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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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띠빳타-나 숫따 ㅡ 오해와 잘못된 번역

     

    원문: Buddha Dhamma ㅡ Systematic 섹션의 ‘Satipaṭṭhāna Sutta – Misconceptions and Wrong Translations’ 포스트 

     

    사띠빳타-나 숫따는 소따-빤나가 까-예 까-야-누빳사나-(kāye kāyānupassanā)를 통해 더 높은 막가 팔라에 도달하는 로드맵을 묘사합니다. 그것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게 도울 수 없습니다. 대신에,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려면, (호흡명상이 아닌) 아-나-빠-나사띠의 첫 단계인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가 필요합니다.    

     

    2026년 10월 17일 작성; 2026년 10월 18일 개정

     

    아-나-빠-나사띠는 삿띠빳타-나보다 먼저 온다

     

    1. 사띠빳타-나 숫따는 두 개의 주된 숫따인 마하-사띠빳타-나 숫따(DN 22)와 사띠빳타-나 숫따(MN 10)에서 논의됩니다.

     

    • * 그러나, ‘Satipaṭṭhāna Sutta (MN 10)’의 본문은 링크한 부분(MN 10에서 표식 44.3과 DN 22에서 표식 17.3)까지만 ‘Mahāsatipaṭṭhāna Sutta (DN 22)’의 본문과 동일합니다. MN 10에는 나머지 구절들이 빠져 있어 불완전합니다.

    • * 그러므로, 마하-사띠빳타-나 숫따(DN 22)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 * 또 다른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빠알리 버전에는 링크된 ‘Mahāsatipaṭṭhāna Sutta (DN 22)’에서 볼 수 있듯이, 표식 2.1에 ‘1. Kāyānupassanā’와 ‘1.1. Kāyānupassanāānāpānapabba’라는 제목이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빠알리 버전(Buddha Jayanthi Tipitaka의 Digha Nikaya)에는 이러한 제목이 없습니다. ‘1.1. Kāyānupassanāānāpānapabba’ 대신에 ‘Ānāpāna pabba’라는 부제만 있는데, 숫따 센트럴에서는 부제에도 ‘Kāyānupassanā’를 추가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와 까-예 까-야누빳사나(kāye kāyānupassanā)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 그 부분을 ‘아-나-빠-나 빱바(Ānāpāna pabba)’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래에서 논의하는 바와 같이, 빤쭈빠-다-낙칸다 까-야의 초반부(즉, ‘까-예 까-야’)에만 해당하는 까-예 까-야-누빳사나-(kāye kāyānupassanā)에서 일어나는 것과 동일한 ‘아-나 아-빠-나(āna āpāna)’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아-나-빠-나 ㅡ 붓다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세간 견해를 버림’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부처님의 세계관을 받아들이고(‘āna’) 세간의 세계관을 버림(‘āpāna’)으로써 닙바-나의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합니다.

     

    2. 요점은 마하-사띠빳타-나 숫따( Mahāsatipaṭṭhāna Sutta )는 까-야-누빳사나-( kāyānupassanā )를 논의하지 않고, 단지 까-예 까-야-누빳사나-( kāye kāyānupassanā )만을 논의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아-나-빠-나사띠 숫따( Ānāpānasati Sutta )는 첫 번째 단계의 까-야-누빳사나-( kāyānupassanā )를 논의합니다.

     

    • * 아-나-빠-나사띠 숫따는 또한 두 번째 단계의 까-예 까-야-누빳사나-에 대해서도 논의합니다. ‘아-나-빠-나사띠 숫따 ㅡ 완전한 개요’를 참조하세요.

    • * 이 포스트는 사띠빳타-나(및 아-나-빠-나사띠)와 관련된 핵심 개념만을 요약한 것입니다.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제공된 링크를 참조하세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포스트 몇 개를 가볍게 읽는다고 해서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세요.

    • * 뿌툿자나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나-빠-나사띠의) 까-야-누빳사나-를  행해야 합니다.

    • * 소따-빤나만이 까-예 까-야누빳사나-(아-나-빠-나사띠의 두 번째 단계이며, 사띠빳타-나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음)를 행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나-빠-나사띠 숫따(MN 118)은 ‘아-나-빠-나사띠 숫따 ㅡ 완전한 개요’에서 가리켜 보인 바와 같이, 뿌툿자나가 아라한 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완전한 청사진을 제공합니다. 주요 내용은 아래에서 논의됩니다.

