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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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 딴하-, 바와 딴하-, 위바와 딴하-


원문 :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Kāma Tanhā, Bhava Tanhā, Vibhava Tanhā’ 포스트


까-마 딴하-(kāma tanhā, 감각에 대한 갈애), 바와 딴하-(bhava tanhā, 존재에 대한 갈애) 및 위바와 딴하-(vibhava tanhā, 단멸에 대한 갈애)는 흔히 오해되는 3가지 주요 빠알리 용어입니다.


1. 딴하-(tanhā)는 탐하고 성내고 미혹하여 이 세상의 것들에 들러붙는 것입니다.


* 딴하-(tanhā)라는 낱말은 ‘thán’+ ‘hā’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여기서 ‘탄(thán)’은 (영어의) ‘thatch_쌔취’에서와 같은 음운을 가지며, 어떤 곳(a place)을 의미합니다. '하-(hā)'는 들러붙거나 융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Tanhā – How we Attach via Greed, Hate, and Ignorance’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tanhā’에서 ‘tan’은 (영어의) ‘thunder'에 있는 ‘thun'과 같이 발음된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2. 사람들은 (세상 것들로) 지속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여기는 무지 때문에 그것들에 들러붙습니다. 이 들러붙음은 처음에 탐욕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방해가 되면 미움을 일으키고, 이제 미움을 통해 다른 것에 들러붙습니다.


* 예를 들면, 십대 청소년이 차를 갖고 싶어 탐욕을 일으키고, 차를 갖고자 하는 그 생각에 묶입니다. 부모가 (그 요구를) 거절하면, 화를 내고 부모를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그는 두 곳(차와 부모)에 들러붙습니다.


3.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서는 5가지 감각기관이 모두 있습니다. 5가지 감각을 통해 접촉되는 것에 들러붙는 것이 까-마 딴하-(kāma tanhā)입니다. 그러나, 맛, 냄새 및 신체 접촉을 즐기려는 욕구에서 일어나는 들러붙음은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만 있습니다.


* 루-빠 로-까(rūpa lōka, 색계)에서 까-마 딴하-(kāma tanhā, 감각에 대한 갈애)는 눈과 귀로 인해서만 일어납니다. 따라서 루-빠 로-까(rūpa lōka, 색계)에 태어날 아나-가미(Anāgami, 불환자) 성자는 불상을 보고 싶어 하거나 법문을 듣고 싶어 하기 때문에 루-빠 딴하-(rūpa tanhā, 형색에 대한 갈애)와 삿다 딴하-(sadda tanhā, 소리에 대한 갈애)가 좀 있습니다.


4. 바와 딴하-(bhava tanhā)는 '어떤 존재'에 들러붙음으로 일어납니다. 따라서 바와 딴하-(bhava tanhā, 존재에 대한 갈애)는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 루-빠 로-까(rūpa lōka, 색계) 및 아루-빠 로-까(arūpa lōka, 무색계), 즉 모든 31영역에서 나타납니다.


*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서도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들에게는 주로 바와 딴하-(bhava tanhā)가 있습니다. 그들은 자-나(jhāna, 선정)를 계발하기에 적합한 한적한 곳에 있기를 좋아할 수 있으며, 그것이 원하는 바와(bhava)입니다. 자-나(jhāna, 선정)를 계발하면, 새로운 가티(gathi)에 따라 루-빠 로-까(rūpa lōka, 색계) 또는 아루-빠 로-까(arūpa lōka, 무색계)에 태어날 것입니다.

* 다른 미묘한 형태의 바와(bhava)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명해지고, 타이틀(직함)을 얻고, 특정 공직이나 책임을 맡기를 좋아합니다. 이것들은 감각적인 즐거움과 관련이 없으며, 또한 바하 딴하-(bhava tanhā, 존재에 대한 갈애) 때문입니다.


5. 위바와 딴하-(vibhava tanhā, 단멸에 대한 갈애)는 그릇된 유물론에서 생깁니다. 이 그릇된 유물론은 붓다 시대에는 우쩨-다 딧티(uccēda ditthi, 단견)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유정체가 죽으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견해입니다. 즉, 마음은 몸(뇌)의 부산물이고, 그래서 몸이 죽으면 끝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이 생의 즐거움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믿는 자들은 분명히 까-마 딴하-(kāma tanhā, 감각에 대한 갈애)도 있습니다.


