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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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따또 사마누빳사띠'와 소따빤나 단계

     

    원문: ‘Is There A Self?’ 섹션의 ‘Attato Samanupassati and Sotapanna Stage’ 포스트

     

    '루빵 앗따또 사마누빳사띠(rūpaṁ attato samanupassati)'라는 구절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루-빠가 실제로 외부 세계에 존재한다고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따-빤나는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지혜로 깨달았습니다. 현대 과학은 최근 이 중요한 사실을 검증했습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에 다채로운 것들이 존재한다고 믿지만, 세상에는 본질적인 색깔이 없습니다.

     

    2023년 10월 20일 작성; 2026년 9월 5일 재작성; 2026년 9월 6일 개정(#12 추가)

     

    루빵 앗따또 사마누빳사띠 ㅡ 표준 번역

     

    1. ‘Pālileyya Sutta (SN 22.81)’에서 붓다께서는 “dha bhikkhave, assutavā puthujjano ariyānaṁ adassāvī ariyadhammassa akovido ariyadhamme avinīto, sappurisānaṁ adassāvī sappurisadhammassa akovido sappurisadhamme avinīto rūpaṁ attato samanupassati.”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 ‘rūpaṁ attato samanupassati’라는 구절은 대개 ‘그들은 형태(루-빠)를 자아로 여긴다’(위 링크의 숫따 센트럴 번역) 또는 ‘그들은 루-빠를 유익하다고 여긴다’로 번역됩니다. 후자가 전자보다 더 적절하며, 저 또한 과거에 그렇게 번역한 바 있습니다.

    • * 언뜻 보면, 후자의 번역도 괜찮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 번역조차도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 요점은 뿌툿자나(puthujjana, 범부 인간)는 또한 둑카 웨다나-(dukkha vedanā), 즉 자신이 싫어하는 감각 입력에 들러붙는다는 것입니다. 

     

    뿌툿자나는 싫어하는 루-빠에도 들러붙는다!

     

    2. 누구도 모든 광경, 소리, 등을 ‘자아(self)’ 또는 ‘나’ 또는 ‘내 것’ 등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 #1의 첫 번째 번역은 명백히 빗나간 번역입니다.

     

    • * 두 번째 번역(‘그들은 루-빠를 유익하다고 여긴다’)에 관해, 뿌툿자나는 자신이 경험하는 모른 루-빠를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는 그들이 그 감각 입력을 좋아하고 기쁜 느낌(‘수카 웨다나-’)로 그것에 들러붙을 때만 해당합니다. 이 경우에,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까-마 상깝빠’를 생성하고, 그들의 마음은 ‘뿌라-나 깜마’ 단계에 들어갑니다. 이 들러붙음은 ‘수카 웨다나-’에 의해 유발됩니다.  

    • * 때때로, 뿌툿자나는 싫어하는 감각 입력(이는 ‘둑카 웨다나-’를 생성함)에 들러붙기도 합니다. 그들이 싫어하거나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을 보면, 분노의 생각을 생성하기 시작합니다. 이 경우, 그들은 자동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브야-빠-다 상깝빠’(byāpāda saṅkappa)(때로는 ‘vyāpāda saṅkappa’로 표기)를 생성하고, 그들의 마음은 ‘뿌라-나 깜마’ 단계에 들어갑니다. 알다시피, ‘뿌라-나 깜마’ 단계는 초기의 약한 깜마 생성 단계입니다.  

     

    3. 후자의 상황에서는, ‘적’을 보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브야-빠-다 상깝빠’에서 시작하여 (이답빳짜야따)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을 시작할 것입니다. 이 경우에 들러붙음은 ‘둑카 웨다나-’에 의해 유발됩니다.

