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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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닛짜는 '마음이 만든' 앗사-다가 본질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문 : Buddha Dhamma 섹션의 ‘Anicca Means Mind-Made Assāda Are Without Substance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는 것의 아닛짜 본질은 매력적인 세계(로까)라는 환상이 어떻게 ‘까-마 산냐-’를 통해 마음에 생기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2026년 3월 7일 작성

     

    ‘마나-빠’에서 ‘앗사-다’에 이어 ‘기쁨으로 춤추는 것’으로

     

    1.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는 것의 아닛짜 본질은 ‘매력적인 세계’라는 환상이 어떻게 마음에 생기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이는 미미한 마나-빠(manāpa, 좋아함의 기미/흔적)가 생기고, 금세 커져서 기쁨에 겨워 춤추기 시작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내재된 까-마 산냐-(kāma saññā)에 의해 촉발되는 복잡하고 다단계적인 과정입니다. ‘앗사-다(assāda) 단계’는 이 과정의 초기, 즉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나타납니다. 

     

    • * 좋아함의 기미/흔적(manāpa)은 ‘마음이 만드는 확장 과정’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 기쁨에 겨워 춤을 추기 시작하는 상태로 확장됩니다. 이 ‘확장 과정’은 뿌라-나 깜마 단계 초기에 거의 감지할 수 없는 앗사-다(assāda)를 통해 어떻게 그 ‘기쁨’이 일어나는 지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멈출 수 없습니다. 

    • * 그것은 마치 댐에 처음에 작은 누수(앗사-다)가 생기다가 결국 댐에 균열이 생기고 댐벽이 무너져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기쁨에 겨워 춤추기)과 같습니다.

     

    ‘앗사-다’는 막가 팔라가 있는 자에 의해서만 멈춰질 수 있다

     

    2. 부처님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요기(수행자)들과 부처님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요기들과 부처님 모두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는 것의 단점을 지적하고 아꾸살라 깜마를 멀리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처럼 보입니다. 

     

    • * 그 요기들은  감각적 즐거움과 아꾸살라 깜마를 멀리하는 것이 자-나를 얻게 한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감각적 유혹’을 멀리함으로써 이를 강제적으로 실천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나에 도달할 수 있었다하더라도, 그들은 마음이 ‘감각적 유혹’에 노출되면 자-나를 유지하는 능력을 잃을 것입니다. 초능력, 즉 신통력을 가진  요기가 하늘을 날다가, 아름다운 여성을 보자, 자-나와 신통력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 그 요기들은 초기의 앗사-다 발생이 어떻게 ‘뿌라나 깜마’ 단계에 일어나는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앗사-다 발생’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감각적 즐거움이 매력적인 사람이나 호화로운 집과 같은 외부 대상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은 멀리하는 것, 즉 순전히 의지력으로 ‘나와 깜마’ 단계를 제어하는 것뿐이었습니다

    • * 그들은 (보통 사람, 즉 뿌툿자나가 경험하는) 높은 레벨의 기쁨을 ‘앗사-다’ 레벨로 낮출 수 있었지만, 그 초기의 앗사-다가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멈추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3. ‘Mahādukkhakkhandha Sutta (MN 13)’에서, 붓다께서는 당신의 가르침과 당대 다른 요기들의 가르침의 차이를 설명하셨습니다. 이 숫따에 설명된 바와 같이, 어느 날, 여러 빅쿠들이 다른 그런 요기들의 사원을 방문했습니다. 그 요기들은 빅쿠들에게 자신들도  감각적 즐거움의 단점을 가르치고 있는데, 부처님의 가르침과 무엇이 다르냐?고 물었습니다.   

     

    • * 빅쿠들 스스로는 그 물음에 답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부처님에게 돌아갔고, 붓다께서는 그 차이점을 설명하셨습니다. 그 설명은 표식 6.1에서 시작되며, 포함된 기본 개념을 줍니다.

