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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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마스밍 사띠 이당 호띠 ㅡ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원문 : Paṭicca Samuppāda 섹션의 ‘Imasmim Sati Idam Hoti – What Does It Really Mean?’ 포스트

     

    ‘Imasmim sati idam hōti’는 대부분의 숫따에서 빠띳짜 사뭅빠-다, 즉 ‘깜마 축적 과정’을 묘사하는 첫 구절의 첫 번째 부분입니다. 이것은 ‘마음의 주의가 이것에 있을 때’를 의미합니다. 구절의 두 번째 부분은 ‘imasmim asati idam na hōti’로 시작하며, 이는 성스런 길에 있는 동안에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을 멈추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이는 ‘마음의 주의가 이것에 있는 것이 멈출 때’라는 의미입니다.  

     

    2018년 8월 5일 작성; 2026년 9월 12일 재작성; 2026년 9월 13일 개정(#12 추가)

     

    선문답 수수께끼?

     

    1. “Imasmim sati idam hōti, imassa uppādā idam uppajjāti; imasmim asati idam na hōti, imassa nirōdhā idam nirujjhatī ti”. 이 유명한 구절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연기)의 토대를 묘사하는 대부분의 숫따-(suttā)에 나타나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숫따 삐따까(경장)에서 논의되는 빠띳짜 사뭅빠-다는 (실시간으로 작용하는) 이답빳짜야따- 빠띳짜 사뭅빠-다(Idappaccayatā Paṭicca Samuppāda)뿐이므로, 이 빠띳짜 사뭅빠-다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 * 이 구절은 보통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그치면 저것이 그친다.”로 번역됩니다. 그것은 선문답 수수께끼처럼 들립니다!

    • * 그러나, 이답빳짜야따- 빠띳짜 사뭅빠-다(IPS)가 모두 (깜마 에너지 생성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오염 과정’에 관한 것임을 이해하면 그 구절의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IPS에 나오는 모든 항목은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그렇습니다. IPS를 통해 깜마, 즉 깜마 에너지를 생성할 때, 자-띠(jati)조차도 마음에서 생성됩니다.   

    • * 물론, 이는 나중에 (특정한 영역에 재탄생하는) 또 다른 형태의 자띠로 이어질 수 있는데, 띠삐따까 주석에서는 이를 우빠빳띠 빠띳짜 사뭅빠-다(UPS)라고 묘사합니다. 그러나 IPS 과정 자체도 이를 설명할 수 있는데, 이는 IPS 과정에서 이전 존재에서 분리되고 새로운 존재를 움켜잡는 순간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 * 그런데, ‘sati’는 ‘sathi’로 발음됩니다. ‘빠알리 낱말 ㅡ 쓰기와 발음’을 참조하세요.  

     

    2. 더 나은 번역은 “마음의 주의가 이것(X)에 있을 때 저것(IPS의 다음 항목 Y)이 마음에 일어나고, 마음의 주의가 이것(X)에 있는 것이 그칠 때 저것(Y)이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그친다.”입니다.

     

    • * 그 구절의 두 부분은 사성제를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 * 첫 번째 부분인 ‘Imasmim sati idam hōti, imassa uppādā idam uppajjāti’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성스런 진리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는 ‘sati’, 즉 ‘감각 경험이 실재한다(아윗자-)는 주의/믿음’이 두 번째 요소(상카-라)로 이어지는 등, 즉 ‘Avijjāya sati saṅkhārā honti, saṅkhāresu sati viññāṇaṁ hoti,’ 등으로 마지막 단계인 ‘jātiyā sati jarāmaraṇaṁ hotī’ ti.’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Ariyasāvaka Sutta (SN 12.49)’을 참조하세요. 그리고 표식 2.14에서, “So evaṁ pajānāti: ‘evamayaṁ loko samudayatī’ ti”, 즉 “그들은 ‘이 세상의 기원은 이와 같다’고 이해한다.”고 합니다. ‘세상의 기원’은 ‘재탄생 과정의 기원’, 즉 ‘재탄생 과정을 유지하는 또 다른 IPS 과정의 기원’을 의미합니다. 

