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팟사와 삼팟사 사이의 차이
원문 : Paṭicca Samuppāda 섹션의 ‘Difference between Phassa and Samphassa’ 포스트
- 2018년 11월 6일 개정; 2019년 6월 2일 개정; 2021년 4월 14일 재작성
팟사와 삼팟사 ㅡ 잘못된 번역
1.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연기)에 대한 대부분의 현재 번역에서는 팟사(phassa)와 삼팟사(samphassa) 사이의 구별이 없습니다. 두 낱말은 많은 영어 번역에서 서로 구별없이 ‘contact(접촉)’으로 번역됩니다. 예를 들어, 차착까 숫따( ‘Chachakka Sutta, MN 148’)와 거기에 있는 영어 번역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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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아래 내용과 같이, ‘삼팟사(samphassa)’는 ‘팟사(phassa)’와는 의미가 매우 다르며, 외부 감각 경험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 반응이 어떻게 우리의 ‘윤회 습관(samsāric habit)’ 또는 ‘가띠(gati)’를 기초로 하여 일어나는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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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사(phassa)’와 ‘삼팟사(samphassa)’를 구분함으로써,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 MN 148’)와 같은 숫따-(suttā)에서 그 진정한 의미가 명확해집니다.
팟사는 모든 찟따에 있다
2. 우리가 보고 듣는 등으로 감각할 때, 감각 입력을 인식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모든 찟따와 함께 일어나는 7가지 쩨따시까(cetasika, 정신 요소)가 있으며, 팟사(phassa)와 웨다나-(vedanā)는 그 중 2가지입니다. 우리는 팟사(phassa, 접촉) 쩨따시까 없이는 감각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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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외부 대상의 그 이미지와 접촉할 때, 찟따(citta)가 일어나고, 그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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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찟따(citta)와 함께 일어나는 7가지 보편 정신 요소 중의 일부가 대상을 즉시 식별합니다. 이것들은 웨다나-(vedanā)와 산냐-(saññā)를 포함합니다. 그것들 둘 다 보편 쩨따시까(universal cetasik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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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팟사(samphassa)가 일어나면, 추가적인 웨다나-(vedanā)가 있는데, 그것을 삼팟사ㅡ자-ㅡ웨다나-(samphassa-jā-vedanā)라고 합니다.
삼팟사 ㅡ 그것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3. 보통 사람은 감각 입력의 어떤 것에 대해 좋아함이나 싫어함을 형성합니다(그러나 모든 것에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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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함이나 싫어함이 형성되면, 그 감각 접촉은 ‘산 팟사(san phassa, ‘san’ + ‘phassa’)’입니다. 여기서, ‘산(san)’은 오염(번뇌)(탐함, 성냄, 미혹함)입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것은 ‘삼팟사(samphassa)’로 운이 맞추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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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결합 효과(빠알리 산디, Pāli sandhi)’ 규칙은 많은 ‘산(san)’ [관련] 낱말이 ‘m’음으로 발음되는 낱말이 되게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산(san)’+‘마-(mā)’는 ‘삼마-(sammā)’로 되었습니다. 같은 식으로, ‘산(san)’+’윳따(yutta)’는 ‘상윳따(samyutta)’로, ‘산(san)’+’바와(bhava)’는 ‘삼바와(sambhava)’로, ‘산(san)’+’사-라(sāra)’는 ‘상사-라(samsāra)’로 되었습니다. List of “San” Words and Other Pāli Roots 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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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어떤 사람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몸 접촉할 때, 그 감각 경험에 대해 어떤 좋아함이나 싫어함이 있는지 여부는 그 사람, 더 구체적으로 그 사람의 ‘가띠(gati)(습관/성격)’에 달려 있습니다.
삼팟사의 예
4. ‘삼팟사(samphassa)’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특별한 관계를 맺거나 우빠-다나(upādana, 좋아하는 것을 끌어당겨 가까이 유지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밀쳐내어 멀리 유지하는 것) 상태에 있는 세상 사람/사물과의 연결 관계를 살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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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에게 가장 나쁜 적을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 X를 생각하기만 하면 불쾌한 느낌이 생깁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가족은 그 사람에 대해 사랑스러운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이 경우, 여러분과 (예를 들어) X의 자녀는 X에 대해 생각하고, 보고, 들을 때, 서로 매우 다른 ‘삼팟사(samphassa)’를 생성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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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나 버스를 타고 여행하면서 창밖을 내다 볼 때, 여러분은 무수히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지만, 그것들을 그냥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팟사(phassa)’입니다. 하지만 이제 아름다운 집을 보게 되면, 그것은 여러분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여러분은 뒤 돌아서까지 다시 한 번 잘 살펴보며, 그 같은 집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을지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삼팟사(samphassa)’입니다.