    • * 표식 6.2: “그들에게 다음 질문들을 해 보아야 한다. 감각적 즐거움(까-마), 루-빠, 및 관련된 웨다나-와 연관된 앗사-다(assāda), 아-디-나와(ādīnava), 및 닛사라나(nissaraṇa)가 무엇인가? 그들은 루-빠가 ‘마음이 만든’ 것이고 외부 루-빠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 (기분을 들뜨게 하는/즐거운) 웨다나-가 ‘외부 루-빠에 대한 잘못된 인상’에 기반하여 일어나는 것을 알지 못한다.” 

    • * 표식 7.2: 붓다께서는 마음이 어떻게 빤짜 까-마구나(pañca kāmaguṇa)에 기반하여 점점 더 많은 ‘즐거운 웨다나-(앗사-다)를 생성하는지를 설명하십니다. 이는 ‘경험된 앗사-다(감각적 즐거움)는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의 #9에서 논의했습니다. 이 숫따는 거기 단계 1을 건너뛰고 단계 2에 초점을 맞춥니다.

    • * 표식 8.1에서 표식 14.5까지, 붓다께서는 바로 이 생에서 나타나는 감각적 즐거움의 단점(아-디-나와)을 설명하십니다. 표식 15.1에서 표식 15.3까지, 붓다께서는 미래 생에서 나타날 감각적 즐거움의 단점(아-디-나와)를 설명하십니다.

     

    4. 표식 16.1에서, 붓다께서는 감각적 즐거움에서 벗어나(nissaraṇa) 그런 아-디-나와(ādīnava)를 겪지 않는 방법을 설명하십니다. 그 다른 요기(고행 수행자)들은 ‘경험된 앗사-다(감각적 즐거움)는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의 #9에서 논의된 첫 두 단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상요자나와 가띠에 기반하여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단계 1과 단계 2를 영구적으로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 * 표식 18.1에서, 붓다께서는 (마음이 만든) 루-빠와 연관된 앗사-다, 아-디-니와, 및 닛사라나를 보는 한가지 방식을 설명하십니다.

    • *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외부 세계의 어떤 루-빠도 색깔, 맛 등을 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작은 마나-빠(manāpa)가 어떻게 신기루에만 기반하여 눈덩이처럼 불어나 완전한 기쁨(‘기쁨으로 춤추기’)으로 이어지는지 그 전체 과정을 이해할 때, 마음은 그것에 대한 모든 잘못된 견해에서 벗어납니다. 이것은 소따빤나 단계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소따빤나도 여전히 까-마 라가 상요자나(kāma rāga saṁyojana)가 그대로 있으므로, 자동적으로 까-마 산냐-에 들러붙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나-가-미 단계에서 사라집니다.  

     

    그 모두는 ‘내재된 까-마 산냐-’와 함께 시작된다

     

    5.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루-빠는 외부 세계의 해당 루-빠에 대한 ‘꾸며낸’ 또는 ‘과장된/만든’ 버전입니다. 그 ‘신호’, 즉 ‘타고난 느낌’은 모든 감각 경험이 있을 때, 자동으로 마음에 주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까-마 산냐-(kāma saññā)’입니다. 

     

    • * 그리고, 마음은 루-빠뿐만 아니라 생성된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에도 계속 들러붙습니다. 아래 ‘참고 사항 2’를 참조하세요. 이것은 그 자체를 부풀리는 ‘풍선 효과’입니다. 이것이 붓다께서 ‘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즉 ‘간단히 말해, 고통의 근원은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 즉 고통은 (감각 입력을 통해) 빤쭈빠-다-낙칸다가 일어나는 한, 계속된다.’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사성제 ㅡ 아누소따가-미/빠띠소따가-미와 관계’를 참조하세요.

    • * 논의한 바와 같이, 외부 세계의 감각 대상(루-빠)에는 색깔, 맛, 그리고 다른 ‘매력적인 측면’이 없습니다. 배경 자료는 ‘붓다 담마’ 섹션의 새로운 시리즈의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2023년 후반 이후에 ‘new / revised-posts’ 섹션에는 다른 관련된 포스트들이 많이 있습니다.

