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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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사-다, 아-디-나와, 닛사라나 - 소개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Assāda, Ādīnava, Nissarana – Introduction’ 포스트

- 2017년 11월 1일 작성

 

1. 이 서브섹션은 옛 서브섹션인 ‘아-스와-다(Āsvāda, 마음이 만든 즐거움), 아-디-나와(Ādeenava, 나쁜 결과), 닛사라나(Nissarana, 포기)’를 대체합니다. 필자는 이 시리즈에서 싱할라어를 잘못 사용했습니다. 또한 ‘소개’를 포함하여 일부 포스트를 기본적으로 재작성하여 논리적 흐름을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 * 또한, 이 서브섹션은 ‘빠띳짜 사뭅빠-다(연기)’ 섹션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이제 여기 더 적절한 ‘닙바-나의 소따-빤나 단계’로 옮겼습니다. 

  • * 다음 파일을 클릭하여 3개의 낱말에 대한 발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 https://puredhamma.net/wp-content/uploads/Assada-adinava-nissarana.mp3

 

2. 우리가 경험하는 ‘즐거움’에는 크게 두 가지 범주(유형)가 있습니다. (i)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해 일어나는 것과 (ii) 첫 번째 유형의 그런 경험을 상기하여 계속해서 더 많은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 마음 속에서 자신에게 생각하기/말하기)를 생성하는 ‘마음이 만든 즐거움’이 그것입니다.

 

  • * 예를 들어, 친구가 준 케이크 한 조각을 먹으면 맛 자체를 통해 ‘좋은 느낌’이 생깁니다. 그것은 첫 번째 범주에 속합니다. 이것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이며, 거기에는 ‘새롭게 생성된 깜마(kamma)’가 없습니다. ‘Avyākata Paṭicca Samuppāda for Vipāka Viññān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나, 그 맛에 들러붙어,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를 생각하고 더 많은 것을 갈망하기 시작하면, 이제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자신에게 생각하기/말하기)를 생성하고 있으며, 그 다음 ‘새로운 깜마’를 생성하고 있습니다. 이 두번째 유형의 즐거움을 ‘앗사-다(assāda, 싱할라어로는 āsvāda)’라고 합니다.

 

3. 그러므로, 앗사-다(assāda)는 기본적으로 ‘마음이 만든 즐거움’, 즉 두 번째 범주에 있는 것뿐입니다.  

 

  • * 첫 번째 유형은 감각 입력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그것들은 마노- 상카-라(manō saṅkhāra)를 통한 우리들의 깜마 위빠-까/가띠(kamma vipāka / gati)로 인해 일어납니다. 마노- 상카-라(manō saṅkhāra)는 모든 각 찟따(citta)에 일어나는 웨-다나-(vēdanā), 및 산냐-(saññā)로 정의됩니다.

  • * 그 초기 느낌에 기초하여, 우리는 또한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위딱까/위짜-라’로 정의되는 ‘자신에게 말하기’와, 그 다음 ‘실제로 말하기’)를 쉽게 일으키고, 그 후에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 육체적 행위)까지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는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를 통제할 수 있으며, 그것이 오염된 가띠(gati)를 바꾸는 열쇠입니다.

  • *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는 ‘실제 밖으로 말하기’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말하기’도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4. 첫 번째 유형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라한(Arahant)도 설탕 또는 멋진 식사의 맛(소금의 짠 맛 또는 어떤 약물/음식의 불쾌감 등)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라한은 그 맛에 들러붙지 않고 더 갈망하지 않습니다.

 

  • * 앗사-다(assāda)라고 하는 것은 이 갈망과 그에 대한 이후의 의식적 생각(vacī saṅkhāra, 와찌- 상카-라)이며, 그것은 고통으로 가득한 윤회 여정을 연장시키기 때문에 나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 서브 섹션에서 자세히 논의할 것입니다.

