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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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사-사 빳사-사 ㅡ 그것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문: Elephants in the Room 섹션의 ‘Assāsa Passāsa – What Do They Mean?’ 포스트

    - 2022년 6월 8일 작성; 2022년 8월 18일 개정; 2023년 1월 11일 개정(개정 및 #9, #14 추가)

     

    일반적인(평범한) 의미에서, 앗사-사(assāsa)와 빳사-사(passāsa)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입니다.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의 맥락에서 더 깊은 의미는 도덕적인 것을 받아들이고 부도덕한 것을 버림으로써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아-나-빠-나’와 ‘앗사-사 빳사-사’

     

    1. 아-나-빠-나(Ānāpāna)는 ‘아-나(āna)’ + ‘아-빠-나(āpāna)’에서 유래하는데, 후자의 두 낱말은 ‘받아들임’과 ‘버림’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나-빠-나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와 관련하여, 앗사-사(assāsa)와 빳사-사(passāsa)는 도덕적인 것을 받아들이고 부도덕한 것을 버리는 것을 나타냅니다.

     

    • * 좋은 도덕적인 것을 기르고(받아들이고) 부도덕한 것을 버리는 것은 붓다 담마의 기본입니다.

    • *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은 육체 활동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마음을 정화할 수 있을까요? 

    • * 하지만, 호흡에 집중할 때 마음이 떠돌아 다니지 않고 탐하고, 화내고, 어리석은 생각 생성을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마음을 고요히 할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사마타 바-와나-(Samatha Bhāvanā)의 낮은 형태입니다. 그러나,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는  아래에서 볼 것처럼 사마타 바-와나-(Samatha Bhāvanā)가 아닙니다.

    • * 사마타에 이르는 더 나은 방법은 담마 법문을 듣거나 담마 개념에 관해 읽는 것입니다. 

     

    많은 의미를 가진 낱말

     

    2. 모든 언어에서, 문맥에 따라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는 낱말들이 있습니다. 

     

    • * 예를 들어, 영어에서, ‘interest’라는 낱말은 아래 두 문장, 즉  “We are paying a high interest on the loan(우리는 대출금에 대해 높은 이자를 지불하고 있다)”와 “She has no interest in him(그녀는 그에게 관심/흥미가 없다)”에서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 * 동일한 식으로, 빠알리 낱말 앗사-사(assāsa)와 빳사-사(passāsa)는 문맥에 따라 매우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앗사-사 빳사-사의 평범한 의미

     

    3. 일부 숫따에서는, 앗사-사 빳사-사(assāsa passāsa)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숫따에서는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의 맥락에서 더 깊은 의미를 전달합니다. 어느 의미를 적용해야 하는지를 알기는 쉽습니다.

     

    • * 예를 들어,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의 맥락에서 앗사-사빳사-사(assāsapassāsā)는 들숨 날숨을 지칭합니다. 붓다께서는 ‘Dutiyakāmabhū Sutta (SN 41.6)’에서, “Assāsapassāsā kho, gahapati, kāyasaṅkhāro, vitakkavicārā vacīsaṅkhāro, saññā ca vedanā ca cittasaṅkhāro”ti.로 설명하셨습니다. 그 구절에서, 붓다께서는 “앗사-사빳사-사-(assāsapassāsā)까-야상카-라(kāyasaṅkhāra)를 의미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 왜 그런지 질문받았을 때, 붓다께서는 “Assāsapassāsā kho, gahapati, kāyikā. Ete dhammā kāyappaṭibaddhā, tasmā assāsapassāsā kāyasaṅkhāro.”, 즉 “들숨과 날숨은 몸의 작용(kāyappaṭibaddhā)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 때문에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와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 * 까-야 상카-라에 대한 동일한 정의는 ‘Cūḷavedalla Sutta (MN 44)’에 있습니다.

     

    4. ‘Anupubbanirodha Sutta (AN 9.31)’에는 “catutthaṁ jhānaṁ samāpannassa assāsapassāsā niruddhā honti.”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 * 여기서, 앗사-사(assāsa)와 빳사-사(passāsa)는 다시 호흡을 지칭합니다. 그 구절은 “호흡은 제4자-나(the fourth jhāna)에서 멈춘다.”고 말합니다.

    • * 앗사-사(assāsa)와 빳사-사(passāsa)에 대한 일반적(평범한) 의미를 가진 2개의 숫따가 더 있는데, ‘Sappa Sutta (SN 4.6)’와 ‘Mahāsaccaka Sutta (MN 36)’입니다.

