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아닛짜- 와따 상카-라-...
원문: Dhammapada 섹션의 ‘Aniccā vata Saṅkhārā...’ 포스트
- 2019년 8월 16일 개정; 2020년 2월 25일 개정; 2020년 6월 8일 개정; 2020년 12월 21일 개정
아닛짜- 와따 상카-라-(Aniccā vata saṅkhārā)
웁빠-다 와야 담미노-(Uppāda vaya dhamminō)
웁빳지뜨와- 리룻잔띠(Uppajjitvā nirujjhanti)
떼상 우-빠 사모- 수코-(Tesaṃ vūpa samō sukhō)
(마하- 빠리닙바-나 숫따, Mahā Parinibbāna Sutta)
이 구절(게송)은 담마빠다(Dhammapada)에는 없지만 아주 흔한 구절(게송)입니다. 스리랑카에서는(그리고 아마도 다른 불교 국가에서도) 삶의 ‘덧없는 본성(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장례식에서 이 구절이 전시됩니다. 그것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죽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왜 우리가 필연적으로(불가피하게) 슬픔에 직면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아비)상카라_(abhi)saṅkhāra’를 통해 미래에 재탄생합니다! 열반이라는 궁극의 행복(지복)을 얻으려면 (‘로-바_lōbha’, ‘도-사_dōsa’, ‘모-하_mōha’로)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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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구절(게송)은 부처님의 빠리닙바-나(Parinibbāna, 반열반) 직후에 데-와(Dēva, 천신)들의 왕인 삭까(Sakka)가 읊은 것입니다. 그것은 마하- 빠리닙바-나 숫따( ‘Parinibbāna Sutta, SN 6.15 ’)에 있으며, 짧은 숫따(sutta)에도 있습니다.
흔한 그리고 잘못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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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은 무상하다(imperman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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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들은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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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난 것들은 끝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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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함(평온함)에 이르는 것이 지복(행복)이다.
이 구절(게송)의 올바른 해석을 고찰해보겠습니다.
1. 아닛짜(anicca)는 물론 ‘우리가 만족하는 대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수명에 비해) 영원한 것조차도 만족스럽게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아닛짜(anicca)는 단지 무상함(impermanence)이 아닙니다. ‘아닛짜, 둑카, 아낫따 – 잘못된 해석’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여기서 와따(vata, ‘vatha’로 발음됨)는 ‘확실히’ 또는 ‘과연/정말로’를 의미합니다.
{‘와따_vata’에는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양 사마-다-낭 땅 와땅. 상와랏테나 실랑,(yaṃ samādānaṃ taṃ vataṃ. Saṃvaraṭṭhena sīlaṃ,)”, 즉 “계목/계율을 암송/낭송하는 것은 의례/의식이고, 도덕적 행위 즉 실라(sila)는 산(san)을 통제함으로써 달성된다.”는 구절에서와 같습니다. 따라서, 거기서 와따(vata)는 의례/의식을 의미하고, 또 다른 의미는 ‘행위/행동’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 맞는 의미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노-(manō), 와찌(vaci), 까-야(kāya) 상카-라(saṅkhāra)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것들은 모두 생각입니다(연관/관련된 생각이 없이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습니다). 그 상카-라(saṅkhāra)들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a paccayā viññāṇa)’를 통해 윈냐-나(viññāṇa)로 이어집니다.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즉, 강한 상카-라)를 통해 생성된 강한 윈냐-나(viññāṇa)는 미래의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모든 탄생은 죽음으로 끝납니다. ‘상카-라와 그 진정한 의미’와 ‘상카-라, 깜마, 깜마 비-자, 깜마 위빠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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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첫째 행은 모든 재탄생(우리의 아비상카라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우리가 만족하는 대로 유지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탄생은 죽음과 고통/괴로움으로 끝납니다.
2. 웁빠-다(uppāda)는 일어남을 의미하고, 와야(vaya)는 일어남을 멈출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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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우리는 상카-라(saṅkhāra)가 일어나는 것을 멈추게 함으로써 괴로움으로 이끄는 것들이 존재하는 것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것이 와야(vaya)입니다. 그것이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 내재된 궁극적인 메시지입니다. 담미노-(dhamminō)(또는 담마타_dhammathā)는 ‘자연법의 방식(길)’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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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둘째 행은 ‘그 상카-라(saṅkhāra)들이 일어나는 것을 그칠 수 있는 담마의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즉, 그것들은 ‘와야 담마-(vaya dhammā)’입니다. 그것은 또 다른 유명한 구절인 “와야 담마- 상카-라-(vaya dhammā saṅkhārā)”로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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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아윗자-(avijjā)를 제거함으로써) 상카라가 일어나는 것을 멈추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었기 때문에 빠리닙바-나(Parinibbāna) (즉 재탄생의 끝)에 도달하셨습니다.
3. 웁빳지뜨와-(uppajjitvā)는 (상카-라_saṅkhāra로 인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괴로움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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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룻자(nirujja)는 (상카-라_saṅkhāra가 일어나는 것을 멈추게 함으로써) 그것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4. 떼(te)는 ‘그것들’을 의미하므로 떼상(tesaṃ)은 그 (세가지) 산(san), 즉 로-바(lōbha), 도-사(dōsa), 모-하(mōha)를 의미합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삼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우-빠 사마(vūpa sama)는 ‘제거하고 사마디에 도달함’을 의미합니다. 빠띠삼비다- 막가 빠까라나(Paṭisambhidā Magga Pakaraṇa)의 (Jhāna Vibhaṅga 부분) p. 55에서는, ‘위딱까위짜-라-낭 우-빠사마-(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는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āra)를 제거하고 사위딱카(savitakka), 사위짜-라(savicāra)를 얻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위딱까, 위짜-라, 사위딱까, 사위짜-라, 및 아위딱까, 아위짜-라’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수카(sukha)는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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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넷째 행은 ‘우리 마음에서 (세 가지 나쁜 ‘산_san’인) 로-바(lōbha), 도-사(dōsa), 모-하(mōha)를 제거함으로써, 우리는 (궁극의) 행복인 열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와하라까] 테로 존자님께서 암송(낭송)하신 것을 녹음한 것이 있습니다(세 번 반복됨, 오른쪽의 볼륨 조절 필요함).
https://puredhamma.net/wp-content/uploads/Anichchavatha-sankara.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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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구절(게송)은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기르기 위한 아주 좋은 깜맛타-나(kammaṭṭhāna, 명상 주제)입니다. 이 구절(게송)을 암송하고 그 의미를 숙고할 수 있습니다. 죽어서 많은 고통/괴로움을 겪는 것으로 이어진 그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숙고해 보세요. 그리고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숙고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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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 과정을 영구적으로 겪어 왔고, 태어날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지면서 괴로워하고, 또한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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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길(팔정도)을 따르고 상카-라(saṅkhāra)가 일어나는 것을 멈춤으로써 이 괴로움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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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것에 대해 우울/침울하게 되는 대신에,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기를 수 있다면,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아닛짜 산냐를 계발하는 방법-1’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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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깜맛타-나(kammaṭṭhāna, 명상 주제)는 또한 ‘우다야와야 냐-나(udayavaya ñāna)’, 즉 ‘상까따(sankata)의 일어남과 그 일어남을 멈추는 것에 대한 앎(지혜)’이 육성되게 할 것입니다. ‘Udayavaya Ñāna’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