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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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및 '내 것' ㅡ 고통(괴로움)의 근본 원인

 

원문: Key Dhamma Concepts 섹션의 ‘Me and Mine – The Root Cause of Suffering’ 포스트

- 2020년 6월 9일 작성

 

빤짝칸다-의 간략한 요약

 

1. 다섯 무더기(빤짝칸다-, pancakkhandhā)는 각 사람마다 독특합니다. 여러분의 것은 다른 사람의 것과는 다릅니다.

 

  • * 빤짝칸다-(pancakkhandhā)는 각자가 이 세상의 루빠로 과거에 경험한 것과 루빠(루빡칸다-)로 미래에 예상되는 경험을 포함합니다.

  • * 물론 그것들은 정신 특성(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을 포함합니다. 그것들은 네 가지 정신 무더기, 즉 웨다낙-칸다(vedanākkhandha), 산냑-칸다(saññākkhandha), 상카-락칸다(saṅkhārakkhandha), 윈냐-낙칸다(viññāṇakkhandha)에 있습니다.

  • * 따라서 빤짝칸다-(pancakkhandhā)의 모든 다섯가지 구성요소는 사실상 우리의 과거 경험들과 미래 기대들입니다. 그것들은 각 사람마다 독특합니다.

 

빤쭈빠-다-낙칸다-의 간략한 요약

 

2. 우리는 빤짝칸다-(pancakkhandhā, 오온)의 아주 작은 부분에 대해서만 우빠-다-나(upādāna)를 가집니다. 그 부분이 빤쭈빠-다-낙칸다- (pancupādānakkhandhā, 오취온) 입니다.

 

  • * 빤쭈빠-다-낙칸다(pancupādānakkhandhā)는 우리가 좋아했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 X가 지난주에 매력적인 사람을 보았다면, X는 그 사람을 기억하고 그 사람에 대한 느낌, 지각(인식) 및 상카라의 어떤 세트를 형성했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그 다음, 가능한 기대(예를 들어, 데이트 신청)로 이어지고, 그것은 윈냐-나 우빠-다-낙칸다(viññāṇa upādānakkhandha)의 일부입니다.

  • * 이 모든 것들이 ‘정신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들은 외부 세계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각자 자신의 정신적 경험/기대들입니다.

  • * 만약 다른 사람(Y)이 같은 사람을 동시에 보았다면, Y의 정신적 인상은 X와는 다를 것입니다. 게다가, Y는 그 사람을 기억조차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건은 Y의 우빠-다-낙칸다(upādānakkhandha)의 일부도 아닙니다.

  • * 빤쭈빠-다-낙칸다-(pancupādānakkhandhā)는 ‘나’와 ‘내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일어납니다.

  • * 위 사실이 이해될 때까지 다섯 무더기(The Five Aggregates, Pañcakkhandha) 서브 섹션에 있는 포스트들을 읽어보면 좋습니다.

 

다섯 집착 무더기(빤쭈빠-다-낙칸다-)의 주 구성요소

 

3. 우선, 다섯 무더기 중 어떤 부분에 대해 우리가 ‘집착’(가까이 유지, 우빠-다-나)하는 지를 볼(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다섯 무더기에 대한 그 우빠-다-나(집착)가 어떻게 괴로움(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볼(알) 수 있을 것입니다.

 

  • * 깨어있는 순간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적 몸(육체)과 ‘일어나는 모든 정신적 개체’는 ‘나’ 또는 ‘내 것’이라는 느낌의 요인이 됩니다.

  • * 그 다음, 부모, 배우자,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소중한 부분들입니다. 그 다음으로 친인척, 친구 등이 있습니다.

  • * 물론, 각자는 주택, 자동차, 다른 부동산, 사업체 등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 * 그 다음, 그 리스트(목록)가 확장되어 이웃, 도시, 국가, 및 세상에 있는 다양한 것들을 포함합니다.  

  • * 각 사람마다 그 순서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집착에 대한]  그 개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빤쭈빠-다-낙칸다-의 주 구성요소는 ‘나’ 또는 ‘내 것’ 주위에 집중되어 있다

 

4. 자신이 주로 생각하고, 말하고, 일하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그것들은 모두 위의 #3에서 언급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나’ 와 ‘내 것’을 수반합니다.

 

  • * 물론, 누군가에 대해 화(분노)를 내는 것은 그 사람의 견해/인식에서 비롯됩니다. 그 사람은 ‘나’에 맞서는 어떤 것이나 ‘내 것’과 관련된 어떤 것을 했을 것입니다.

  • * 보통 사람은 쓸모없는 영화를 보거나,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술에 취하거나 하는 등으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들은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 행해진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에서 보면, 물고기가 맛있는 미끼를 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 해롭지 않은 그런 행위로 인한 나쁜 결과를 ‘볼(알)’ 수 없습니다.

