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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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ㅡ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원문 : Paṭicca Samuppāda 섹션의 ‘Introduction – What is Suffering?’ 포스트

- 2021년 6월 6일 개정; 2021년 6월 14일 재작성; 2022년 11월 8일 개정[영문법 및 경미한 사항 개정임]

 

‘둑카 삿짜’는 ‘괴로움에 대한 진리’를 의미한다

 

1. 둑카 삿짜(Dukkha sacca)(후자는 ‘sachcha’라고 발음함)는 재탄생 과정에 숨겨진 괴로움뿐 아니라 그것을 제거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 * 붓다께서는 이 세상에는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결코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붓다께서는 데와(Deva, 천신) 영역과 브라흐마(Brahma, 범천) 영역에는 인간 세계에서 즐길 수 있는 ‘즐거움’에 비해 향상된 감각적(kāma, 까-마) 즐거움 및 선정의 즐거움이 있다고 가리켜 보이셨습니다.

  • * 그러나 문제는 모든 주어진 유정체가 (재탄생 과정에서) 인간, 천신, 범천 영역보다 사악처(apāyā, 아빠-야-)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재탄생 ㅡ 제1성제의 괴로움과 관련’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재탄생 과정에서 [전체적으로 볼 때] 엄청난 차이로 [많은/큰] 순(net) 고통(괴로움)이 있습니다.

 

둑카 삿짜(제1성제)에 대한 오해

 

2. 많은 사람들이 호흡 명상이나 이와 유사한 ‘명상법’으로 얻어지는 일시적인 ‘마음의 평화’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피상적인 고통’만을 다룹니다. 붓다께서는 재탄생 과정에서 훨씬 더 가혹한 고통/괴로움이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 * 붓다 담마는 더 가혹하고 장기적인 고통/괴로움을 끝내고 고통/괴로움이 전혀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에 관한 모든 것입니다. ‘닙바-나(열반)의 지복(행복)’은 고통/괴로움의 흔적조차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지복(행복)을 나타냅니다.

  • * 조잡하게 비유하면, 평생 편두통을 앓다가 마침내 완치된 사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유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아라한이 죽은 후의) 닙바-나(Nibbāna, 열반)에서는 루빠(rupa),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윈냐-나(viññāna)가 모두 없기 때문입니다.

  • * 이 세상을 묘사하는 찟따citta), 쩨따시까(cetasika), 루빠(rupa)라는 3가지 궁극 실재가 닙바-나(Nibbāna, 열반)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닙바-나(열반)는 존재하지만, 그것을 우리의 용어로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 * ‘6가지 근본원인 - 로까 사무다야(괴로움의 발생)와 로까 니로다야(열반)’ 포스트의 #4를 참조하세요.

 

열반의 행복은 괴로움이 완전히 없는 것을 의미한다

 

3. 예를 들어, 이것은 또한 닙바-나수카 숫따( ‘Nibbānasukha Sutta (AN 9.34)’ )에서 설명됩니다. “닙바-낭 빠라망 수캉(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이라는 구절은 느낌이라는 의미의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데, 그것은 닙바-나((Nibbāna, 열반)에는 웨다나-(vedanā)가 없기 때문입니다. ‘닙바나는 존재하지만, 이 세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많은 사람들은 ‘자-나(선정) 경험’을 닙바-나(열반)와 동일시합니다. 자-나(jhāna, 선정)는 브라흐마(범천) 세계의 정신 상태이며, 따라서 자-나(선정) 경험은 ‘31영역으로 된 이 세상’에 속합니다. 동물을 포함하여 모든 유정체는 자신의 깊은 과거에 자-나(선정)를 얻은 적이 있었고 범천계에 여러번 태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 * 닙바-나(Nibbāna, 열반)은 단순히 고통/괴로움이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그것이 ‘닙바-나(열반)의 지복’입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 천신 또는 범천이 경험하는 어떤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와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싯닷타 왕자와 많은 왕들과 부유한 사람들이 닙바-나(열반)를 구하기 위해 그런 ‘호화로운 생활’을 포기한 이유입니다.

  • * 그렇다면, 재탄생 과정에서 겪는 이 고통/괴로움이 얼마나 나쁜 것일까요?

 

진짜 괴로움을 이해 ㅡ 그것은 재탄생 과정에 있다

 

4.  ‘재탄생 ㅡ 제1성제의 괴로움과 관련’ 포스트에서, 우리는 띠삐따까(Tipiṭaka)에는 대부분의 재탄생이 사악처(apāyā, 아빠-야-)에 있다고 언급하는 것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우리는 그 사악처 중의 한 영역인 동물 영역에 있는 고통/괴로움을 볼 수만 있습니다.

