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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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리야는 팟사를 일으키고 아-야따나는 삼팟사를 일으킨다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Indriya Make Phassa and Ayatana Make Samphassa’ 포스트

- 2019년 9월 15일 작성; 2019년 11월 13일 개정; 2022년 8월 4일 개정

 

지금까지 ‘붓다의 세계관’의 요약

 

1. 우리는 불교 세계관의 감각 경험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Chachakka Sutta, MN 148’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이 숫따(sutta)는 각자의 세계가 어떻게 각자의 행위로 인해 생겨나는지를 설명합니다.

 

  • * 과거 행위로 인해 인간, 천신, 동물 등으로 각 유정체의 존재가 생겨났습니다. 그 이전의 행위(kamma, 업)는 감각 경험으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 * 감각적 즐거움을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 부도덕한 행(빠-빠 깜마, pāpa kamma)를 행한다면, 그 깜마(kamma, 업)의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는 두가띠(dugati)라고 하는 ‘나쁜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두가띠(dugati)라는 낱말은 ‘두(du)’+‘가띠(gati), 즉 ‘나쁜 가띠(bad gati)’에서 나왔습니다.

  • * 반면에, 공덕행(puñña kamma)은 ‘좋은 영역’, 즉 ‘수가띠(sugati)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수가띠(sugati)라는 낱말은 ‘수(su)’+‘가띠(gati)’, 즉 ‘좋은 가띠(good gati)’에서 나왔습니다.

  • * 그러나, 무지로 인해, 유정체는 도덕적 행위보다 부도덕한 행위를 더 많이 하기가 쉽습니다. 따라서 재탄생의 99% 이상이 두가띠(dugati) 영역에 있습니다. 그 때문에 재탄생 과정(윤회)이 ‘고통(괴로움, 시달림)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영역에 재탄생하는 기회를 붓다께서 묘사하신 방법’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땅하-로, 인드리야는 아-야따나가 된다

 

2. 우리의 감각 경험은 ‘우리의 세계’를 구성합니다. 우리는 6가지 유형의 인드리야(짝쿠_cakkhu, 소-따_sōta, 가-나_ghāna, 지와-_jivhā, 까-야_kāya, 및 마노-_manō 인드리야_indriya)로 6가지 유형의 감각 입력(루-빠_rūpa, 삿다_sadda, 간다_gandha, 라사_rasa, 뽓땁바_phottabba, 담마-_dhammā 루-빠_rūpa)를 경험합니다. 해당하는 쌍이 접촉(팟사, phassa)을 할 때, 6가지 유형의 일치하는 윈냐-나(viññāna) 중 하나가 일어납니다. 그것은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입니다. ‘불교의 세계관 – 소개’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보통 사람은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를 경험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갑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더 즐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더 많은 감각 접촉을 만듭니다. 그러면 6가지 인드리야(indriya)는 6가지 내부 아-야따나(āyatana)가 되고, 6가지 유형의 외부 루-빠(external rūpa)는 외부 아-야따나(external āyatana)가 됩니다. ‘아-야따나 사이의 접촉이 위빠-까 윈냐-나로 이어진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인드리야(indriya)는 ‘단지 접촉’, 즉 ‘팟사(phassa)’를 일으킵니다. 감각 접촉이 ‘들러붙음(땅하-, taṇhā)’으로 이루어지면, 인드리야(indriya)는 내부 아-야따나(āyatana)가 됩니다. 이것이 이전 포스트인, ‘감각 기능이 어떻게 내부 아-야따나가 되는가?’에서 설명한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 * 명확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위 포스트를 다시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어떤 질문에도 기꺼히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단지 감각 접촉에서 깜마 형성으로 전환

 

3. 보통 사람에게도 내부 아-야따나(internal āyatana)와 외부 아-야따나(external āyatana) 사이의 초기 접촉은 강한 깜마(kamma, 업)의 생성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것 또는 사람(‘루-빠 루-빠’ 또는 단지 ‘루-빠’라고 함)을 볼 때만, 우리는 그 루-빠(rūpa)를 알아채게 됩니다.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마노- 상카-라’가 있습니다. ‘마노- 상카-라’는 재탄생의 원인이 되는 강한 깜마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논의하겠습니다.)

 

  • * 그러나 아라한 단계에 이르지 못한 사람에게는 감각 기능이 ‘내부 아-야따나(internal āyatana)’로 나타나고, 외부 루-빠(external rūpa)는 ‘외부 아-야따나(external āyatana)’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 MN 148)에서 명백합니다.

  • * 아라한(Arahant) 만이 그 감각 기능을 항상 인드리야(indriya)로 사용합니다.

