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중립 웨다나-'는 왜 '아닛짜 본질'을 지니는가?
원문: Buddha Dhamma ㅡ Systematic 섹션의 ‘Why Is ‘Neutral Vedanā’ of ‘Anicca Nature’?’ 포스트
모든 ‘중립 웨다나-’는 그것도 마음 자체가 만든 ‘왜곡된 산냐-’를 통해 생성되기 때문에 ‘아닛짜(anicca)’ 본질을 지닙니다. 따라서 이는 우리가 ‘색깔도 없고 맛도 없는 등’의 참된 세계를 결코 경험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관계 있습니다.
2026년 7월 24일 작성
소개
1. 감각 경험에 대한 들러붙음은 우리를 고통으로 가득 찬 윤회의 덫에 가두어 둡니다. 비교적 고통이 없는 (데와 영역과 브라흐마 영역의 유정체가 있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재탄생은 고통으로 가득한 아빠-야에 이루어집니다. 더욱이 그 (데와와 브라흐마 영역의) ‘좋은 유정체’조차도 결국 죽음으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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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삶은 감각적 즐거움에 기반한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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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두카 웨다나-(dukha vedanā)’에 접했을 때, 침울한 마음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수카 웨다나-’를 얻는 방법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뿌툿자나가 불가피한 둑카 웨다나-를 다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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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우리를 고통으로 가득한 끝없는 재탄생 과정에 얽매여 있게 합니다.
둑카는 ‘두카 웨다나-’와 같지 않다
2. 많은 사람들은 ‘둑카(dukkha)’를 ‘고통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고통스런 느낌’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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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고통스런 느낌’을 뜻하는 빠알리 낱말은 (하나의 ‘k’가 있는) ‘dukha vedanā(두카 웨다나-)’입니다. 예를 들어, ‘Paṭhamalokadhamma Sutta (AN 8.5)’와 ‘Pātāla Sutta (SN 36.4)’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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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ṭhamalokadhamma Sutta (AN 8.5)’에 나오는 “..sukhaṁ dukhañca”라는 구절에서 dukha(두카)가 sukha(수카)의 반대말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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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고통을 뜻하는 빠알리 낱말은 두카(dukha)이며, 우리는 수카(sukha), 두카(dukha), 및 아둑카마수카(adukkhamasukha)라는 세 가지 유형의 웨다나-(vedanā)만을 경험합니다. 마지막은 ‘중립 웨다나-(neutral vedanā)’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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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둑카 삿짜(Dukkha Sacca)’에서 (두 개의 ‘k’가 있는) dukkha(둑카)는 dukha vedanā(두카 웨다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재탄생 과정을 멈추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서, dukkha는 ‘dukha + kha’로, 세상에 두카(dukha)가 있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두카(dukha)의 일어남을 멈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둑카 삿짜(고통에 관한 성스런 진리)
3. 우리는 주로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와 두카 웨다나-(dukha vedanā)가 섞인 중립(adukkhamasukha) 웨다나(vedanā)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둑카 웨다나-(dukha vedanā)만을 제거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세 가지 유형의 웨다나-(vedanā)가 모두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일어남을 멈추다’라는 구절은 빠알리어로 ‘니로다(nirodha)’라는 특별한 낱말로 표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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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둑카 니로다(Dukkha Nirodha)’는 이미 일어난 고통을 없애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미 일어난 고통을 없애려면 의학적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둑카 니로다’는 미래에 고통이 일어날 가능성을 멈추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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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두 개의 ‘k’가 있는 Dukkha의) Dukkha Sacca(둑카 삿짜)는 두카 웨다나-(dukha vedanā)의 흔적조차 생겨날 가능성을 멈추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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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첫번째 성스런 진리는 괴로움만 나타내는가?’을 참조하세요.
세 가지 유형의 웨다나-를 모두 극복해야 한다
4. 그 과정에서 세 가지 유형의 웨다나-가 모두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이 ‘웨다나- 니로다(vedanā nirodha)’는 막가 팔라를 가진 사람이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를 육성하여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가 머물 수 있다면 삶 중에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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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세 가지 웨다나-를 모두 극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Vedanā Sutta (SN 45.169)’을 참조하세요. 숫따 센트럴 사이트의 번역에서도 해당 구절 “Imāsaṁ kho, bhikkhave, tissannaṁ vedanānaṁ abhiññāya pariññāya parikkhayāya pahānāya …pe… ayaṁ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bhāvetabbo’ti.”을 “성스런 팔정도는 이 세 가지 느낌에 대한 직접적인 앎, 완전한 이해, 끝남, 그리고 포기를 위해 개발되어야 한다.”로 올바르게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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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트에서, 우리가 왜 아둑카마수카 웨다나-(adukkhamasukha vedanā)까지 극복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언뜻 보기에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이것이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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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둑카 삿짜’, 즉 ‘고통에 대한 성스런 진리’에서) ‘Sacca’는 ‘sachcha’로 발음됩니다. ‘붓다 담마 ㅡ 소개’의 #3을 참조하세요.
