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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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따나 사이의 접촉이 위빠-까 윈냐-나로 이어진다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Contact Between Āyatana Leads to Vipāka Viññāna’ 포스트

- 2019년 9월 2일 작성; 2019년 11월 14일 개정; 2021년 1월 15일 개정; 2022년 10월 9일 개정

 

소개

 

1.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는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해 일어납니다. 이전 포스트에서는 6가지 내부 루-빠-(internal rūpā)와 6가지 외부 루-빠-(external rūpā)로 인해 감각 경험이 일어난다는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 * 그 6가지 유형의 내부 루-빠-(rūpā)는 ‘내부 아-야따나(internal āyatana)’입니다.  일상 용어로 말하면, 우리의 눈, 귀, 코, 혀, 몸, 마음입니다.

  • *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시야(형색), 소리, 냄새, 맛, 감촉, 및 담마-(dhammā, 메모리, 개념, 및 우리의 희망)을 경험합니다. 그 루-빠-(rūpā)들은 우리 외부에 있으며, ‘외부 아-야따나(external āyatana)’입니다.

  • * [필요하면] 이전 포스트인, ‘불교의 세계관 – 소개’를 복습해 볼 수 있습니다.

 

생명체와 유정체의 인식

 

2. 예를 들어, 우리가 나무를 볼 때, 그것은 ‘내부 아-야따나(interna āyatana)(눈, 더 정확하게는 짝쿠 빠사-다 루-빠_cakkhu pasāda rūpa)’와 ‘외부 아-야따나(external āyatana)(이 경우에는 나무)’ 사이의 접촉입니다. 그것은 ‘의식(consciousness, 이 경우에는 짝쿠 윈냐-나_cakkhu viññāna)’이라고 부르는 정신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그 나무를 인식하고(aware)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인간과 동물은 외부 루-빠-(external rūpā)를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할 때 그런 ‘인식(awareness)’ 또는 ‘의식(consciousness)’을 생성합니다.

  • * 그러나, 우리는 식물과 나무도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것처럼 보이고 어떤 경우에는 반응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물이나 나무[의 줄기]는 햇빛을 향해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 뿌리는 물이 많은 곳을 향하고 건조한 토양에서 멀어지는 곳 등으로 뻗어 나갑니다.

 

3. 전적으로 ‘정신적’이 아닌 ‘정신 요소’(쩨따시까_cetasika)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마음이 없어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두 가지는 웨-다나-(vēdanā)와 산냐-(saññā)입니다.

 

  • * 웨-다나-(vēdanā)는 싱할라어로 ‘විය දැනවීම’를 의미하는 ‘웨-(vē) + 다나-(danā)’에서 유래합니다. 그것은 ‘뭔가를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6가지 감각을 통해 ‘외부 아-야따나(external āyatana)’와 접촉할 때, 우리는 그 ‘외부 루-빠-(rūpā)’를 인식하게 됩니다. 그것이 웨-다나-(vēdanā)입니다. ‘리빙 담마’ 섹션의 ‘웨-다나-(느낌)는 무엇인가?(Vedana (Feelings))’ 부분을 참조하세요.

  • * 근본 레벨에서, 산냐-(saññā)는 예를 들면, 대상이나 사람 또는 개념을 ‘알아보는 것(recognition)’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외부 아-야따나(external āyatana)’ 또는 ‘외부 루-빠-(external rūpā)’를 알아보는 것(recognition)입니다. ‘산냐-와 그 진정한 의미’ 를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식물과 나무에는 기본 형태의 웨-다나-(vēdanā) 및 산냐-(saññā)가 있습니다. 식물은 햇빛에 노출될 때 느낄 수 있고(vēdanā), 그것을 햇빛으로 알아봅니다(saññā).

 

4. 그러나, 식물은 웨-다나-(vēdanā) 및 산냐-(saññā)에 대한 상카-라(saṅkhārā, (생각)을 생성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식물은 어떻게 햇빛을 향해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 * 식물은 로봇과 같습니다. 움직이는 로봇에는 장애물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본적 의미에서 웨-다나-(vēdanā)와 산냐-(saññā)를 포함합니다.