    • * 두 번째 부분인 ‘imasmim asati idam na hōti, imassa nirōdhā idam nirujjhatī ti’은 세 번째와 네 번째 성스런 진리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는 ‘asati’, 즉 ‘감각 경험이 실재한다는 주의/믿음이 그침(즉, 아윗자- 니로다)이 두 번째 요소의 그침(상카-라 니로다)로 이어지는 등, 즉 ‘Avijjāya asati saṅkhārā na honti, saṅkhāresu asati viññāṇaṁ na honti’ 등으로 마지막 단계인 ‘jātiyā asati jarāmaraṇaṁ na hontī’ ti.’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Ariyasāvaka Sutta (SN 12.49)’를 참조하세요. 마지막으로 표식 4.10에서, “So evaṁ pajānāti: ‘evamayaṁ loko nirujjhatī’ ti”, 즉 “그들은 ‘이 세상의 그침은 이와 같다’고 이해한다”고 합니다. ‘세상의 그침’은 ‘IPS의 그침으로 재탄생 과정의 그침’을 의미합니다.

     

    사띠 ㅡ 아요니소 마나시까-라와 요니소 마나시까-라에 기반한 두 가지 유형

     

    3. ‘소따-빤나 단계 ㅡ 본질적인 개념과 불필요한 개념’ 포스트에서, 저는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적인 내용의 대부분이 상윳따 니까야 제2권에 요약되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위에서 논의한 ‘Ariyasāvaka Sutta (SN 12.49)’ 또한 그 시리즈에 속합니다. 다음은 그 시리즈에서 발췌한 또 다른 관련된 내용입니다.  

     

    • * 상윳따 니까야 제2권에서는 SN 12.1로 시작하여 IPS에 관한 숫따들을 먼저 다룹니다. 위 포스트에서, 제가 아래 점들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SN 12.1에서 SN 12.3까지 기본 개념이 설명된 후, 7개의 숫따에서 마지막 일곱 분의 붓다께서 어떻게 각각 IPS의 함목을 발견하셨는지 기술되고 있습니다.

    • * 예를 들어, ‘Vipassī Sutta (SN12.4)’을 참조하세요. 이 숫따에서는 위빠시 붓다께서 요니소 마나시까-라를 적용하여 각 항목을 어떻게 밝혀내셨는지를 논의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 과학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우리 감각 경험의 참된 근원은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만든 인식이 없다면, 세상에는 색깔도 소리도 맛도 냄새도 감촉도 없다’를 참조하세요.  

    • * 동일한 구절이 시리즈의 이어지는 숫따들에서 일곱 분의 부처님 모두에 대해 반복됩니다.

    • * 반면에, IPS 과정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사람(즉 뿌툿자나)은 아요니소 마나시까-라(ayoniso manasikāra)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일어나는 오염을 촉발시키는 탄생지(즉 ‘요니’)를 알지 못합니다. 그 촉발자는 ‘왜곡된 산냐-’, 즉 ‘세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입니다. ‘요니소 마나시까-라’의 의미에 대해서는 ‘요니소 마나시까-라 ㅡ 산냐-와 관계’을 참조하세요. 

     

    사띠 ㅡ 두 가지 의미

     

    4. 우리가 관심 있는 구절에서 핵심 낱말은 ‘사띠(sati)’입니다. 필자가 본 모든 영어 번역은 이 키워드를 빠뜨렸습니다!

     

    • * ‘사띠(sati)’라는 낱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믿음에 기반한  ‘주의(관심)’를 의미하는 평범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이해하는 바에 따라 어떤 것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여기서 그 이해는 감각 경험의 본질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 주의(‘마나시까-라’)는 감각 경험이 실재한다는 믿음에 기반한 ‘뿌툿자나’의 ‘아요니소 마나시까-라(ayoniso manasikāra)’입니다.

