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고통에 대한 성스런 진리 ㅡ 세상은 잘못됨에서 돌아간다
원문: Buddha Dhamma ㅡ Systematic 섹션의 ‘Noble Truths on Suffering – World Operates on a Falsehood’ 포스트
첫 번째 성스런 진리는 재탄생 과정이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마음이 만든 즐거움’의 재탄생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입니다. 중생은 ‘마음이 만든 감각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 부도덕한 행위를 함으로써 재탄생 과정을 유지합니다. ‘잘못된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은 결국 고통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으며, 이 말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성스런 진리를 모두 아우릅니다.
2026년 9월 19일 작성
고통은 재탄생 과정의 ‘전체 고통’을 의미한다
1.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핵심 원칙에 기반하여 이해되어야 합니다. 삶은 육체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지만, 다른 종교와는 달리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과 같은 실체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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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 붓다께서는 재탄생 과정이 전생과 현생에 축적된 ‘깜마 에너지’에 의해 유지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깜마 에너지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좋은 유형’은 ‘27가지 ‘선처’ 중의 하나에 존재하게 하고, ‘나쁜 유형’은 동물계를 포함하여 네 가지 영역(통칭, 사악처)에 존재하게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계와 동물계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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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유정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 동안 ‘고통으로 가득찬’ 아빠-야-(apāyā)에 갇혀 있습니다. 축적된 ‘깜마 에너지’의 대부분이 ‘나쁜 유형’이기 때문에, 어떤 유정체가 ‘좋은 영역’에 재탄생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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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이, 좋은 영역에 사는 이들조차 미래에는 아빠-야-에 태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세계의 삶이든 유한하며, 따라서 죽음이나 궁극적 고통은 선처에도 있습니다.
깜마 에너지는 성스런 진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2. 깜마 에너지가 축적되는 기반은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의 삶의 목표를 생각해 보면 그 답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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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릴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결국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라는 격려를 받습니다. 목표는 돈을 벌어서 ‘좋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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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요? 큰 집, 고급 자동차, 좋은 옷, 맛있는 음식 등을 누릴 수 있다면,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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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해, 목표는 오감을 최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며, 이는 결국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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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만약 그 ‘인지된 행복’이 거짓에 기반한 것이라면 어떨까요? 만약 그런 매력적인 집, 자동차, 혹은 매력적인 이성이 없다면 어떨까요? 만약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음악’이 없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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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그런 소위 ‘즐거운 것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붓다께서는 ‘감각적 즐거움’이 가치없은 신기루임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가지 비유를 드셨습니다. 살없는 뼈, 마른 풀, 타오르는 숯불 구덩이(그것들을 얻기 위해 행하는 부도덕한 행위는 고통으로 가득한 재탄생으로 이어지기 때문) 등에 비유하셨습니다. ‘Alagaddūpama Sutta (MN 22)’을 참조하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닛짜 본질’을 보는 것이 우선이다
3. 마지막 두 가지 성스런 진리(고통을 없앨 수 있는 방법과 이를 이루기 위한 성스런 팔정도)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고통의 의미’(둑카 삿짜)와 ‘고통의 일어나는 원인’(둑카 사무다야 삿짜)를 이해해야 합니다. ‘sacca(삿짜)’는 ‘sachcha’로 발음됩니다. ‘빠알리 낱말 ㅡ 쓰기와 발음’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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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의한 바와 같이, 둑카 삿짜(첫 번째 성스런 진리)는 현재 느끼는 웨다나-(vedanā)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행위로 인해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관한 것입니다. ‘괴로움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런 진리(첫번째 성스런 진리)'와 같은가?’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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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첫 번째 성스런 진리’의 이면에는 그런 모든 미래 고통이 ‘가치없고 마음이 만든 감각 경험’에 들러붙는 것을 통해 일어난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 진리는 세상이 작동하는 ‘잘못된 토대’(왜곡된 산냐-를 통해 생성된 감각적 즐거움의 신기루)를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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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각 경험이 마음의 산물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saddhā)으로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재탄생 사이클과 깜마 법칙에 바탕을 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삿다-누사-리(saddhānusārī)’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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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각 즐거움에 들러붙음이 둑카의 근본 원인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통해 미래 고통(둑카)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처음에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이는 많은 숫따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예로서, 위 #2에서 언급한 ‘Alagaddūpama Sutta (MN 22)’이 있습니다. 또 다른 숫따는 지금 살펴볼 ‘Upanisa Sutta (SN 12.23)’입니다.