 

4.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 MN 148)에서는, 예를 들어 짝카-야따나_cakkhāyatana(짝쿠_cakkhu)와 루-빠-야따나_rūpāyatana(루-빠_rūpa) 사이의 초기 접촉은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 윈냐-낭(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āti cakkhu viññāṇaṃ)"으로 표현됩니다. 다른 다섯 쌍에 대해서도 비슷한 표현이 있으며, 마지막 한 쌍은 "마난짜 빠띳짜 담메 짜 웁빳자-띠 마노 윈냐-나(manañca paṭicca dhamme ca uppajjāti mano viññāṇaṃ)"입니다.

 

  • * 짝쿠(cakkhu)와 루-빠(rūpa) (평범한 용어로 말하면, 눈과 외부 물체) 사이의 접촉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의 진행에 초점을 맞추어 보겠습니다. 다른 유형의 접촉은 비슷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 * 숫따(sutta)에서는 ‘들러붙음’ 단계는 그 다음 단락부터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짝쿠(cakkhu)와 루-빠(rūpa)의 접촉에 대해서는,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 윈냐-낭, 띤낭 상가띠 팟소(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āti cakkhu viññāṇaṃ, tiṇṇaṃ saṅgati phasso)”라고 되어 있습니다. (숫따의 잇따른 각 단락은 마음이 하는 다음 단계라는 점에 유의하세요.)

 

‘띤낭 상가띠 팟소’는 무엇인가?

 

5. “띤낭 상가띠 팟소(tiṇṇaṃ saṅgati phasso)”라는 구절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가 만나는 것이 접촉이다”로 잘못 번역됩니다. 그 세 가지가 무엇일까요? 그것들은 짝쿠(cakkhu), 루-빠(rūpa) 및 짝쿠윈냐-나(cakkhuviññāṇa)일까요?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래에서 논의하는 바와 같이, ‘접촉(팟소, phasso)’은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는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ṇa) 후에 일어납니다.

 

  • * 그 짧은 구절은 전체 숫따(sutta)의 핵심 구절입니다. 그것은 인드리야(indriya)가 자신의 가띠(gati)로 인해 어떻게 아-야따나(āyatana)가 되는지를 표현합니다. 그것들은 갈망이나 싫어함을 통한 들러붙음(땅하-, taṇhā)의 가띠(gati)입니다.

  • * ‘띤난(tinnan)’은 3이고 ‘상가띠(sangati, ‘san’ + ‘gati’)는 ‘산(san)으로 오염된 가띠(gati)’입니다. 보통 사람은 로-바(lōbha, 탐함), 도-사(dōsa, 성냄/미워함), 및 모-하(mōha, 사성제를 이해하지 못함)라는 3가지 근본 원인을 바탕으로 한 가띠(gati)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 ‘산(san)’이 키워드인 이유입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삼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산(san)’이라는 낱말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의미를 잃어버린 또 다른 결정적인 빠알리 낱말은 가띠(gati)입니다. 이 낱말을 많은 포스트에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끌림의 법칙, 습관, 성격(가띠), 및 갈망(아-사-와)’와  ‘9. 아-나-빠-나사티의 핵심 - 습관과 성향(가티)를 바꾸는 방법’ 를 참조하세요.

 

‘띤낭 상가띠 팟소’에서 팟사는 ‘삼팟사’다

 

6. 그래서, 그 초기 감각 접촉 이후에, 보통 사람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거나, 마음에 떠오르는 기억(담마-, dhammā)에 대해 좋아함/싫어함을 형성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초기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ṇa)의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 * 예를 들어, 드레스를 보고 있는 젊은 여성은 그것에 대한 좋아함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적을 보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은 싫어함을 형성할 것입니다. 십대는 특정 노래 등에 들러붙게 될 수 있습니다.

  • * 좋아함/싫어함, 즉 산(san)이 있는 그런 정신적 접촉은 우리의 가띠(gati)로 인해 순간적으로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것(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 * 그러나 그 초기 반응과 이후의 의식적 행 사이에는 지연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렇기는 해도, 우리는 말이나 신체 행동을 통제할 시간이 있습니다. 나쁜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말이나 신체 행동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 명상의 ‘까-야-누빳사-(kāyānupassanā)에서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9. 아-나-빠-나사티의 핵심 - 습관과 성향(가티)를 바꾸는 방법’와 ‘숫따 해석’ 섹션의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Mahā Satipaṭṭhāna Sutta)’를 참조하세요.