     

    사띠빳타-나 숫따에 대한 주된 오해

     

    3(2). 주된 오해는 ‘Mahāsatipaṭṭhāna Sutta (DN 22)’의 다음 구절, 즉 “Ekāyano ayaṁ, bhikkhave, maggo sattānaṁ visuddhiyā, sokaparidevānaṁ samatikkamāya dukkhadomanassānaṁ atthaṅgamāya ñāyassa adhigamāya nibbānassa sacchikiriyāya, yadidaṁ cattāro satipaṭṭhān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 * 번역: “유정체의 해탈(닙바-나)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이며, 그것은 사띠빳타-나다.” 

    • * 그것은 소따-빤나에만 해당되는 것이고 뿌툿자나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 * 뿌툿자나는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기 위해 먼저 아-나-빠-나사띠를 육성해야 합니다. 그것은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빤쭈빠-다-낙칸다 까-야에 들러붙는 것의 아닛짜(결실없음) 본질을 보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 단계는 ‘Ānāpānasati Sutta (MN 118)’에서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아-나-빠-나사띠의 첫 단계 ㅡ '까-야'의 아닛짜 본질을 봄’을 참조하세요.

    • * 이에 대해서는 ‘소따-빤나는 감각적 즐거움을 삼가야 하는가?’와 ‘37가지 깨달음의 요소 ㅡ 아라한과에 도달하기 위한 명상’에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주요 내용을 아래에 요약하겠습니다.

    • * 제가 링크로 제공한 숫따 센트럴의 번역은 대부분 잘못되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까-야-누빳사나-와 까-예 까-야-누빳사나-에 대한 혼동 외에도, 제목에서도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를 호흡 명상(breath meditation)으로 번역한 것도 잘못되었습니다! 

     

    ‘까-야-누빳사나-’와 ‘까-예 까-야-누빳사나-’

     

    4(3). 혼동은 대부분의 영어 번역자들이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와 ‘까-예 까-야-누빳사나-(kāye kāyānupassanā)’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제가 위 #1에서 지적한 바와 같습니다.

     

    • * 마하-사띠빳타-나 숫따(DN 22)에서는 ‘까-예 까-야-누빳사나-’만 논의하고 ‘까-야-누빳사나-’를 논의하지 않습니다.

    • * 이는 ‘Mahāsatipaṭṭhāna Sutta (DN 22)’ 본문에 아주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위 #1에서 논의한 그 잘못된 제목들 바로 다음에, 이 숫따는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라는 구절로 첫 부분을 시작합니다.

    • * 따라서, 마하-사띠빳타-나 숫따(DN 22)는 ‘까-야-누빳사나-’를 논의하지 않고 ‘까-예 까-야-누빳사나-’만 논의합니다.

    • * 까-야-누빳사나-를 육성하여 소따-빤나 단계에 이른 후에야 까-예 까-야-누빳사나- 수행을 할 수 있으며, 이는 아-나-빠-나사띠 숫따에서 논의됩니다.

    • * 아-나-빠-나사띠 숫따를 논의하기 전에, 우리는 ‘까-야-누빳사나-( kāyānupassanā )’에서 ‘까-야(kāya)’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 후에, ‘까-예 까-야(kāye kāya)’가 무엇인지 논의하겠습니다.

     

    ‘까-야-누빳사나-’에서 ‘까-야’는 무엇인가?

     

    5(4). ‘까-야(kāya)’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i) ‘까–야’는 때때로 ‘육체’를 의미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육체에 대해서는 ‘사리라(sarira)’라는 낱말이 사용됩니다. (ii)  ‘까-야(kāya)’는 다른 의미로 다섯가지 우빠-다-낙칸다, 즉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의 집합을 나타냅니다. ‘빤쭈빠-다-낙칸다’는 ‘루-빠 우빠-다-낙칸다’부터 ‘윈냐-나 우빠-다-낙칸다’까지입니다. 후자(빤쭈빠-다-낙칸다)는 대부분의 경우, 특히 사띠빳타-나와 아-나-빠-나사띠에서 ‘까-야(kāya)’의 의미입니다. ‘까-야는 대부분의 숫따에서 빤쭈빠-다-낙칸다 까-야다’도 참조하세요.

