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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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곡된 인식 ㅡ 숫따-에 따라

     

    원문: Buddha Dhamma ㅡ Systematic 섹션의 ‘Distorted Perception – According to the Suttās’ 포스트 

     

    우리의 감각 경험은 ‘실제 현실’을 반영하지 않으며, 우리는 ‘왜곡된 인식’, 즉 ‘위빠리-따 산냐-(viparīta saññā)’를 가집니다. 세상에는 화려하거나 맛있는 음식이나 매혹적인 음악이 없습니다. 붓다께서는 2천여 년 전에 이 사실을 발견하셨고, 최근에 현대 과학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여기서는 붓다께서 이 사실을 설명하신 몇몇 숫따를 살펴봅니다.

     

    2026년 7월 10일 작성

     

    마음을 오염시키는 데 있어 ‘마음이 만든 루-빠’의 결정적 역할

     

    1. 모든 빠띳짜 사뭅빠-다 (Paṭicca Samuppāda) 또는 빤쭈빠-다-낙칸다 (pañcupādānakkhandha) 과정은 감각 입력, 즉 여섯 가지 감각 중의 하나를 통해 마음에 들어오는 ‘루-빠(rūpa)’로 시작됩니다.

     

    • * 마음이 오염되는 전체 과정은 한 가지 핵심적인 측면에서 비롯됩니다. 바로 마음이 경험하는 ‘루-빠’는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루-빠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루-빠’는 시각 대상, 소리, 맛, 냄새, 감촉 또는 기억(메모리)일 수 있습니다.

    • * 감각 입력과 접촉하는 바로 그 순간(즉, ‘까-마 다-뚜’ 단계)에 마음은 스스로 그 ‘외부 루-빠’에 ‘왜곡된 산냐-’를 불어넣어 경험되는 ‘전혀 다른 루-빠’로 변형시킵니다. 우리가 논의했듯이, 어떤 외부 대상도 색깔, 맛, 냄새, 또는 다른 속성(질)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 모든 ‘매혹적인 특징’들은 모두 ‘왜곡된 산냐-’를 통해 덧붙여진 것입니다.

    • * 이 놀라운 사실은 최근 현대 과학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예를 들어, ‘왜곡된 인식 ㅡ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을 참조하세요). 이는 붓다께서 ‘감각 경험’은 환상, 즉 신기루라고 가르치신 이유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 * 반면에, ‘왜곡된 산냐-’가 없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무색채의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을 참조하세요.

    • *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과정은 우리 안에 ‘왜곡된 산냐-’를 생성함으로써 유정체뿐만 아니라 그 환경까지도 유지합니다. ‘빠띳짜 사뭅빠-다는 외부 세계도 창조한다!’을 참조하세요. 이에 대해서는 향후 더 논의하겠습니다.    

     

    빤쭈빠-다-낙칸다는 환상에 기반한다

     

    2. 일단 과정이 환상이나 적어도 ‘거짓’으로 시작되면, 그것에 기반한 다른 모든 존재들은 거짓이 되고, 따라서 마음 속에 더 많은 거짓된 존재들이 생겨나는 결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 * ‘마음이 강화한 루-빠’에 기반하여, 마음 속에 먼저 약간의 호감(마나-빠, manāpa)이 생겨나는데, 이는 웨다나-(vedanā)와 산냐-(saññā)가 혼합된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뿌툿자나(puthujjana)에게 상깝빠(상카-라의 약한 형태)가 발생하기에 충분하며, 마음은 ‘바힛따 윈냐-나(bahiddha viññāṇa)’와 함께 ‘까-마 바와(kāma bhava)’에 들어갑니다

    • * 그러면, 여러 단계를 거쳐 마음은 점점 더 오염됩니다.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을 참조하세요.

    • * 그 과정에서,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가 발생하는데, 이 모든 것은 ‘거짓/왜곡된 루-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모든 존재들이 ‘마음에 의해 강화된’ 것이며, 해당하는 우빠-다-낙칸다(upādānakkhandha)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 * 따라서, 숫따-에서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및 윈냐-나를 언급할 때는 거의 항상 해당하는 우빠-다-낙칸다(upādānakkhandha)를 가리킵니다.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 ㅡ 대부분 오해임’를 참조하세요. 