5. 이제 ‘귀중한’ 것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삼팟사(samphassa)’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누군가 아버지로부터 귀중한 보석을 물려 받았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는 그것을 보거나 생각할 때마다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또한 그것을 잃어버릴까 봐 걱정하기 때문에 그것이 부담이 됩니다. 그는 그것을 금고에 보관하고 있으며 단지 그 보석을 지키기 위해 집에 도난 경보기를 설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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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어느날 그가 감정사에게 물어 그 보석을 감정하였는데, 그것이 보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는 처음에는 그것을 믿지도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이 참으로 무가치하다는 것이 서서히 납득이 되면 그것에 무관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더 이상 금고에 보관하지 않고 혐오감에 사로잡혀 버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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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그는 한때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했던 동일한 대상에 대해 중립적이거나 혐오스러운 생각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보석’에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이전과 같은 대상입니다. 달라진 것은 그 대상의 가치에 대한 그의 인식입니다. 그는 이전에는 그 대상을 생각하거나 볼 때 ‘삼팟사(samphassa)’를 생성한 반면, 이제는 단지 팟사(phassa)(중립적 느낌)를 생성하거나 완전히 반대되는 혐오감으로 ‘삼팟사(samphassa)’를 생성 할 수도 있습니다.
팟사는 순식간에 삼팟사로 변할 수 있다
6.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ero)께서 말씀하신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예는 ‘팟사(phassa)’에서 ‘삼팟사(samphassa)’로 전환이 어떻게 매우 빠르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다음 일화는 여러 해 전에 스리랑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아들이 한 살도 다 지나지 않았을 때 그의 어머니는 해외로 가야 했습니다. 그 여성(어머니)은 여러 해 동안 해외에 있다가 아들을 만나러 돌아 왔습니다. 분명히, 그 여성은 이제 십대가 된 소년의 어떤 사진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여성이 집에 도착했을 때, 그 소년이 이웃에 갔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도중에 그 여성은 어떤 십대와 부딪쳤습니다. 그 십대는 사과를 하고 그 어머니는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길거리에 있던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들을 못 알아 보겠습니까? 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지금까지 줄곧 [아들로부터] 멀어지며 걸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여성은 “아, 내 아들입니까?”라고 하며, 곧바로 뒤돌아가 그 소년을 껴안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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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성은 그 소년이 부딪치고 사과했을 때 그 소년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그 소년은 그 여성에게는 단지 어떤 십대였습니다. 그 때 ‘보는 것’에는 팟사(phassa)가 수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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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누군가 그 여성의 아들이라고 지적해 주었을 때, 그 소년에 대한 그 여성의 인식은 즉시 크게 도약했습니다. 이제 그 여성은 완전히 새로운 세트의 ‘정신적 짐’으로 동일한 소년을 보게 됩니다. 이제 그 소년은 그 여성에게 단지 십대가 아니라 아들이며, 들러붙음이 수반되어 있습니다. 이제 그 여성이 그 소년을 볼 때, 삼팟사(samphassa)가 수반됩니다.
7. 이제 우리는 삼팟사(samphassa)가 어떻게 강화된 웨-다나-(vēdanā, 느낌)로 이어지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 즉 ‘삼팟사(samphassa)로 인해 일어나는 웨-다나-(vēdanā)’라고 합니다. 이 ‘마음이 만든 오염된 웨-다나-(mind-made defiled vēdanā)’는 위 #2에서 언급된 보편 웨-다나-(universal vēdanā)와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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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성은 그 소년이 부딪쳐 사과를 했을 때 중립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어떤 짜증이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여성의 느낌은 즉시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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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더 나아가, 만약 그 십대가 몇 분 후에 차에 치인다면, 그 기쁨은 즉시 슬픔으로 바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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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다른 유형의 웨-다나-(vēdanā)들은 주어진 대상, 즉 이 경우에는 소년에 대한 들러붙음의 유형과 레벨을 기반으로 일어납니다.