    • * 다른 하나는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에서 나타나는 삼마- 사띠(Sammā Sati)입니다. 여기서, 주의(‘마나시까-라’)는 성자의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입니다. ‘삼마- 사띠는 사띠빳타-나 부-미에서 경험되는 아-나-빠-나사띠다’을 참조하세요.

    • * 사실 그 구절에서 ‘사띠(sati)’는 그 평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구절의 두 번째 부분에서 ‘아사띠(asati)’는 그런 ‘평범한 사띠’가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삼마- 사띠와 같은 의미이며, 이는 IPS의 멈춤, 즉 닙바-나에 이르는 것입니다.

     

    5. 구절의 첫 번째 부분(‘Imasmim sati idam hōti, imassa uppādā idam uppajjāti’)은 위 #2에서 가리켜 보인 바와 같이, 빠띳짜 사뭅빠-다, 즉 ‘깜마 생성 과정’에 적용됩니다. 각 항목은 이전 항목이 있음을 기반으로 하여 일어납니다. 첫 항목(아윗자-)도 ‘왜곡된 산냐-’, 즉 ‘세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기반하여 일어납니다. 이는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빳짜야-'는 무슨 의미인가?’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해당 포스트를 꼭 읽어 보세요.   

     

    • * 구절의 두 번째 부분(‘Imasmim asati idam na hōti, imassa nirōdhā idam nirujjhatī ti’)은 빠띳싸 사뭅빠-다의 그침, 즉 ‘깜마 생성 과정의 멈춤’에 적용됩니다.

    • * 감각 경험이 실재한다는 생각/믿음(‘사띠’)에서 그 믿음을 버리는 것(‘아사띠’)으로 전환은 소따-빤나 단계에서 일어납니다. 이 전환은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에서 시작되어 소따-빤나 팔라 순간에 (삭까-야 딧티를 포함하여 처음 세 가지 상요자나가 제거됨과 함께) 마음에 영구적으로 자리잡습니다. 

    • * 감각 경험이 실재한다는 잘못된 견해를 버리면, 소따-빤나의 삼마- 딧티에 이릅니다. 소따-빤나는 더 이상 감각 경험이 실재한다는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 잘못된 인식(산냐-)을 극복하지 못했으므로 여전히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습니다. 이 들러붙음은 ‘까-마 라-가 상요자나’가 제거될 때 아나-가-미 단계에서 사라집니다.

     

    사띠 ㅡ 구절에서 평범한 의미

     

    6. 부도덕한 일(강도 계획, 사람을 죽이기 위한 폭탄 조립 등)에 마음을 두면, 아요니소 마나시까-라에 기반한 부도덕한 행위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행위는 (촉발된 아윗자-를 통해 마음이 일어나는) ‘아뿐냐 아비상카-라(또는 아뿐냐-비상카-라)’로 행하고 이답빳짜야따- 빠띳짜 사뭅빠-다(IPS) 과정을 시작합니다.

     

    • * 위 #3에 언급된 바와 같이, 이는 뿌툿자나의 ‘아요니소 마나시까-라’에 기반한 주의력(마나시까-라)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감각 경험이 실재한다고 믿습니다. 돈을 훔치려는 욕구는 ‘감각 경험을 즐기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은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왜곡된 산냐-’라는 ‘내재된 촉발자’에 의해 생성된 이 미혹된 마음성향은 자동적으로 아윗자-를 발생시키고 이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라는 첫 단계로 이어집니다. IPS의 다른 항목들도 이어집니다. 그렇게 축적된 깜마 에너지는 아빠-야-에 재탄생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 * (보시와 같은) 도덕적 행위를 할 때에도, 뿌툿자나는 감각 경험이 실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행위에도 IPS 과정이 수반됩니다. 이제는 ‘뿐냐 아비상카-라(또는 뿐냐-비 상카-라)’가 관련되는데, 이는 공덕이 있지만, 여전히 아윗자-로 행해집니다. 이는 인간계 이상의 선처에 재탄생되게 합니다.  

