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인드리야는 팟사를 일으키고 아-야따나는 삼팟사를 일으킨다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Indriya Make Phassa and Ayatana Make Samphassa’ 포스트
- 2019년 9월 15일 작성; 2019년 11월 13일 개정
지금까지 ‘붓다의 세계관’의 요약
1. 우리는 불교 세계관의 감각 경험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Chachakka Sutta, MN 148’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이 숫따(sutta)는 각자의 세계가 어떻게 각자의 행위로 인해 생겨나는지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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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행위로 인해 인간, 천신, 동물 등으로 각 유정체의 존재가 생겨났습니다. 그 이전의 행위(kamma, 업)는 그 당시의 감각 경험으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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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적 즐거움을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 부도덕한 행(빠-빠 깜마, pāpa kamma)를 행한다면, 그 깜마(kamma, 업)의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는 두가띠(dugati)라고 하는 ‘나쁜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두가띠(dugati)라는 낱말은 ‘두(du)’+‘가띠(gati), 즉 ‘나쁜 가띠(bad gati)’에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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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에, 공덕행(puñña kamma)은 ‘좋은 영역’, 즉 ‘수가띠(sugati)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수가띠(sugati)라는 낱말은 ‘수(su)’+‘가띠(gati)’, 즉 ‘좋은 가띠(good gati)’에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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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무지로 인해, 유정체는 도덕적 행위보다 부도덕한 행위를 더 많이 하기가 쉽습니다. 따라서 재탄생의 99% 이상이 두가띠(dugati) 영역에 있습니다. 그 때문에 재탄생 과정(윤회)이 ‘고통(괴로움, 시달림)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영역에 재탄생하는 기회를 붓다께서 묘사하신 방법’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땅하-로, 인드리야는 아-야따나가 된다
2. 우리의 감각 경험은 ‘우리의 세계’를 구성합니다. 우리는 6가지 유형의 인드리야(짝쿠_cakkhu, 소-따_sōta, 가-나_ghāna, 지와-_jivhā, 까-야_kāya, 및 마노-_manō 인드리야_indriya)로 6가지 유형의 감각 입력(루-빠_rūpa, 삿다_sadda, 간다_gandha, 라사_rasa, 뽓땁바_phottabba, 담마-_dhammā 루-빠_rūpa)를 경험합니다. 해당하는 쌍이 접촉(팟사, phassa)을 할 때, 6가지 유형의 일치하는 윈냐-나(viññāna) 중 하나가 일어납니다. 그것은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입니다. ‘불교의 세계관 – 소개’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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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사람은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를 경험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갑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더 즐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더 많은 감각 접촉을 만듭니다. 그러면 6가지 인드리야(indriya)는 6가지 내부 아-야따나(āyatana)가 되고, 6가지 유형의 외부 루-빠(external rūpa)는 외부 아-야따나(external āyatana)가 됩니다. ‘아-야따나 사이의 접촉이 위빠-까 윈냐-나로 이어진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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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드리야(indriya)는 ‘단지 접촉’, 즉 ‘팟사(phassa)’를 일으킵니다. 감각 접촉이 ‘들러붙음(땅하-, taṇhā)’으로 이루어지면, 그 인드리야(indriya)는 내부 아-야따나(āyatana)가 됩니다. 이것이 이전 포스트인, ‘감각 기능이 어떻게 내부 아-야따나가 되는가?’에서 설명한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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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확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위 포스트를 다시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어떤 질문에도 기꺼히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단지 감각 접촉에서 깜마 형성으로 전환
3. 보통 사람에게도 내부 아-야따나(internal āyatana)와 외부 아-야따나(external āyatana) 사이의 초기 접촉은 강한 깜마(kamma, 업)의 생성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것 또는 사람(‘루-빠 루-빠’ 또는 단지 ‘루-빠’라고 함)을 볼 때만, 우리는 그 루-빠(rūpa)를 알아채게 됩니다.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마노- 상카-라’가 있습니다. ‘마노- 상카-라’는 재탄생의 원인이 되는 강한 깜마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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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아라한 단계에 이르지 못한 사람에게는 감각 기능이 ‘내부 아-야따나(internal āyatana)’로 나타나고, 외부 루-빠(external rūpa)는 ‘외부 아-야따나(external āyatana)’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 MN 148)에서 명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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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Arahant) 만이 그 감각 기능을 항상 인드리야(indriya)로 사용합니다.