  • * 예를 들어, 그 로봇에는 또한 어떻게 장애물을 돌아서 가는지를 알려주는 컴퓨터가 있을 수 있습니다.

  • * 식물의 작용은 이와 매우 유사합니다. 식물 씨앗에는 외부 환경에 대처하는데  필요한 ‘프로그램’이 세포에 내장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생명 세포’에 관한 포스트에서 간략하게 논의했습니다. 이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 시리즈의 이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식물과 같은 어떤 ‘생명체’에서 웨-다나-(vēdanā)와 산냐-(saññā)는 생성될 수 있지만, 상카-라-(saṅkhārā)와 윈냐-나(viññāna)는 생성될 수 없습니다. 상카-라-(saṅkhārā)와 윈냐-나(viññāna)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와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ā paccayā viññāna)’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유정체에서 윈냐-나의 2가지 유형 

 

5. 나무와 같은 생명체(living thing)에는 웨-다나-(vēdanā) 및 샨나-(saññā)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나 동물과 같은 유정체(living being)만이 정신현상의 완전한 세트(웨-다나-_vēdanā, 산냐-_saññā, 상카-라-_saṅkhārā, 윈냐-나_viññāna)가 있습니다.

 

  • * 바꿔 말하면, 오직 유정체만이 상카-라-(saṅkhārā, 대략적으로 ‘생각’이라고 함)를 생성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이 ‘상카-라-’는 그 다음에 윈냐-나(viññāna)로 이어집니다.

  • * 이제 ‘내부 아-야따나(internal āyatana) 중 하나와 그에 상응하는 ‘외부 아-야따나(external āyatana) 간의 감각 접촉으로 유정체에서 일어나는 2가지 유형의 윈냐-나(viññāna)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해 보겠습니다.

  • * 간단하게 하기 위해, 짝쿠(cakkhu)와 완나 루-빠-(vaṇṇa rūpā) (루-빠-_rūpā rūpā, 또는 간단히 루-빠-_rūpā) 간의 접촉을 고려해 보겠습니다. 일상 용어로, 이것은 눈과 형상(또는 물체, 예로 ‘나무’) 간의 ‘접촉’을 의미합니다.

  • *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 몸(간답바)에 있는 짝쿠 빠사-다 루-빠-(cakkhu pasāda rūpā)가 완나 루-빠-(vaṇṇa rūpā) 또는 눈에 포착된 이미지를 ‘보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불교의 세계관 - 소개’ 포스트의 #11~#14를 참조하세요.

 

위빠-까 윈냐-나 -  행해진 강한 깜마가 없음

 

우리의 모든 초기 감각 경험은 과거 업의 결과, 즉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한 것입니다.

 

6. 눈(더 정확하게 말하면, ‘짝쿠 빠사-다 루빠_cakkhu pasāda rūpa’)과 완나 루-빠-(vaṇṇa rūpā)가 접촉하면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가 일어납니다.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는 ‘보는 것(seeing)’입니다.

 

  • *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는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해 일어납니다. 같은 식으로, 소-따 윈냐-나(sōta viññāna), 가-나 윈냐-나(ghāna viññāna), 지와- 윈냐-나(jivhā viññāna), 및 까-야 윈냐-나(kāya viññāna)는 모두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입니다.

  • * 일부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는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과거 사건(일)을 회상할 때, 그것은 강한 깜마(kamma, 업)를 생성할 수 없는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입니다.

  • *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에 의해 행해진 강한 깜마(strong kamma)는 없습니다. 여기서 ‘강한 깜마(strong kamma)’란 미래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업을 의미합니다. 오직 마노- 상카-라-(manō saṅkhārā)만이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에 수반됩니다. 미래 재탄생으로 이어지는 깜마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와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ā paccayā viññāna)’ 과정을 통해 행해집니다. 그것들은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ā)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ā)를 수반합니다. ‘아비상카-라는 깜마 윈냐-나로 이어진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 시점에서 필수적인 것은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만이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 또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두번째 카테고리 하에서 논의)일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다른 다섯 가지 유형의 윈냐-나(cakkhu, sōta, ghāna, jivhā 및 kāya viññāna)는 단지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입니다.

