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소따-빤나는 감각적 즐거움을 삼가야 하는가?
원문: Buddha Dhamma ㅡ Systematic 섹션의 ‘Is It Necessary for a Sotāpanna to Abstain from Sensual Pleasures?’ 포스트
소-따빤나는 더 높은 막가 팔라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 한, 감각적 즐거움을 삼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뿌툿자나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감각적 즐거움은 가치가 없으며 그것에 과도하게 들러붙으면 많은 고통을 이어진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2026년 10월 2일 작성
소따-빤나는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잘못된 견해만 제거했다
1. 최근 포스트에서, 저는 우리의 감각 경험이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고 마치 마술쇼를 즐기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사실을 이해하는 것(지혜, 즉 삼마- 딧티로 세상의 참된 본질을 보는 것)은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는데 필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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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 사실을 이해하는 것과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는 경향을 극복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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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면 세 가지 딧티 상요자나(또는 딧티 아누사야 또는 딧티 우빠-다-나)가 사라집니다. 이는 소따-빤나의 마음이 아빠-야가-미 행위에 빠지는 것을 막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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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빠리따 산냐-’(‘왜곡된 산냐-’), 즉 ‘감각적 즐거움이 실재한다는 인식’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어 극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소따-빤나에게조차 쉬운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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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은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 소따-빤나는 성스런 팔정도의 나머지 일곱 가지 요소를 육성해야 합니다. 성스런 팔정도를 육성하는 것은 소따-빤나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성스런 팔정도를 따르는 소따-빤나를 위한 남은 단계들
2. 소따-빤나에게 있어 성스런 팔정도를 실천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단계가 필요합니다.
(i) 사띠빳타-나를 육성하여 사띠빳타-나 부-미(왜곡된 산냐-에서 벗어난 상태)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세요. 이것이 성스런 팔정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 과정 중에 소따-빤나는 일시적으로 까-마 로까와 관련된 왜곡된 산냐-를 극복하고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갑니다. 이 과정은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에 간략하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아래 #6과 #7에서 자세히 설명된 바와 같이 이는 긴 과정입니다.
(ii)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동안에 삿따 봇장가(Satta Bojjhaṅga)를 육성하여 까-마 라-가와 빠띠까 상요자나를 제거하세요. 이 두 상요자나는 사까다-가-미 단계에서 약해지고 아나-가-미 단계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오직 아나-가-미에 이르러서야만 까-마 로까와 관련된 왜곡된 산냐-, 즉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는 경향을 극복합니다.
(iii) 이제, 아나-가-미는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동안에 삿따 봇장가를 더 육성하여 루빠 라-가와 아루빠 라-가를 제거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상요자나는 16가지 루빠 로까 브라흐마 영역과 네 가지 아루빠 로까 브라흐마 영역에 결박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 동안에, 나머지 세 가지 상요자나(마-나, 웃닷짜, 아윗자-)도 제거되어 아라한과에 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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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의 위 단계는 성스런 팔정도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다. 오직 소따-빤나 단계에만 성스런 팔정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뿌툿자나가 사띠빳타-나를 기르려고 애쓰는 것은 시간 낭비다
3. 많은 사람들이 아직 뿌툿자나이면서 사띠빳타-나와 삿따 봇장가를 육성(즉, 성스런 팔정도를 육성)하고자 애쓰면서 시간을 낭비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감각적 즐거움이 가치가 없고 그것에 과도하게 들러붙으면 많은 고통을 초래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는 아래 #7에서 언급된 요니소 마나시까-라를 이해하는 것(즉, 우리의 들러붙음은 감각 경험이 실제라는 인식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유일한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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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려는 경향은 아나-가-미 단계에서만 비로소 끝납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띠빳타-나를 통해 도달되는 사띠빳타-나 부-미에서 삿따 봇장가를 육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위빠사나-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띠빳타-나 부-미의 특별한 특징은 어떤 유형의 ‘왜곡된/로끼야 산냐-’에서도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왜곡된 산냐-에서 벗어났으므로 ‘명료한 사고’를 방해하는 다섯가지 장애(빤짜 니-와라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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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뿌툿자나들은 자신들도 위빠사나 명상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뿌툿자나들이 참여하는 대부분의 ‘명상 프로그램’에서 ‘위빠사나- 세션’이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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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뿌툿자나는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기 위해 담마 개념을 숙고하는 것의 ‘세간 버전’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것도 또한 ‘바-와나-’의 일종입니다. 그러나, 삽바-사와 숫따(Sabbāsava Sutta)에 언급된 ‘바-와나- 빠하-땁바-(bhāvanā pahātabbā)’의 ‘바-와나’는 그런 숙고 형태가 아니라 위빠사나-를 의미합니다. 아래 #6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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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내용이 불분명하면, 포럼에 질문을 남겨 주세요.