     

    • * 이 때문에 ‘rūpaṁ attato samanupassati’를 ‘루-빠를 ‘유익하다고 여긴다’라고 번역하는 것도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 * 이제 우리는 위 #1의 ‘rūpaṁ attato samanupassati’ 구절에 대한 두 가지 표준 번역이 모두 잘못된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 그 구절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수카(sukha), 둑카(dukkha), 및 아둑카마수카 (adukkhamasukha) (adukkha asukha는 ‘adukkhamasukha’로 발음됨) 웨다나-의 어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사니다-나 숫따 ㅡ ‘마음이 만든 루-빠’의 ‘니다-나’ 즉 ‘기원’

     

    4. ‘Sanidāna Sutta (SN 14.12)’는 그 세 가지 유형의 웨다나-의 기원을 살펴봄으로써 해당 구절의 정확한 번역을 알아내는데 필요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 * ‘니다-나’(nidāna)는 ‘기원’을 의미하고, ‘사니다-나’(sanidāna, ‘sa’ ‘nidāna’)는 ‘기원을 가진’을 의미합니다.

    • * ‘Sanidāna Sutta (SN 14.12)’는 여섯 가지 유형의 산냐-를 다양한 유형의 ‘마음이 만든 루-빠’의 근원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만든 루-빠’는 그 다음 세 가지 유형의 웨다나-를 생성하며, 아래에서 보듯이, 마음은 이 세 가지 유형의 웨다나- 모두에 들러붙습니다.

     

    5. 여기서, 분석은 ‘까-마 로까(kāma loka)’와 연관된 여섯 가지 시작 단계, 즉 다-뚜 단계를 언급합니다. 이 분석에서 붓다께서는 세 가지 다-뚜 상태(까-마 다-뚜, 브야-빠-다 다-뚜, 및 위힘사- 다-뚜) 중의 하나에서 시작하는 마음은 결국 부도덕한 가띠(두가띠)를 기르기 때문에 아빠-야-에 재탄생으로 이어진다고 가리켜 보이셨습니다.

     

    • * 이 분석에서 까-마 다-뚜(kāma dhātu), 브야-빠-다 다-뚜(byāpāda dhātu), 위힘사- 다-뚜(vihiṁsā dhātu)는 유혹적, 싫어하는, 잔혹한 감각 입력의 ‘시작점’을 가리킵니다.

    • * 여기서, ‘까-마(kāma)’는 ‘좋아하는’을 의미하고, 브야-빠-다(byāpāda)는 ‘싫어하는’을 의미합니다.

    • *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고통을 즐깁니다. 대표적인 예로 일부 아이들이 고양이나 개를 괴롭히는 습관이 있고, 또 다른 예로는 두 마리의 수탉을 링이나 우리에 가두어 서로 싸우게 하는 ‘닭싸움’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힘사(vihiṁsā)입니다.

    • * 먼저 까-마 다-뚜 단계에서 시작하여 감각 입력을 묘사하는 구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까-마 다-뚜에서 시작하는 감각 입력(감각적 즐거움으로 이어짐)

     

    6. ‘Sanidāna Sutta (SN 14.12)’에서는 “Kāma dhātuṁ, bhikkhave, paṭicca uppajjati kāma saññā, kāma saññ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 saṅkappo, kāma saṅkapp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cchando, kāmacchand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 pariḷāho, kāma pariḷāh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 pariyesanā.”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 ‘매력적인 루-빠’에 대한 과정은 끌리는 감각 입력이 받아들여지는 순간, 즉 ‘까-마 다-뚜’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바로 그 순간에, 마음은 색, 맛, 등의 매력이 더해진 ‘마음이 만든 루-빠’를 자동으로 생성합니다.   

    • * 그것은 초기 까-마 다-뚜 단계에서 까-마 산냐-가 일어남과 함께 이루어지는데, “Kāma dhātuṁ, bhikkhave, paṭicca uppajjati kāma saññā.”로 기술됩니다.  

    • * ‘까-마 라-가 상요자나’가 온전하다면, 마음은 그 ‘마음이 만든 루-빠’에 들러붙어 약한 형태의 상카-라(상깝빠)를 생성하는데, “kāma saññ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 saṅkappo.”로 기술됩니다.

    • * 그것은 마음을 ‘까-마 로-까’로 이동시킵니다. 이제, 마음은 이미 오염되었습니다. 감각 입력이 충분히 강하면, 마음은 ‘kāmacchand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 pariḷāho’ 단계(빠띳짜 사뭅빠-다의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 단계는 ‘까-마 빠릴라-호’ 단계의 이전임)에 도달하고, 그리고 ‘나와 깜마’에 들어가서 의식적으로 강한 깜마를 축적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에서 이를 논의했습니다.