닙바-나 수카 ㅡ 웨다나-가 아님
5. 다시 말해, 닙바-나에는 세 가지 유형의 웨다나-가 없습니다. 위 #4에서 언급했듯이, 닙바-나는 현생에서도 경험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닙바-나 수카(Nibbāna sukha)’는 웨다나-가 아닌 이유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고통의 흔적조차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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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닙바-나 수카’는 느낌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통의 부재입니다. 가장 가까운 비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만성 두통에 시달렸다고 가정해 보세요. 어느 날, 두통이 낫고 그 사람은 큰 안도감을 느낍니다. 그 안도감은 새로운 웨다나-가 아니라 그때까지 자신이 경험했던 ‘두카 웨다나-’가 사라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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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띠삐따까의 대부분의 곳에서(그리고 항상 ‘둑카 삿짜’에서) 둑카(dukkha)는 재탄생 과정이 고통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재탄생 과정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의미의 ‘고통’을 뜻합니다. 이 때문에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도 둑카(dukkha)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아래 #10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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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많은 숫따에서, dukkha(‘k’가 두 개)는 ‘두카 웨다나-(dukha vedanā)’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지만, 그 함의는 고통이 일어나는 것을 멈출 수 있다는 것(니로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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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첫 번째 성스런 진리(둑카 삿짜)에서 ‘둑카(dukkha)’는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유형의 웨다나-(vedanā) 모두와 함께 ‘둑카(dukkha)’를 생성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를 경험할 때조차도, (우리가 그것들에 들러붙기 때문에) 그것은 재탄생 과정을 길게 하고 마음을 닙바-나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까-마 앗사-다(감각적 즐거움)는 마음이 만든 웨다나-다
6. (‘까-마 다-뚜’ 단계에서 감각 입력을 경험하는 바로 그 순간에) 마음을 닙바-나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은 ‘까-마 로까 산냐-(kāma loka saññā)’에 의한 아윗자-(avijjā)의 자동적 촉발입니다. 이것이 ‘까-마 로까 산냐-’가 수행하는 결정적인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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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도록 배워 ‘까-마 로까 산냐-’에서 자유로운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에 들어가 무색채의 세상의 참된 본질을 파악해야 하며, 그것은 소따-빤나 단계에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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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와 두카 웨다나-(dukha vedanā) 모두가 마음 자체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우리가 논의한 바와 같이 마음이 ‘왜곡된 산냐-(distorted saññā)’를 통해 수카 웨다나-와 두카 웨다나-를 유발하도록 사용하는 다소 복잡한 메커니즘(빠띳짜 사뭅빠-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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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에 이르러서야 세 가지 유형의 웨다나-를 경험합니다(느낍니다).
7. 세 가지 유형의 웨다나-는 모두 ‘까-마 다-뚜(kāma dhātu)’ 단계의 마나-빠/아마나-빠(manāpa/amanāpa)처럼 매우 약한 수준에서 시작합니다. 물론, ‘중립 웨다나-’는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의 처음 몇 단계를 넘어서 성장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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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수카 웨다나-와 두카 웨다나-는 초기의 바힛다(bahiddha)와 앗잣따(ajjhatta) 단계에서 시작하여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 그것들은 일련의 단계를 거쳐 자라는데, 처음에 ‘뿌라-나 깜마’ 단계를 거쳐 그 다음에 ‘나와 깜마’ 단계로 나아가며 성장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자각할 때쯤이면, 그것들은 이미 ‘나와 깜마’ 단계에 있으며 여전히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성장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뿌라-나 깜마’ 단계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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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꿀이나 설탕의 달콤한 맛조차도 ‘까-마 다-뚜’ 단계에서는 단지 약간의 호감(마나-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믿기 어렵지만, 이것 역시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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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 유형의 웨다나-는 의지력으로는 결코 멈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멈추는 것은 빠띳짜 사뭅빠-다에 기반한 ‘까-마 로까 산냐’를 통해 이 웨다나-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완전히 이해함으로써 가능합니다.