사띠빳타-나 숫따에 언급된 ‘에까야노 막꼬’
4. 위에서 논의된 오해는 ‘Mahāsatipaṭṭhāna Sutta (DN 22)’의 다음 구절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Ekāyano ayaṁ, bhikkhave, maggo sattānaṁ visuddhiyā, sokaparidevānaṁ samatikkamāya dukkhadomanassānaṁ atthaṅgamāya ñāyassa adhigamāya nibbānassa sacchikiriyāya, yadidaṁ cattāro satipaṭṭhān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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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유정체의 해탈(닙바-나)에 이르는 오직 하나의 길이 있는데, 그것은 사띠빳타-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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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소따-빤나에만 해당되는 것이고 뿌툿자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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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사띠빳타-나는 미래 고통의 근본 원인과 조건을 ‘지혜로 본’(삼마- 딧티) 후, 즉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에 이른 후에야 비로소 기를 수 있습니다. ‘요니소 마나시까-라 ㅡ 산냐-와 관계’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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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스런 팔정도의 나머지 일곱 가지 요소는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라는 첫 번째 요소에 도달한 후에만 더 육성될 수 있습니다.
감각적 즐거움을 삼가는 것은 사띠빳타-나를 육성하는데 필수적이다
5. 비록 뿌툿자나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감각적 즐거움을 삼가할 필요는 없지만, 소따-빤나는 사띠빳타-나를 기르기 위해 적어도 주기적으로 감각적 즐거움을 삼가야 합니다. 이것이 소따-빤나에게 성스런 팔정도를 닦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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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가 감각적 즐거움을 삼가야 하는 것은 이 지점입니다. 감각적 즐거움을 삼가는 것은 사띠빳타-나를 닦는 데 필수적이며, 이를 통해 사띠빳타-나 부-미에 마음대로 들어가서 위빠사나-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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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시대에, 많은 유명한 재가 불자들이 성스런 길을 육성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위사까와 아나-타삔디까는 더 높은 막가 팔라를 구하지 않기로 선택한 두 명의 유명한 소따-빤나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재가 소따-빤나들이 그러했습니다. 예를 들어, 위사까는 어린 나이에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했지만, 결혼하여 스무 명이 넘는 자녀를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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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높은 막가 팔라를 얻고자 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빅쿠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빨리 사띠빳타-나를 육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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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적으로 소수의 ‘재가 소따-빤나’들만이 ‘재가’ 생활을 하면서 사띠빳타-나를 육성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들은 한달에 적어도 며칠을 따로 떼어 사띠빳타-나에 전념했으며, 그 기간 동안에는 성 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재가 생활’에서 하는 일들을 삼갔을 것입니다.
삽바-사와 숫따 ㅡ 뿌툿자나가 아라한뜨 단계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단계들
6. ‘Sabbāsava Sutta (MN 2)’는 뿌툿자나가 아라한뜨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완료해야 하는 단계를 간략하게 논하고 있는데, “어떤 번뇌는 보는 것으로 버리고(‘dassanā pahātabbā’), 어떤 번뇌는 절제하는 것으로 버리며(‘saṁvarā pahātabbā’), 어떤 번뇌는 사용하는 것으로 버리고(‘paṭisevanā pahātabbā’), 어떤 번뇌는 참는 것으로 버리며(‘adhivāsanā pahātabbā’), 어떤 번뇌는 피하는 것으로 버리고(‘parivajjanā pahātabbā’), 어떤 번뇌는 몰아내는 것으로 버리며(‘vinodanā pahātabbā’), 어떤 번뇌는 통찰 명상으로 버려야(‘bhāvanā pahātabbā’) 한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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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설명에서 볼 수 있듯이, ‘닷사나- 빠하-땁바-(dassanā pahātabbā)’는 (삭까야 딧티를 포함하는) 잘못된 견해를 제거하고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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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다섯 단계는 소따-빤나가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가 마지막 단계인 ‘바-와나 빠하-땁바-(bhāvanā pahātabbā)’에서 위빠사-나, 즉 ‘통찰 명상’을 하기 위해 완료해야 하는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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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단계들을 논의한 후, 숫따는 최종 결과가 아라한과, 즉 고통의 끝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끝맺습니다(표식 22.2).