4.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 MN 148)에서는, 예를 들어 짝카-야따나_cakkhāyatana(짝쿠_cakkhu)와 루-빠-야따나_rūpāyatana(루-빠_rūpa) 사이의 초기 접촉은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 윈냐-낭(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āti cakkhu viññāṇaṃ)"으로 표현됩니다. 다른 다섯 쌍에 대해서도 비슷한 표현이 있으며, 마지막 한 쌍은 "마난짜 빠띳짜 담메 짜 웁빳자-띠 마노 윈냐-나(manañca paṭicca dhamme ca uppajjāti mano viññāṇa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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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쿠(cakkhu)와 루-빠(rūpa) (평범한 용어로 말하면, 눈과 외부 물체) 사이의 접촉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의 진행에 초점을 맞추어 보겠습니다. 다른 유형의 접촉은 비슷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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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따(sutta)에 명시된 바와 같이, ‘들러붙음’ 단계는 그 다음 단락부터 시작됩니다. 짝쿠(cakkhu)와 루-빠(rūpa)의 접촉에 대해서는,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 윈냐-낭, 띤낭 상가띠 팟소(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āti cakkhu viññāṇaṃ, tiṇṇaṃ saṅgati phasso)”라고 되어 있습니다. (숫따의 잇따른 각 단락은 마음이 하는 다음 단계라는 점에 유의하세요.)
‘띤낭 상가띠 팟소’는 무엇인가?
5. “띤낭 상가띠 팟소(tiṇṇaṃ saṅgati phasso)”라는 구절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가 만나는 것이 접촉이다”로 잘못 번역됩니다. 그 세 가지가 무엇일까요? 그것들은 짝쿠(cakkhu), 루-빠(rūpa) 및 짝쿠윈냐-나(cakkhuviññāṇa)일까요?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래에서 논의하는 바와 같이, ‘접촉(팟소, phasso)’은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는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ṇa) 후에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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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짧은 구절은 전체 숫따(sutta)의 핵심 구절입니다. 그것은 인드리야(indriya)가 자신의 가띠(gati)로 인해 어떻게 아-야따나(āyatana)가 되는지를 표현합니다. 그것들은 갈망이나 싫어함을 통한 들러붙음(땅하-, taṇhā)의 가띠(gati)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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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띤난(tinnan)’은 3이고 ‘상가띠(sangati, ‘san’ + ‘gati’)는 ‘산(san)으로 오염된 가띠(gati)’입니다. 보통 사람은 로-바(lōbha, 탐함), 도-사(dōsa, 성냄/미워함), 및 모-하(mōha, 사성제를 이해하지 못함)라는 3가지 근본 원인을 바탕으로 한 가띠(gati)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 ‘산(san)’이 키워드인 이유입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삼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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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san)’이라는 낱말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의미를 잃어버린 또 다른 결정적인 빠알리 낱말은 가띠(gati)입니다. 이 낱말을 많은 포스트에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끌림의 법칙, 습관, 성격(가띠), 및 갈망(아-사-와)’와 ‘9. Key to Ānāpānasati – How to Change Habits and Character (Gati)’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띤낭 상가띠 팟소’에서 팟사는 ‘삼팟사’다
6. 그래서, 그 초기 감각 접촉 이후에, 보통 사람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거나, 마음에 떠오르는 기억(담마-, dhammā)에 대해 좋아함/싫어함을 형성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초기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ṇa)의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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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드레스를 보고 있는 젊은 여성은 그것에 대한 좋아함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적을 보고 있는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은 싫어함을 형성할 것입니다. 십대는 특정 노래 등에 들러붙게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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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함/싫어함, 즉 산(san)이 있는 그런 정신적 접촉은 우리의 가띠(gati)로 인해 순간적으로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것(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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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 초기 반응과 이후의 의식적 행 사이에는 지연 시간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렇기는 해도, 우리는 말이나 신체 행동을 통제할 시간이 있습니다. 나쁜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말이나 신체 행동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 명상의 ‘까-야-누빳사-(kāyānupassanā)에서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9. Key to Ānāpānasati – How to Change Habits and Character (Gati)’ 포스트와 ‘Mahā Satipaṭṭhāna Sutta’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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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san)’으로 행해진 그 접촉(팟사, phassa)은 삼팟사(samphassa)입니다. 여기서, ‘산(san)’ + ‘팟사(phassa)’는 ‘상팟사(sanphassa)’로 운이 맞추어 집니다. 그러나, ‘삼팟사(samphassa)’로 맞추어지는 운이 더 좋습니다. 같은 식으로, ‘상사-라(sansāra)는 ‘산(san)’ + ‘사-라(sāra, 좋은)’로 합성된 낱말이며, 일반적으로 ‘삼사-라(samsāra)로 발음되고 쓰여집니다.