    • * 핵심은 초기 ‘까-마 다-뚜’ 단계에서 자동으로 발생하는 ‘까-마 산냐’가 ‘나와 깜마’ 단계에서 강한 깜마 축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시작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7. 처음 두 단계(kāma dhātuṁ paṭicca uppajjati kāma saññā, kāma saññ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 saṅkappo)는 한결같이 뿌툿자나에게 일어난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 * 까-마 라-가 상요자나가 제거되었다면, 즉 아나-가-미와 아라한의 경우에는 그 두 단계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 * 그들은 ‘마음이 만든’ 다채롭고, 맛있는 등의 루-빠는 실재의 무색, 무취 등의 루-빠가 아님을 완전히 이해합니다.

     

    브야-빠-다 다-뚜에서 시작하는 감각 입력(분노와 둑카 웨다나-로 이어짐) 

     

    8. ‘Sanidāna Sutta (SN 14.12)’의 표식 3.1에서는 브야-빠-다 산냐-가 브야-빠-다 상깝빠를 생성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설명되는데, “Byāpāda dhātuṁ, bhikkhave, paṭicca uppajjati byāpāda saññā, byāpāda saññaṁ paṭicca uppajjati byāpāda saṅkappo …pe… byāpādacchando … byāpāda pariḷāho … byāpāda pariyesanā …”입니다.

     

    • * 이는 브야-빠-다 다-뚜를 촉발시키는 아-람마나(ārammaṇa)에 기반합니다. 예를 들어, 싫어하는 사람을 보거나 불쾌한 맛/냄새를 맡는 것 등입니다. 

    • * 마음에서 빠띠가 상요자나가 제거되지 않은 한, 브야-빠-다 상깝빠로 이어지는 단계는 예외없이 일어납니다.

    • * 다양한 숫따에서 상깝빠가 일어난 후의 단계가 다소 다르지만, 동일한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세요. 핵심은 마음이 상깝빠 단계에 도달한 후에도 그 아-람마나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빠띳짜 사뭅빠-다의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 단계에 도달하여 ‘나와 깜마’ 단계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 * 상깝빠가 일어난 후의 그 중간 단계들은 그 당시의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싫어하는 사람을 만난 후에, 더 높아지지 않고 그냥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말다툼이 일어나면 상황이 악화되어 ‘나와 깜마’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 * 분노에 기반한 모든 부도덕한 행위는 거기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나와 깜마’ 단계에서 경험하는 분노로 자랄 수 있습니다. 

     

    위힘사- 산냐-는 대개 수카 웨다나-로 이어진다

     

    9. 표식 4.1에서 숫따는 위힘사- 산냐-가 (재미로 동물을 해치는) 잔인한 행위로 이어진다고 가리켜 보입니다. 까-마 산냐-(kāma saññā)와 브야-빠-다 산냐-(the byāpāda saññā)와는 다르다는 점에 유의하세요. 

     

    • * 그 세 가지는 ‘나와 깜마’ 단계에서 아뿐냐 아비상카-라로 이어지는 주요 산냐- 유형이며, 이는 표식 5.3에서 가리켜 보인 바와 같이 아빠-야-(두가띠)에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 * 이제, ‘Sanidāna Sutta (SN 14.12)’에서 논의된 나머지 세 가지 유형의 산냐-를 살펴보겠습니다. 

     

    까-마 로까에서 좋은 유형의 산냐- 세 가지

     

    10.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에서 논의한 세 가지 유형의 산냐-에 기반한 행위, 말, 생각을 하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소수의 사람들은 그 반대 유형인 넥캄마 산냐-(nekkhamma saññā), 아브야-빠-다 산냐-(abyāpāda saññā), 및 아위힘사- 산냐-(avihiṁsā saññā)를 길러서 나쁜 영향을 극복하려고 노력합니다. 

     

    • * 그 설명은 각각 표식 7.1, 8.1, 9.1에서 시작됩니다.