  • * 따라서, (‘위빠-까_vipāka’로 인해) 마노- 상카-라(manō saṅkhāra)가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것과,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가 의식적으로 생성되는 것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티와 낄레사가 어떻게 생각에 포함되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5. 그것은 미래 고통의 요인이 되는(그리고 또한 바로 지금 마음에 ‘열_tāpa’이 나게 하는),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의 그 의식적인 생성입니다. ‘이 삶의 괴로움 - 정신적 오염물의 역할’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우리는 마약, 술, 심지어 과식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함으로써 ‘중독’됩니다. 우리는 과거 경험을 회상하여 그것을 미래 경험으로 마음에 쉽게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 자신에 말하기)를 생성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는 그것에 따라 [외부로 표출하여] 말하고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 * 이렇게 해서 우리는 ‘오래된 나쁜 습관’을 강화하고 ‘새로운 나쁜 습관(즉 가띠, gati)’까지 형성합니다. 이 습관(가띠, gati)은 [내생의 바와로 태어나는] 윤회 가띠(새로운 것)일 수 있습니다. 

  • * 이 웹 사이트에는 가띠(gati, 습관/성향)에 관한 포스트가 많이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한 것으로는 ‘끌림의 법칙, 습관, 성격(가띠), 및 갈망(아-사-와)’ 포스트가 있으며, 과학적으로 설명한 것으로는 ‘How Habits are Formed and Broken – A Scientific View’ 포스트가 있습니다.  

  • * 가띠(gati)라는 이 중요한 개념은 현재 테라와다 문헌에는 논의되어 있지 않지만, 많은 다른 개념을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6. 그런 ‘마음이 만든 즐거움(앗사-다, assāda)’을 더 많이 즐길수록 그와 관련된 가띠(gati)는 더욱 확고해집니다. 예를 들어, 마약 복용자/음주자는 과거 경험이나 다음 경험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으며, 그 가띠(gati)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약/알코올이 없이 지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 * 훨씬 더 나쁜 결과도 있습니다. 그 가띠(gati)는 자신이 갈망/생각하는 것이 되고, ‘우빠-다-나 빳짜야- 바와(upādāna paccayā bhava)’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연기)에서 작용하게 됩니다. 마음에서 연기 사이클(PS 사이클)이 바로 시작되어,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를 시작하여 술취한 것을 생각하고 술취한 바와(bhava, 존재)가 생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물론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를 통해 행해지는 실제 음주로 이어질 것이고, 머지 않아 알콜 중독자가 될 것입니다.

  • * 그래서, 아-디-나와(ādīnava)는 ‘나쁜 결과 또는 위험’을 의미합니다. 이 경우, 우리가 ‘정신적 즐거움(앗사-다, assāda)’으로 인식하는 것은 현생과 내생 모두에서 나쁜 결과를 가져옵니다. 위의 예에서, 그 사람은 다음 탄생에서 ‘음주하는(알콜 중독) 어머니’에 매칭되어, 음주자(알콜 중독자)로 태어나기 쉽습니다.

 

7. 이것은 첫 번째 성스런 진리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소-마나사(sōmanassa)’는 실제로 미래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들러붙을 경우에만 그렇습니다. ‘소-마나사(sōmanassa)’는 ‘수바(suva)’ + ‘마나사(manasa)’로 된 합성어로서, ‘정신적 유쾌한 느낌(좋은 느낌)’이라는 의미입니다.

 

  • *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그것에 들러붙는 것, 멋진 사진을 보는 것과 그것에 둘러붙는 것, 좋은 음악을 듣는 것과 그것에 들러붙는 것 등의 차이점에 주목하세요.

  • * 그것들에 들러붙지 않고 맛있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시점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나-가-미(Anāgāmi) 단계 전에는 완전하게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것에 도달하려면, 더 많은 공부와 숙고(사띠빳타-나 바-와나-, Satipaṭṭhāna bhāvanā)가 필요합니다.

