 99%는 ‘물질이 없는 빈 공간’임을 인정합니다. ‘산냐- 위빨라-사 ㅡ 왜곡된 인식’을 참조하세요.

    • * 물-라빠리야-야 숫따(MN 1)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의 뿌리’‘산냐- 위빨라-사’, 즉 ‘왜곡된 산냐-’라고 설명합니다. ‘물-라빠리야-야 숫따 ㅡ 모든 것의 뿌리’를 참조하세요.

    • * ‘vāyasmiṁ vāyo saññī assa’라는 구절은 문자 그대로 ‘호흡에 마음을 집중하면서 (왜곡된 산냐-)의 공기를 들이마시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앗사(assa)’는 ‘들이마시다’를, ‘와-야스밍(vāyasmiṁ)’은 ‘공기 안에/공기의’를 의미합니다.

    • * 이와 마찬가지로, 까시나 명상을 육성하는 일부 요기(수행자)들은 단단한 물체(예: 흙덩이)에 주의를 집중하는데, 이는 ‘pathaviyaṁ pathavi saññī assa’와 같습니다. 또 다른 수행자들은 불을 (떼조 산냐-를 얻기 위한) 니밋따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호흡에 집중하는 것은 와-요 산냐-(vāyo saññā)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까시나입니다.

     

    9. 위 #7의 구절의 첫 부분에서 아난자 존자는 “호흡이나 다른 까시나 대상에 집중하지 않고 사마디에 이르는 방법이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 * 부처님의 대답은 표식 5.1에 있는데, “Idhānanda, bhikkhu evaṁ saññī hoti: ‘etaṁ santaṁ etaṁ paṇītaṁ, yadidaṁ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n’ti”입니다. 즉, “물론이다. 아난다여, 그런 산냐-가 있다. 그것은 닙바-나와 연관된 쿨링 다운(열내림)의 산냐-다.” 

    • * 위빠사나-를 할 때, 자신의 마음은 호흡을 포함하여 이 세상의 어떤 것에 의해서 비롯된 어떤 ‘로끼야 산냐-(lokiya saññā)’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마음 속에 라-가, 도사, 모하가 일어나지 않음으로써 경험되는 쿨링 다운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etaṁ santaṁ etaṁ paṇītaṁ, yadidaṁ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n’ti.) 

    • * 그 마음 상태는 오직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에서만 얻어지며, 이는 사띠빳타-나를 육성한 결과로 ‘로끼야 산냐-’를 극복함으로써 도달됩니다. ‘삼마- 사띠는 사띠빳타-나 부-미에서 경험되는 아-나-빠-나사띠다’을 참조하세요. 어떤 로끼야 산나-든 최소한 모하/아윗자-를 발생시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에서 다루겠습니다.

    • * 이 포스트의 #7~#9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교 명상은 결코 호흡이나 까시나 대상과 같은 세간 대상을 명상의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 * 그런데, 위 #7의 구절과 거의 동일한 논의는 ‘Paṭhamasamādhi Sutta (AN 11.18)’, ‘Dutiyasamādhi Sutta (AN 11.19)’, ‘Tatiyasamādhi Sutta (AN 11.20)’, ‘Catutthasamādhi Sutta (AN 11.21)’, 및 ‘Sāriputta Sutta (AN 10.7)’에도 나옵니다.

     

    평범한(세간) 팔정도와 성스런(출세간) 팔정도

     

    10. 붓다 담마에서, ‘아-나(āna)’와 ‘아-빠-나(āpāna)’에는 두 가지 레벨이 있으며, 어느 단계도 호흡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 * 평범한(세간) 팔정도에 따라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살면, 열 가지 잘못된 견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특히, 깜마의 법칙(축적된 깜마 에너지가 재탄생을 포함하여, 그 위빠-까를 가져올 수 있음)의 타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라한이 되면, ‘축적된 깜마’를 통한 재탄생의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지지만, 소따빤나도 특정 유형의 깜마 위빠-까(아빠-야에 재탄생하게 하는 것)에서도 벗어납니다. 따라서, 깜마 법칙의 타당성은 곧바로 재탄생 과정을 타당하게 합니다.

    • * 그 시점에서, 성자로부터 부처님의 더 깊은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 * 위에서 논의된 아나리야(anariya)와 평범한 유형의 ‘아-나-빠-나(ānāpāna)’는 모두 ‘아-나(āna)’와 ‘아-빠-나(āpāna)’를 해석하는 비아리야(non-ariya) 방식에서 비롯됩니다. 둘 다 (맥락에서 의미를 취하는) 빠다빠라마(padaparama)에 속합니다.  

     

    아-나-빠-나 ㅡ 붓다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세간 세계관을 버림

     

    11. 열 가지 잘못된 견해(‘밋차- 딧티, 간답바, 및 소-따빤나 단계’의 #3을 참조)를 버리고 나면, 막가 팔라를 성취한 사람으로부터 아-나(āna)와 아-빠-나(āpāna)의 더 깊은 의미를 배울 준비가 된 것입니다. 

     

    • * 그 때,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부처님의 세계관’을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세간(평범한) 세계관’을 버리게 됩니다.

