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간답바 상태 - 삼장에 있는 증거
원문 : Living Dhamma 섹션의 ‘Gandhabba State – Evidence from Tipiṭaka’ 포스트
간답바 상태가 인간(그리고 동물) 바와의 필요한 특색이라는 것은 띠삐따까에 광범위한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안따라-바와(antarābhava) 상태가 아닙니다.
2017년 9월 16일; 2019년 8월 31일 개정; 2022년 11월 15일 개정; 2024년 5월 26일 개정
소개
1. 필자는 간답바 상태가 인간(그리고 동물) 바와에 필요하다는 띠삐따까(Tipitaka)의 광범위한 증거를 제시하겠습니다. 그것은 안따라-바와(antarābhava) (두 개의 바와 사이에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동일한 인간 바와(human bhava) 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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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적 몸(간답바 또는 마노-마야 까야)은 육체를 제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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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답바는 (수천년 동안 지속될 수 있는) ‘인간 바와’ 내에서 많은 잇따른 탄생에 걸쳐 살아 있습니다. 주어진 ‘물질적 몸(육체)’이 죽을 때, 간답바는 부합하는 것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 또 다른 자궁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재탄생 이야기는 그 메카니즘을 뒷받침합니다. 한 인간 존재(바와) 내에 다수의 탄생(자-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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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간답바(gandhabba) 개념은 ‘영혼’ 개념과는 다릅니다. 간답바(마노-마야 까야)는 평생 동안 계속 변화합니다. 또한, 그것은 인간 바와(human bhava)의 끝에 죽고, 또 다른 존재(데와, 동물, 등)를 위한 완전히 새로운 마노-마야 까-야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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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14에서 가리켜 보인 바와 같이, 또한 ‘간답바까-이까 데와-(gandhabbakāyika Devā)’라는 데와- 그룹도 있습니다.
빳타-나로부터 명백한 증거
2. 자궁에서 빠디산디가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들은 띠삐따까(Tipiṭaka)에 있는 아비담마 삐따까(Abhidhamma Piṭaka)의 ‘Paṭṭhānapakaraṇa’ 섹션을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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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띠산디(Paṭisandhi)는 새로운 바와, 예를 들면 인간 바와를 움켜잡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에, 인간 간답바가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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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간답바는 나중에 자궁에 들어가는데, 그것이 옥깐띠(okkanti)입니다. 인간 바와의 수명은 길며 수천년이 되는데, 그것은 인간 간답바(gandhabba)의 수명입니다. 그 기간 중에 육체적 인간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많은 옥깐띠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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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띠산디(Paṭisandhi)는 깜마 빳짜야(kamma paccaya)로 일어나고 옥깐띠(okkanti)는 사하자-따 빳짜야(sahajāta paccaya)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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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인간 영역에 태어남(빠띠산디)이 희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인간 영역에 태어나면, 인간 간답바는 (많은 옥깐띠를 통해) 다른 육체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아이들의 재탄생 이야기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배경
3. 3차 결집에서, 목갈리뿟따 띳사 테로(Moggaliputta Tissa Thēro)께서는 대승불교도(Mahāyānist)와의 토론에서 안따라-바와(antarābhava)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바른 해석은 띠삐따까(Tipitaka, 삼장)의 까타왓투(Kathavatthu)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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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대부분의 테라와딘(테라와다불교도)들은 간답바 상태를 안따라-바와(antarābhava, 중유) 상태로 잘못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안따라바와 및 간답바’ 포스트와, ‘쭈띠 - 빠띠산디 ㅡ 아비담마의 설명’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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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간답바(human gandhabba)는 인간 바와(human bhana)에 속해 있습니다.