 

  • * 붓다께서는 다른 세 가지 아빠-야-(apāyā)에 있는 고통/괴로움의 유형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발-라빤디따 숫따’( ‘Bālapaṇḍita Sutta (MN 129)’ )와 ‘데와두-따 숫따’( ‘Devadūta Sutta (MN 130)’ )에서 붓다께서는 여러 ‘낮은 영역’에서 직면하는 고통을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 * 첫 번째 것의 영어 번역은 ‘The Foolish and the Astute (MN 129)’에 있습니다. 그 숫따(sutta, 경)는 부도덕한 활동을 하는 사람(‘발-로/bālo’, 바보)은  현생과 사악처의 미래 존재 모두에서 결과(깜마 위빠-까)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니라야(niraya, 가장 낮은 영역인 지옥)에서 겪는 고통에 대한 설명은 끔찍합니다.

  • * 관련된 숫따(경)는 빠-야-시 숫따( ‘Pāyāsi Sutta (DN 23)’ )입니다. 그것은 재탄생 과정이 없다는 잘못된 견해에 관한 것입니다. 거기에 있는 영어 번역인 ‘With Pāyāsi (DN 23)’를 참조하세요. 재탄생 과정의 타당성을 의심하거나 아빠-야-(apāyā)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위 숫따(경)들을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이전 바와(bhava)를 기억해내지 못한다

 

5. ‘재탄생 ㅡ 제1성제의 괴로움과 관련’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우리는 수천년 동안 지속될 수 있는 인간 바와(human bhava) 중에 여러번 인간 몸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어린이들은 그들의 과거 인간 생을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그 재탄생은 동일한 인간 바와(human bhava) 동안에 일어났습니다.

 

  • * 아빈냐-(abhiññā, 신통)력을 가진 일부 요기(yogi, 수행자)들은 현 바와(bhava) 직전에 가졌던 자신들의 최근 바와(bhava)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현재의 인간 바와(human bhava) 직전에 브라흐마 바와(Brahma bhava, 범천 바와)를 가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논의한 바와 같이, 인간 또는 그 아래 바와(즉, ‘아빠-야-_apāyā’의 바와)로부터 인간 바와(human bhava)를 얻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습니다. 게다가, 쉽게 자-나(선정)를 육성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인간 바와(human bhava) 바로 전에 브라흐마 바와(Brahma bhava)를 가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요기(수행자)는 그들의 이전 브라흐마 바와(Brahma bhava)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빠-야-(apāyā)의 동물이나 다른 존재를 회상했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 * 따라서, 다른 바와(bhava)는 고립되어 있으며, 특히 하위 영역에 있었던 과거 자신의 존재들을 ‘돌아보기’란 어렵습니다.

  • * 그것(하위 영역을 상기할 수 없는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위의 #4에서 설명된 아빠-야-(apāyā)의 그런 수준의 고통을  떠올리는 것이 악몽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 숫따(sutta)로부터 아빠-야-(apāyā)의  고통 수준에 대한 개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삿띠사따 숫따(SN 56.35) ㅡ 그 (제안) 거래를 하는 것!

 

6. ‘삿띠사따 숫따( ‘Sattisata Sutta (SN 56.35)’ )에서 붓다께서는 빅쿠들에게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열반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데 헌신하라고 충고하셨습니다. 요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붓다께서는 비유를 하셨습니다. 짧은 경전인데, 아래에서 번역하겠습니다.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에 있는 영어 번역, ‘A Hundred Spears (SN 56.35)’은 도움이 됩니다.

 

“빅쿠들이여, 남아 있는 수명이 100년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누군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보세요, 선한 사람이여, 아침에 그들이 백 개의 창으로 그대를 치고, 정오에 그들이 백 개의 창으로 그대를 치고, 저녁에 그들이 백 개의 창으로 그대를 칠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여, 그리고 그대는 날마다 삼백 개의 창에 맞으면서 백 년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백년이 지나면, 그대는 사성제에 비약적인 진전을 이루어 열반에 이를 것입니다. 그대가 그 고통을 감내하기로 동의한다면 그것이 보장됩니다.’ ”

 

빅쿠들이며, 그 사람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현명한 결정이다. 무슨 이유로 그런가? 이 윤회(상사-라, saṁsāra)는 시작을 알 수 없이 길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헤아릴 수 없이 창, 칼, 도끼 등으로 타격 당하는 큰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너희들이 열반에 이르지 않는 한, 미래에도 그렇게 고통을 겪을 것이다.)”