  • * 마지막 것은 띨락카나(Tilakkhaṇa)를 이해하기 시작하기 전에는 볼(알) 수 없는 더 심오한 지점입니다.

  • * 그 방식의 ‘봄(딧티, diṭṭhi)’과 인식(산냐-, saññā)은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본성), 즉, 야타-부-따 냐-나(yathābhūta ñāṇa)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네 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를 모르거나, 띨락카나(Tilakkhaṇa)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를 이해하지 못하는 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야타-부-따 냐-나 ㅡ 세상 실재에 대한 이해

 

5. 탐욕, 분노, 무지에 기반한 우리의 모든 행위는 야타-부-따 냐-나(yathābhūta ñāṇa)를 지니지 않은 것에 그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어떻게 왜 일어나는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상응하는 행위(깜마, kamma)로 인해 일어납니다. 그리고 깜마(kamma)는 상카-라(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를 바탕으로 행해집니다.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와 미래 재탄생도 가져올 수 있는) 강한 깜마(kamma)는 (아비)상카-라로 인해 일어납니다.

  • *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 원인과 결과의 원리를 상세히 설명합니다.

  • * 그러나, 대부분의 깜마(kamma)의 결과는 나중에 나타나기만 합니다. 때로는 내생에 나타납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깜마(kamma)/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믿기 어렵습니다. 또한, 그 때문에 재탄생 과정의 진상을 알 수 있을 때까지는 도(길)에서 진전을 이루기가 불가능합니다.

  • * 그 진정한 본질(본성), 즉 야타-부따 냐-나(yathābhūta ñāṇa)가 이해될 때까지, 아윗자-(avijjā)를 바탕으로 하는 상카-라(saṅkhāra)를 생성하는 삿따(satta), 즉 유정체(living being)가 있습니다.

  • * ‘satta’는 ‘saththa’로 발음된다는 것에 유의하세요.

 

유정체(삿따)의 정의

 

6. 붓다께서는 삿따 숫따(Satta Sutta, SN 23.2)에서 라-다(Rādha)에게 삿따(satta, 유정체)가 의미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루-뻬 코, 라-다, 요 찬도 요 라-고 야- 난디- 야- 땅하-, 따뜨라 삿또, 따뜨라 위삿또, 따스마- 삿또띠 윳짜띠. 웨다나-야 … 산냐-야 … 상카라-레수 … 윈냐-네 요 찬도 요 라-고 야- 난디- 야- 땅하-, 따뜨라 삿또, 따뜨라 위삿또, 따스마- 삿또띠 윳짜띠”

(“Rūpe kho, Rādha, yo chando yo rāgo yā nandī yā taṇhā, tatra satto, tatra visatto, tasmā sattoti vuccati. Vedanāya … saññāya … saṅkhāresu … viññāṇe yo chando 

 

번역(단지 의미만): “ ‘라-다(Rādha)’여, 바램(찬다, chanda), 라-가(rāga), 그리고 물질 형상(루-빠, rūpa)에 높은 가치를 두는 인식(난디-, nandī)이 있을 때, 형상에 대한 집착(삿또, satto), 강한 집착(위삿또, visatto)이 있고, 그러면 무지한 유정체(삿또, satto)가 있다고 말한다. 비슷하게, 바램(찬다, chanda), 라-가(rāga), 그리고 웨다나-(vedanā) … 산냐-(saññā) … 상카-라(saṅkhāra) … 윈냐-나(viññāṇa)에 높은 가치를 두는 인식(난디-, nandī)이 있을 때, … 유정체가 있다고 말한다.”

 

  • * 다른 번역은 “Sentient Beings”에서 볼 수 있습니다.

  • * ‘삿따(satta)’라는 빠알리 낱말은 ‘집착’ 또는 ‘들러붙음’을 의미한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집착이 강한 것은 ‘위삿따(visatta)’라고 합니다.

  • * 그러므로, 어떤 유정체든(‘데와’든, ‘브라흐마’든, ‘인간’이든) 감각적 즐거움을 갈망하는 것의 무익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삿따(satta)’입니다. ‘삿따(satta)’는 ‘나(me)’와 ‘내 것(mine)’이라는 인식을 지닙니다.

 

7. 다시 말하면, 빤짝칸다-(pañcakkhandhā)에 대한 우빠-다-나(upādāna)가 있는 한(즉, ‘빤쭈빠-다-낙칸다-_pañcupādānakkhandhā’가 있는 한) ‘유정체(삿따, satta)’가 있습니다.

