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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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사와 삼팟사 사이의 차이

 

원문 : Paṭicca Samuppāda 섹션의 ‘Difference between Phassa and Samphassa’ 포스트

- 2018년 11월 6일 개정; 2019년 6월 2일 개정

 

1.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연기)에 대한 대부분의 현재 설명에서는 팟사(phassa)와 삼팟사(samphassa) 사이의 구별이 없습니다. 많은 영어 번역에서 두 낱말 모두 ‘contact(접촉)’으로 번역됩니다. 예를 들어, 차착까 숫따( ‘Chachakka Sutta, MN 148’)와 거기에 있는 영어 번역을 참조하세요.

 

  • * 그러나, 아래 내용과 같이, ‘삼팟사(samphassa)’는 ‘팟사(phassa)’와는 의미가 매우 다르며, 외부 감각 경험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 반응이 어떻게 우리의 ‘윤회 습관(samsāric habit)’ 또는 ‘가띠(gati)’를 기초로 하여 일어나는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 * ‘팟사(phassa)’와 ‘삼팟사(samphassa)’를 구분함으로써,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 MN 148’)와 같은 숫따-(suttā)에서 그 진정한 의미가 명확해집니다.

 

2. 우리 눈이 외부 대상과 접촉할 때, 그것은 ‘팟사(phasa)’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카메라가 사진을 찍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진은 뇌로 보내지고, 뇌는 그 ‘스냅샷(snapshot)’을 처리하여 마음으로 보냅니다. 그러면 마음은 이 ‘스냅샷(이미지)’과 ‘정신적 접촉’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팟사(phassa)’입니다. 그것은 ‘정신적 접촉’입니다.

 

  • * 마음이 외부 대상의 그 이미지와 접촉할 때, 찟따(citta)가 일어나고(실제로는 ‘찟따 위-티_citta vīthi’라고 하는 일련의 찟따이며, 이에 대해서는 ‘What is a Thought?’ 참조), 그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매우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그런 많은 찟따 위-티(citta vīthi)의 누적 효과(결과)이며, 이 누적 효과(결과)를 ‘생각’이라고 합니다.

  • * 찟따(citta)와 함께 일어나는 7가지 보편적 정신 요소 중의 일부가 대상을 즉시 식별합니다. 또한, 우리의 ‘가띠(gati)(성격/습관)를 기반으로 마음은 보여진 것에 대한 의견을 형성하고 기쁨이나 슬픔 같은 ‘추가적인 느낌’을 생성합니다.

  • * 예를 들어, 드레스를 보고 있는 젊은 여성은 그것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적을 보는 또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을 싫어할 것입니다. 십대는 노래를 듣고 그것을 좋아할 수 있는 등입니다.

  • * 이 ‘정신적 접촉’은 즉각적으로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제할 수 없으며, 그것은 순전히 우리의 ‘가띠(gati)’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러나 그 초기 반응에 기초한 행위는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에, 그래도 우리는 말이나 신체 행동을 통제할 시간이 있습니다. 나쁜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어떤 말이나 신체 행동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띠빳타-나(satipatthāna) 명상’의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입니다.

 

3. 이제, 아라한 성자가 비슷한 것을 보거나 들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라한 성자도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이 그 동일한 대상에 대해 보거나 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라한 성자는 그것에 [정신적으로] 들러붙거나 거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라한 성자는 그런 모든 윤회 습관, 즉 가띠(gati)를 제거했습니다.

 

  • * 아라한 성자는 갈망(아-사와, āsava)과 밀접하게 관련된 모든 오염된 ‘가띠(gati)’를 제거했습니다. 아라한 성자는 모든 아-사와(āsava)를 제거했는데, 이것이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에서 아사왁카야(āsavakkhaya)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분명할 수 있는 전문적인 세부 사항입니다. 그러나 모르더라도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 * 달리 말하면, 아라한 성자는 어떤 편견(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성향)도 추가됨이 없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듣습니다.

 

4. 우리는 이제 ‘팟사(phassa)’와 ‘삼팟사(samphassa)’ 사이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 * 아라한(Arahant) 성자의 경우에는, 외부 감각 입력과의 팟사(phassa), 즉 ‘단순한 접촉’만 있습니다. 따라서 아라한 성자도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이 그 동일한 대상에 대해 보거나 듣거나 냄새맡거나 맛보거나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아라한 성자는 그 감각 경험에 대해 [정신적으로] 들러붙거나 거부하지 않습니다.

  • * 예를 들어, 붓다께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식별했습니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시자인 아난다 존자(Ven. Ananda)를 특별히 좋아하는 생각이나, 자신을 죽이려고 한 데와닷따(Devadatta)를 미워하는 생각이 없으셨습니다. 붓다께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도 왕을 대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대하셨습니다.