 

“빅쿠들이여, 그러나 나는 닙바-나(열반)에 이르는 길에 괴로움(고통)이나 불쾌함(언짢음)이 따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닙바-나(열반)로 가는 길에는 행복과 기쁨만이 동반된다.”

 

“빅쿠들이며, 그러므로, 너희들은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들은 그 괴로움의 원인이다. 그 원인을 제거하면, 괴로움이 그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괴로움의 그침에 이르는 길이다.’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부 숫따에 대한 오역과 선택된 숫따에 대한 은폐

 

7. 여러분 모두가 보았듯이, 많은 사람들이 그 숫따(경)들을 무시합니다. 그들은 그 숫따(경)들이 ‘나중에 추가된 것’이거나 ‘부처님 이후에 왜곡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 그들은 몇 가지 숫따(경)를 골라서 자신들의 요점을 증명하기 위해 잘못 번역합니다! 예를 들어, 붓다께서는 첫 번째 설법에서 “... ayamantimā jāti, natthi dāni punabbhavo'ti.(.. 이것은 마지막 태어남이다. 반복된 바와(bhava)를 더 이상 움켜잡는 것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 ‘Dhammacakkappavattana Sutta (SN 56.11)’ )가 나중에 추가된 것인가요?

 

  • * 필자는 띠삐따까(Tipiṭaka)에 있는 어떤 숫따(경)든 기꺼이 논의(토론)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의견만 나타내거나 다른 오역을 인용하는 것은 삼가해 주세요.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논의(토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괜찮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지는 마세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받아들여진 일반적인(당연한) 것’에 반하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 모두가 이 고통으로 가득 찬 재탄생 과정에 그렇게 오랫동안 갇혀 있는 이유입니다!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ṁ udapādi, ñāṇaṁ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그것은 비전, 앎, 지혜, 꿰뚫는 비전, 그리고 이 세상에서 분리되는 길이였고, 그것이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이 가르침에 관하여 내 안에 일어났다..”)라는 구절이 이러한 이유로 부처님의 첫 설법에 8번 나타납니다.

  • * 붓다께서는 어떤 고통이 예상되는지, 어떻게 그런 끔찍한 고통이 일어나는지(둑카 사무다야, dukkha samudaya), 어떻게 그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는지(둑카 니로다야, dukkha nirodhaya)를 설명하셨습니다. 물론,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은 성스런 팔정도입니다. 그 길을 따르려면, 먼저 처음 세 가지 성스런 진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 * 그런데, 붓다께서는 또한 고통은 자신의 영혼(또는 힌두교의 아-트만)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애초에 그런 것은 없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시작합니다. 그 과정은 특정 '영혼'과 상관없이 진행됩니다. 아윗자-(avijjā)로 인해 상카-라(saṅkhāra)가 생성되는 데 관여하는 ‘삿따(satta, 중생) (사뜨와, satva)’가 있을 뿐입니다. ‘다섯 무더기와 띨락카나 ㅡ 소개’ 포스트의 #3을 참조하세요. 이것은 향후 포스트에서 자세히 논의할 더 깊은 점입니다.

 

둑카 사무다야 ㅡ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가 설명

 

8. 두 가지 주요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 체계는 이 세상에서 고통(괴로움)이 일어나는(둑카 사무다야, dukkha samudaya) 메커니즘을 묘사(설명)합니다.

 

  • * ‘이답빳짜야-따- 빠띳짜 사뭅빠-다’는 우리가 어떻게 일생 동안 깜마(업) 에너지를 축적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런 깜마 에너지는 ‘쌓여’ 미래 존재로 이어지는데, 주로 아빠-야-(apāyā, 악처/사악처)에 이루어지며, 그것은 아꾸살라ㅡ물-라 웁빳띠 빠띳짜 사뭅빠-다’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 * 우리가 보았듯이, ‘이 세상’에 모든 태어남은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지는데,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a saṅkhāra)’로 시작하는 그 사이클은 항상 ‘자-띠 빳짜야- 자라-, 마라나, 소까ㅡ빠리데-와ㅡ둑카ㅡ도-마낫수빠-야사- 삼바완’띠(jāti paccayā jarā, marana, soka-paridēva-dukkha-dōmanassupāyasā sambhavan'ti)’와 ‘전체 고통의 덩어리’로 끝납니다.

