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앗사-다, 아-디-나와, 닛사라나 - 소개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Assāda, Ādīnava, Nissarana – Introduction’ 포스트
앗사-다(assāda)는 마음이 ‘허구적이고 만들어낸 인식’에 의한 감각 경험으로 기쁨을 얻는 방식을 설명합니다. 그런 무의미한 앗사-다에 기반하여, 사람들은 아꾸살라 깜마에 빠지기 쉽고, 이는 나쁜 위빠-까(악처에 재탄생하는 것을 포함)로 이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아-디-나와(ādīnava)입니다. 그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앗사-다의 발생을 멈추고 미래의 고통을 끝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니사라나(nissarana)입니다.
2017년 11월 1일 작성; 2026년 2월 28일 재작성
앗사-다, 아-디-나와, 닛사라나
1. ‘경험된 앗사-다(감각적 즐거움)는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 포스트에서 ‘까-마 산냐-(kāma saññā)’를 통해 자동으로 생성되는 마-나빠(manāpa, 좋아함의 기미/흔적)가 어떻게 뿌툿자나에 의해 의식적으로 경험되는 즐거운 ‘앗사-다’로 증폭되는지 논의했습니다.
* 빠띳짜 사뭅빠-다가 설명했듯이, 뿌툿자나는 그런 의미없는 앗사-다로 인해 감각 입력에 들러붙고, 강력한 깜마를 축적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재탄생 과정에서 미래의 고통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앗사-다(assāda)의 단점 또는 나쁜 결과, 즉 아-디-나와(ādīnava)입니다.
* 또한 앞서 논의했듯이, 그 ‘마음이 만든 앗사-다’는 까-마 산냐-, 즉 ‘허구의 인식’에 들러붙은 결과입니다. 예를 들어, 사과는 빨갛지도 않고 맛도 없으며, 새깔과 맛은 모두 마음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루-빠 사무다야 ㅡ 마음에 의해 다채로운 세상이 창조된다’를 참조하세요. 다시 말해, ‘나쁜 재탄생’에서 고통은 전적으로 마음이 만들어낸 ‘즐거움의 환상’을 쫓는 데서 비롯됩니다!
* 초기의 ‘약한 마나-빠(manāpa)’는 ‘경험된 앗사-다(감각적 즐거움)는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여러 단계를 거쳐 ‘앗사-다’로 증폭됩니다.
앗사-다가 어떻게 아-디-나와로 이어지는지를 이해하면 막가 팔라의 결과를 발생시킨다
2. 그 과정을 이해하면, 성자(아리야)가 되고 (‘까-마 라-가’를 없앰으로써) 까-마 산냐-(kāma saññā)에 들러붙음을 피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미래의 고통에서 벗어남, 즉 닛사라나(nissarana)의 과정을 시작합니다.
* 다음 파일에서 3개의 낱말에 대한 발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 https://puredhamma.net/wp-content/uploads/Assada-adinava-nissarana.mp3
* ‘앗사-다, 아-디-나와, 및 닛사라나’라는 그 세 가지 용어는 사성제와 동일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앗사-다, 아-디-나와, 닛사라나 = 네 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
3. ‘Dhammacakkappavattana Sutta (SN 56.11)’에서는 사성제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 첫 번째 성스런 진리(고통은 무엇인가?)는 ‘간단히 말해서,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오취온, pañca upādānakkhandhā)가 고통이다’(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라고 합니다.
* 표식 4.3 ~ 4.5에서는 두 번째 성스런 진리(고통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감각적 즐거움, 존재하고자 함, 존재하지 않고자 함에 대한 갈망(taṇhā)’(kāma taṇhā, bhava taṇhā, vibhava taṇhā)이라고 합니다.
* 표식 4.6 및 4.7에서는 세 번째 성스런 진리(고통의 그침은 무엇인가?)를 ‘갈망의 그침’(yo tassāyeva taṇhāya asesa virāga nirodho cāgo paṭinissaggo mutti anālayo)이라고 합니다.
