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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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은 거의 순수한(빠밧사라) 상태에서 시작한다

     

    원문: Buddha Dhamma ㅡ Systematic 섹션의 ‘A Mind ‘Starts’ at an Almost Pure (Pabhassara) State’ 포스트 

     

    마음은 감각 입력과 함께 거의 순수한(빠밧사라)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이 마음은 초기 ‘찟따’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왜곡된 산냐-(까-마 로까에 있는 우리에게는 모든 종류의 ‘까-마 산냐-’)를 통해 오염됩니다.  

     

    2026년 8월 22일 작성

     

    모든 찟따는 거의 순수한(빠밧사라) 상태에서 시작한다

     

    1. 여기서, ‘찟따(citta)는 감각 입력에 의해 시작되는 ‘사고 과정’의 출발점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 그것은 마노(mano)와 윈냐-나(viññāṇa)라는 두 단계로 오염됩니다. 이는 ‘Assutavā Sutta (SN 12.61)’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으므로 저는 숫따 센트럴 사이트에 있는 번역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 * 본질적으로, 이는 마음이 오염 안된 찟따(‘빠밧사라 찟따’) 상태에서 시작하여 크게 마노와 윈냐-나라는 두 단계로 오염된다는 것을 말하며, 이 두 단계는 모두 초기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일어납니다. 중요한 점은 뿌툿자나는 이 단계들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음이 처음 두 단계를 거쳐 ‘나와 깜마’ 단계에 도달한 후에야 최종 윈냐-나 상태를 경험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를 참조하세요.

    • * 네 개의 짧은 숫따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숫따는 앙굿따라 니까야의 ‘5. Paṇihitaacchavagga’에 나오는 #49 및 #50입니다.

    • * 첫 번째 숫따(#49)에서는 “Pabhassaramidaṁ, bhikkhave, cittaṁ. Tañca kho āgantukehi upakkilesehi upakkiliṭṭhan‘ ti.”라고 말씀하십니다.

    • * 두 번째 숫따(#50)에서는 “Pabhassaramidaṁ, bhikkhave, cittaṁ. Tañca kho āgantukehi upakkilesehi vippamuttan ‘ti.”라고 말씀하십니다.

    • * 먼저 첫 번째 (공통)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찟따가 순수하다(빠밧사라, pabhassara)고 말씀하십니다. 즉, 마음은 처음 생겨날 때 순수하며 라-가, 도사, 모하와 같은 오염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빠밧사라 찟따란 무엇인가? ㅡ 그것은 오염이 없는 마음이다

     

    2. 붓다께서는 ‘마음의 자연 상태’는 라-가, 도사, 모하의 오염이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 마음은 ‘깜마 에너지’를 생성할 수 없습니다. 찟따는 재탄생 사이클을 유지하기 위해 ‘깜마’를 생성하려면 오염되어야 합니다.

     

    • * 이 낱말은 어근의 세 가지 음에서 유래했습니다. ‘빠(pa)’는 ‘반복적으로’를 의미하고, ‘바(bha)’는 ‘바와(bhava)’와 관련이 있으며, ‘사라(sara)’ 또는 ‘차라(chara)’는 ‘관여하다/참여하다’(싱할라어로는 ‘සැරිසැරීම’)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낱말에 ‘s’가 하나만 있는 ‘빠바사라 찟따(pabhasara citta)’(pabhassara가 아님)는 오염된 찟따를 의미하며, 이는 윤회 여정 즉 ‘재탄생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 * ‘빠바 사라(pabha sara)’의 반대말은 ‘빠바 앗사라(pabha assara)’인데, 여기서 ‘앗사라(assara)’는 ‘참여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는 두개의 ‘s’가 있는 ‘빠밧사라(pabhassara)’로 운이 맞춰집니다.

    • * 따라서, 빠밧사라 찟따(pabhassara citta)는 깜마 에너지를 축적함에 의한 재탄생 과정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도입된(아-간뚜까) 촉발자에 의해 오염될 수 밖에 없다

     

    3.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음이 마노와 윈냐-나라는 두 단계로 즉시 오염되도록 유도하는 내재된 메커니즘(까-마 로까에 사는 우리에게는 ‘까-마 산냐-’)이 있습니다. 그 ‘초기 빠밧사라 찟따’는 인간으로 태어난(또는 까-마 로까의) 누구에게나 ‘까-마 산냐-(kāma saññā)’와 함께 일어납니다.