  • * 붓다께서는 왕들이 공양한 가장 맛있는 음식도 선호함 없이 드셨고, 가난한 사람들이 공양하는 빈약한 식사도 선호함 없이 드셨습니다.

  • * 그 모든 감각 접촉에서, 그것은 단지 팟사(phassa)였으며, 삼팟사(samphassa)가 아니었습니다.

 

5. 반면에, 평범한 보통 사람은 감각 입력의 어떤 것에 대해 좋아함이나 싫어함을 형성할 것입니다(그러나 모든 것에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 * 좋아함이나 싫어함이 형성되면, 그 감각 접촉은 ‘산 팟사(san phassa, ‘san’ + ‘phassa’)’입니다. 여기서, ‘산(san)’은 우리가 축적하여 윤회 여정(samsāric journey)을 늘리는 것입니다.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의 의미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것은 ‘삼팟사(samphassa)’로 운이 맞추어집니다.

  • * 이 ‘결합 효과(빠알리 산디, Pāli sandhi)’ 규칙은 많은 ‘산(san)’ [관련] 낱말이 ‘m’음으로 발음되는 낱말이 되게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산(san)’+‘마-(mā)’는 ‘삼마-(sammā)’로 되었습니다. 같은 식으로, ‘산(san)’+’윳따(yutta)’는 ‘상윳따(samyutta)’로, ‘산(san)’+’바와(bhava)’는 ‘삼바와(sambhava)’로, ‘산(san)’+’사-라(sāra)’는 ‘상사-라(samsāra)’로 되었습니다. List of “San” Words and Other Pāli Roots 을 참조하세요.

  • * 따라서, 어떤 사람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몸 접촉할 때, 그 감각 경험에 대해 어떤 좋아함이나 싫어함이 있는지 여부는 그 사람, 더 구체적으로 그 사람의 ‘가띠(gati)’에 달려 있습니다.

 

6. 삼팟사(Samphassa)는 비록 어떤 것들은 우리가 이생에서 하는 것에 의해 강화되거나 약화될 수 있지만, 우리의 전생에서 비롯된 대부분의 가띠(gati) 또는 습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생에서 새로운 가띠(gati)를 형성하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 * 이 사이트에는 ‘가띠(gati)’에 대해 논의한 많은 포스트가 있으며, 아주 기본적인 레벨에서 ‘아-나빠-나(ānapāna)’와 ‘사띠빳타-나(satipatthāna)’ 명상은 모두 나쁜 ‘가띠(gati)’를 제거하고 좋은 ‘가띠(gati)’를 기르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9. Key to Ānāpānasati – How to Change Habits and Character (Gati)’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삼팟사(Samphassa)’는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이나 물질적인 것과 가지는 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사물에 대한 모든 종류의 감각 입력은 자동적으로 ‘삼팟사(samphassa)’를 생성합니다.

  • * 반면에, 아라한 성자는 사람/사물과의 모든 결합(결속)을 제거하였고, 따라서 단지 팟사(phassa)만 생성합니다.

 

7. ‘삼팟사(samphassa)’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특별한 관계를 맺거나 우빠-다나(upādana, 좋아하는 것을 끌어당겨 가까이 유지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밀쳐내어 멀리 유지하는 것) 상태에 있는 세상 사람/사물과의 연결 관계를 살펴 보겠습니다.

 

  • * 여러분에게 가장 나쁜 적을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 X를 생각하기만 하면 불쾌한 느낌이 생깁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가족은 그 사람에 대해 사랑스러운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이 경우, 여러분과 (예를 들어) X의 자녀는 X에 대해 생각하고, 보고, 들을 때, 서로 매우 다른 ‘삼팟사(samphassa)’를 생성했을 것입니다.

  • * 자동차나 버스를 타고 여행하면서 창밖을 내다 볼 때, 여러분은 무수히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지만, 그것들을 그냥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팟사(phassa)’입니다. 하지만 이제 아름다운 집을 보게 되면, 그것은 여러분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여러분은 뒤 돌아서까지 다시 한 번 잘 살펴보며, 그 같은 집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을지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삼팟사(samphassa)’입니다.

 

8. 우리의 윤회 습관(가띠, gati)은 ‘삼팟사(samphassa)’를 생성하는데 핵심 역할을 합니다.

