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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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지마- 빠띠빠다- ㅡ 이 세상에 대한 들러붙음을 포기하는 길

 

원문: Sutta Interpretation 섹션의 ‘Majjhimā Paṭipadā – Way to Relinquish Attachments to this World’ 포스트

- 2016년 1월 22 작성; 2020년 7월 19일 개정

 

이 두 번째 포스트를 보기 전에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ppavattana Sutta) (‘Dhamma Cakka Pavattana Sutta’라고도 함)에 대한 첫 번째 포스트인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 ㅡ 소개’ 포스트를 보세요.

 

1. 거의 모든 영어 번역에서 맛지마- 빠띠빠따-(majjhimā paṭipadā)는 ‘부처님의 중도(middle way of the Buddha)’라고 불립니다. 이것은 몸에 대한 극단적 감각적 즐거움(쾌락)과 극단적 어려움(고난)을 피하기만 하면 된다는 인상을 줍니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사실이지만 붓다께서는 더 깊은 것을 의미하셨습니다. 그런 소박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야 하지만, 감각적 즐거움(쾌락)에 대한 갈망의 위험함을 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 * 많은 빠알리 낱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평범한(세간적) 의미와 초월적인(출세간적, 로꿋따라) 의미입니다. 우리는 성스런 팔정도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붓다 담마에서 독특한 것은 무엇인가?’ 또는 ‘마하- 짯따-리-사까 숫따(대 40가지에 대한 법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숫따 해석 ㅡ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 포스트에서 설명했듯이, 이것은 핵심 빠알리 낱말의 출세간적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아리야(Ariya, 성자)들이 거의 없는 시기에 최소한 띠삐따까(Tipiṭaka)의 평범한(세간적) 의미를 용이하게 전달하기 위한 부처님의 전략이었다고 필자는 믿습니다.

  • * 따라서 맛지마- 빠띠빠다-(majjhimā paṭipadā)는 평범한(세간적) 의미에서는 ‘중간 길’이며, 그것은 좋은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러나, 출세간적(로꿋따라, lokuttara) 의미는 더 깊고, 이 숫따(sutta, 경)는 더 깊은 의미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기본 구조를 제시합니다. 45년간 전법하시는 동안, 붓다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세부 사항을 설명하셨습니다.

  • * 맛지마- 빠띠빠다-(majjhimā paṭipadā)의 한 가지 로꿋따라(lokuttara, 더 깊은/초월적) 의미는 ‘감각적 즐거움(쾌락)에 취(도취)하는 것을 피하는 것’입니다. ‘괴로움(고통)을 겪는 것이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여기서는 그것이 점진적인 과정임을 보여주기 위해 그것을 자세히 검토하겠습니다.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할 때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제거함으로써 높은 레벨의 취함(도취함)이 제거됩니다. 그 후, 단계적으로 더 지혜를 얻음에 따라 점점 더 낮은 레벨의 취함(도취함)이 제거됩니다.

  • * 우리는 pdf 파일로 된 이 자료 문헌 Dhammacakkappavattana Sutta-3 에 따라 설명할 것입니다.

 

2. 먼저, 제목에서 '포기'가 의미하는 바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포기한다는 의미이며, 순수한 의지나 힘으로 이 세상에 대한 들러붙음을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음은 합당한 이유가 없는 한, 즐겁다고 여기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 * 그 이유들이 붓다 담마의 모든 것입니다. 즐겁다고 여기는 것에 들러붙는 것이 왜 결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험한지를 진실로 이해함으로써 소따빤나(Sotapanna)가 됩니다. 그러나 소따빤나(Sotapanna) 조차도 31 영역으로 된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특성’을 보기만 하였습니다.

  • * 실제 '포기'는 그 다음에 오는데, 천천히 자발적으로 '포기'를 시작하여, 다음 두 단계인 사까다-가-미(Sakadāgāmi)와 아나-가-미(Anāgāmi) 단계를 거쳐, 결국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서 모든 들러붙음을 포기합니다.