‘까-마 로까 산냐-’에 속았음
8. 마음 자체에 의해 연속하여 수카/두카가 단계적으로 증가하는 메커니즘은 우리에게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들’로 가득찬 세상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실제 세계에는 색깔이나 맛과 같은 마음을 즐겁게 하는 어떤 부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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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쁨에 찬 수카 웨다나-’ 또는 ‘억제할 수 없는 분노’는 전적으로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이것들은 ‘까-마 로까 산냐-’에 의해 생성된 약간의 호불호(마나-빠/아마나-빠)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여러 포스트에서 이것을 설명했으며, 이 개념을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까-마 앗사-다와 고통은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 ‘마음은 까-마 산냐-와 함께 까-마 다-뚜 단계에서 '시작'된다’, 및 ‘마음 오염에서 산냐-의 결정적 역할’을 참조하세요. 시간을 내어 이 포스트들을 읽고 이 중요한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몇 개의 포스트만 읽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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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하늘의 푸름’이나 ‘풀의 초록’조차도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초록색의 풀을 볼 때 생성된 ‘중립 웨다나-’에 들러붙지 않더라도, 우리 마음은 그 광경에 속습니다. 그 때문에 ‘중립 웨다나-’를 생성하는 그 광경조차도 아닛짜 본질을 지닙니다. ‘ '마음이 만든' 인식이 없다면, 세상에는 색깔도 소리도 맛도 냄새도 감촉도 없다’와 ‘인간의 삶은 무색채의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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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푸른 하늘’은 실제 현실이 아니다
9. 앞서 논의했듯이, 모든 감각 사건(수카, 두카, 또는 아둑카마수카 웨다나-를 생성)은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 생성’ 과정을 시작합니다. 또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과정을 시작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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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들 중의 일부는 위빠-까(vipāka)를 가져올 수 있는 업 에너지를 생성하는 강한 아꾸살라 깜마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그런 감각 사건들이 외부 세계의 것들을 정확히 나타낸다고 생각하여, 그 모든 것에 ‘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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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논의했듯이, 우리가 경험하는 ‘루-빠(rūpa)’는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색깔, 음색(음악적 상음), 마음을 즐겁게 하는 맛, 냄새, 감촉과 같은 ‘매력적인 특징’을 지니는 루-빠는 외부 세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마음이 만든 인식'입니다. ‘ '마음이 만든' 인식이 없다면, 세상에는 색깔도 소리도 맛도 냄새도 감촉도 없다’와 ‘인간의 삶은 무색채의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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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아둑카마수카 웨다나-(adukkhamasukha vedanā)에 들러붙는다는 사실은 다음을 생각해보면 명백합니다. 우리는 푸른 하늘을 보고 그것을 다시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하늘의 ‘푸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우리는 하늘이 실제로 ‘푸른 색’을 지니는 것이 아니며 우리 마음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모든 색깔은 ‘마음이 만든 인식’이며, 현대 과학은 위 링크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것이 (비록 ‘나와 깜마’ 단계에서 깜마 축적으로 이어지지 않지만) 아둑카마수카 웨다나-에 들러붙는 한 예입니다. 이 중요한 점이 불분명하면 포럼에서 문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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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해, 아나-가-미 단계 아래에 있는 사람의 마음은 감각 입력이 들어오면, 심지어 ‘중립 웨다나-’만을 생성하는 감각 입력이 들어오더라도 ‘뿌라-나 깜마’ 단계로 전이됩니다.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을 참조하세요. 이것이 ‘뿌라-나 깜마’ 단계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닷탑바 숫따 ㅡ 올바르게 보기
10. ‘Daṭṭhabba Sutta (SN 36.5)’는 위에서 논의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음은 숫따에 표현된 주요 사상입니다(구절별로 번역하지는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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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가지 느낌이 있는데, 즐거운 느낌(수카 웨다나-), 고통스런 느낌(둑카 웨다나-), 및 중립 느낌(아둑카마수카 웨다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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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느낌은 고통의 원인으로 보아야 한다(dukkhato daṭṭhabb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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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스런 느낌은 창에 찔린 것으로, 즉 훨씬 더 큰 고통의 원인으로 보아야 한다(sallato daṭṭhabb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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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립 느낌은 우리 경험의 아닛짜 본질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aniccato daṭṭhabbā). 왜냐하면 우리는 비록 그 느낌을 추구하지 않을지라도, 그 느낌을 생성하는 감각 입력의 참된 본질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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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쿠가 이 세 가지 느낌을 이런 식으로 볼 때, 그는 갈망을 끊고(‘acchecchi taṇhaṁ’), 재탄생 과정의 족쇄를 끊고(‘vivattayi saṁyojanaṁ’), 고통의 끝에 이른(‘antamakāsi dukkhassā’), 세상을 올바르게 보는 빅쿠(‘sammaddaso bhikkhu’)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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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따의 마지막 두 절은 위의 내용을 반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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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과정은 이 측면들을 일부분 이해함과 함께 소따-빤나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드와야따-누빳사나- 숫따