4. 간답바(gandhabba) 상태가 ‘안따라-바와(antarābhava, 중유)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바와(bhava)와 자-띠(jāti) 간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빠띠산디(patisandhi, 재생연결)가 자궁에서 일어난다고 잘못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래 숫따(sutta) 구절에서, 일어나는 것은 빠띠산디(patisandhi)가 아니라 (간답바의) 옥칸띠(okkanti)라는 것이 명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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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존재(bhava)는 수백 년 또는 수천 년까지도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많은 인간 탄생(jāti, 입태에 의한 탄생)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바와 및 자띠 - 존재 상태와 거기로 태어남’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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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탄생 이야기에서, 잇따른 인간 탄생(자-띠, jāti) 사이에는 항상 시간 간격(보통 여러 해)이 있습니다. 그 잇따른 생 사이에 그 생명 흐름은 육체없이 간답바(gandhabba)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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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어진 인간 생(자-띠, jāti) 중에도, 간답바는 어떤 조건 하에서 육체 바깥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유체 이탈 경험(OBE)과 마노-마야 까-야’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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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바와(human bhava)를 얻기는 어렵습니다. ‘재탄생 ㅡ 제1성제의 괴로움과 관련’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주어진 ‘인간 바와’ 내에서, 그 인간 바와의 업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많은 탄생(입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이전의 생에서 죽은 지 단지 몇 년 후에 다시 태어난 이러한 모든 재탄생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5. 간답바(gandhabba)가 마하-야-나(Mahāyāna, 대승) 개념이라는 뿌리깊이 박힌 생각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필자는 이해합니다. 필자도 그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논의한 것처럼, 그것들(간답바 개념들)이 없이는 많은 것들은 설명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고 많은 모순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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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중요한 것은 간답바(즉, ‘빠라 로까’의 존재) 개념을 거부하는 것은 밋짜 딧티(micca ditthi, 사견)입니다. 따라서 그 밋짜 딧티를 지니고는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ami, 수다원 도의 성자)도 될 수 없습니다. ‘밋차- 딧티, 간답바, 및 소-따빤나 단계’ 포스트와, ‘간답바가 사는 보이지 않는 세계: 하계(빠라로-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래서, 필자는 모든 사람에게 증거를 면밀히 조사하고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리기를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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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많은 증거가 이 사이트의 다른 많은 포스트에 있습니다. 간답바에 관한 두 개의 서브섹션이 있습니다. 즉, ‘리빙 담마’ 섹션에 있는 ‘멘탈 바디 ㅡ 정신적 몸(Mental Body – Gandhabba)’ 서브섹션과, ‘아비담마’ 섹션에 있는 ‘간답바(마노마야 까야)(Gandhabba (Manomaya Kaya))’ 서브섹션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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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 상단에 있는 ‘검색 상자(Search box)’에 ‘gandhabba’를 입력하여 관련 포스트를 모두 찾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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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수태’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임신, 낙태, 및 피임에 대한 불교의 설명’ 포스트에 있습니다. 그것을 먼저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숫따에 따른 ‘수태의 3가지 조건’
6. 붓다께서는 수태가 일어나기 위해 3가지 조건이 어떻게 충족되어야 하는지를 묘사하셨습니다. 그것은 간답바(gandhabba, 주격은 gandhabbō)가 어떻게 자궁에 내려앉는지를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마하- 땅하-상카야 숫따(Mahā Tanhāsankhaya Sutta (MN 38))’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Tiṇṇaṃ kho pana, bhikkhave, sannipātā gabbhassāvakkanti hoti. Idha mātāpitaro ca sannipatitā honti, mātā ca na utunī hoti, gandhabbo ca na paccupaṭṭhito hoti, neva tāva gabbhassāvakkanti hoti. Idha mātāpitaro ca sannipatitā honti, mātā ca utunī hoti, gandhabbo ca na paccupaṭṭhito hoti, neva tāva gabbhassāvakkanti hoti. Yato ca kho, bhikkhave, mātāpitaro ca sannipatitā honti, mātā ca utunī hoti, gandhabbo ca paccupaṭṭhito hoti—evaṃ tiṇṇaṃ sannipātā gabbhassāvakkanti hoti. Tamenaṃ, bhikkhave, mātā nava vā dasa vā māse gabbhaṃ kucchinā pariharati mahātā saṃsayena garubhāraṃ..”.
