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6] 아-나-빠-나사띠 바-와나-(소개)
원문: Bhāvanā (Meditation) 섹션의 ‘6. Ānāpānasati Bhavana (Introduction)’ 포스트
- 2020년 7월 22일 개정
이 섹션의 상위 10개 포스트는 불교 명상의 근본(기본) 사항을 설명합니다. 이 섹션의 나머지 포스트에서는 명상 주제에 대해 논의합니다. 그것들은 해결되지 않은 의문을 명확하게 하고 사마-디(samādhi, 삼매)를 얻는 데 도움이 됩니다. 처음 11개의 포스트는 적어도 초기에는 그 순서대로 따라야 합니다.
1. ‘두 번째 레벨 ㅡ 마음 정화의 핵심’ 포스트의 논의로부터 몇 가지 핵심 사항이 명확 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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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습관(가띠’/아-사와)은 더 부도덕하거나 가치없는 행동, 말, 또는 생각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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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습관을 저지하기(무력화하기) 위해서는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주는 윤리적 활동을 함으로써 도덕적 행위를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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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우리는 항상 이것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쁜 습관이 다시 돌아오도록 나두어서는 안되며, 이것은 우리가 실천 중에 모든 태만(중단)을 감시(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게 유익한(이로운) 도덕적 행위를 할 기회를 찾아 보아야 합니다.
2. 빠알리 낱말인 아-나-빠-나(ānāpāna)의 일반적 의미에서, ‘아-나(āna)’는 삶을 나아지도록 하기 위해 ‘취할(수용할)’ 필요가 있는 것을 포함하고, ‘아-빠-나(āpāna)는 그 반대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몸에 좋은 음식만 먹고 나쁜 음식은 멀리하거나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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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아-나(āna)’는 ‘(숨을) 들이쉼’으로 간주되고 ‘아-빠-나(āpāna)’는 ‘(숨을) 내쉼’으로 간주됩니다. ‘사띠(sati)’는 마음 챙김(mindfulness, 알아 차림)을 의미하므로, 이제,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라는 낱말은 ‘알아차리며(마음챙기며) 숨을 들이쉬고 알아차리며(마음챙기며) 숨을 내쉬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것은 아-나-빠-나(ānāpāna)의 평범한(padaparama, 빠다빠라마)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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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마음 정화를 돕는 더 깊은 것을 의미하셨습니다.
3. 붓다께서는 바-와나(bhāvanā)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셨습니다.
“아-세위따-야, 바-위따-야, 바훌리까타-야, …(āsevitāya, bhāvitāya, bahuleekathāya, …)”. 그 의미는 “(좋은 것을) 가깝게 하여 관계를 유지하고, 자주 사용하고, 항상 사용하고, …”입니다.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할 때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가능할 때마다 그것을 지원하는(뒷받침하는) 것들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규 명상 기간에만 그것을 하는 노력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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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반복된 행위가 어떻게 뇌의 신경 연결 세트를 강화하여 습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현재의 과학적 설명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Truine Brain: How the Mind Rewires the Brain via Meditation/Habits’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습관적인 것이) 마음에 떠오를 때마다 그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나쁜 습관을 없애는 것도 그와 똑같이 작용합니다. 그러면 기존 신경 연결이 약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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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고해야 할 것은 ‘좋은 것(꾸살라, 즉 도덕적인 것)을 받아들여 수용하고, 나쁜 것(아꾸살라, 즉 부도덕한 것)을 버리는 마음챙김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a)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4. 자,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한 모든 내용을 살펴볼 때,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쉬는’ 과정만을 알아차리는(마음챙기는) 것으로 어떻게 나쁜 습관(가띠/아-사-와) 또는 다섯가지 장애를 제거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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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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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한 가지 것은 할 수 있습니다. 조용한 곳에 앉아 눈을 감고(즉, 다섯가지 육체적 감각을 사실상 끄고) 호흡에 마음을 고정하면, 다섯 가지 장애를 진정시켜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8가지 큰 부도덕한 행위를 범하는 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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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 진정 상태, 즉 사마타(Samatha)에 도달하는 것은 일시적인 해결책입니다. 우리가 그 모든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과 유혹이 있는 현실(일상) 세계로 돌아오는 순간, 그 습관들이 자리를 차지합니다.