  • * ‘산(san)’으로 행해진 그 접촉(팟사, phassa)은 삼팟사(samphassa)입니다. 여기서, ‘산(san)’ + ‘팟사(phassa)’는 ‘상팟사(sanphassa)’로 운이 맞추어 집니다. 그러나, ‘삼팟사(samphassa)’로 맞추어지는 운이 더 좋습니다. 같은 식으로, ‘상사-라(sansāra)는 ‘산(san)’ + ‘사-라(sāra, 좋은)’로 합성된 낱말이며, 일반적으로 ‘삼사-라(samsāra)로 발음되고 쓰여집니다.

 

아라한에게는 삼팟사가 없다

 

7. 아라한(Arahant)에게는 ‘가띠(gati)’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염된 모든 가띠(gati)는 로-바(lōbha), 도-사(dōsa), 모-하(mōha) 때문에 일어납니다. 따라서 아라한(Arahant)은 감각적인 것(event)에 들러붙지(taṇhā, 땅하-) 않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띤낭 상가띠 팟소(tiṇṇaṃ saṅgati phasso)’는 아라한의 마음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한, 들러붙음(taṇhā, 땅하-)은 끌림(좋아함) 또는 질색(싫어함) 때문일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세요. ‘땅하-, 탐함과 미워함과 미혹함을 통해 어떻게 들러붙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렇기 때문에 아라한은 결코 자신의 인드리야(indriya)를 ‘내부 아-야따나(internal āyatana)로 상승시켜 [오염시키지] 않습니다. 따라서, 주어진 인드리야(indriya)에 의해 감지되는 모든 외부 루-빠(external rūpa)는 단지 루-빠(rūpa)가 됩니다. 사람이 아무리 매력적이거나 주어진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그것에 들러붙지 않습니다. 아무리 가치있는 뇌물도 아라한을 유혹할 수 없습니다.

  • * 같은 식으로, 누군가가 [아라한의] 팔을 자른다 해도 아라한의 마음에는 성냄이 생기지 않습니다.

  • * 그런 마음 성향(마음 가짐)은 보통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길(팔정도)을 따라 수행하는 중에 그 멀리까지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걸어서 긴 여행을 할 때, 수백 마일 앞의 마지막 구간이 아니라 다음 마일의 구간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전체 지형에 대한 대략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좋습니다.

 

8. 아라한의 마음 상태는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마음 상태는] 아나- 가-미(Anāgāmi)에게도 ‘달성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에게 있어서, 아나-가-미(Anāgāmi)의 마음 성향은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아나-가-미(Anāgāmi) 단계는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을 제거함으로써 도달됩니다.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우리의 ‘깊이 뿌리박힌 욕망’을 제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에게 이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소-따빤나(Sōtapanna)는 ‘아닛짜(anicca) 특성’을 보았습니다.

  • * 하지만, 소-따빤나(Sōtapanna)는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기 위해 부도덕하게 행하는 것에 유혹되지 않습니다. 소-따빤나(Sōtapanna)는 ‘가정’의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지만, ‘아빠-야가-미(apāyagāmi) 행위는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 부도덕한 행위는 아-빠야-(apāyā)에 태어나기에 적합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소-따빤나(Sōtapanna)는 불륜 성관계를 하지 않습니다.

 

‘팟사 빳짜야- 웨다나-’는 실제로 ‘삼팟사 자- 웨다나-’다

 

9. 이제 짜착까 숫따(Chachakka Sutta, MN 148)의 다음 구절로 이동합니다.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 윈냐-낭, 띤낭 상가띠 팟소, 팟사 빳짜야- 웨다나-(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āti cakkhu viññāṇaṃ, tiṇṇaṃ saṅgati phasso, phassa paccayā vedanā)” 중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 * (숫따(sutta)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방식을 보길 바랍니다.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는 감각 경험의 진행에서 세 번째 단계입니다. 그러나 나머지의 더 많은 단계를 포함하여 이러한 모든 단계는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오직 부처님 만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 빠른 과정에서 이런 세세한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 * 위 논의에서,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는 ‘삼팟사 빳짜야- 웨다나-(samphassa paccayā vedanā)’이어야 함이 분명합니다. 어떤 숫따(sutta)에서는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edanā)’로 쓰여 있습니다. 여기서 ‘자-(jā)’는 ‘~로 인해 태어난’을 의미합니다. 즉, 웨다나-(vedanā)는 ‘삼팟사(samphassa)’로 인해 일어납니다.

  • * 따라서, 이것은 감각적인 것(event)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두 번째 유형의 웨다나-(vedanā)입니다. 그것은 일어나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유형의 웨다나-(vedanā)는 아라한(Arahant)에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과 아라한 사이의 감각 경험의 차이

 

10. ‘띤낭 상가띠 팟소(Tiṇṇaṃ saṅgati phasso)’와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는 감각 경험의 진행에서 두 가지 매우 중요한 단계입니다.