     

    • * ‘Sakkāya Sutta (SN 22.105)’에서는 “Katamo ca, bhikkhave, sakkāyo? Pañcupādānakkhandhātissa vacanīyaṁ.”라고 언급됩니다. 번역: “삭까-야는 무엇인가? 그것은 빤쭈빠-다-낙칸다를 의미한다.”

    • * 표식 1.7에서는 빤쭈빠-다-낙칸다( pañcupādānakkhandha )가 다섯가지 실재의 무더기, 즉 루-뿌빠-다-낙칸다( rūpupādānakkhandha ), 웨다누빠-다-낙칸다( vedanupādānakkhandha ), 산뉴빠-다-낙칸다( saññupādānakkhandha ), 상카-루빠-다-낙칸다( saṅkhārupādānakkhandha ), 윈냐-누빠-다낙칸다( viññāṇupādānakkhandha )를 지칭함을 명확히 합니다. (주: 빠알리어에서, 단수 낱말은 ‘o’로 끝나므로 rūpupādānakkhandha는 rūpupādānakkhandho로 쓰여집니다.) 

    • * 위 링크의 영어 번역에서는 ‘sakkāya’를 ‘substantial reality’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substantial reality’을 무슨 뜻으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들은 알지도 못할 것입니다!

    • * ‘삭까-야(sakkāya)’(sath kāya)에서, ‘sath’는 ‘좋은’ 또는 ‘결실있는’을 의미합니다. 같은 식으로, ‘sappurisa’는 ‘sath purisa’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purisa’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물론, ‘까-야(kāya)’는 빤쭈빠-다-낙칸다( pañcupādānakkhandha )를 의미합니다.

    • * 이제, 삭까-야(sakkāya)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i)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 (잘못된 견해), (ii) 삭까-야 산냐-(sakkāya saññā) (잘못된 인식)입니다. ‘삭까-야 산냐-(sakkāya saññā)’라는 구절은 숫따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올바른 개념을 전달합니다.

     

    삭까-야 = 삭까-야 딧티 + 삭까-야 산냐-

     

    6(5). 그러므로, ‘삭까-야(sakkāya)’는 ‘빤쭈빠-다-낙칸다 까-야(pañcupādānakkhandha kāya)’가 유익하고 현실(실제) 세상을 반영한다는 보통 사람(뿌툿자나)의 잘못된 견해(딧티)이자 잘못된 인식(‘왜곡된’ 또는 ‘위빠리따’ 산냐-)입니다.  

     

     

    둑카 삿짜 = 빤쭈빠-다-낙칸다

     

    7(6). ‘Khandha Sutta (SN 56.13)’는 “Katamañca, bhikkhave, dukkhaṁ ariyasaccaṁ? ‘Pañcupādānakkhandhā’ tissa vacanīyaṁ, seyyathidaṁ—rūpupādānakkhandho …pe… viññāṇupādānakkhandho.”라고 말합니다.

     

    • * 번역: “빅쿠들이여, 첫 번째 성스런 진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다.”

    • * 위 #4에서, 우리는 바로 ‘빤쭈빠-다-낙칸다-’가 삭까-야(sakkāya)임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삭까-야 딧티는 ‘삭까-야(빤쭈빠-다-낙칸다)가 좋다는 잘못된 견해’임을 의미합니다.

    • * 이는 고통의 일어남이 빤쭈빠-다-낙칸다의 일어남과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붓다께서 설하신 맨 처음 숫따에서도 강조됩니다. ‘첫 숫따에 있는 불교의 에센스’의 #8을 참조하세요.

    • * ‘빤쭈빠-다-낙칸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는 루빠 우빠-다-낙칸다(rupa upādānakkhandha)부터 윈냐-나 우빠-다-낙칸다(viññāna upādānakkhandha)에 이르는 다섯 가지 무더기를 의미하며, 각각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로 축약됩니다.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 ㅡ 대부분 오해임’를 참조하세요.