우빠니사 숫따 ㅡ ‘둑카를 봄’으로써 삿다-
4. ‘Upanisa Sutta (SN 12.23)’는 관련 개념을 명확히 하는 데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요소들을 논의합니다. 이 숫따는 납바-나(Nibbāna)가 마음이 만든 루-빠의 기원(사무다야)와 그침(앗탄가마 또는 니로다)과 그 다음으로 이에 상응하는 ‘마음이 만든’ 실체인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를 이해함으로써 도달된다고 언급하여 시작합니다. 논의한 바와 같이,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는 각각 상응하는 우빠-다-낙칸다(upādānakkhandha) 또는 ‘마음이 만든 부분들’을 가리킵니다.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 ㅡ 대부분 오해임’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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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표식 1.9에서, 닙바-나에 도달하기 위한 ‘직접적인(즉각적인) 지원 조건’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하는데, 그 시작은 위뭇띠-(vimuttī)이며, 이는 위라-가(virāga)가 도웁니다. 그 후의 지원 조건은 닙비다-(nibbidā), 야타-부-따냐-나닷사나(yathābhūtañāṇadassana), 사마-디(samādhī), 수카(sukha), 빳삿디(passaddhi), 삐-띠-(pītī), 빠-못자(pāmojja), 삿다-(saddhā), 및 둑카(dukkha)입니다. 둑카(dukkha)로 시작하여, 이 숫따는 둑카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조건’의 각각도 나열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그것들은 자-띠(jātī), 바와(bhava), 우빠-다-나(upādāna), 땅하-(taṇhā), 웨다나-(vedanā), 팟사(phassa), 살라-야따나(saḷāyatana), 나-마루-빠(nāmarūpa), 윈냐-나(viññāṇa), 상카-라(saṅkhāra), 및 아윗자-(avijj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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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둑카(dukkha)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며, 이는 (역순으로 된) 빠띳짜 사뭅빠-다의 단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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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색으로 표시된 첫 번째 부분은 그 반대, 즉 삿다-(saddhā)에서 시작하여 어떻게 닙바-나(Nibbāna)에 이르는지를 나타냅니다(다시 역순으로 나열됨). 이 숫따를 주의 깊게 읽으세요. 링크에 있는 영어 번역은 충분히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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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숫따는 본질적으로 ‘삿다-누사-리-(saddhānusārī)’는 ‘아닛짜’(및 ‘둑카’) 본질을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위에서 역순으로 나열된 것처럼, 빠-못자(pāmojja), 삐-띠-(pītī) 등으로 이어지고, 최종적으로 닙바-나(Nibbāna)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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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들(삿다-누사-리-)은 소따-빤나 팔라 순간에 아낫따 본질의 일부 측면을 파악함으로써 그 초기의 부분적 확신을 확증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사람마다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제각각이다
5. ‘삿다-누사-리-(saddhānusārī path) 길’이 더 일반적이지만, 그것이 유일한 길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길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의 ‘아닛짜, 둑카, 아낫따 본질’(그리고 ‘마음이 만든 감각적 즐거움’)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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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한 빅쿠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했다고 선언한 다른 빅쿠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물어보며 다녔습니다. 빅쿠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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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빅쿠는 혼란스러워 부처님에 하소연했습니다. 붓다께서는 줄기가 검고, 꽃이 붉은 색으로 마치 붉은 고기 조각처럼 보이고, 잎이 독특한 모양인 나무를 누군가에게 묘사해 보라고 하는 비유를 드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나무의 독특한 줄기로 나무를 묘사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꽃으로 묘사할 것이며, 또 어떤 사람들은 잎의 독특함으로 묘사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그 나무를 본 것이 분명합니다! ‘Kiṁsukopama Sutta (SN 35. 245)’을 참조하세요.
