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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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사와 삼팟사 사이의 차이

 

원문 : Paṭicca Samuppāda 섹션의 ‘Difference between Phassa and Samphassa’ 포스트

 

삼팟사(samphassa)는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의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ēdanā)’에 있는 팟사(phassa)에 대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 2018년 11월 6일 개정; 2019년 6월 2일 개정; 2021년 4월 14일 재작성; 2023년 5월 7일 재작성

 

영문 도표 다운로드/인쇄: 12. Phassa and Samphassa

 

팟사와 삼팟사 ㅡ 잘못된 번역

 

1.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연기)에 대한 대부분의 현재 번역에서는 팟사(phassa)와 삼팟사(samphassa) 사이의 구별이 없습니다. 두 낱말은 많은 영어 번역에서 서로 구별없이 ‘contact(접촉)’으로 번역됩니다.

 

  • * 예를 들어, ‘Paṭiccasamuppāda Sutta (SN 12.1)’는 빠띳짜 사뭅빠-다의 웃데사(uddesa, 발화 발언) 버전을 “saḷāyatanapaccayā phasso.”로 제공합니다. 그것의 닛데사(niddesa, 간단한 설명) 버전은 ‘Vibhaṅga Sutta (SN 12.2)’에서 “cakkhusamphasso, sotasamphasso, ghānasamphasso, jivhāsamphasso, kāyasamphasso, manosamphasso.”로 나타납니다.

  • * 그러나, 위 링크의 번역에서는 구별이 없습니다. 모두 ‘contact(접촉)’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 * 아래 내용과 같이, ‘삼팟사(samphassa)’는 ‘팟사(phassa)’와는 의미가 매우 다르며, 외부 감각 경험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 반응이 어떻게 우리의 ‘윤회 습관(samsāric habit)’ 또는 ‘가띠(gati)’를 기초로 하여 일어나는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팟사는 모든 찟따에 있다

 

2. 우리가 보고 듣는 등으로 감각할 때, 찟따가 일어나 감각 입력을 인식합니다. 7가지 쩨따시까(cetasika, 정신 요소)가 모든 찟따와 함께 일어나며, 팟사(phassa)와 웨다나-(vedanā)는 그 중 2가지입니다. 우리는 팟사(phassa, 접촉) 쩨따시까 없이는 감각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 * 마음이 외부 대상의 그 이미지와 접촉할 때, 일련의 찟따(citta)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 접촉으로 인한 무수한 그런 찟따의 전체 효과만 경험합니다. 

  • * 찟따(citta)와 함께 일어나는 7가지 보편 정신 요소 중의 일부가 대상을 즉시 식별합니다. 이것들은 웨다나-(vedanā)와 산냐-(saññā)를 포함합니다. 그것들 둘 다 보편 쩨따시까(universal cetasika)입니다. 

  • * 아래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삼팟사(samphassa)가 일어나면, ‘삼팟사ㅡ자-ㅡ웨다나-(samphassa-jā-vedanā)’라고 하는 추가적인, 마음이 만든 웨다나-(vedanā)가 있습니다.

 

삼팟사 ㅡ 그것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3.  보통 사람은 감각 입력의 어떤 것에 대해 좋아함이나 싫어함을 형성합니다(그러나 모든 것에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 * 좋아함이나 싫어함이 형성되면, 그 감각 접촉은 ‘산 팟사(san phassa, ‘san’ + ‘phassa’)’입니다. 여기서, ‘산(san)’은 오염(번뇌)(탐함, 성냄, 미혹함)입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의 의미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것은 ‘삼팟사(samphassa)’로 운이 맞추어집니다.

  • * 이 ‘결합 효과(빠알리 산디, Pāli sandhi)’ 규칙은 많은 ‘산(saṅ)’ [관련] 낱말이 ‘m’음으로 발음되는 낱말이 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산(saṅ)’+‘마-(mā)’는 ‘삼마-(sammā)’로 됩니다. 같은 식으로, ‘산(saṅ)’+‘윳따(yutta)’는 ‘상윳따(samyutta)’로, ‘산(saṅ)’+‘바와(bhava)’는 ‘삼바와(sambhava)’로, ‘산(saṅ)’+‘사-라(sāra)’는 ‘상사-라(samsāra)’로 됩니다. List of “San” Words and Other Pāli Roots 을 참조하세요. 영어 문헌에서, 복합 낱말 중의 산(saṅ)은 San/Saṅ/Sañ/Sam으로 쓰여질 수 있습니다.