     

    마음의 오염이 심해질수록 ‘기쁜 느낌’이 증가한다

     

    3.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음은 일련의 단계를 거쳐 점점 더 오염됩니다. 각 단계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마음이 만든 루-빠’에 대한 들러붙음은 더욱 강해질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우리가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 * 따라서, 우리는 오직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에서만 나타나는 ‘강렬한 기쁨’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것은 ‘까-마 다-뚜’ 단계에서 단지 약간의 호감(‘마나-빠’)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 *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만든 루-빠’에 속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딧티, 땅하-, 마-나를 통해) 마음 속에 ‘인위적인 기쁨’이 생겨나는 결정적인 결과를 맞게 됩니다!

    • * 소따-빤나와 아나-가-미 단계에 이르면, 딧티와 땅하-로 인한 ‘인위적인 기쁨의 증폭’이 없어집니다. 아라한 단계에서, 마-나 또한 제거되고 ‘강렬한 기쁨’은 ‘마나-빠(manāpa)’, 즉 ‘좋아함(호감)의 흔적’으로 줄어듭니다. ‘까-마 앗사-다와 고통은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를 참조하세요.

    • * 위 내용은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까-마 산냐-’를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이며, 소따-빤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띠빳타-나를 수행해야 합니다. ‘감각적 즐거움이 실제로 있다’는 생각이 우리 마음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소따-빤나가 이 깊숙이 자리잡은 ‘까-마 산냐-’’를 극복하려면 참으로 노력이 필요합니다.   

    • * 이제, 몇 개의 관련 숫따-를 논의해보겠습니다.

     

    빤쭈빠-다-낙칸다는 당신의 것이 아니다

     

    4. ‘Natumha Sutta (SN 12.37)’: ‘빅쿠들이여, 이 까-야는 너희들의 것이 아니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 * 가리켜 보였듯이, ‘까-야(kāya)’의 의미는 문맥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까-야는 대부분의 숫따에서 빤쭈빠-다-낙칸다 까-야다’을 참조하세요.

    • * 이 숫따에서, ‘까-야’는 ‘육체’ 또는 ‘빤쭈빠-다-낙칸다 까-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육체가 ‘빤쭈빠-다-낙칸다 까-야’의 존재로 인해 생겨난다는 것이며, 이 ‘빤쭈빠-다-낙칸다 까-야’는 어떤 뿌툿자나의 마음이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까-마 산냐-’에 들러붙을 때 일어납니다.

    • * 그 설명은 나머지 구절에 있습니다.

    • * 이는 표식 1.3 절에 간결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Purāṇamidaṁ, bhikkhave, kammaṁ abhisaṅkhataṁ abhisañcetayitaṁ vedaniyaṁ daṭṭhabbaṁ”, 즉, “두 가지 유형의 까-야(kāya)는 모두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에서 기원한다.”입니다. 링크 주소의 영어 번역’은 잘못되었습니다. ‘뿌라-나 깜마’ 단계는 ‘초기 깜마 형성’을 의미하며, ‘오래된(과거) 깜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 * 이어서, 표식 2.1절부터 표식 2.6절까지에서 더 자세히 설명됩니다. ‘뿌라나 깜마’ 단계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아윗자-는 ‘까-마 산냐’로 인해 일어나며, 이는 표식 2.2절의 ‘iti imasmiṁ sati idaṁ hoti, imassuppādā idaṁ uppajjati’에 암시되어 있는데, 이는 뿌툿자나의 마음이 자동적으로 ‘까-마 산냐-’에 들러붙음으로써 아윗자-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아라한에게는 ‘imasmiṁ asati idaṁ na hoti, imassa nirodhā idaṁ nirujjhati’(표식 2.3)이 적용되므로, 이러한 단계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신의 것이 아닌 것을 포기하라

     

    5. ‘Natumhāka Sutta (SN 22.33)’는 또한 ‘빅쿠들이여, 너희들의 것이 아닌 것을 포기하라.’고 합니다.