     

    왜 ‘빤쭈빠-다-낙칸다 = 고통’인가?

     

    8(7). 빤쭈빠-다-낙칸다 과정의 시작은 어떤 감각 입력으로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이 시작되는 것과 동일합니다.

     

    • * 이것이 (첫 번째 성스런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뿌툿자나에게 모든 감각 입력이 어떻게 빤쭈빠-다-낙칸다 과정을 촉발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입니다.

    • * 까-야-누빳사나는 아누빳사나-(anupassanā)에 참여하여 ‘까-야’ 또는 ‘빤쭈빠-다-낙칸다 까-야’을 일으키는 정신적 과정을 명확히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뿌툿자나는 소따-빤다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까-야누빳사나-(아-나빠-나사띠의 첫 번째 단계와 동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 * 다시 말해, 그런 고통이 일어나는 것을 멈추려면 빤쭈빠-다-낙칸다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감각 입력에서든 빤쭈빠-다-낙칸다 과정은 오직 ‘왜곡된 산냐-’에 의해 아윗자-가 유발되기 때문에 시작됩니다. 이것이 ‘이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 * ‘왜곡된 또는 위빠리따 산냐-’라는 개념은 부처님 가르침의 더 깊은 측면이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붓다 담마 ㅡ 체계화’ 섹션을 참조하세요.

     

    까-야누빳사나-는 아-나-빠나사띠 숫따에서 논의된다

     

    9(8). 까-야-누빳사나-는 아꾸살라 깜마의 축적을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제거하는 목표로 ‘까-야 또는 빤쭈빠-다-낙칸다 까-야의 기원을 숙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Ānāpānassati Sutta (MN 118)’에 있는 핵심 구절인 “sabbakāya paṭisaṁvedī assasissāmī’ ti sikkhati, ‘sabbakāya paṭisaṁvedī passasissāmī’ ti sikkhati”은 ‘삽바 까-야(sabba kāya)’ 또는 ‘전체 빤쭈빠-다-낙칸다’를 숙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입니다.

    • * 우리의 감각 경험이 실재라는 잘못된 견해와 인식 때문에 빤쭈빠-다-낙칸다 까-야(pañcupādānakkhandha kāya)가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 * 첫째, 그 잘못된 견해는 ‘아-나-빠-나사띠의 첫 단계에서 까-야-누빳사나-(그리고 그와 관련된 다른 세 가지 요소인 웨다나-누빳사나-, 찟따-누빳사나-, 및 담마-누빳사나-)를 통해 제거됩니다. 

    • * 따라서, ‘까-야-누빳사나-’는 빤쭈빠-다-낙칸다의 발생의 근본 원인이 ‘왜곡된 산냐’, 즉 감각 경험이 실재한다는 우리의 타고난 인식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모든 감각 경험이 환상이라는 올바른 견해(삼마- 딧티)에 도달함으로써(즉, 삭까-야 딧티를 제거함으로써) 소따-빤나 단계에 이릅니다.

    • * 더 높은 막가 팔라에 도달하려면 ‘까-예 까-야(kāye kāya)’를 이해해야 하며, 그것이 까-예 까-야-누빳사나(kāye kāyānupassanā)입니다.

     

    ‘까-예 까-야’는 무엇인가?

     

    10(9). #1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Mahāsatipaṭṭhāna Sutta (DN 22)’는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구절로 시작됩니다. 따라서, 마하-사띠빳타-나 숫따는 ‘까-야-누빳사나’가 아니라 ‘까-예 까-야-누빳사나’를 논의합니다.

     

    • * 깜마 생성 과정이 두 단계, 즉 ‘뿌라-나 깜마’(즉, ‘초기 깜마’) 생성과 이어지는 ‘나와 깜마’(즉, ‘새로운 강력한 깜마’) 생성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운 후에만 ‘까-예 까-야-누빳사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 그것을 간략하게 논의해 보겠습니다.

     

    빤쭈빠-다-낙칸다에서 뿌라-나 깜마와 나와 깜마

     

    11(10). 깜마(kamma)란 무엇일까요? ‘깜마(kamma)’는 쩨따나-(cetanā), 더 구체적으로는 산쩨따나-(sañcetanā)(오염된 의도)를 의미합니다. 산쩨따나-(sañcetanā)는 상카-라(saṅkhāra)에서 생성됩니다.  