 

7. 차착까 숫따( ‘Chachakka Sutta, MN 148’ )는 그런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의 일어남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āti cakkhuviññāṇaṃ, sōtañca paṭicca sadde ca uppajjāti sōtaviññāṇaṃ, ghānañca paṭicca gandhe ca uppajjāti ghānaviññāṇaṃ, jivhāñca paṭicca rase ca uppajjāti jivhāviññāṇaṃ, kāyañca paṭicca phoṭṭhabbe ca uppajjāti kāyaviññāṇaṃ, manañca paṭicca dhamme ca uppajjāti manoviññāṇaṃ.”

 

  • * 예를 들어,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는 루-빠(rūpa)가 짝쿠 빠사-다 루-빠-(cakkhu pasāda rūpā)와 접촉(Paṭicca, 빠띳짜)할 때 일어납니다. 이전 포스트인 ‘불교의 세계관 – 소개’의 #12에서 논의했듯이, 여기서 짝쿠(cakkhu)는 ‘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짝쿠 빠사-다 루-빠(cakkhu pasāda rūpa)’를 의미합니다.

  • * 눈이 나무의 이미지를 포착하면, 그 이미지는 뇌에 의해 처리된 다음, 정신적 몸(마노-마야 까-야, manōmaya kāya)에 있는 짝쿠 빠사-다 루-빠(cakkhu pasāda rūpa)로 전달됩니다. 사람이나 동물의 경우,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는 간답바(gandhabba)와 동일합니다.

  • *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는 강한 깜마(kamma, 업)를 생성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는 단지 ‘보기(seeing)’를 의미하고, 소-따 윈냐-나(sōta viññāna)는 ‘듣기(hearing)’만을 의미합니다. 단지 보거나 듣기 때문에, ‘강한 업’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빠-까 윈냐-나가 ‘의식’일 수 있는가?

 

8. 따라서,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로 직접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위 #7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감각 기능이 외부 루-빠-(external rūpā)와 접촉할 때 일어납니다. 그 루-빠-(rūpā)는 6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며, 완나 루-빠_vaṇṇa rūpa, 삿다 루-빠_sadda rūpa, 간다 루-빠_gandha rūpa, 라사 루-빠_rasa rūpa, 뽓탑바 루-빠_potthabba rūpa,  및 담마 루-빠_dhamma rūpa 또는 담마-_dhammā입니다.

 

  • * 주: 그러나,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가 일어난 직후, 바로 다음 찟따에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과정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아비담마를 깊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을 더 깊은 측면입니다. ‘위빠-까 윈냐-나와 관련한 아브야-까따 빠띳짜 사뭅빠-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내부 아-야따나(internal āyatana)와 외부 아-야따나(external āyatana)의 접촉은 그 외부 루-빠-(rūpā)를 인식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 * 따라서,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는 ‘consciousness(의식)’라는 영어 낱말에 가장 가깝습니다. 그때에도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와 함께 일어나는 일부 마노- 상카-라-(manō saṅkhārā)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 조차도 단지 ‘의식(consciousness)’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 * 그 때문에 붓다께서는 윈냐-나(viññāna)를 마술사로 묘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마술쇼 성질’은 아래에서 논의하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로 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은 그 자체로 상카-라-(saṅkhārā), 즉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ā paccayā viññāna)’ 과정을 통해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를 만듭니다.

 

9. 우리가 외부 아-야따나(external āyatana), 즉 외부 루-빠-(external rūpā)를 의식하게 될 때, 그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외부 루-빠-’가 시각 대상, 소리, 냄새, 맛, 신체 접촉, 또는 메모리를 포함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 * 그것이 우리가 새로운 깜마(new kamma)를 생성하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예를 들어, 탐함이나 성냄을 통해 그 감각 경험에 들러붙게 되면, 그 새로운 깜마가 일어납니다.

  • * 그 의식적인 생각(‘상카-라-_saṅkhārā’라고 함)은 새로운 유형의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로 이어집니다. 그 윈냐-나(viññāna)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에 이어지는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ā paccayā viññāna) 과정을 통해 일어납니다. 그런 윈냐-나(viññāna)가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입니다.

