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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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하- 빳짜야- 우빠-다-나 ㅡ '빠띳짜 사뭅빠-다'의 결정적 단계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Taṇhā Paccayā Upādāna – Critical Step in Paṭicca Samuppāda’ 포스트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nhā Paccayā Upādāna)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PS)에서 결정적인 단계입니다. 그곳이 우리가 PS 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곳입니다.

 

2019년 12월 7일 작성; 2019년 12월 10일 개정; 2020년 10월 14일 개정; 2022년 10월 9일 개정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통제한다

 

1. 우리는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에 대한 논의로 이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이 숫따(sutta)는 PS(연기) 과정을 촉발하는 초기 사건을 설명합니다. 우리가 본 것 처럼,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사(salāyatana paccayā phassa)’ 단계는 새로운 PS(연기) 사이클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불교의 세계관 – 소개’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마음은 아윗자-(avijjā)로 인한 상카-라(saṅkhāra)(오염되거나 부도덕한 생각)를 임의적으로 생성하기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PS(연기) 사이클이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전 포스트인 ‘와찌- 상카-라 ㅡ 상깝빠(의식적 생각)와 와-짜-(말)’를 참조하세요.

  • * 우리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미래에 ‘나쁜 깜마 위빠-까(bad kamma vipāka)를 가져올 수 있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 유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꾸살라-물라 PS(akusala-mūla PS’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는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사’로 시작한다

 

2. 먼저, 마음이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악하거나 부도덕한 생각)을 생성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붓다께서는 로-바(lōbha, 탐욕), 도-사(dōsa, 증오 또는 분노), 및 모하(mōha, 무지)라는 세 가지 주요 이유가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모하(mōha, 무지)는 기본 레벨에서는 깜마/위빠-까(kamma/vipāka)와 재탄생을 모르는 것이고, 더 깊은(심오한) 레벨에서는 [세상의]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특성(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 * 사람들은 탐욕이나 분노의 유혹에 빠져서 그런 나쁜 깜마를 행합니다. 그것은 여섯 감각 중의 하나를 통해 들어오는 강한 감각 입력이 있는 경우에만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적을 보면 분노하는 생각(마음)이 일어납니다. 값진 물건을 보고 탐욕을 불러 일으킬 때에만 도둑질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 * 그렇기 때문에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사(salāyatana paccayā phassa)’가 PS(연기) 사이클을 통해 깜마(kamma)를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살라-야따나(salāyatana)는 6가지 내부 아-야따나(internal āyatana), 즉 6가지 감각 기능(눈, 귀, 코, 혀, 몸 및 마음)을 의미합니다.

 

3.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사(salāyatana paccayā phassa)’는 두 단계를 결합합니다. ‘보는 것’의 경우에, “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āti cakkhu viññāṇaṃ, tiṇṇaṃ saṅgati phasso.”입니다. 여기서, saṅgati phasso(산가띠 팟소)는 ‘saṅ gati phasso’, 즉 ‘해당하는 가띠로 접촉하여 산(saṅ)을 축적하는 것’입니다.

 

  • * 그러면 마음은 ‘(산)팟사 빳짜야- 웨-다나-((saṅ)phassa paccayā vēdanā, ‘samphassa’로 운이 맞춰짐)’ 및 ‘웨-다나- 빳짜야- 땅하-(vēdanā paccayā taṇhā)’ 단계를 빠르게 거치며, 순식간에 그 아-람마나(ārammana)에 들러붙음, 즉 땅하-(taṇhā)로 끝납니다! 우리는 그 단계를 멈출 수 없습니다. 그 단계들은 자동적입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그 유형의 아-람마나에 들러붙는 가띠’를 지니는 한, 일어날 수 있습니다.

  • * 그것에 대해서는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를 논의할 때, 여러 포스트(게시물)에서 길게 논의했습니다. ‘자아가 있는가?’에 있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땅하-(taṇhā)(들러붙는 가띠)를 제거하는 것은 PS(연기)에서 다음 단계인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를 통제하는 것을 수반합니다. 그것에 우리가 이제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모-하와 아윗자- 사이의 차이

 