여기 ‘숫따 센트럴 웹 사이트의 영어 번역본’이 있습니다(필자는 그것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빅쿠들이여, 자궁으로 내려앉음(착상)은 세 가지의 결합을 통해 일어난다. 여기, 어머니와 아버지의 교접이 있지만, 어머니가 배란기(가임기)에 있지 않고, 간답바가 없다면, 이 경우에 배아의 내려앉음(착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 어머니와 아버지의 교접이 있고, 어머니가 배란기(가임기)에 있지만, 간답바가 없다면, 이 경우에도 배아는 생길 수 없다. 다음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교접이 있고, 어머니가 배란기(가임기)에 있으며, 간답바가 있는 조건이다. 그것이 배아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배아가 형성되면] 그 후, 어머니는 자궁에 배아를 지니고 [태아를 출산할 때까지] 9~10개월 동안 많은 염려(갈망)와 함께, 무거운 짐으로 지니고 다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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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숫따 센터럴(Sutta Centra)’ 웹사이트를 운영하시는 빅쿠 스님들은 간답바(gandhabba)의 개념을 믿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빠알리 구절의 대부분은 바르게 번역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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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숫따 센터럴’ 사이트는 귀중한 자원입니다. 그 사이트는 빠알리 버전 뿐만 아니라 여러 언어로 번역된 것을 볼 수 있도록 제공합니다. 필자는 모든 사람들이 그 귀중한 데이터 베이스를 유지하는데 기여하기를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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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에서는 일부 결정적인 빠알리 용어가 잘못 번역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아닛짜(anicca)를 무상(impermanence)이라고 하고 아낫따(anatta)를 무아(no-self)라고 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또한, 윈냐-나( viññāna)와 상카-라(sankhāra)와 같은 복잡한 [의미를 가진] 빠알리 낱말을 단 하나의 영어 낱말로 번역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7. ‘앗살라-야나 숫따(Assalāyana Sutta (MN 93))’에는, 임신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간답바(gandhabba)가 알맞은 때에 어머니의 자궁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증거가 더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의 교접후 며칠 이내에 일어나야 하며 어머니의 배란기(가임기) 중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붓다께서는 앗살라-야나(Assalāyana)에게 선지자인 아지따 데왈라(Asita Devala)가 7명의 브라흐마나-(brahmanā)에게 어떻게 질문했는지 설명하셨는데, 그 7명의 브라흐마나-는 그들이 마하- 브라흐마-(Mahā Brahmā)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지따 데왈라(Asita Devala)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Jānanti pana bhonto—yathā gabbhassa avakkanti hot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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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하지만 자궁에서 임신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Jānāma mayaṃ, bho – yathā gabbhassa avakkanti hoti. Idha mātāpitaro ca sannipatitā honti, mātā ca utunī hoti, gandhabbo ca paccupaṭṭhito hoti; evaṃ tiṇṇaṃ sannipātā gabbhassa avakkanti hot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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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우리는 어떻게 임신이 되는지 알고 있습니다. 부모의 교접이 있고, 어머니가 배란기(가임기)이며, 간답바(gandhabba)가 있을 때, 즉, 이 세 가지의 결합이 있을 때 임신이 됩니다.”
“Jānanti pana bhonto—taggha so gandhabbo khattiyo vā brāhmaṇo vā vesso vā suddo v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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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그러나 그 간답바가 성자인지 브라만(바라문)인지 상인인지 노동자인지 아십니까?”
“Na mayaṃ, bho, jānāma—taggha so gandhabbo khattiyo vā brāhmaṇo vā vesso vā suddo v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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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우리는 그 간답바가 성자인지 브라만(바라문)인지 상인인지 노동자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간답바(gandhabba)의 개념은 붓다 시대에 다른 요-기(수행자)들도 받아 들였습니다.
8. ‘마하 니다나 숫따(Mahā Nidāna Sutta (DN 15))’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n’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tadānanda, imināpetaṃ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ṃ. Viññāṇañca hi, ānanda, mātukucchismiṃ na okkamissatha, api nu kho nāmarūpaṃ mātukucchismiṃ samuccissathā”ti?
“No hetaṃ, bhante”.
“Viññāṇañca hi, ānanda, mātukucchismiṃ okkamitvā vokkamissatha, api nu kho nāmarūpaṃ itthattāya abhinibbattissathā”ti?
“No hetaṃ, bhante.”
번역: “..윈냐-나(viññāna)를 조건으로 나-마루-빠(nāmarūpa)가 있다. 아-난다(Ānanda)여, 그것이 어떻게 그런지는 이런 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윈냐-나(viññāna)가 어머니의 자궁에 내려앉지 않는다면, 나-마루-빠(nāmarūpa)가 형성될 수 있을까?”
“확실히 아닙니다. 부처님.”
“내려앉은 윈냐-나(viññāna)가 떠난다면, 나-마루-빠(nāmarūpa)가 이 현재의 존재상태로 생길 수 있을까?”