11. ‘Dvayatānupassanā Sutta (Snp 3.12)’에서는 ‘모든 괴로움은 느낌에서 비롯된다’(‘Yaṁ kiñci dukkhaṁ sambhoti sabbaṁ vedanā paccayā ti’)라고 간결하게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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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식 25.1에서는 웨다나-의 수카, 둑카, 아둑카마수카뿐 아니라 앗잣따(ajjhatta)와 바힛다(bahiddha) 단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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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식 26.5: ‘느낌이 끝나면 빅쿠는 닙바-나에 이른다’(‘Vedanānaṁ khayā bhikkhu, Nicchāto parinibbut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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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숫따들이 우리가 위에서 논의한 내용의 다양한 측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Nibbedhika Sutta (AN 6.63)’, ‘Vedanā Sutta (SN 18.5)’, ‘Vedanāaññāṇa Sutta (SN 33.2)’, 및 ‘Vedanā Sutta (SN 47.49)’을 참조하세요.
세상은 ‘결함있는 플랫폼’에서 돌아간다
12. 우리는 처음에 (‘뿌라-나 깜마’ 단계의) ‘까-마 상깝빠’와 함께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에 들러붙으며, 그것들이 ‘장기적인 행복’ 또는 적어도 ‘진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잘못된 전제에 기반합니다. 마음을 즐겁게 하는 루-빠(rūpa)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색깔이 있는 빛조차도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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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우리의 감각 경험은 ‘결함있는 플랫폼’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거짓 위에 세워진 것은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일시적인 행복을 줄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재탄생 과정에 갇히게 됩니다.(viparināma dukkhat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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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또한 처음에 ‘브야빠-다 상깝빠(vyāpāda saṅkappa)’와 함께 두카 웨다나-(dukha vedanā)에 들러붙습니다. (dukkha dukkhat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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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둑카마수카 웨다나-(adukkhamasukha vedanā) 또한 실제 현실이라고 믿고 (‘뿌라-나 깜마’ 단계의) ‘위힘사- 상깝빠(vihiṁsā saṅkappa)’와 함께 들러붙습니다. 여기서, ‘위힘사-(vihiṁsā)’는 다른 이를 해치려는 생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참된 본질’에 대한 무지로 인해 스스로를 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saṅkhāra dukkhat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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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들은 ‘Dukkhapañhā Sutta (SN 38.14)’에 언급된 세 가지 유형의 둑카따-(dukkhatā)입니다. 여기서 ‘둑카따-’는 고통의 원인과 같은 의미이며, 링크된 숫따의 영어 번역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웨다나-(vedanā)의 유형이 아님에 유의하세요.
‘중립 웨다나-’도 ‘결함있는 플랫폼’ 위에서 일어난다
13.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는 사람을 부도덕한 행위로 이끌기 때문에 위빠리나-마(viparināma) 본질인데, 즉 결국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위빠리나-마 ㅡ 두 가지 의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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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둑카 웨다나-(dukha vedanā)는 직접 더 큰 둑카 웨다나-로 이어지며, 또한 미래에 더 큰 고통을 초래하는 깜마 에너지를 축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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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모든 감각 경험이 거짓이라는 사실, 예를 들어 하늘은 파랗지 않고 풀은 초록색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아윗자-를 통해 아둑카마수카 웨다나-(adukkhamasukha vedanā)에 들러붙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감각 경험이 아닛짜(anicca)인 이유입니다. 따라서, 아닛짜를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루-빠가 마음이 만든 것이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니소 마나시까-라 ㅡ 산냐-와 관계’의 #12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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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와 두카 웨다나-(dukha vedanā)의 성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논의해 보겠습니다. 이는 감각 입력에 들러붙음이 증가하는 것과 동시에 일어납니다.