    • * 이제 앗사-사(assāsa)와 빳사-사(passāsa)의 더 깊은 의미를 가진 일부 숫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더 깊은 의미 ㅡ 앗사-사와 빠라마 앗사-사

     

    5. 두 개의 숫따가 앗사-사(assāsa)의 더 깊은 의미를 분명히 설명합니다. 다음은 ‘Assāsappatta Sutta (SN 38.5)’에 대한 필자의 번역입니다. 먼저, ‘빳또(patto)’는 ‘어떤 상태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여기서, ‘앗사-삽빳또(assāsappatto)는 ‘앗사-사(assāsa)에 이른 어떤 자’, 또는 이 숫따의 문맥에서는 ‘출세간적으로 도덕적인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어떤 자’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 이상의 모든 이들은 ‘앗사-삽빳또(assāsappatto)’입니다.

     

    “사리뿟따 존자여, 앗사-삽빳또(assāsappatto)는 누구입니까? 빅쿠가 6가지 접촉처(phassāyatanāna)의 기원(발생)과 끝, 그것들의 충족(만족), 결함, 및 벗어남(피함)을 참으로 이해할 때, 그들은 성스런 팔정도에 들어감으로써 위안/안도감을 얻었습니다.” 

     

    빠알리 구절: “Yato kho, āvuso, bhikkhu channaṁ phassāyatanānaṁ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pajānāti, ettāvatā kho, āvuso, assāsappatto hotī”ti.

     

    • * : 앗사-삽빳또(assāsappatto)소따빤나/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Sotapanna Anugami)고, ‘빠자-나-띠(pajānāti)’는 ‘이해하다’를 의미합니다. 

    • * 어떻게 거기에 이르는지에 대해 질문받았을 때,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그것은 성스런 팔정도라고 답하셨습니다.(“Ayameva kho, āvuso,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etassa assāsassa sacchikiriyāya,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 * (또한 ‘앗사-사_assāsa’와 ‘빳또_patto’라는 두 낱말이 결합되었을 때, 그것은 ‘앗사-삽빳또_assāsappatto’로 발음된다는 것에 유의하세요.)

     

    6. ‘Paramassāsappatta Sutta (SN 38.6)’는 아라한 단계에서 그 사람은 성스런 길을 완성하였고 궁극적인 위안/안도(해방)을 얻었다고 말함으로써 그 설명을 완료합니다.

     

    핵심 구절: “Yato kho, āvuso, bhikkhu channaṁ phassāyatanānaṁ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viditvā anupādāvimutto hoti, ettāvatā kho, āvuso, paramassāsappatto hotī”ti.”. 주: 그것은 아라한(Arahant)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 ‘위디뜨와(viditva)’는 ‘경험했고 확인한’을 의미하고, 그것은 아누빠-다-위뭇또(anupādāvimutto)에 이르는 것, 즉 ‘윤회 여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이는 곧 ‘아라한과(Arahanthood)’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빠라맛사-삽빳또(paramassāsappatto)에서, ‘빠라마(parama)’라는 낱말은 ‘궁극적인’을 의미합니다.

    • * : 위 링크 주소의 영어 번역에서는 두 숫따에 있는 그 마지막의 결정적인 구절을 번역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번역자가 그 구절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분명히 예증합니다.

     

    7. ‘Nakulapitu Sutta (AN 6.16)’에서, 붓다께서는 나꿀라삐뚜 가하빠띠(Nakulapitu Gahapati)에게 그가 권고(충고)받은 그의 아내가 ‘앗사-삽빳또(assāsappatto)(즉, 소따빤나)라고 말씀하십니다.

     

    • * ‘Kaḷāra Sutta (SN 12.32)’의 시작 부분에서 깔라-라캇띠요 빅쿠(bhikkhu kaḷārakhattiyo)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Tena hāyasmā sāriputto imasmiṁ dhammavinaye assāsaṁ patto”ti?라고 묻습니다. 그 의미는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이 가르침과 훈육에서 위안/안도(해방)를 찾았습니까?”입니다.

    • *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사람이 그곳에 어떻게 이를 수 있는지, 즉 어떻게 닙바-나(nibbāna)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십니다.

     

    사람은 성스런 길을 육성함으로써 앗사-삽빳또가 된다

     

    8. ‘Assāsappatta Sutta (SN 38.5)’와 ‘Paramassāsappatta Sutta (SN 38.6)’는 둘 다 사람이 성스런 팔정도를 따라감으로써 앗사-삽빳또/빠라맛사-삽빳또 (assāsappatto/paramassāsappatto) (소따빤나 아누가미/ 아라한뜨)가 된다고 설합니다.

