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type":"img","src":"https://cdn.quv.kr/f5120tiws%2Fup%2F5c9ef7f87c581_1920.png","height":80}
  • 붓다 담마
  • 주요 담마 개념
  • 리빙 담마
  • 방 안의 코끼리
  • 담마와 과학
  • 세 단계 실천
  • 빠띳짜 사뭅빠다(연기)
  • 자아가 있는가?
  • 바와나(명상)
  • 아비담마
  • 담마빠다(법구경)
  • 숫따(경) 해석
  • 붓다 담마ㅡ상급
  • 음성법문
  • JBM 법문-녹취
  • 원문 홈
  • {"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Nanum Barun Gothic"]}

     

    사성제 ㅡ 아누소따가-미/빠띠소따가-미와 관계

     

    원문: Sutta Interpretation 섹션의 ‘Four Noble Truths: Connection to Anusotagāmi/Paṭisotagāmi’ 포스트

     

    아누소따가-미(anusotagāmi)는 자동적으로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에 들러붙고 재탄생 과정에 갇힙니다. 이것이 ‘둑카 사무다야(dukkha samudaya)’, 즉 ‘고의 기원’을 설명합니다. 빠띠소따가-미(paṭisotagāmi)는 이를 이해하고 그 과정을 역전시키는 방법도 이해하며, ‘둑카 니로다(dukkha nirodha)’, 즉 ‘고의 그침’을 추구합니다.

     

    2025년 8월 30일 작성

     

    간단히 말해서, ‘빤쭈빠-다-낙칸다는 괴로움이다’

     

    1. 붓다께서는 ‘Dhammacakkappavattana Sutta (SN 56.11)’에서 고(괴로움)에 관한 제1성제를 요약하셨습니다.

     

    “Idam kho pana, bhikkhave, dukkhaṃ ariya saccam: jātipi dukkhā, jarāpi dukkhā, byādhipi dukkho, maraṇampi dukkhāṃ, appiyehi sampayogo dukkho, piyehi vippayogo dukkho,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āṃ—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번역: “빅쿠들이여, 무엇이 고성제인가? 태어나는 것은 고이고, 늙는 것도 고이며, 병드는 것도 고이고, 죽는 것도 고이다. 싫어하는 것과 함께 하는 것도 고이고, 좋아하는 것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것도 고이다. 좋아하는 것/갈망하는 것/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그것이 고이다. 간단히 말해, 고의 기원은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다. 즉, (감각 입력을 통해) 빤쭈빠-다-낙칸다가 일어나는 한, 고는 항상 존재한다.”  

     

    • * 빤쭈빠-다-낙칸다(빤짝칸다에 대한 우빠-다-나, 즉 갈망/원함)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갈망하는 모든 것을 나타냅니다. ‘첫 숫따에 있는 불교의 에센스’의 #2를 참조하세요.

     

    고의 기원 = 세상의 기원 = 빤쭈빠-다-낙칸다

     

    2. ‘Dukkhasamudaya Sutta (SN 35.106)’에서는 고의 기원은 눈 기관/기능(짝쿠)과 외부 루빠에 기반하여 마음이 창조한 ‘마음 루빠’에 의존하여 일어나는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ṇa)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여섯 감각 기관/기능에 기반하여 일어나는 여섯 가지 유형의 윈냐-나 모두에 적용됩니다.

     

    • * 모든 감각 입력은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의 자동 생성으로 이어집니다. 이것들은 루빠 우빠-다-낙칸다 내지 윈냐-나 우빠-다-낙칸다, 즉 빤짜 우빠-다-낙칸다(빤쭈빠-다-낙칸다)를 나타내는 축약된 용어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가 빤짝칸다를 나타낸다고 잘못 믿고 있습니다.

    • * 시리즈의 다음 숫따인 ‘Lokasamudaya Sutta (SN 35.107)’에서는 세상의 기원도 동일하다고 말씀하십니다.

    • * 다시 말해, ‘세상의 기원’은 ‘고의 기원’과 같으며, 둘 다 감각 경험으로 인한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감각 경험에 들러붙을 때 발생하는 깜마 축적으로 인한 것입니다.

    • * (주: 세상의 다양한 부분을 나타내는 깜마 에너지는 먼저 마음 속에서 일어납니다. 그 다음, 적절한 때에 그것들은 그 ‘세상의 부분/영역역’에 재탄생을 가져옵니다.)

    • * 따라서, 감각 경험 자체는 고(괴로움)로 이어지지 않습니다(아라한도 그것들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라-가, 도사, 모하로 감각 경험에 들러붙을 때에만 우리는 재탄생 과정을 지속시키는 깜마 에너지를 생성합니다.  