아라한에게는 삼팟사가 없다
7. 아라한(Arahant)에게는 ‘가띠(gati)’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염된 모든 가띠(gati)는 로-바(lōbha), 도-사(dōsa), 모-하(mōha) 때문에 일어납니다. 따라서 아라한(Arahant)은 감각적인 것(event)에 들러붙지(taṇhā, 땅하-) 않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띤낭 상가띠 팟소(tiṇṇaṃ saṅgati phasso)’는 아라한의 마음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한, 들러붙음(taṇhā, 땅하-)은 끌림(좋아함) 또는 질색(싫어함) 때문일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세요. ‘땅하-, 탐함과 미워함과 미혹함을 통해 어떻게 들러붙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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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 때문에 아라한은 결코 자신의 인드리야(indriya)를 ‘내부 아-야따나(internal āyatana)로 상승시켜 [오염시키지] 않습니다. 따라서, 주어진 인드리야(indriya)에 의해 감지되는 모든 외부 루-빠(external rūpa)는 단지 루-빠(rūpa)가 됩니다. 사람이 아무리 매력적이거나 주어진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그것에 들러붙지 않습니다. 아무리 가치있는 뇌물도 아라한을 유혹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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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식으로, 누군가가 [아라한의] 팔을 자른다 해도 아라한의 마음에는 성냄이 생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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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마음 성향(마음 가짐)은 보통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길(팔정도)을 따라 수행하는 중에 그 멀리까지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걸어서 긴 여행을 할 때, 수백 마일 앞의 마지막 구간이 아니라 다음 마일의 구간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전체 지형에 대한 대략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8. 아라한의 마음 상태는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마음 상태는] 아나- 가-미(Anāgāmi)에게도 ‘달성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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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Sōtapanna)에게 있어서, 아나-가-미(Anāgāmi)의 마음 성향은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아나-가-미(Anāgāmi) 단계는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을 제거함으로써 도달됩니다.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우리의 ‘깊이 뿌리박힌 욕망’을 제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에게 이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소-따빤나(Sōtapanna)는 ‘아닛짜(anicca) 특성’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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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소-따빤나(Sōtapanna)는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기 위해 부도덕한 행동을 하고 싶은 유혹이 들지 않습니다. 소-따빤나(Sōtapanna)는 ‘가정’의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지만, ‘아빠-야가-미(apāyagāmi) 행위는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빠야-(apāyā)에 태어나기에 적합한 자가 되게 하는 부도덕한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소-따빤나(Sōtapanna)는 불륜 성관계를 하지 않습니다.
‘팟사 빳짜야- 웨다나-’는 실제로 ‘삼팟사 자- 웨다나-’다
9. 이제 짜착까 숫따(Chachakka Sutta, MN 148)의 다음 구절로 이동합니다.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 윈냐-낭, 띤낭 상가띠 팟소, 팟사 빳짜야- 웨다나-(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āti cakkhu viññāṇaṃ, tiṇṇaṃ saṅgati phasso, phassa paccayā vedanā)” 중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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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따(sutta)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방식을 보길 바랍니다.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는 감각 경험의 진행에서 세 번째 단계입니다. 그러나 나머지의 더 많은 단계를 포함하여 이러한 모든 단계는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오직 부처님 만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 빠른 과정에서 이런 세세한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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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논의에서,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는 ‘삼팟사 빳짜야- 웨다나-(samphassa paccayā vedanā)’이어야 함이 분명합니다. 어떤 숫따(sutta)에서는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edanā)’로 쓰여 있습니다. 여기서 ‘자-(jā)’는 ‘~로 인해 태어난’을 의미합니다. 즉, 그것은 ‘삼팟사(samphassa)’로 인해 일어나는 웨다나-(vedan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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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이것은 감각적인 것(event)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두 번째 유형의 웨다나-(vedanā)입니다. 그것은 일어나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유형의 웨다나-(vedanā)는 아라한(Arahant)에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과 아라한 사이의 감각 경험의 차이