4. 일단 누군가 아-람마나(ārammana)에 들러붙으면, 그 사람은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 부도덕한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 부도덕한 행위(나쁜 깜마)가 장래에 불쾌한 위빠-까(vipāka)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일부 나쁜 깜마(bad kamma)는 고통으로 가득찬 아빠-야(apāyā, 악처)에 재탄생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눈먼 모-하(mōha)의 기본 레벨입니다. 모-하(mōha)를 지닌 자는 그런 부도덕한 행위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바, 도-사, 모-하’ 대 ‘라-가, 빠띠가, 아윗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모-하(mōha)는 열 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제거하면 아윗자-(avijjā) 수준으로 감소됩니다. 아윗자-(avijjā)의 낮은 수준에서도, 감각 입력이 충분히 강하다면 그런 ‘아빠-야가-미 행위(apāyagāmi action, 사악처로 떨어지는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도덕적인 생활로 살아 갈 것이지만, 아-람마나(ārammana)가 충분히 강하면 큰 뇌물을 받거나 성적 비행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 삶의 대부분에서는 뇌물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거액이라면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한 후에도, 여전히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를 할 수 있지만, 그 마음은 ‘아빠-야가-미(apāyagāmi) 행위’를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 * 지금 우리는 보통 도덕적인 사람이 아꾸살라-물라 PS(Akusala-Mūla PS)의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사(salāyatana paccayā phassa)’ 단계에서 시작하여, 어떻게 나쁜 깜마(bad kamma)를 축적하는지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기서] 도덕적인 사람은 10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제거했지만 아직 띨락카나(Tilakkhana),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도덕적인 사람이 악처로 향하는 행위로 유혹될 수도 있다

 

5. 그런 ‘도덕적인 사람’은 모-하(mōha)를 아윗자-(avijjā) 수준으로 줄였지만, 여전히 ‘아빠-야가-미apāyagāmi)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비록 주로 도덕적으로 생활할지라도, 감춰진 오염원(아누사야)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아누사야(anusaya)는 유혹적인 감각 입력에 의해 촉발되면, 아-사와(āsava)로서 표면에 나올 수 있는 감춰진 오염원(아누사야, anusaya)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3에서 논의한 것입니다.

 

  • * 아누사야(anusaya)는 ‘잠자는 오염원’을 의미합니다. 그것들은 강력한 감각 입력(아-람마나, ārammana)에 의해 ‘깨어나고 아-사와(āsava)로서 마음에 올라올 수 있습니다. ‘아-사와, 아누사야, 및 가띠’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아누사야(anusaya)는 성냥개비의 화약과 같습니다. 거친 표면에 그 성냥개비를 문지르면 불이 붙을 것입니다. 같은 식으로, (‘아윗자-’로) 오염된 마음이 강력한 아-람마나(ārammana(예를 들어, 매력적인 사람)와 접촉(팟사, 더 정확하게는 삼팟사)할 때, 탐욕이나 갈망(아-사와, āsava)이 마음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 * 그런 아누사야(anusaya)를 갖는 것은 ‘나쁜 가띠(bad gati)’를 갖는 것과 같습니다. (팔정도에 따라) 아누사야(anusaya)를 줄이면 바람직하지 않은 가띠(gati)도 줄어듭니다. [아래에서] 볼 것처럼 , 마음챙김으로 우빠-다-나(upādāna)를 점차 줄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땅하-는 ‘나쁜 가띠’와 ‘아-사와’가 있는 한, 거기에 있다

 

6.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에서 결정적인(매우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염된 가띠(gati), 즉, 7가지 유형의 아누사야(anusaya)가 있는 한, 주어진 아-람마나(ārammana)에 들러붙을(땅하-, taṇhā) 수 있습니다. 7가지 유형의 아누사야(anusaya)는 딧타-누사야(ditthānusaya, 잘못된 견해), 위찌낏짜-누사야(vicikiccānusaya, 현명하지 못한 것을 하는 경향), 까-마라-가 아누사야 (kāmarāga anusaya, 감각적 즐거움에 유혹), 빠띠가 아누사야(paṭigha anusaya, 혐오에 유혹), 바와라-가 아누사야(bhvarāga anusaya, 존재함을 갈망), 마-나 아누사야(māna anusaya, ‘나’라고 느낌), 및 아윗자- 아누사야(avijjā anusaya, 모름)가 그것입니다. 예를 들어, ‘Dutiya Anusaya Sutta (AN 7.12)’를 참조하세요.

 

  • * 그 아-람마나(ārammana)가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 마음은 그것에 들러붙습니다(taṇhā, 땅하-). 그 다음, 현명하지 않게 행동하면(ayonisō manasikāra, 아요니소- 마나시까-라),  PS(연기)의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를 거치고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를 통해 새로운 깜마(kamma)을 축적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 * 그러므로, 닙바-나(Nibbāna)에 이르는 핵심은 땅하-(taṇhā)에서 우빠-다-나(upādāna)로 자동적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멈추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띠(gati), 아누사야(anusaya), 및 이로 인한 아-사와(āsava, 갈망)를 제거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아래에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팔정도, 사띠팟타-나, 아-나-빠-나사띠와 관계

 

7. 닙바-나(Nibbāna)에 도달하는 핵심은 ‘땅하- 빳자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에서 일어나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에서 논의된 마지막 단계인 ‘웨-다나- 빳짜야- 땅하-(vēdanā paccayā taṇhā)’ 후의 첫 단계입니다.

