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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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 로까에서 소따빤나 단계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 Sotapanna Stage from Kāma Loka ’ 포스트 

     

    소따빤나 단계에는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할 가치가 있다는 잘못된 견해인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제거함으로써 도달됩니다. 그 깨달음은 까-마 로까(kāma loka)에서 성취될 수 있으며, 자-나(jhāna)를 기르는 것은 필수 사항이 아닙니다.

     

    2025년 3월 1일 작성

     

    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Path to Sotapanna from Kama Loka

     

    모든 감각 사건은 마음이 닙바-나에서 멀어지게 한다

     

    1. 위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든 감각 사건은 뿌툿자나(열 가지 상요자나가 그대로 남아 있음)의 마음을 닙바-나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따라서, 그러한 이해가 없다면 뿌툿자나는 닙바-나(세상과 분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뿌툿자나는 항상 하향 경로(viparināma)에 있습니다. 그 경로는 닙바-나라는 더 나은 결과를 향해 반대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위 도표를 참조하세요(빠리나-마/위빠리나-마에 대한 설명은 ‘참고 사항 1’를 참조). 만약 누군가가 그러한 생각을 마음에 새길 수 있다면, 그것은 삭까-야 딧티를 제거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 그것은 모든 감각 사건은 ‘왜곡된 산냐-’와 함께 시작되고 뿌툿자나(모든 보통 사람)의 마음은 자동적으로 그것에 들러붙어 까-마 로까/바와(kāma loka/bhava)로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시적인 즐거운 감각’이 재탄생 과정에 가두게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 *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음을 극복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i) 그 즐거움이 실제적이라고 해도, 그것들에 들러붙으면 미래에 부정적인 결과(아빠-야-에 태어남)를 가져오는 부도덕한 행위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 (ii) 붓다께서 그러한 즐거움이 환상이라고 보여 주셨으므로, 그것들에 들러붙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마술쇼를 보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 * 위 접근 방식 (i)을 취함으로써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감각적 즐거움’이 환상임을 알아낼 수 있다면, 즉,  더 깊은 접근 방식 (ii)를 따르면 삭까-야 딧티를 제거하기가 훨씬 더 쉽게 됩니다. ‘왜곡된 산냐-(산자-나-띠)에 속음 ㅡ 들러붙음(땅하-)의 기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것은 매우 응축된 포스트입니다. 개념이 마음에 스며들도록 제시된 링크의 포스트를 읽어보세요. 관련된 모든 것을 하나의 포스트에 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위 도표의 ‘왜곡된 산냐에서 벗어난’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umi)에 도달하려면 먼저 마음이 사마-디(samādhi)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이 오랜 시간 동안 담마 위딱까/위짜-라에 참여(제공된 링크 포스트에서 설명된 틸락카나와 관련 개념을 숙고)해야 합니다! 그 포스트들을 인쇄해서 조용한 시간에 한두 시간 동안 살펴보면 좋습니다. 한 번 시도해보고 마음이 사마-디에 도달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확인해 보세요. 이것은 법문을 듣는데 유리한데, 마음이 장시간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읽기 모드(reading mode)’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제시된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두 가지 학습 모드는  이전 포스트인 ‘닙바-나로 가는 길 ㅡ 담마를 배워 소따빤나가 됨’에서 논의되었습니다. 

     

    까-마 산냐-의 제거는 딧티 상요자나의 제거 후에 일어난다

     

    2.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음을 극복하는 데는 두 단계가 있습니다. (i)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지혜로 봅니다. 이런 이해가 마음에 자리잡으면, 세 가지 ‘딧티 상요자나’(삭까야 딧티, 위찌낏차-, 실랍바따 빠라-마-사)가 삭까야 딧티의 제거로 끊어집니다. (ii) 삭까야 딧티라는 잘못된 견해가 제거되더라도 왜곡된 까-마 산냐-(kāma saññā)를 통해 일어나는 ‘거짓된 감각 즐거움’으로 인해 여전히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을 것입니다. 그 ‘왜곡된 까-마 산냐-’(우리 몸에 내장되어 있음)을 극복하기 위해, 소따빤나는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를 길러야 합니다. 그러면 두 가지 윤회 족쇄/상요자나(까-마 라-가 및 빠띠가)가 더 제거되어 닙바-나의 아나-가-미(Anāgāmi) 단계로 이어집니다. 