 

  • * 어떤 사람들은 동물들을 괴롭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돈을 내고 닭싸움을 보러 갑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거부(반발)합니다. 그것들은 윤회 습관입니다. 그래서, 두 동물이 생명을 걸고 싸우는 광경은 어떤 사람에게는 즐거움으로 이어지고 다른 사람에게는 혐오로 이어집니다. 둘 다 ‘삼팟사(samphassa)’이지만 하나는 분명히 부도덕합니다. 다른 하나는 도덕적이지만 여전히 그 사람은 삼사-라(samsāra)에 묶여 있습니다. 이 후자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 *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멋진 옷, 보석류 등을 좋아합니다. 남성은 스포츠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남편이 하루종일 TV를 통해 스포츠를 볼 때, 아내는 그것에 어떤 관심도 없고 남편이 집안 여기저기에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들에 관심이 없는 것에 대해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 * 이것들과 무수히 많은 다른 것들은 우리의 윤회 습관에서 나옵니다.

 

9. 이제 ‘귀중한’ 것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삼팟사(samphassa)’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누군가 아버지로부터 귀중한 보석을 물려 받았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는 그것을 보거나 생각할 때마다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또한 그것을 잃어버릴까 봐 걱정하기 때문에 그것이 부담이 됩니다. 그는 그것을 금고에 보관하고 있으며 단지 그 보석을 지키기 위해 집에 도난 경보기를 설치했습니다.

 

  • * 이제, 어느날 그가 감정사에게 가서 그 보석을 감정하였는데, 그것이 실제로는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는 처음에는 그것을 믿지도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이 참으로 무가치하다는 것이 서서히 납득이 되면 그 보석에 무관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더 이상 금고에 보관하지 않고 혐오감에 사로잡혀 버릴 수도 있습니다.

  • * 이제 그는 한때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했던 동일한 대상에 대해 중립적이거나 혐오스러운 생각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보석’에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이전과 같은 대상입니다. 달라진 것은 그 대상의 가치에 대한 그의 인식입니다. 그는 이전에는 그 대상을 생각하거나 볼 때 ‘삼팟사(samphassa)’를 생성한 반면, 이제는 단지 팟사(phassa)(중립적 느낌)를 생성하거나 완전히 반대되는 혐오감으로 ‘삼팟사(samphassa)’를 생성 할 수도 있습니다.

 

10. 필자의 스승이신 테로 스님들 중의 한 분께서 말씀하신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예는 ‘팟사(phassa)’에서 ‘삼팟사(samphassa)’로, 또는 그 반대로 전환이 어떻게 매우 빠르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다음 일화는 여러 해 전에 스리랑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아들이 한 살도 다 지나지 않았을 때 그의 어머니는 해외로 가야 했습니다. 그 여성(어머니)은 여러 해 동안 해외에 있다가 아들을 만나러 돌아 왔습니다. 분명히, 그 여성은 이제 십대가 된 소년의 어떤 사진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여성이 집에 도착했을 때, 그 소년이 이웃에 갔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도중에 그 여성은 어떤 십대와 부딪쳤습니다. 그 십대는 사과를 하고 그 어머니는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길거리에 있던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들을 못 알아 보겠습니까? 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지금까지 줄곧 [아들로부터] 멀어지며 걸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여성은 “아, 내 아들입니까?”라고 하며, 곧바로 뒤돌아가 그 소년을 껴안았습니다.

 

  • * 그 여성은 그 소년이 부딪치고 사과했을 때 그 소년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그 소년은 그 여성에게는 단지 어떤 십대였습니다. 그 때  ‘보는 것’에는 팟사(phassa)가 수반되었습니다.

  • * 그러나 누군가 그 여성의 아들이라고 지적해 주었을 때, 그 소년에 대한 모든 인식은 즉시 크게 도약했습니다. 이제 그 여성은 완전히 새로운 세트의 ‘정신적 짐’으로 동일한 소년을 보게 됩니다. 이제 그 소년은 그 여성에게 단지 십대가 아니라 아들이며, 들러붙음이 수반되어 있습니다. 이제 그 여성이 그 소년을 볼 때, 삼팟사(samphassa)가 수반됩니다.

 

11. 이제 우리는 삼팟사(samphassa)가 어떻게 강화된 웨-다나-(vēdanā, 느낌)로 이어지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 즉 ‘삼팟사(samphassa)로 인해 일어나는 웨-다나-(vēdanā)’라고 합니다.

 

  • * 그 여성은 그 소년이 부딪쳐 사과를 했을 때 중립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어떤 짜증이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여성의 느낌은 즉시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 * 조금 더 나아가, 만약 그 십대가 몇 분 후에 차에 치인다면, 그 기쁨은 즉시 슬픔으로 바뀔 것입니다.

  • 이 모든 다른 유형의 웨-다나-(vēdanā)는 주어진 대상, 즉 이 경우에는 소년에 대한 들러붙음의 유형과 레벨을 기반으로 일어납니다.

 

12.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빠띳자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ēdanā)’ 단계가 실제로는 ‘삼팟사 빳짜야-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paccayā samphassa jā vēdanā)’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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