7. ‘Avijjā Sutta (AN 10.61)’에서는 같은 내용을 약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저는 숫따의 끝 부분에 나오는 필수적인 단계들만 언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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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자로부터 담마를 배웁니다(‘sappurisasaṁsevo paripūro saddhammassavanaṁ paripūr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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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기 위한 삿다-(saddhā)와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의 확립으로 이어집니다(‘saddhamma savanaṁ paripūraṁ saddhāṁ paripūreti, saddhā paripūrā yoniso manasikāraṁ paripūr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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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소따-빤나는 사띠빳타-나를 충족하기 위해 다음 단계를 육성하고(‘satisampajaññaṁ paripūreti, satisampajaññaṁ paripūraṁ indriyasaṁvaraṁ paripūreti, indriyasaṁvaro paripūro tīṇi sucaritāni paripūreti’)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가야 합니다(‘cattāro satipaṭṭhāne paripūre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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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가 그들이 위빠사나-에 참여하고(Satta Bojjhaṅga) 모든 더 높은 막가 팔라를 획득하여(‘satta bojjhaṅge paripūrenti’) 아라한 단계에 이를(‘vijjāvimuttiṁ paripūrenti’) 수 있는 때입니다.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 ㅡ 사띠빳타-나 부-미에 잠시 들어감
8. 모든 막가 팔라는 마음이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동안에 얻어집니다. 소따-빤나 팔라를 얻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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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문을 듣거나 (담마-를) 숙고하는 동안, 먼저 ‘아닛짜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소따-빤나 아누가미(Sotāpanna Anugami)가 됩니다. 그 다음, 동일한 기간이나 이후의 유사한 기간에 소따-빤나 아누가미는 ‘둑카 본질’도 이해하고 그래서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제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가 소따-빤나 팔라 순간입니다. 이는 아래 #9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많은 숫따에 명확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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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 팔라에 도달하는 순간에, 뿌툿자나의 마음은 모든 감각적 즐거움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부처님의 세계관’을 깨닫고 처음으로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갑니다. 그곳에 잠시 머무는 동안, 마음은 처음으로 성스런 길의 여덟가지 요소를 모두 거치게(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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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과정에서 사띠빳타-나 부-미에 머무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잠시만 머무르지만, 어떤 사람은 몇 시간씩 머물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띠빳타-나 부-미에 다시 들어가려면, 소따-빤나는 위 #6 및 #7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사띠빳타-나를 육성해야 합니다.
밋차- 딧티, 삭까-야 딧티, 및 앗따-누 딧티
9. 소따-빤나 팔라에 이르는 일련의 단계는 세 개의 숫따 시리즈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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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cchādiṭṭhipahāna Sutta (SN 35.165)’는 ‘아닛짜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밋차- 딧티를 제거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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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kkāyadiṭṭhipahāna Sutta (SN 35.166)’는 ‘둑카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밋차- 딧티를 제거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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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ttānudiṭṭhipahāna Sutta (SN 35.167)’는 ‘아낫따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밋차- 딧티를 제거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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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SN 24의 여러 숫따 시리즈에서는, 아닛짜 본질와 둑카 본질을 보는 것이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데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아래 #11에서 논의된 ‘Vāta Sutta (SN 24.1)’를 참조하세요. 이것은 아마도 삿다-누사-리(saddhānusārī)에게 해당될 것입니다. ‘고통에 대한 성스런 진리 ㅡ 세상은 잘못됨에서 돌아간다’의 #3을 참조하세요. 그러나 그 포스트의 #7에 논의된 바와 같이, 지혜가 뛰어난 사람(‘담마-누사-리-’)은 먼저 ‘아낫따 본질’을 볼 수 있습니다. 현대 과학이 감각 경험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확인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담마-누사-리-’가 되기가 더 쉬워졌습니다. 해당 포스트의 논의를 참조하세요.