‘아닛짜, 둑카, 아낫따 본질을 보는’ 세가지 방법
6. 감각 경험의 ‘아닛짜, 둑카, 아낫따 본질을 봄’으로써 소따-빤나 단계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은 적어도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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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는 위 #1부터 #3까지 논의한 내용, 즉 ‘나쁜 재탄생’과 ‘많은 미래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는 나쁜 깜마를 축적하는 것의 ‘아닛짜 본질’을 먼저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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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포스트에서, 저는 이답빳짜야따-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또는 그와 동등하게,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깜마 축적이 어떻게 자동적으로 시작되는지)을 이해함으로써 아닛짜 본질을 보는 두 번째 방법을 논의했습니다. 이 설명은 마음이 어떻게 ‘왜곡된 산냐-’에 들러붙음으로써 항상 오염되지 않은 다-뚜 단계에서 오염된 상태로 이동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뿌툿자나의 마음은 항상 ‘위빠리나-마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이는 다음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감각 입력과 함께 오는 까-마 산냐-에 들러붙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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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내용은 (위 도표와 함께) ‘소따빤나 아누가-미와 오염된 마음의 아닛짜/위빠리나-미 본질’을 참조하세요. 또한 ‘마음은 거의 순수한(빠밧사라) 상태에서 시작한다’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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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가능한 방법은 먼저 ‘아낫따 본질’을 보는 것입니다. 이 길을 따르는 소따-빤나 아누가-미들을 ‘담마-누사-리-(dhammānusārī)’라고 합니다. 이제 이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아낫따 본질을 먼저 보는 것은 더 어렵다
7. 아낫따 본질(세상은 ‘마음이 만든 즐거움’이라는 잘못됨/허구에서 돌아간다)을 보려면, 경험하는 모든 유형의 ‘즐길만한 루-빠’가 실제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매력적이고 다채로운 광경이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빛조차도 마음이 만든 인식이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생각해 보세요. 그런 음식 역시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사과, 설탕, 꿀, 등)에도 본질적인 맛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 '마음이 만든' 인식이 없다면, 세상에는 색깔도 소리도 맛도 냄새도 감촉도 없다’을 참조하세요. 그 측면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믿기 어려운데, 그런 경험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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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문에 감각적 즐거움이 실제가 아니라는 사실의 적어도 일부 측면을 처음 깨달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했으며, 그들을 ‘담마-누사-리-(dhammānusārī)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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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담마-누사-리-(‘빤냐-디까, 즉 탁월한 지혜를 지닌 사람)은 먼저 ‘아낫따’ 본질의 일부 측면을 직접 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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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포스트 “세상은 잘못됨에서 돌아간다 ㅡ 현대 과학에서 확인”에서 ‘아낫따 본질’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삿다-누사-리-와 담마-누사-리- ㅡ 두 가지 유형의 소따-빤나 아누가-미
8. 삿다-누사-리-(Saddhānusārī)와 담마-누사-리-(Dhammānusārī)는 모두 소따-빤나 아누가-미(Sotāpanna Anugāmi)입니다. 그들은 죽기 전에 소따-빤나 팔라 순간에 도달하는 것이 보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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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유형 모두, 소따-빤나 팔라 순간, 즉 소따-빤나가 되는 순간에 이해(‘지혜로 보는 것’)가 확고히 자리잡게 됩니다. ‘소따-빤나 아누가-미 - 더 이상 사악처에 태어나지 않음’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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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아낫따 본질’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아라한 단계에서만 실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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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날, 최근 현대 과학의 발견은 ‘아낫따 본질’을 먼저 아는(그리고 그것에 기반하여 아닛짜, 둑카 본질을 아는) 것을 더 쉽게 만들었습니다. 다음 포스트, “세상은 잘못됨에서 돌아간다 ㅡ 현대 과학에서 확인”에서 ‘아낫따 본질’에서 이를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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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아닛짜’(및 ‘둑카’) 본질을 먼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숫따 삐따까(경장)내 있는 추가적인 설명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단 한 구절에 담긴 첫 번째 성스런 진리!
9. 붓다께서는 ‘Dhammacakkappavattana Sutta (SN 56.11)’에서 고통에 대한 첫 번째 성스런 진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셨습니다.
“Idam kho pana, bhikkhave, dukkhaṃ ariya saccam:
jātipi dukkhā, jarāpi dukkhā, byādhipi dukkho, maraṇampi dukkhāṃ, appiyehi sampayogo dukkho, piyehi vippayogo dukkho,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āṃ—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번역: “빅쿠들이여, 고통의 성스런 진리는 무엇인가?
태어남은 고통이고, 늙는 것은 고통이고, 병드는 것은 고통이고, 죽는 것은 고통이다. 싫어하는 것과 어울려야 하는 것은 고통이고,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은 고통이다. 좋아하고/갈망하고/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고통이다. 간단히 말해, 고통의 근원은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라는 다섯 무더기에 대한 갈망 (빤쭈빠-다-낙칸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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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빤쭈빠-다-낙칸다(우빠-다-나, 빤짝칸다에 대한 갈망/원함)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갈망하는 모든 것을 나타냅니다.