     

    고의 기원 = 세상의 기원 = 빠띳짜 사뭅빠-다

     

    3. 알다시피, 빠띳짜 사뭅빠-다는 또한 감각 입력에 의해서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Loka Sutta (SN 12.44)’를 참조하세요. 또한 ‘빠띳짜 사뭅빠-다 ㅡ 소개’의 #3을 참조하세요.

     

    • * 아래에서 논의하는 바와 같이,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로)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을 시작하는 계기는 ‘(왜곡된) 산냐-’입니다. 아래 #4를 참조하세요.

    • * 전혀 흥미가 없는 감각 사건에 대해서도, 그 과정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감각 입력이 ‘충분히 유혹적’이지 않으면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 단계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 *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과 빤쭈빠-다-낙칸다의 성장은 같은 과정을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묘사합니다. 두 방식 모두가 마음이 감각 입력을 받았을 때 마음에 일어나는 것을 묘사합니다.

     

    4. 아래 도표는 (까-마 로까에서 ‘보는 사건’에 기반한)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과 빤쭈빠-다-낙칸다의 성장을 모두 보여줍니다.

     

    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Overcoming Kāma Saññā -2

     

    • * 위 도표는 마음이 어떻게 ‘보는 사건’에 들러붙어 자동적으로 빤쭈빠-다-낙칸다를 생성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음을 포함하여 여섯 가지 감각 중의 하나를 통해 일어나는 어떤 감각 사건도 마찬가지며, 그 결과 소따, 가-나, 지와, 까-야, 또는 마노 윈냐-나가 발생합니다.  

    • * 까-마 로까(간단히 하기 위해, 인간을 예로 듬)에 태어난 사람의 마음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까-마 산냐-’와 함께 ‘까-마 다뚜’ 단계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까-마 산냐-’는 여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시각 대상을 위한 루빠 산냐- 내지 기억을 위한 담마 산냐-는 여섯 가지 아야따나(ayatana)에 해당하는 짝쿠(눈)에서 마노(마음)까지입니다.

    • * 6가지 유형의 루빠에 기반한 ‘마음 오염’의 진행은 SN 14에 있는 많은 숫따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Saññānānatta Sutta (SN 14.7)’에서 시각 사건에 대해 간결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Rūpa dhātuṁ, bhikkhave, paṭicca uppajjati rūpa saññā, rūpa saññaṁ paṭicca uppajjati rūpa saṅkappo, rūpa saṅkappaṁ paṭicca uppajjati rūpacchando, rūpacchandaṁ paṭicca uppajjati rūpapariḷāho, rūpapariḷāhaṁ paṭicca uppajjati rūpapariyesanā”라고 말씀하십니다.

    • * 번역: “루-빠 다-뚜는 그 시각 대상에 대한 (왜곡된) 인식(rūpa saññā)를 일으킨다. 그 인식은 그것에 대한 생각(rūpa saṅkappa)을 일으킨다. 생각은 그런 시각 대상에 대한 욕망(rūpacchanda)를  일으킨다. 그 시각 대상에 대한 욕망은 시각 대상에 대한 열정(rūpa pariḷāha)을 일으킵니다. 시각 대상에 대한 열정은 시각 대상에 대한 추구/조사(rūpa pariyesanā)를 일으킨다.” 마지막 것에서, ‘빠리예사나-(pariyesanā)’는 조사를 의미하는데, 무언가에 관심이 생기면, 그것을 최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조사합니다.

    • * 주: 위에서 루-빠 다-뚜는 까-마 로까의 시각 대상(루빠 로까를 위한 루빠 다-뚜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숫따는 삿다 다-뚜 내지 담마 다-뚜에 대해 동일한 구절을 반복하며 까-마 로까에 존재하는 여섯 가지 감각을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 ‘짝쿠 윈냐-나에는 오염이 없는가?’의 #7을 참조하세요. 더 상세한 내용은 ‘인간 마음의 오염 ㅡ 상세한 분석’에 있습니다. 더 명확한 설명을 위해 오래된 포스트를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포럼에서 알려 주세요. 

     

    까-마 로까에서 빠띠소따가-미 ㅡ 까-마 산냐-를 극복

     

    5. ‘빠띠소따가-미 ㅡ 사띠빳타-나 부미와 닙바-나를 향해 감’ 포스트에서, 우리는 ‘빤쭈빠-다-낙칸다’의 성장을 멈추고 마음을 ‘까-마 다-뚜’ 단계를 향하여 이동시키는데 필요한 단계들을 논의했습니다(위 도표를 참조). 그 포스트(#3부터)를 읽어 복습해 보세요.