* 표식 4.8 ~ 4.10에서는 네 번째 성스런 진리(고통의 그침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를 ‘성스런 팔정도 ㅡ 삼마- 딧티부터 삼마- 사마-디’라고 합니다.
고통의 씨앗은 ‘까-마 산냐-’다
4. 위 #3의 구절을 단순화해 보겠습니다.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까-마 로까(욕계)’에 사는 인간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 첫 번째 성스런 진리: 빤짜 우빠-다-낙칸다-(pañca upādānakkhandhā)의 생성이 계속되는 한, 고통은 계속됩니다. 앞에서 논의했듯이, 빤짜 우빠-다-낙칸다-의 생성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PS)의 작용과 동일하며, 예외없이 모든 태어남은 죽음으로 끝나는 재탄생 과정에 연료를 공급합니다.
* 두 번째 성스런 진리: PS의 시작(‘avijjā paccayā saṅkhāra’)은 ‘까-마 라-가(kāma rāga)’를 동반한 모든 감각 입력에 따라 자동으로 일어나는 ‘까-마 산냐-(kāma saññā)’에 대한 들러붙음으로 시작됩니다. 미래의 존재를 일으키는 깜마 에너지는 마음이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를 거쳐 ‘웨다나 빳짜야- 땅하-(vedanā paccayā taṇhā)’ 단계에 도달할 때에만 발생합니다. (주: 이 때문에 고통의 원인을 땅하-라고 하는데, 어떤 빤짜 우빠-다-낙칸다 과정은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일찍 멈추고 PS의 ‘웨다나- 빳짜야 땅하-’ 단계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오염’은 실제로는 ‘땅하-’ 단계에 이르기 훨씬 전에 시작되며, 마음은 (‘까-마 라-가’를 동반하는 ‘까-마 다-뚜(kāma dhātu)’ 단계에서 ‘까-마 산냐-’에 들러붙습니다. 따라서, 땅하-는 과정의 맨 처음에 ‘까-마 라-가’가 멈추지 않고서는 멈춰질 수 없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경험된 앗사-다(감각적 즐거움)는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의 #8에 있는 도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세 번째 성스런 진리: 이제 (‘까-마 로까’에서) 미래의 고통을 멈추는 열쇠는 땅하-가 일어나는 것을 멈추는 것이며, 따라서, ‘까-마 산냐-’에 들러붙음을 통해 일어나는 ‘까-마 라-가’가 발생하는 것을 멈추는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 네 번째 성스런 진리: ‘까-마 로까’의 고통을 멈추는, 즉 ‘까-마 라-가’가 일어나는 것을 멈추는 유일한 길은 지혜(빤냐-)를 육성함으로써 ‘까-마 라-가 상요자나’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까-마 라-가 상요자나’를 제거하는 길이 바로 성스런 팔정도입니다. 성스런 팔정도는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에서 시작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위의 세 가지 성스런 진리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까-마 로까의 고통’이 어떻게 ‘까-마 산냐-’에 들러붙음을 통해 시작되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삼마- 딧티에 이르면 소따빤나가 됩니다. ‘산딧티꼬 ㅡ 그 의미는 무엇인가?’를 참조하세요.
앗사-다의 생성에 있어 까-마 산냐-의 결정적인 역할
5. 미래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i) ‘까-마 산냐-’는 그 어떤 것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매력적인 색깔, 소리, 맛, 냄새, 및 감촉으로 가득한 세상’을 자동적으로 생성합니다. 이것은 이해해야 할 중요한 점입니다. 이는 믿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과학이 완전히 입증했습니다. ‘인식(산냐-)의 환상 ㅡ 이는 과학적 합의(의견 일치)다’을 참조하세요. 직접 조사해 보시고 다른 의견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요즘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AI 봇이 많이 있습니다. ‘색깔에 대한 인식은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해 보세요. 그것은 뇌에서 만들어진다고 답할 것입니다. 다른 감각 기관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확인해 보세요. 또 다른 예로, 꿀에는 실제로 맛이 없습니다. 현대 과학이 확인했듯이, 맛 또한 ‘마음이 만든’ 인식입니다.