    • * 여기서 ‘넥캄마(nekkhamma)’는 ‘까-마, 즉 감각적 즐거움을 멀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넥캄마 산냐-(nekkhamma saññā)는 까-마 산냐-(kāma saññā)의 반대말입니다.

    • * 마찬가지로, 아브야-빠-다 산냐-(abyāpāda saññā)와 아위힘사- 산냐-(avihiṁsā saññā)는 브야-빠-다 산냐-(byāpāda saññā)와 위힘사- 산냐-(vihiṁsā saññā )의 반대말입니다. 

     

    11. 평범한 재가 생활을 하면서 첫 두 가지(넥캄마 산냐-와 아브야-빠-다 산냐-)를 닦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요기(수행자)들은 까-마 산냐-와 브야-빠-다 산냐-를 촉발시킬 수 있는 감각 입력을 피하기 위해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 * 그러나 숫따의 표식 7.7, 8.6, 및 9.6에 언급된 바와 같이, 성자(‘sutavā ariyasāvako’)는 넥캄마 산냐-, 아브야-빠-다 산냐-, 및 아위힘사- 산냐-라는 세 가지를 모두 육성할 수 있습니다.

    • * 아위힘사- 산냐-(avihiṁsā saññā)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의도가 없지만, 여섯 가지 유형의 산냐-(saññā)가 까-마 로까의 모든 감각 입력에 들러붙게 유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함으로써 스스로를 해칩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숙고가 필요합니다. 그 아위힘사- 산냐-는 아라한 단계에서만 완전히 육성될 수 있습니다. 이때 사람은 아윗자-(avijjā)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 * 마지막 세 가지 유형의 산냐-(넥캄마 산냐-, 아브야-빠-다 산냐-, 아위힘사- 산냐-)는 표식 10.3에서 가리켜 보였듯이 인간계 또는 그 위의 선처에 재탄생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마하-짯따-리-사까 숫따

     

    12. ‘Mahācattārīsaka Sutta (MN 117)’ 또한 상깝빠의 두 세트, 즉 ‘나쁜 재탄생’으로 이어지는 한 부도덕한 세트와 ‘좋은 재탄생’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도적적인 세트를 확인시켜 줍니다. 

     

    • * 부도덕한 세트: “Kāma saṅkappo, byāpāda saṅkappo, vihiṁsā saṅkappo—ayaṁ, bhikkhave, micchāsaṅkappo.” 이것들은 물론, 까-마 산냐-(kāma saññā), 브야-빠-다 산냐-(byāpāda saññā), 및 위힘사- 산냐-(vihiṁsā saññā)를 통해 일어납니다.  

     

    반면에, ‘도덕적인 상깝빠’, 즉 ‘삼마 상깝빠(sammā saṅkappa)’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표식 12.2): “Sammā saṅkappampahaṁ, bhikkhave, dvāyaṁ vadāmi—”

     

    • * 세간적 도덕적인 세트(표식 13.2): “Nekkhamma saṅkappo, abyāpāda saṅkappo, avihiṁsā saṅkappo.” 이것들은 넥캄마 산냐-(nekkamma saññā), 아브야-빠-다 산냐-(abyāpāda saññā), 및 아위힘사- 산냐-(avihiṁsā saññā)를 통해 일어납니다.

    • * 닙바-나로 이끄는 출세간적 세트(표식 14.2): “Yo kho, bhikkhave, ariyacittassa anāsavacittassa ariyamaggasamaṅgino ariyamaggaṁ bhāvayato takko vitakko saṅkappo appanā byappanā cetaso abhiniropanā vacī saṅkhāro.” 이 세트는 위의 두 가지 세간적 범주에 있는 6가지 유형의 상깝빠 중의 어떤 것도 아닙니다