    • * 이것이 아-나(āna)와 아-빠-나(āpāna)의 참된 의미입니다. ‘아-나’와 ‘아-빠-나’와 두 세계관 사이의 엄청난 차이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에서 ‘앗사-삽빳또(assāsappatto)’, 즉 ‘산딧티꼬(sandiṭṭhiko)’가 됩니다. ‘앗사-사 빳사-사 ㅡ 그것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와 ‘산딧티꼬 ㅡ 그 의미는 무엇인가?’을 참조하세요. 

    • * 이제, 이 두 세계관이 왜 그렇게 다른지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평범한(세간) 세계관’에서 ‘부처님의 세계관’으로 전환은 소따빤나 단계에서 일어나며, 이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나타냅니다.

     

    두 세계관의 차이점

     

    12. 모든 뿌툿자나(‘평범한/세간 팔정도’를 따르는 이들을 포함하여, 보통 인간)는 ‘감각적 즐거움(까-마 앗사-다)이 외부 세계에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집, 차, 돈 등)을 얻음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 붓다께서는 더욱 심오한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세계관’입니다.

    • * 붓다께서는 사람이 느끼는 모든 ‘즐거움’은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느끼는 모든 고통 또한 마음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 * ‘붓다 담마’ 섹션의 최근 포스트 시리즈에서 저는 그것을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시리즈는 ‘까-마 앗사-다와 고통은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에서 마무리되었는데, 이 마무리 포스트에서는 마음 자체가 어떻게 강렬한 수카나 둑카 웨다나-를 만들어내는지를 설명합니다.

    • * 빠띳짜 사뭅빠-다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분들은 이 글들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분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시는 것 같아, 다음 포스트(아-나-빠-나사띠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는 글) 이후에는 내용을 더 쉽게 설명하는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아-나-빠-나사띠에서 닙바-나에 이르는 세 단계

     

    13. 붓다 담마에서, 마음이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에 있을 때에만 빤짜 니-와라나(pañca nīvaraṇa)에서 벗어나 사마타(Samatha)를 얻습니다.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한(즉, 사띠빳타-나에 전념하는 동안), 빤짜 니-와라나(다섯 장애)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 때 참으로 위빠사나-, 즉 통찰명상을 육성하여, 삿따 봇장가(Satta Bojjhaṅga)를 충족시키고 더 높은 막가 팔라(magga phala)를 얻을 수 있습니다.

     

     

    (i) 마음이 어떻게 ‘내재된 까-마 산냐-’로 인해 감각 입력에 들러붙는지를 이해함으로써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합니다. 그 이해로, 마음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순간에 처음으로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갑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처님의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세간 세계관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그래서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ii) 이제, 소따-빤나는 사띠빳타-나 부-미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도록 사띠빳타-나 바-와나-(Satipaṭṭhāna Bhāvanā)를 육성해야 합니다.

     

    (iii) 더 높은 막가 팔라로 이어지는 삿따 봇장가(Satta Bojjhaṅga)는 마음이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에 있을 때에만 육성될 수 있습니다.

     

    • *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는 마하사띠빳타-나 숫따(DN 22)에서 자세히 논의됩니다. 따라서 아-나-빠-나사띠 숫따(MN 118)는 세 단계를 모두 요약하는 반면, 마하-사띠빳타-나 숫따(DN 22)는 마지막 두 단계만을 더 자세히 논의합니다.

     

    14. 그러므로,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한 후에야 (더 높은 막가 팔라로 이어질 수 있는) 위빠사나- 명상을 육성할 수 있는데, 이는 뿌툿자나는 ‘까-마 산냐-’뿐만 아니라 31영역의 어떤 곳에 속하는 어떤 산냐-, 즉 어떤 ‘로끼야 산냐-’에서도 벗어난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가기 위한 사띠빳타-나를 육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 위 #3에서 지적한 위빠사나-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과 이것을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 * 아-나-빠-나사띠의 첫 번째 단계(즉, ‘붓다 세계관’과 ‘세간 세계관’의 차이)를 자세히 논의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것이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열쇠입니다. 위 #13을 참조하세요.

    • * 새로운 시리즈 포스트들에서 그 부분을 다루겠습니다. 그동안 산냐-의 복합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산냐-와 그 진정한 의미’와 ‘산냐- ㅡ 빠띳짜 사뭅빠-다의 감춰진 측면’를 참조하세요.

     

    요약

     

    15. 아-나-빠-나사띠를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으로 번역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입니다! 이는 닙바-나의 정의 자체에 위배됩니다!

     

    • * 닙바-나의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붓다 세계관을 이해/파악하고(āna) 모든 세간 세계관을 버리는(āpāna) 것을 통해서입니다.

    • * 마음의 패러다임 전환은 닙바-나의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했을 때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해, 아-나-빠-나사띠 숫따(MN 118)에 따라 아-나-빠-나사띠의 첫 단계를 완수함으로써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합니다.

    • * 다음 포스트에서는 아-나-빠-나사띠의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를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이 두 포스트는 이 웹사이트의 아-나-빠-나사띠와 사띠빳타-나에 대한 다른 포스트들의 기초가 됩니다.

    • * 누구나 토론 포럼에서 이 포스트(또는 위에 언급된 포스트들)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오류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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