     

    감각적 즐거움을 갈망하는 것이 왜 ‘아닛짜’인가

     

    6. 위 논의를 통해, 우리는 모든 기쁨이나 강렬한 행복은 전적으로 마음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 내재된 까-마 산냐-에 의해 촉발된 초기의 ‘약한 좋아함’은 실질적인 근거없이 강렬한 기쁨으로 부풀어 오를 수 있습니다. 마음이 만든 색채의 환상이 없다면, 우리는 햇빛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외부 세계에는 색깔이나 맛 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은 무색채의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를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고통으로 가득한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도덕한 행위를 포함하여) 우리의 모든 행위는 ‘참된 가치가 없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 * 그 때문에 (마음에 일어나는 상카-라에 기반한) 그런 행위는 아닛짜 본질을 지닙니다. 즉, 삽베 상카-라 아닛짜-(Sabbe saṅkhārā aniccā)입니다.

     

    산냐-를 통한 앗사-다 발생에 관한 주요 숫따

     

    7.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이들은) 아라한조차도 (뿌툿자나에게) 순식간에 앗사-다 생성을 촉발시키는 마나-빠(manāpa) 단계를 경험합니다. 라-가, 도사, 및 모하의 생성으로 마음이 오염되는 것은 마음에 앗사-다(assāda)가 구축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 * 예를 들어, 잡지에서 반나체 여성을 본 젊은 남성은 성인 영화를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으며, 생각이 그 방향으로 흘러가면 성폭행까지 저지를 수 있습니다. 일련의 발달이 라-가, 도사, 모하에 의해 촉발되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수없이 많습니다.

    • * 그 모든 최종 행위의 ‘기원’(‘mūlapariyāya’)은 ‘거짓된/기만적인 산냐-’입니다. 이것은 ‘물-라빠리야-야 숫따 ㅡ 모든 것의 뿌리’에 설명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가 다소 어렵습니다. 숫따의 마지막 부분에는 설법을 들은 빅쿠들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과학적 연구를 통해 색깔, 맛 등의 지각이 전적으로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인식(산냐-)의 환상 ㅡ 이는 과학적 합의(의견 일치)다’을 참조하세요.

    • * 붓다께서는 ‘Pheṇapiṇḍūpama Sutta (SN 22.95)’에서 산냐-(saññā)를 신기루로 그리고 윈냐-나를 요술사로 묘사하셨습니다. 거기의 영어 번역을 인용하면(올바름), “여름의 마지막 달, 정오에  어른거리는 신기루가 나타난다고 가정해 보라.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보고 숙고하고 그것을 주의깊게 조사할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그들에게 완전히 공허한 속이 빈 것이며 실제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신기루에 어떤 실제적인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입니다.

    • * 따라서, 그 사람은 목이 마르더라도, 물을 발견하기를 바라면서 신기루를 향해 달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동물은 그것이 신기루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따라서 그것을 쫓아가다가 탈진하여 목말라 죽게 됩니다. 

    • * 그러나, 인간도 ‘깜마 산냐-(kāma saññā)’가 신기루라는 것, 즉 모든 외부 루-빠에는 색깔, 맛 등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핵심 사상은 짧은 ‘Assāda Sutta (AN 6.112)’에 간결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앗사-다 숫따 ㅡ 앗사-다 딧티와 아닛짜 산냐-

     

    8. ‘Assāda Sutta (AN 6.112)’에서는 ‘Assāda diṭṭhiyā pahānāya anicca saññā bhāvetabbā’, 즉 ‘세상것이 만족을 가져다준다는 잘못된 견해를 버리려면,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 뿌툿자나는 세상으로부터 감각 입력(즉, 외부 루-빠)이 기쁨과 행복(앗사-다)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견해는 앗사-다 딧티(assāda diṭṭhi)입니다.

    • * 하지만, 앞서 논의했듯이, 마음이 생성하는 루-빠는 그것의 참된 본질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딸기가 빨갛게 보이고 달콤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딸기가 실제로 붉은색이나 단맛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 * 그러므로, 딸기를 먹는 즐거움(또는 가장 비싼 식사조차도)은 환상입니다. 그 환상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는 맛뿐만 아니라, 광경, 소리, 냄새, 및 감촉에도 적용됩니다.