10. SN 22에 있는 또다른 일련의 숫따들이 위의 내용을 확인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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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cchādiṭṭhi Sutta (SN 22.154)’에서는 루빠에 대한 우빠-다-나(‘rupa upādānakkhandha’의 축약)가 있으면 밋차- 딧티가 있다고 말하는데, “rūpe kho, bhikkhave, sati, rūpaṁ upādāya, rūpaṁ abhinivissa micchādiṭṭhi uppajjati.”입니다. 그 다음,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해당 우빠-다-낙칸다의 축약)에 대해 구절이 반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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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만약 누군가가 루빠 우빠-다-낙칸다(rupa upādānakkhandha)가 실재한다는 견해로 그것에 마음(사띠)를 둔다면, 그는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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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Sakkāyadiṭṭhi Sutta (SN 22.155)’와 ‘Attānudiṭṭhi Sutta (SN 22.156)’에서는 다섯 가지 유형의 우빠-다-낙칸다(upādānakkhandha)에 대한 우빠-다-나(upādāna)가 있으면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와 앗따누 딧티(attānu diṭṭhi)를 가질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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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것들은 아닛짜, 둑카, 아낫따의 질서에 속한다는 것을 파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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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마스밍 사띠 이당 호띠 ㅡ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포스트에서 ‘마음(사띠)를 둔다’는 의미를 논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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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는 웃체다 딧티 또는 삿사따 딧티로부터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육체의 죽음과 함께 삶이 끝난다고 주장하고, 후자는 영원한 ‘영혼’이 있다고 믿습니다.
소따-빤나가 되기 위해 버려할 할 밋차- 딧티의 종류
11. 상윳따 니까야의 소따-빳띠왁까(SN 24)에는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버려야 할 다양한 유형의 딧티를 논의하는 거의 100개의 숫따가 있습니다. 그 중의 대부분(시리즈의 후반부)은 매우 짧습니다. 이것들은 ‘Brahmajāla Sutta (DN 1)’에 언급된 62가지 종류의 잘못된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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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리즈는 ‘Vāta Sutta (SN 24.1)’으로 시작하는데, 이 숫따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믿고 모든 경험이 마음의 산물이라고 믿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견해가 아님에 주목하세요. 붓다께서는 세상에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 없다고만 가르치셨습니다. 사과나무는 실제로 존재하지만, 그 사과는 빨갛지도 않고 본래의 맛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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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 시리즈에서 대부분의 숫따는 잘못된 견해의 두 가지 주요 범주인 ‘웃체다 딧티’와 삿사따 딧티를 논의하고 있으며, 이 두 가지 주요 범주 내의 잘못된 견해의 변형들을 논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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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범주에 속하는 몇 가지 숫따를 살펴보겠습니다.
밋차- 딧티의 주된 두 가지 범주 ㅡ 웃체다 딧티와 삿사따 딧티
12. 예를 들어, ‘Soattā Sutta (SN 24.3)’에서는 삿사따 딧티(sassata diṭṭhi)의 한 버전인 ‘so attā, so loko, so pecca bhavissāmi nicco dhuvo sassato avipariṇāmadhammo’을 논의합니다. 여기서 ‘dhuvo’는 ‘영원한’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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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tthidinna Sutta (SN 24.5)’에서는 열 가지 잘못된 견해(보시, 제사, 공양에는 의미가 없다. 선행과 악행의 결과가 없다. 사후 세계가 없다. 어머니, 아버지, 또는 화생하는 존재가 없다. 고행자나 바른 행실과 바른 수행을 하는 브라흐마는 없고, 자신의 통찰력으로 깨달아 사후 세계를 설명하는 자가 없고, 그들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삶이 끝난다(웃체다 딧티)고 믿음)를 가지는 이들을 언급합니다. 표식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됩니다.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 모두는 육체가 부서질 때 사라지고 전멸하며 사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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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숫따의 끝부분에서 붓다께서는 잘못된 견해를 버린 자들은 ‘ariyasāvako sotāpanno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no’, 즉 ‘그들은 소따-빤나인 성스런 제자라 불리고 아빠-야-에 다시 태어나지 않고 아라한과에 도달하게 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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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아꾸사라 깜마의 열 가지 유형(다사 아꾸살라) 중에서 소따-빤나가 완전히 제거하는 유일한 악업은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입니다. ‘소-따빤나가 제거한 유일한 아꾸살라는 무엇인가?’을 참조하세요. 이는 잘못된 견해가 미치는 거대한 영향, 그리고 ‘사악처로 향하는 행위’에 관여하게 하는 능력을 활성화시키는데 전적으로 책임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감각 경험의 비실체성을 이해함으로써 많은 잘못된 견해를 몰아낼 수 있다
13.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나를 기르는 중에 ‘다양한 색깔을 보는 것’에 현혹됩니다. 그들은 그것을 성취이자 더 높은 자-나, 특히 제4자-나에 도달했다는 확증으로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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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의한 바와 같이, 마음은 색채 인식은 만듭니다. ‘의식과 색채 인식 ㅡ 현재의 과학적 이해’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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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흰색 빛을 포함하여 어떤 색깔이라도 보인다면, 그것은 확실히 아리야 자-나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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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가지 감각을 통해 생성된 여섯 가지 종류의 산냐-는 모두 환상이라고 말하는 숫따가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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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Saññā Sutta (SN 27.6)’에서는 “메모리(담마 산냐-)를 통해 사물(루-빠 산냐-)을 인식하는 욕망과 탐욕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말합니다. ‘Saññā Sutta (SN 26.6)’와 ‘Saññā Sutta (SN 18.6)’도 참조하세요.