     

    • * 그 다음에 ‘Rūpaṁ, bhikkhave, na tumhākaṁ, taṁ pajahatha’, 즉 ‘어떤 루-빠도 너희들의 것이 아니니, 버려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가 경험하는 어떤 루-빠도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 이것이 시작해야 할 중요한 핵심입니다. 제가 강조해왔듯이, 루-빠(rūpa)는 (색깔도 맛도 없는 사과처럼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외부적인 루-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만든 루-빠’(우리가 경험하는 색깔과 맛이 있는 사과)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 ‘마음이 만든 루-빠’에 들러붙지 않아야 합니다.

    • * 이전 포스트(‘왜곡된 인식 ㅡ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가리켜 보였듯이, 현대 과학은 외부 세계의 사과가 색깔이나 맛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 * 빠띳짜 사뭅빠-다 (Paṭicca Samuppāda) 또는 빤쭈빠-다-낙칸다 (pañcupādānakkhandha) 생성의 모든 후속 단계는 ‘마음이 만든 루-빠’에 마음이 들러붙는 첫 번째 단계에 기반합니다. 여기서, 웨다나-(vedanā)는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jā-vedanā)를 의미하고, 산냐-(saññā)는 ‘왜곡된 인식’을 의미합니다. 이 들러붙음에 기반하여, 마음은 다양한 종류의 (아비)상카-라를 생성하고 오염된 윈냐-나(viññāṇa)로 이어집니다. (빠띳짜 사뭅빠-다의 순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6. 표식 2.1에서, 붓다께서는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빅쿠들에게 물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제따와나-라-마야(붓다께서 계시는 곳)에 있는 풀, 나뭇가지, 나뭇잎을 가져가거나 태우거나 마음대로 한다면, 너희는 ‘저 사람은 우리의 소중한 것을 가져가서 태우거나 마음대로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겠느냐?”

     

    빅쿠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풀, 나뭇가지, 나뭇잎은 쓸모없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뻬나삔두-빠마 숫따 ㅡ 다섯 가지 우빠-다-낙칸다에 대한 비유

     

    7. ‘Pheṇapiṇḍūpama Sutta (SN 22.95)’는 빤쭈빠-다-낙칸다 (pañcupādānakkhandha) 내의 다섯 가지 실체(‘루뿌빠-다-낙칸다’부터 ‘윈냐-누빠-다-낙칸다’까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감각 입력에 반응하여 발생하는 것은 항상 ‘빤쭈빠-다-낙칸다’이며, 결코 ‘빤짝칸다(pañcakkhandha)’가 아닙니다. 또한 숫따에서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라는 다섯 가지 실체는 거의 항상 각각의 우빠-다-낙칸다를 가리킨다는 점에 유의하세요.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 ㅡ 대부분 오해임’를 참조하세요.

     

    • * 이하에서는, 숫따 전체를 살펴보고, 낱말 하나 하나를 번역하지 않고 표현된 개념만 제공하겠습니다.

    • * 저는 마음에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를 불러일으키는 루-빠의 유형만 다루겠습니다.

    • * 그러나, ‘둑카 웨다나-’ 또는 ‘중립 웨다나-’를 불러일으키는 경우에도 같은 방식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8. 루-빠(rūpa)는 거품과 같다: 강이나 시냇물에서 볼 수 있는 거품을 생각해 보세요. 약간 더러운 물이 담긴 유리잔에서도 물을 휘저으면 거품이 생깁니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 거품에는 쓸모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품은 생겨났다가 금방 터져 버립니다.   

     

    • * 마찬가지로, ‘마음이 만든 루-빠’의 어떤 것에도 실체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외부 세계에 있는 실제 루-빠를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 * 이어서 붓다께서는 위의 설명이 열한 가지 유형, 즉 아띠-따-(atītā), 아나-가따(anāgata), 빳쭙빤나(paccuppanna), 앗잣따(ajjhatta), 바힛다(bahiddha), 올라-리까(oḷārika), 수쿠마(sukhuma), 히-나(hīna), 빠니-따(paṇīta), 두-레(dūre), 및 산띠께(santike)에 속하는 모든 루-빠(rūpa)에 적용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아띠-따, 아나-가따, 및 빳쭙빤나 범주는 과거에 발생한 것, 미래에 발생할 것, 및 ‘현재 순간’에 존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앗잣따와 바힛다의 의미는 감각 입력을 받았을 때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마음에 초기에 일어나는 실체로 앞서 설명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올라-리까와 수쿠마는 까-마 로까(욕계)의 조밀한 루-빠와 삼계 모두에 있는 미세한 루-빠를 의미하고, 두-레와 산띠께는 마음이 왜곡된 산냐에서 벗어난 사띠빳타-나 부-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를 나타냅니다.