     

    • * 다음 비유는 기본 개념을 줄 수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는 의학 문헌을 읽음으로써 음주가  (건강상 위험을 포함하여) 많은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지혜롭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해는 음주가 자신에게 좋다는 잘못된 견해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술을 마심으로써 생긴 ‘즐거움 산냐-(pleasure saññā)’에 들러붙음을 극복하려면 추가적인 노력(보통 치료 세션)이 필요합니다. 술을 마시는 것이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지혜롭게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까-마 산냐-(kāma saññā)를 극복하여 까-마 라-가(그리고 빠띠가)를 제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는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를 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위의 도표를 참조하세요. 알코올 중독자의 비유에서 치료 세션은 사띠빳타-나를 기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 * 아나-가-미(Anāgāmi) 또는 아라한뜨(Arahant)의 마음은 마음을 까-마 바와(kāma bhava)에 묶는 다섯 가지 하위 상요자나(삭까-야 딧티, 위찌깃차-, 실랍바따 빠라-마-사, 까-마 라-가, 빠띠가)를 모두 끊었습니다. 그들은 까-마 산냐-(kāma saññā)가 환상이라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것에 들러붙는 것을 극복했습니다! 

    • *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은 까-마 바와(kāma bhava)/까-마 로까(kāma loka)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마음은 ‘왜곡된 까-마 산냐-(distorted kāma saññā)’와 함께 일어날 수 있는 어떤 감각적 즐거움에도 자동적으로 들러붙지 않습니다. 위의 도표를 참조하세요.

     

    들러붙음은 까-마 앗사-다가 없어도 일어난다

     

    3. 더욱이, 뿌툿자나의 마음은 ‘감각적 즐거움’, 즉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를 생성하지 않는 감각 사건에도 들러붙습니다. 예를 들어, 차를 차고 여행하는 중에 도로가에 무작위로 보이는 것들은 들러붙음을 유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뿌툿자나의 마음은 모하(감각 사건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모름)로 들러붙습니다. 따라서, 뿌툿자나의 마음은 항상 까-마 로까(kāma loka)에서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에 도달합니다. 이 미묘한 점은 ‘참고 사항 2’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 * 이 과정에 대한 개념을 얻기 위해 ‘들러붙음의 단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과정은 부처님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단 설명되면, 누구나 이 과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 주요 단계는 위 도표에 나와 있습니다. 도표가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도표를] 참조하면서 텍스트를 읽으면 둘 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여기서는 까-마 로까(인간 영역)에서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자-나를 통해 이 단계에 도달하는 방법을 논의할 것입니다.

     

    까-마 다-뚜의 루빠 빠띠상웨디-

     

    4. 감각 입력을 받으면, 인간 영역에 태어난 모든 이들의 마음은 처음에 까-마 다-뚜(kāma dhātu) 상태가 됩니다. 도표 하단의 작은 푸른색 화살표가 그것을 나타냅니다. 보는 사건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 * 사람으로 태어난 모든 이들의 마음은 자동적으로 ‘까-마 다-뚜’ 단계에 있는 중에 까-마 산냐-(kāma saññā)를 얻습니다. 따라서, 아라한뜨(Arahant) 또는 아나-가-미(Anāgāmi)도 또한 ‘왜곡된 까-마 산냐-(distorted kāma saññā)’(예를 들어, 꿀의 달콤함 또는 부패한 음식의 악취)를 얻습니다. 

    • * 이것은 마음이 감각 입력과 접촉하는 루-빱빠띠상웨디-(루빠 빠띠상웨디-) 단계입니다. 여기서, 빠띠상웨디-(paṭisaṁvedī, paṭi saṁvedī)는 ‘왜곡된’ 산냐-로 시각대상(광경)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 논의했듯이, 이것은 아라한을 포함하여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자동으로 발생합니다.

    • * 이것은 위 도표의 ‘푸른색 영역’에서 발생합니다. 마음은 아직 ‘까-마 로까(kāma loka)’로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 *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윈냐-나는 항상 오염되어 있음)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푸른 색 영역’은 마음이 ‘까-마 라-가’로 그 보는 것에 들러붙는 다음 단계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경험하는 ‘딧테 딧타맛땅 바윗사띠(diṭṭhe diṭṭhamattaṁ bhavissati)’ 상태입니다. ‘냐-니다-나- 히 빠빤짜 상카- ㅡ 부도덕한 생각은 '왜곡된 산냐-'에 기반한다’ 포스트의 #2를 참조하세요.