(ii) ‘까-마 산냐-’에 의해 촉발된 초기의 ‘호감’(manāpa)은 뿌툿자나에게 순식간에 ‘기쁨’(소마낫사 웨다나-)으로 발전합니다. 이는 그 감각 입력이 실제라고 믿게 하고, 더 많은 감각 입력을 ‘축적/경험’하기 위해 노력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땅하-(taṇhā)’를 낳고, PS에서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로 이어집니다.
(iii) 그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 단계는 ‘나와 깜마’ 단계를 시작하는데, 이 단계에서 아꾸살라 깜마에 몰두함으로써 까-야, 와찌, 마노 깜마를 축적하기 시작합니다. 그 깜마 에너지는 고통스러운 미래 존재를 일으키는데, 이것이 ‘우빠–다-나 빳짜야- 바와(upādāna paccayā bhava)’입니다.
* 따라서, 앗사-다(마음이 만든 즐거움)와 깜마 축적(들러붙음을 통함)는 서로를 먹입니다. 이 둘은 ‘의식적으로 자각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순식간에 자랍니다. ‘경험된 앗사-다(감각적 즐거움)는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의 #9와 #10을 참조하세요.
까-마 산냐-에 속아서, 우리는 재탄생의 사이클에서 고통받는다
6. 동일한 사이클이 미래의 재탄생에서 반복되어 재탄생 과정을 지속시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여 깨닫기 전까지는 이 재탄생 과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 이 과정에서 ‘까-마 로까’의 ‘까-마 산냐-’(그리고 루-빠 및 아루-빠 로까의 다른 유형, 아래 #10을 참조)의 역할이 오랫동안 감춰져 왔지만, 많은 숫따에서 그것을 가리켜 보입니다. 몇몇 숫따를 논의한 포스트들에 대해서는 삭까-야 딧티와 '마음이 만든 루-빠'의 #5를 참조하세요.
* 다른 중요한 점은 그 산냐-는 실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마음이 만든 ‘환상’ 또는 ‘신기루’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까-마 산냐-’가 실로 환상이라는 것을 현대 과학이 확인해 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루-빠 사무다야 ㅡ 마음에 의해 다채로운 세상이 창조된다’를 참조하세요.
* 다채로운 대상은 ‘까-마 산냐-’를 통해 들러붙음을 유지하는 데 일조합니다. 명상 중에 ‘다채로운 빛을 보는 것’이 ‘수행의 진전’을 의미한다고 믿는 것은 잘못입니다.
‘알-로꼬- 우다빠-디’ ㅡ ‘빛’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7. 모든 빛에는 색깔이 있습니다. 햇빛이나 백색광도 색깔입니다. 여러 포스트에서 논의했듯이, 이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지각입니다. 예를 들어, ‘루-빠 사무다야 ㅡ 마음에 의해 다채로운 세상이 창조된다’의 #4를 참조하세요.
*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ṁ udapādi, ñāṇaṁ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구절은 ‘Dhammacakkappavattana Sutta (SN 56.11)’에 여러 번 나타납니다.
* 그 구절의 의미는 ‘(나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통찰, 앎, 지혜, 그리고 진리를 깨달았고, (세상에서 분리됨으로써) 닙바-나가 내 안에 일어났다.’입니다.
* 많은 번역자들이 ‘알-로까(āloka)’를 ‘빛’으로 잘못 번역하는데, 위 링크 주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빛’은 ‘세상’에 속하는 것(완전히 마음이 만든 인식)이지, 닙바-나에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명상’ 중에 ‘빛을 보는 것’에 기뻐하며, 그것이 막가 팔라 또는 자-나에 도달했다는 의미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믿음입니다.
