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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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마- 딧티 ㅡ 성스런 길로 이어지는 오직 하나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Sammā Diṭṭhī – Only One Leads to the Noble Path’ 포스트

- 2020년 3월 14일 작성; 2022년 8월 20일 개정

 

소개

 

두 가지 유형의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ī, 바른 견해)가 있습니다. 오직 하나 만이 성스런 길에 속하고 닙바-나(Nibbāna)로 이어집니다.

 

1. 우리는 ‘붓다의 광대 세계관(Wider Worldview of the Buddha)’에 관해 일련의 포스트로 논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우리는 네 가지 세계관과 네 가지 가능한 길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마하-짯따-리-사까 숫따(Mahācattārīsaka Sutta, MN 117)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 * ‘두 가지 좋은 길’이 있고, 성스런 팔정도가 닙바-나(Nibbāna)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 * 이전 포스트인 ‘10가지 유형 사견의 위험함과 4가지 가능한 길’에서, 우리는 ‘두 가지 나쁜 길’을 논의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두 가지 좋은 길’을 논의하겠습니다. 

 

두 가지 유형의 삼마- 딧티

 

2. 마하-짯따-리-사까 숫따(Mahācattārīsaka Sutta)에서 열 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ī)를 지닌 자들이 가는 두 가지 나쁜 길에 대해 설명하신 후, 붓다께서는 “빅쿠들이여, 바른 견해가 무엇인가? 바른 견해는 두 가지가 있다고 나는 말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 공덕이 있고 좋은 위빠-까(vipāka)를 가져 오며, 갈망으로(‘사-사와-_ sāsavā’, 즉 ‘아-사와-_āsavā’로) 오염된 바른 견해가 있습니다.

  • * 그 ‘좋은 길’은 붓다께서 출현하시지 않아도 가능합니다. 부처님의 출현 전(부처님의 깨달음 전)에도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 같이) 도덕적으로 살았고 가장 높은 [세간] 자-나(jhāna, 선정)까지도 기른 옛날 요기(수행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좋은 재탄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윤회의 고통(괴로움)에 대한 임시적(일시적)인 해결책입니다. 왜냐하면, 그 ‘좋은 길’에서 후퇴하여 떨어지고 미래에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 태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 그 다음, 성스럽고(아리야, Ariya) 갈망이 없는(‘아나-사와-_anāsavā’, 즉 ‘아-사와-_āsavā’ 없는) 출세간(로꿋따라-, lokuttarā)의 성스런 길의 요소인 바른 견해가 있습니다.

 

띨락카나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는 성스런 길의 삼마- 딧티

 

3. 그 두 가지 길 사이의 차이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을 자세히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 * 먼저, 평범한(세간적) 바른 견해는 대부분의 ‘도덕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따릅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행하는 것처럼 그것은 단지 오계를 따르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반을 얻으려면, 이 세상의 ‘결실(실속)없고 위험한 본질(띨락카나, Tilakkhana), 즉 참된 본질’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야타-부-따 냐-나(yathābhūta ñāṇa)를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 * 깨달음에 관해, 붓다께서는 도덕적 삶을 사는 것 자체로는 재탄생 과정의 고통(괴로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도덕적인 생활에 따르는 것은 미래의 ‘좋은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과거 생에서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를 모두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나쁜 행위는 나쁜 영역에 태어남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과거 생에 어떤 종류의 좋은/나쁜 행위를 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 * 열반으로 이어지는 성스런 길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이 궁극적으로 고통(괴로움)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갈망(아-사와, āsava)은 땅하(taṇhā)로 이어집니다. ‘땅하 - 괴로움(고통)의 기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면,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서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는 “upādāna paccayā bhavō, bhava paccayā jāti, jāti paccayā jarā, marana, soka-paridēva-dukkha-dōmanassupāyasā sambhavan’ti”, 즉 ‘고통(괴로움)의 전체 덩어리’로 이어집니다.

  • * 이것은 요약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를 자세히 논의할 것입니다. 우선 평범한(세간적) 길의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ī)를 논의해 봅시다. 

 

세간적 삼마- 딧티

 

4. 두 가지 바른 견해가 있다고 말씀하신 후(위 #2),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빅쿠들이여, 그러면 공덕이 있고 좋은 위빠-까(vipāka)를 가져 오며, 갈망으로(‘사-사와-_ sāsavā’, 즉 ‘아-사와-_āsavā’로) 오염된 바른 견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다음을 믿는 견해라고 설명하십니다.