     

    • * 각 숫따에는 “Katamo panāvuso, maggo katamā paṭipadā, etassa assāsassa/paramassāsassa sacchikiriyāyā”ti?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즉, “소따빤나/아라한이 되는 길, 방법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 *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Ayameva kho, āvuso,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etassa assāsassa sacchikiriyāya,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입니다. 즉, “있습니다. 그것은 성스런 팔정도삼마-딧티(sammādiṭṭhi) … ~ … 삼마-사마-디(sammāsamādhi)입니다.” 

     

    시-하 숫따(AN 8.12)

     

    9. ‘Sīha Sutta (AN 8.12)’에서, 붓다께서는 시-하 장군에게 “Ahañhi, sīha, assāsako paramena assāsena, assāsāya dhammaṁ desemi, tena ca sāvake vinemi,”, 즉 “시하-님, 나는 빠라마 앗사-사 담마(사성제)를 가르치고 나의 제자들을 그 길로 인도합니다.”라고 설명하십니다.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사이트의 번역에서, 그 구절은 “나는 위안, 최고의 위안을 주겠다는 염원을 갖고 있고, 위안을 가르치고, 나의 제자들을 그런 식으로 지도합니다.”로 잘못 번역되어 있습니다.

     

    • * ‘Kesamutti Sutta (AN 3.65)’에서, 붓다께서는 “그들은 현재 삶에서는 4가지 유형의 앗사-사-(assāsā)를 이해한다(adhigata)”를 의미하는 “Tassa diṭṭheva dhamme cattāro assāsā adhigatā honti”(표식 43.2)로 이어지는, 멧따(mettā), 까루나-(karuṇā), 무디따-(muditā), 및 우뻭카-(upekkhā)라는 네 가지 받아들이는 방식을 가르친다고 깔-라-마-인들에게 설명하십니다.

    • * ‘앗사(assa)’라는 낱말이 ‘받아들임’을 나타내는 숫따가 많이 있는데, 예를 들어, ‘Samādhi Sutta (AN 10.6)’에서는 특정한 유형의 산냐-(saññā)를 받아들임/육성함을 나타냅니다.

     

    아-나-빠-낫사띠 숫따(MN 118)

     

    10. 이제, 앗사-사(assāsa)와 빳사-사(passāsa) 낱말의 용법을 보기 위해 ‘Ānāpānassati Sutta (MN 118)’를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 * 그 낱말의 첫째 용법은 “So satova assasati satova passasati.”에 있습니다.

    • * ‘앗사(assa)’와 ‘빳사(passa)’라는 낱말이 ‘사띠(sati)’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여기서 ‘사띠(sati)’는 ‘주의를 고정/집중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성제를 이해함으로써 오는 ‘삼마- 사띠(Sammā Sati)’를 의미합니다. 

    • * 그 구절의 의미는 “그는 (아-람마나/대상에 관하여)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버리는지를 (삼마- 사띠로) 숙고한다.”입니다.

     

    11. 그 아래 세번째 구절은 “sabbakāyapaṭisaṁ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sabbakāyapaṭisaṁ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입니다. 여기서, ‘식카띠(sikkhati)’는 ‘(번뇌/을 제거하는) 훈련을 한다’를 의미합니다.

     

    • * “앗사싯사-미-’띠 식카띠(assasissāmī’ti sikkhati)”는 ‘앗사 싯사-미-’띠 식카띠(assa sissāmī’ti sikkhati)’로 쓰여질 때 분명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는 (마음을 정화하는) 그 훈련에서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같은 식으로, “빳사싯사-미-’띠 식카띠(passasissāmī’ti sikkhati)”는 “그는 마음을 정화하는 그 훈련에서 나쁜 것을 버리는 훈련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9 및 #10에 있는 그 구절들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숫따 전체를 통해 여러번 나옵니다. 곧 있을 포스트에서 그것들을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아릿타 숫따(SN 54.6) ㅡ 두 가지 의미

     

    12. 잘못된 버전의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는 부처님 [시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아릿타 숫따(‘Ariṭṭha Sutta, SN 54.06’)에서, 아릿타 빅쿠(Bhikkhu Ariṭṭha)는 자신이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를 “So satova assasissāmi, satova passasissāmi.”로 실천한다고 말했습니다.

     

    • * 위 구절에서, 아릿따 빅쿠가 의미한 것은 “나는 들숨에 마음챙기고, 날숨에 마음챙긴다.”입니다. 이 구절에 ‘식카띠(sikkhati)’는 없습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은 성스런 길에 따라 실천하는 것, 즉 마음에서 오염원을 제거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더욱이, 아-나-빠-낫사띠 숫따(MN 118)에서와 같은 “So satova assasati satova passasati”를 통해 ‘삼마- 사띠(Sammā Sati)’를 하는 역할이 없습니다.