    • * 이것은 깊이 생각할 점입니다. 사람들은 ‘환상적인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기 위해 아꾸살라 깜마를 행합니다. 그 때문에 (마음에 일어나는 상카-라와 함께) 그런 행위는 ‘아닛짜(anicca) 본질’을 지닙니다. 마치 고기 없는 뼈를 즐기려는 개와 같습니다. 개가 느끼는 어떤 만족감은 오직 마음이 만든 것일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붓다께서 ‘감각적 즐거움은 적은 만족감과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주며, 그것들은 모두 그만큼 많은 단점을 가진다’(‘Appassādā kāmā bahudukkhā bahupāyāsā, ādīnavo ettha bhiyyo’ti)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Cūḷadukkhakkhandha Sutta (MN 14)’을 참조하세요.

    • * 많은 숫따에서 ‘마음이 만든 즐거움’에 들러붙는 것이 무익하고 위험하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Dutiyayodhājīva Sutta (AN 5.76)’을 참조하세요.

     

    ‘마나-빠/아마나-빠’와 ‘수카/두카’ 웨다나-

     

    9. 위에서, 우리는 마나-빠(manāpa)가 ‘까-마 산냐-(kāma saññā)’에 의해 촉발되는 경우에만 논의했습니다. 어떤 감각 입력에서 ‘까-마 산냐-’는 뿌툿자나나 아라한에게 ‘싫어함의 기미/흔적’(amanāpa)을 불러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썩은 음식의 맛이 그렇습니다. 뿌툿자나에게는 이것이 강한 ‘두카 웨다나-(dukha vedanā)’로 이어질 수 있지만, 아라한의 마음은 아마나-빠(amanāpa)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또한, 일부 숫따에서는 수카/둑카 웨다나-를 신체에서 일어나는 감각 입력에만 부여합니다. 수카(sukha)와 둑카(dukkha)는 ‘신체 접촉’으로 인한 ‘즐거움과 고통’(예를 들어, 호화로운 침대의 편안함이난 부상)을 의미하며, 아라한도 이것을 느낍니다.  

     

    • * 아라한조차도 ‘왜곡된 산냐-’에서 생성된 ‘마나-빠/아마나-빠’, 즉 ‘좋아함/싫어함’의 감정인 수카/둑카 웨다나-을 경험합니다. ‘Nibbānadhātu Sutta (Iti 44)’을 참조하세요. “Tassa tiṭṭhanteva pañcindriyāni yesaṁ avighātattā manāpāmanāpaṁ (“manāpa/amanāpa") paccanubhoti, sukhadukkhaṁ paṭisaṁvedeti.” 링크 주소에 있는 영어 번역은 적절한데, “그들(아라한들)의 오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감각이 작동하는 한, 그들은 계속해서 유쾌하고 불쾌한 것을 경험하고, 즐거움과 고통을 느낀다.”입니다.

    • * 우리는 ‘경험된 앗사-다(감각적 즐거움)는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 포스트에서 마나-빠(manāpa) 측면에 집중했습니다.

    • * 위의 구절을 좀 자세히 살펴보면 다섯가지 육체 감각을 통한 감각 입력이 어떻게 ‘마음이 만든’ 소마낫사/도마낫사(somanassa/domanassa)를 일으키고, 이것이 다시 다양한 방식으로 깜마를 축적하는 것으로 이어지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산냐-로 인해 유발되는 둑카 웨다나-는 강렬할 수 있다

     

    10. 감각 입력은 순전히 까-마 산냐-에 기반하여 세 가지 유형의 웨다나-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따라서 이는 아라한도 경험합니다). 그것들은 ‘마나-빠/아마나-빠’, ‘수카/둑카’, 또는 중립 웨다나-입니다. 