 

  • * 또한, 사람은 아리야 뿍갈라(Ariya puggala)가 될 때 삿따(satta) 상태를 초월한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뿍갈라(puggala)는 (소따빤나 아누가-미, 소따빤나, 사까다-가-미 아누가-미, 사까다-가미, 등) 8 레벨에서 삿따(satta) 상태를 극복하였습니다.

  • * 또한, 보디삿따(Bodhisatta)는 아직 삿따(satta)이지만, 보디(Bodhi), 즉 붓다후드(Buddhahood)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 * ‘satta’는 ‘saththa’로 발음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Tipiṭaka English” Convention Adopted by Early European Scholars – Part 1’와 그에 이어지는 ‘~ Part 2’를 참조하세요.

  • * 이제 위에서 논의한 내용이 어떻게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와 연관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은 오직 아윗자-에 달려있다

 

8.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과정은 누가 (아비)상카-라를 행하고 있는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결과는 어떤 종류의 상카-라(saṅkhāra)가 관련되어 있는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 상카-라(saṅkhāra)의 생성은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 즉 (아누사야, 아-사와, 가띠 등과 관련된) 자신의 갈망/바램/기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결과는 행위에 따른 것입니다. 특정 유형의 행위(상카-라를 통한 깜마)를 하면 결실(깜마 위빠-까, kamma vipāka)로 이어집니다.

 

  • *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에서 ‘나(me)’ 또는 ‘자아(self)’는 상정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물론, 그런 (아비)상카-라는 ‘나’ 또는 ‘자아’라는 감각이 있기 때문에 생성됩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단계는 ‘나’라는 감각으로 행하는 것이 결실 없음(실속 없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 * 그것을 또 다른 방식으로 말하면, 행위는 자신의 가띠(습관/성격)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끌림의 법칙, 습관, 성격(가띠), 및 갈망(아-사-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대신에, 요즈음, 사람들은 ‘자아(self)’가 있는지 없는지를 놓고 토론하는 데 수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나(me)’라는 관점과 인식으로 행하는 것이 왜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지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그 시간을 더 잘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 * 자신의 오염된 가띠(gati)가 제거될 때까지 ‘나(me)’와 ‘내 것(mine)’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9. 궁극적인 진실은 ‘자아(self)’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라한(Arahant)이 죽은 후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면, 그 아라한은 죽은 후에 31 영역 중의 한 곳에 여전히 존재해야 할 것입니다.

 

  • * 그러나, (아라한 단계에서) 그 사실을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이 전체 과정에 관련된 ‘자아(self)’가 없다는 것을 완전히 깨닫지는 못합니다. 그때까지는 ‘나(me)’와 ‘내 것(mine)’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 * 그러므로, 아라한 단계에 이를 때까지 (아비)상카-라를 생성하고 미래 고통(괴로움)의 조건을 만드는 자아(self)가 있습니다.

  • * 그것을 또 다른 방식으로 말하면, 어떤 유정체(삿따, satta)와 연관된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라한은 죽을 때까지 빤짝칸다-(pañcakkhandhā)를 지니지만, 그것에 대한 우빠-다-나(upādāna)는 없습니다. 따라서, 살아 있는 아라한에게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는 없습니다.

 

상카-라는 빤짜 우빠-다-나 칸다-(빤쭈빠-다-낙칸다-)로 이어진다

 

10. 과거의 일(사건)들을 상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들에 들러붙어 우리 마음에 그 일(사건)들을 다시 만들기 시작하여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를 생성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 * (깜마 위빠-까로 이어지는) 깜마(Kamma)는 마노- 깜마(manō kamma), 와찌 깜마(vaci kamma), 및 까-야 깜마(kāya kamma)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생성됩니다. 그것들은 마노- 상카-라(manō saṅkhāra),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 및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를 통해 행해집니다.상카-라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마노 깜마(mano kamma)(자발적 생각)는 우리의 가띠(gati)에 따라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 * 와찌 깜마(vaci kamma)(자신에게 속으로 하는 말과 밖으로 내뱉는 말)은 (‘위딱까/위짜-라’로 행해진) 의식적인 생각으로 인해 일어납니다.

  • * 까-야 깜마(kāya kamma)  또한 의식적인 생각으로 인해 일어나며, 그것들은 움직이는 육체 행동을 수반하기 때문에 자와나(javana) 힘이 가장 강합니다. ‘Javana of a Citta – The Root of Mental Power’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자신에게 속으로 하는 말이나 백일몽은 육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비록 그것들이 까-야 깜마(kāya kamma)보다 덜 강하기는 하지만, 와찌 깜마(vaci kamma)는 축적되어 강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논의하겠습니다.

