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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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닛짜 특성, 첫 번째 성스런 진리, 및 빠띳짜 사뭅빠-다

 

원문: Key Dhamma Concepts 섹션의 ‘Anicca Nature, the First Noble Truth, and Paṭicca Samuppāda’ 포스트

- 2021년 7월 19일 작성; 2022년 12월 11일 개정

 

아닛짜 특성 ㅡ 첫 번째 성스런 진리와 관계

 

1. 이전 포스트에서는 ‘붓다 담마의 세 기둥’, 즉 네 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 띨락카나(Tilakkhana),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사이의 상호 관계를 논의했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띨락카나(Tilakkhana), 잇짜(icca), 잇차(iccha), 닛짜(nicca), 닛차(niccha), 아닛짜(anicca), 아닛차(aniccha), 아낫따(anatta), 및 아낫타(anattha)라는 낱말의 발음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이전 포스트인 ‘성스런 진리, 빠띳짜 사뭅빠-다, 띨락카나 ㅡ 핵심 관계’에 있는 음성 파일을 다시 들어보세요.

 

  • * 첫 번째 성스런 진리에서 괴로움/고통에 대한 결정적인 구절은, ‘얌 삐 잇창 나 라바띠 땀삐 둑캉-(yam pi 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āṃ)’와 ‘상킷떼나 빤짜 우빠-다-나 칸다- 둑카-(saṃkhittena pañca upādāna khandhā dukkhā)’ 둘 다 미래의 괴로움이 이 세상 것들에 대한 들러붙음/갈망(잇차, iccha)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 * 우리가 논의했듯이, 우리 미래를 고통/괴로움에서 해방시켜 우리가 좋아하는(‘잇짜_icca’ 또는 ‘잇차_iccha’)대로 맞추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 세상은 닛짜(nicca) 또는 닛차(niccha) 특성으로 있으며 고통/괴로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붓다께서는 이 세상은 아닛짜(anicca) 특성, 즉 닛짜(nicca) 특성의 반대로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 * 그것은 이 세상의 어떤 것에 대한 갈망/분투가 고통 없는 미래로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 대신, 이 세상의 무엇에든 더 들러붙을수록 더 많은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 *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상까따(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는 본질적으로 예기치 않은 변화와 파괴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음 포스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 오직 열반에만 괴로움/고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열반(Nibbāna)닛짜(nicca) 특성입니다. 이전 포스트의 #9를 참조하세요.

 

3. 이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그것에 대한 갈망/분투(잇짜/잇차, icca/iccha)는 두 가지 방식으로 괴로움/고통을 초래합니다.

 

  • * 이 세상의 것들을 획득하려고 애쓸 때, 그 노력 자체가 괴로움/고통이고 그 결과도 괴로움입니다. 그것을 얻는다 해도, 자신이 죽을 때 잃게 됩니다.

  • * 심각한 두 번째 유형의 괴로움/고통은 자신이 갈망하는 세상 것들을 손에 넣으려고 노력하는 중에 행한 부도덕한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나쁜 재탄생’으로 인한 것입니다. 이제 그것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 * (그러나, 이 갈망/갈애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인 네 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 띨락카나(Tilakkhana), 및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이해하지 않고는 제거될 수 없습니다.)

 

아닛짜 특성 ㅡ 빠띳짜 사뭅빠-다와 관계

 

4. 이 세상 것들을 ‘소유하고 즐기려는’ 우리의 노력은 항상 어떤 짧은 기간의 행복보다 더 많은 고통/괴로움을 초래합니다. 그것은 붓다 담마의 ‘세 번째 기둥’인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통해 설명됩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그것에 대해 시작했습니다. 그 논의를 계속하겠습니다.

 

  • * 인간은 뿐냐 아비상카-라(puñña abhisaṅkhāra)로 도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행위를 하고 아뿐냐 아비상카-라(apuñña abhisaṅkhāra)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행위를 합니다. 전자는 인간, 데와(Deva, 천신),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upāvacara Brahma, 색계 범천) 영역에 태어나게 하고, 후자는 아빠-야-(apāyā, 악처/사악처)에 태어나게 합니다.

