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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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냐-와 그 진정한 의미


원문 : Living Dhamma 섹션의 ‘Sanna – What It Really Means’ 포스트

2017년 12월 31일


1. 산냐-(Saññā)는 보통 영어로 ‘perception(지각)’으로 번역되고 때로는 ‘recognition(인식)’으로 번역됩니다. 그것은 이 둘과 그 이상입니다. 산냐-(Saññā)는 훨씬 더 심오하고 동시에 더 단순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 * 산냐-(Saññā)는 ‘sangnā’로 발음되며, 실제로 그  발음으로 빠알리(Pali)어와 싱할라(Sinhala)어에서 인코딩된 의미를 부여합니다(오디오를 재생하려면 다음 주소를 클릭하세요).

  • https://puredhamma.net/wp-content/uploads/sanna.mp3

  • * 산냐-(Saññā)는 ‘기호’ 또는 훨씬 더 가까운 ‘내재된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후자가 그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외부 신호가 의미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얻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2. 산냐-(Saññā)의 의미를 이해할 때, 산냐-(Saññā)을 통해 인간이 다른 영역의 존재와 어떻게 소통 할 수 있는지 등 많은 것을 명확히 할 수 있습니다.


  • * 산냐-(Saññā)는 보편적 언어(범용어)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winding road ahead(앞은 구불구불한 도로)’라고 쓰여진 표지가 있다면, 영어를 아는 사람들만 그 표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구불구불한 도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보편적 표지(아래 왼쪽의 첫 번째 예)는 [누구에게나] 앞길이 구부려져 있다는 산냐-(Saññā)를 제공합니다.

  • * 두 번째 예(위 오른쪽)는 멈추라고 말하는 대신 손을 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멈추도록 해야 할 누군가에게 산냐-(Saññā)를 줍니다.


3.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서 산냐-(Saññā)는 대상이나 사람 또는 개념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완전히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영어로 ‘fire’라고 말하든, 싱할라어로 ‘ginna’라고 말하든, 프랑스어로 ‘fue’라고 말하든, 그 낱말을 ‘[실제] 불’과 결부지을 수 있다면, 그것이 ‘fire’, ‘ginna’, 또는 ‘fue’라는 낱말을 들을 때 마음에 떠오르는 산냐-(Saññā)입니다.

  • * 그러나 그 3가지 낱말 중 어느 것도 모른다면, 그 낱말은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 그림을 본다면, 누구나 그것이 불 또는 불꽃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4. 그러므로 산냐-(Saññā)는 ‘즉각적으로 마음에 떠오르는 완전한 그림’입니다.


  • * 우리가 불에 대해 생각할 때, ‘불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각’은 뇌에 의해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 마음의 자리)로 전달됩니다.

  • * 그러므로, 말하는 언어와 상관없이, 불을 본 모든 사람은 마음 속에 불에 대해 동일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숙고해야 할 요점이며,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5. 우리의 정신적 몸(gandhabba)dms 순수한 산냐-(Saññā)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두 간답바(gandhabba)가 의사 소통을 할 때, 그들은 단어(언어) 또는 그림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소통 과정은 훨씬 더 간단합니다. 간답바 X가 간답바 Y에게 말할 내용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간답바 Y가 간답바 X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 메시지 또는 산냐-(Sañña)가 자동으로 간답바 Y에게 전달됩니다.


  • * 간답바 X가 특정한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 싶을 때, 단지 그 방향으로 주의를 기울여 가리키기만(집중하기만) 하면 그 곳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세한 것은 논의하지 않겠지만, 간답바는 우리가 보는 것처럼 빛을 사용하여 사물을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 * 같은 식으로, 간답바는 귀를 사용하여 소리를 듣지는 않습니다.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음파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 * 이것은 이전 포스트인 ‘우리의 정신적 몸 - 간답바’에서 간단히 강조한 바와 같이, 우리와 같은 육체가 없는 대부분의 존재가 외부 세계와 소통하고 상호 작용하는 방식입니다.

  • * 누군가 제4자-나(제4선정)에 이르러 아빈냐-(abhiññā, 신통)력을 얻게 되면, 자신의 정신적 몸(간답바)을 육체로부터 분리하여 위 방식으로, 볼 수 있고(딥바 짝꾸,  신성한 귀) 들을 수 있습니다(딥바 소따, 신성한 귀). 그러면, 보고 듣는 것은 단거리(근거리)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6. 그러나, 간답바(gandhabba)가 (일반인처럼) 육체 내부에 갇혀 있을 때는 더 이상 그 능력을 갖지 못합니다. 그것은 [이제] 육체(눈, 귀 등)에 있는 감각 기관과 뇌에 의존해야 합니다. 감각 기관은 모습, 소리 등으로 오는 정보(신호)를 포착(캡쳐)하며, 뇌는  그 신호를 산냐-(Saññā)로 변환하고 이를 간답바에 전송합니다.


  • * 그 포스트에서, 육체에 갇힌 간답바를 완전히 차폐된 군용 탱크 안에 있는 운전원에 비교하였습니다. 그것은 좋은 비유입니다.


7. 수태(임신)시에, 간답바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교접에 의해 형성된 하나의 세포를 잡고 기본적으로 차폐막(즉, 고형 껍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각적 즐거움(냄새, 맛, 몸 접촉의 즐거움)을 즐기기 위해 그 내부에 갇혀있는 ‘고치(차폐막)’를 만듭니다.