* 논의한 바와 같이, 붓다께서는 ‘로까’를 ‘세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더 넓은 세계관에서, 세상의 31영역은 까-마, 루-빠, 및 아루-빠 로까에 속합니다(우리의 까-마 로까에는 11영역만 있습니다. 아래 #10을 참조하세요). 따라서, ‘알-로까(āloka)’는 세 가지 모든 로까-(lokā)에서 벗어나 재탄생 과정을 멈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까와 닙바-나(알로까) ㅡ 완전한 개관’을 참조하세요.
아-디-나와 ㅡ 미래의 고통
8. 위의 논의를 통해, 앗사-다(assāda)의 아-디-나와(ādīnava, 나쁜 결과)는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해 축적된 깜마 에너지로 인해 네 가지 하위 영역(아빠-야-)에 다시 태어날 때 겪게 되는 미래의 고통이라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 위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땅하-의 핵심 단계는 ‘소마낫사 웨다나-(또는 ‘앗사-다’)에 의해 생성됩니다. 그러나, 그 ‘앗사-다’는 ‘내재된 산냐’에 의해 촉발되는 약한 ‘마나-빠(manāpa)’로 시작하여,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상깝빠(saṅkappa)와 사라 상깝빠(sara saṅkappa)를 통해 증폭되고, ‘나와 깜마’ 단계에서 강력한 마노, 와찌, 까-야 상카-라와 함께 ‘앗사-다(assāda)’로 가속화됩니다. ‘경험된 앗사-다(감각적 즐거움)는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의 #9와 #10을 참조하세요.
* ‘까-마 로까’에 있는 인간에게 있어, 그 ‘내재된 산냐-’는 ‘까-마 산냐’입니다. 아래에서 이를 루-빠와 아루-빠 로까로 일반화할 것입니다.
* 따라서, ‘앗사-다(assāda)’에는 아-디-나와(ādīnava)(나쁜 결과)가 필연적으로 따릅니다.
* 유감스러운 사실은 그 앗사-다는 실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까-마 산냐-’의 환상에 기반하여 생겨난 것입니다.
닛사라나 ㅡ 재탄생의 사이클에서 벗어남
9. ‘이 마음이 만든 즐거움(앗사-다, assāda)’의 나쁜 결과(아-디-나와, ādīnava)를 완전히 이해할 때, 그것은 첫 번째 성스런 진리뿐만 아니라, 그 원인, 그 원인이 제거된 상태, 그리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길, 즉, 네가지 성스런 진리를 모두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것은 윤회 여정의 그침으로 이어지며, 그것을 닛사라나(Nissarana)라고 합니다. 닛사라나(nissarana)는 ‘짜라나(carana, 여정)’의 끝을 의미하며, ‘니스(nis)’ + ‘차라나(charana)’로 합성되어, 닛사라나(nissarana)로 운이 맞춰집니다.
* 그러나, 그것은 소-따빤나 아누가-미(Sotāpanna Anugāmi) 단계에서 시작하여 아라한뜨(Arahant) 단계에서 정점을 이루는 단계적 과정입니다.
* 이제, 위에서 ‘까-마 로까’에 국한되었던 논의를 ‘루-빠 로까’와 ‘아루-빠 로까’로 확장해 보겠습니다.
* 추가적인 포스트들은 ‘앗사-다, 아-디-나와, 닛사라나(Assāda, Ādīnava, Nissarana)’서브 섹션에 있습니다.
모든 루빠 로까 및 아루빠 로까로 확장
10. 31영역에 태어남은 크게 세 가지 범주, 즉 까-마 로까(kāma loka), 루-빠 로까(rūpa loka), 및 아루-빠 로까(arūpa loka)로 나뉩니다. 자세한 내용은 ‘까-마 라-가, 루빠 라-가와 아루빠 라-가’를 참조하세요.
* 까-마 로까에 있는 이들이 자동으로 까-마 산냐-를 경험하는 것처럼, 루-빠 로까 브라흐마-(rūpa loka Brahmā)는 자동적으로 ‘자-나 산냐-(jhāna saññā)’에 들러붙고, 아루-빠 로까 브라흐마-(arūpa loka Brahmā)는 ‘아루-빠 사마-빳띠 산냐-(arūpa samāpatti saññā)’에 들러붙습니다.