     

    붓다께서는 아릿타 빅쿠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Atthesā, ariṭṭha, ānāpānassati, nesā natthī’ti vadāmi. Api ca, ariṭṭha, yathā ānāpānassati vitthārena paripuṇṇā hoti taṃ suṇāhi, sādhukaṃ manasi karohi; bhāsissāmī”ti.

     

    • * 번역: “아릿타여, ..그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가 있다. 나는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참된(야타-, yathā)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를 내가 자세히 설명하겠다. 주의를 기울여 잘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그리고, 붓다께서는 아-나-빠-낫사띠 숫따(Ānāpānassati Sutta, MN 118)에 있는 다음 동일한 구절을 설명하십니다.

    “So satova assasati, satova passasati. Dīghaṁ vā assasanto ‘dīghaṁ assasāmī’ti pajānāti …pe… ‘paṭinissagg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paṭinissagg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Evaṁ kho, ariṭṭha, ānāpānassati vitthārena paripuṇṇā hotī”ti.”

     

    • * 물론, 이 설명은 웃데사(uddesa, 발화 발언) 버전입니다. 곧 있을 포스트에서, 우리는 (더 자세한) 닛데사(niddesa, 간단한 설명) 형태로 그것을 논의하겠습니다.

     

    삽베 상카-라- 아낫사-시까-

     

    13. 아낫사-시까(anassāsikā)는 ‘na + assāsikā’에서 유래합니다. 따라서, 아낫사-시까(anassāsikā)는 그것이 해로울 뿐일 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거나 관련되거나 육성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 * “evaṁ anassāsikā, bhikkhave, saṅkhārā”라는 구절은 “빅쿠들이여, 그대들은 상카-라를 육성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구절을 가진 여러 숫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Vepullapabbata Sutta (SN 15.20)’를 참조하세요. 다른 숫따들은 SN 22.96, AN 7.66, MN 76, MN 112, 및 DN 17입니다.

    • * 그 이유는 알기 쉽습니다.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시작하여 “바와 빳짜야- 자-띠, 자-띠 빳짜야- 자라-, 마라나, 소까ㅡ빠리데-와ㅡ둑카ㅡ도-마낫수빠-야사- 삼바완’띠(bhava paccayā jāti, jāti paccayā jarā, marana, soka-paridēva-dukkha-dōmanassupāyasā sambhavan’ti)”, 또는 “괴로움의 전체 덩어리”로 끝납니다.

    • 물론, ‘상카-라(saṅkhāra)’는 다양한 정도로 위빠-까(vipāka)를 가져올 수 있는 많은 유형이 있습니다. 아뿐냐 아비상카-라(apuñña abhisaṅkhāra, apuññābhisaṅkhāra)는 아빠-야(악처/사악처)에 태어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뿐냐 아비상카-라(puñña abhisaṅkhāra, pññābhisaṅkhāra)는 좋은 태어남으로 이어지지만, 여전히 미래에 아빠-야에 태어날 수 있는 재탄생 과정을 늘립니다. 모든 상카-라의 생성은 아라한의 [육체적] 죽음으로 멈춥니다.

     

    아라항 앗사- ㅡ 아라한과를 얻음

     

    14. 위 #5에서 본 바와 같이,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 이상의 모든 이들은 앗사-삽빳또(assāsappatto)고, 아라한은 빠라맛사-삽빠또( paramassāsappatto )입니다.

     

    • * 반면에, 아라항 앗사-(arahaṁ assā)는 ‘아라한과를 받음/얻음’을 의미하며, 여기서 ‘앗사-(assā)’는 ‘받음’과 동등합니다.

    • * 이것은 짧은 숫따인 ‘Dukkara Sutta (SN 39.16)’에 나오는 질문으로, “Kīvaciraṁ panāvuso, dhammānudhammappaṭipanno bhikkhu arahaṁ assā” ti?”, 즉 “빅쿠들이 가르침에 따라 실천하면, 아라한과에 이르는데 오래 걸릴까요?”라는 것입니다. 앗사-사(assāsa)뿐만 아니라 앗사-(assā)는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 * 이전 구절인 “Pabbajitena kho, āvuso, abhirati dukkarā” ti.”은 숫따 센트럴 사이트의 번역에서는 “당신이 앞으로 나갔을 때 만족하기 어렵다.”로 잘못 번역되어 있음에 유의하세요. 올바른 번역은 “당신이 앞으로 나갔을 때(진전했을 때), 당신은 감각적 매력을 갈망하는 것(abhirati)을 괴로움(dukkarā)(의 원인)으로 본다(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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