     

    • * 마음이 재탄생 과정으로 이어지는 열 가지 결박(상요자나)를 모두 제거했다면, 마음은 자동으로 찟따 단계에서 까-마 산냐-에 들러붙지 않고 마노 및 윈냐-나 단계로 오염되지 않을 것입니다.    

    • * 따라서, 아라한의 마음은 일상생활에서 ‘까-마 산냐-’가 생겨나더라도 마노 또는 윈냐-나의 단계로 오염되지 않을 것입니다

     

    빠밧사라 찟따를 회복하는 것은 가능하다

     

    4. 뿌툿자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함으로써 오염된 마음(윈냐-나)을 ‘빠밧사라 찟따 상태’ (그리고 까-마 산냐-에서 해방된 상태)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이는 뿌툿자나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할 때 처음으로 일어납니다. 이전 포스트들에서 본 바와 같이, ‘까마 산냐-에서 해방된’ 마음은 사띠빳타-나 부-미에서 실현됩니다. ‘사띠빳타-나 부-미 ㅡ 로까 산냐-에서 벗어남’을 참조하세요.  

     

    • * 마음을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에 이르게 하지 않으면, (감각 입력을 받아) 생성되는 모든 찟따는 까-마 산냐-와 함께 생성되며, 이는 자동적으로 아윗자-를 촉발시켜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로 시작하는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 * 그것은 마음을 ‘뿌라-나 깜마’(‘초기 깜마 생성’) 단계로 들어가게 합니다. 그 단계에서 마음은 자연스럽게 마노(mano)와 윈냐-나(viññāṇa) 단계로 질이 낮아집니다.

    • * #1의 첫 번째 숫따(#49)에서는 마음은 ‘까-마 산냐-’로 인해 오염된다고 말씀하십니다. #1의 두 번째 숫따(#50)에서는 그 오염 과정이 (까마 산냐-를 극복하고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감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 * 뿌툿자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모릅니다. 뿌툿자나는 두 가지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즉 마음이 어떻게 오염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까-마 산냐-에서 해방된’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는지를 이해함으로써, 소따-빤나가 됩니다.   

     

    산냐-는 우빡낄레사/낄레사가 일어나는 주요 촉발 요인이다

     

    5. 낄레사는 오염(라-가, 도사, 또는 모하)를 나타내는 또 다른 이름입니다. 우빡낄레사는 (아윗자-를 통해) 낄레사를 생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실체입니다. 여기서, ‘우빠(upa)’는 ‘가까이 가져오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빡낄레사’(‘upa’ ‘kilesa’는 ‘upakkilesa’로 운이 맞춰짐)는 마음이 오염되도록(kilesa) 돕거나/유도하는 실체입니다. 

     

    • * 우빡낄레사(upakkilesa)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i) 아윗자-를 촉발함으로써 오염을 생성시킬 수 있는 중립적/오염되지 않은 실체, 또는 (ii) 그 자체가 오염된 실체로서, 더 많은 오염을 야기하는 실체입니다. 유형 (ii)의 우빡낄레사는 처음에 ‘까-마 다-뚜’ 단계에서 일어나는 유형 (i)에 의해서도 유도됩니다.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을 참조하세요.

    • * 빤짜 니-와라나(pañca nīvaraṇa)는 그것들 자체로 오염이지만, 더 많은 오염을 불러일으킵니다. ‘빤짜 니-와라나 및 감각적 즐거움(까-마 라-가)’을 참조하세요. 예를 들어, 까-막찬다(kāmacchanda)는 빤짜 니-와라나의 다섯 가지 유형 중의 하나이며, 사람을 더 많은 부도덕한 행위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Upakkilesa Sutta (MN 128)’는 우빡낄레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그것들 자체가 오염된 실체인 9가지 유형의 우빡낄레사를 가리켜 보입니다. 

     

    ‘나-낫따 산냐-’는 주요 우빡낄레사다

     

    6. 그 다음, 표식 27.10에서, ‘Upakkilesa Sutta (MN 128)’에서는 ‘나-낫따 산냐-(nānatta saññā)’(다양한 유형의 산냐-)도 우빡낄레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들은 위 #5에서 언급된 유형 (i)입니다.