  • * 그러나, 먼저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하려면, 적어도 앗사-다(assāda)가 아-디-나와(ādīnava)로 이어지는 ‘지혜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이해가 마음에 자리잡을 때, 아빠-야가-미 깜마(apāyagāmi kamma, 사악처로 이어지는 깜마)를 범하지 않습니다. 즉, 이때에, 마음에서 앗사-다(assāda)의 거친 레벨이 제거됩니다. 이 서브섹션은 그 비전(시각)을 얻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8. ‘마음이 만든 즐거움(앗사-다, assāda)’의 나쁜 결과(아-디-나와, ādīnava)를 완전히 이해할 때,  그것은 첫 번째 성스런 진리뿐만 아니라,  그 원인, 그 원인이 제거된 상태, 그리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길, 즉, 네가지 성스런 진리를 모두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그것은 윤회 여정의 중단으로 이어지며, 그것을 닛사라나(Nissarana)라고 합니다. 닛사라나(nissarana)는 ‘짜라나(carana, 여정)’의 끝을 의미하며, ‘니스(nis)’ + ‘차라나(charana)’로 합성되어, 닛사라나(nissarana)로 운이 맞춰집니다.

  • * 그러나, 그것은 소-따빤나 아누가-미(Sotāpanna Anugāmi) 단계에서 시작하여 아라한뜨(Arahant) 단계에서 정점을 이루는 단계적 과정입니다.

 

9. 위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려면 여러 개의 포스트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이해하면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연기) 사이클과 사띠빳타-나/아-나-빠나 바-와나-(Satipaṭṭhāna / Ānāpana bhāvanā)에도 도움이 됩니다.

 

  • * ‘리빙 담마’ 섹션의 처음 몇 서브섹션에는 이 서브섹션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기본 사항이 있습니다.  # 3과  # 4에 언급된 포스트가 특히 중요합니다.

  • * 앗사-다(assāda)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띠(gati, gathi) 뿐만 아니라 아-사와(āsava) 및 아누사야(anusaya)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 사이트에는 그 핵심 개념에 대한 포스트가 많이 있으며, 위 # 3과  # 4에 두어 개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오른쪽 상단의 '검색' 버튼을 사용하여 관련 게시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

  • * 다음에서, 간단한 용어로 앗사-다(assāda), 아-디-나와(ādīnava), 및 닛사라나(nissarana)에 대한 몇 가지 예를 더 논의하겠습니다.

 

10. 우리가 알기로, 즉각적으로 만족감을 주지만 장기적으로 해로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흡연은 좋은 예입니다. 흡연자는 흡연으로 즐거움을 얻습니다. 더군다나 몇번이나 되풀이하기를 바라는데, 그것이 앗사-다(assāda)입니다. 그러나 장기간 흡연하면 암을 포함한 많은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증명되었습니다.

 

  • * 세월이 흐르면서 흡연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필자에게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 나이든 친구가 있었습니다. 필자는 그에게 나쁜 결과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 왜 계속 피우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습관이 몸에 배어 그것을 깨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었고, 그는 이 나쁜 습관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몇 년간은 병원에 있었으며, 폐의 일부를 한 조각씩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고, 결국 대부분의 시간을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는 상태였습니다.

  • * 물론 그는 입원을 앞두고 있을 때 결국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가 아-디-나와(ādīnava)를 분명히 보았을 때는, 즉 그가 실제로 나쁜 결과를 경험했을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폐에] 손상이 가해진 상태였습니다.

 

11. 그러나, 그의 아이들은 그 친구가 겪은 일을 분명히 보았고, 흡연이 일시적인 즐거움(앗사-다, assāda)을 줄 수 있지만, 나쁜 결과(아-디-나와, ādīnava)를 불러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이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닛사라나, nissarana).

 

  • * 이것이 우리가 결국 모든 감각적 즐거움에 대해 타당하다는 것을 증명할 핵심 포인트입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세요. 우리는 이해 없이는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아도 되며, 실제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사실 그런 강제적인 포기는 더 많은 스트레스로 이어질 뿐입니다. 우리 마음은 담마를 계속 배움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나쁜 것들을 자동적으로 피할 것입니다.