    • * 요점은 (‘아요니소 마나시까-라’에 기반한) 이 두 과정 모두 재탄생 사이클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 * 따라서, 이 ‘사띠의 평범한 버전’은 ‘아요니소 마나시까-라’, 즉 사성제에 대한 무지를 수반합니다. 위 #3에서 가리켜 보였듯이, 모든 붓다는 아윗자-를 촉발시키는 것을 파악함으로써 고통의 근본 원인을 발견하셨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감각적 즐거움이 실재한다고 믿고 ‘즐거움’을 준다고 여겨지는 ‘물질적인 것’을 축적하는데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그들이 까-마 로까에서 경험하는 6가지 유형의 ‘왜곡된 산냐-’에 기반합니다. ‘앗따또 사마누빳사띠와 소따빤나 단계’를 참조하세요. 

     

    삼마- 사띠 ㅡ 사띠의 더 깊은 의미

     

    7. ‘사띠(sati)’의 더 깊은(심오한) 의미는 마음이 아윗자-를 촉발시키는 것이 깜마 생성의 완전한 과정, 즉 ‘뿌라-나 깜마’와 ‘나와 깜마’라는 두 단계로 일어나는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멈춰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이해됩니다. 여기서, ‘뿌라-나’, 즉 ‘초기’ 깜마 축적은 아요니소 마나시까-라에 기반하여 (의식적 생각이 없이) 자동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 무의식적인 깜마 축적 과정을 이해하고 ‘요니소 마나시까-라’를 확립함으로서 소따-빤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을 재탄생 과정에 묶는 처음 세 가지 상요자나만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 * 세 가지 상요자나가 제거되는 것은 뿌툿자나의 마음이 ‘왜곡된 산냐-’에서 해방된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가서 요니소 마나시까-라를 확립할 때입니다. 그러나, 이는 짧은 시간 동안만 지속되며, 마음은 곧 사띠빳타-나 부-미에서 나옵니다. 

     

    삼마- 사띠는 사띠빳타-나 부미에서만 있다

     

    8. 아라한 단계 아래의 성자도 마음이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을 때만 삼마- 사띠를 가질 것입니다. 그때는 어떤 로끼야 산냐-도 마음에 아윗자-를 촉발시킬 수 없습니다.

     

    • * 따라서, 소따빤나는 재가자로서 보통 생활을 하면서 아요니소 마나시까-라(ayoniso manasikāra)를 생성할 수 있고, 그 세간(평범한) 사띠로 일부 아꾸살라 깜마에 관여할 수 있습니다. 즉, IPS 과정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 가지 딧티 상요자나를 제거했기 때문에 아빠-야가-미 깜마(apāyagāmi kamma)에 관여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소따-빤나는 ‘까-마 라-가 상요자나’를 제거함으로써 ‘까-마 로까 산냐-’를 극복하기 위해 아나-가미 단계에 이르러야 합니다.

    • * 상요자나를 끊기 위해서는 소따-빤나는 사띠빳타-나 부-미(일시적으로 ‘까-마로까 산냐-’에서 해방)에 다시 들어가 위빠사나-(통찰 명상)를 더 오랫동안 행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소따-빤나는 마하-사띠빳타-나 숫따에 설명된 과정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왜곡된 산냐-에서 해방된)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가 오랫동안 머물면서 위빠사나를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소따-빤나 단계 위의 막가 팔라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 * 소따-빤나는 일곱 번의 바와(bhava) 내에 아라한과에 도달하는 것이 보장되어 있으므로, 설령 이번 생에 사띠빳타-나 수행을 시작하지 않더라도 위험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소따-빤나 단계가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성자만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갈 수 있다

     

    9. 요니소 마나시까-라를 확립한 성자(즉, 소따-빤나 단계 이상)만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띠빳타-나 부-미 ㅡ 로까 산냐-에서 벗어남’을 참조하세요.