  • * 따라서, 어떤 사람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몸 접촉할 때, 그 감각 경험에 대해 어떤 좋아함이나 싫어함이 있는지 여부는 그 사람, 더 구체적으로 그 사람의 ‘가띠(gati)(습관/성격)’에 달려 있습니다.

 

삼팟사의 예

 

4. ‘삼팟사(samphassa)’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특별한 관계를 맺거나 우빠-다나(upādana), 즉 좋아하는 것을 끌어당겨 가까이 유지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밀쳐내어 멀리 유지하는 상태에 있는 세상 사람/사물과의 연결 관계를 살펴 보겠습니다.

 

  • * 여러분에게 가장 나쁜 적을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 X를 생각하기만 하면 불쾌한 느낌이 생깁니다. 하지만 X의 가족은 X에 대해 사랑스러운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이 경우, 여러분과 (예를 들어) X의 자녀는 X에 대해 생각하고, 보고, 들을 때, 서로 매우 다른 ‘삼팟사(samphassa)’를 생성할 것입니다.

  • * 자동차나 버스를 타고 여행하면서 창밖을 내다 볼 때, 여러분은 무수히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지만, 그것들을 그냥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팟사(phassa)’입니다. 하지만 이제 아름다운 집을 보게 되면, 그것은 여러분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여러분은 뒤 돌아서까지 다시 한 번 잘 살펴보며, 그 같은 집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을지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삼팟사(samphassa)’입니다.

 

5. 결정적인 점은 ‘귀중한’ 것에 대한 인식이 ‘삼팟사(samphassa)’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아버지로부터 귀중한 보석을 물려 받았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는 그것을 보거나 생각할 때마다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또한 그것을 잃어버릴까 봐 걱정하기 때문에 그것이 부담이 됩니다. 그는 그것을 금고에 보관하고 있으며 단지 그 보석을 지키기 위해 집에 도난 경보기를 설치합니다.

 

  • * 어느날 그가 감정사에게 물어 그 보석을 감정하였는데, 그것이 보석이 아니라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는 처음에는 그것을 믿지도 않을 수 있지만, 일단 확인되면, 그것에 무관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더 이상 금고에 보관하지 않고 혐오감에 사로잡혀 버릴 수도 있습니다.

  • * 이제 그는 한때 소중하게 생각했던 동일한 대상에 대해 중립적이거나 혐오스러운 생각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보석’에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이전과 같은 대상입니다. 달라진 것은 그 대상의 가치에 대한 그의 인식입니다. 그는 이전에는 그 대상을 생각하거나 볼 때 ‘삼팟사(samphassa)’를 생성한 반면, 이제는 단지 팟사(phassa)(중립적 느낌)를 생성하거나 완전히 반대되는 혐오감으로 ‘삼팟사(samphassa)’를 생성 할 수도 있습니다.

 

팟사/삼팟사와 쩨따나-/산쩨따나-

 

6. 팟사(phassa)와 쩨따나-(cetanā)는 모든 찟따(citta)와 함께 일어나며 모두 보편 쩨따시까(universal cetasika)입니다. 찟따 위티(citta vithi)는 ‘우세하지 않은 찟따(undominated citta)’로 시작하지만, 마음이 아-람마나(ārammaṇa)에 들러붙는다면 오염됩니다. 우리는 개별 찟따들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일어나는 무수한 찟따의 축적 효과만 경험합니다. 찟따가 오염되면서, 아소바나(asobhana, 오염된) 쩨따시까가 쩨따나-(cetanā) 쩨따시까에 의해 통합되어 산쩨따나-(sañcetanā)로 바뀝니다. 그것은 삼팟사(samphassa)로 이어지는 팟사(phassa)와 함께 동시에 일어납니다. 

 

  • * 의도가 로바, 도사, 또는 모하(아윗자-)를 수반하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어떤 것을 행하는 쩨따나-(cetanā) 또는 ‘의도’일 뿐입니다. 여기서, 깜마는 업적 결과가 없는 단지 행위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부엌에 가서 물 한 컵을 마신다면, 그것은 중립 쩨따나-(cetanā)로 행하는 것이며, 그 의도는 갈증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산쩨따나-(sañcetanā)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오염된 접촉, 즉 삼팟사(samphassa)도 없습니다.