  • * 따라서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것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포기는 이 세상의 진실된(참된) 본질(특성)을 깨달을 때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3. 위 pdf 파일에서 섹션 2의 첫 번째 구절에서는, “빅쿠들이여, 따타-가따(Tathāgata, 여래/붓다)가 설하였으며 비전(시각), 지혜, 고요함, 특별한 앎(‘아빈냐-_abhiññā’, 신통)으로 인도하고, 산(san)을 이해하고(삼보디, sambodhi) 닙바-나(Nibbāna)로 인도하는 맛지마- 빠띠빠다-(majjhimā paṭipadā)는 무엇인가?”라고 하십니다.

 

  • * [이어지는 두 번째 구절에서는] “그것은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 삼마- 상깝빠(sammā saṅkappa), 삼마- 와-짜-(sammā vācā), 삼마- 깜망따(sammā kammaṃta), 삼마- 아-지와(sammā ājiva), 삼마- 와-야-마(sammā vāyāma), 삼마- 사띠(sammā sati),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가 있는 성스런 팔정도다.”라고 하십니다.

  • * 세 번째 구절에서, 붓다께서는 그것이 참으로 도(길), 즉 맛지마- 빠띠빠다-(majjhimā paṭipadā)라고 확언하십니다.

 

4. 섹션 3에서는, 네 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가 간략하게 서술되어(웃데사_uddesa, ‘숫따 해석 ㅡ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 참조) 있습니다. 그 각각은 그 세부 사항의 정도에 따라 수천 권의 책이 되는 분량으로 자세하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 * 첫 번째 구절에서, 괴로움(고통)은 “자-띠’삐 둑카-, 자라-’삐 둑카-,…(Jāti'pi dukkha, jarā'pi dukkha,….)”입니다. 이 구절은 다른 것들 중 ‘첫 번째 성스런 진리는 괴로움만 나타내는가?’에서 이미 분석했습니다.

  • * 다음 구절에서는 괴로움의 원인(둑카 사무다야, dukkha samudaya)이 간결하게 설명되는데, “근본 원인은 땅하-(taṇhā)다. 다양한 것에 들러붙는 경향(야양 땅하-, yayaṃ taṇhā)은 그런 것들을 가치있게 여기고(난디라-가, nandirāga) 그것들에 우선순위를 부여함으로써(아비난디니, abhinandini) 바와를 만든다(뽀놉바위까-, ponobbhavikā). 이것들이 감각적 즐거움(쾌락)에 대한 갈망(까-마 땅하-, kāma taṇhā), 바와 땅하-(bhava taṇhā), 위바와 땅하-(vibhava taṇhā)다.”입니다. 땅하-(taṇhā)의 세 가지 유형은 ‘까-마 땅하-, 바와 땅하-, 위바와 땅하-’ 포스트에서 논의됩니다.

  • * 세 번째 구절은 그 원인들을 제거하는 방법에 대한 진리입니다. “땅하-(taṇhā)를 흔적없이 제거함으로써(예와 땅하-야 아세사ㅡ위라-가ㅡ니로도, yeva taṇhāya asesa-virāga-nirodho),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줌으로써(짜-고, cāgo), 모든 결속/속박/굴레를 끊음으로써(빠띠닛삭고, paṭinissaggo), 얽힘을 풀게 됨으로써(뭇띠,mutti), 모든 들러붙음을 제거함으로써(아날-라요, anālayo)”입니다.

  • * 그리고 네 번째 구절은 그것을 하는 방법, 즉 위 #3에서 언급된 성스런 팔정도를 통해 그것을 하는 방법입니다.

  • * 위의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더 자세히 더 설명하는 다른 포스트들이 있습니다. 오른쪽 상단의 ‘검색’ 박스를 사용하거나 ‘퓨어담마 - 사이트맵( Pure Dhamma – Sitemap )’을 통해 관련 포스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료를 제시하는/나타내는 방법(방식)은 매우 다양합니다.

 

5. 섹션 4부터 섹션 7절까지는 재탄생 과정에 갇혀 있게 되는 띠빠리왓따(tiparivaṭṭa, 세 개의 속박의 벽)를 이해함으로써 붓다께서 어떻게 붓다의 깨달음을 성취하셨는지를 설명합니다. 새로운 재탄생이 일어나는 과정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연기)에 의해 설명됩니다. 그것은 (이전 붓다 시대를 제외하고) 결코 세상에 알려진 적이 없습니다. 즉 “..붑베 아나눗수떼수 담메수..(..pubbe ananussutesu dhammesu..)”입니다.