삼팟사 ㅡ 가띠와 관계
8. ‘삼팟사(samphassa)’는 각자의 가띠(gati)/습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그 가띠/습관은 현생에서 우리가 행하는 것에 의해 그 일부가 강화되거나 약화되지만, 그 대부분은 전생에서 유래합니다. 우리는 현생에서 새로운 ‘가띠’를 형성하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가띠(gati)는 ‘Thailand’를 발음하는 것과 같이 ‘gathi’로 발음되는 것에 유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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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드레스를 보고 있는 젊은 여성은 그것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적을 보는 또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을 싫어할 것입니다. 십대는 노래를 듣고 그것을 좋아할 수 있는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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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산(san)으로 접촉’(삼팟사)은 즉각적으로 일어납니다. 그 초기 삼팟사(samphassa)는 순전히 우리의 가띠(gati)를 기초로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 초기 반응에 기초한 행위(행동)는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에, 그래도 우리는 말이나 신체 행동을 통제할 시간이 있습니다. 나쁜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어떤 말이나 신체 행동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띠빳타-나(satipatthāna) 명상’의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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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이트에는 가띠(gati)를 다룬 많은 포스트들이 있는데, 근본 레벨에서, 아-나빠-나(Ānapāna)와 사띠빳타-나(Satipatthāna) 명상은 모두 나쁜 ‘가띠’를 제거하고 좋은 ‘가띠’를 기르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9] 아-나-빠-나사띠의 핵심 ㅡ 습관과 성향(가띠)을 바꾸는 방법’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아라한은 팟사는 가지지만 삼팟사는 가지지 않는다
9. 이제, 아라한 성자가 비슷한 것을 보거나 들을 때(팟사/접촉이 일어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라한 성자도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이 그 동일한 대상을 보거나 들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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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아라한 성자는 그것에 [정신적으로] 들러붙거나 그것을 거부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삼팟사(samphassa)가 없습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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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 말하면, 아라한 성자는 어떤 편견, 즉 어떤 삼팟사(samphassa)도 없이 보고 듣는 등으로 감각합니다. 아라한도 웨-다나-(vēdanā)를 생성하지만, ‘삼팟사(samphassa)로 인한 웨-다나-(vēdanā)’를 생성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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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 성자는 갈망(아-사와, āsava)과 밀접하게 관련된 모든 그런 오염된 ‘가띠(gati)’를 제거했습니다. 아라한 성자는 모든 아-사와(āsava)를 제거했는데, 이것이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에서 아-사왁카야(āsavakkhaya)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명확하지 않을 수 있는 전문적인 세부 사항입니다. 그러나 모르더라도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10. 우리는 이제 ‘팟사(phassa)’와 ‘삼팟사(samphassa)’ 사이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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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Arahant) 성자의 경우에는, 외부 감각 입력과의 팟사(phassa), 즉 ‘단순한 접촉’만 있습니다. 따라서 아라한 성자도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이 그 동일한 대상에 대해 보거나 듣거나 냄새 맡거나 맛보거나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아라한 성자는 그 감각 경험에 대해 [정신적으로] 들러붙거나 거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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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붓다께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식별했습니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시자인 아난다 존자(Ven. Ananda)를 [다른 사람과 다르게] 특별히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붓다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데와닷따(Devadatta), 즉 자신을 죽이려고 한 데와닷따와 특별히 다르게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붓다께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도 왕을 대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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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왕들이 공양한 가장 맛있는 음식도 드셨고, 가난한 사람들이 공양한 빈약한 식사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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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모든 감각 접촉에서, 그것은 단지 팟사(phassa)였으며, 삼팟사(samphassa)가 아니었습니다.
삼팟사는 ‘삼팟사ㅡ자-ㅡ웨-다나-’로 이어진다
11.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빠띳자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ēdanā)’ 단계가 실제로는 ‘삼팟사 빳짜야-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paccayā samphassa jā vēdanā)’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 과정은 아라한에게는 작동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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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팟사(samphassa)가 어떻게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일어나는 웨-다나-(느낌)’와 감각 사건에서 '위빠-까 웨-다나-'와 '삼팟사 자- 웨-다나-' 포스트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