     

    루빠라-가 빠띠상웨디는 까-마 로까로 데려간다

     

    5. 그 까-마 산냐-(kāma saññā)에 들러붙는 것은 까-마 라-가(kāma rāga)가 마음에 자동적으로 일어날 때에만 두번째 단계에서 발생합니다. 그것은 그 다음의 ‘루-빠 라-가 빠띠상웨디-(rūpa rāga paṭisaṁvedī)’ 단계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까-마 라-가 상요자나(kāma rāga saṁyojana)를 그대로 지니고 있을 때만 발생합니다.

     

    • * 루빠 빠띠상웨디-(rupa paṭisaṁvedī)루-빠 라-가 빠띠상웨디-(rūpa rāga paṭisaṁvedī) 사이의 차이는 참고 사항 3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 * 따라서, 도표의 중간에 있는 큰 푸른색 화살표로 지시된 바와 같이, 뿌툿자나의 마음은 자동적으로 까-마 로까(kāma loka)의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로 전환됩니다.

    • * 뿌라-나 깜마 단계는 마음이 외부 신호에 대한 그 자신의 버전을 만드는 바힛다 윈냐-나(bahiddha viññāna)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그 상태는 ‘왜곡된 까-마 산냐-(distorted kāma saññā)’와 함께 오므로, 마음은 자동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그 시각대상(광경)의 참된 본질이라고 믿습니다. 그 다음, 앗잣따 윈냐-나(ajjhatta viññāna)가 일어나는데,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입니다.

    • * 그 단계들은 사까다-가-미, 소따빤나, 또는 뿌툿자나의 마음에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러나, 들러붙음의 강도는 다섯가지 모든 상요자나가 그대로 있는 뿌툿자나에게 가장 높습니다. 그 때문에 소따빤나(또는 사까다-가-미)는 아빠-야가-미 깜마(apāyagāmi kamma)를 행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왜곡된 산냐-에 들러붙는 것은 삭까-야 딧티와 다른 두 가지 딧티 상요자나의 제거와 함께 그 강도가 줄어들었습니다.

    • * 아라한뜨/아나-가-미의 마음은 까-마 라-가(kāma rāga)가 제거되었으므로, 그들의 마음은 왜곡된 산냐-에 들러붙지 않으며, 따라서 까-마 로까(도표의 ‘분홍색 박스’ 내)로 전환되지 않습니다. 

     

    까-마 다-뚜와 까-마 바와 사이의 차이

     

    6. 붓다께서는 ‘Sanidāna Sutta (SN 14.12)’에서 이 차이를 “Kāmadhātuṁ, bhikkhave, paṭicca uppajjati kāmasaññā, kāmasaññ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saṅkappo, kāmasaṅkapp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cchando, kāmacchand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pariḷāho, kāmapariḷāh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pariyesanā.”로 설명하셨습니다. 그 의미는  “까-마 다-뚜에 들러붙음은 까-마 산냐-로 이어지고, 까-마 산냐-에 들러붙음은 까-마 상깝빠로 이어지며, 까-마 상깝빠에 들러붙음은 까-막찬다로 이어지고, 등으로 까-마 빠리예사나-로 이어진다.”입니다.

     

    • * 그 구절은 왜 아라한뜨와 아나-가-미도 까-마 산냐-를 가지는지를 설명합니다. 첫 단계(“Kāmadhātuṁ, bhikkhave, paṭicca uppajjati kāmasaññā”)는 라-가(rāga), 도사(dosa), 모하(moha), 즉 산(san)(‘sañ’ 또는 ‘saṅ’으로 쓰여지기도 함)을 수반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까-마 산냐-(kāma saññā)는 앗사-다(assāda)(감각적 즐거움에 가치를 두는 것)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래에서 논의됩니다.

    • * 그러나 아라한뜨의 마음은 그 구절의 나머지 단계(까-마 상깝빠, 까-막찬다, 까-마빠릴라-하, 까마바리예사나-)를 거치지 않습니다. 깜마 에너지는 이 나머지 단계에서 생성됩니다.