* 맛있는 음식이나 성적 접촉은 루-빠 로까 또는 아루-빠 로까에서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자-나 산냐-’와 ‘아루-빠 사마-빳띠 산냐-’에 각각 기반한 ‘자-나의 즐거움’ 또는 ‘아루-빠 사마-빳띠의 즐거움’만 경험합니다. 그 유형의 산냐-도 ‘까-마 산냐-’처럼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 주된 차이점은 루-빠 또는 아루-빠 브라흐마-는 아꾸살라 깜마를 행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나, 또는 아루-빠 사마-빳띠는 화려하거나 맛있는 것과 같은 외부 자극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의 마음만 필요합니다! 이것이 ‘까-마 라-가(kāma rāga)’가 ‘루-빠 라-가(rūpa rāga)’ 또는 ‘아루-빠 라-가(arūpa rāga)’보다 훨씬 더 나쁜 이유입니다.
* 위 #3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땅하-는 까-마 땅하-, 바와 땅하-, 및 위바와 땅하-를 포함하며, 세 가지 로까(까-마 로까, 루-빠 로까, 및 아-루빠 로까) 모두에 적용됩니다. 그것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세 가지 유형의 땅하-는 모두 두 가지 주요 잘못된 견해에 기반을 두고 있다
11. 위 #3, #4에서, 두 번째 성스런 진리는 모든 고통이 세 가지 종류의 땅하-, 즉 까-마 땅하-, 바와 땅하-, 및 위바와 땅하-에 기반하여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이 땅하-들은 두 가지 주요 유형의 잘못된 견해(diṭṭhi) 때문에 일어납니다.
(i) 웃체다 딧티(Uccheda Diṭṭhi): 삶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끝난다는 것, 즉 재탄생 과정이 없고 다른 미래의 존재(bhava)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바와 땅하(vibhava taṇhā)를 낳습니다. 이 잘못된 견해는 ‘웃체다 딧티’이고, 둘 중 가장 나쁩니다. 이는 자신의 행위가 ‘좋은 또는 나쁜 영역’에 미래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 견해를 가진 이들은 생각과 인식이 뇌에서 발생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뇌가 육체와 함께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삶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논의한 바와 같이, 특히 임사체험(NDE) 연구에서 뇌가 비활성된 상태에서도 생각과 인식이 일어날 수 있다는 증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임사 체험(NDE): 뇌는 마음이 아니다’를 참조하세요.
(ii) 삿사따 딧티(Sassata Diṭṭhi): 그 다음 어떤 이들은 데와 또는 브라흐마 영역에서 ‘영구적 존재’가 있다고 믿습니다.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나 힌두교의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두 가지 잘못된 견해 중에서 나은 편인데, 자신의 행위가 결과를 가질 수 있다(간단히 말해, 깜마는 까마 위빠-까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그 어디의 존재도 영원할 수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미래의 존재는 깜마 에너지로 유지되며, 그 에너지가 고갈되면, 그 존재는 끝을 맞이합니다. 일부 브라흐마는 많은 마하 깝빠-(수백/수천억년)에 달하는 긴 수명을 가지므로,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가집니다. 이 견해를 가진 이들은 ‘바와 땅하-’를 가집니다.