  • * 다음 포스트에서 더 깊은 분석에 이르는 것보다, ‘앗사-다(assāda), 아-디-나와(ādīnava), 닛사라나(nissarana)’를 ‘비교적 보기 쉬운’ 예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 *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갈망은 또 다른 매우 분명한 예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과식의 나쁜 결과를 ‘볼’ 수 없으며, 그 결과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비만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과식하는 각 개인에게 많은 건강 문제를 야기시켰고, 또한 모두에게 건강 관리 비용의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과식의 ‘앗사-다(assāda), 아-디-나와(ādīnava), 닛사라나(nissarana)’ 진리를 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 * 과음, 마약 복용, 나쁜 친구들과의 교제는 더 그런 비교적 ‘보기 쉬운’ 예입니다.

 

12. 그러나, 우리는 붓다께서 주신 지침을 사용하여 그러한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단 실제 근본 원인을 이해하면, 적어도 우리 중 일부는 그러한 ‘평범한 문제’를 충분히 생각하고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훨씬 더 장기적 이익을 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닙바-나(Nibbāna)의 네 단계로 이어지는 사고와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 * 따라서,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장기적 고통(괴로움)’을 제거’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지만, ‘단기적 고통(괴로움)’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 이것에 대한 분명한 예로서, 불교 승려의 건강 상태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어떤 불교 국가에서도 불교 승려는 재가자보다 훨씬 더 건강합니다. 불교 승려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과식하지 않습니다.

  • * 그리고, 불교 승려들은 가진 것이 별로 없고 다른 사람들이 그토록 높은 가치를 두는 많은 감각적 즐거움에서 만족을 추구하지 않지만, 그들 마음 속의 즐거움과 평온함을 뚜렷하게 볼 수 있습니다.

 

13. 이 마지막 점은 좀 더 생각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충분히 깊이 생각해 보면, 어떤 흔한 감각적 즐거움이라도 약물을 흡입함으로써 얻는 즐거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매우 즐거운 ‘폭발하는 즐거움’을 주지만, 불가피하게 단기적으로도 나쁜 결과로 이어집니다. 과음으로 인한 심한 두통으로 숙취가 생길 수 있으며, 과식을 하면 바로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 우리는 단지 차분하고 평화로운 마음 상태를 갖는 것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사람들이  ‘중립적 마음’(우뻭카-, upekkhā라고 함)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경험은 마치 오랫동안 앓았던 두통을 제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줄어들 때까지는, ‘끊임없는 스트레스’가 자신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 * 우리 마음은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스트레스를 끊임없이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헤아릴 없는 전생에서 해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의 어떤 부정적 결과를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14.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 Nikāya)의 삼보-디 왁가(Sambhōdhi Vagga)에는 앗사-다(assāda), 아-디-나와(ādīnava), 니사라나(nissarana)에 대한 여러 개의 숫따(sutta)가 있습니다. 뿝베와 삼보다 숫따( ‘Pubbeva Sambodha Sutta, AN 3.103’ )는 그것들이 무엇인지를 간결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 .. 꼬 누 코 로께 앗사-도, 꼬 아-디-나오, 낑 닛사라난’띠? 땃사 마이항, 빅카웨, 에따다호시: ‘양 코 로깡 빠띳짜 웁빳자-띠 수캉 소-마낫상, 아양 로께 앗사-도. 양 로꼬 아닛꼬 둑코 위빠리나-마담모, 아양 로께 아-디-나오. 요 로께 찬다라-가위나요 찬다라-갑빠하-낭, 이당 로께 닛사라난’띠..”

(“..ko nu kho loke assādo, ko ādīnavo, kiṃ nissaraṇan’ti?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yaṃ kho lokam paṭicca uppajjāti sukhaṃ sōmanassaṃ, ayaṃ loke assādo. Yaṃ loko anicco dukkho vipariṇāmadhammo, ayaṃ loke ādīnavo. Yo loke chandarāgavinayo chandarāgappahānaṃ, idaṃ loke nissaraṇan’ti..”).