     

    • * 위 도표에서는 그 빠띠소따가-미 과정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 * 다음 포스트들에서는 빠띠소따가-미가 사띠빳타-나 부미에 도달하는 단계를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부처님의 세계관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를 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 * 특히, 감각적 상호작용의 아주 초기, 즉 ‘까-마 다-뚜’ 단계에서 마음이 아윗자-로 행하도록 강요하는 ‘왜곡된 산냐-’(인간의 경우에 ‘까-마 산냐-’)의 중요한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 도표를 참조하세요.

     

    6. 따라서, 아라한에게도 뿌툿자나와 같은 ‘까-마 산냐-’가 일어납니다. 여기서, ‘까-마’는 ‘성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까-마 로까(우리의 예에서, 인간)와 관련된 산냐-의 유형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아라한이나 뿌툿자나는 아름다운 여성을 그와 같이 보고, 꿀을 달콤하다고 여기며, 장미를 ‘향기로운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각각의 감각 입력에 들러붙음을 유발할 수 있는 ‘산냐-’입니다.

     

    • * 주어진 마음이 그 산냐-에 들러붙을 지의 여부(그리고 들러붙음의 강도)는 끊어지지 않은 상요자나의 수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을 세상에 묶는 10가지 상요자나가 있는데, 아라한에게는 그 모든 것이 끊어졌습니다. 따라서, 아라한의 마음은 어떤 감각 입력에도 들러붙지 않으며, 따라서 ‘분홍색 박스’로 나타낸 ‘까-마 로까’로 이동하지 않습니다.

    • * 반면에, 뿌툿자나의 마음은 열 가지 상요자나를 통해 들러붙고 까-마 로까로 이동합니다.

    • * 또 다른 요점은 아나-가-미 단계 아래의 누구에게나 까-마 로까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각 사건에 대해 단계 1이 발생한다는것입니다.  그 단계는 오직 끊어지지 않은 상요자나에만 의존합니다. 그러나, 유혹적이지 않은 사건들은 단계 2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7. 위 도표는 까-마 로까에 있는 뿌툿자나의 마음이 어떻게 항상 오른쪽으로 움직여 사띠빳타-나 부미와 닙바-나에서 멀어지는지를 설명합니다.

     

     

    전체 세상에 대한 전체 그림

     

    8. 다음 도표는 ‘전체 세계’로 일반화하도록 루빠 로까와 아루빠 로까를 포함합니다. 아래에서 논의하는 바와 같이, 이 도표에는 제1성제도 묘사되어 있습니다.

     

    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Distorted Saññā, Loka, and Nibbāna – 2

     

    • * 위 도표는 까-마 로까, 루빠 로까, 및 아루빠 로까가 있는 전체 그림을 나타냅니다.

    • * 인간이 까-마 로까에서 까-마 산냐-에 들러붙는 것처럼, (아나리야) 루빠 로까 브라흐마는 ‘자-나 산냐-’에 들러붙고 (아나리야) 아루빠 로까 브라흐마는 ‘아루빠 사마-빳띠 산냐-’에 들러붙을 것입니다. 물론, 루빠 로까 자-나 또는 아루빠 로까 사마-빳띠에 있는 아라한 단계 아래의 인간도 그 해당하는 ‘왜곡된 산냐-’에 들러붙습니다. 아라한은 열 가지 상요자나를 모두 제거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어떤 ‘왜곡된 산냐-’에도 들러붙지 않습니다.

    • * 까-마 로까에 있는 인간이 빠띠소따가-미가 되어 빤쭈빠-다-낙칸다의 성장을 역전시켜 까-마 산냐-를 극복하고 사띠빳타-나 부미에 넘어갈 수 있는 것처럼, 루빠 로까 브라흐마(또는 자-나에 있는 인간 요기)는 빠띠소따가-미가 되어 빤쭈빠-다-낙칸다의 성장을 역전시켜 루빠 (자-나) 산냐-를 극복하고 사띠빳타-나 부미로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 * 마찬가지로, 아루빠 로까 브라흐마(또는 아루빠 사마-빳띠에 있는 인간 요기)는 빠띠소따가-미가 되어 빤쭈빠-다-낙칸다의 성장을 역전시켜 아루빠 (사마-빳띠) 산냐-를 극복하고 사띠빳타-나 부미로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 * 동일한 사띠빳타-나 부미는 모두에서 공통적이며, 까-마, 루빠, 아루빠 로까로부터 접근할 수 있습니다. 사띠빳타-나 부미를 통해서만 막가 팔라를 얻을 수 있습니다.

    • * 우리는 위 도표를 ‘로까와 닙바-나(알로까) ㅡ 완전한 개관’에서 논의했습니다.  

     

    사띠빳타-나 부미에는 자-나/사마-빳띠에서 접근하기가 더 쉽다

     

    9. ‘나와 깜마’ 단계는 루빠와 아루빠 로까에서는 대부분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몸과 말을 통해 범하는 그런 아꾸살라가 거기에서는 실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브라흐마는 조밀한 몸이 없고, 도둑질, 거짓말 등을 하려는 마음성향도 그 영역에서는 일시적으로 차단됩니다).  