 

혼자 생각하는 것은 ‘와찌 상카-라’다

 

11. 자신에게 속으로 말할 때(즉,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생각할 때), 우리는 대부분 과거의 중요한 사건(일)을 떠올립니다. 그 다음, 위딱까/위짜-라(vitakka/vicāra)로 그 사건(일)을 분석하고 그 과거 경험을 다시 되살려 경험하거나 그 이전 사건(일)을 기반으로 미래 계획을 세웁니다. 위딱까/위짜-라(vitakka/vicāra)는 그것을 자세히 분석하고 우리의 바램(욕구)를 반영(추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 사건(일)에 점점 더 많은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를 생성하게 합니다.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를 참조하세요. 물론, 우리가 ‘정말 그것에 빠지면(몰입/열중하면)’,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도 할 수 있습니다.

 

  • * 또한, 사람들은 경험하고 싶은 미래 사건(일)을 만들 수 있으며, 그것은 또한 빤짝칸다(pancakkhandha)(이것은 다섯 무더기 중의 어떤 무더기에 대한 11가지 구성요소 중 ‘아나-가따_anāgata’, 즉 ‘미래’ 구성요소임)의 일부가 됩니다.

  • * 위의 모든 것은 ‘빤쭈빠-다-낙칸다(pancupādānakkhandha, pañca upādāna khandha)를 수반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은 이제 ‘그 사건을 다시 끌어내어 마음에 가까이 하고 의식적으로 더 많은 와찌 상카-라(그리고 어쩌면 까-야 상카-라)를 생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 * 그 때문에 우빠-다-나(upādāna)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에서 그렇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단계입니다.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와 ‘우빠-다-나 빳짜야- 바와(upādāna paccayā bhava)의 두 단계는 실제로 그 안에서 실행되는 많고 많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을 수반합니다.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 ㅡ 빠띳짜 사뭅빠-다의 결정적 단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아라한의 상태 ㅡ 잘못된 출발점

 

12. 많은 사람들은 닙바-나(Nibbāna)가 자기 자신의 소멸로 이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합니다. ‘Yamaka Sutta (SN 22.85) – Arahanthood Is Not Annihilation but End of Suffering’를 참조하세요.

 

  • * 그러나 더 깊은 요점은 우리가 ‘나(me)’와 ‘내 것(mine)’이라는 잘못된 견해와 인식 때문에 재탄생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피할 수 없는 유혹은 우리를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있는 사악처(apāyā, 아빠-야-)에 가두는 매우 부도덕한 행위(빠-빠 깜마, pāpa kamma)를 하게 합니다.

  • * 그런 빠-빠 깜마(pāpa kamma)는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의 강한 버전입니다. ‘꾸살라와 아꾸살라 깜마, 뿐냐와 빠-빠 깜마’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첫 단계로 '아닛짜(anicca) 특성’을 보아야 합니다. ‘가치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을 축적하는 것은 두 가지 면에서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고, 적어도 우리가 죽을 때 그것들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잇짜, 닛짜, 아닛짜 ㅡ 중요한 관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두 번째 요점은 우리가 그것들을 얻기 위해 부도덕한 행위를 하면 그 행위는 나쁜 재탄생과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 * 우리는 아빠-야(apāyā, 사악처) 중의 하나인 동물 영역(축생계)만 볼 수 있습니다. 그 조차도 (숲, 정글, 특히 바다에 있는) 동물들이 겪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기르는 애완동물을 보게 됩니다. 거기(야생)에서는 노쇠한 동물들이 없습니다. 노쇠한 모든 동물들은 늙어 조금만 느려지면 바로 [날렵한 육식동물에게] 산 채로 잡아 먹힙니다.

 

부처님은 스스로 확인하지 않으신 것은 가르치지 않으셨다

 

13. 위의 논의 중 일부는 각자에게 분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발견할 수 있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세계관’입니다. 그러나, 담마(Dhamma)를 배우고 도덕적인 삶을 살면, 차츰 그것들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 * 붓다께서는 스스로 이 세상의 ‘진정한 본성(본질)’을 [직접] 확인하기 까지는 붓다후드(Buddhahood)를 달성했다고 선언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신 경이 여러 개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붓다께서는 31영역의 [모든] 존재와, 특정 존재가 어떻게 한 영역에서 죽어 다른 영역에 재탄생하는지를 [직접] 확인하셨습니다. 더욱이,  붓다께서는 그것이 자연적인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 과정을 통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셨습니다.

  • * 우리가 담마(Dhamma)를 배울수록 점점 더 분명해 질 것입니다. 어느 시점에 자신은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 대한 ‘깨질 수 없는 믿음’으로 계발되었을 것입니다. 그 때가 자신이 삿다(saddhā)를 가지는 때입니다. 그것은 모든 고통(괴로움)이 ‘나’와 ‘내 것’이라는 인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견고(확고)하게 됩니다.

  • * 또한, ‘불교에서 신비 현상?’ 포스트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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