 

번역: “..이 세상에서 앗사-다(assāda), 아-디-나와(ādīnava), 및 닛사라나(nissarana)는 무엇인가? 수카/소-마나사(sukha/sōmanassa)에 들러붙으면(Paṭicca, 빠띳짜), 그것이 앗사-다(assāda)다. 그것은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위빠리나-마(viparināma) 특성을 가진 담마(dhamma) (이것은 미래 괴로움의 씨앗이고, 그 때문에 이것은 실제로 깜마 씨앗임)를 일으키며, 그것을 아-디-나와(ādīnava)라 한다. 그런 담마(dhamma)의 일어남은 감각적 즐거움에 빠지는 경향을 구속함으로써 멈춰질 수 있고(찬다라-가위나요, chandarāgavinayo), 그래서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을 제거할 수 있다(찬다라-갑빠하-낭, chandarāgappahānaṃ)..”.

 

  • * 수카(sukha)는 ‘육체적 즐거움’이고, 소-마나사(sōmanassa)는 ‘마음의 즐거움’입니다. 다음 포스트에서 이 고도로 압축된 구절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 * 그 숫따(sutta)에서 붓다께서는 자신이 이 ‘감각에 들러붙음’의 위험함을 볼 필요가 있음을 깨닫고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그러한 갈망을 제거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기까지 ‘붓다후드(Buddhahood, 붓다의 깨달음)에 이를 수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 담마-(dhammā)는 실제로 미래 위빠-까(vipāka)로 이어지는 ‘깜마 씨앗’이라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루-빠'란 무엇인가? – '담마-'도 '루-빠'다! ” 포스트와, ‘ What are Dhamma? – A Deeper Analysis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5. 이 세가지 핵심 개념을 논의하는 다른 숫따(sutta)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앗사다 숫따 (‘ Assada Sutta, AN 6.112 ’)는 앗사-다 딧티(assāda diṭṭhi)를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에 연결시키므로 주목할 만합니다.

 

“ “따요메, 빅카웨, 담마-. 까따메 따요? 앗사-다딧티, 앗따-누딧티, 밋차-딧티. 이메 코, 빅카웨, 따요 담마-. 이메상 코, 빅카웨, 띤낭 담마-낭 빠하-나-야 따요 담마- 바-웨땁바-. 까따메 따요? 앗사-다딧티야- 빠하-나-야 아닛짜산냐- 바-웨땁바-, 앗따-누딧티야- 빠하-나-야 아낫따산냐- 바-웨땁바-, 밋차-딧티야- 빠하-나-야 삼마-딧티 바-웨땁바-. 이메상 코, 빅카웨, 띤낭 담마-낭 빠하-나-야 이메 따요 담마- 바-웨땁바-”띠”

(““Tayome, bhikkhave, dhammā. Katame tayo? Assādadiṭṭhi, attānudiṭṭhi, micchādiṭṭhi. Ime kho, bhikkhave, tayo dhammā. Imesaṃ kho, bhikkhave, tiṇṇaṃ dhammānaṃ pahānāya tayo dhammā bhāvetabbā. Katame tayo? Assādadiṭṭhiyā pahānāya aniccasaññā bhāvetabbā, attānudiṭṭhiyā pahānāya anattasaññā bhāvetabbā, micchādiṭṭhiyā pahānāya sammādiṭṭhi bhāvetabbā. Imesaṃ kho, bhikkhave, tiṇṇaṃ dhammānaṃ pahānāya ime tayo dhammā bhāvetabbā”ti”).

 

  • * 또는,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에 대한 숙고는 앗사-다 딧티(assāda diṭṭhi)로 이어집니다.

  • * 이것은 마음이 만든 즐거움(앗사-다, assāda)은 닛짜 산냐-(nicca saññā), 즉 그 감각 경험이 실제적이고 결실있다고 하는 인식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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