  • * 그런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는 6가지 유형의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 중 어떤 하나가 생성된 후, 그 다음 단계로 일어납니다. 그것은 우리가 초기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에 들러붙게 되는 경우에만 일어납니다.

 

깜마 윈냐-나 - 새로운 깜마를 만드는 방식

 

10. 우리는 의도가 있는 의식적인 생각(‘와찌 상카-라-_vaci saṅkhārā’ 및 ‘까-야 상카-라-_kāya saṅkhārā’)을 생성하기 시작할 때 깜마(kamma, 업)을 행합니다. 붓다께서는 “쩨따나-항, 빅카웨, 깜망 와다-미(Cetanāhaṃ, bhikkhave, kammaṃ vadāmi)”라고 말씀하셨습니다( ‘Nibbedhika Sutta – AN 6.63’ 참조). 이는 “빅쿠들이여, ‘업(kamma)은 자신의 의도’라고 나는 말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좋거나 나쁜) 특정 의도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그것은 (좋거나 나쁜) 업(kamma)의 발생으로 이어집니다.

 

  • * 그러나, (‘위빠-까 윈냐-나’와 관련된) 그 초기 마노- 상카-라-(initial manō saōkhārā)는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의도가 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 마노- 상카-라-(manō saṅkhārā)는 재탄생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 * ‘강한 깜마(strong kamma)’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우리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고의로 상카-라-(saṅkhārā)를 만들어야 합니다.

  • * 그런 ‘강한 상카-라-(strong saṅkhārā)’는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ā)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ā)입니다. 전에 논의했듯이,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ā)는 마음속으로 하는 말(자기 자신에게 내부로 말)을 포함하며, 또한 입으로 외부로 하는 말도 포함합니다.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ā)는 신체적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 *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그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ā)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ā)로 와찌 깜마(vaci kamma)와 까-야 깜마(kāya kamma)를 행합니다. 물론, 와찌 깜마-(vaci kammā)는 거짓말, 잡담 등이고, 까-야 깜마-(kāya kammā)는 도둑질, 살생 등입니다.

  • * 또 다른 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ā)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ā)를 통해서만 미래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말과 행동을 생성합니다.

 

11. 아비담마(Abhidhamma)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말하면(다른 사람들은 이 부분을 건너뛰고 #12로 넘어가도 좋습니다), #7에서 논의된 감각 경험은 17개의 찟따-(cittā)로 이루어지는 빤짜드와-라 찟따 위티(pancadvāra citta vithi)를 시작합니다.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는 찟따 위티(citta vithi)의 시작 부분에서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보는 경험’에서, 그것은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입니다.

 

  • * 그 다음, 마음은 삼빠띳짜나 찟따(samPaṭiccana citta)와  산띠라나 찟따(santirana citta)로 그 감각 입력을 받아들입니다. 그 다음의 옷타빠나 찟따(votthapana citta)에서는 우리의 가띠(성품)에 따라 그 감각 입력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 * 그러면 그 결정에 따라 7개의 자와나 찟따-(javana cittā)가 연속해서 이어집니다. 우리는 그 자와나 찟따-(javana cittā)로 반응(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함)합니다.

  • * 이것은 매우 간단히 요약한 것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찟따 위-티 ㅡ 감각 입력의 처리’ 포스트에 있습니다.

 

깜마 윈냐-나는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로 인해 일어난다

 

12. 어떤 사람이 마음을 끄는 대상을 보고 그것에 들러붙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사람은 [그 대상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기 시작하고, 그 대상을 반복해서 즐기려는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와찌 상카-라-’와 ‘까-야 상카-라-’를 통해 생성된)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를 통해 깜마(kamma, 업)을 생성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 * 우리가 보는 것에 대해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화난 생각, 말, 행동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것도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입니다. 그런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입니다.

