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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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 입력으로 '세상의 일어남', 즉 '로까 사무다야'가 시작된다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 Sensory Inputs Initiate “Creation of the World” or “Loka Samudaya” ’ 포스트 

     

    감각 입력에 들러붙으면 ‘세상의 일어남’, 즉 ‘로까 사무다야(loka samudaya)’가 시작됩니다. 반대로, 감각 입력에 들러붙지 않으면 ‘로까 사무다야(loka samudaya)’가 그치고 ‘로까 니로다(loka nirodha)’가 시작됩니다.    

     

    2025년 1월 3일 작성

     

    로까 사무다야와 로까 니로다

     

    1. 세상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보통 물리적 세계(산, 바다,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행성이 있는 다른 항성계도 포함됩니다. 

     

    • * 우리 누구도 그런 세상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붓다께서는 ‘로까 니로다(loka nirodha)’를 그 외부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끝내는 의미로 말씀하셨습니다.

    • * 게다가, 한 사람은 그 외부의 물리적 세계의 상태에 대해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로까 사무다야 ㅡ 가띠와 (왜곡된) 산냐-에 관련

     

    2. 그러나, 우리의 현재 행위가 어떻게 우리의 미래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낼 수 있는데, 각 사람의 ‘로까 사무다야(loka samudaya)’는 각자의 (도덕적/부도덕적) 행위에 기반합니다. 각자의 행위는 각자의 가띠(gati)에 기반하는데, 그것을 깨닫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보게 되듯이, ‘가띠(gati)’는 ‘왜곡된’ 산냐-(saññā)를 생성하는데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각 존재는 그 특유의 가띠와 ‘왜곡된’ 산냐-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 모든 존재가 고통/괴로움에 빠져 있기 때문에, 붓다께서는 모든 존재가 재탄생을 멈추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하셨습니다.

    • * 붓다께서는 세상을 까-마 로까(kāma loka), 루빠 로까(rupa loka), 및 아루빠 로까(arupa loka)라는 세 가지 주 범주로 나누셨습니다. 우리는 까-마 로까에 재탄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높은 괴로움이 있는 아빠-야-(apāyā)가 까-마 로까(욕계)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소따빤나가 되면 아빠-야에는 재탄생하지 않게 됩니다. 세 가지 모든 로까-에 재탄생하는 원인이 제거되면, 아라한과(Arahanthood)가 성취됩니다.

    • * 그러므로, 붓다께서는 로까 사무다야(loka samudaya)와 로까 니로다(loka nirodha)를 각 사람의 정신적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루빠 니로다는 외부 루빠의 제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3. ‘Nirodhadhamma Sutta (SN 23.22)’에서는 “Rūpaṁ kho, rādha, nirodhadhammo, vedanā nirodhadhammo, saññā nirodhadhammo, saṅkhārā nirodhadhammo, viññāṇaṁ nirodhadhammo”라고 말씀하십니다.

     

    번역:라-다여,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는 일어남이 멈춰질 수 있는 담마-다.” 하지만 마음이 감각 사건에서 루빠-에 들러붙지 않도록 지혜를 키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 * 따라서,  루빠(rupa)는 외부의 대상, 소리, 맛 등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 * 다른 네 가지 실체도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루빠도 외부 실체에 대해 ‘왜곡된’ 산냐-로 인해 마음에 의해 형성된 (‘왜곡된’) 정신적 버전을 지칭합니다

    • * 외부 루빠-에 대한 그런 (‘왜곡된’) 정신적 버전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육체와 함께 살고 있는 동안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논의한 바와 같이, 우리 육체는 그 왜곡된 산냐-를 주도록 만들어졌습니다. ‘ 세상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들'은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해 일어난다 ’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외부 루빠의 그 ‘왜곡된’ 정신적 버전에 속는 것을 멈출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그것이 ‘루빠 니로다(rupa nirodha)’의 참된 의미입니다.

     