  • * 육체 안에서 간답바는 직접 산냐-(Saññā)를 받지 못하게 차폐되어 있습니다. 시각 대상과 소리는 고치의 개구부를 통해 산냐-(Saññā)로서가 아니라 비디오 및 오디오 신호로 들어오는데, 그것들은 간답바(gandhabba)가 파악할 수 있는 산냐-(Saññā)로 변환될 필요가 있습니다.

  • * 우선, 눈과 귀(코, 혀, 몸 뿐만 아니라)가 그 감각 입력 신호를 포착(캡쳐)하기 위해 발달(개발)되어야 하고 그 신호를 분석하기 위해 뇌가 발달(개발)되어야 합니다.

  • * 뇌는 또한 그 정보를 산냐-(Saññā)로 변환하기 위한 회로가 발달(개발)되어야 합니다. 그 산냐-(Saññā)는 간답바(gandhabba)로 전송되어, 간답바는 그것이 어떤 물체인지, 사람인지, 또는 개념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 * 이 전송은 뇌에서 끼라나(kirana), 즉 현대 과학 용어로 ‘전자기파’를 통해 심장 가까이에 위치한 하다야 와뚜(hadaya vatthu)로 진행됩니다. 이는  ‘Gandhabba (Manomaya Kaya)- Introduction’ 포스트에 간단히 논의되어 있습니다. 


8. 아기는 자랄 때 낱말(용어)와 그림(시각 대상)을 자신이 경험하는 각 대상, 사람, 개념과 연관시키는 것을 배웁니다. 이것은 뇌의 많은 부분을 필요로 합니다. 이 때문에 갓 태어난 아기가 세상에서 완전한 기능을 발휘하려면 몇 년이 걸립니다.


  • * 그래서, 사람이 누군가 ‘불(fire)’을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의 뇌는 그 소리를 ‘화재 광경(모습)’과 일치시키고 불(화재)의 정확한 ‘산냐-(Sañña)’로 변환한 다음, 그 변환된 신호를  간답바에 전송합니다.

  • * 낱말(용어)과 그 의미의 연관성은 뇌(컴퓨터처럼 작용함)에서 이루어지며, 그 다음 그 의미만이 ‘우리의 사고(생각)가 생성되는’ 간답바에 전달됩니다.

  • * 필자가 간답바(gandhabba)에 관한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인간 간답바(human gandhabba)는 쭈띠-빠띠산디(cuti-patisandhi, 죽음-재생연결) 순간에 태어나고, 수 천 년 동안 살 수 있으며, 그 기간 동안 인간으로(물론, 다른 육체로) 여러 번 태어날 수 있습니다.


9. 사람의 한 생(여러 번 중의 한 생)에서 뇌의 관련 부분이 나중에 손상되면, 주변 환경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알츠하이머(alzheimer, 치매)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 * 사람이 늙으면, 뇌가 쇠약해지기 시작하고 그러면 다시(즉, 갓 태어났을 때와 마찬 가지로), 외부 세계와 상호 작용하는 능력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 그 [육체를 가진] 사람이 죽고 그 간답바(gandhabba)가 (동일한 ‘인간 바와’의 남은 업 에너지로 인해) 다시 [다른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태어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그 제한이 없습니다.


10. 이제 단순한 인식 이상의 그 다음 레벨의 산냐-(Saññā)로 넘어 가겠습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X라는 사람의 이름을 들으면, 자동으로 그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X의 모습(산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뿐만 아니라 X와의 교류를 통해 그 사람에게 들러붙어 있던 몇 가지 특징을 인식하고 표명할 것입니다. 한 사람은 “아빠다. 나는 아빠를 너무 사랑한다”라고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아, 그는 사기꾼이다”라고 말할 지 모릅니다.


  • * 그 다음 그 산냐-(Saññā)를 기반으로, 각자는 X에 대해 다른 느낌(웨다나, vedana)을 생성할 것입니다. 그것은 좋거나 나쁜 생각(마노 상카라, mano sankhara)을 자동으로 생성할 수 있습니다. X에 대해 좀 더 생각을 계속하면, 의식적으로 (자신에게 말하는 단계의) 생각을 더 생성하고 밖으로 소리내어 말할 수도 있습니다(와찌 상카-라, vaci sankhāra). 느낌(감정)이 강해지면, 까야 상카-라(행동으로 이끄는 생각)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빠에게 달려가 끌어 안습니다(또는 사기꾼으로 인식된 사람을 피합니다).

  • * 그래서, 동일한 생각 대상을 기반으로, 각자는 서로 다른 산냐-(Sañña)를 얻을 수 있으므로 다르게 반응(또는 대응)할 수 있습니다. 


11. 일반적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교류)하는 것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외부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우리의 ‘세계관’에 달려 있습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는 이것을 딧티(ditthi)라고 합니다.


  • * 잘못된(그릇된) 세계관(딧티, ditthi)을 가질 때, ‘왜곡된 산냐-(distorted Saññā)’에 근거하여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 * 마음이 탐욕, 증오, 무지에서 벗어나면, 잘못된 견해(밋차- 딧티)를 가려내기가 쉽습니다. 탐욕과 증오가 의미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여기서 무지는 붓다의 메시지에 대한 무지입니다. 그 메시지는 물론 단계적으로만 파악될 수 있습니다.

  • * 우선 깨달아야 할 것은 도덕적인 삶을 살고 가능한 한 많이, 다사 아꾸살라를 삼가하여 세간적(평범한) 팔정도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 * 그러면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a)’를 기르기가 쉬워지고, 틸락카나(Tilakkhana)를 파악하기 시작하여,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가 될 것입니다. 곧 있을 포스트에서는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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