“확실히 아닙니다.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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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붓다께서는 ‘자궁에 내려앉는 윈냐-나(viññāṇa)’는 ‘빠띠산디 찟따(patisandhi citta)가 아닌,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 gandhabba)의 내려앉음을 의미하셨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빠띠산디 찟따(patisandhi citta)는 자궁에서 나올 수(떠날 수) 없습니다. 아래 #7에서 다른 네 가지 칸다(khandha, 무더기)는 항상 윈냐-나(viññāna)를 동반한다는 증거를 제시하겠습니다. 그것은 루빡칸다(rupakkhandha, 루빠 무더기)(그리고, 간답바는 5개의 무더기를 모두 가지고 있음)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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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윈냐-나가 아기의 성별(‘꾸마-라캇사 와- 꾸마-리까-야 와-’, ‘소년 또는 소녀’)을 결정한다고 말하는 표시번호 21.6에 있는 구절로부터 분명합니다. 아래 #12에서 가리켜 보인 바와 같이, 빠띠산디 윈냐-나(또는 어떤 깜마 윈냐-나)는 루빠(즉, 적어도 숫닷-타까)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경우에, (아이의 성별을 가리키는) 바-와 다사까(bhāva dasaka)도 간답바(gandhabba)의 하다와 왓투(hadaya vatthu)와 빠사-다 루빠(pasāda rupa)와 함께 자궁에 내려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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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알리 낱말 ‘옥깐띠(Okkanti)’는 종종 ‘재탄생’으로 오역됩니다. 그러나, 그 낱말은 이미 형성된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 gandhabba)의 ‘내려앉음’을 의미합니다. 재탄생은 쭈띠-빠띠산디(cuit-patisandhi, 죽음-재생연결) 순간에, 마음 찰나(생각 순간) 내에 일어납니다. 이 재탄생은 간답바의 태어남입니다. ‘쭈띠 - 빠띠산디 ㅡ 아비담마의 설명’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숫따에 있는 더 자세한 내용
9. 꾸뚜할라 숫따(Kutuhala Sutta (SN 44.9))에서, 왓짜가 붓다께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습니다.
“Yasmiñca pana, bho gotama, samaye imañca kāyaṃ nikkhipati, satto ca aññataraṃ kāyaṃ anupapanno hoti, imassa pana bhavaṃ gotamo kiṃ upādānasmiṃ paññāpetī”ti?
번역: “..그리고, 고따마 스승님, 중생이 육체를 버렸지만 아직 다른 육체로 태어나지 않았을 때, 그 중생은 어떤 음식을 먹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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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Yasmiṃ kho, Vacha, samaye imañca kāyaṃ nikkhipati, satto ca aññataraṃ kāyaṃ anupapanno hoti, tamahāṃ taṇhūpādānaṃ vadāmi.”라고 답하셨습니다. 번역: “왓짜여, 중생이 육체를 버렸지만, 아직 다른 육체로 태어나지 않았을 때, 그 중생은 갈애를 그 음식으로 한다고 나는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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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간답바가 육체를 떠나 아직 다른 육체로 태어나지 않을 때, 그 삶은 땅하-(taṇhā, 갈망)에 의해 유지됩니다. 그것은 루삐 브라흐마(색계 범천)가 삐띠(정신적 행복)를 음식으로 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간답바(gandhabba)와 루삐 브라흐마(rupi brahma)는 매우 미세한 몸(현대과학의 원자보다 더 작으며, 단지 몇 개의 숫닷-따까)을 가집니다. 그러나 일부 간답바(gandhabba)는 음식으로 냄새를 흡입하여 상대적으로 더 조밀하게 될 수 있습니다.
10. 상기띠 숫따(Sangiti Sutta (DN 33))에서는, 간답바가 4가지 방식으로 자궁에 들어가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Catasso gabbhāvakkantiyo. Idhāvuso, ekacco asampajāno mātukucchiṃ okkamati, asampajāno mātukucchismiṃ ṭhāti, asampajāno mātukucchimhā nikkhamati, ayaṃ paṭhamā gabbhāvakkanti. Puna caparaṃ, āvuso, idhekacco sampajāno mātukucchiṃ okkamati, asampajāno mātukucchismiṃ ṭhāti, asampajāno mātukucchimhā nikkhamati, ayaṃ dutiyā gabbhāvakkanti. Puna caparaṃ, āvuso, idhekacco sampajāno mātukucchiṃ okkamati, sampajāno mātukucchismiṃ ṭhāti, asampajāno mātukucchimhā nikkhamati, ayaṃ tatiyā gabbhāvakkanti. Puna caparaṃ, āvuso, idhekacco sampajāno mātukucchiṃ okkamati, sampajāno mātukucchismiṃ ṭhāti, sampajāno mātukucchimhā nikkhamati, ayaṃ catutthā gabbhāvakkanti”.