    4. 살아 있는 아라한도 외부 루빠의 그런 (‘왜곡된’) 정신적 버전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아라한도 인간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라한의 마음은 그것들에 라-가, 도사, 또는 모하로 들러붙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라한들은 ‘로까 니로다(loka nirodha)’를 성취했습니다. 아라한들의 육체는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이므로, 그 육체는 죽을 때까지 살지만, 그들은 다시 이 세상에 재탄생하지는 않습니다. 아라한들도 (‘왜곡된’) 외부 루빠-의 정신적 버전을 경험한다는 사실은 아래 #8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 * 그 개념들은 ‘Nirodhadhamma Sutta (SN 23.34)’과 ‘Nirodhadhamma Sutta (SN 23.46)’에 더욱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 * 첫 숫따는 ‘마음이 만든 루빠’와 상응하는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와, 삼팟사ㅡ자-ㅡ웨다나-, 아비상카-라, 및 깜마 윈냐-나 등을 포기함’으로써 닙바-나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 * ‘왜곡된 산냐’를 제거할 수는 없고 그 참된 본질을 이해할 수만 있습니다(그 때문에 아라한들도 예를 들면, 꿀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산냐- 니로다는 (왜곡된) 산냐-의 기원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5. ‘Saññā Sutta (SN 26.6)’는 (미래) 고통/괴로움은 눈, 귀, …마음을 통해 들어오는 감각 입력와 연관된 (왜곡된) 산냐, 즉 루빠 산냐-, 삿다 산냐-, …담마 산냐-에 의해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숫따들은 ‘산냐-’가 ‘왜곡된 산냐’’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지는 않는데, 그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 * 또한 그런 산냐-(의 효과)가 그치면 미래의 고통/괴로움이 끝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논의했듯이, 아라한들도 그 ‘왜곡된 산냐-’가 일어나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 기원을 이해하는 것이며, 이는 상응하는 상요자나의 끊어짐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산냐- 니로다’가 일어나는 방식입니다.)

    • * ‘Saññā Sutta (SN 27.6)’는 마음이 그 여섯 가지 유형의 (왜곡된) 산냐-에 들러붙음(찬다라-가)으로써 생긴다고 말합니다.

    • * ‘Saññā Sutta (SN 18.6)’는 그 여섯 가지 유형이 (왜곡된) 산냐-가 아닛짜 본질이기 때문에 극복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 * ‘Saññā Sutta (AN 9.16)’는 (왜곡된) 산냐-를 극복하고 저항하기 위해 육성해야 할 9가지 유형의 산냐-를 나열하는데, 그것들은 아수바산냐-(asubhasaññā), 마라나산냐-(maraṇasaññā), 아하-레 빠띠꿀-라산냐-(āhāre paṭikūlasaññā), 삽바로께 아나비라따산냐-(sabbaloke anabhiratasaññā), 아닛따산냐-(aniccasaññā), 아닛쩨 둑카산냐-(anicce dukkhasaññā), 둑케 아낫따산냐-(dukkhe anattasaññā), 빠하-나산냐-(pahānasaññā), 위라-가산냐-(virāgasaññā)입니다.

     

    니로다 산냐-의 육성

     

    6. ‘로까 니로다(loka nirodha)’는 ‘니로다 산냐-(nirodha saññā)’를 육성함으로서 달성됩니다. 여기서, 그것은 산냐-가 일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사람은 (산냐-가 일어나는 것을 멈추는 위험한 명상을 했던 아산냐 영역 유정체처럼) 아산냐(asañña) 상태에 있게 될 것입니다. ‘니로다 산냐-’의 의미를 오해한 일부 ‘불교도’는 이 파괴적인 수행을 합니다. ‘왜곡된 산냐-’에 속지 않기 위해 지혜를 육성하는 대신에, 그들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고 합니다

     

     

    삿따 봇장가로 니로다 산냐를 육성

     

    7. ‘Nirodha Sutta (SN 46.76)’는 삿따 봇장가(satta bojjhaṅga)를 육성함으로써 ‘니로다 산냐-(nirodha saññā)’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표식 1.3 ~ 1.4에서, “nirodhasaññāsahagataṁ upekkhāsambojjhaṅgaṁ (nirodha saññā와 함께 upekkhā sambojjhaṅga )”를 통해 “nirodhasaññāsahagataṁ satisambojjhaṅgaṁ (nirodha saññā와 함께 sati sambojjhaṅga )”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구절에서, ‘바-웨띠(bhāveti)’는 ‘육성하다’를 뜻하고, ‘사하가땅(sahagataṁ)’은 ‘함께’를 뜻합니다. 따라서, 예를 들어, “nirodhasaññāsahagataṁ satisambojjhaṅgaṁ bhāveti”는 “니로다 산냐-와 함께 사띠 삼봇장가를 육성한다”를 뜻합니다. 육성해야 할 7가지 봇장가가 있는데, 2가지(사띠/sati, 우뻭카-/upekkhā)만 나열되어 있고 ‘..pe..’로 생략된 다른 5가지 요소는 담마위짜야(dhammavicaya), 삐띠(piti), 위리야(viriya), 빳삿디(passaddhi), 및 사마-디 삼봇장가(samādhi sambojjhaṅga)입니다.