얌삣짱 나 라바띠 땀삐 둑캉
10.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aṃ”은 녹색 구절의 일부를 단축한 버전입니다. 완전한 문장은 “Yam pi icchaṃ na labhati tam pi dukkha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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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m pi icchaṃ’은 ‘좋아하거나 갈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Na labhati’는 ‘얻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tam pi dukkhaṃ’는 ‘고통으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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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그 구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좋아하는/갈망하는/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고통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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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더 일반적인 기술이고 어떤 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하고, 싫어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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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이, 무언가를 갈망할수록 더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합니다.
11. 따라서, “Yampiccam nalabhati tampi dukkhaṃ”(“Yam pi icchaṃ na labhati tam pi dukkhaṃ”) 구절은 고통에 관한 첫 번째 성스런 진리의 더 깊은 의미에 우리를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 줍니다.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들’에 들러붙는 것은 ‘아닛짜(결실없음) 본질’인 것인데, 이는 자라-, 마라나, 소까, 빠리데와 등, 즉 미래 고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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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잇짜(icca)와 잇차(iccha)(싱할라어로는 ඉච්ච와 ඉච්ඡ)는 띠삐따까에서 서로 바꿔 쓸 수 있는 낱말입니다. 마지막 음절에 강세가 있는( ‘h’가 있는) 잇차(iccha)는 ‘강한 잇짜(icca)’, 즉 ‘강한 들러붙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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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잇짜’ 또는 ‘잇차’라는 낱말은 땅하-(들러붙은 것)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땅하-는 잇짜 때문에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보통 사람(뿌툿자나)은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는데, 이는 그런 들러붙음에 기반한 부도덕한 행위가 미래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당장에는 즐거움을 느낄지라도, 미래 고통은 불가피합니다. 즉, 최종 결과는 기대했던 것과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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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하는 또는 갈망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잇짜(icca)’의 반대, 즉 ‘나 잇짜(na icca)’이고 ‘아닛짜(anicca)’로 운이 맞춰집니다. 이것은 ‘나 아-가미(na āgami)’가 ‘아나-가-미(Anāgāmi)’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na āgami’는 ‘돌아오지 않음’을 의미하지만, ‘아나-가-미’의 맥락에서는 ‘까-마 로-까, 즉 가장 낮은 11가지 영역에 돌아오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 모두 빠알리 산디(Pāli sandhi) 규칙(두 낱말을 연결하는 규칙)의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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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첫 숫따에 있는 불교의 에센스’와 ‘아닛짜- 와따 상카-라-...’을 참조하세요.
아닛짜 본질과 관계
12.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것을 좋아하거나 바라더라도(icca/iccha), 그런 기대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고 더 큰 고통만을 남길 뿐입니다. 특히, 우리가 죽을 때에는 적어도 모든 존재와 관련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재탄생을 믿는 사람들은 잇짜/잇차로 행한 부도덕한 행위가 어떻게 ‘나쁜 재탄생’과 미래에 많은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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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이 세상의 본질이 아닛짜(anicca)인 이유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할 때(아닛짜), 우리는 고통받습니다. 이 고통은 두 가지 상황에서 불가피합니다. (i) 죽을 때 우리는 갈망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하고, (ii) 비록 우리가 ‘고통으로 가득한 영역’에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재탄생이 그곳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세상은 아닛짜 본질이고 둑카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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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뿌툿자나는 세상이 ‘닛짜(nicca) 본질’을 지닌다고 잘못 믿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욕망이나 기대는 이루어질 수 있고 유지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아닛짜를 설명하는 또 다른 (그리고 관련된) 방법은 ‘닛짜(nicca)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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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삿다-누사-리-(saddhānusārī)가 또한 아낫따 본질(세상은 잘못된 토대에서 돌아가고 ‘감각적 즐거움’은 거의 전적으로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보면, 소따-빤나 팔라 순간에 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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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에, ‘담마-누사-리(dhammānusārī)’는 아낫따 본질이 어떻게 소따-빤나 팔라 순간에 아닛짜와 둑카로 이어지는지를 봅니다. 물론 이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사리뿟다 존자나 목갈라나 존자처럼) 소따-빤나 단계에 빨리 도달한 사람들은 아마도 ‘담마-누사-리-’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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