번역: “..자궁에 들어가는 네 가지 방법. 빅쿠들이여, 여기에, 어떤 자는 모르면서 어머지의 자궁에 내려앉고, 모르면서 거기에 머물고, 모르면서 거기서 떠난다. 이것이 첫번째 종류의 수태이다. 또 다른 자는 알면서 내려앉지만, 모르면서 머물고, 모르면서 떠나간다. 또 다른 자는 알면서 내려앉고, 알면서 머물지만, 모르면서 떠난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자는 알면서 내려앉고, 알면서 머물고, 알면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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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위에서 논의한 ‘마하- 땅하-상카야 숫따(Mahā Tanhāsankhaya Sutta (MN 38))’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자궁(갑바, gabbha) 안으로 (간답바가 내려앉는) 옥깐띠(okkanti)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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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동일한 묘사가 ‘삼빠사-다니-야 숫따(Sampasādanīya Sutta (DN 28))’에 있습니다. 또 다른 관련된 숫따는 ‘띳타-야따나 숫따(Titthāyatana Sutta (AN 3.61))’입니다.
11. 마지막 태어남에서 보디삿트와(Bodhisattva, 보살)는 위에서 언급한 자궁에 들어가는 네 번째 방법인 “..알면서 내려앉고, 알면서 머물고, 알면서 떠난다”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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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하-빠다-나 숫따(Mahāpadāna Sutta (DN 14)): “..Atha kho, bhikkhave, vipassī bodhisatto tusitā kāyā cavitvā sato sampajāno mātukucchiṃ okkami. Ayamettha dhammat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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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빅쿠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디삿뜨와(Vipassī bodhisattva)는 마음챙기고 알면서 뚜시따(Tusita) 영역을 떠나 그 어머니 자궁에 내려앉았다. 그것은 법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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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시따(Tusita) 영역에서 ‘쭈띠-빠띠산디(cuti-patisandhi, 죽음-재생연결)’ 순간에, [보살이었던] 데와(deva)가 죽었고, ‘인간 간답바(human gandhabba)’가 태어나서, 지상에 있는 어머니의 자궁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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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숫따(sutta)에서는 지난 ‘31 마하- 깝빠(mahā kappa, 대겁)’ 내에 우리 짝까-왈라(cakkāvāla, 행성 시스템)에 출현하신 고따마 붓다를 포함하여 7분의 과거 붓다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웹사이트의 ‘English translation of the Sutta at Sutta Central’는 도움이 되는 요약을 [대조] 테이블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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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 숫따에서, 갑바-왁깐띠요(gabbhāvakkantiyo)와 옥까미(okkami)는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웹사이트에서는 잘못 번역되어 있습니다.
‘빠띠산디 윈냐-나’는 ‘간답바’와 동일함
12. 비자 숫따(Bija Sutta (SN 22.54))에서, 윈냐-나(viññāna)는 루빡칸다(rupakkhandha, 루빠 무더기)를 포함하여 다른 네 개의 무더기 없이는 존재 또는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히 설해져 있습니다.
“..Yo, bhikkhave, evaṃ vadeyya: ‘ahamaññatra rūpā aññatra vedanāya aññatra saññāya aññatra saṅkhārehi viññāṇassa āgatiṃ vā gatiṃ vā cutiṃ vā upapattiṃ vā vuddhiṃ vā virūḷhiṃ vā vepullaṃ vā paññāpessām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번역: “빅쿠들이여, 루-빠(rūpa), 웨다나(vedana),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가 없이 윈냐-나(viññāṇa)가 재탄생시에 존재하고, 자라고,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나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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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빠띠산디 윈냐-나(patisandhi viññāna)가 자궁에 내려앉는 것은 간답바(gandhabba)의 깜마자 까-야(kammaja kāya)인 5가지 칸다(khanddha)를 모두 동반해야 합니다. 윈냐-나(viññāna)는 루-빠(rūpa)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아루빠(arupa) 영역의 브라흐마(brahma) 조차도 ‘사따라 마하- 부따(satara mahā bhuta, 4대 요소)’로 만들어진 ‘숫닷-타까’인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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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특별한 참조는 “Paṭisandhikkhaṇe pañcakkhandhā sahajātapaccayā honti,..”, 즉 “빠띠산디 순간에 모든 다섯 무더기(빤짝칸다)는 함께(sahajāta) 일어나고..”라고 말하는 빠띠삼비다-막가(Paṭisambhidāmagga)의 ‘1.6. Gatikathā’입니다. 그 링크에서 빠띠산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표시번호 4.1 내지 4.9에 있습니다.