     

    • * 위 구절에서, ‘니로다 산냐-(nirodha saññā)’는 ‘산냐-를 제거/없앰’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 ‘왜곡된 산냐-’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해함으로써 ‘닙바나-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표식 2.7에서는 “Evaṁ bhāvitāya kho, bhikkhave, nirodhasaññāya evaṁ bahulīkatāya dvinnaṁ phalānaṁ aññataraṁ phalaṁ pāṭikaṅkhaṁ—diṭṭheva dhamme aññā, sati vā upādisese anāgāmitāti”,  즉, “니로다 산냐-를 육성하면 아라한과 또는 닙바-나의 아나-가-미 단계에 도달한다.”라고 말합니다.

    • * 삿따 봇장가(satta bojjhaṅga)는 닙바-나에 이르도록 도우는 ‘2가지 종류(버전)의 37조도품’의 결정적인 구성 요소입니다.

    • * 삿따 봇장가(satta bojjhaṅga)를 육성하기 전에 삿띠빳타-나(Satipaṭṭhāna)를 길러야 하며, 사띠빳타-나는 37조도품의 처음에 나옵니다.

     

    니로다 사마-빳띠에서 산냐의 그침(완전한 닙바-나)

     

    8. 위 #4의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 ‘왜곡된 산냐’를 제거할 수는 없고 그 참된 본질을 이해할 수만 있습니다.” ‘왜곡된 산냐-’의 원인은 육체로 태어날 때 육체에 내장되므로, 아라한도 그것(예를 들어, 설탕의 달콤함 또는 아름다운 여성을 보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Nirodhadhamma Sutta (SN 23.34)’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아라한들은 그 ‘왜곡된 산냐-’로 인한 찬다라-가(갈망)을 생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 * 물론, ‘왜곡된 산냐’(또는 모든 산냐-)는 아라한의 육체가 죽은 후, 즉 빠리닙바-나 후에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재탄생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31영역의 어떤 곳에도 더 이상 (고통이 가득한) 존재는 없습니다.

    • * 우바또위뭇띠 아라한(Ubhatovimutti Arahant)들니로다 사마-빳띠(nirodha samāpatti)에 들어감으로써 빠리닙바-나(완전한 닙바-나) 상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니로다 사마-빳띠는 이 생 중에도 경험할 수 있는 완전한 닙바-나입니다. 아라한들은 한 번에 7일까지 니로다 사마-빳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 * 우바또위뭇띠 아라한들은 빤냐-위뭇띠(Paññāvimutti)와 쩨또위뭇띠(Cetovimutti)를 의미하는 양면으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즉, 그들은 모든 아리야 자-나와 사마-빳띠를 거쳐서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왜곡된 산냐’의 그침(아라한뜨 팔라 사마-디)과 모든 산냐-의 그침(니로다 사마-빳띠)

     

    9. 두 가지 유형의 아라한이 ‘Nibbānadhātu Sutta (Iti 44)’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 * 전통적인 믿음은 아누빠-디세사 닙바-나(Anupādisesa Nibbāna, 완전한 닙바-나)는 아라한의 육체가 죽음으로써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바또위뭇디 아라한은 삶 중에도 아누빠-디세사 닙바-나(찟따의 일어남이 멈추는 완전한 닙바-나)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니로다 사마-빳띠에 있는 동안에 일어나며, 거기서는 산냐-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 * 니로다 사마-빳띠에 있지 않은(즉, 사우빠-디세사- 닙바-나다-뚜) 모든 아라한에게는 또다른 중요한 점이 강조됩니다. 표식 3.3에서, “Tassa tiṭṭhanteva pañcindriyāni yesaṁ avighātattā manāpāmanāpaṁ paccanubhoti, sukhadukkhaṁ paṭisaṁvedeti”, 즉 “아라한들의 다섯 감각 기능은 남아 있다. 그들이 평상의 삶을 살고 있는 한(즉, ‘니로다 사마-빳띠’에 있지 않은 중에), 그들은 즐거운 것과 불쾌한 것은 경험하며 유쾌함과 불쾌함을 느낀다.”라고 말합니다. ‘즐거운 것과 불쾌한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왜곡된 산냐-’가 그들에게 일어난다는 것을 뜻합니다.

    • * 반면에, 표식 4.1에서, 아누빠-디세사- 닙바-나다-뚜는 “느껴지는 모든 것이 더 이상 그들에게 즐겨지지 않고 바로 여기서 가라앉게 된다.”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산냐-가 일어나지 않는 빠리닙바-나 후와 같이 세상의 완전한 소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한 번에 7일까지만 경험될 수 있습니다.