까-마 땅하-는 두 가지 잘못된 견해와 연관될 수 있을 것이다
12. 땅하-의 세 번째 범주(까-마 땅하-)는 오직 까-마 로까(kāma loka)에서만 가능한 감각적 즐거움(특히, 맛, 냄새, 및 성관계를 포함한 감촉)에 대한 들러붙음으로 구체적으로 일어납니다. 이 감각적 즐거움은 브라흐마 영역에는 없습니다. 위바와 땅하-(vibhava taṇhā)를 가진 이들도 강한 까-마 땅하-(kāma taṇhā)를 가집니다. 반면에, 브라흐마 영역에서 영원한 삶을 믿는 사람들은 까-마 땅하-를 극복하는 노력을 하여, 자-나/아루-빠 사마-빳띠를 육성하고 ‘까-마 로까’를 초월하여 브라흐마 영역에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
*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위바와 땅하-’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바와 땅하-’를 가진 사람들(특히 자-나/아루-빠 사마-빳띠를 육성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이미 깜마/깜마 위빠-까를 믿고 있기 때문에 더 쉽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열 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극복했습니다. ‘밋차- 딧티, 간답바, 및 소-따빤나 단계’를 참조하세요.
*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전에 먼저 열 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를 극복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삭까야 딧티(그리고 이와 관련된 두 가지 다른 상요자나, 즉 실랍바따 빠라-마-사 및 위찌낏차-)를 극복해야 합니다. 소따빤나는 ‘위바와 땅하-’를 제거했지만 ‘바와 땅하-’를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그들은 까-마 라-가, 루-빠 라-가, 또는 아-루빠 라-가를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까-마 라-가를 가지고 있더라도, 삭까-야 딧티(그리고 관련된 다른 두 가지 상요자나)를 제거했기 때문에 ‘까-마 로까’의 가장 낮은 네 가지 영역(아빠-야-)에 재탄생하는 것에서 벗어납니다.
* 아나-가-미(Anāgāmi)는 아직 루-빠 라-가 상요자나(rūpa rāga saṁyojana)나 아루-빠 라-가 상요자나(arūpa rāga saṁyojana)를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바와 땅하-(bhava taṇhā)’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나(jhāna) 또는 아루빠 사마-빳띠(arupa samāpatti)를 갈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루빠 로까와 아루빠 로까에 재탄생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 아라한에게는 모든 유형의 오염원(땅하-, 상요자나, 아누사야, 아-사와, 등)이 제거되었습니다.
웃체다 딧티와 삿사따 딧티를 극복한 후에 삭까-야 딧티를 제거해야 한다
13.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는 세상의 ‘즐거움’이 실제로 있고 유익하다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 그것은 웃체다 딧티와 삿사따 딧티를 제거한 후에야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요건은 세간적 팔정도를 실천하는 동안에 충족됩니다.
* 세상의 ‘즐거움’이 실제로 있고 유익하다는 잘못된 견해인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는 ‘위빠리따 산냐-(viparita saññā)’, 즉 ‘잘못된, 마음이 만든 인식’에 기반합니다. 인간계에서, 그 위빠리따 산냐-는 ‘까-마 산냐-(kāma saññā)’입니다. ‘까-마, 루빠, 및 아루빠 로까의 산냐-’를 참조하세요.
* 그러므로, ‘까-마 산냐-(kāma saññā)’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극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삭까-야 딧티를 제거하는 것이 더 쉬워집니다. 예를 들어, ‘아윗자-는 까-마 로까의 까-마 산냐-에 의해 촉발된다’를 참조하세요.
의식의 난제는 웃체다 딧티를 가진 자에게만 적용된다
14. ‘의식의 난제’는 웃체따 딧티를 가진 자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이 범주에 속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생각(찟따/윈냐-나)과 지각/인식(산냐-)이 뇌에서 발생한다고 믿습니다.
* 그러나, 그 ‘의식의 난제’는 생이 사후에 계속된다고 믿는 우리에게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런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붓다께서는 생각과 지각/인식이 어떻게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해 생성된 마노마야 까-야(manomaya kāya)(인간에게는 간답바)에서 일어나는지 설명하셨습니다. 삿사따 딧티(sassata diṭṭhi)를 가진 이들도 생각과 지각이 비활성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진 뇌에서 발생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 비디오의 재생시각 9분 30초쯤에, David Chalmers는 의식이 근본적인 것이며 비활성 물질에서 파생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 접근 방식이 올바릅니다!
* 또한, ‘마음은 뇌에 있지 않다’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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