아나따라-빠리닙바이 상태와 간답바
13. 처음 7가지의 상요-자나(samyōjana, 족쇄)는 까-마 라-가(kāma rāga), 루-빠 라-가(rūpa rāga), 및 아루-빠 라-가(arūpa rāga)를 포함합니다. 처음 3가지 상요-자나가 없으면, 까-마 로까(욕계), 루-빠 로까(색계), 아루-빠 로까(무색계)의 31영역 어디에도 재탄생할 수 없습니다. 상요-자나(samyōjana)에 대해서는 ‘다사 상요-자나 - 재탄생 과정의 족쇄’ 포스트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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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죽을 때, 간답바가 죽은 몸에서 나옵니다. 그 사람이 죽은 그때에 처음 7가지 상요-자나를 제거했다면, 그 간답바는 31영역의 어떤 곳에도 태어나는 바와를 움켜잡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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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마-나(māna), 우닷짜(uddacca), 및 아윗자-(avijjā)라는 나머지 3가지의 상요-자나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성자는 빠리닙바-나( Parinibbāna, 반열반)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간답바도 죽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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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그 성자는 그 인간 바와(human bhava)의 업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간답바 상태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아나따라-빠리닙비야-니(Anatarāparinibbiyāni)’ 상태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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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상요자나 숫따(Samyojana Sutta, Anguttara Nikaya 4:131)에 다음과 같이 설해져 있습니다. “..Katamassa, bhikkhave, puggalass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upapatti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bhava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Antarāparinibbāyis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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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5가지 상요-자나(samyōjana, 족쇄)를 ‘오람바-기야- 상요-자나(orambhāgiyā samyōjana)’라고 부릅니다. 루-빠 라-가(rūpa rāga) 및 아루-빠 라-가(arūpa rāga)는 합하여 우빠빳띠빠띨라-비야- 상요-자나(upapattipaṭilābhiyā samyōjana)라고 부르며, 마-나(māna)와 우닷짜(uddacca)와 아윗자-(avijjā)는 총칭하여 바와빠띨라-비야- 상요-자나(bhavapaṭilābhiyā samyōjana)라고 부릅니다.
간답바까-이까 데와-
14. ‘Suddhika Sutta (SN 31.1)’와 ‘Sāragandhādidānūpakārasuttanavutika (SN 31.23-112)’로 끝나는 여러 더 많은 이후의 숫따-들에서, 붓다께서는 간답바까-이까 데와-(gandhabbakāyika Devā)라고 불리는 데와 그룹이 있다고 묘사하셨습니다. 그들은 인간 간답바와는 다르고 가장 낮은 데와 영역인 짜-뚬마하-라-지까 데와(Cātummahārājika Deva) 영역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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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kkapañha Sutta (DN 21)’는 부처님과 빤짜시카(Pañcasikha)라는 이름의 그 간답바까-이까 데와(gandhabbakāyika Devā) 중의 한 데와 사이의 논의를 언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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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ṇa Sutta (AN 4.36)’에서, 브라만 도나(Doṇa)는 부처님이 데와(Deva)인지, 간답바 데와(gandhabba Deva)인지, 인간 등인지 묻습니다. 붓다께서는 그 어느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의 모든 그런 범부에 속하지 않는 붓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이 웹사이트의 ‘리빙 담마’ 섹션에 있는 ‘멘탈 바디 ㅡ 정신적 몸(Mental Body – Gandhabba)’ 서브섹션과, ‘붓다 담마‘ 섹션에 있는 대통합이론인 담마(The Grand Unified Theory of Dhamma) 서브섹션과, ‘아비담마’ 섹션에 있는 ‘간답바(마노마야 까야)(Gandhabba (Manomaya Kaya))’ 서브섹션에는 인간 간답바(human gandhabba)에 대한 포스트가 많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