14. 이런 오해를 일으키는 또 다른 요인은 ‘Sāmaññaphala Sutta (DN 2)’의 한 구절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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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āmaññaphala Sutta (DN 2)’에서는 네 번째 아리야 자-나의 경험을 “So imameva kāyaṁ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pharitvā nisinno ho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apphuṭaṁ hoti”, 즉 “그들은 순수하고 밝은 마음이 그들의 까-야를 통해 펴져 앉아 있다. 순수하고 밝은 마음이 펴지지 않은 몸의 부분은 없다.”로 묘사합니다. 그 다음, 그 감각을 묘사하는 비유가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odātena vatthena sasīsaṁ pārupitvā nisinno assa,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odātena vatthena apphuṭaṁ assa”, 즉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천으로 감싸인 사람이 앉아 있는 것과 같다. 몸의 어느 부분도 흰 천으로 덮여 있지 않은 곳이 없다”로 제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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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네 번째 자-나에서 ‘흰 빛’을 보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흰 천’은 전체 까-야가 사마디(순수한 마음)에 잠겨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한 비유입니다. ‘odāta’가 ‘흰 색’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순수한’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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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숫따에서도 ‘odāta’는 ‘깨끗한’ 또는 ‘순수한’을 의미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Mahākappinattheragāthā’을 참조하세요.
15. 31계 세상에 속하는 어떤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여 얻는 자-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는 흙덩이나 불과 같은 까시나 대상도 포함되며, 호흡(와-요 까시나)에 마음을 집중하는 호흡 명상도 포함됩니다. ‘Saññā Sutta (AN 11.7)’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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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따에서 아난다 존자는 ‘세상에 속하는’ 다른 것들 중의 까시나 대상을 명상의 초점으로 삼지 않고(‘neva pathaviyaṁ pathavisaññī assa, na āpasmiṁ āposaññī assa, na tejasmiṁ tejosaññī assa, na vāyasmiṁ vāyosaññī assa‘) 얻는 사마-디가 있는지 부처님에게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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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식 5.2에서 붓다께서는 성자들이 니밋따로 취한 유일한 산냐-는 ‘닙바-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taṁ santaṁ etaṁ paṇītaṁ, yadidaṁ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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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부터 #15까지 논의된 예시들은 모든 감각 경험들은 ‘마음이 만든’ 환상이라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자-나의 특질/특징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요약
16.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과, 소따-빤나 단계에 오른 후 더 높은 막가 팔라를 얻기 위해 해야 할 일에 대한 오해가 많습니다. 위에서 논의한 내용을 이해하면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따-빤나가 되기 전까지는 사띠빳타-나를 육성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기 위해 자-나를 육성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빛을 보는 것’을 자-나에 도달했다는 징표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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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 조건은 뿌툿자나의 ‘아요니소 마나시까-라’ 정신 상태를 극복하여 성자의 ‘요니소 마나시까-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요니소 마나시까-라’와 함께 하는 뿌툿자나는 감각 경험이 ‘마음이 만든’ 것이고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둑카 웨다나-’를 겪는 기간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감각적 즐거움이 있는 ‘수카 웨다나-’를 더 많이 추구하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카 웨다나-’를 더 많이 추구하는 그들의 부도덕한 행위(깜마)는 필연적으로 아빠-야-에 재탄생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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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 단계에서 시작되는 성자는 모든 감각 경험은 마음이 만든 것이고 실체가 없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합니다. 그들은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는 것’과 관련된 미래 고통을 제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고통에 대한 성스런 진리 ㅡ 세상은 잘못됨에서 돌아간다’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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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불자는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인가?’를 참조하세요. 그러나 이것은 까-마수깔리까-누요가(kāmasukallikānuyoga), 즉 과도한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면서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그들은 감각적 즐거움을 완전히 삼가야 한다는 것(attakilamatānuyoga)도 아닙니다.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도덕적 행위를 실천하는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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