 

  • * 우리는 이전 포스트에서 띠빠리왓따(tiparivaṭṭa), 즉 ‘세 라운드의 속박’이라는 용어에 대해 간략하게 논의했습니다. 다음 포스트에서 그것을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 먼저 “..붑뻬 아나눗수떼수 담메수 짝쿵 우다빠-디, 냐-낭 우다빠-디, 빤냐- 우다빠-디, 윗자- 우다빠-디, 알-로꼬 우다빠-디..(..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라는 용어에 대해 논의하고 싶습니다.

 

6. 붓다께서 세상에 결코 알려지지 않은 이 담마(Dhamma)를 이해함으로써 붓다가 되셨을 때, 다섯 가지의 특별한 앎이 일어났습니다. 그것들은 짝쿠(cakkhu), 냐-나(ñāṇa), 빤냐-(paññā), 윗자-(vijjā), 및 알-로까(āloka)입니다.

 

  • * 여기서 ‘짝쿠(cakkhu)는 이 세상의 참된 본질(특성)을 ‘보는’ 능력인 ‘담마의 눈(Dhamma eye)’입니다. 우리는 냐-나(ñāṇa)와 빤냐-(Paññā)를 개략적으로 ‘앎’과 ‘지혜’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 * 다음은 ‘윗자-(vijjā)’(산스크리트어 낱말은 ‘비드야-_vidyā’)입니다. 이것은 필자가 ‘붓다 담마’ 섹션의 ‘대통합 이론인 담마’ 서브 섹션에서 칭했던 ‘궁극적 과학’입니다. 부처님은 아주 드물게 세상에 출현하시는 가장 위대한 과학자입니다.

  • * 윗자-(vijjā)에 대한 이해와 동시에 ‘이 물질 세계’, 즉 ‘알-로까(āloka, ‘ā + lōka’)’에 대한 들러붙음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알-로까(āloka)’라는 낱말에는 ‘빛(light)’를 포함하여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의하겠습니다.

 

7. 이 다섯 가지 인자(요소)는 붓다의 깨달음(붓다후드, Buddhahood)에 도달할 때는 동시에 일어나지만, 다른 모든 이들은 그것들이 단계적으로 얻어집니다. 보통 사람의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 * ‘짝쿵 우다빠-디(cakkhuṃ udapādi)’(‘담마의 눈이 일어남’)은 소따빤나(Sotapanna) 단계, 즉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를 얻을 때 생깁니다.

  • * ‘냐-낭 우다빠-디(ñāṇaṃ udapādi)’는 사까다-가-미(Sakadāgāmi) 단계에 도달할 때 생깁니다.

  • * ‘빤냐- 우다빠-디(paññā udapādi)’는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 도달할 때 생깁니다.

  • * ‘윗자- 우다빠-디(vijjā udapādi)’는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 도달할 때 일어나며, 이때 ‘알-로까 우다빠-디(āloka udapādi)’가 동시에 일어납니다.

 

8. 섹션 9에는 “..아-야스마또 꼰단냣사 위라장 위-따말랑 담마짝쿵 우다빠-디ㅡ양 낀지 사무다야담망 삽방 땅 니로다담만’띠.(“..āyasmato Koṇḍaññassa virajaṃ vītamalaṃ dhammacakkhuṃ udapādi—yaṃ kiñci samudayadhammaṃ sabbaṃ taṃ nirodhadhamman’ti.)”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 * 이 첫 데사나(desana, 법문)를 듣고, 고행자인 꼰단냐(Koṇḍañña)는 소따빤나(Sotapanna)가 되었고, ‘담마 짝쿵 우다빠-디(dhamma cakkhuṃ udapādi)’, 즉 ‘존자에게 담마(Dhamma)의 눈이 일어났습니다’.

  • * 그 구절의 다음 부분인 “양 낀지 사무다야담망 삽방 땅 니로다담만’띠(yaṃ kiñci samudayadhammaṃ sabbaṃ taṃ nirodhadhamman’ti”는 담마의 눈이 파악한 것을 말합니다. 즉, “이 세상을 일으키는 모든 담마(samudaya dhamma, 사무다야 담마)는 다시 일어나는 것이 그칠 수 있는 담마(즉, 그것은 ‘니로다 담마_nirodha dhamma’)다”라는 것을 파악한 것입니다.

