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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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의 들러붙지 않음은 요니소 마나시까-라에 기반한다

     

    원문 : Buddha Dhamma 섹션의 ‘Buddhist Non-Attachment Is Based on Yoniso Manasikāra

     

    불교의 들러붙지 않음이라는 개념은 세상에 들러붙을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기반합니다. 요시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를 지닌 자는 왜 그런지 이해하고 있으며, 억지로 들러붙지 않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2026년 3월 13일 작성

     

    ‘고통의 기원’에 대한 평범한 해석

     

    1. 부처님께서는 고통을 끝내는 길로 들러붙지 않음을 가르치셨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가장 단순하고 널리 퍼진 생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 * 우리는 특정한 경험이나 특정 사람 또는 사물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결국 그런 행복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행복한 경험은 오래 가지 않으며, 사람이나 사물과의 관계는 여러 가지 이유(사람의 죽음, 사물의 분실 또는 파손 등)로 끊어지게 됩니다.

    • * 위의 생각들은 아닛짜(anicca)를 ‘무상(impermanence)’으로 해석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세상의 어떤 물질적인 것도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결국 우리가 정신적 고통뿐만 아니라 육체적 고통(부상, 죽음, 질병 등)으로 이어지는 많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 * 그런 해석들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피상적이며 근본 원인에 대한 더 깊은 통찰력을 주지 못합니다.

     

    감각적 즐거움을 삼가는 것은 쉽지 않다

     

    2.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관련된 핵심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에 대한 들러붙음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 * 어떤 사람들은 의지력으로 그렇게 하려고 하지만, 곧 그런 노력이 오히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즐기는 경험을 억누르려고 애쓰는 것은 짜증과 심지어 우울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피하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에 대한 생각은 계속해서 떠오릅니다. 이런 생각을 억누르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우울해질 수 있습니다.

    • * 이는 다른 많은 상황에도 적용됩니다. 성적인 활동을 멀리하기로 결심할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유혹에 굴복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령 성적인 활동을 피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런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불자는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인가?’를 참조하세요.

    • * 우리가 세상 것을 갈망하고 경험하는 것은 본질적인 가치가 없다는 것, 즉 그것들은 마음이 만든 환상이라는 것을 일단 이해하면, 이런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됩니다!

     

    요니소 마나시까-라는 무엇인가?

     

    3. 여기서, ‘요-니(yōni)’는 ‘기원’을 의미하고 ‘마나시까-라(manasikāra)’는 ‘특정한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yoni’는 장모음 o의 ‘yōni’로 발음)는 ‘기원 또는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재탄생 과정의 근본 원인은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에서  라-가(rāga), 도사(dosa), 모하(moha)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를 참조하세요.

     

    • * 앞서 논의했듯이, 이는 내재된 ‘위빠리따 산냐-(viparita saññā)’, 즉 ‘왜곡된 인식’ 때문에 모든 감각 입력에서 발생합니다.

    • * 우리가 (산냐-를 통해) 인식하는 것은 감각 입력의 실제 본질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외부 세계의 사과는 붉은 색을 띠거나 단맛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둘 다 마음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경험된 앗사-다(감각적 즐거움)는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와 ‘인간의 삶은 무색채의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를 참조하세요.

    • * 현대 과학은 이를 확인했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색깔, 맛, 냄새, 음악의 음색, 감촉과 같은 감각 인식이 뇌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들은 생각(마음) 역시 뇌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 * 그러나, 재탄생 이야기, 특히 뇌가 비활성화된 동안의 경험에 대한 의학적 기록을 포함하여,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임사 체험(NDE): 뇌는 마음이 아니다’와 ‘루-빠 사무다야 ㅡ 마음에 의해 다채로운 세상이 창조된다’를 참조하세요.

    • * 또한,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에 대한 또 다른, 그러나 동등한 해석은 참고사항 1을 참조하세요.

     

    아요니소 마나시까-라는 무엇인가?

     

    4. 아요니소 마나시까-라(ayoniso manasikāra)는 요니소 마나시까-라의 반대이며, 어떤 감각 입력이 들어오면 마음이 자동적으로 아윗자-(avijjā)로 작용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이 많은 감각 입력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감각 경험이 외부 세계와 일치한다고 믿도록 속는 것입니다(예를 들어, 하늘을 파랗다고 믿는 것인데, 실제로는 하늘이나 그 어떤 곳에도 연관된 ‘색깔’이 없습니다).

     

    • *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 보통 사람(뿌툿자나)은 즐거움이 외적 대상에 있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붉은 색이나 단맛이 사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모든 시각대상, 소리, 맛, 냄새, 및 성적인 것을 포함한 감촉에 대해서 이와 유사한 견해를 가집니다.