     

    • * 이는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에서 각 무더기의 역할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첫째, ‘마음이 만든 루빠’가 ‘위빠리따 산냐-’로 인해 마음에 나타나는데, 이것이 루빠 또는 루빠 우빠-다-낙칸다입니다. 이것은 웨다나-를 생성하고, 마음은 여기에 들러붙습니다.

    • * 산냐-와 웨다나-에 반응하여, 상카-라가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이후, 더 강한 상카-라가 ‘나와 깜마’ 단계에서 의식적으로 일어납니다. 따라서, 그것이 고통으로 이어지는 (라-가, 도사, 아윗자-를 가진) 깜마의 생성을 설명하는 ‘상카-라 생성’입니다. (주: 이것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로 시작하는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과 동일합니다).

    • * 따라서, ‘까-예 까-야-누빳사나-(kāye kāyānupassanā)’는 다양한 유형의 상카-라(‘뿌라-나 깜마’ 단계의 상깝빠와 사라 상깝빠, 그리고 ‘나와 깜마’ 단계의 더 강한 상카-라)의 시간적 순서와 근원 원인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토대, 즉 ‘깜마 생성 과정’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 즉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합니다. 

     

    사띠빳타-나에서 까-예 까-야-누빳사나-는 잘못된 인식을 극복한다

     

    12(11). 삼마- 딧티에 도달한 소따-빤나는 더 높은 막가 팔라를 얻기 위해 성스런 팔정도를 육성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까-예 까-야-누빳사나-로) 사띠빳타-나를 육성해야 하는데,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깨지지 않는 믿음(삿다-)이 세워진 소따-빤나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리야, 즉 성자의 빤짜 인드리야(pañca indriya)의 삿다(sadhha)입니다. 저는 이전 포스트 ‘37가지 깨달음의 요소 ㅡ 아라한과에 도달하기 위한 명상’에서 이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 * 그 삿다 인드리야(믿음 기능)를 통해, 소따-빤나는 또한 ‘깨지지 않는 실라’, 즉 성자의 ‘아리야깐-따 실라(ariyakānta sila)’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소따-빤나가 ‘아빠-야가-미 행위’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입니다.

    • * 그러나, 소따-빤나는 여전히 열 가지 아꾸살라 깜마 중의 아홉 가지에 연루될 수 있습니다. 소따-빤나들은 열 가지 아꾸살라 깜마 중에서 오직 하나, 즉 밋차 딧티, 또는 감각 경험에 대한 잘못된 견해만 완전히 극복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나머지 아홉 가지 모두의 강도가 약해져서 아빠-야가-미 강도를 잃게 되는데, 이에 대하서는 아래에서 논의합니다. 또한 ‘소-따빤나가 제거한 유일한 아꾸살라는 무엇인가?’를 참조하세요.   

     

    13(12). 이제, 소따-빤나는 모든 감각 입력과 함께 오는 ‘왜곡된 산냐-’에 들러붙는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 성스런 길을 육성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마하사띠빳타-나 숫따(DN 22)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까-예 까-야-누빳사-와, 관련된 다른 세 가지, 즉 ‘웨다나-수 웨다나-누빳사나-’, ‘찟떼 찟따-누빳사나-’, 및 ‘담메 담마-누빳사나-를 육성하는 것입니다. 이는 짯따로 사띠빳타-나(cattaro satipaṭṭhāna)를 육성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는 모두 ‘까-예 까-야’, 즉 ‘빤쭈빠-다-낙칸다의 초기(뿌라-나) 단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 * 그 과정의 끝에, 소따-빤나는 모든 유형의 ‘왜곡된 산냐’에서 벗어난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 바로 그때 비로소 참된 위빳사나-, 즉 ‘통찰 명상’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 * 사띠빳타-나 부-미에서는 ‘왜곡된 산냐-’에서 벗어났으므로(속지 않음), 마음에 아윗자-가 유발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동안에는 라-가, 도사, 모하를 동반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는 [아꾸살라 물라 또는 세간 꾸살라 물라의]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 또는 빤짜 우빠-다-낙칸다 과정이 시작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 * ‘왜곡된 산냐-’라는 개념은 부처님 가르침의 더 깊은 측면이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붓다 담마 ㅡ 체계화’ 섹션을 참조하세요.   