     

    • * 따라서, 사띠빳타-나 부미에는 루빠 로까나 아루빠 로까에서 접근하기가 더 쉽습니다. ‘Jhāna Sutta (AN 9.36)’에서는 어떤 자-나 상태에서도 막가 팔라(도과)에 도달할 수 있다고 명확히 합니다. 즉, 원칙적으로 자-나를 육성한 자가 빠띠소따가-미가 되기가 더 쉽습니다.

    • * 하지만, 자-나를 성취한 많은 사람들은 자-나 상태의 아닛짜 본질을 인식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자-나를 경험하는 것은 어떤 감각적 즐거움보다 훨씬 더 좋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자-나를 닙바-나로 잘못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곧 있을 포스트에서 다루겠습니다.

    • * 한 가지 핵심 요점은 막가 팔라(도과)를 얻는데 자-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띠삐따까(삼장)에는 수많은 예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앙굴리말라, 야사 꿀라뿟따, 그리고 알-라와까의 예와 같은 것입니다.

    • * 많은 숫따들은 모든 자-나와 사마-빳띠를 순차적으로 거쳐 나아가서 가장 높은 단계로부터 아라한과에 이르는 방법을 설명하는데, 그들은 또한 많은 신통력을 지닙니다. 예를 들어, ‘Subha Sutta (DN 10)’를 참조하세요. 그런 아라한들은 우바또위뭇띠 아라한(Ubhatovimutti Arahant)입니다. 자-나있는 또는 자-나없는 아라한들은 ‘사마-디, 자-나, 및 삼마- 사마-디’에서 논의되었습니다.

     

    요약

     

    10. 유정체를 재탄생 과정에 갇히게 하는 중요한 요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 * 세상과 관련된 ‘로끼야 산냐-’ 또는 ‘왜곡된 산냐-’(까-마 로까의 까-마 산냐-, 루빠 로까의 루빠 산냐-, 아루빠 로까의 아루빠 사마-빳띠 산냐-)는 마음을 자동적으로 각 로까 또는 영역에 들러붙게 합니다.

    • * 이것이 아윗자-가 어떤 감각 입력에 의해서도 자동적으로 촉발되고, 위 #4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까-마 산냐-에 들러붙는 마음으로 빤쭈빠-다-낙칸다 과정을 시작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 즉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은 그 많은 과정이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 단계로 나아가 ‘새로운 강한 깜마 에너지’를 축적하지 않더라도 필연적으로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로 시작합니다.)

    • * 따라서, ‘왜곡된 산냐-’의 역할은 모든 감각 입력에 대한 아윗자-를 유발하는데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왜곡된 산냐-(산자-나-띠)에 속음 ㅡ 들러붙음(땅하-)의 기원’, ‘산냐-니다-나- 히 빠빤짜 상카- ㅡ 부도덕한 생각은 '왜곡된 산냐-'에 기반한다’, 및 ‘물-라빠리야-야 숫따 ㅡ 모든 것의 뿌리’를 참조하세요.

     

    11. 따라서, 마음이 부처님의 더 깊은 가르침을 이해하고 더 높은 막가 팔라(도과), 특히 아나-가-미와 아라한트 단계를 성취하려면 그 ‘왜곡된 산냐-’를 극복하는 것(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가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 * 위의 세부 사항을 알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은 소따빤나 팔라 순간에 도달하는 때에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갑니다. 이것은 긴 법문을 듣거나 깊은 명상(통찰 명상, 즉 위빠사나-)에 참여할 때 일어날 수 있습니다.

    • * 소따빤나 팔라 순간은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의 무의미함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위 도표를 보는 것은 그 깨달음을 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 * 하지만, 더 높은 막가 팔라(도과), 특히 아-나가-미와 아라한뜨 단계에 도달하려면, 사띠빳타-나 부미에서 더 오랜 시간 동안 [머물기 위해] 깊은 명상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까-마 라-가, 루빠 라-가, 및 아루빠 라-가를 제거하려면 까-마 산냐-, 루빠 산냐-(자-나 산냐-), 및 아루빠 산냐-(아루빠 사마-빳띠와 관련된 산냐-)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산냐-들을 극복하기가 어렵습니다!

    • * 사띠빳타-나 바와나(Satipaṭṭhāna Bhavana)는 소따빤나 아누가-미, 소따빤나, 또는 사까다-가-미가 아나-가-미와 아라한뜨 단계를 얻도록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띠빳타-나에 대한 세부 사항을 아는 것은 낮은 막가 팔라(도과)를 얻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Nanum Barun Gothic"]}
    {"google":["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