    • * 하지만, 현대 과학은 그런 가정이 잘못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색깔 있는 대상은 없으므로, 대상에서 색깔을 제거하면 대부분의 그 매력이 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음악은 공기 진동을 통해 우리 귀에 전달되며, ‘음악의 즐거움’은 우리 마음속에서 생성됩니다. 음식에는 고유한 맛이 없으며, ‘맛’ 또한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지각입니다.

    • * ‘촉각’이라는 감각에 대해서는, 아래 #11에 있는 비디오에서 설명된 것처럼 실제로 ‘무언가를 만지는’ 것이 아닙니다.

     

    색깔, 맛, 등은 마음이 만든 지각(산냐-)이다

     

    5. 모든 ‘감각적 즐거움’은 마음이 만든 환상이며, 따라서 그것들에 들러붙는 것은 현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데,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며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경향 때문에 필연적으로 많은 고통을 수반하는 재탄생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소따빤나가 파악한 핵심 개념입니다.

     

    • * 가장 놀라운 점은 색깔, 즉 우리 모두가 ‘빛’으로 경험하는 것도 마음이 만들어낸 인식이라는 것입니다. ‘루-빠 사무다야 ㅡ 마음에 의해 다채로운 세상이 창조된다’를 참조하세요.

    • * 하지만, 마음이 만들어낸 지각들을 무시한다면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지각을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 지각들은 우리를 살아있게 하기 위해 생겨납니다. 반면에, 그런 ‘마음이 만들어낸 지각’이 어떻게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미래의 고통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삶은 무색채의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를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 이 두 가지 상반된 측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인간의 삶은 무색채의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를 참조하세요.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로 행하려면 그런 이해가 필요합니다!

    • * 이제, 위 #2에서 언급한 다른 관련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평범한 접근과 성스런(아리야) 접근

     

    6.  ‘우리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에 대한 들러붙음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대응하는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두 가지는 평범한 것이고, 세 번째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i.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는 것을 멈춰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감각적 즐거움이 외부 대상에 있으며,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그것을 획득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불자는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인가?’를 참조하세요.

    ii. 감각적 즐거움에 탐닉하는 것의 부정적인 결과를 인식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들은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할 때 부도덕한 행위(도둑질,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 부도덕한 성적 행위, 음주나 마약 복용 등)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쁜 재탄생’의 가능성을 제외하더라도) 이러한 행위는 이 생에서 감옥에 가거나 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시대에 알-라-라 깔-라-마(Ālāra Kālāma)와 같은 요기(수행자)들은 사회와 멀리 떨어진 정글로 들어가 ‘감각적 즐거움의 유혹’을 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방법으로 일시적으로 자신의 가띠(gati)(성격/습관)를 바꿀 수는 있지만, 영구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iii. 붓다께서는 우리가 소중이 여기는 것들/경험들(시각대상, 소리, 맛, 냄새, 및 성적인 것을 포함한 감촉)은 ‘정신적 꾸밈’ 또는 ‘환상’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이것은 뿌툿자나가 소따빤나가 되기 위해 성자(아리야)로부터 배우는 핵심적인 부분입니. 이 이해는 (감각적 경험을 중시하는) 뿌툿자나의 마음성향을 감각적 경험이 ‘정신적 꾸밈’ 또는 ‘환상’임을 깨달은 소따빤나의 마음성향으로 영구적으로 변화시킵니다. 뿌툿자나는 (감각 경험의 참된 본질을 알지 못하는) 아요니소 마나시까-라(ayoniso manasikāra)로 행위하는 반면에, 소따빤나 단계 이상에 있는 사람은 (감각 경험의 참된 본질을 이해하는)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로 행위합니다. 하지만, 소따빤나는 아나-가-미 단계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감각적 즐거움을 즐길 것입니다. ‘아닛짜는 '마음이 만든' 앗사-다가 본질없다는 것을 의미한다’의 #12을 참조하세요.  

     

    소따빤나가 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조건

     

    7. 사람은 ‘Sappurisa saṃsevo, saddhamma savanaṃ, yoniso manasikāro, dhammānudhamma paṭipatti’라는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함으로써 소따빤나가 됩니다. ‘소따-빤나 막가/팔라를 얻기 위한 4가지 조건’을 참조하세요.

     

    • * 이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성자(삽뿌리사)와 교류해야’ 하고, ‘그 사람으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삿담마)를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외부의 도움을 받아 충족해야 한다는 첫 번째 두 가지 조건입니다.