  • * 따라서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서, 그 사람은 이 ‘니로다(nirodha)’가 어떻게 행해지는 지를 알(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것을 하는 것은 다음 단계의 열반으로 이어지며, 결국에는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에 이르게 됩니다.

  • * 각자는 더 넓은 세계관(광대 세계관)을 이해함으로써, 그리고 그 이해만으로 높은 레벨의 취함(도취함)이 결실없다(무익하다)는 것을 봄으로써,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합니다(‘띠빠리왓따_tiparivatta’의 첫 라운드를 극복함).

 

9. 소따빤나(Sotapanna) 성자가 두 번째 앎을 획득할 때(냐-낭 우다빠-디, ñāṇaṃ udapādi), 그것이 그 성자가 정말로 ‘담마의 눈으로 세상의 겉보기 즐거움을 끊음으로써 아닛짜(anicca) 본질(특성)을 좀 더 보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이 과정은 모든 감각적 즐거움(쾌락)의 악영향과 위험함을 정말로 볼 수 있고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 도달할 때, 다음 단계인 ‘빤냐- 우다빠-디, paññā udapādi’를 통해 계속됩니다.

 

  • * 따라서, 여러분이 볼(알) 수 있듯이, 실제 ‘포기’는 점진적이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사람은 순전히 의지력으로 감각적인 즐거움(쾌락)을 포기할 필요도 없고 포기하려고 시도해서도 안됩니다(물론, ‘빠-빠 깜마_pāpa kamma’, 즉 다른 존재들의 괴로움/고통을 초래하는 행위는 제외).

  • *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살기 좋은 집을 가지는 것 등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이전의 좋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즉 담마를 배우고 숙고함으로써 그런 것들에 대한 갈망을 줄이는 것입니다. 세상 것들에 대한 갈망/욕망이 결실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10. 필자의 경험에서 간단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몇 년 전에 필자 아내와 필자는 여러 주 동안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케이블 서비스에 돈을 계속 지불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서비스를 취소했습니다(우리는 여전히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텔레비전 시청을 중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점차적으로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않았는데, 여러 주 동안 그것(시청하지 않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습니다. 물론 그 이후로 그런 변화들이 더 많이 있었습니다. 필자는 단지 붓다 담마가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예를 언급하고자 했습니다. 붓다 담마는 경험될 수 있는데, “..산딧티꼬, 아깔-리꼬, 에히빳시꼬..(..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인 것입니다.

 

  • * 여러분 중 많은 사람들은 왜 TV를 보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 좋은 것인지 궁금해 할 것입니다(그것은 직장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후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익숙하게 느끼는 인식입니다. 필자는 2008년 미국 대선 시즌의 TV 보도를 보면서 밤에 매우 동요/흥분했던 것이 상기됩니다. [그런 것들보다] 담마를 듣거나 읽는 것이 더 즐겁습니다.

  • *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를 얻기 위해 TV 시청을 그만두어야 한다거나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한 사람은 반드시 TV를 시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유념하세요. 부처님 재세시에 술 마시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사라까-니_Sarakāni’라고 하는) 소따빤나(Sotapanna) 성자가 있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서만 까-마 라-가(kāma rāga, 감각적 즐거움/쾌락)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각 사람은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하면 자신의 성격(가띠, gati)에 따라 어떤 감각적 즐거움(쾌락)을 줄이거나 포기까지도 할 수 있습니다.

 

11. 필자는 또한 자신의 시간을 담마를 배우기만 하는 것에 한정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또한 공덕행을 하고 붓다, 담마, 상가에도 예경하는 행을 해야 합니다. 그런 활동들은 마음이 담마를 받아들이고 담마를 이해하는 데 적합한 상태가 되는 것에 도움이 됩니다.

 

  • * 이것은 ‘아난따라와 사마난따라 빳짜야-’ 및 다른 몇 개의 포스트에서 논의된 미묘한 측면입니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기 위해서는 적당한 조건(흙, 물, 햇빛 등)이 필요하듯이, 마음을 즐겁게 하고 평온/고요하게 하는 공덕을 행함으로써 마음이 깊고 미묘한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보시하는 것(다-나, dāna)과 도덕적인 생활을 하는 것(실라, sila)은 바와나(담마에 대한 숙고와 이해)에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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