    • * 모든 유형의 루-빠는 가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루-빠에 들러붙더라도 고통으로 가득한 재탄생 과정만 길어질 뿐이기 때문입니다! 

     

    9. 웨다나-(vedanā)는 마치 물방울과 같다: 폭우가 내리면 물 위에 물방울이 생겼다가 금세 터져 버립니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 그 물방울은 완전히 공허하고 텅비어 있고 실체가 없습니다. 몇 초 만에 터져 버릴 물방울에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 * 마찬가지로, 빅쿠는 그런 ‘마음이 만든 루-빠’로 인해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기쁨(수카 웨다나-)이 일시적임을 봅니다. 더욱이, 그런 느낌은 위 #3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빅쿠에게는 그것이 완전히 공허하고 텅비어 있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음이 만든 것이고, 오래 가지 않으며, 미래의 고통을 가져오는 부도덕한 행위로 이어질 수 있는 수카 웨다-나에 무슨 본질이 있겠습니까? 

     

    산냐-(saññā)는 신기루다: 여름의 마지막 달, 정오에 어른거리는 신기루가 나타난다고 가정해 보세요.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보고 숙고하고 그것을 주의깊게 조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완전히 공허한 속이 빈 것이며 실체가 없는 것으로 그들에게 보일 것입니다. 신기루에 무슨 본질이 있겠습니까?

     

    • * 앞서 깊이 논의했듯이, 위에서 언급한 ‘마음이 만든 루-빠’는 ‘왜곡된 인식’, 즉 까-마 로까의 ‘까-마 산냐-’를 통해 생성됩니다. ‘까-마 산냐-’는 참된 가치를 기진 것이 아니라, 최초의 들러붙음을 불러일으키는 촉발자입니다!

    • * 더욱이, ‘까-마 산냐’는 다른 감각 기관이 관여할 때 후속 단계에서 더욱 강한 들러붙음을 계속 야기합니다. 

     

    10. 상카-라(saṅkhāra)는 바나나 나무줄기와 같다: 가구를 만들 단단하고 오래가는 나무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나무의 가장 안쪽 짙은색 부분을 심재, 바깥쪽 밝은색 부분을 변재라고 합니다.)  나무를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은 날카로운 도끼를 들고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곧고 어린 커다란 바나나 나무줄기를 발견했습니다. 그 사람은 나무를 밑동에서 자르고 윗부분을 잘라낸 다음, 나무줄기를 겹겹이 벗겨냈습니다. 하지만 심재는 커녕 변재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바나나 나무줄기에 무슨 본질이 있겠습니까? 

     

    • * 마찬가지로, 빅쿠는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에 관련된 모든 종류의 상카-라(상깝빠, 사라 상깝빠, 및 아비상카-라)를 보고 숙고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마음을 오염시키는데 일조합니다.

    • * 상깝빠(saṅkappa)와 사라 상깝빠(sara saṅkappa)는 상카-라의 약한 형태이지만, 그것들은 ‘뿌라-나(purāna)’, 즉 ‘초기’ 깜마 생성 단계에서 마음을 오염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 * 그 다음,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는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에서 일어나며, 재탄생 과정을 지속시키는 강력한 깜마 에너지를 생성합니다.