    • * 마지막 두 가지 조건은 소따빤나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그들은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 확립의 근간이 되는 핵심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마지막 조건인 담마-누담마 빠띠빠다-(dhammānudhamma Paṭipadā)는 이해한 원리(담마)를 따르고 그 세부 사항(아누담마, anudhamma)을 살펴보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 * 그러므로,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를 확립하는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 * 또한, 부처님 시대에 어떤 사람들은 단 한 번의 설법을 듣는 것만으로도 요니소 마나시까-라를 확립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참고사항 2을 참조하세요.

     

    삿다-와 요니소 마나시까-라 사이의 관계

     

    8. ‘Avijjā Sutta (AN 10.61)’는 닙바-나로 가는 핵심 단계들을 요약하고 있는데, ‘sappurisasaṁsevo paripūro saddhammassavanaṁ paripūreti, saddhammassavanaṁ paripūraṁ saddhaṁ paripūreti, saddhā paripūrā yonisomanasikāraṁ paripūreti, yonisomanasikāro paripūro satisampajaññaṁ paripūreti, satisampajaññaṁ paripūraṁ indriyasaṁvaraṁ paripūreti, indriyasaṁvaro paripūro tīṇi sucaritāni paripūreti, tīṇi sucaritāni paripūrāni cattāro satipaṭṭhāne paripūrenti, cattāro satipaṭṭhānā paripūrā satta bojjhaṅge paripūrenti, satta bojjhaṅgā paripūrā vijjāvimuttiṁ paripūrenti’입니다. 

     

    • * 담마를 이해하는 것(saddhamma ssavana)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saddhā)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로 이어집니다.

    • * 이후의 모든 단계들은 요니소 마나시까-라의 확립에 달려 있습니다. 그 단계들은 (i) ‘산(san)’ 또는 번뇌의 일어남을 감시하는 방법을 이해(sati sampajañña), (ii) 감각 절제(indriya saṁvara), (iii) 세 가지 도덕적 행위, 즉 몸, 말, 마음을 통한 감각 절제(tīṇi sucarita), (iv) 사띠빳타-나를 총족(cattāro satipaṭṭhāna), (v) 삿따 봇장가(satta bojjhaṅga)를 육성, (vi) 닙바-나 달성(vijjā vimutti)입니다.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saddhā)을 얻는 것에서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로 이어지는 단계를 주목하세요.

     

    왜곡된 인식(산냐-)에 대한 과학적 확인을 통해 믿음을 얻는 것이 더 쉽다

     

    9. 위에서 논의했듯이, 요니소 마나시까-라는 모든 감각 입력(좋든, 싫든, 중립적이든)에 반응하여 우리 안에 내재된 ‘왜곡된 산냐-’가 필연적으로 아윗자-로 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해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감각 경험이 환상이라는 것을 믿음으로써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 붓다께서는 여러 숫따에서 감각 경험이 환상이라고 명시적으로 말씀하셨지만(예를 들어, ‘왜곡된 산냐-(산자-나-띠)에 속음 ㅡ 들러붙음(땅하-)의 기원’과 ‘산냐-니다-나- 히 빠빤짜 상카- ㅡ 부도덕한 생각은 '왜곡된 산냐-'에 기반한다’를 참조), 당시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는 것’ 외에는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다른 증거가 없었습니다. ‘아닛짜는 '마음이 만든' 앗사-다가 본질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를 참조하세요. 그러나, 우리는 다행히도 최근 현대 과학이 이를 완전히 입증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 * 현대 과학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뒤처져 왔습니다. ‘담마와 과학 - 소개’를 참조하세요. 그러나, 최근 들어 상당한 진전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만들어낸 지각’(과학에서는 ‘뇌가 만든 지각’이라고 부름)이 최근에 확인된 것은 매우 중요한 발전입니다.

    • *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삿다(saddhā)를 생성하는 결정적인 단계에 이르기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 내의 다른 확증적 증거에 의존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비록 현대 과학이 ‘환상적 인식’은 뇌에서 일어난다고 설명하려는 시도일지라도, 현대 과학은 ‘왜곡된 인식’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바로 입증합니다.

    • *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방 안의 코끼리’ ㅡ 빛과 색깔은 마음이 만든 것이다!

     

    10. ‘방 안의 코끼리’라는 구절은 모든 사람에게 명백하지만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중대한 문제나 이슈를 가리킵니다.

     

    • * 가장 놀라운 점은 ‘색깔’은 마음이 만든(mind-made) 지각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 과학의 도움으로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햇빛이라고 느끼는 것은 마음이 만든 인식(왜곡된 산냐-)입니다.