     

    상요자나(재탄생 과정의 족쇄)

     

    14(13). 뿌툿자나의 마음은 열가지 상요자나(재탄생 과정에 족쇄)로 재탄생 과정에 묶여 있습니다.

     

    • * 처음 세 가지 상요자나는 감각 경험에 대한 잘못된 견해, 즉 감각 경험이 [객관적으로] 실재한다는 견해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아-나-빠-나사띠의 첫 번째 단계에서 까-야-누빳사나-(그리고 관련된 다른 세 가지, 즉 ‘웨다나-누빳사나-’, ‘찟따-누빳사나-’, 및 ‘담마-누빳사나-)를 통해 제거됩니다.

    • * 까-마 로까의 영역과 관련된 두 가지 상요자나가 있는데, 까-마 라-가와 빠띠가 상요자나입니다.  루빠 로까와 아루빠 로까의 영역과 관련된 ‘바와 상요자나’라는 두 가지가 더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왜곡된 산냐-’로부터 일어나며, 그것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을 때만 가능한 위빳사나- 수행을 해야 합니다. 사띠빳타-나 부-미에 도달하려면 사띠빳타-나를 육성해야 합니다.

    • * 일단 위빳사나-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즉, 사띠빳타-나 부-미에 도달한 후), 소따-빤나는 삿따 봇장가를 육성하여 네 가지 상요자나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 * 삿따 봇장가를 육성함으로써, 아윗자-와 관련된 마지막 세 가지 상요자나(마-나, 웃닷짜, 아윗자-) 또한 제거됩니다. 그 시점에서, 아라한이 될 수 있습니다.     

     

    15(14). 열 가지 상요자나가 모두 제거된 아라한에게는 빤쭈빠-다-낙칸다 까-야(pañcupādānakkhandha kāya)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즉, 아라한에게는 빤쭈빠-다낙칸다(또는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 * 아라한과(재탄생 과정에서 완전한 분리)는 마음이 어떤 감각 입력에도 들러붙지 않을 때 달성됩니다.

    • * 소따-빤나는 세 가지 딧티 상요자나만 제거했으므로(그리고, 모든 영역과 관련된 ‘왜곡된 산냐-’를 극복하지 못했으므로), 소따-빤나의 마음은 어떤 감각 입력에 들러붙습니다.

    • * 그러나, 잘못된 견해(세 가지 딧티 상요자나)를 제거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효과를 가져옵니다. 이는 소따-빤나에 의해 행해지는 모든 아꾸살라 깜마의 강도를 크게 줄이며, 이제 소따-빤나는 아빠-야에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빠-야가-미 깜마’를 행할 수 없게 됩니다.

    • *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소따-빤나가 세상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rājā cakkavattī)나 어떤 영역의 어떤 (아나리야) 데와 또는 브라흐마보다 더 낫다고 가르치신 이유입니다. ‘Cakkavattirāja Sutta (SN 55.1)’로 시작하는 일련의 숫따를 읽어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따-빤나 단계의 중요성

     

    16(15). 위 논의로부터,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것의 중요성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적어도 처음 세 가지 딧티 상요자나가 제거될 때까지는, 즉 소따-빤나가 되기 전까지는 미래에 아빠-야에 재탄생하는 것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 * 재탄생 과정에서 고통의 대부분은 네 가지 가장 낮은 영역, 즉 아빠-야에 있는 중에 겪습니다. 소따-빤나는 결코 아빠-야에 재탄생하지 않습니다.

    • * ‘Nakhasikhā Sutta (sn 56.51)’에서, 붓다께서는 빅쿠들에게 “내 손톱에 묻은 약간의 흙이 많은가, 아니면 이 거대한 지구의 흙이 많은가?”라고 물으셨습니다. 물론, 손톱에 묻은 약간의 흙은 [지구의 흙에 비하면] 완전히 무시될 수 있습니다. 