     

    • * 사띠빳타-나 부-미에서 삼마- 사띠로, 깜마 생성이 멈춥니다(즉, 모든 IPS 과정이 멈춤). 이때 참으로 핵심 담마 개념을 이해하고 막가 팔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마음이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동안에는 IPS 또는 빤쭈빠-다-낙칸다 생성(둘다 마음에서 ‘깜마 생성’을 설명함)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 *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 이상의 성자는 감각적 즐거움이 신기루임을 깨달았습니다. 즉,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를 지녔습니다. 그들은 ‘감각 경험이 실재한다’는 평범한(세간) 세계관을 버렸습니다(‘아-나빠나’의 ‘아-빠-나’ 부분). 그들은 ‘감각 경험이 환상이다’라는 부처님의 세계관의 진리를 깨달았습니다(‘아-나빠나’의 ‘아-나’ 부분). ‘붓다 담마 ㅡ 체계화’ 섹션의 상단에 있는 링크를 참조하세요. 

     

    일시적 닙바-나 = 따당가 닙부따 = 삽빠바-사 찟따

     

    10. 위의 논의로부터, 다음 사항이 분명해집니다. (i) 뿌툿자나는 마음에 아윗자-(avijjā)가 없는 감각 사건을 경험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아윗자-는 ‘까-마 다-뚜’ 단계에서 항상 일어나는 ‘까-마 로까 산냐’ 유형에 의해 자동으로 촉발되기 때문이다. (ii) 아라한은 아윗자 상요자나/아누사야를 제거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는 아윗자-가 결코 발생할 수 없으며, 어떤 종류의 ‘왜곡된 산냐-’에도 들러붙지 않는다. (iii) 소따-빤나는 소따-빤나 팔라에 도달할 때 ‘왜곡된 산냐’를 극복했다. 그러나 이제, 소따-빤나는 사띠빳타-나를 수행하여  사띠빳타-나 부-미(모든 ‘왜곡된 산냐-’에서 해방)에 들어가 성스런 길을 육성하여 더 높은 막가 팔라를 얻어야 한다. 우리는 위사-까와 아나-타삔디까처럼 성스런 길을 육성하지 않고 소따-빤나로 죽은 여러 소따-빤나들을 알고 있습니다. 

     

    • * 사띠빳타-나를 육성하는 것은 ‘사마타(Samatha)’를 육성하는 것과 같으며, ‘사마타 상태’는 사띠빳타-나 부-미에서 실현됩니다.

    • * 마음이 사마타(즉 사띠빳타-나 부-미)에 이르면, 그때 소따-빤나는 참된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더 높은 막가 팔라를 얻을 수 있습니다.

    • * 뿌툿자나는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고 사마타를 얻기 전까지는 참된 위빠사나-를 행할 수 없습니다. 호흡 명상으로 인한 ‘마음의 고요함’은 ‘사마타’가 아님에 유의하세요. ‘사마타’ 상태는 사띠빳타-나에 있을 때입니다.

    • * 세부 사항은 ‘붓다 담마 ㅡ 체계화’ 섹션의 상단에 있는 링크를 참조하세요. 

    • * 위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많은 뿌툿자나들이 사띠빳타-나 수행에 매달리며 시간을 낭비합니다. 마하-사띠빳타-나 숫따가 닙바-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서두에 명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스런 길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해야 합니다.

     

    11. ‘Attadīpa Sutta (SN 22.43)’는 빅쿠가 어떻게 ‘따당가 닙부따(tadaṅga nibbuta)’를 얻는지 설명합니다. 여기서, ‘따당가(tadaṅga)’는 ‘일시적인’을 의미하며, 따라서 ‘따당가 닙부따’는 ‘일시적으로 닙바-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마음이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을 때,

    • * 숫따는 소따-빤나의 마음이 어떻게 사띠빳타-나 부-미에서 ‘따당가 닙부따’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이는 이전 포스트인 ‘앗따또 사마누빳사띠와 소따빤나 단계’에서 설명되었습니다.