‘마음이 만든 즐거움’에 들러붙음과 성장의 세부 사항
14. 아래는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와 두카 웨다나-(dukha vedanā)의 성장에 있어 몇 가지 핵심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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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 다-뚜(kāma dhātu)’ 단계에서도 ‘까-마 로까 산냐-(kāma loka saññā)’는 ‘마나-빠/아마나-빠(manāpa/amanāpa)’라고 불리는 매우 약한 ‘호감/혐오감’을 생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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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 라-가 상요자나(kāma rāga saṁyojana)’를 온전히 지닌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자동적으로 위 #12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까-마 상깝빠, 브야-빠-다 상깝빠 또는 위힘사- 상깝빠’를 생성함으로써 그 약간의 ‘좋아함/싫어함’이나 심지어 ‘중립 웨다나-’에 들러붙습니다. 이로써 마음은 ‘까-마 바와(kāma bhava)’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아라한이나 아나-가-미의 마음은 까-마 라-가 상요자나를 제거했기 때문에 ‘까-마 다-뚜’ 단계에 머무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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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뿌툿자나의 마음은 이제 빤쭈빠-다-낙칸다(또는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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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단계에서, 뿌툿자나의 마음은 (빤쭈빠-다-낙칸다의 ‘바힛다 단계’의) 바힛다 웨다나-에 들러붙고 (빤쭈빠-다-낙칸다의 ‘앗잣따 단계’의) 앗잣따 웨다나-로 나아갑니다. 이 단계를 거치면서 웨다나-는 조금 더 성장합니다. 빤쭈빠-다낙칸다(루-빠, 산냐-, 상카-라, 윈냐-나 우빠-다-낙칸다)의 다른 모든 구성요소 또한 각 단계마다 발전하며, 그것들 모두 또한 이후의 단계들을 거칠수록 더욱 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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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앗잣따 윈냐-나는 짝쿠 윈냐-나, 즉 ‘cakkhuñca paṭicca rupeca uppajjhati cakkhu viññāṇaṁ’ 과정이 완료된 것입니다. 이제 (마나시까-라 쩨따시까의 도움으로 과거 경험을 회상함으로써) 짝쿠 윗냐-나는 이전 두 단계에서 파악했던 루-빠에 대한 자신만의 버전을 만듭니다. 이 ‘마음이 만든 루-빠’가 숫따에서 말하는 ‘짝쿠 윈네이야 루-빠(cakkhu viññeyya rūpa)’입니다. 이것들은 ‘즐거움’, 즉 ‘앗사-다’의 환상을 크게 증폭시키는 ‘마음이 만든 루-빠’입니다. ‘Assāda Sutta (SN 22.26)’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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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그 뿌툿자나의 ‘가띠(gati)’가 ‘오염 상태’에 있다면 마음 오염 과정에서 또 다른 중요한 단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법문을 듣는 동안 매력적인 여성을 본다면 그 모습에 들러붙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여성을 파티에서 술을 마시는 동안 본다면 그 모습은 음욕이나 적어도 매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띤낭 상가띠 팟소(tiṇṇaṁ saṅgati phasso)’ 단계로서, 마음이 마음 속에 일어나는 ‘까-마 구나(kāma guṇa)’와 함께 어떤 것에 강하게 들러붙는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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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다음 ‘phassa paccayā vedanā’ 단계에서 상대적으로 강한 웨다나-로 이어집니다. 이는 ‘samphassa paccayā samphassa-jā-vedanā’로 축약된 것입니다. 이제, 웨다나-는 상당히 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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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단계는 ‘vedanā paccayā taṇhā’와 ‘taṇhā paccayā upādāna’입니다. 만약 그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jā-vedanā)’가 충분히 강하다면, 마음은 이 두 단계를 거쳐 ‘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를 통해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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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단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들은 우리가 깨닫지도 못한 채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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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깜마’ 단계에 이르기까지 마음은 자동 조종 상태로 작동하며, 우리는 그 단계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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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깜마’ 단계에 이르면, 뿌툿자나는 마노(mano), 와찌(vaci), 및 까-야(kāya) 깜마를 생성함으로써 감각 입력에 의식적으로 들러붙기 시작합니다. 