 

둑카 니로다야 ㅡ ‘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가 설명

 

9. ‘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는 고통(괴로움)을 없애는 과정을 묘사(설명)합니다.

 

  • * ‘꾸살라물-라 빳짜야- 상카-라(kusalamūla paccayā saṅkhāra)’는 아리야-(Ariyā) (소따빤나에서 아나-가-미)의 태어남으로 이끕니다. 그러나 그들도 또한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 때문에, 그 사이클은 여전히 늙음과 죽음으로 끝납니다. 즉, ‘자-띠 빳짜야- 자라- 마라낭. 에와메떼상 담마-낭 사무다요 호띠.(jāti paccayā jarā maraṇaṃ. Evametesaṃ dhammānaṃ samudayo hoti.)’입니다.

  • * 그러나 아라한이 죽으면, 고통(괴로움)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따라서, 그것은 괴로움(고통)의 끝으로 이어집니다.

 

둑카 사무다야와 둑카 니로다야에 있는 두 가지 유형의 상카-라 

 

10. 아윗자-(avijjā)로 생성된 그 상카-라(saṅkhāra)(‘아꾸살라 상카-’라고 부를 수 있음)는 재탄생 과정을 영속화하고 더 많은 괴로움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 * 반면에, 빤냐-(paññā)(‘성스런 진리’에 대한 이해)로 생성된 ‘꾸살라 상카-라(kusala saṅkhāra)’는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에 이르게 하고 재탄생 과정을 멈추게 합니다. 그것은 닙바-나(Nibbāna)이고, 괴로움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근본 원인과 관계

 

11. 이전 포스트인, ‘6가지 근본원인 - 로까 사무다야(괴로움의 발생)와 로까 니로다야(열반)’에서 보았듯이, ‘아꾸살라 상카-라(akusala saṅkhāra)’는 로바(lobha), 도사(dosa), 모하(moha), 그리고 평범한(세간) 버전의 알로바(alobha), 아도사(adosa), 아모하(amoha)로 인해 일어납니다.

 

  • * 꾸살라 상카-라(kusala saṅkhāra)’를 생성하려면, 성스런 진리/빠띳짜 사뭅빠-다/틸락카나에 대한 이해로 로꼿따라(lokottara)(더 깊은, 출세간) 버전의 알로바(alobha), 아도사(adosa), 아모하(amoha)를 육성해야 합니다. 그 세 가지(성스런 진리/빠띳짜 사뭅빠-다/띨락카나)는 동등하며 필자는 대부분의 경우 그들 중의 하나만 언급하는 것에 주목하세요.

  • * 괴로움(고통)에 대한 논의를 완전히 하려면, 세 가지 범주의 괴로움(고통)에 대해  논의해야 합니다.

 

괴로움의 세 가지 범주

 

12. 괴로움의 세 가지 범주는 둑카따- 숫따( ‘Dukkhatā Sutta (SN 45.165)’ )에 “…dukkha dukkhatā, saṅkhāra dukkhatā, vipariṇāma dukkhatā—imā kho, bhikkhave, tisso dukkhatā.”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 * 둑카 둑카따-(dukkha dukkhatā), 상카-라 둑카따-(saṅkhāra dukkhatā), 위빠리나-마 둑카따-(vipariṇāma dukkhatā)라는 세 가지 범주의 이름을 번역하려고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그 세 가지 종류의 괴로움(고통)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둑카따-(dukkhatā)는 '둑카 유형’을 의미합니다.

  • * 따라서, 괴로움(고통)의 세 가지 범주는 둑카ㅡ둑카 (dukkhaㅡdukkha), 상카-라ㅡ둑카 (saṅkhāraㅡdukkha), 위빠리나-마ㅡ둑카 (vipariṇāmaㅡdukkha)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둑카ㅡ둑카가 최악이다

 

13.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가장 강한 괴로움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해 직접적으로 일어나는 둑카ㅡ둑카 (dukkhaㅡdukkha)입니다. 이 범주는 우리가 일생 동안 직면하는 중대한 고통(심각한 부상, 암과 같은 질병 등)과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아빠-야(apāya)에 태어날 때, 그 존재의 대부분은 둑카ㅡ둑카 (dukkhaㅡdukkha)로 가득 차 있습니다.

 

  • * 그러므로, 우리가 위에서 논의한 대부분의 괴로움(고통)은 둑카ㅡ둑카(dukkhaㅡdukkha)에 속합니다.

  • * 다음 포스트인, ‘소개-2 ㅡ 괴로움의 세가지 범주’에서 세 가지 범주 모두에 대해 더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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