    • * 6가지 유형의 산냐-는 31영역 중에 재탄생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그 첫 번째 세트는 아빠-야-로 이어지게 하고, 두 번째는 인간 영역 이상의 ‘선처’에 재탄생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 * 6가지 유형의 산냐-의 어떤 것도 출세간(lokuttara) 경우에는 없습니다. 성스런 길의 수행은 모든 유형의 로끼야 산냐-(lokiya saññā, 세간 산냐-)에서 벗어난 사띠빳타-나 부-미(Satipaṭṭhāna Bhūmi)에서 일어납니다. ‘삼마- 사띠는 사띠빳타-나 부-미에서 경험되는 아-나-빠-나사띠다’를 참조하세요. 마음을 동요시키는 그 여섯 가지 유형의 산냐-가 없어야 담마 개념을 숙고하는 것이 가능(사실, 이것이 최적의 방법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을 때에만 막가 팔라(magga phala)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위힘사- 산냐-는 특별한 경우다

     

    13. 뿌툿자나는 일반적으로 처음 세 가지 유형의 산냐-(까-마 산냐-, 브야-빠-다 산냐-, 및 위힘사- 산냐-)를 통해 들러붙는 경향이 있지만, 뒤의 세 가지 유형인 넥캄마 산냐-, 아브야-빠-다 산냐-, 및 아위힘사- 산냐-)를 통해서도 들러붙을 수 있습니다.

     

    • * 아위힘사- 산냐-는 아윗자-를 통해 모든 중립적인 감각 입력에 들러붙음을 유발합니다. 이는 모든 뿌툿자나에 해당하며, 아라한 단계 아래의 성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에서 (마음을 뿌라-나 깜마 단계로 이끄는) (약한) 들러붙음이 ‘중립’ 또는 ‘아둑카마수카 웨다나-’만을 생성하는 감각 입력에 대해서도 발생합니다. 이것은 아래 #14에서 논의됩니다.

    • * (아라한 단계에서) 아윗자-가 완전히 소멸되어, 모든 감각 경험이 마음이 만든 것임을 완전히 이해합니다. 이때, 사람은 ‘아낫따’ 특성을 완전히 이해합니다.  

    • * 예를 들어, 다섯 고행자는 붓다께서 며칠에 걸쳐 ‘Dhammacakkappavattana Sutta (SN 56.11)’를 자세히 설명하셨을 때,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Anattalakkhaṇa Sutta (SN 22.59)’에서 붓다께서 ‘아낫따’ 특성을 설명하시는 것을 듣고 아라한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마음은 자동적으로 중립 웨다나-에도 들러붙는다!

     

    14. 붓다께서는 아라한 단계 아래의 사람은 누구나 수카 또는 둑카 웨다나-를 생성하지 않는 감각 입력, 즉 중립/아둑카마수카 웨다나-을 포함하여 모든 감각 입력에 들러붙을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다른 숫따에서, 붓다께서는 ‘중립적인’(즉 중립/아둑카마숙카 웨다나-를 생성하는 것) 감각 입력조차도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가리켜 보이셨습니다. 아래 #15를 참조하세요.

     

    • * 뿌툿자나는 자신이 ‘중립적인 웨다나-’에 들러붙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윗자-로 들러붙으며, 들러붙는다는 것을 자각도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아위힘사- 상깝빠(avihiṁsā saṅkappa)’를 생성합니다(그들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려는 의도는 없지만, 아윗자-를 통해 이 상황에서 의도치 않게 스스로에게 해를 끼칩니다).

    • *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 이상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은 인지하고 있지만, 아라한 단계에 이르러서야 그런 들러붙음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 * 이것은 부처님의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가르침(‘pubbe ananussutesu dhammesu’)입니다. 세계관의 차이는 아래 표에 나와 있습니다.

    • * 뿌툿자나의 세계관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세계관과 동일하다는 점에 유의하세요. 즉, 막가 팔라를 가진 이들(즉, 성자)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의 ‘평범한 세계관’입니다.   

     

    영문 다운로드/인쇄:Attachment to ‘neutral vedanā

     

    살라 숫따 ㅡ 뿌툿자나는 세 가지 모든 유형의 웨다나-에 들러붙는다

     

    15. 뿌툿자나를 묘사(‘assutavā puthujjano’)할 때, ‘Salla Sutta (SN 36.6)’는 “Tassa tāsaṁ vedanānaṁ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appajānato, yo adukkhamasukhāya vedanāya avijjānusayo, so anuseti.”라고 합니다.