    • * 그러나, 아라한뜨/아나-가-미 단계 아래의 모든 이들의 마음은 들러붙고 자동적으로 최소한 까-마 상깝바를 생성합니다.

     

    까-마 로까에 들어가면, 더 많은 마음 오염이 일어난다 

     

    7. 특정 감각 입력에 따라, 마음은 여러 단계를 거쳐 반복적으로 그것에 들러붙을 수 있습니다. (붓다께서 설명하신 대로) 그 단계들을 열거하더라도, 그 단계들은 너무나 빨리 일어나므로 부처님 외에는 아무도 식별할 수 없습니다. 뿌툿자나는 일반적으로 과정의 마지막에서 들러붙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때가 까-야(kāya), 와찌(vaci), 및 마노 깜마(mano kamma) (도표 참조)를 짓기 시작할 때입니다.  

     

    • * 들러붙음의 단계들은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 및 ‘아-람마나(감각 입력)는 결정적인 과정을 시작되게 한다’ 포스트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 * 대부분의 감각 사건은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에 이르지 않습니다. 나와 깜마 단계에서는 까-야, 와찌, 및 마노 깜마를 통해 깜마 축적에 관여합니다. 

    • * 중요한 점은 마음이 ‘나와 깜마 단계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이미 ‘까-마 상깝빠(kāma saṅkappa)’로 오염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깝빠(saṅkappa)는 매우 미묘하고 약한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입니다. 마음이 더 들러붙으면, 상깝빠는 (도표에 표시된 대로) 나와 깜마 단계에서 아비상카-라(그리고 훨씬 강한 까-야, 와찌, 마노 깜마)가 됩니다.

    • * 까-마 라-가(kāma rāga)는 “saṅkappa rāgo purisassa kāmo”로  정의되어 있으므로(‘Nibbedhika Sutta’), 까-마 라-가는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에서 이미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까-마 라-가가 생성되는 것은 까-마 라까 상요자나가 그대로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자동적인데, 그것은 생각 없이도 일어납니다.

    • * 아라한뜨 또는 아나-가-미에게는 까-마 라-가가 제거되었으므로, 그들의 마음은 ‘까-마 다-뚜(kāma dhātu)’ 단계에 머무릅니다.

     

    산딧티꼬 ㅡ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산의 기원’을 보는 것

     

    8. 많은 사람들은 다사 아꾸살라(나와 깜마 단계 내, 도표 참조)를 삼가는 것만으로도 닙바-나를 얻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 그러나, 위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닙바-나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이미 일어났으며, 나와 깜마 단계에서 마음이 까-야(kāya), 와찌(vaci), 및 마노 깜마(mano kamma)를 축적하기 훨씬 전입니다. 도표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산(라-가, 도사, 모하)에 들러붙는 것이 루빠 빠띠상웨디-(rupa paṭisaṁvedī) 단계가 아니고 루-빠 라-가 빠띠상웨디-(rūpa rāga paṭisaṁvedī) 단계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을 때만 ‘산딧티꼬(sandiṭṭhiko)’가 됩니다. 

    • * 이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참고 사항 3’을 꼭 읽어보세요.

     

    까-마 라-가 상요자나가 제거될 때까지, 마음은 까-마 로까에 들어간다

     

    9. 그러므로, 까-마 라-가 상요자나(kāma rāga saṁyojana)가 그대로 있는 모든 이들, 즉 사까다-가-미 이하의 모든 이들은 어떤 감각 입력에 들러붙고 까-마 로까(도표의 ‘붉은색 박스’ 안)에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 * 마음에 까-마 라-가가 그대로 있다면 그 마음이 까-마 산냐에 접하자마자 그것에 들러붙음이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뿌툿자나의 경우와 같이) 세 가지 딧티 상요자나가 그대로 있다면 그 들러붙음은 더 강하게 됩니다.

    • * 까-마 로까에 들어가면, 마음은 위 #4~#6에서 논의한 단계를 통해 더욱 오염됩니다.

    • * 요점: 뿌라-나 깜마 단계의 자동적 들러붙음은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에 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뿌툿자나의 마음은 빤짝칸다(pañcakkhandha)를 결코 경험하지 않습니다.