     

    11. 윈냐-나(viññāṇa)는 마술사다: 마술사가 마술쇼를 선보인다고 가정해 보세요. 누구나 마술쇼가 일시적인 즐거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안에 본질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 마찬가지로, 빅쿠는 모든 종류의 윈냐-나(아띠-따-, 아나-가따, 빳쭙빤나, 앗잣따, 바힛다, 올라-리까, 수쿠마, 히-나, 빠니-따, 두-레, 및 산띠께)를 보고 숙고하고 그것을 이성적으로 조사합니다. 그들은 윈냐-나가 완전히 공허하고 텅비어 있으며, 실체가 없다고 봅니다. 고통으로 자주 이어지고 재탄생 과정을 지속시키는데 도움을 주기만 할 윈냐-나에 무슨 본질이 있겠습니까?

    • * 환상으로 가득한 ‘마술쇼’에 들러붙는 것이 결실없고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깨닫고, 세 가지 딧티 상요자나(diṭṭhi saṁyojana)를 제거함으로써 소따-빤나 단계에서 성자(아리야 사-와까)가 됩니다.

    • * 그 다음, 그들은 사띠빳타-나를 육성하여 ‘까-마 산냐-’를 극복하고 아나-가-미 단계에 이릅니다. 그 후, 그들은 더욱 사띠빳타-나를 육성하여 ‘루-빠 로까 산냐-’와 ‘아루빠 로까 산냐-’를 극복하고 아라한 단계에 이릅니다. 그러면 그들은 미래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납니다(육신이 죽을 때까지의 모든 고통은 그들이 타고난 육신으로 인한 것임에 유의하세요). 그들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 * 그리고, 붓다께서는 숫따의 마지막 부분에서 위의 내용을 몇 구절로 요약하셨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에 들러붙는 것은 아닛짜 본질에 관계

     

    12. 앞서 설명했듯이, 띠삐따까(Tipiṭaka)의 상윳따 니까야(Saṁyutta Nikāya)에는 제2권부터 시작하여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는 숫따들이 체계적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 ㅡ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는 출발점’을 참조하세요.  

     

    • * 상윳따 니까야의 제2권과 제3권에서 빠띳짜 사뭅빠-다와 빤쭈빠-다-낙칸다 과정을 논의한 직후, 제3권에서는 앞서 가리켜 보였듯이 이것들과 아무런 연관성을 제시하지 않고 아닛짜(anicca) 개념을 논의하기 시작합니다. ‘요니소 마나시까-라 ㅡ 산냐-와 관계’의 #12를 참조하세요. 

    • * 거기 설명된 바와 같이, 아닛짜(anicca)라는 개념은 ‘마음이 만든 루-빠’가 ‘세상의 참된 본질’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고, 따라서 이는 고통의 흔적조차 없는 닙바-나 상태에서 우리를 항상 멀어지게 합니다.

    • * ‘Cakkhu Sutta (SN 18.1)’로 시작하는 일련의 숫따와 ‘Anicca Sutta (SN 22.12)’로 시작하는 일련의 숫따 후에, 붓다께서는 (‘마음이 만든 루-빠’에 기반한) 루-뿌빠-다-낙칸다로 시작하는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의 다섯 가지 구성요소 모두가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본질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 * 다음으로,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사이의 관계는 ‘Yadanicca Sutta (SN 22.15)’를 시작으로 세 개의 숫따에서 설명됩니다.  

    • * 마지막으로, ‘Sahetuanicca Sutta (SN 22.18)’를 시작으로 세 개의 숫따가 더 있는데, 이 숫따들은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한) ‘마음이 만든 루-빠’의 준비가 아닛짜(anicca) 본질이기 때문에 그것은 닛짜(nicca) 본질이 되기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a)의 나머지 네 가지 구성 요소에 대해서도 동일합니다.

    • * 아닛짜 본질을 해석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아닛짜, 둑카, 아낫따(Anicca, Dukkha, Anatta)’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그러나, 그 모든 해석은 위의 핵심 개념, 즉 모든 ‘마음이 만든 루-빠’는 세상의 참된 본질’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는 ‘마음이 만든 루-빠’의 기원을 설명한다

     

    13. 아닛짜(anicca)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우리가 경험하는 루-빠(rūpa)’가 ‘세상에 존재하는 루-빠’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이 만든 그 루-빠’가 어떻게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해 생성되는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저는 ‘빠띳짜 사뭅빠-다는 외부 세계도 창조한다!’ 포스트에서 이 부분을 간략하게 다루었으며, 앞으로의 포스트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 * 오늘날 신경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우리가 경험하는 루-빠(rūpa)가 세상에 존재하는 루-빠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지만, 이를 종의 진화론으로 설명하려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결코 아닛짜(anicca)를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그들의 이론을 증명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진화론은 생각이 뇌에서 생성된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 가정에 반하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임사 체험(NDE): 뇌는 마음이 아니다’을 참조하세요.