* 위바와 딴하-(vibhava tanhā, 단멸에 대한 갈애)를 가지기가 쉽습니다. 특히, 31영역으로 된 더 넓고 복잡한 세계와 재탄생(윤회) 과정에 대한 붓다의 메시지를 듣지 못했을 때, 그렇게 위바와 딴하-(vibhava tanhā)를 가지기가 쉽습니다. 보통 사람의 감각으로는 이 세상의 그런 감춰진 면을 볼 수 없으므로, 사람들은 보는 것만 믿습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설명하려면 정말로 ‘더 넓은 세계관’이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Vagaries of Life and the Way to Seek “Good Rebirths’ 포스트를 보세요.

* 많은 부도덕한 행위는 우쩨-다 딧티(uccēda ditthi, 단견, 유물론 또는 허무주의)로 행해집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들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동물이 살해될 때 고통으로 인해 울부짖는 것이 명백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마음에 어떠한 (행위 변화의) 결과(영향)도 미치지 않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이 태어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면(한 번 뿐이라면) 미래에 같은 운명에 직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 우쩨-다 딧티(uccēda ditthi, 단견)에서 위바와 딴하-(vibhava tanhā, 단멸에 대한 갈애)로 이어지는 것은 Brahmajala Sutta의 3.2.4 섹션 Ucchēdavāda 에 나와 있습니다.

* 음식으로 야채를 자르는 것과 동물을 죽이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좀 숙고가 필요합니다. 분명히 동물은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면, 동물은 우리 사람과는 어떻게 다를까요? 동물은 지적 수준에서만 우리와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전의 선한 행위로 인하여 100년 정도의 일시적인 인간의 삶을 얻는 행운을 가졌기 때문에 지적 수준이 동물보다 더 높습니다.

* 다음 탄생에서 우리는 동물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축적한 깜마(kamma, 업)의 유형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한 분석을 거쳐, ‘붓다 담마(Buddha Dhamma)’가 잘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자신이 확신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많은 사람들은 단지 그런 조사를 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들이지 않습니다.


6. 길(팔정도)을 나아감에 따라, 각 딴하-(tanhā, 갈애)가 어떻게 제거되는지 보겠습니다.


* 길(팔정도)을 가기 시작하여 붓다의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세 가지 유형의 딴하-(tanhā, 갈애)가 점차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그 변화와 그에 따라 생기는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 번뇌가 사그라드는 행복)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에 따라 뚜렷한 변화를 느끼기까지는 며칠, 몇 달 또는 심지어 1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 위바와 딴하-(vibhava tanhā, 단멸에 대한 갈애)는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밋짜 딧티(micca ditthi)를 가질 때만 ‘위바와 딴하-(vibhava tanhā)’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탄생(윤회) 과정을 믿지 않으면, 위바와 딴하-(vibhava tanhā)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 까-마 딴하-(kāma tanhā, 감각에 대한 갈애)는 닙바-나(Nibbāna)의 네 단계에서 단계적으로 제거되는 다양한 수준의 ‘들러붙음’으로 이끕니다. 까-맛찬다(kāmaccanda)는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까-마 라가(kāma raga)는 사까다-가미(Sakadāgami) 단계에서 감소되고 아나-가미(Anāgami)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이 과정은 다음 포스트, ‘Lobha, Raga and kāmaccanda, kāmaraga’ 에서 다루어집니다.

* 31영역의 어딘가에 다시 태어나면, 바와 딴하-(bhava tahhā, 존재에 대한 갈애)가 있습니다. 따라서, 바와 딴하-(bhava tahhā)는 아라한뜨(Arahant) 단계에서만 완전히 제거됩니다.


7. 마지막으로 두 가지 관련 사항입니다.


*  이러한 세 가지 ‘묶는(들러붙는) 경향’, 즉, 까-마 딴하-(kāma tanhā), 바와 딴하-(bhava tanhā) 및 위바와 딴하-(vibhava tanhā)는 까-마사와(kāmasava), 바와-사와(bhavāsava) 및 위바와-사와(vibhavāsava)로 인해 일어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딴하-(tanhā)는 아사-와(asāva, 번뇌)로 인해 발생합니다. 깊게 박혀있는 갈망이 있기 때문에 들러붙게 됩니다.

*  때때로 위바와-사와(vibhavāsava)는 딧타-사와(ditthāsava, ditthi asāva)와 아윗자-사와(avijjāsava, avijja āsava) 두 가지로 나뉩니다. 이것은 위바와-사와(vibhavāsava)가 잘못된 견해(사견)와 무지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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