     

    • * 사실, 이것들은 까-마 로까에서 유형 (ii)의 다른 모든 우빡낄레사를 촉발시키는 다양한 유형의 까-마 산냐-(6가지 감각 기능인 루빠 산냐-부터 담마 산냐-, 닛짜 산냐, 수바 산냐- 등)입니다. 루빠 로까와 아루빠 로까에서는 ‘왜곡된 산냐-’의 수가 적습니다. 다양한 영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형의 산냐-는 ‘Sattāvāsa Sutta (AN 9.24)’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 * 논의했듯이, 어떤 유형의 산냐-가 오염이 아닐 수 있지만, 아윗자-를 촉발시켜 다양한 유형의 오염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가 설명했듯이, 그런 까-마 산냐-는 살아있는 아라한에게 조차도 (아윗자-를 촉발시키지 않고) 발생할 수 있습니다. 

    • * 모든 유형의 까-마 산냐-를 극복하면 다른 모든 우빡낄레사와 낄레사가 멈춥니다. ‘Upakkilesa Sutta (MN 128)’의 끝부분에서, 붓다께서는 두 가지 유형의 우빡낄레사를 어떻게 극복하여 깨달음(붓다후드)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십니다. 

     

    처음 두 숫따의 의미

     

    7. 이제 우리는 위 #1의 두 숫따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 첫 번째 숫따(#49)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빅쿠들이여, 마음은 빠밧사라 상태에서 시작하지만, 도입된(āgantukehi) 실체에 의해 오염될 수 있다(upakkilesehi upakkiliṭṭhan).” 여기서, 도입된 실체는 ‘까-마 산냐-(kāma saññā)’입니다. 까-마 산냐-는 찟따, 즉 ‘까-마 다-뚜(kāma dhātu)’ 단계에서 마음에 도입됩니다. 분명하지 않다면 아래 #15의 도표를 참조하세요.

    • * 두 번째 숫따(#50)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빅쿠들이여, 마음은 빠밧사라 상태에서 시작하지만, 도입된(āgantukehi) 실체에 의한 오염은 극복될 수 있다(upakkilesehi vippamuttan).” 이는 ‘까-마 산냐-’는 제거될 수는 없지만, 극복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모든 상요자나를 제거함으로써 까-마 산냐-에 들러붙지 않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과정을 여러 포스트에서 다루었습니다. ‘붓다 담마 ㅡ 체계화’ 섹션을 참조하세요.

    • * 뿌툿자나는 마음이 어떻게 (‘까-마 산냐-’에 의해) 유도되어 오염되는지조차 알지 못하며, 그 유도가 극복될 수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이는 이 숫따 시리즈의 마지막 두 숫따(#51, #52)에 간결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뿌툿자나와 성자 사이의 차이

     

    8. 이제 마지막 두 개의 숫따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이 두 개의 숫따는 앙굿따라 니까야에 있는 ‘Accharāsaṅghātavagga’의 #51 및 #52입니다. (주: 비록 다른 부분에 있지만, 숫따 번호 #49부터 #52까지로 분명하듯이 이어지는 숫따입니다.)   

     

    • * 거기, #51에서는 “Pabhassaramidaṁ (Pabhassaraṁ idaṁ) bhikkhave, cittaṁ. Tañca kho āgantukehi upakkilesehi upakkiliṭṭhaṁ. Taṁ assutavā puthujjano yathābhūtaṁ nappajānāti. Tasmā ‘assutavato puthujjanassa cittabhāvanā natthī’ti vadāmī’ ti.”라고 말씀하십니다.

    • * 그 다음 #52에서는 “Pabhassaramidaṁ, bhikkhave, cittaṁ. Tañca kho āgantukehi upakkilesehi vippamuttaṁ. Taṁ sutavā ariyasāvako yathābhūtaṁ pajānāti. Tasmā ‘sutavato ariyasāvakassa cittabhāvanā atthī’ti vadāmī’ ti.”라고 말씀하십니다.

    • * 이 두 구절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띠빳타-나(찟따 바-와나-)는 오직 성자만이 행할 수 있다

     

    9. 첫 번째 숫따(#51)는 뿌툿자나에 관한 것입니다. “빅쿠들이여, 마음은 본래 오염이 없으므로 재탄생에 이르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은 번뇌에 오염된다. 무지한 보통 사람(뿌툿자나)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무지한 보통 사람에게 사띠빳타-나 명상(찟따 바-와나-)를 가르치지 않는다.”