     

    • * 본질적으로 이는 아윗자-로 인해 뿌툿자나가 아둑카마숙카 웨다나-에 들러붙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 * 그러나, 세상 대상에는 색깔이 없다는 사실에서 기본적인 개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제 이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세상에는 색깔이 없다 ㅡ 색깔은 마음이 만든 것이다

     

    16. (막가 팔라가 없는 모든 사람, 즉 전 세계 99%이상을 포함하는) 모든 뿌툿자나들은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실제 루-빠’를 경험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외부 자극(광경, 소리, 맛, 냄새, 및 감촉)을 경험하는 것은 그것의 참된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 우리는 시각 대상(광경)에 초점을 맞추어 볼 수 있는데, 이는 설명하기 가장 쉽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뿌툿자나는 무지개가 여러가지 색깔을 띠고, 하늘은 파랗고, 풀은 초록색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꽃과 같은 다채로운 사물이나 매력적으로 옷을 입은 사람들을 경험합니다.

    • 우리가 ‘세상에는 색깔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갖게 된 데에는 다음 중의 하나 또는 둘 다의 이유가 있습니다.

    i. 많은 사람들은 어떤 사물이 본질적으로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합니다. 예를 들어, ‘장미 꽃잎은 붉은 색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것에도 고유한 ‘색깔’은 없습니다’.

    ii. 우리는 또한 학교에서 태양에서 나오는 ‘백색광’이 7가지 기본색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때문에 햇빛에 색깔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햇빛은 전자기 스펙트럼의 아주 작은 부분이며, 전자기 스펙트럼에는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마이크로파나 영상 촬영에 사용되는 X선 등이 포함됩니다. 모든 전자기파(햇빛 포함)는 ‘무색’입니다.

    • 붓다께서는 그런 ‘색깔’이 ‘마음이 만든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하-웨달라 숫따 ㅡ 산자-나-띠, 위자-나-띠, 빠자-나-띠’의 #6을 참조하세요.

    • 뿌툿자나는 세상의 대상에 색깔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푸른 하늘이나 녹색 풀밭을 보는 것과 같이 중립적이거나 아둑카마숙카 웨다나-만을 생성하는 광경에도 아윗자-로 들러붙습니다. 이는 위 #13와 #14에서 가리켜 보인 바와 같이, 아위힘사- 산냐-(avihiṁsā saññā)로 나타납니다.

     

    결론: ‘루빵 앗따또 사마누빳사띠’ =  ‘모든 루빠가 실재한다고 믿는 것’

     

    17. 숫따에서 루-빠는 ‘마음이 만든 루-빠’를 의미하며, 세상에 존재하는 루-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에 유의하세요. ‘루-빠 사무다야 ㅡ 마음에 의해 다채로운 세상이 창조된다’의 #3을 참조하세요.

     

    • *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실재’라고 당연하게 여기는 감각 입력조차도(좋든 싫든 그것들에 들러붙지 않더라도) 실제로는 실재가 아닙니다. 즉, 그런 루-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 * 예를 들어, 초록 잔디나 푸른 하늘을 볼 때 우리는 별 생각 없이 그것이 실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했듯이, 잔디는 ‘초록색’을 띠는 것이 아니고, 하늘도 실제로 푸른색이 아닙니다. 이러한 색깔들은 전적으로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 ‘rūpaṁ attato samanupassati’에서 ‘attato’는 ‘실재하는 것(atta)’을 의미하고, ‘samanupassati’는 ‘sama’와 ‘anu’와 ‘passati’의 합성어이며, ‘passati’는 ‘보다’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루-빠(rūpa)가 실재한다는 것, 즉 외부 세계에 있는 것과 동일하다고 ‘보고/믿는다’는 뜻입니다.

    • * 따라서, 뿌툿자나(그리고 아라한 단계 아래의 모든 성자)는 아윗자-를 통해 그러한 광경(중립적인 웨다나-만을 생성하는 광경)에 들러붙습니다.

    • * [뿌툿자나와의] 유일한 차이점은 아라한 단계 아래의 모든 성자는 그런 광경이 실재한다는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그들은 아위힘사- 산냐-에 자동적으로 들러붙는 것을 아직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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