  • * 그러나, 대부분의 모든 영어 번역에서는 그 매우 중요한 구별을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Sañcetanā Sutta (SN 27.7)’에서 산쩨따나-(sañcetanā)는 ‘의도(intention)’로 번역되어 있고, ‘Samphassa Sutta (SN 18.4)’에서 삼팟사(samphassa)는 ‘접촉(contact)’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번역자는 팟사/삼팟사(Phassa/Samphassa)와 쩨따나/산쩨따나-(Cetanā/Sañcetanā)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 산(sañ), 즉 로바, 도사, 모하(아윗자-)를 수반하면, 쩨따나-(cetanā)산쩨따나-(sañcetanā, sañ + cetanā)가 됩니다(그리고, 팟사(phassa)는 삼팟사(Samphassa)가 됩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산 - 결정적인 빠알리 어원(San – A Critical Pāli Root)’ 서브섹션과, ‘깜마의 세부사항 ㅡ 의도, 영향받는 자, 깜마 빠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팟사는 순식간에 삼팟사로 변할 수 있다

 

7.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ero)께서  말씀하신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예는 ‘팟사(phassa)’에서 ‘삼팟사(samphassa)’로 전환이 어떻게 매우 빠르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다음 일화는 오래 전에 스리랑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아들이 한 살도 다 지나지 않았을 때 그의 어머니는 해외로 가야 했습니다. 그 여성(어머니)은 여러 해 동안 해외에 있다가 아들을 만나러 돌아 왔습니다. 그 여성은 이제 십대가 된 소년의 어떤 사진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여성이 집에 도착했을 때, 그 소년이 이웃에 갔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도중에 그 여성은 어떤 십대와 부딪쳤습니다. 그 여성은 주의깊지 못한 것에 대해 십대에게 훈계를 하고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길거리에 있던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들을 못 알아 보겠습니까? 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지금까지 줄곧 [아들로부터] 멀어지며 걸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여성은 “아, 내 아들입니까?”라고 하며, 곧바로 뒤돌아가 그 소년을 껴안았습니다.

 

  • * 그 여성은 그 소년이 부딪쳤을 때 그 소년을 보았고 그 소년으로 기분이 상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그 소년은 그 여성에게는 단지 어떤 십대였습니다. 그 때  ‘보는 것’에는 팟사(phassa)가 수반되었습니다.

  • * 그러나 누군가 그 여성의 아들이라고 지적해 주었을 때, 그 소년에 대한 그 여성의 인식은 즉시 크게 도약했습니다. 이제 그 여성은 새로운 세트의 ‘정신적 짐’으로 동일한 소년을 봅니다. 이제 그 소년은 그 여성에게 단지 십대가 아니라 아들이며, 들러붙음이 수반되어 있습니다. 이제 그 여성이 그 소년을 볼 때, 삼팟사(samphassa)가 수반됩니다.

  • * 팟사(phassa)는 자연적인 감각 접촉인 반면에, 삼팟사(samphassa)는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8. 우리는 삼팟사(samphassa)가 어떻게 강화된 웨-다나-(vēdanā, 느낌)로 이어지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 즉 ‘삼팟사(samphassa)로 인해 일어나는 웨-다나-(vēdanā)’라고 합니다. 이 ‘마음이 만든 오염된 웨-다나-(mind-made defiled vēdanā)’는 위 #2에서 논의된 것과 같은 보편 웨-다나-(universal vēdanā)와는 다릅니다.

 

  • * 그 여성은 그 소년이 부딪쳐 사과를 했을 때 중립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어떤 짜증이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여성의 느낌은 즉시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 * 좀 더 나아가, 만약 그 십대가 몇 분 후에 차에 치인다면, 그 기쁨은 즉시 슬픔으로 바뀔 것입니다.

  • * 이 다른 유형의 웨-다나-(vēdanā)들은 주어진 대상, 즉 이 경우에는 소년에 대한 들러붙음의 유형과 레벨을 기반으로 일어납니다.

 

삼팟사/산쩨따나- ㅡ 가띠와 관계

 

9.  ‘삼팟사(samphassa)’는 각자의 가띠(gati), 즉 습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그 가띠/습관은 현생에서 우리가 행하는 것에 의해 그 일부가 강화되거나 약화되지만, 그 대부분은 전생에서 유래합니다. 우리는 현생에서 새로운 ‘가띠’를 형성하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가띠(gati)는 ‘Thief’를 발음하는 것과 같이 ‘gathi’로 발음되는 것에 유의하세요. 

 

  • * 예를 들어, 드레스를 보고 있는 젊은 여성은 그것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적을 보는 또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을 싫어할 것입니다. 노래를 듣고, 십대는 그것을 좋아할/갈망할 수 있는 등입니다.

  • * 이 ‘산(saṅ)으로 접촉’(삼팟사)은 즉각적으로 일어납니다. 그 초기 삼팟사(samphassa)는 순전히 우리의 가띠(gati)를 기초로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 초기 반응에 기초한 행위(행동)는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에, 그래도 우리는 말이나 신체 행동을 통제할 시간이 있습니다. 나쁜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말이나 신체 행동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띠빳타-나(satipatthāna) 명상’ 또는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의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입니다.