 

  • * 위에서 보았듯이, ‘오염된 가띠(defiled gati)’ 또는 아-사와(āsava)를 지니고 있는 한, 땅하-(taṇhā)를 가질 것입니다. 땅하-(taṇhā)를 줄이고 마침내 제거하는 방법은 나쁜 가띠(gati)를 줄이고 제거하는 것입니다.

  • * 우리는 순전히 의지력만으로는 땅하-(taṇhā)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가 일어나기 시작할 때 그것들을 멈춤으로써 ‘땅하- 빳자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빠-다-나 단계에 이를 때에만 ‘우리 자신에게 말하기’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땅하-와 우빠-다-나 사이의 차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우리는 마음이 오염된 상태로 변한 것을 알게 되자 마자, 그 ‘잘못된 또는 부도덕한 길’(밋차- 딧티, 밋차- 상깝빠, 밋차- 와-짜-, 밋차- 깜만따, 밋차- 아지와, 밋차- 와-야-마, 밋차- 사띠, 및 밋차- 사마-디)에서 ‘도덕적인 길’로, 구체적으로 성스런 길(삼마- 딧티, 삼마- 상깝빠, 삼마- 와-짜-, 삼마- 깜만따, 삼마- 아지와, 삼마- 와-야-마, 삼마- 사띠, 및 삼마- 사마-디)로 바꾸어야 합니다.

 

8. 그런 ‘나쁜 아-람마나’에 대해 마음챙기는 것이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 ‘sati’ + ‘paṭṭhāna_확립함’), 즉, ‘마음 챙김’입니다.

 

  • * 밋차- 딧티, 밋차- 상깝빠, 밋차- 와-짜-, 밋차- 깜만따, 밋차- 아지와, 밋차- 와-야-마, 밋차- 사띠, 및 밋차- 사마-디 중의 어떤 것을 강제로 제거하는 것이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의 ‘아-빠-나(āpāna, 버림/몰아냄)’ 부분입니다.

  • * 삼마- 딧티, 삼마- 상깝빠, 삼마- 와-짜-, 삼마- 깜만따, 삼마- 아지와, 삼마- 와-야-마, 삼마- 사띠, 및 삼마- 사마-디의 관련 요소를 강력하게 강화하는 것이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의 ‘아-나(āna, 받아들임)’ 부분입니다.

  • * 이제 우리는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가 ‘아-나(āna)’와  ‘아-빠-나(āpāna)’ 또는 아-나-빠-나(ānapāna)에 마음(sati)을 집중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와찌 상카-라는 우빠-다-나의 원인이다

 

9. 땅하-(taṇhā)로 인해 아-람마나(ārammana)에 ‘들러붙거나 매이게’ 될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오염된 생각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노-(manō)(또는 ‘찟따_citta’) 상카-라(saṅkhāra)입니다.

 

  • * 예를 들어, 아름다운(매혹적인) 사람을 보면, 자동으로 음탕한(욕정이 가득한) 생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주된 적을 보면, 화나는(분노하는) 생각 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오염은 ‘숨겨진 오염원(아누사야, anysaya)’ 또는 ‘나쁜 가띠(bad gati)’로 인해 일어납니다.

  • * 그러나, 우리는 곧 그런 생각을 알게 됩니다. 그 단계에서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비슷한 오염된 생각을 계속해서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알게 되자마자, 그것들은 이제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입니다. 

 

10. 우리는 그 아-람마나(ārammana)를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하기 시작합니다(vitakka/vicāra, 위딱까/위짜-라). 우리는 또한 그것에 대해 말하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이 두 유형 모두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여러 포스트(게시물)에서 자세히 논의했습니다. ‘와찌- 상카-라 ㅡ 상깝빠(의식적 생각)와 와-짜-(말)’, ‘땅하-와 우빠-다-나 사이의 차이’, 및 ‘위딱까, 위짜-라, 사위딱까, 사위짜-라, 및 아위딱까, 아위짜-라’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위딱까/위짜-라(vitakka/vicāra)(와찌- 상카-라, vacī saṅkhāra)로, 그 아-람마나(ārammana)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더 강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와 관련된 신체 행동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 * 그런데,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말하지 않고 자신에게 말하는 것)는 상깝빠(saṅkappa)와 동일합니다.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는 또한 말(vācā, 와-짜-)로 이어집니다.

  • * 물론,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는 신체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11. 다음은 시간 순서입니다.

 

  • * 마노-(manō)(또는 ‘찟따_citta’) 상카-라(saṅkhāra)는 먼저 (그리고 자동적으로) 일어나며, 의식적인 사고(생각)를 수반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강한 업적 결과(kammic consequence)를 가지지 않습니다.