  • * 어떤 사람들은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upāvacara samāpatti)를 육성합니다. 그것들은 아-넨자 아비상카-라(āneñja abhisaṅkhāra)와 관련되어 있으며,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arupāvacara Brahma, 무색계 범천) 영역에 태어남으로 이어집니다. 뿐냐 아비상카-라(puñña abhisaṅkhāra) 유형들에 대해서는 아래에 더 언급되어 있습니다.

  • * 부처님이 출현하시지 않으면, 그 세 가지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 중 어느 것도 ‘고통/괴로움 없는 상태’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 모든 태어남들은 죽음으로 끝납니다. 최악의 측면은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으로 인해 인간은 자주 아뿐냐 아비상카-라(apuñña abhisaṅkhāra)로 부도덕한 행위를 하고 고통으로 가득한 아빠-야-(apāyā)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 * 그 이유는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에서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가 의미하는 바를 살펴볼 때 분명해집니다.

 

괴로움/고통으로 끝나는 태어남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로 시작된다 

 

5. 빠띳짜사뭅빠-다 위방가(Paṭiccasamuppāda Vibhaṅga)에서는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지는)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에 있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 항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땃타 까따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 뿐냐-비상카-로, 아뿐냐-비상카-로, 아-넨자-비상카-로, 까-야상카-로, 와찌-상카-로, 찟-따상카-로.(Tattha katame avijjā paccayā saṅkhārā? Puññābhisaṅkhāro, apuññābhisaṅkhāro, āneñjābhisaṅkhāro, kāyasaṅkhāro, vacīsaṅkhāro, cittasaṅkhāro)”.

 

번역: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란 무엇인가? 아뿐냐-비상카-라(apuññābhisaṅkhāra),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 아-넨자비상카-라(āneñjabhisaṅkhāra), 까-야상카-라(kāyasaṅkhāra), 와찌-상카-라(vacīsaṅkhāra), 찟따상카-라(cittasaṅkhāra)다.” 아뿐냐-비상카-라(apuññābhisaṅkhāra)가 아윗자-(avijjā)로 인한 것임은 아주 분명합니다. 하지만 왜 나머지 두 가지가 아윗자-(avijjā)로 인해 행해진다고 할까요?

 

  • *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는 물론 도덕적이고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이며 또한 루빠-와짜라 자-나(rupāvacara jhāna, 색계 선정)을 육성하는 것입니다.

  • * 아-넨자-비상카-라(āneñjābhisaṅkhāra)는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 (arupāvacara samāpatti)를 육성하는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 *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그 두 가지 유형의 좋은 상카-라를 할 때, 그것들은 여전히 아윗자-(avijjā)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재탄생 과정에 머무는 것의 위험을 아직 파악(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윗자-(avijjā)는 네 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 틸락카나(Tilakkhana), 및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모르는 것입니다.

  • * 몇 가지 예가 ‘와찌- 상카-라 ㅡ 상깝빠(의식적 생각)와 와-짜-(말)’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포스트를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6. 위의 분석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요약할 수 있습니다.

 

  • * 네 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 틸락카나(Tilakkhana), 및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행하는 모든 것은 아뿐냐-비상카-라 (apuññābhisaṅkhāra), 뿐냐-비상카-라 (puññābhisaṅkhāra), 아-넨자비상카-라 (āneñjabhisaṅkhāra)라는 세 가지 유형의 상카라(saṅkhāra)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 * 아뿐냐-비상카-라 (apuññābhisaṅkhāra)로 행해진 부도덕한 행위, 즉 빠-빠 깜마(pāpa kamma)는 아빠-야-(apāyā, 악처/사악처)에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로 행해진 도덕적인 행위, 즉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인간, 데와(Deva, 천신),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upāvacara Brahma, 색계 범천) 영역에 태어나게 합니다. 아-넨자 아비상카-라(āneñja abhisaṅkhāra)로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 (arupāvacara samāpatti)를 육성한 자들은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arupāvacara Brahma, 무색계 범천) 영역에 태어납니다.

  • * 그 모든 태어남은 죽음으로 끝납니다. 그 어느 것도 괴로움/고통의 소멸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 * 그것이 그 세 가지 유형의 상카-라(saṅkhāra)는 모두 아윗자-(avijjā)로 행해진다는 이유입니다!