     

    • * 수카/둑카 웨다나-는 육체를 통해 일어납니다. 호화로운 침대에 누워 있으면 ‘수카 웨다나-’를 느낄 것이고, 부상을 입으면 ‘둑카 웨다나-’를 느낄 것입니다. 이것들은 아라한이나 뿌툿자나가 동일하게 느낍니다. 둑카 웨다나-는 아라한에게도 극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목갈라나 존자가 맞아 죽었을 때, 존자는 분명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 * 마나-빠/아마나-빠 웨다나-는 다른 감각 입력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이 단계에서 단지 좋아함 또는 싫어함의 기미/흔적일 뿐입니다. 이것들은 아라한이나 뿌툿자나 모두가 동일한 식으로 느낍니다. 

    • * 그 모든 상황에서, 그것들은 살아 있는 아라한이 경험하는 유일한 웨다나-입니다. 더욱이, 살아 있는 아라한은 아라한 팔라 사마디나 니로다 사마-빳띠에 들어갈 수 있다면 이러한 것들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참고 사항 1’를 참조하세요.

    • * 반면, 뿌툿자나의 마음은 더 많은 ‘마음이 만든’ 소마낫사/도마낫사 웨다나-를 생성할 것입니다. 뿌툿자나에게는 마나-빠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황홀감’으로, 아마나-빠눈덩이처럼 불어나 ‘격렬한 분노’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처음의 수카 또는 둑카 웨다나-는 더 많은 ‘마음이 만든’ 소마낫사와 도마낫사 웨다나-를 통해 엄청나게 증폭될 수 있습니다.

    • * 게다가, 뿌툿자나는 ‘까-마 산냐-’를 통해 처음에 생성된 중립 웨다나-에도 기반하여 어리석은 행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추후에 논의할 주제입니다. 우선 이해하기 쉬운 다른 유형들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앗사-다 생성을 멈추려면 아닛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11. 알-라-라 깔-라-마와 같은 고대 요기들은 ‘앗사-다’를 제거했다고 생각했지만, 뿌라-나 깜마 단계에는 더 미세한 레벨의 앗사-다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앗사-다의 성장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정신적 족쇄인 ‘상요자나’를 끊음으로써) 앗사-다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 상요자나를 끊는 것은 오직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틸락카나(모두 동일한 개념을 설명함)를 완전히 이해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 *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에 접근할 수 있다면, (비록 아직 ‘까-마 라-가 상요자나’를 깨뜨리지 못했더라도) ‘앗사-다’가 자동으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소따빤나 또는 사까다-가-미)은 사띠빳타-나 부-미에 머무르는 한, 그들의 마음은 ‘앗사-다’를 유발할 수 있는 ‘까-마 산냐-’에서 자유로워집니다.

    • * 더욱이,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동안, 그들은 위빠사나-를 실천하여 까-마 산냐-를 제거(‘까-마 라-가 상요자나를 끊음)할 수 있습니다. 까-마 산냐-를 제거하면, 그들은 다시는 까-만 산냐-를 통해 앗사-다를 생성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나-가-미가 까-마 로까에 재탄생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방법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들은 어떤 ‘까-마 앗사-다’도 생성하지 않습니다. 

     

    압빠 앗사-다는 바후 둑카로 이어진다

     

    12. ‘Dutiyayodhājīva Sutta (AN 5.76)’에서:  ‘붓다께서는 감각적 즐거움은 적은 만족감을 주고 고통과 괴로움을 많이 주며, 그만큼 단점도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appassādā, āvuso, kāmā vuttā bhagavatā bahudukkhā bahupāyāsā, ādīnavo ettha bhiyyo.’라는 구절입니다.  

     

    • * 그 적은 만족감(‘appassādā’, ‘appa assādā’, ‘appa’는 ‘적은’을 의미)의 레벨은 뿌툿자나가 경험하는 확대된 단계(‘기쁨에 겨워 춤추는’)가 아닙니다. 그것은 초기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앗사-다’의 초기 레벨입니다.