     

    • * 뿌툿자나의 마음은 감각 입력에서 나타나는 즐거움에 속아 넘어갑니다. 그들은 그것조차 알지 못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도 모릅니다.

    • * 그들은 마치 사막에서 물의 신기루를 쫓는 사슴과 같아서, 그 신기루가 진짜라고 착각합니다. ‘왜곡된 산냐-(산자-나-띠)에 속음 ㅡ 들러붙음(땅하-)의 기원’을 참조하세요. 

     

    두 번째 숫따(#52)는 성자에 관한 것입니다. “빅쿠들이여, 마음은 본래 오염이 없으므로 재탄생에 이르지 않는다. 마음은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배운 성스런 제자(sutavā ariyasāvako)는 이를 참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나는 성스런 제자에게 사띠빳타-나 명상(찟따 바-와나-)을 가르친다.”

     

    • * 그것은 마술사가 하는 ‘마술 속임수’를 알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속임수가 드러나면 더 이상 속을 수가 없습니다.

    • * 소따-빤나 단계에서 그 마술 속임수(‘왜곡된 산냐-’)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사띠빳타-나 육성으로 더 높은 막가 팔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아-나-빠-나사띠 숫따 ㅡ 완전한 개요’의 #13을 참조하세요. 

     

    마음 오염에서 ‘까-마 산냐-’의 결정적 역할

     

    10. 이것이 제가 지난 3년여 동안 여러 포스트에서 설명하려고 했던 내용입니다. 이보다 더 간단한 출발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이 네 개의 숫따를 접하게 되었는데, 알고는 있었지만, 네 개가 하나의 시리즈로 묶여 있다는 사실은 몰랐습니다(그것들은 각각 다른 장에 실려 있었습니다). 

     

    • * 사띠빳타-나를 육성하여 성스런 길을 완성하려면, 먼저 소따-빤나 단계의 성자가 되어야 합니다.

    • * 그러기 위해서는 ‘왜곡된 산냐-’에 의해 촉발되는 다단계 과정을 통해 ‘빠밧사라 찟따’가 어떻게 오염되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뿌툿자나는 올바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11. 뿌툿자나는 (탐함과 화냄과 같은) 오염이 일어나는 것은 단지 그대로 일어나는 것이고 그에 대해 자신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까-마 앗사-다’를 극복하고 아나리야 자-나를 얻기 위해 숲 속에 살지만, 그들은 아빠-야에 재탄생하는 것에서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들 중 누구도 ‘바른 세계관’, 즉 세상은 ‘왜곡된 산냐-에 기반한 ‘결함있는 토대’ 위에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 * 그들은 다음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i) 마음은 새로운 감각 입력과 함께 거의 순수한(빠밧사라) 상태에서 시작한다. (ii) 그러나, 그것은 뿌툿자나의 마음을 아윗자-로 감각 입력에 들러붙게 하는 까-마 산냐-와 함께 생긴다. (iii) 순식간에 마음은 (탐함, 성냄, 또는 적어도 무지로) 오염된다. (iv) 그 까-마 산냐-를 극복하고 그런 까-마 산냐-에서 벗어난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갈 수 있다. (v) 닙바-나의 네 단계(소따-빤나, 사까다-가-미, 아나-가-미, 아라한)는 결코 다시는 오염될 수 없는 아라한의 빠밧사라 마음으로 이어지는 (아윗자-가 없는) 사띠빳타-나 부-미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함으로써 도달될 수 있다. 

     

    성자는 그 마음 오염 과정을 이해한다

     

    12. 그러나, 성자는 이 모든 단계를 이해합니다. 사실, 이러한 이해의 첫 단계를 얻음으로써(자-나또) 첫 성자(소따-빤나 아누가-미)가 됩니다. 이러한 이해는 소따빤나 팔라에 도달할 때, 확고하게 확립됩니다(빳사또).  

     

    • * 첫 세 가지 상요자나는 소따-빤나 단계에서 끊어지고, 가장 낮은 네 가지 영역(사악처)에 미래의 재탄생이 멈춥니다.