    • * 그 자동적 들러붙음이 그치려면, 뿌툿자나의 마음은 까-마 산냐에 이르지 않아야 합니다. 그 결정적 단계가 소따빤나 팔라 순간에 (처음으로) 일어납니다.

     

    까-마 산냐-를 우회하는 방법

     

    10. 그러면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소따빤나나 사까다-가-미는 어떻게 까-마 산냐-에 접하는 것을 피했을까요?(그래서 빤쭈빠-다-낙칸다에 대한 들러붙음을 피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까-마 다-뚜 단계를 우회해야 합니다! 그러나 감각 입력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감각 입력에서는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내장 까-마 산냐-(kāma saññā)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 * 대신에, 뿌툿자나는 나와 깜마 단계(뿌툿자나의 마음이 있는 곳)에서 시작하여 위 도표의 왼쪽을 향해 ‘뒤로 가서’ 까-마 다-뚜(kāma dhātu)를 건너뛰어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umi)에 들어가야 합니다.

    • * 그것은 법문을 듣거나 이와 같은 포스트를 읽는 동안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위 #1의 마지막 부분을 참조하세요. 그것은 또한 법문이나 텍스트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숙고하는 동안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닙바-나로 가는 길 ㅡ 담마를 배워 소따빤나가 됨’ 포스트의 #9(및 링크)를 참조하세요.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이 일시적으로 ‘까-마 산냐-’를 극복해야 한다

     

    11. 뿌툿자나의 마음이 뒤로 이동하여 ‘까-마 다-뚜(kāma dhātu)’ 단계를 넘어 까-마 산냐-가 없는 정신적 공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정신적 공간을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umi)(도표 참조) 또는 삼마- 사띠(성스런 팔정도의 일부)가 오염이 없는 상태로 확립(사띠빳타나는 ‘삼마- 사띠의 확립’을 의미함)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 * 마음이 까-마 로까(kāma loka)에 있으면, 빤짜 니-와라나(pañca nīvaraṇa)(닙바-나를 덮고 차단하는 다섯가지 오염층)에 의해 덮힙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열쇠 - 5가지 장애’를 참조하세요.

    • * 삼마- 사띠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이 빤짜 니-와라나(pañca nīvaraṇa)를 극복하고 까-마 다-뚜(kāma dhātu) 상태를 향해 뒤로 이동하여 이를 극복하고,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umi)로 건너가야 합니다.

    • * 그것은 마음이 부처님의 더 넓은 세계관을 파악하여 삼마- 딧티(Sammā Ditthi)에 이르고 소따빤나가 될 때 일어납니다(빤쭈빠다-낙칸다, 즉 모든 감각 사건에 들러붙음이 무익함을 이해함). ‘참고 사항 4’를 참조하세요.

    • * 이 지점을 이해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마음이 사띠빳타-나 부미(까-마 산냐-가 없음)로 향해 이동함

     

    12. 담마 개념에 완전히 초점을 맞출 때, 아비상카-라가 일시적으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마음은 나와 깜마를 생성하지 않고 ‘뿌라-나 깜마’ 단계로 이동합니다. 도표를 참조하세요. 이것이 빠리나마(parināma), 즉 ‘더 나은 결과를 향해 이동함’입니다. ‘참고 사항 1’을 참조하세요.

     

    • * 법문(또는 텍스트)에서 논의된 자료가 감각적 즐거움의 무익함과 그 부정적인 결과를 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런 경우, 마음은 일시적으로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와 ‘까-마 다-뚜(kāma dhātu)’ 단계를 극복하고 ‘까-마 산냐-(kāma saññā)’가 없는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umi)’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 그때가 뿌툿자나의 마음이 처음으로 ‘까-마 산냐-’에서 벗어나는 순간입니다.

    • * 그 순간에, 마음은 소따빤나 단계를 위한 빠리깜마(Parikamma, P), 우빠짜-라(Upacāra, U), 아눌로마(Anuloma, A), 고뜨라부(Gotrabu, G), 막가(magga, Pa), 및 팔라(phala, Fr)를 거칩니다. ‘찟따 위-티 ㅡ 감각 입력의 처리’ 포스트의 #16을 참조하세요.