    • * 그 ‘압빠 앗사-다(appa assāda)’는 아라한도 경험하는 ‘초기 마나-빠’입니다. 그것은 단지 ‘촉발자’이며, 이는 뿌툿자나에서 ‘높은 레벨의 (마음이 만든) 즐거움’을 유발하여 ‘기쁨에 겨워 춤을 추게’ 합니다.

    • * 따라서, 뿌툿자나는 여러 단계를 통해 앗사-다를 축적하고 ‘나와 깜마’ 단계에서 강화함으로 인해 훨씬 더 높은 레벨의 만족을 얻게 됩니다. 이 높은 레벨의 즐거움으로, 뿌툿자나는 더 많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 아꾸살라 깜마를 행합니다. 이 아꾸살라 깜마가 ‘많은 고통과 괴로움’(‘bahu dukkhā bahu upāyāsā’, ‘bahu’는 ‘많은’을 의미)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 * 뿌툿자나에게, 모든 아-디-나와(ādīnava)는 ‘마음이 만든 즐거움’이 멈출 때에만 드러납니다. 그러나 성자에게 ‘아-디-나와’는 ‘즐거움의 구축 과정’을 계속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 즐거움의 구축 과정은 곧 깜마 축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까-마 라-가 상요자나’를 아직 제거하지 못한 소따빤나에게는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런 깜마의 증가가 미래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지만, 사띠빳타-나를 육성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그들도 까-마 산냐(kāma saññā)에 갇힙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 가지 딧티 상요자나(diṭṭhi saṁyojana)를 제거했기 때문에 그들이 행하는 모든 깜마는 잘못된 견해가 없이 행해집니다. 이로 인해, 모든 아꾸살라 깜마는 약하고 아빠-야-에 재탄생하게 하는 깜마가 아닙니다.   

     

    참고 사항

     

    1. 위 #9에서 인용된 동일한 ‘Nibbānadhātu Sutta (Iti 44)’에서, 표식 4.3의 다음 구절은 ‘Tassa idheva, bhikkhave, sabbavedayitāni anabhinanditāni sīti bhavissanti’, 즉 ‘모든 유형의 웨다나-가 그친다’라고 말합니다. 

     

    • * 그 경험은 모든 루-빠 자-나-(rūpa jhānā)와 아루빠 사마-빳띠(arupa samāpatti)를 육성한 우바또위뭇띠 아라한(Ubhatovimutti Arahant)에게만 해당됩니다. 그들은 일상 생활에서 아라한이 경험하는 마나-빠/아마나-빠(manāpa/amanāpa) 또는 수카/둑카(sukha/dukkha)조차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 * 니로다 사마-빳띠(nirodha samāpatti)에서는 빠리닙바-나(Parinibbāna) 이후와 마찬가지로 찟따의 흐름이 멈춥니다. 그들은 최대 7일 동안 니로다 사마-빳띠에 머물 수 있습니다.

    • *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아라한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완전한 닙바-나’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바르지 않습니다. 위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우바또위뭇띠 아라한은 최대 7일 동안 계속하여 ‘완전한 닙바-나’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 *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니로-다 사마-빳띠, 팔라 사마-빳띠, 자-나, 및 자-나 사마-빳띠’을 참조하세요.

     

    2. ‘Assāda Sutta (SN 22.26)’는 위에서 논의한 핵심 개념들을 요약한 또 다른 숫따입니다.

     

    • * 표식 2.9 ~ 1.11에서, 루-빠에 대한 앗사-다(assāda)가 아닛짜 본질인 이유와, 그것을 앎으로써 루-빠에 대한 갈망을 어떻게 잃을 수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 * 그리고,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 즉 빤쭈빠-다낙칸다 (pancupādānakkhandha) 에 대해서도 동일한 과정이 반복됩니다.

    • * 우리의 로까(세상)은 빤쭈빠-다낙칸다에 들러붙음에 기반하여 생겨났으므로(‘Loka Sutta (SN 12.44)’와 ‘로까와 닙바-나(알로까) ㅡ 완전한 개관’을 참조), ‘전체 세상’은 아닛짜 본질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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