  • * 그렇다면, 어떤 유형의 상카-라(saṅkhāra)가 닙바-나(Nibbāna, 닙바-나)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뿐냐 깜마와 꾸살라 깜마 사이의 차이

 

7.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아로바(alobha), 아도사(adosa), 아모하(amoha)의 세간 버전으로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로 행해진 ‘선한 행위’입니다. 그 같은 행위가 네 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 틸락카나(Tilakkhana), 및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대한 이해로 행해진다면 꾸살라 깜마(kusala kamma)일 것입니다.

 

  • * 뿐냐 깜마(puñña kamma)가 ‘선처’에 재탄생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반면에,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는 닙바-나(Nibbāna, 열반)로 이어집니다.

  • * 따라서,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 과정(사이클)에서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행해지는 반면에,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는 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 과정(사이클)에서 ‘꾸살라-물라 빳짜야- 상카-라(kusala-mula paccayā saṅkhāra)’로 행해집니다.

  • * 자세한 내용은 ‘아꾸살라ㅡ물-라 웁빳띠 빠띳짜 사뭅빠-다’ 포스트와 ‘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것이 뿐냐 깜마(puñña kamma)와 꾸살라 깜마(kusala kamma) 간의 차이를 간략히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꾸살라와 아꾸살라 깜마, 뿐냐와 빠-빠 깜마’ 포스트를 읽어보아야 합니다. 그 차이점을 보는(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뿐냐 깜마는 ‘닛짜 특성’이라는 잘못된 견해로 생긴다

 

8. 이것은 이해해야 할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부처님이 출현하시지 않으면,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소유함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타고난 관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라면서 그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어른이 되면서 기술을 배우고, 좋은 일자리를 구하고, 선호하는 사람과 결혼해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부처님이 출현하시지 않으면, 그 이상의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 * 어떤 사람들은 특히 나이가 들면 죽음 후에 어떻게 될지 걱정합니다. 세계의 주요 종교에서는 영원한 창조주가 이 세상을 창조했으며 사람이 죽을 때 ‘그에게로’ 가거나 ‘그와 합해’져 영원히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 * 물론, 그런 창조주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 창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겠다고 약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설에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심각한 어떤 부도덕한 행위라 할지라도 기도만 하면 용서될 수 있습니다!

  • * 그에 비해, 붓다 담마는 완전한 세계관입니다. 붓다 담마는 신앙에 기초한 종교가 아닙니다. 붓다 담마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도만 하거나 부처님을 충실히 따르겠다고 맹세하는 것만으로는 닙바-나(Nibbāna, 열반)에 이를 수 없습니다. 괴로움(고통)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부처님의 세계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고, 그러면 미래의 괴로움(고통)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지가 명확해질 것입니다. ‘붓다 담마(불교)는 종교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아닛짜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9. 거기서 옆길로 샜지만, 요점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 가지 범주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은 삶이 죽음과 함께 끝나며 삶이 지속되는 동안 ‘삶을 즐기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주요 종교에 속한 사람들은 창조주를 믿으며 창조주가 자신들을 사후에 행복하고 영원한 삶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 * 따라서, 어느 쪽이든 ‘닛짜 특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세히 살펴보기조차 꺼려합니다. [살펴 보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닛짜 특성이 있다고 알고 있으므로] 영화를 보고, 파티에 가거나, 단지 가족/친구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는 등으로 많이 즐길 수 있는데, 누가 그렇게 많은 시간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살펴보는데] 보내려고 하겠습니까?

  • * 그러나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을 공부하려고 노력하면, 그것은 인과 원리에 기반한 완전히 자기일관적인 세계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은 물질적 현상만을 다루기 때문에 [붓다 담마는] 현대 과학보다 더 심오합니다. 그것이 과학은 의식의 문제에 대해 어떤 진전도 이룰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담마와 과학’ 섹션의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 시리즈에서 자세히 논의했습니다.