  • * 우리는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를 생성함으로써 새로운 깜마를 축적하기 시작합니다.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는 밋차- 상깝빠(micchā saṅkappa)와 밋차- 와-짜-(micchā vācā)로 이어집니다.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는 밋차- 깜만따(micchā kammaṃta)로 이어집니다.

 

‘아윗자-’는 ‘땅하-/우빠-다-나’의 나쁜 결과를 모르는 것이다

 

12. 위 #7에서 #11까지 논의한 것은 모두 PS(연기)의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마음이 자동적으로 ‘아-람마나(ārammana)’에 들러붙을(땅하-, taṇhā) 때,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를 통해 상카-라(saṅkhāra)를 생성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새로운 PS(빠띳짜 사뭅빠-다) 과정이 새로운 깜마를 축적하기 시작하는 방법입니다.

 

  • * 탐욕, 분노, 또는 무지를 통해 들러붙게 되는 것의 해로운 결과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때에 아윗자-(avijjā)로 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주어진 (어떤) 사람’이 항상 아윗자-(avijjā)로 행하지는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이 아윗자-(avijjā)로 생각하고 행하기 시작할지 여부는 아-람마나(ārammana)의 특질(그 사람의 가띠와 일치하는지 여부)과 아-람마나(ārammana)가 얼마나 강한 지에 달려 있습니다.

  • * 아-람마나(ārammana)에 ‘들러붙게’ 되거나 ‘매이게’ 되면, 그 사람은 그것을 더 가까이 끌어당기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은 그 아-람마나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그리고 행동을 취하기를 원합니다.

  • * 우빠-다-나(upādāna)는 ‘(자신의 마음에) 가까이 끌어 당김’을 의미합니다. 우빠-다-나(upādāna)는 ‘우빠(upa)’ + ‘아-다-나(ādāna)로 이루어진 합성어이며, 여기서, ‘우빠(upa)’는 ‘가까운’을 의미하고, ‘아-다-나(ādāna)’는 ‘끌어 당김’을 의미합니다.

 

13. 그것이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새로운 PS(연기) 사이클을 시작하는 방법입니다.

 

  • * 우리는 우선, 말하지 않고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를 생성하기 시작합니다. 그것들(와찌- 상카-라)은 밋차- 상깝빠(micchā saṅkappa)입니다. 예를 들어, X라는 사람이 적(Y)을 보고 바로 Y에 대해 나쁜 생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 * 감정이 격하게 되면, X는 말을 할지도 모릅니다. 위 예에서, X는 Y에게 거친 어떤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밋차- 와-짜-(micchā vācā)입니다.

  • * Y가 친절하게 반응해도 상황이 악화되면, X는 그 사람을 때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밋차- 깜만따(micchā kammaṃta)입니다. 그 행동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 * 그런 모든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를 통해 일어납니다.

 

‘빠띳짜 사뭅빠-다’는 차례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14. 이제 우리는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가 얼마나 복잡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 단계로 되돌아가, 새로운 PS(빠띳짜 사뭅빠-다, 연기) 사이클을 시작했습니다.

 

  • * 이제 그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는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a paccayā viññāṇa)’를 통해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로 이어집니다(그리고 나머지 PS 사이클은 ‘시달림(괴로움, 고통)의 전체 덩어리’로 끝납니다.). 그 아-람마나에 계속 관여하는 한, 그 전체 과정이 반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 * 그런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는 #13의 예에서 그 사람을 해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 윈냐-나(viññāṇa)는 뒤따라서 ‘윈냐-나 빳짜야- 상카-라(viññāṇa paccayā saṅkhāra)’를 통해 더 많은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a paccayā viññāṇa)’가 거꾸로 진행되는 단계라는 점에 주목하세요.

  • * 그러므로, PS(연기) 단계는 반드시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거꾸로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것들은 사이클의 다른 위치로 뛰어넘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그것은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에서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단계로 뛰어넘었습니다.

  • * 그러나, 기본 개념을 이해할 때, 그런 복잡함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아-나-빠-나사띠’ 및 사띠빳타-나와 관계

 

15. 그것은 또한 마노- 상카-라(manō saṅkhāra)에 이어서 즉시 일어나는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를 멈추는 것이 매우 중요한(결정적인) 이유입니다. 그 초기 단계에서 [입으로] 말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단지 음탕한(욕정이 가득한) 생각/혐오하는(싫어하는) 생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ā)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반드시 중단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들은 (더 많은 ‘와찌- 상카-라’를 통한)  ‘나쁜 말’이나 (‘까-야 상카-라’를 통한) ‘나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Vitakkasaṇṭhāna Sutta, MN 20’에 설해져 있습니다.

  • * 그것은 올바른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와 사띠빳타-나 바-와나-를 하는 핵심입니다. ‘아-나-빠-나사띠 바-와나-(소개)’ 를 참조하세요.

  • * 다음 포스트에서는 그것과, PS(연기)의 더 많은 단계를 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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