    • * ‘까-마 로까’에 묶는 두 가지 족쇄(까-마 라-가와 빠띠가)는 사까다-가-미 단계에서 약해져 인간 영역에조차 미래 재탄생이 멈춰지게 되며, 아나-가-미 단계에서 완전히 끊어져 6가지 천상계에 재탄생하는 것도 또한 멈춰집니다.

    • * 이제, (‘자-나 산냐-’에 기반한 루빠 라-가와 ‘아루빠 사마-빳띠’에 기반한 아루빠 라-가를 포함하는) 다섯 가지 상위 상요자나만 남으며, 이것들은 아라한 단계에서 소멸되어 31영역의 어느곳에도 재탄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 * 그때, 고통의 흔적조차 완전히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은 31영역 세상이라는 ‘결함있는 토대’에서 벗어납니다.    

     

    닙바나에 이르는 것은 순수한 마음이 오염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13. 새로운 감각 사건이 일어날 때, 모든 마음은 ‘거의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마치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순간에 ‘내재된 메커니즘’이 아윗자-를 발생시켜 마음을 오염시킨다는 것입니다.

     

    • * 아윗자-는 마음이 감각 입력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된 버전’을 접할 때 발생합니다.

    • * 예를 들어, 사과는 빨갛지도 않고 달지도 않습니다. 그 ‘붉은색’과 ‘단맛’은 모두 상응하는 ‘까-마 산냐-’를 통해 부여된 것입니다. 또한 ‘마음은 까-마 로까 산냐-와 함께 까-마 다-뚜 단계에서 '시작'된다’을 참조하세요. 

    • * 이것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부처님의 세계관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앗수따와- 뿌툿자노(assutavā puthujjano)’입니다.

     

    14.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외부 세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는 것임을 (지혜로) 일단 보게 되면, 닙바-나가 무엇인지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 * 이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관의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 * 부처님의 세계관은 간단히 말해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에는 어떤 감각적 즐거움, 즉 마음을 즐겁게 하는 시각 대상, 소리, 맛, 냄새, 또는 감촉이 없다는 것입니다.

    • * 지난 수십년 동안 현대 과학은 마음을 즐겁게 하는 시각 대상, 소리, 맛, 냄새, 또는 감촉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세계관’이 놀랍게 입증된 시대에 태어난 행운아입니다. 

    • * 그러나, 과학자들은 생각이 뇌에서 발생한다고 믿기 때문에 미래 괴로움의 근본 원인과 함의를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생각이 어떻게 비활성의 뇌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없습니다. 이것이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직면한 ‘의식의 난제’입니다. ‘왜곡된 인식 ㅡ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3을 참조하세요. 

     

    핵심 포인트

     

    15. 마음은 찟따(citta)라고 불리는 ‘순수한(빠밧사라)’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모든 영역에서 아윗자-를 자동으로 유발하는 ‘내재된 왜곡된 산냐-’와 함께 일어납니다. ‘찟따’ 상태는 뿌툿자나에게 먼저 ‘마노’로, 그 다음에 ‘윈냐-나’ 상태로 빠르게 질이 낮아집니다. 

     

     

    • * 마노와 윈냐-나 단계로 오염이 일어나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릅니다. 아비담마에서는 그것은 처음 찟따 위티에서 일어납니다. 마음이 ‘나와 깜마’에 이르면, 거기에 많이 머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 도표(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에서 가져온 것)는 ‘뿌라-나 깜마’ 단계가 너무 짧아서 위 도표의 ‘나와 깜마’ 단계에 비해 무수한 배로 확대되었으므로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오직 부처님만이 그 빠른 과정을 밝혀내실 수 있습니다.

    • * 따라서, 아라한의 마음은 결코 마노(mano)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위의 도표에서처럼 ‘까마 다뚜(kāma dhātu)’ 단계(찟따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마노(mano)’를 ‘마음’으로 번역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마노는 ‘오염된 마음’일 것입니다.

    • * 가장 중요한 점은 위에서 설명한 ‘왜곡된 산냐-’(까-마 로까에 있는 우리에게는 ‘까-마 산냐-’)의 역할입니다. 마음이 ‘나와 깜마’ 단계로 오염되는 것은 ‘왜곡된 산냐-’를 극복할 때까지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까-마/자-나/아루빠 사마-빳띠의 즐거움이 내재된 ‘왜곡된 산냐-’를 통해 마음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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