5. 호흡 명상은 일시적인 경감(완화)만을 줄 수 있다고 이해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이 호흡 명상은 힌두교 요기(수행자)들이 부처님의 재세시 이전에도 평범한 (아나-리야, Anāriya) 자-나(jhānā)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한 것과 동일한 명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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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고사(Buddhaghosa) 스님의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가 테라와다 담마(Theravada Dhamma)(서기 5세기)의 기초로 받아들여진 이래로, 이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의 ‘문자적 해석’이 사용되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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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는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에 설명되어 있지 않으며, 오늘날 그 어떤 마하-야-나(Mahāyāna) 또는 테라와다(Theravada) 문헌에도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찾으려면 띠삐따까(Tipitaka, 삼장)를 직접(빠알리어로)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그것은 앗사-사 숫따(Assāsa sutta)와 같은 많은 숫따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경을 영어로 번역한 것은 필자가 보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아릿타 숫따(Arittha Sutta)이며, ‘Access to insight’ 사이트에 불완전하게 [잘못] 번역된 영어 번역판이 있지만, 붓다께서 들숨과 날숨이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의 유일한 하나의 버전이라고 하는 아릿타(Arittha) 존자에게 질책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이 숫따에서 아릿타 존자가 수행하는 그 들숨과 날숨 명상은 아리야, 즉 성스런 버전이 아니라고 말씀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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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ccesstoinsight.org/tipitaka/sn/sn54/sn54.006.than.html 을 참조하세요.
6. 따라서,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avana)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평범한 ‘호흡’ 버전이고, 다른 하나는 붓다께서 권장하신 진짜 버전으로서, 약간의 호흡을 포함하여 더 넓은 해석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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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바른 의미는 많은 숫따(sutta)에 있습니다. 물론 주된 숫따(sutta)는 ‘아-나-빠-나사띠 숫따(Ānāpānassati Sutta, MN 118)’입니다. 아-나-빠-나사띠 숫따(Ānāpānasati sutta)는 아-나-빠-나 바와나(Ānāpānasati Bhavana)에 대한 부처님의 법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주요 숫따(sutta)와 마찬가지로 법문은 쉽게 전달할 수 있는 형태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주로 사리뿟따(Sariputta) 존자께서 설하신 다른 숫따(sutta)들에서는 (예: 앗사-사 숫따, Assāsa Sutta) ‘아-나(āna)’ 및 ‘아-빠나(āpana)’와 같은 용어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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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7. What is Ānāpāna?’ 포스트와 ‘8. The Basic Formal Anāpānasati Meditation’ 포스트에서 그 숫따를 좀 깊은 수준에서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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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삐따까(Tipitaka, 삼장)을 바탕으로 한 상세한 논의는 ‘Is Ānāpānasati Breath Meditation?’에 있으므로 참조하세요.
7. 그뿐 아니라, 주요 숫따(sutta)를 설명하기 위해 싱할라 주석서(앗타까타-, Atthakathā)도 쓰여졌습니다. 불행히도, 이 앗타까타-(Atthakathā, 주석서)는 붓다고사(Buddhaghosa) 스님이 자신의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와 다른 책을 쓴 직후에 불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세 개의 중요한 것(‘빠띠삼비다 막가 빠까라나_Patisambhida Magga Pakarana’, ‘삐따꼬빠데사_Pitakopadesa’, 및 ‘넷티빠까라나_Netthipakarana’)은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살아 남았습니다. 필자가 여기서 설명하는 것은 띠삐따까(Tipitaka)에 포함된 그 문헌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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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고사(Buddhaghosa) 스님은 나중에 불교도로 개종하기 전에 힌두교인이었습니다. B.C. Law의 ‘The Life and Work of Buddhaghosa’(1927년판)을 참조하세요. 어떤 사람들은 그가 붓다 담마(Buddha Dhamm)에 힌두교의 개념을 소개하기 위해 불교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든, 아니면, 그는 무엇이든 자신이 이해한 것들을 어떤 악의적인 의도가 없이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인 것으로 기술한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올바른(정확한) 해석은 이 오랜 세월 동안 숨겨져 있었습니다. ‘Visuddhimagga – A Focused Analysis’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