10. ‘띤낭 상가띠 팟소(Tiṇṇaṃ saṅgati phasso)’와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는 감각 경험의 진행에서 두 가지 매우 중요한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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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두 단계는 띨락카나(Tilakkhana, 아닛짜, 둑카, 아낫따 특성)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자가 어떻게 추가 유형의 웨다나-(vedanā)를 생성할 수 있는지를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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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우리는 이전 포스트인, ‘아-야따나 사이의 접촉이 위빠-까 윈냐-나로 이어진다’와 ‘감각 기능이 어떻게 내부 아-야따나가 되는가?’에서 중요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두 포스트에서, 우리는 예를 들어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 윈냐-낭(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āti cakkhu viññāṇaṃ”와 같은 초기 감각 접촉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그것은 보통 사람과 아라한 모두에게 공통된 웨다나-(vedanā)를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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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포스트에서 논의했듯이, 보통 사람과 아라한 모두는 케이크 한 조각의 ‘단맛’을 느낄 것입니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돌아가서 그 두 포스트를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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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띤낭 상가띠 팟소(Tiṇṇaṃ saṅgati phasso)’와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의 두 단계가 보통 사람에서는 (그 예에서 케이크에) 추가적인 들러붙음으로 인한 웨다나-(vedanā)가 생성될 수 있습니다. 아라한(Arahant)에게는 들러붙음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웨다나-(vedanā)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요약
11.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 MN 148)의 핵심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보통 사람과 아라한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예를 들었습니다. 많은 숫따(sutta)에서 핵심 개념이 간단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즉, 그것들은 ‘웃데-사(uddēsa) 또는 닛데-사(niddēsa) 버전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Sutta – Introduction’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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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 MN 148)와 같은 주요 숫따에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빠띠니데-사(patiniddēsa)’ 버전의 숫따(sutt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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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 때문에 그런 숫따(sutta)를 ‘낱말 그대로(word-by-word)’ 번역하는 것은 최소의 이득만 됩니다. 많은 숫따(sutta)를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몇 개의 숫따(sutta)를 자세히 이해하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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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이러한 근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뭔가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으면, 기꺼이 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2. 우리는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 또는 더 정확하게는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edanā)’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웨다나-(vedanā)의 유형에 대해 논의할 것입니다. ‘Vipāka Vēdanā and “Samphassa jā Vēdanā” in a Sensory Event’ 포스트를 보세요.
여담(추가 정보)
13. 지금까지 논의한 단계인,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 윈냐-낭, 띤낭 상가띠 팟소, 팟사 빳짜야- 웨다나-(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āti cakkhu viññāṇaṃ, tiṇṇaṃ saṅgati phasso, phassa paccayā vedanā)”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있는 더 일반적인 표현인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소; 팟사 빳짜야- 웨다나-,..(saḷāyatana paccayā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의 일부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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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방가 숫따(‘Vibhaṅga Sutta, SN 12.2’)에서, ‘팟사(phassa)’ 및 ‘웨다나-(vedanā)’라는 용어는 ‘삼팟사(samphassa)’ 및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edanā)’로 명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빠띳자 사뭅빠-다 및 차착까 숫따_MN 148에 있는) 아윗자-(avijjā)로 행하는 보통 사람의 경우에만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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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있는 ‘팟사(phassa)’는 위방가 숫따(SN 12.2)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까따모 짜, 빅카웨, 팟소? 차이메, 빅카웨, 팟사까-야- - 짝쿠삼팟소, 소따삼팟소, 가-나삼팟소, 지와-삼팟소, 까-야삼팟소, 마노삼팟소. 아양 윳짜띠, 빅카웨, 팟소.(Katamo ca, bhikkhave, phasso? Chayime, bhikkhave, phassakāyā—cakkhusamphasso, sotasamphasso, ghānasamphasso, jivhāsamphasso, kāyasamphasso, manosamphasso. Ayaṃ vuccati, bhikkhave, pha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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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있는 ‘웨다나(vedana)’는 위방가 숫따(SN 12.2)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까따마- 짜, 빅카웨, 웨다나-? 차이메, 빅카웨, 웨다나-까-야- - 짝쿠삼팟사자- 웨다나-, 소따삼팟사자- 웨다나-, 가-나삼팟사자- 웨다나-, 지와-삼팟사자- 웨다나-, 까-야삼팟사자- 웨다나-, 마노삼팟사자- 웨다나-. 아양 윳짜띠, 빅카웨, 웨다나-.(Katamā ca, bhikkhave, vedanā? Chayime, bhikkhave, vedanākāyā— cakkhusamphassajā vedanā, sotasamphassajā vedanā, ghānasamphassajā vedanā, jivhāsamphassajā vedanā, kāyasamphassajā vedanā, manosamphassajā vedanā. Ayaṃ vuccati, bhikkhave, vedan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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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연결이 보이지 않더라도 염려하지 마세요. 우리는 다음 포스트에서 모든 유형의 웨다나-(vedanā)에 대해 논의할 것입니다. 그 연결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것을 언급했을 뿐입니다. 띠삐따까(Tipiṭaka)에 있는 모든 것은 ‘자기 일관적(self-consistent)’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