  • * 이 사이트에는 가띠(gati)를 다룬 많은 포스트들이 있는데, 근본 레벨에서, 아-나빠-나(Ānapāna)와 사띠빳타-나(Satipatthāna) 명상은 모두 나쁜 ‘가띠’를 제거하고 좋은 ‘가띠’를 기르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9] 아-나-빠-나사띠의 핵심 ㅡ 습관과 성향(가띠)을 바꾸는 방법’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아라한은 팟사를 가지지만 삼팟사는 가지지 않는다 

 

10. 이제, 아라한 성자가 비슷한 것을 보거나 들을 때(팟사/접촉이 일어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라한 성자도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이 그 동일한 대상을 보거나 들을 것입니다.

 

  • * 그러나, 아라한 성자는 그것에 [정신적으로] 들러붙거나 그것을 거부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삼팟사(samphassa)가 없습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도 없습니다.

  • * 달리 말하면, 아라한 성자는 어떤 편견, 즉 어떤 삼팟사(samphassa)도 없이 보고 듣는 등으로 감각합니다. 아라한도 웨-다나-(vēdanā)를 생성하지만, ‘삼팟사(samphassa)로 인한 웨-다나-(vēdanā)’를 생성하지는 않습니다.

  • * 아라한 성자는 갈망(아-사와, āsava)과 밀접하게 관련된 모든 그런 오염된 ‘가띠(gati)’를 제거했습니다. 아라한 성자는 모든 아-사와(āsava)를 제거했는데, 이것이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에서 아-사왁카야(āsavakkhaya)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명확하지 않을 수 있는 전문적인 세부 사항인데, 아직 불분명하더라도 염려하지 마세요.

  • * 삼팟사는 의지력으로 제거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막가팔라의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함에 따라 점차적으로 사라집니다(‘산딧티까’가 됨에 의해 ‘산’을 이해함과 함께 시작됨). 

 

삼팟사는 삼팟사ㅡ자-ㅡ웨-다나-로 이어진다

 

11.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의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ēdanā)’ 단계는 ‘웃데사(uddesa, 발화 발언) 버전’이고 ‘삼팟사 빳짜야- 삼팟사ㅡ자-ㅡ웨-다나-(samphassa paccayā samphassaㅡjāㅡvēdanā)는 ‘닛데사(niddesa, 간단한 설명) 버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숫따 해석 -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나, 대부분의 영어 번역에서,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의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ēdanā)’는 “접촉은 느낌의 조건이다.”로 번역되어 있고(‘Paṭiccasamuppāda Sutta (SN 12.1)’ 참조), 바로 그 아래(표식 3.6)의 ‘팟사 니로다- 웨다나- 니로도(phassa nirodhā vedanā nirodho)’는 아라한과에 이른 후에 “접촉이 그칠때, 느낌이 그친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아라한이 느낌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확한 의미입니다! 그러나, 아라한 성자는 웨-다나-(vēdanā)를 갖지만,  삼팟사ㅡ자-ㅡ웨-다나- (samphassaㅡjāㅡvēdanā)는 갖지 않습니다.

  • * 아라한(Arahant) 성자에게는, 외부 감각 입력과의 팟사(phassa), 즉 ‘단순한 접촉’만 있습니다. 따라서 아라한 성자도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이 그 동일한 대상에 대해 보거나 듣거나 냄새 맡거나 맛보거나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아라한 성자는 그 감각 경험에 대해 [정신적으로] 들러붙거나 거부하지 않습니다.

  • * 필자는 번역자들이 핵심 구절의 웃데사 버전을 직역함으로써 많은 문제가 있음을 논의했습니다. ‘방 안의 코끼리’ 섹션의 ‘첫 번째 코끼리: 띠삐따까에 대한 낱말별 번역(Word-for-Word Translation of the Tipiṭaka)’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삼팟사ㅡ자-ㅡ웨-다나-는 ‘산딧티까’가 될 때 사라지기 시작한다

 

12. 오염된 접촉(‘삼팟사’)(그리고 또한 오염된 의도, 즉 산쩨따나-)는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가 될 때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 * 그것은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띨락카나를 이해하기 시작하거나, ‘산(saṅ)을 보기’ 시작함, 즉 ‘산딧티까(sandiṭṭhika, san diṭṭhi)’가 되기 시작할 때, 일어납니다. 

  • * 새로운 섹션에 대한 모든 포스트는 ‘’ 섹션의 ‘도표로 본 불교(Buddhism – In Charts)’ 서브섹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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