    • * 해당 부분의 마지막 숫따인 ‘Ānanda Sutta (SN 22.21)’에서, 붓다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루-빠 니로다(rūpa nirodha)’(링크 주소의 영어 번역에서는 ‘소멸’로 번역되어 있음)의 의미를 설명하십니다.

    • * 거기서, ‘루-빠의 소멸’은 기존의 외부 루-빠가 파괴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라한이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감으로써) 그런 ‘마음이 만든 루-빠’의 일어남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아라한은 일상생활에서 그것들을 경험하더라도 마음은 결코 그것에 속지 않습니다. 

     

    14. ‘Samudayadhamma Sutta (SN 22.126)’에서는 아윗자-(avijjā)가 어떤 루-빠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설명합니다(여기서, 루-빠는 거의 항상 ‘마음이 만든 루-빠, 즉 루-뿌빠-다-낙칸다를 의미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 * 링크 주소의 영어 번역은 “빅쿠들이여, 이는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뿌툿자나)이 루-빠가 마음에서 어떻게 생겨나는지, 또는 그 참된 본질(yathābhūtaṁ)을 참으로 이해하지 못할 때다”로 읽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 * 알다시피,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은 아윗자-(avijjā)로 시작됩니다.

    • * 따라서, 아윗자-를 없애기 위해서는, 뿌툿자나(puthujjana)는 ‘마음이 만든 루-빠’가 어떻게 ‘까-마 산냐-’를 통해 발생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이는 순환 과정인데, 빠띳짜 사뭅빠-다는 ‘왜곡된 산냐-’에 의해 촉발되고, 그러면 빠띳짜 사뭅빠-다는 내재된 ‘왜곡된 산냐-’로 더 많은 존재로 이어집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 이 순환을 끊을 때까지 이 과정은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만든 루-빠’에 대한 들러붙음을 극복하는 것은 두 단계에 걸쳐 이루어진다

     

    15. 뿌툿자나가 위 내용을 이해하고 ‘마음이 만든 루-빠’에 들러붙는 것의 결실없음과 위험함을 깨닫게 되면, 닙바-나의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합니다. 다시 말해, 사람은 부처님의 세계관을 이해/파악하고(아-나) 세간적 세계관을 버림으로써(아-빠-나) 닙바-나의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합니다. ‘아-나-빠-나 ㅡ 붓다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세간 견해를 버림’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우리 안에 내재된 ‘왜곡된 산냐-’를 극복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사과에는 붉은색도 없고 단맛도 없다는 인식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인식으로 수많은 생을 살아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따-빤나는 그 왜곡된 산냐-(viparīta saññā)를 극복하고 자신을 까-마 로까(kāma loka)에 묶어두는 ‘까-마 라-가 상요자나(kāma rāga saṁyojana)’를 끊어내기 위해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를 육성해야 합니다.  

    • * 또한 ‘아-나-빠-나 ㅡ 붓다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세간 견해를 버림’의 #13을 참조하세요.

    • * 인간이 까-마 로까에서 ‘마음이 만든 감각적 즐거움’에 속는 것처럼, 루-빠 로까와 아루빠 로까의 브라흐마들은 ‘마음이 만든 자-나와 아루빠 사마-빳띠의 즐거움’에 속습니다. 아나-가-미(아나함)는 루-빠 라-가 상요자나(rūpa rāga saṁyojana)와 아루빠 라-가 상요자나(arupa rāga saṁyojana)를 극복하기 위해 사띠빳타-나를 더 육성해야 하며, 이로써 아라한 단계에 도달합니다. ‘아-나-빠-나사띠 ㅡ 마음챙김(사띠)은 붓다 세계관에 기반한다’와 ‘아-나-빠-나사띠 숫따 ㅡ 완전한 개요’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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