  • * 물론, 그 두 경우 모두 아윗자-(avijjā)로 인해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기 때문에(둘 다 ‘땅하-_taṇhā’로 행해진 것임, 아래 참조), 주어진 감각 입력에 들러붙게(달라붙게) 됩니다. 둘 다 ‘진정한 본질’을 알지 못하는 아윗자-(avijjā)로 인해 일어납니다. ‘야타-부-따 냐-나(yathābhūta ñāṇa)’를 얻을 때, 진정한 본질을 이해합니다. 향후 포스트에서 이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13. 모든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가 상카-라-(saṅkhārā)를 선구자(전구체)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 차이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깜마 윈냐-나’는 탐함, 성냄, 무지를 바탕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일어납니다. 탐함을 통한 들러붙음(taṇhā, 땅하-)의 경우만 [아래 예로] 설명하겠습니다.

 

  • * 예를 들어, 마음을 끄는 어떤 것을 처음 볼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그것을 좋아하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그 초기 자동적 사고가 마노- 상카-라-(manō saṅkhārā)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가띠(gati)로 인해 일어납니다.

  • * 그런 사고를 의식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ara)를 생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ā)입니다. 우리는 또한 그런 위딱까/위짜라(vitakka/vicara)로 [밖으로] 말을 할 수도 있으며,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ā)는 또한 [밖으로 하는] 말의 원인입니다.

  • * 우리 마음이 단단히 들러붙으면, 몸으로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신체적 행동은 마음 속에 생성된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ā)로 인한 것입니다.

 

14. 이제, 우리는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와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에는 상카-라-(saṅkhārā)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 * 반면에,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는 항상 아윗자-(avijjā)를 통해 생성된 상카-라-(saṅkhārā)로 인해 일어납니다. 그것들은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를 통해 미래의 위빠-까(vipāka)로 (그리고 ‘재탄생’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윈냐-나(viññāna)입니다.

  • * 다르게 말하면,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에 이어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ā paccayā viññāna)’로 일어나는 윈냐-나(viññāna)입니다.

  • * 그 과정은 ‘윈냐-나 빳짜야- 나-마루빠(viññāna paccayā nāmarupa)’ 등으로 계속되고, ‘바와 빳짜야- 자-띠(bhava paccayā jāti)’, ‘자띠- 빳짜야- 자라-, 마라나(jāti paccayā jarā, marana), 및 고통(괴로움)의 전체 덩어리’로 끝납니다.

  • * 그렇기 때문에 상카-라-(saṅkhārā)로 생성된 것이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인 것입니다.

 

요약

 

15. 이 포스트에서 논의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 소-따 윈냐-나(sōta viññāna), 가-나 윈냐-나(ghāna viññāna), 지와- 윈냐-나(jivhā viññāna) 및 까-야 윈냐-나(kāya viññāna)는 오직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입니다. 그것들은 새로운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 *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는 새로운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그 윈냐-나(viññāna)입니다.

  • *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는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 또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일 수 있습니다.

 

16. 다음 포스트에서 더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필자는 이 근본 개념들을 강조하기 위해 천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결정적인 핵심 빠알리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것의 의미를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 빠알리 용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 여러분이 이제 윈냐-나(viññāna)를 단지 ‘의식(consciousness)’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 같은 식으로, 땅하-(taṇhā)는 단지 탐함(greed)이 아닙니다. 땅하-(taṇhā)는 성냄(anger)을 통해 들러붙게 되는 것도 포함합니다. ‘땅하-, 탐함과 미워함과 미혹함을 통해 어떻게 들러붙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또한, 위 #12도 보세요.

  • *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를 포함하여, 그와 같은 핵심 용어가 여러개 있습니다.

  • * 그 핵심 용어에 상응하는 영어 낱말이 없기 때문에, 그런 핵심 빠알리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일반적인 주제에 대한 모든 포스트는 ‘담마와 과학’ 섹션의 ‘생명의 기원’ 서브 섹션에 있습니다. 위 포스트에 대해 어떤 질문이 있으신 분은 토론 포럼의 ‘Questions on Posts in the “Origin of Life” Subsection’에서 해 주시기 바랍니다. 포럼에 사용자 등록을 하지 않았다면, 이메일 주소 lal@puredhamma.net 으로 질문을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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