 

  • * 그 두 단계는 띨락카나(Tilakkhana, 아닛짜, 둑카, 아낫따 특성)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자가 어떻게 추가 유형의 웨다나-(vedanā)를 생성할 수 있는지를 나타냅니다.

  • * 이제 우리는 이전 포스트인, ‘아-야따나 사이의 접촉이 위빠-까 윈냐-나로 이어진다’와 ‘감각 기능이 어떻게 내부 아-야따나가 되는가?’에서 중요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두 포스트에서, 우리는 예를 들어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 윈냐-낭(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āti cakkhu viññāṇaṃ)”와 같은 초기 감각 접촉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그것은 보통 사람과 아라한에게 공통된 웨다나-(vedanā)를 일으켰습니다.

  • * 이전 포스트에서 논의했듯이, 보통 사람과 아라한은 케이크 한 조각의 ‘단맛’을 느낄 것입니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돌아가서 그 두 포스트를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

  • * 이제 ‘띤낭 상가띠 팟소(Tiṇṇaṃ saṅgati phasso)’와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의 그 두 단계가 보통 사람에서는 (그 예에서 케이크에) 추가적인 들러붙음으로 인한 웨다나-(vedanā)가 생성될 수 있습니다. 아라한(Arahant)에게는 들러붙음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웨다나-(vedanā)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요약

 

11.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 MN 148)의 핵심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보통 사람과 아라한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예를 들었습니다. 많은 숫따(sutta)에서 핵심 개념이 간단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즉, 그것들은 ‘웃데-사(uddēsa) 또는 닛데-사(niddēsa) 버전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숫따 해석 -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 MN 148)와 같은 주요 숫따에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빠띠니데-사(patiniddēsa)’ 버전의 숫따(sutta)입니다.

  • * 그렇기 때문에 그런 숫따(sutta)를 ‘낱말 그대로(word-by-word)’ 번역하는 것은 최소의 이득만 됩니다. 많은 숫따(sutta)를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몇 개의 숫따(sutta)를 자세히 이해하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 * 따라서, 이러한 근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뭔가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으면, 기꺼이 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2. 우리는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 또는 더 정확하게는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edanā)’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웨다나-(vedanā)의 유형에 대해 논의할 것입니다. ‘감각 사건에서 위빠-까 웨-다나-와 삼팟사 자- 웨-다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여담(추가 정보)

 

13. 지금까지 논의한 단계인,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 윈냐-낭, 띤낭 상가띠 팟소, 팟사 빳짜야- 웨다나-(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āti cakkhu viññāṇaṃ, tiṇṇaṃ saṅgati phasso, phassa paccayā vedanā)”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있는 더 일반적인 표현인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소; 팟사 빳짜야- 웨다나-,..(saḷāyatana paccayā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의 일부일 뿐입니다.

 

  • * 위방가 숫따(‘Vibhaṅga Sutta, SN 12.2’)에서, ‘팟사(phassa)’ 및 ‘웨다나-(vedanā)’라는 용어는 ‘삼팟사(samphassa)’ 및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edanā)’로 명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빠띳자 사뭅빠-다 및 차착까 숫따_MN 148에 있는) 아윗자-(avijjā)로 행하는 보통 사람에만 적용됩니다.

  • *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있는 ‘팟사(phassa)’는 위방가 숫따(SN 12.2)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Katamo ca, bhikkhave, phasso? Chayime, bhikkhave, phassakāyā—cakkhusamphasso, sotasamphasso, ghānasamphasso, jivhāsamphasso, kāyasamphasso, manosamphasso. Ayaṃ vuccati, bhikkhave, phasso.”

  • *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있는 ‘웨다나(vedana)’는 위방가 숫따(SN 12.2)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Katamā ca, bhikkhave, vedanā? Chayime, bhikkhave, vedanākāyā— cakkhusamphassajā vedanā, sotasamphassajā vedanā, ghānasamphassajā vedanā, jivhāsamphassajā vedanā, kāyasamphassajā vedanā, manosamphassajā vedanā. Ayaṃ vuccati, bhikkhave, vedanā.”

  • * 그 연결이 보이지 않더라도 염려하지 마세요. 우리는 다음 포스트인, ‘감각 사건에서 위빠-까 웨-다나-와 삼팟사 자- 웨-다나-’에서 모든 유형의 웨다나-(vedanā)에 대해 논의할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삭까-야 딧티(akkāya diṭṭhi)를 제거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빠띳짜 사뭅빠-다 ㅡ 자아는 아윗자-로 인해 존재한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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