 

(i) 주는 것(다-나, dāna, 보시)은 이득이 있다.

(ii) 넉넉하게(큰 규모로) 주는 것은 [그 규모에 따라] 더 큰 이득이 있다.

(iii) 덕높은 자(빅쿠, 성자, 요기 등)들을 존경하고 보시하면 [큰] 공덕이 있다.

(iv)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깜마, kamma)는 상응하는 결과(위빠-까, vipāka)로 이어진다.

(v) 이 세계(ayaṃ loko, 아양 로꼬)가 있다.

(vi) (간답바의) 빠라 로까(Para loka, 하계)가 있다.

(vii) 어머니는 특별한 사람이다.

(viii) 아버지는 특별한 사람이다.

(ix) 유정체는 순간적으로 태어날 수 있다(화생이 있다).

(x) 이 세계(아양 로꼬)와 하계(빠라 로까)를 스스로 직접 보고 선언하는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 등과 같은) 덕있는 수행자가 이 세상에 있다. 

 

이것들이 갈망으로 오염된 (세간적) 바른 견해입니다. 이것들은 공덕이 있고 좋은 위빠-까(vipāka)를 가져옵니다.

 

  • * 이전 포스트의 내용을 상기해 보면, 위의 내용은 10가지 유형의 잘못된 견해(밋차- 딧티, micchā diṭṭhī)와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그 10가지  좋은 요소(견해)들을 지닌 자들은 #2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좋은 재탄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리야(출세간) 삼마- 딧티’를 위해 왜 ‘세간 삼마- 딧티’가 왜 먼저 필요한가?

 

5. 불교도(불자)의 주된 목표는 재탄생 과정의 모든 미래 고통(괴로움)을 멈추는 것입니다.

 

  • * 재탄생 과정을 믿지도 않는다면, 재탄생 과정을 멈추기 위한 성스런 길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요?

  • * 그러나 고통(괴로움)이 많은 재탄생 과정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볼 수 있는 단 두 개의 영역이 아니라 이 세상에는 31영역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6. 위 #2에서 간략히 논의했듯이, 그것들은 부처님 이전에도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알라라 깔라마(Alara Kala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amaputta)와 같은 요기(yogi, 수행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통(abhiñā, 아빈냐-)력을 길러 자신들의 과거 생을 볼 수 있었고 더 높은 데와(Deva) 영역과 브라흐마(Brahma) 영역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 그러므로, 세계에 부처님이 계시지 않더라도 위의 10가지 요소(견해)를 검증할 수 있습니다.

  • * 신통력이 없더라도, 그 10가지 요소가 참으로 사실(진실)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와 많은 심장병 환자들의 임사 체험(NDE, Near-Death Experience)이 그 증거입니다. ‘재탄생(윤회)의 증거’와 ‘유체 이탈 경험(OBE)과 마노-마야 까-야’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불가침(불변)의 공리 ㅡ 순수한 마음에서 자명할 수 있다

 

7.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은 재탄생 과정 속에서 [궁극적] 행복을 구하는 우리의 노력은 헛수고라는 것입니다. 고통(괴로움)이 전혀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재탄생 과정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 * 그 목표를 구하기 위해서는 과학 용어로 다음과 같은 ‘공리’가 필요합니다.
    1. 31영역이 있음.
    2. 재탄생 과정.
    3. 재탄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정하는 깜마(kamma)의 법칙.
    4. 한 존재(바와) 내에서 많은 인간(그리고 동물)의 재탄생이 가능한 간답바(gandhabba)와 빠라 로까(para loka)가 있음.

  • * 과학에서 공리는 ‘자명한’ ‘근본적인 진리’입니다. 그러나 위의 공리는 논리적으로 설명될 때까지 ‘자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전생을 볼 수 있는 알라라 칼라마(Alara Kala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amaputta) 같은 요기(수행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ero)께서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그 자원을 잃었습니다.

  • * 그건 그렇고, 띠삐따까(Tipiṭaka, 빠알리 삼장)에 있는 간답바(gandhabba)에 대한 증거를  ‘간답바 상태 – 삼장에 있는 증거’ 포스트에서 논의하였습니다. ‘재탄생(윤회)의 증거’와 ‘유체 이탈 경험(OBE)과 마노-마야 까-야’ 포스트에서 논의된 증거도 있습니다.