     

    삭까-야 딧티의 제거

     

    13. 많은 경우, 부처님의 가르침이 점차 명확해지면, 사람은 점차적으로 소따빤나 단계에 접근합니다. 그런 경우에, 뿌툿자나의 마음은 먼저 빠리깜마(Parikamma) 단계에 도달합니다. 그것에 반복적으로 접근하면 우빠짜-라(upacāra) 단계로 나아가고 어느 시점에서 아눌로마(anuloma) 단계로 전환이 일어나면 그것에 반복적으로 도달하기 시작합니다.

     

    • * 마음이 고뜨라부(gotrabu) 단계에 도달하면, 그것은 고뜨라(gotra), 즉 뿌툿자나(puthujjana)에서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 단계의 아리야(성자)로 계보가 전환되는 것입니다.

    • * 따라서, 사람은 고뜨라부 찟따(Gotrabu citta)와 함께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가 될 것입니다.

    • * (현재 육체가 죽기 전의) 어느 시점에서 마음은 담마를 숙고하는 중에 소따빤나 막가 및 필라 순간을 경험합니다. 즉, 그 사람(소따빤나 아누가-미)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합니다.

    • * ‘Khandha Sutta (SN 25.10)’에 설명된 바와 같이, 두 가지 유형의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가 있는데, 삿다-누사-리(saddhānusārī)와 담마-누사-리(dhammānusārī)입니다(링크된 숫따의 표식 2.1). 그들이 죽음 전에 소따빤나에 도달한다는 사실은 표식 2.3에 나와 있습니다.  

     

    감각 사건에 들러붙음

     

    14. 감각 사건에 들러붙는 것은 미래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이 점을 완전히 이해해야 합니다. ‘감각 입력으로 '세상의 일어남', 즉 '로까 사무다야'가 시작된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우리는 세 가지 방식으로 감각 사건에 들러붙을 수 있는데, (i) 수카/소마낫사 웨다나-(sukha/somanassa vedanā)를 생성, (ii) 둑카/도마낫사 웨다나-(dukkha/domanassa vedanā)를 생성, (iii) 중립 웨다나-(neutral vedanā)를 생성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 * 첫째 경우에는 그것들을 더 얻기 위해 부도덕한 행위를 합니다. 둘째 경우에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 * 셋째 경우에는 어떤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여전히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를 거칩니다. 관련된 상요자나(saṁyojana)가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세 가지 방식을 통해 어떻게 들러붙는지를 모르는 무지를 없애지 못했다는 의미임).

     

    들러붙음이 왜 자동적인가?

     

    15. 우리 몸과 외부 환경은 어떤 감각 입력에도 왜곡된 산냐-를 제공하도록 일어나기 때문에 감각 사건에 들러붙는 것은 자동적입니다. (왜곡된) 까-마 산냐-(kāma saññā)가 어떻게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통해 일어나는지를 완전히 이해하고자 하면, 이 붓다의 세계관(Worldview of the Buddha) 섹션의 처음 몇 개의 포스트를 보아야 합니다. 

     

    • *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접하는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단 한 분의 부처님도 출현하지 않은 여러 마하-깝빠가 이어지는 마하- 깝빠-(각각은 수십/수백억년 지속됨)들도 있습니다.

    • * 소따빤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세요. 그것은 이 세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낮습니다. ‘소따-빤나가 그 어떤 왕, 황제, 백만장자보다 더 나은 이유’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많은 사람들이 좋은 교육과 직업을 얻기 위해 학교, 대학 등에서 몇 년을 보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최악의 영역에 재탄생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담마를 배우는데 시간을 쓰는 것을 꺼립니다! 수십/수백억년 동안 다시는 얻을 수 없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참고 사항

     

    1. 빠리나-마(Parināma)와 위빠리나-마(viparināma)는 ‘아닛짱 위빠리나-미 안냐타-바-위 ㅡ 결정적 구절’ 포스트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2. 매우 심오하고 중요한 숫따에 대한 요약: ‘물-라빠리야-야 숫따 ㅡ 모든 것의 뿌리

     

    3. 마음 오염은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시작됨: ‘산딧티꼬 ㅡ 그 의미는 무엇인가?

     

    4. 사띠빳타-나에 대한 매우 중요한 포스트: ‘까-마 산냐- ㅡ 우회하여 사띠빳타-나를 육성하는 방법’. 사띠빳타나를 육성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곧 있을 포스트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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