    • * 그리고, 표식 1.6에서, 붓다께서는 “동일한 식으로, 견해를 완성한 성스런 제자(즉, 소따-빤나)에게 남겨진 고통은 극히 적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 ㅡ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세요

     

    17(16). 손가락 끝에 묻은 적은 양의 흙을 생각해 보세요. 그것이 소따-빤나에게 남아 있는 고통과 같습니다. 이제 지구 전체의 흙을 상상해 보세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지요. 그것이 뿌툿자나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까지 겪어야 할 고통입니다. 이 비유가 얼마나 놀라운지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 * 그러므로 소따-빤나가 미래 고통의 99% 이상을 제거했다고 말하는 것은 과소평가입니다! 남은 고통은 정말로 무시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 * 단지 그 숫따뿐만 아니라, SN 56.51부터 SN 56.60까지 이어지는 열 개의 숫따 전체가 뿌툿자나에 비해 소따-빤나에게 남겨진 고통이 극미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양한 비유를 제시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기 어려워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인데, 대부분의 고통은 아빠-야에 있을 때 겪기 때문입니다. 아빠-야에 재탄생이 일어나면, 수십억년 후에 다음 마하- 깝빠(mahā kappa)가 시작될 때까지 선처에 다시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불교와 진화 ㅡ 악간냐 숫따(DN 27)’을 참조하세요.

    • * 붓다께서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이 비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소따-빤나는 미래 고통의 99% 이상을 제거했다

     

    18(17).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완전히 제거해야 할 유일한 아꾸살라는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인데, 이는 딧티에 관한 첫 세 가지 상요자나인 삭까-야 딧티, 위찌낏차-, 실랍바따 빠라-마-사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미래의 모든 고통의 99% 이상을 제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믿기 어려운 주장처럼 들립니다.

     

    • * 문제는 ‘밋차- 딧티 아꾸살라(그리고 삭까-야 딧티 상요자나)를 없애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모든 감각 경험은 ‘마음이 만든 신기루’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전 알려지지 않았던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 * 그러나, 그때까지는 감각 경험이 진짜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의심을 가지는 이유는 감각 경험이 너무나 실재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따빤나 단계에서 깨지는 위찌낏차- 상요자나(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의심)입니다.

    • * 위찌낏차- 상요자나(vicikicchā saṁyojana)를 없애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붓다 담마 ㅡ 체계화’ 섹션에서 ‘왜곡된 산냐-’에 대한 포스트에 달린 반응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감각 경험이 실재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 저에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까-마 산냐-(kāma saññā)는 그렇게 강력합니다.       

     

    감각 경험이 신기루라는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19(18). 이것이 붓다께서 붓다후드의 깨달음을 얻으시고 세상에 대해 새롭게 발견하신 진리를 가르칠지 말지를 고민하셨든 이유입니다. 감각 경험이 신기루라는 것을 인간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임을 깨달으셨기 때문입니다. ‘Brahmāyācana Sutta (SN 6.1)’를 참조하세요.

     

    • * 소따-빤나조차도 까-마 산냐-를 극복하고 아나-가-미 단계에 이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시대에도 많은 재가 소따-빤나들이 사띠빳타-나 수행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사띠빳타-나에 관한 거의 모든 숫따들은 빅쿠들에게 전혀졌습니다. 사띠빳타-나를 수행하려면 감각적 즐거움을 멀리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재가자로서 사띠빳타-나를 수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 * 그러나, 붓다께서는 소따-빤나는 비교적 짧은 시간, 즉 일곱 바와 내에 반드시 아라한과에 이를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따라서, 이번 생에 그 노력을 하기에는 지배적 조건이 적합하지 않다면 소따-빤나 단계에서 멈출 수도 있을 것입니다.

    • * 참으로 소빠-빤나라면, 위 #15 및 #16의 숫따에서 가리켜 보인 바와 같이, 미래 재탄생에서 겪게 될 모든 고통의 99% 이상이 이미 사라졌습니다.  

     

    20(19). 위 #2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포스트는 사띠빳타-나(및 아-나-빠-나사띠)에 대한 소개입니다.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제공된 링크를 참조하세요.

     

    • * 토론 포럼에서 질문이나 오류에 대한 지적을 자유롭게 해 주세요.

    • * ‘Questions About Puredhamma Posts’에서 관련된 논의를 이미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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