    • * 그러므로,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동안에는 아윗자-(avijjā)가 일시적으로 차단되므로, 소따-빤나도 아라한의 마음성향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따당가 닙부따’의 의미입니다.

    • * 그러나, 보통 일상 생활에서는 ‘까-마 라-가 상요자나(kāma rāga saṁyojana)’가 그대로 있으므로 ‘까-마 라-가’가 소따-빤나에게 일어납니다. 이 상요자나는 아나-가-미 단계에 도달한 후에야 깨집니다. 그러나, 소따-빤나는 처음 세 가지 상요자나를 깨뜨렸으므로 아빠-야에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장 나쁜 부도덕한 행위에는 관여할 수 없습니다. 뿌라-나 깜마 단계부터 그의 마음은 잘못된 견해와 함께 모든 감각 입력에 들러붙는 것이 자동으로 차단됩니다.

    • * ‘Dvayatānupassanā Sutta (Snp 3.12)’는 많은 깊은 통찰이 담긴 심오한 숫따입니다. 제가 공유한 링크에서 직접 읽어보시면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링크의] 번역은 적절합니다. 이 숫따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  

    • 12. ‘Samādhibhāvanā Sutta (AN 4.41)’는 사마-디 바-와나-(samādhi bhāvanā)의 네 가지 이점을 설명합니다. 링크된 영어 번역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사마-디 바-와나-’는 마음이 ‘닙바-나의 지복’을 경험하는 사띠빳타-나 부-미에서만 가능한데, 그곳에서는 아윗자-(그리고, 따라서 모든 오염)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i. 이 생에서 닙바-나의 지복(sukha vihārāya)을 누리는 것(diṭṭhadhamma). 표식 2.1에서는 이것이 자-나 경험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우바또보가 아라한(ubhatobhoga Arahant)들이 육성한 아리야 자-나이며, 다른 모든 사람들(대다수)은 아리야 자-나가 아닌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에 들어갑니다.

      ii. 냐-나닷사납빠띨라-바-야(ñāṇadassanappaṭilābhāya), 즉 더 높은 지혜로 이어지는 위빠사나-의 육성. 표식 3.2에서는 ‘알로까 산냐-(aloka saññā)’를 육성하는 것의 역할을 가리켜 보입니다(‘ālokasaññaṁ manasi karoti‘). 논의했듯이, ‘알로까 산냐-’는 ‘빛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로끼야 산냐-(lokiya saññā)’에서 마음을 떼어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iii. 위빠사나-의 육성 또한 ‘사띠삼빠잔냐-야(satisampajaññāya)’, 즉 ‘삼마- 사띠를 유지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iv. 마지막의 궁극적인 이득은 ‘번뇌의 소멸’, 즉 ‘아라한과’이며(āsavānaṁ khayāya), 이는 위의 (ii)와 (iii)의 결과입니다. 표식 5.2에서 설명했듯이, 이는 (ii)와 (iii) 단계에서 ‘빤짜우빠-다-낙칸다’의 일어남과 그침을 조사한 결과입니다(pañcasu upādānakkhandhesu udayabbayānupassī viharati). 이것은 우리가 위에서 논의한 과정이며, “Imasmim sati idam hōti, imassa uppādā idam uppajjāti; imasmim asati idam na hōti, imassa nirōdhā idam nirujjhatī ti.”라는 근본 구절에 기반한 것입니다.

    • * 표식 3.4의 ‘sappabhāsaṁ cittaṁ bhāveti’라는 구절은 사띠빳타-나 부-미에서 나타나는 오염없는 ‘일시적인 빠밧사라 찟따’(sappabhāsa citta)를 의미한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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