 

붓다 담마: 비인지성과 자기 일관성

 

8. 그러나, 충분한 시간을 들여 깜마(kamma, 업)의 법칙을 숙고하면, 그 공리들은 자명해질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논리적이고 자기 일관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생의 예측 불가능한 변화와 좋은 재탄생을 구하는 길’ 포스트와, ‘깜마란 무엇인가? – 깜마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기초 산수(arithmetic)를 먼저 배우고 그 다음 대수(algebra) 등을 배우지 않고서는 미적분과 같은 고등 수학을 배울 수 없습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자연의 법칙을 설명합니다. 자연의 법칙은 고등 수학이나 양자 역학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9. 관련된 추가 요소도 있습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기’ 시작할 때 이해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그것은 단지 지계(계율을 지킴)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그러나, 지계는 중요한 부분이기는 합니다). ‘마음 정화의 중요성’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평범한(세간적) 길에서 시작하여 소박한 삶(너무 많은 감각적 즐거움과 또한 괴로움을 멀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마음이 스트레스를 덜 받고 덜 동요하게 될 것입니다.

  • * 도덕적인 삶을 살면서 계속 배움에 따라(그리고 자기 일관성을 보게 될 때)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커질 것입니다. ‘붓다 담마: 비인지성과 자기 일관성’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가르침

 

10. 알라라 깔라마(Alara Kala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amaputta)와 같은 요기(yogi, 수행자)들이 따랐던 ‘좋은 길’이 신통(abhiññā)력을 기르고 ‘좋은 재탄생’으로 이어졌지만, 그 길은 고통(괴로움)의 종식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여전히 재탄생 과정(윤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 * 가장 높은 브라흐마 영역까지 모든 탄생은 그 수명이 유한합니다. 그 긴 수명의 끝에서 이전의 나쁜 깜마(kamma)에 [의한 업 씨앗으로] 인해 더 낮은 영역에 재탄생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 * 자연의 세 가지 특성인 띨락카나(Tilakkhana),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로 묘사된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까지, 유정체는 가장 낮은 4가지 영역(아빠-야-, apāyā, 사악처)에 재탄생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31영역의 그 어떤 ‘좋은 존재(유정체)’도 [영원히] 그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띨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할 때까지 미래에 아빠-야-(apāyā)에 재탄생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모든 태어남(자-띠)은 결국 고통(괴로움)으로 끝난다

 

11.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로부터 인용: 

“avijjā paccayā saṅkhāra; saṅkhāra paccayā viññāna; viññāna paccayā nāmarūpa, nāmarūpa paccayā salāyatana, salāyatana paccayā phassō, phassa paccayā vēdanā, vēdanā paccayā taṇhā, taṇhā paccayā upādāna, upādāna paccayā bhavō, bhava paccayā jāti, jāti paccayā jarā, marana, soka-paridēva-dukkha-dōmanassupāyasā sambhavan’ti.”

 

  • * 각 태어남은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에 ‘고통(괴로움)의 전체 덩어리’는 각 자-띠(jāti, 태어남)마다 불가피합니다. 모든 태어남(좋은 영역에 태어남까지)은 [죽음으로] 끝날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떠나는 의미에서) 직면하기가 가장 가혹한 고통(괴로움)입니다.

  • * 태어남은 바와(bhava, 존재) 없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바와(bhava)와 자-띠(jāti)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닙바-나(Nibbāna, 미래의 모든 ‘자-띠’를 멈춤으로써 모든 미래의 고통을 멈추는 것)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 전에, 위 #4에 있는 (v)부터 (viii)까지의 평범한(세간적) 바른 견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 * 사람은 현재의 바와(bhava)가 끝날 때 새로운 바와(bhava, 존재)를 움켜잡습니다. (감각적 즐거움이든 선정의 즐거움이든) 단지 ‘세상의 즐거움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땅하-(taṇhā), 우빠-다-나(upādāna), 바와(bhava), 자-띠(jāti)로 이어지며, 그 다음에 ‘고통(괴로움)의 전체 덩어리’는 불가피합니다.

  • * 그 감각적/선정의 즐거움을 중시하는 한, 그 갈망을 멈출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성제에 대한 아윗자-(avijjā, 무지)가 제거될 때까지, 그 갈망을 멈출 수 없습니다.