    • * 아래 비디오는 AI가 생성한 것입니다. 하지만 영상에 나오는 과학적 사실은 정확합니다. 포스트에서 잘못된 부분을 발견하시면 포럼에서 알려주세요. 이러한 ‘새로운 과학적 사실’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확실해야 합니다.

    • * 이러한 사실은 신경과학자와 철학자들이 그런 ‘왜곡된 인식’에 ‘퀼리아(qualia)’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대중에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놀라운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들이 해결하려고 애쓰지만 성공하지 못한 ‘의식의 난제’의 일부입니다. ‘앗사-다, 아-디-나와, 닛사라나 - 소개’의 #14를 참조하세요.

    https://youtu.be/qFz25EAthUE

    • * 물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색깔 인식’이 뇌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그것을 증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뇌가 비활성화된 상태에 있는 동안) 임사 체험(NDE)을 하는 사람들도 ‘색깔’을 경험합니다. ‘임사 체험(NDE): 뇌는 마음이 아니다’를  참조하세요.

    • * 촉각이라는 감각을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착각(환상)입니다. 이에 대해, 간략히 논의해 보겠습니다.

     

    우리 몸은 ‘단단한’ 것이 아니다 ㅡ 잘못된 인식(산냐-)

     

    11. 우리는 세상 것들을 ‘단단하고 구체적 물질’로 이루어진 것으로 인식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단단해’ 보이고,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집과, 자동차, 그리고 산과 나무 등도 ‘단단해’ 보입니다.

     

    • * 과학이 이뤄낸 놀라운 발견 중 하나는 우리 감각으로 인지한 것들(산냐-)이 놀라울 정도로 기만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단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지구상에 가장 단단한 물질이지만, 다이아몬드 원자 역시 사실상 빈 공간입니다.

    • * 1800년대에, 처음에 과학자들은 물질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1900년대 초에, 원자는 ‘대부분 비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중앙에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작은 핵이 있고, 그 주위를 ‘전자 구름’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임). 아래 비디오에서 가리켜 보인 바와 같이, 놀라운 사실은 핵을 땅콩 크기로 비유한다면, 원자 전체는 경기장만 하다는 것입니다. 한 번 상상해 보세요. 까무러치게 놀랍습니다!

    • * 하지만,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1920년대에 양자 물리학의 등장으로 더 큰 진전이 이루어졌습니다. 다음 영상 역시 AI가 생성했지만, 과학적으로 정확합니다. 제시된 사실의 타당성을 직접 조사하여 확인해 보세요.

    https://youtu.be/duOsb_laKjw

     

    참고사항

     

    1. 또한 요니소 마나시까-는 다양한 재탄생이 어떻게 빠띳짜 사뭅빠-다에 따라 일어나는지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그 과정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를 통해 모든 감각 입력과 함께 빠띳짜 사뭅빠-다의 시작으로 시작됩니다. 

    • * 위 #3에 언급된 포스트와 #10 및 #11의 비디오에서, ‘아윗자-(avijjā)’는 내재된 ‘위빠리따 산냐-’, 즉 ‘왜곡된 산냐-’에 의해 유발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 미래 존재(바와)와 그 안에서의 재탄생(자띠-)의 기원은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설명됩니다. 논의된 바와 같이,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는 사성제에 대한 무지로 인해 어리석은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항상 “bhava paccayā jāti, jāti paccayā jarā, marana, soka, paridēva, dukkha, dōmanassupāyasā sambhavan’ti”, 즉 “전체 고통의 무더기”로 귀결됩니다. 비록 고통이 거의 없이 존재할 수 있지만(일부 데와 영역과 브라흐마 영역), 모든 자-띠(태어남)는 예외없이 죽음(마라나)으로 끝납니다.

     

    2. 소따빤나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네 가지 조건은 단 한 번의 설법을 청취하는 중에 충족될 수도 있습니다. 띠삐따까(Tipitaka)에는 그런 예가 많이 있습니다. 바-히야 다-루찌-리야(Bāhiya Dārucīriya)는 심지어 짧은 시간 안에 아라한과에 도달했는데, 이는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 * 살아계신 부처님 근처에서 태어난 많은 사람들은 빠-라미따-(pāramitā)를 대부분 충족했기 때문에(즉, 전생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했기 때문에) 남은 단계를 쉽게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부처님이나 아라한으로부터 직접 배울 수 있었습니다.

    • * 요즘에는 그런 사람들이 드물고, 성자의 수도 적습니다. 성자들도 대부분 아나가미 단계 아래입니다. 게다가, 잘못되거나 불완전한 가르침에서 올바른 가르침을 구별해 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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