    • * 게다가, 아라한 팔라(아라한과)가 실현되고 빠밧사라 찟따가 처음으로 경험될 때, 마음 속에는 ‘왜곡된 산냐-’가 없는데, 여기서, 마음은 (어떤 편향/왜곡이 없는) 순수한 산냐-를 가집니다. 일부 아라한들(우바또위뭇띠 아라한들)은 ‘아라한뜨ㅡ팔라 사마-디(Arahant-phala samādhi)’에 들어가  오랫동안 빠밧사라 찟따를 경험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만 알고, 어떤 감각 입력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모든 잘못된 견해의 근본 원인 ㅡ (왜곡된 산냐-)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모르는 것

     

    10. ‘Saññāaññāṇa Sutta (SN 33.3)’는 두 가지 주된 사견(삿사따 및 우쩨다 딧티)이 일어나는 근본원인은 ‘산냐-와, 그 기원과, 그 그침과, 그 그침으로 이어지는 실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산냐-는 ‘왜곡된 산냐-’를 지칭합니다. 뿌툿자나가 경험하는 모든 산냐-는 항상 ‘왜곡된 산냐’입니다. 그것은 막가 팔라가 없는 루빠 로까 브라흐마(rupa loka Brahmā)와 아루빠 로까 브라흐마(arupa loka Brahmā)에 모두 적용됩니다(그들도 뿌툿자나-임).

     

     

    아나리야 명상은 로끼야 산냐-에 초점을 맞춘다

     

    11. 매우 중요한 ‘Saññā Sutta (AN 11.7)’에서,  아난다 존자는 세상의 대상을 명상의 초점으로 취하지 않고, 즉 마음이 그 세상 산냐-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사마-디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부처님에게 묻습니다.

     

    • * 많은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세간(아나리야) 아-나-빠-나사띠 명상은 호흡을 명상 대상으로 취합니다. 즉 자신의 호흡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것은 ‘공기의 와-요 산냐-(vāyo saññā)를 받아들이는 것’(vāyo saññī assa)을 의미합니다.

    • * 세간적(아나리야) 까시나 명상에서, 요기(수행자)는 마음을 집중시키기 위해 까시나(kasina) 대상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진흙 덩이, 불꽃, 물 그릇이 빠타위(pathavi), 떼조(tejo), 아-뽀 까시나(āpo kasina) 명상에 사용됩니다. 호흡 명상도 호흡을 와-요 까시나(vāyo kasina)로 사용하는 까시나 명상입니다.

    • * 그 기법을 사용하여 루빠-와짜라 자-나-(rupāvacara jhānā)를 거치면, 아나리야 요기는 ‘무한한 공간’에 마음을 집중하여 첫 번째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upāvacara samāpatti)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요기는 ‘무한한 의식’에 집중하여 두 번째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 등에 도달하여, 네와산냐-나-산냐-(nevasaññānāsaññā)라는 네 번째 사마-빳띠에 이를 수 있습니다.

    • * 따라서, 위의 모든 루빠-와짜라 자-나(rupāvacara jhānā)와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upāvacara samāpatti)에는 아나리야 까시나 명상의 어떤 형태를 통해 도달될 수 있습니다.

     

    12. 아난다 존자가 붓다께 문의한 것은 위의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사마-디에 도달할 수 있는 명상이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 * 붓다께서는 (표식 5.1에서) 아리야(성자)는 닙바-나 산냐-를 사용하여 사마-디에 도달한다고 답변하십니다. 그것은 ‘닙바-나의 고요함’, 즉 “‘etaṁ santaṁ etaṁ paṇītaṁ, yadidaṁ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n’ti.”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 * 물론, 그것은 소따빤나 팔라 순간에 도달한 때에 닙바-나를 잠깐 경험한 소따빤나 단계 또는 그 이상의 성자만 가능합니다.

     

    로끼야 산냐-를 누름

     

    13. ‘왜곡된 산냐-’는 까-마 로까(욕계)에서 세가지 유형의 ‘오염된 산냐-’을 일으킵니다. 이 ‘오염된 산냐’는 ‘Saññā Sutta (AN 6.110)’에서 까-마 산냐-(kāma saññā), 브야-빠-다 산냐-(byāpāda saññā), 위힘사- 산냐-(vihiṁsā saññā)로 열거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세 가지 유형은 아라한이나 아나-가-미에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왜냐하면 그들은 까-마 라-가 상요자나와 빠띠가 상요자나를 제거했기 때문입니다).


    • * 숫따에 언급된 바와 같이, 그 세가지 ‘오염된 산냐-’는 넥캄마 산냐-(아수바 바-와나-와 동일), 아브야-빠-다 산냐-(멧따- 바-와나-와 동일), 및 아위힘사- 산냐-(까루나- 바-와나-와 동일)를 육성함으로서 제거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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