  • * 이제 우리는 아리야 앗탕기까 막가(Ariya Aṭṭhaṅgika Magga, 성스런 팔정도)의 맨 앞에 오는 아리야 삼마- 딧티(Ariya Sammā Diṭṭhi, 출세간 바른 견해)를 이해하기 위해 좋은 논의가 필요한 구절에 이릅니다.

 

아리야 삼마- 딧티

 

12. 마하-짯따-리-사까 숫따(Mahācattārīsaka Sutta)의 다음 구절(#4의 구절 후):

“Katamā ca, bhikkhave, sammādiṭṭhi ariyā anāsavā lokuttarā maggaṅgā? Yā kho, bhikkhave, ariyacittassa anāsavacittassa ariyamaggasamaṅgino ariyamaggaṃ bhāvayato paññā paññindriyaṃ paññābalaṃ dhammavicayasambojjhaṅgo sammādiṭṭhi maggaṅgaṃ—ayaṃ vuccati, bhikkhave, sammādiṭṭhi ariyā anāsavā lokuttarā maggaṅgā.”

 

  • * 이 구절에는 많은 요소가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성스럽고(아리야, Ariya) 갈망이 없으며(‘아나-사와-_anāsavā’, 즉 ‘아-사와-_āsavā’ 없는), 닙바-나(Nibbāna)로 이어지는 성스런 길의 요소인 바른 견해는 무엇인가?”

숫따(sutta)에서 로꿋따라(lokuttarā)는 ‘로까(loka)’ + ‘웃따라(uttara)’로 합성된 낱말이며, 여기서 ‘로까(loka)’는 ‘이 세상’을 의미하고, ‘웃따라(uttara)’는 ‘보다 더 좋은’ 을 의미한다는 점에 주목하세요. 따라서, 로꿋따라- 막간가-(lokuttarā maggaṅgā)는 “이 세상을 극복하고 닙바-나(Nibbāna)로 이어지는 성스런 길의 요소”를 의미합니다.

 

  • * ‘붓다의 광대 세계관(Wider Worldview of the Buddha)’에 관한 이 시리즈의 처음 두 개의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전에는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 * 그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우리가 ‘즐거움’으로 인식하는 것에 숨겨진 고통(괴로움)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 즐거움(감각적 즐거움 또는 선정의 즐거움)은 이 세상에 속합니다. 그것들은 일시적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런 즐거움을 구하는 데 있어서 부도덕한 행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각적 즐거움에 감춰진 고통(괴로움)

 

13. 아누사야(anusaya)는 우리의 감춰진 갈망입니다. 그것들은 마음을 기쁘게 하는(또는 불쾌하게 하는) 생각 대상(아-람마나, ārammana)에 의해 촉발되어 표면으로 나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 ㅡ 자아는 아윗자-로 인해 존재한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면, 아-람마나(ārammana)가 마음을 즐겁게 하는지 아니면 불쾌하게 하는지에 따라 탐욕이나 분노를 통해 그 아-람마나(ārammana)에 들러붙습니다. 그것이 땅하-(taṇhā)입니다. 들러붙는지 아닌지는 자신의 가띠(gati)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붓다의 세계관(Worldview of the Buddha)에 있는 이전 포스트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논의했습니다.

  • * 닙바-나(Nibbāna)(‘아-사왁카야_āsavakkhaya’, 또는 ‘아-사와_āsava’의 제거)를 얻는 열쇠는 다양한 아-람마나(ārammana)에 들러붙는(땅하-, taṇhā)를 어떻게 제거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그것은 이 세상의 참된(아닛짜, 둑카, 아낫따) 본질에 대한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가 행복을 준다고 인식하는 것은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 * 가장 좋은 비유는 그 미끼(맛있는 지렁이)에 감춰진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맛있는 미끼를 무는 물고기입니다. 갈고리가 입을 찌르는 것과 관련된 고통(괴로움)을 상상해 보세요. 물론, 그 고통(괴로움)은 물고기가 물 밖에서는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산소 부족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끝납니다.

  • * 같은 식으로, 우리는 감각적/선정의 즐거움을 갈망하는 것의 장기적인 결과를 ‘보지’ 못합니다. 그것이 띨락카나(Tilakkhana)에 내재된 핵심 개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에서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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