이 단계에서 웨다나-는 급속도로 성장하며, 그것은 뿌툿자나가 보통 수카, 두카, 또는 아둑카마수카(중립) 웨다나-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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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제 이미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뿌툿자나는 아무리 ‘나와 깜마’ 단계를 통제하려 해도, 적어도 어떤 경우에는 그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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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라 깔라-마와 같은 고대 요기(수행자)들은 매력적인 감각 입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숲속에서 생활함으로써 ‘나와 깜마’ 단계를 멈추게 하여, 마음을 거의 ‘앗잣따 단계’로 이동시켜 ‘루-빠 로까’로 전환, 즉 자-나를 얻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까-마 로까 상요자나’를 깨뜨릴 수 없었기 때문에 ‘까-마 로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죽을 때까지 자-나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들은 브라흐마 영역에 태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의 삶이 끝나면 다시 까-마 로까(인간계)에 돌아가지만, 그 후에는 아빠-야(사악처)에 다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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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핵심은 까-마 산냐-를 통해 아윗자-를 촉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전체 깜마 생성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까-마 라-가 상요자나’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까-마 로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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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전에도, 먼저 ‘전체 깜마 생성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고 세 가지 딧티 상요자나를 제거해야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합니다. 그 다음 소따-빤나는 사띠빳타-나를 육성해야 하며, 이로써 까-마 라가 상요자나를 제거하여 까-마 로까에서 벗어남으로써 아나-가-미 단계에 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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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내용은 뿌툿자나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이해해야 할 단계들을 다시 한 번 설명한 것입니다. 저는 이전에도 이 단계들에 대해 논의한 바 있습니다.
‘둑카 삿짜’는 고통의 흔적조차 일어나지 않게 멈추는 것에 관한 것이다
15. ‘둑카 삿짜(Dukkha Sacca)’에서 ‘둑카(Dukkha)’는 재탄생 과정(윤회)의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는) 순고통(net suffering)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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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데와(Deva) 영역에 태어나면 장기간의 수카 웨다나-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태어남은 드물고, 대부분의 재탄생은 고통으로 가득한 아빠-야(사악처)에 이루어집니다. 일련의 구체적인 숫따들은 ‘Manussacutiniraya Sutta (SN 56. 102)’에서 시작되는데, 이 숫따는 ‘루-빠 사무다야 ㅡ 마음에 의해 다채로운 세상이 창조된다’의 #10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설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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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재탄생 사이클(윤회)의 고통은 경험되는 세 가지 유형의 웨다나-에 들러붙음으로써 적어도 유지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우리는 까-마 로까에 의해 시작된 세 가지 유형의 웨다나를 통해 모든 감각 입력에 들러붙습니다. ‘중립 웨다나-’에 대한 들러붙음은 ‘나와 깜마’ 단계의 강력한 깜마 축적으로 이어지지 않을 지라도, (‘뿌라-나 깜마’ 단계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여전히 그것들이 ‘실제’라고 믿으며 들러붙습니다.
요약
16. 뿌툿자나와 성자의 사고방식의 핵심적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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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툿자나는 감각 경험이 외부 세계를 정확하게 나타낸다는 잘못된 ‘세간적 관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다채롭고, 맛있는 것뿐 아니라 냄새, 즐거운 음악, 감촉을 주는 것들이 외부 세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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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자는 그런 것들이 외부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확신합니다. 다시 한번 ‘ '마음이 만든' 인식이 없다면, 세상에는 색깔도 소리도 맛도 냄새도 감촉도 없다’을 읽어 보세요. 이것이 ‘붓다의 세계관’입니다.
17. ‘세간적 세계관’을 버리고 ‘붓다의 세계관’을 파악하는 것이 뿌툿자나를 소따-빤나 지위로 상승시키는 것입니다. ‘아-나-빠-나 ㅡ 붓다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세간 견해를 버림’, ‘아-나-빠-나사띠의 첫 단계 ㅡ '까-야'의 아닛짜 본질을 봄’, 및 ‘소따빤나의 독특한 세계관’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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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둑카마수카 웨다나-’를 포함하여) 모든 웨다나-는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저는 이전에도 ‘까-마 앗사-다와 고통은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에서 이것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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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 때문에 ‘중립 웨다나-’, 즉 ‘아둑카마수카 웨다나-’조차도 극복해야 합니다.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갈 수 있다면 이 생 중에도 그것을 극복하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닙바-나를 ‘산딧티꼬(sandiṭṭhiko)’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산딧티꼬 ㅡ 그 의미는 무엇인가?’을 참조하세요. 주요 종교들과 달리, ‘구원’은 죽음 후에 실현되는 약속이 아니라 이 생에서 경험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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