  • * 위 논의로부터, ‘아닛짜(anicca)’를 ‘무상(impermanence)’으로 번역하는 것은 빗나간 것임이 분명해야 합니다! 설명했듯이, ‘아닛짜(anicca)는 본질적으로 ‘잇짜/잇차(icca/iccha)’ 및 ‘우빠-다-나(upādāna)’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닛짜’ 세계관은 아윗자-로 상카-라의 생성으로 이어진다

 

10. 우리는 단순히 아윗자-(avijjā)로 행위하기 시작하고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PS) 과정을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PS 과정은 여섯 가지 감각 입력(눈, 귀, 코, 혀, 몸, 마음) 중 하나를 통해 마음에 들어오는 아-람마라(ārammaṇa, 대상 / 생각 대상)로 시작합니다.

 

  • * 그 아-람마나(ārammaṇa, 대상)가 ‘마음을 기쁘게(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에 들러붙고 그것을 더 즐기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PS 과정은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소(salāyatana paccayā phasso)에서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눈을 통해 ‘마음을 즐겁게 하는 루빠(rupa)’를 본다면, ‘활성화’되는 것은 짝카-야따나(cakkhāyatana)고 이 단계는 실제로 ‘살라-야따나 빳짜야- 삼팟사(salāyatana paccayā samphassa (san + phassa)’입니다. 물론,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삼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보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 * 즉시 마음은 ‘삼팟사 빳짜야- 삼팟사-자-웨다나-(samphassa paccayā samphassa-jā-vedanā)’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이것은 보통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edanā)’라고 합니다. 이 ‘삼팟사-자-웨다나-(samphassa-jā-vedanā)’는 좋아함/갈망(잇짜/잇차, icca/iccha)로 들러붙음으로 인해 일어나는 ‘마음이 만든 웨다나-(mind-made vedanā)’입니다.

  • * 더 자세한 내용은 ‘팟사와 삼팟사 사이의 차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여기서 결정적 포인트는 PS 사이클은 우리가 탐함, 성냄, 그리고 네 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와 띨락카나(Tilakkhana)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대한 무지에 기초한 좋아함/갈망 (icca/iccha, 잇짜/잇차)로 아-람마나(ārammaṇa, 대상)에 들러붙을 때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괴로움/고통 ㅡ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함(바라지 않는 것을 얻음)

 

11. 여러 차례 논의했듯이,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 ‘Dhammacakkappavattana Sutta, SN 56.11’ )의 한 구절인 “삣창 나 라바띠 땀삐 둑캉-(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āṃ)”은 “자신이 좋아하는/갈망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괴로움/고통이다”라는 의미입니다.

 

  • * 평범한 의미에서도 그것에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서 승진합니다. 그래서 결과는 행복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이르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소개-2 ㅡ 괴로움의 세가지 범주’ 포스트에서 논의한 ‘상카-라 둑카(saṅkhāra-dukkha)’입니다. 그 ‘상카-라 둑카(saṅkhāra dukkha)’는 호흡을 포함한 우리의 모든 활동에 있습니다. 우리는 호흡에 익숙하기 때문에 호흡이 힘들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천식 환자는 그것이 얼마나 힘들 수 있는지 압니다.

  • * 위의 간결한 진술은 위 #3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것처럼 재탄생 과정의 더 깊은 레벨에서 사실입니다.

 

12. 우리는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건강과 부를 가진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더 높은 레벨의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기 위해 데와(Deva, 천신)로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나(선정)의 즐거움’이 있는 브라흐마(Brahma, 범천) 영역에 태어날 수 있도록 자-나(jhāna, 선정)를 육성합니다.

 

  • * 그러나 우리가 미래에 재탄생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잇짜/잇차, icca/iccha) 실현되지 않습니다. 세상은 ‘아닛짜(anicca) 특성’으로 있습니다.

  • * 아닛짜(anicca) 특성은 자연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둑카(dukkha)로 이어집니다. 이것을 “야드 아닛짱둑캉(yad aniccaṃ taṃ dukkha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다음 포스트에서 다루겠습니다.

 

퓨어담마 트위터 계정

 

13. 웹사이트의 트위터(Twitter) 계정: puredhamma (@puredhamma1) / Twitter

 

  • * 트위터 핸들(Twitter handle): puredhamma1

  • * 신규 포스트나 재작성 포스트를 트위터로 알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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